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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윈코리아]대한항공 "한마음으로 '상생' 날개 더 크게"
- 중국 네이멍구 쿠부치사막에서 열린 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한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앞줄 오른쪽 세번째)과 임직원들이 나무심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작년 ‘동행’이라는 따뜻한 바람을 일으킨 대한항공이 갑오년 새해 다시 한번 모두와의 ‘상생’을 위해 더 높이 난다. 지난해 동행을 키워드로 공동의 가치관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했다면 올해는 ‘한마음’을 모티브로 삼아 나눔의 기조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앞장서서 ‘한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동행’을 통해 작년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가 되기 위한 외형적인 기반을 닦았다면 45주년을 맞는 올해 위기를 극복하고 동반자들과 함께 상생하려면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야 한다는 의미다. 조 회장은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동행의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적으로 작년 3월 ‘한진그룹 사회봉사단’을 발족하고 그룹 계열사가 개별적으로 진행한 사회공헌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아울러 그룹 통합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위드(WITH) 캠페인’을 선포하고, 세계 각지에 사랑을 나누는 ‘나눔지기’, 국내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인 ‘꿈나무지기’, 글로벌 친환경 활동인 ‘환경지기’,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문화지기’ 등 4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이어 올해는 협력업체와 지역사회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성장하는 기업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윤리·상생 경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대표항공사인 대한항공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사랑나눔 일일 카페’를 해마다 열어 수익금과 후원금을 국제아동돕기연합의 탄자니아 어린이 구호 사업에도 기부하고, 매년 연말 노사가 함께 ‘사랑의 연탄 나르기’로 저소득층 가정에 연탄을 기증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임직원들이 내놓은 소중한 물품으로 ‘하늘사랑 바자회’를 개최해 수익금 전액을 사회복지 시설에 전달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의료 봉사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2008년 항공의료센터 소속 의료진으로 구성한 의료봉사단을 발족하고 외국인 근로자, 농촌 어르신, 사회보호시설 어린이 등 의료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인술을 펼치고 있다.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답게 해외에도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지구환경 개선을 위해 중국과 몽골 사막 지역 식목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몽골 울란바타르 인근 바가노르구(區) 인근 사막지역에 조성한 ‘대한항공 숲’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곳이 10년동안 35만m²규모에 7만7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푸른 숲으로 변모, 해외 나무 심기 봉사활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대한항공은 산하 협력업체들과 기술지원, 직원 교육 등을 토대로 한 상생경영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제 항공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받도록 지원하고, 해외 기술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국제적인 경쟁력과 자생력을 지닐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한항공은 기술력 높은 협력업체를 발굴해 생산, 수출, 고용 증가 등 경제구조가 활성화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나갈 계획이다.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KBS 88체육관에서 ‘2013년 하늘사랑 바자회’를 개최했다. 여행 기념품을 비롯해 의류, 가전, 화장품 등 약 2만여점의 물품이 전시됐다. 수익금 전액은 강서구청에 위탁해 관내 장애우, 독거노인 등 사회복지 시설에 전달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바자회를 찾은 주민들에게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대한항공 제공.
- [성공 異야기]"기업은 사람이 전부입니다"
- [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기술이나 돈보다 조직력을 가장 중시했습니다”차량용 블랙박스 ‘유라이브(Urive)’로 유명한 미동전자통신(161570)은 임직원 30여명 규모의 강소기업이다. 설립 5년 차에 코스닥 시장에 당당히 입성했고, 매출액 성장세는 가파르면서도 야무지다.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미동전자통신 본사에서 김범수 대표이사(사진)를 만났다.◇공학도 출신 사장의 우연한 선택김 대표의 어린 시절 꿈은 엔지니어였다. 납땜인두를 가지고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기를 좋아했고, 그렇게 꾼 꿈은 그를 공학도의 길로 인도했다. 성균관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립대학과 산호세주립대학에서 전기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차례로 받았다.전기공학과 인연을 맺은 뒤의 인생도 우연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가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된 것도, 블랙박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대우전자 재직 시절,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따러 카이스트(KAIST)에 다녔다. 연구원으로서 전문적인 학력이 필요했고, 회사 차원에서도 학위 따는 일을 도와줬다.하지만 그가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회사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대우전자의 주인은 바뀌었고 이 때문에 그도 회사를 나와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창업이 항상 순탄치는 없았다. 월 200만원의 박봉으로 가족들의 눈치에 시달리기도 했고, 지친 회사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하면서 사업이 실패하기도 했다.하지만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미동전자통신을 창업하기 전 그는 영상을 이용한 지능형 자동차 시스템 연구에 푹 빠져 있었다. 자동차가 스스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다.그런 와중에 일본의 한 업체로부터 택시 내부를 촬영할 모바일 CCTV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영상을 저장하는 장치도 개발하게 됐다. 우연한 선택은 옳았다. 당시 지능형 자동차 시장보단 블랙박스 시장이 더 커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주된 사업 방향을 블랙박스로 튼 것이다.◇‘통제’ 없는 기업 문화..주인 의식으로 승부하다“우리는 직원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창의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설립 이래 회사를 떠난 사람도 없습니다. 세세한 경영 상황까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바로바로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미동전자통신의 직원 모두는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주주다. 임직원들은 회사 설립부터 지분을 나눠 가졌다. 이 때문에 굳이 관료주의적 통제를 하지 않아도 직원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작은 기업이지만, 대기업 부럽지 않은 사내 복지를 자랑한다. 모든 직원이 정해진 정년 없이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도록 했고 자녀가 몇 명이든 모든 임직원 자녀에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한다.◇‘무차입 경영’ 고집..현금보유고만 300억시장에 뛰어들어 자리를 잡기까지 임직원들은 원래 받아야 할 급여의 60% 수준만 받고 일했다. 이익이 날 때까지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을 사장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외부 차입을 통해 넉넉히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해서는 돈의 귀중함을 모른다는 생각에 ‘무차입 경영’을 고집했다.김 대표는 “사업 첫해에는 매출액이 20억원 정도에 그쳐 매우 어려웠지만, 금융기관으로부터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았다”며 “필요하면 대표가 돈을 마련하고 임직원들이 급여를 양보한 결과 현재 현금보유고는 300억원 가까이 될 정도로 튼실한 재무구조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일본·남미 진출..국내 점유율도 2년 내 2배로”블랙박스 시장은 지난 2009년 이후 가파르게 성장해 왔다. 2008년 판매량은 6만여대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11만대로, 지난해엔 240만대가 팔렸다. 업계에선 블랙박스 설치 차량에 대해 자동차보험료를 5% 깎아주고, 앞으로 블랙박스 설치가 의무화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올해에도 300만대 규모의 블랙박스가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박스 업체들은 해외 진출에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 시장이 머지 않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판단에서다.미동전자통신도 해외 시장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남미 시장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장환경을 갖추고 있다. 브라질과 파라과이에선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면 올해 하반기에는 현지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국내 시장점유율도 2년 안에 두 배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블랙박스 회사로선 유일한 상장사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내년에는 시장점유율 40%(2013년말 현재 25%)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차량용 블랙박스 사업에만 ‘올인’해 있어 SK텔레콤이나 KT 등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시장 공략에 나서거나 다른 대체재가 개발되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김 대표는 이같은 우려를 일축했다.김 대표는 “이미 2009년부터 스마트폰 블랙박스 어플리케이션은 출시됐지만, 운전 중 전화가 오면 작동이 어려운 점, 주차 중 녹화가 불가능한 점 등의 이유로 대중화가 안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광고모델 ‘수지’ 선정..“프리미엄 브랜드 알리겠다”미동전자통신은 미동전자통신은 미쓰에이 수지를 광고모델로 선정, 지난달부터 6개월동안 주요 매체에 블랙박스 제품을 광고할 계획이다.광고 모델로 과감히 ‘국민 첫사랑’ 수지를 선정, 주요 매체를 통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서울시내버스 광고판에서도 수지가 등장하는 미동전자통신의 블랙박스 제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신인 배우를 모델로 브랜드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부터는 경쟁사 제품보다 더 낫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었다고 말한다.김 대표는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고 모델 로열티도 높은 수지를 광고 모델로 사용하면서 경쟁사 제품보다 우리 제품이 더 낫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20여 명의 광고 모델 후보군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의 의견 수렴을 거쳐 수지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최근 무상증자는 유통 주식수 늘리기 위한 것”지난달 9일 미동전자통신은 보통주 1주당 2주를 배정하는 통 큰 무상증자를 단행했다. 증권업계에선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자, 주가를 올리기 위해 무상증자를 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동전자통신의 주가가 내렸을 때 싼 값에 주식을 사고자 했던 개인투자자들은 무상증자로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됐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다.김 대표는 그러나 “주가가 오르면 언젠가는 또 내리기 마련이라 경영자 입장에선 주가가 급격히 오르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주가 부양 목적에서 무상증자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이어 “무상증자는 현금보유고가 300억원으로 넉넉한 상황에서 자본금은 15억원 밖에 안 돼 자본금을 늘리려는 목적에서 단행한 것”이라며 “300만주 밖에 안 되는 유통 주식수도 너무 적다고 봤는데, 유통 주식수가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이 주식을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성공한 기업의 주식을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회사의 성공에 기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것. 김 대표는 그 꿈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김범수 대표는1959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정보통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현대전자에서 일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 신호처리 연구실과 대우전자를 거쳐 2001년에는 디지탈온넷 기술 총괄이사를 역임했다. 대표이사직은 2003년 제타네트에서 처음 맡았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미동전자통신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미동전자통신, ADAS 블랙박스 홈쇼핑 통해 출시☞[특징주]미동전자통신, 무증 신주 상장 후 '급락'
- [변호인 1000만③]제작자 인터뷰 "극중 고문 이야기는 실제 경험"
- ‘변호인’ 제작자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이데일리 스타in과 인터뷰를 갖고 ‘1000만 관객 돌파’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영화 ‘변호인’을 처음 구상한 것은 양우석 감독이었다. 배우 송강호가 합류해 완성할 수 있었다. 판은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가 짰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대학생과 그를 돕는 변호사 이야기. 1981년 군사정권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조작한 용공사건인 ‘부림사건’과 당시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인권변호사로 거듭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철도 민영화 논란 등 정치사회적 현안들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던 상황에 등장한 ‘변호인’은 그 자체로 ‘뜨거운 감자’였다. 평점 테러에 시달렸고, 티켓테러 소문도 뒤를 이었다. 불법파일도 유출됐다. 하지만,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최소한의 말만 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대빵’으로 불린 사람이 있다. 제작자인 최재원 대표다.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과는 같은 대학 선후배(고려대 86, 88학번)에 주연배우 송강호와는 십년지기 친구 사이다. 뒤늦게 인터뷰에 나선 최 대표는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대신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변호인’ 흥행 어느 정도 예상했나. ▲솔직히 어느 정도는 될 거라고 봤다. 주연배우가 송강호잖나. 처음 예상은 400~500만 정도? 그런데 1000만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영화 촬영 당시 송강호가 이런 말을 했다. “‘변호인’은 50만 명이 봐도 500만 명이 본 것 같은 영화가 될 거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사하다. - 1000만 관객 돌파 소감은?▲요즘 축하인사를 정말 많이 받는다.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고 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역시 송강호다. 그다음은 좋은 글을 쓰고, 촬영 내내 방향을 잃지 않아 준 감독. 그 둘을 중심으로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정말 즐겁게 일했다. 심지어는 법정 안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이름도 기억 못 할 단역 배우들까지도. 여기에 뜨겁게 공감해준 관객들까지.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다. - ‘변호인’을 만들게 된 계기는? 두려움은 없었나. ▲웹툰작가이던 양우석 감독과 ‘스틸레인’이라는 작품을 기획하다가 엎어졌다. 다른 거 없을까 하다가 접한 게 ‘변호인’이다. 50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였다. 두려움은 왜 없었겠나. 내일모레면 쉰인데 우리 나이쯤 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마누라다. 그래서 “할까, 말까?” 물었는데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잖아. 그게 최재원 아냐?”라더라. 다음날 바로 감독을 불러서 하자고 했다. 단, ‘정치인 노무현’의 색깔은 최대한 빼고 만들자고 했다. 그게 2012년 4월쯤의 일이다. 이후 10월 송강호가 합류하며 속도를 내게 됐다. - 돈은 어떻게 구했나. ▲규모는 정해놓은 게 없었다. 돈이 모이는 대로 맞춰서 찍자고 했다. 처음 예산을 잡은 건 20~30억 원 정도였는데 송강호가 합류하며 원하는 만큼의 예산을 쓸 수 있게 됐다. 순 제작비는 42억 원 정도 된다. 마케팅 홍보비 등을 더하면 전체 약 75억 원 규모다. 인건비와 먹고 자는 비용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제작자로서의 철칙이다. 그래야 현장이 신이 나지 않겠나. - ‘486세대’다. 학창시절 운동권이었나. ▲사실 영화에서 진우(임시완 분)가 겪는 고문은 실제 경험담이다. 현장에서 조서를 꾸밀 때 어땠는지 등 자문도 직접 했는데 촬영하는 모습은 도무지 못 보겠더라. 고문신 첫 촬영 하는데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장 같았다. 아침마다 유서를 써놓고 학교에 갔을 정도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끔찍했는데 열정적이었다. 의식도 강했고. - 이번 영화는 유독 소문이 많았다. 제작사 대표가 청와대에 불려 갔다 등등. 외압은 정말 없었나. ▲정치적인 위험과 논란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벌인 일이다. 그래도 한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정치인 노무현’의 전기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간 노무현’의 어느 한 시절을 동기화한 건데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했다. 소문은 많았지만, 외압은 없었다. -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허구인가.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고시 공부를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 막노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갔던 일화는 실제에 근거한 것이지만 부림사건에 국밥집 아들이 연루됐었던 건 아니다. 변호사로 돈을 벌어 아파트로 이사 간 것도 맞다. 그 집이 막노동하며 직접 지은 집이 아니었던 거지. 그런 식으로 사실과 허구를 섞었다. - 총 제작비 75억 원에 입장권 매출이 약 700억 원. 제작비의 10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수익도 상당할 것 같은데.▲그런 만큼 많이 나눌 생각이다. 이번 영화 만들며 고마웠던 사람들이 많다. ‘변호인’이 설 연휴 지나 2월 중순까지는 극장에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상반기 내내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 - 기록 경신 이야기도 나온다. 흥행 어디까지 기대하나. ▲언제부턴가 ‘아바타’ ‘괴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욕심은 없다. 지금까지만도 충분히 감사하다. 1000만 영화 가운데 ‘변호인’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은 없었다. 관객 수보다 그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 ‘변호인’ 흥행 요인 어디에 있다고 보나.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40~50대 80학번들은 기시감을, 30대 90학번은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 것 같은 느낌으로. 10~20대는 당시 시대상보다는 영화적인 재미에 더 끌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사람들이 그만큼 외로웠던 게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모여 1000만이라는 숫자를 만들었다. - ‘살인의 추억’부터 ‘변호인’까지. 최 대표의 영화인생에서 배우 송강호를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10년 우정이 궁금한데. ▲성공의 길을 같이 걸어왔다. ‘살인의 추억’ 투자를 담당하며 연을 맺었고 ‘효자동 이발사’로 친구가 됐다. 이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하면서 조금 더 편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리가 있었는데 이번 영화 ‘변호인’을 하며 ‘절친’이 됐다.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송강호가 맡은 역할은 ‘이상한 놈’이었다. 실제로는 어떤가. ▲물론 ‘너무나 좋은 놈’이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식견, 철학, 삶의 태도 등이 볼수록 놀랍다. 그런 훌륭한 배우를 친구로 뒀다는 게 자랑스럽다. 물론 일반인의 삶의 태도로 보면 과하게 민감한 점 등이 이상해 보일 순 있다. 예술적 열정 때문에 자기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를 보면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기보단 그의 예술적 고뇌를 이해하려고 드는 것처럼 그의 예술인으로서의 가치를 알게 되면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싶어진다. 송강호는 국민이 귀하게 여겨야 하는, 존중받아야 할 예인이다. - 10여 년간 수많은 영화에 투자하고 또 제작했다. 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옛날 장터 주막 툇마루에 걸터앉아 주고받던 막걸리 한 잔 같은 것? 주머니에 동전 한 잎만 있으면 먹을 수 있었던 국밥 한 그릇도 떠오른다. 영화는 싸구려 문화다. 저렴하게 감정을 나누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데 영화만 한 게 없다. ◇최재원 대표는..1967년생. 고려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한국산업증권을 거쳐 무한기술투자에서 영화 부문 투자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영화와 연을 맺었다. 2000년 투자사 아이픽쳐스를 설립했으며, 2005년 아이픽쳐스를 인수한 바른손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아이픽쳐스와 바른손에서 영화 ‘장화, 홍련’ ‘고양이를 부탁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등 40여 편의 투자와 제작에 관여했다. 2009년부터 1년간 영화투자배급사 뉴(NEW)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0년 5월 영화제작사 위더스필름을 설립,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를 만들었다. ‘변호인’이 위더스필름의 두 번째 작품이다.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가 이데일리 스타in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송강호 포스터가 담긴 액자를 들고 추억을 되새기며 웃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 [변호인 1000만①]韓영화 9번째 골든벨..'변호인'이 남긴 것☞ [변호인 1000만②]"송강호에 관객까지 모두가 함께 만든 기적"☞ [변호인 1000만④]기록으로 살펴본 '천만영화 기네스!'☞ 盧 대통령 묘에 놓인 '변호인' 티켓 한 장☞ [굿모닝이데일리]2000만 한국인이 사랑한 배우 송강호
- 중국판 '번개맨' 나온다..EBS, 방송 포맷 첫 수출
- [베이징(중국)=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EBS 아동 인기 프로그램EBS가 제작한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딩동댕’의 인기 캐릭터 번개맨을 올해 하반기 중국에서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신용섭 EBS 사장은 16일(현지시각) 저녁 “중국 내 방송대학 등을 운영하는 교육방송업체 CETV에 ‘모여라 딩동댕(번개맨)’ 방송 포맷을 팔았다”면서 “EBS가 방송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CETV는 1986년 설립됐으며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 중국국제라디오방송국, 중국중앙방송(CCTV)와 더불어 중국의 4대 국영방송이다. 5개 TV 채널과 중국 최대 규모 IPTV 교육 미디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신 사장은 “‘모여라 딩동댕’의 인기 캐릭터 번개맨의 원래 직업이 소방관이다 보니 어린이들의 꿈도 변하더라”면서 “지금까지 700회 방송됐는데, 뮤지컬로 제작하니 인터넷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뮤지컬로만 8억 원을 벌었다”고 전했다.실제로 뮤지컬 ‘번개맨의 비밀’은 3040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볼 공연으로 택하면서, 지난해 여름 4주 동안 9만 명이 넘는 유료 관객을 모으며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EBS는 일단 CETV에 10회 방송분을 수출했고, 1회당 1000달러씩 받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번개맨의 비밀’에서는 번개맨을 비롯해 조이랜드의 마스코트 ‘콩콩조이’와 로보카 보안관 ‘마리오’, 깜찍땡이와 꽃남별이, 공주달이가 뭉친 ‘반딧불이 삼총사’ 그리고 ‘나잘난’과 ‘더잘난’ 등 ‘모여라 딩동댕’의 캐릭터들이 총출동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신나는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뤼 시에우 CETV 부사장은 “CETV도 이번 공개방송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중국의 어린이들에게 고품격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이번 면담에서 CETV는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 유아교육 콘텐츠의 공동 기획, 제작 등을 제안했으며, EBS는 CETV의 모바일 앱 개발을 비롯한 IT 활용 교육 콘텐츠 제작 등의 분야에서 향후 양사의 협력 관계를 더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한편 EBS의 번개맨은 물론 앞서 MBC가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등의 포맷을 수출했지만, 최근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MBC 관계자는 “대장금이 히트를 하자 중국은 황금 시간대에 해외 방송 프로그램을 못 팔게 해서 우회하려고 ‘아빠 어디가’, ‘나는 가수다’ 포맷을 수출하면서 8, 9억 정도면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해당 방송사가 광고만 500억 원 벌었다는 얘기가 나오자 중국 정부가 방송 프로그램 포맷도 1년에 1사당 1개로 제한했다”면서 “계약을 광고 수주 기준으로 다시 하자고 하고 있으며 재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10명이 보나 수억 명이 보나 차이가 나도록 ‘회당 얼마’라는 조건은 고쳐야 한다”면서 “수익구조를 얼마로 하는 식으로 안 밑지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양 사가 16일 중국 베이징 CETV(중국 국영 교육방송) 창의문화센터에서 프로그램 포맷 수출에 합의한 후, 신용섭 EBS 사장(오른쪽)이 뤼 시에우 CETV 부사장에게 어린이용 번개맨 의상을 전달하고 있다.▶ 관련기사 ◀☞ 이경재 위원장 "상호주의 원칙따라 중국과 방송교류 확대"(인터뷰)☞ 달라진 분위기, '한중 합작 731부대 드라마' 나오나☞ 이경재, 중국에 "UHD 콘텐츠 합작으로 일본 넘어서자"☞ 중국, 대포폰 골머리..인터넷 실명제 검토☞ 한중인터넷 장관급 회담, 선플 공감 '화기애애'
- '공기 반, 소리 반'...'발성만 잘하면 나도 천(千)의 목소리'
-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벌써 시즌 세 번째를 맞은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시즌이 거듭될 수록 인기가 시들어지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높은 관심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참가자들의 놀라운 실력도 한 몫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요인은 세 명의 심사위원의 개성 넘치는 심사평일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박진영은 ‘공기 반, 소리 반’ 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을 정도로 매회 화제의 심사평을 남긴다.박진영 심사위원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발성’이다. 발성의 위치, 발성 시 자세, 호흡 등을 골고루 지적하며, 올바른 발성 훈련만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런데 올바른 발성은 비단 노래를 부르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을 할 때 내는 일상적인 목소리에도 발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안철민 프라나이비인후과 원장은 “발성은 기본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음색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면 잘못된 발성습관은 성대결절, 연축성 발성장애 등 다양한 음성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만큼 평소 올바른 발성습관을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올바른 발성의 핵심은 호흡! 호흡 방식, 공명 위치에 따라 다양한 소리 낼 수 있어그렇다면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발성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발성이란 폐로부터 나온 숨이 후두의 두 성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聲門)을 통과하면서 성대를 진동시켜 목소리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성대를 중심으로 하는 발생기관의 운동에 영향을 주는 호흡, 언어를 만드는 혀, 입술, 치아 등의 여러 기관과 목소리 형성에 관계하는 흉강(胸腔), 구강(口腔), 비강(鼻腔), 인두강(咽頭腔)의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음색을 결정 짓는다.또한 목소리는 호흡과 발성, 생성된 목소리가 증폭되는 공명, 발음 네 가지가 유기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데 발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자연스럽고 충분한 호흡을 바탕으로 한 공기량 조절 능력에 따라 다양한 발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식호흡, 흉식호흡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 소리를 증폭시키는 공명의 위치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진다. 머리를 이용해 공명을 하면 고음의 두성을 낼 수 있고, 가슴을 이용해 공명을 하면 깊은 소리의 흉성을 낼 수 있다.이처럼 음성 발생기관 및 주변 관계기관 등을 활용해 각각의 기관들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은 소리,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절능력은 꾸준한 노력과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다. 만약 가수나 성악가가 꿈이거나, 노래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올바른 발성습관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발성습관, 음성질환 유발할 수 있어. 음성언어치료 통해 개선 가능올바른 발성습관은 말하기에도 적용된다. 특히 호흡 - 발성 - 공명 - 발음이 유기적으로 작용하지 못한 잘못된 발성습관은 다양한 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호흡이 지나치게 약하다면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를 내거나 말을 할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는 연축성 발성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반면 과도한 발성과 공명은 성대에 무리를 가해 성대결절이나 성대폴립 등의 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안 원장은 “음성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잘못된 발성습관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잘못된 발성습관은 보통 주 1~3회씩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한 음성언어치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음성언어치료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통한 발성기관 검사 등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한 후, 언어치료사를 통해 올바른 발성을 훈련하는 치료다. 호흡 - 발성 - 공명 - 발음 등을 기초부터 훈련하며, ‘호흡 - 발성시작 - 읽기 - 독백 - 대화’ 순으로 진행된다. 발성구조의 정상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한 자세교정부터 호흡 훈련, 성대의 운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발성훈련까지 전반적으로 이루어져 잘못된 발성습관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이다.
- [성공異야기] 박성혜 "연기돌 만들어 '꽃미남' 시리즈 활짝"
-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 등으로 ‘꽃미남’ 시리즈 드라마로 성공신화를 쓴 박성혜 오보이프로젝트 대표.(사진=김정욱 기자 98luke@)[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지난해 12월의 어느날. 박성혜 오보이프로젝트 대표의 사무실 겸 아지트인 논현동 카페 ‘bar·2’에 요즘 잘나간다는 매니저 50여 명이 모였다. 박성혜 대표가 본부장으로 일했던 싸이더스HQ 출신 OB 멤버들의 모임이다. 매니지먼트 숲, 킹콩엔터테인먼트 등 굵직한 매니지먼트 업체 대표만 무려 30여 명. 마치 요즘 대한민국 배우 군단의 대표가 모두 모인 격이었다.“함께 웃고 울던 후배들이 다 자리를 잡은 게 뿌듯했어요. 마치 사관학교 선생님 같은 기분이랄까? 싸이더스HQ에서 일했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잘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박 대표는 국내 여성 매니저의 수장 격이다. 부푼 퍼머 헤어스타일이 먼저 눈에 띈다. 오랜 경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장감과 책과 씨름하면서 익힌 이론도 풍부하다. “20대와 30대는 쉼 없이 달려온 거 같아요. 소위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미모도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술이 좋나, 집안이 좋나, 열정 하나밖에 없었죠. 다행히 머리를 빨리 깨어났는지 대학 졸업할 당시 밑천이 없어도 어떻게 리더로 살아가야 고민도 많이 했어요.”박 대표는 1990년 재수 끝에 명지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사진에 빠졌고, 대학 졸업 즈음에는 연극 극단에서 일했다. 모델라인, 모델센터에 들어간 모델의 사진을 찍으면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1994년 배우 염정아를 시작으로 여성 매니저로 활동했다. 배우 매니저임에도 운전도 할 줄 몰랐다. 스타서치, 싸이더스HQ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스타들을 조련했다.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이종혁, 윤진서, 하정우, 정우성 등과 함께했다. 1999년 당시 김혜수와 전도연의 매니저로 이름을 날릴 당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지진희를 1년 여 동안 설득 끝에 배우로 데뷔시킨 일화는 유명하다.“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는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죠. 길게 봤을 때 배우가 신뢰하는 매니저는 위너가 되더라고요. 배우를 내 사람으로 만들 줄 아는 매니저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믿음을 주는 매니저더라고요. 신뢰가 매니저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박성혜 오보이프로젝트 대표.(사진=김정욱 기자)박 대표는 최근 매니지먼트와 함께 드라마 제작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꽃미남 라면가게’, ‘닥치고 꽃미남’에 이어 지난 2013년 3월 ‘이웃집 꽃미남’, 7월 ‘시라노연애조작단’을 내놨다. 하나같이 성공을 거둬 후배 매니저뿐 아니라 드라마 제작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모범이 됐다. 박 대표는 “두 편 모두 ‘나인’이라는 걸작의 앞뒤에 방송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박 대표가 드라마 제작사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훌쩍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석사를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홍익대학교에서 광고홍보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등 현장감과 이론을 겸비한 ‘매니저 출신 교수’를 꿈꾸다 드라마에 눈을 돌리게 됐다. 박사 과정은 모두 마쳤지만 논문을 끝내지는 않았다.“귀국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강단에 서 볼까 꿈도 꿔봤어요.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밴드를 모은 인디밴드 레이블을 만들까 고민하기도 했고요. 우연찮게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을 보다 박유천의 매력을 다시 보게 됐고, ‘꽃미남’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죠. 노래가 아닌 연기를 하는 아이돌을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을 100장이 넘는 기획서에 담았더니 열정을 인정받았는지 편성을 받았어요.”박 대표는 40대 중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20대의 눈과 마음으로 살고 있다. 홀로 살고 있는 솔로의 삶 때문인지 여전히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을 그리워하게 됐다. 스스로 “20대와 30대와 달리 40대 솔로가 되자 성격도 부드러워지고 눈물도 많아졌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예전 매니저 생활을 기억하는 이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박 대표는 대중과 호흡하는 직업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의 힘’을 믿게 됐다. 매니저 후배나 전문인을 꿈꾸는 여성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면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밖에 없다”고 조언해준다. 가진 것 없고 비빌 데 없는 이가 리더를 꿈꾼다면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앞만 바라보지 말고 가끔 주위의 사람에 눈을 돌리고 또 가끔 지나온 과거의 사람에게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20대 때는 마치 독수리의 눈을 가진 사람 같았어요. 뭐든지 잘해낼 수 있다는 용기 때문에 저 하나만 믿고 살았죠. 30대 때는 저보다는 배우에게 집중했던 것 같아요. 배우의 성공이 곧 저의 성공 같았거든요. 40대를 앞둔 서른아홉 즈음 불현듯 회의가 들었어요. 나 자신은 어디에 있나, 어디쯤 왔나 이런 생각이요. 훌쩍 뉴욕으로 건너가 앞으로는 제 자신을 위해 살자 다짐했죠. 그 때부터 제 주위의 사람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소외된 이웃,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부터죠.”2010년 내놓은 책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는 제목 역시 그녀의 변화된 마음을 대변한다. 책을 쓰면서 지나온 과정을 되돌아봤고, 잊고 지냈던 추억과 사람에 대한 기억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20,30대를 돌이켜보면 치열하게 살았던 나날이 지금 40대의 여유를 찾게 된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후회되는 것은 주위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었다. “성공의 기준이라는 게 모호해요.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나,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나 정해진 게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명예와 부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기는 것 같아요. 20대, 30대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여자로서 사회인으로 직업인으로 모든 걸 해본 거 같아요. 지금 별 게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딸린 자식이 없으니 저 하나 먹고 살 정도 돈이면 충분하고요. 누구든 자신의 위치에서 인정을 받는 게 명예와 부보다 먼저인 게 아닐까요?”앞으로 건강한 삶은 대략 15년쯤 남았다는 게 그녀의 계산이다. 15년 동안 사람과의 호흡으로 함께하는 일이 무얼까 고민 중이다. ‘꽃미남’의 후속작품뿐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신인작가와 손을 잡고 지상파 드라마 편성을 따내는 게 목표다.꿈을 위한 박 대표의 다짐은 하나다. “더 재미있게 놀자.”◇박성혜 대표는...1970년생. 명지대학교 영문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광고홍보학과 석사 학위 취득 후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4년 염정아의 매니저를 시작으로 김혜수, 전도연 등과 오랜 인연을 쌓았고, 지진희 등을 발굴했다.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 콘텐츠본부 본부장을 거쳐 현재 ‘꽃미남’ 시리즈로 화제에 오른 드라마를 만든 오보이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08~2009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이사 등으로 이름을 올렸다. 파는 것보다 마시는 게 많아서 여러 차례 손해를 봤음에도 또 다시 서울 논현동에 bar·2를 만들어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박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 2010년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 담아내기도 했다.
- 윤아, ‘총리와 나’로 성장 드라마를 쓰다..'아이돌 넘어 배우로'
-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는 KBS2 월화 미니시리즈 ‘총리와 나’에서 다양한 매력을 지닌 남다정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아이돌 출신 배우의 연기를 볼때 보통 이런 생각들을 했다. ‘얼마나 잘 하나 보자.’ “가수가 연기를 해?” “배우의 영역을 침범해?” “그래, 얼마나 잘 하는지 한번 보자.” 이런 식의 사고 전개에 무리가 없었다. 그 동안 아이돌 가수로 본업을 이어가면서도 개개인의 꿈을 위해 연기 활동도 병행했던 이들은 힘겨운 이중생활을 견뎌왔다. 연기력을 평가 받는 부분에서 더욱 혹독한 시험대를 거쳤고, 시청률 면에서도 유독 가혹한 평가를 받아왔다. 같은 숫자여도 달리 해석되는 게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의 숙명이었다.그 굴레에서 벗어난 이들은 많지 않다. 유진이나 성유리, 이진, 윤은혜 등 가수로서 활동을 접은 이들이 배우로 성공적인 연착륙을 한 사례는 많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꽉 쥔 이들은 많지 않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가 KBS2 월화 미니시리즈 ‘총리와 나’로 보여주고 있는 성장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마치 ‘총리와 나’는 윤아에게 꼭 맞는 성장드라마처럼 그를 재발견시키고 있다. 윤아는 ‘총리와 나’를 시작하며 세 가지 난관을 극복했다. 제작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었고, 드라마 중반 터진 배우 겸 가수 이승기와의 열애 소식을 잠재웠다. 그 과정 끝에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선도 씻어내고 있다.‘총리와 나’에서 윤아는 스캔들뉴스 소속 연예특종 기자 남다정 캐릭터를 소화하며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연기 호평을 받았다.‘총리와 나’는 윤아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SM C&C가 만든 작품이다. SM C&C는 지난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시청률이 저조하면서 곤혹을 치렀다. 자사 아티스트가 주연배우로 대거 투입됐던지라 평가는 배로 아팠다. 때문에 윤아가 ‘총리와 나’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결과가 떠오른 건 사실이다. 그 편견을 깨고 윤아는 방송 초반부터 연기 변신으로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하고 성격과도 닮은 남다정이란 역할을 만나 어느 때보다 연기하기 편했다는 윤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20대 꽃처녀의 발랄함으로 스캔들 뉴스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파파라치로 특종을 잡으려 고군분투하는 기자로서 캐릭터를 표현했을 땐 “윤아가 망가지니 작품이 산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총리와 나’에서 윤아는 확 달라진 비주얼 변신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청소부로 변신하고, 술에 취해 토사물을 뱉는 등 전에 볼 수 없던 연기 변신으로 재발견된 윤아는 이후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총리와 나’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서며 내용전개의 중요한 계기가 된 ‘위장 결혼’을 앞두고 윤아는 캐릭터의 또 다른 색을 내보였다. 극중 총리 권율(이범수 분)의 아내로 계약 결혼에 골인하게 된 남다정. 윤아는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모습이 되기 위해 비주얼을 바꿨다. 뽀글뽀글 헤어스타일은 차분한 느낌의 생머리카락으로 바꾸었고 옷차림도 한층 세련되고 깔끔하게 연출했다. ‘총리와 나’의 윤아는 극중 권율의 세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읽어주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모성애를 드러내기도 했다.철 없고 당돌한 줄만 알았던 20대 남다정의 내면도 변화가 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는 뭔지 아나”, “아이들의 친구 이름은 뭔지 아나” 등 권율이 아빠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짚었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그 역시 충분히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이었지만 권율의 세 아이를 보듬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보여줬다. 남다정이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길 수 있는 캐릭터로 한층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윤아의 연기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한 관계자는 “윤아도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인데 모성애라는 걸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며 “하지만 현장에서도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장난도 치는 모습이 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 들더라”고 밝혔다.시청자들도 윤아의 ‘총리와 나’ 속 모습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려는 분위기다. 6~8%대 시청률을 오가는 성적은 MBC ‘기황후’나 SBS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시청률이 낮다고 안 좋게 보고 싶지 않다”, “월화드라마 3등이라고 하는데 난 그냥 윤아의 연기가 좋고 보고 있으면 설렌다”, “앞으로 윤아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 싶다”, “시청률은 낮다해도 나 같이 편하고 재미있게 윤아한테 빠져서 보는 사람들도 많은 듯” 등의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총리와 나’는 향후 남다정과 권율, 강인호(윤시윤 분)의 삼각관계로 러브라인에 집중할 예정이다. 남다정에 대한 외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인호와 입막음 키스로 본격적인 스틴십에 나선 권율과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 미켈란젤로의 식단 등 낙서 컬렉션, 천재화가 일상 보여줘
-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낙서 같지만 사실은 예술적인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의 식단 그림이 등장했다.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탈리아의 박물관인 ‘플로렌스 뮤지엄 카사 부오나로티’는 미켈란젤로가 글을 모르는 하인을 위해 특별히 이미지화해 제작한 ‘16세기 쇼핑 리스트’를 일반에 공개했다고 밝혔다.[미켈란젤로의 식단 실물사진 보기] 미켈란젤로가 그린 쇼핑 리스트는 미켈란젤로의 식단과 다름없다.낙서형식으로 그린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의 식단이 공개돼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 해당기사 무관]그는 글을 모르는 하인을 위해 자신이 먹고 싶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시장에 나가 사오도록 시켰다. 물론 옆에는 글도 적어놓았다.빵 두 조각, 청어 한 마리, 포도주 1/4, 펜넬 수프, 또르텔리 등을 사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해당 이미지는 미켈란젤로의 식단으로 통한다.미켈란젤로의 식단은 대충 그린 낙서그림 같지만 그 자체로 전설적인 화가의 예술성이 묻어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다비드 상 및 피에타 상 등으로 유명한 16세기 천재 화가다.미켈란젤로의 식단은 세심함은 물론이고 과연 그는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사생활 즉 식성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미켈란젤로의 식단 이미지를 공개한 박물관 측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의 식단 일러스트레이션은 지난 1518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미켈란젤로의 식단을 비롯해 일상과 관련된 그의 스케치와 그림, 메모, 편지, 시 등이 들어있는 낙서수첩 형식의 컬렉션은 최근 몇 년간 미국 시애틀에서 보스턴까지 순회 전시된 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 물의 소중함 알리는 그림책 제작☞ 한국닛산, 서초전시장서 ‘내 꿈의 자동차’ 그림 전시☞ 메시 그림자 벗어나 진정한 1인자로 거듭난 호날두☞ 中 지방정부, 그림자금융 의존↑..일부 디폴트 가능성☞ 김중수 "한국은행, 빛이 강한만큼 그림자도 짙다"☞ 농협중앙회, 7일까지 '말 사진·그림'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