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결과 10,000건 이상
- [미리보는 이데일리신문]"다 바꿔라, 다시 시작하라"
-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다음은 26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기사다. △1면-“다 바꿔라, 다시 시작하라”-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새로운 혁신 향해 뛴다-“졸업장 따면 뭐하나”…대졸 취포자 2배 늘어-[사설]이건희 회장 별세, 제2·제3의 거목이 더 나와야 한다-[사설]막장 정쟁극으로 실망만 안긴 21대 국회 첫 국감△이건희 1942~2020-주변 반대 무릅쓰고 반도체 진출…뚝심으로 ‘1등 삼성’ 신화 창조-“항상 7~10년 앞서간 변화·혁신의 선각자”-가족장으로 간소하게 4일장, 28일 발인-“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여성에 취업문 활짝 열어야”△이건희 1942~2020-품질·인재·기술 중시 ‘신경영’으로…삼성의 100년 미래 초석 닦다-사회적 약자 돕는건 기업의 또다른 사명…전세계 곳곳서 상생 앞장-“평창” 외치자 감격의 눈물△이건희 1942~2020-“기술 속국서 벗어나자”…반도체·휴대폰·TV 삼각축 ‘세계의 삼성’ 일궈-15만대 ‘애니콜 화형식’…잿더미서 꽃피운 갤럭시 신화-CEO 이건희가 이끈 삼성…시총 1조→396조로 늘어△이건희 1942~2020-AI·바이오·시스템반도체 등 미래 산업 육성 총력…‘뉴 삼성’ 드라이브-2012년부터 그룹경영 주도…실적·소통으로 리더십 증명-재판 두 건 진행 중…“또 수년간 발목 잡히면 삼성 미래 불투명”△이건희 1942~2020-이 회장 주식 재산만 18조, 상속세 10조 넘어…당분간 현 체제 유지될 듯-‘삼성생명→삼성전자’ 고리 끊나…JY 결단에 쏠린 눈△정치-輿野 국감 마무리 국면…이젠 ‘공수처·경제3법 독소조항’ 샅바싸움-정치권 “혁신정신 본받아야”…文대통령, 빈소에 조화 보내-당·정·청 ‘지역균형 뉴딜’ 입법·예산 속도전-‘인물난’ 국민의힘, 윤석열에 노골적 러브콜-6·25 70주년 계기로…中과 친분 과시하는 北△2020 美 대선 D-8-‘톱다운’ 트럼프, ‘보텀업’ 바이든…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북해법 달라져-미국 우선주의 강화냐…기존 정책 대전환이냐-“한·미 동맹 강화 통해 신뢰 얻어야 북·미 사이 가교역할 가능”△국제-美·유럽 휩쓰는 코로나 2차 팬데믹…세계 경제 ‘더블딥’ 잇단 경고음-오바마 “韓 사망률, 美의 1.3%에 그쳐”-‘철통방역’ 베이징, 한국發 직항 7개월 만에 재개△경제-‘장수 장관들’ 연말 교체설 솔솔…文정부 마무리 경제투수는 누구?-車·가전·기계 ‘맑음’…반도체 ‘흐림’-2년 8개월 만에…천안서 야생조류 AI 확진△금융-달러 약세에 ‘사자’ 열풍…달러예금액 한달새 4.6조원 급증-은행 대손비용 증가율, 해외 절반수준에 그쳐-‘골드만삭스 스캔들’…커지는 규제강화 목소리-당국 압박, 부동산 거래 감소에…가계대출 증가세 한풀 꺾여△산업&기업-현대차, SUV군단 총공세…실적 반등 가속페달-배터리팩, 풍력발전기…포스코 ‘친환경 분야’로 영역 확장-망·안정성 비용 못낸다더니…해외선 돈 내는 구굴·넷플릭스-HK이노엔,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돌풍-아시아나 럭셔리 관광비행 “와~” 연발△산업·소비자생활-반세기 기초소재 한우물…소재강국 獨·日 제칠 준비 됐다-담원, G2 완파 ‘결승행’…롤드컵 韓자존심 세웠다-악취·해충 없애고 친환경 퇴비 나눔까지…1석3조 커피박-‘치킨 1위’ 교촌, 화장품 도전 가시화△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바이든 당선땐 韓·美 모두 진보정부…‘김대중·클린턴의 시간’ 다시 올수도-“美·中 갈등 딜레마, 우리만의 일 아냐…전세계가 韓의 선택에 주목”△증권&마켓-원화 강세 먹구름 지속…“수출株, 그래도 담아야 할 때”-‘지배구조 핵심’ 삼성물산·삼성생명 주가 뛸까-美 대선 초읽기에 관망세 짙어질 듯△증권-“ESG 펀드, 비용 아닌 기회…환경 테마 수혜 전망”-청년 ‘빚투’ 확산…신용융자 연중 최고치-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 IP투자하는 펀드 조성-LG화학 배터리 분사 앞두고…국민연금 ‘찬반’에 쏠린 눈△문화-초가 한채, 졸랑말 한 필…언젠간 점 하나로 제주 표현하고 싶어-명성황후 시해 목격한 러시아 건축가…그는 어떻게 궁궐에 있었나△스포츠-“골프 꿈나무 발굴하라” 한마디에…‘골프여왕’ 박세리 탄생-양의지가 깨운 ‘통합 우승’ 의지-‘짜릿한 역전’ 이소미, 감격의 생애 첫승-‘감 잡은’ 이원준, 첫승 13년 걸렸지만…2승 달성은 16개월 만에-템파베이 9회말 짜릿한 뒤집기…승부 원점으로△피플-문대통령 “도전·혁신 리더십으로 韓 경제성장 이끌어…기업에 큰 귀감될 것”-태광그룹 창립 70주년…“고객중심 정도경영 추진”-“부정청탁·선물·식사 등 NO” 한국거래소, 청렴의지 다져-‘韓 문화 전도사’ 오록 신부 선종△오피니언-[목멱칼럼]정치적 무리수에 흔들리는 대입제도-[생생확대경]두산 ‘넥스트 125년’ 새 역사 쓰기를-[기자수첩]얼마나 어려웠으면 영화 관람료를 다 올릴까-[e갤러리]오세열 ‘무제’△부동산-‘중산층 공공임대·월세공제 확대’ 초읽기…전세난 진정효과는 미지수-지금 집 살 때 아냐…내 집 마련 적기는-꽉 막힌 해외수주…건설사, 정비사업으로 뚫는다-지식산업센터도 브랜드 시대…‘현대 테라타워’ 승승장구△사회-“매일 등교 이제 일주일됐는데”…들쑥날쑥 신규 확진자에 학부모들 불안-깜깜이 감염 줄었지만…‘취약시설 집단감연 지속’에 긴장 여전-학대 누명 쓴 교사 사망…엄벌 靑청원 30만 돌파-‘신군부 거부’ 5·18 복권 경찰관에 명예회복 급여정산액 고작 10만원-보건당국 “독감백신, 사망과 관련 없다”-성폭행 따지자 또 성폭행한 남성 징역 5년 확정
- [이건희 별세]개와 영화를 좋아했던 소년, 글로벌 삼성 만들고 떠났다
-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실천한 기업인’(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대한상공회의소), ‘삼성을 스마트폰, TV, 컴퓨터 칩 거인으로 키운 인물’(미국 뉴욕타임즈),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일본 NHK 방송).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자 쏟아져 나온 평가들은 고인의 78년 생애가 단지 한 개인이나 기업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을 받들어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를 길렀고, 이를 계기로 생긴 개에 대한 관심은 평생을 갔다. 영화에 심취해 3년간 영화 1200편 이상을 본 걸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추어 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미국 유학 중에는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자동차에 대한 애착은 훗날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배경이 됐다.1966년 이 회장은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볐다. 반도체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이 때였다. 때마침 한국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그는 ‘삼성이 인수하자’고 건의했다. 호암은 고개를 저었다. 당시 32세였던 이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개인 돈으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그의 집념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1등 신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호암이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이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삼성 후계자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78년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1987년 12월 1일 제2대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회장은 삼성 혁신에 나섰다. 회장 취임 5년차인 1993년은 삼성 역사에 가장 중요한 해로 기록됐다. 미국의 한 가전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삼성 제품에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을 소집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신경영 선언’이었다. 이 회장은 늘 ‘양보다 질’ ‘불량은 암’ 등의 말로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1995년 3월 운동장에 삼성 휴대폰 등 15만점을 모아 ‘화형식’을 한 것은 그가 품질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이 회장의 ‘삼성 불패’가 무너진 적도 있다. 1994년, 그는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자동차 사업에 나섰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손실이 커졌고, 결국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에 매각했다.이 회장의 생애는 말년에 들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5년에는 막내딸을 떠나 보냈다. 사법 리스크도 이어졌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유죄를 받아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이 확정됐다. 다만 유죄 확정 4개월 만에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단독 사면을 받고, 3개월 뒤인 2010년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삼성 특검의 파장이 지나고 난 뒤에는 삼성가 형제간의 상속 소송이 발생해 이 회장의 심신이 크게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져 입원 생활을 해오다 6년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이 회장은 삼성그룹과 삼성전자 회장 외에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1981년),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1982∼199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1982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198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1993∼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명예회장(1997년),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회장(199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특별고문(2002년), KOC 이사(2009년) 등을 지내며 경제계, 체육계 등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했다.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어린 시절 (사진=삼성전자)
- [이건희 별세]허창수 회장 “이건희 회장은 영원한 일등”(전문)
- [이데일리 김종호 기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당신은 영원한 일등”이라며 명복을 빌었다.허 회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먼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고 슬픔을 드러냈다.이어 허 회장은 “오늘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패자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호해줄 이념도 사라졌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며 “이제는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으며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수출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헤매게 한다. 위기경영의 선구자이셨던 회장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때”라고 설명했다.마지막으로 허 회장은 “이 회장이 걸었던 길은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초일류기업을 넘어 초일류국가를 향한 쉼없는 여정이었다”면서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각고의 노력으로 변신을 통해 얼마든지 새 생명을 얻고 영속할 수 있다는 말씀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사진=이데일리DB)다음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추도사 전문당신은 영원한 일등이십니다.이건희 회장님잘 있으라는 작별의 말씀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는 것입니까? 병상에서 일어나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시고 사회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시던 회장님이셨습니다. 이제는 먼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돌이켜보면, 회장님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셨습니다.회장님은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고 분해하셨을 정도로 무수한 전자기기를 다루시어 일찍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으셨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 길은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확신을 얻고 사업을 결심하셨습니다.하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기에 그룹 차원의 추진이 어렵게 되자, 직접 사재를 털어 작은 반도체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추진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젓가락 문화라 손재주가 좋고 주거생활에서 청결을 중요시하기에 반도체 산업에 적합하다며 가능성과 당위성을 설파하셨습니다. 반도체를 향한 회장님의 열정과 노력은 마침내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회장님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을 발휘한 승부사이셨습니다.1987년 4메가 D램 개발방식에서 회로를 위로 쌓는 스택으로 할 것인가 밑으로 파는 트렌치로 할 것인가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회장님께서는 스택으로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위로 쌓는 방식이 단순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시며 결단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후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경쟁사들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을 경험했고 이는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993년초 회장님께서는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웨이퍼의 크기를 6인치에서 8인치로 키워 양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실패하면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돼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회장님께서는 성공하면 생산량을 2배로 늘릴 수 있다며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과감한 투자로 월반하자고 하셨습니다. 같은 해 일본의 경쟁사와 16메가 D램을 동시에 개발하였지만 8인치 웨이퍼의 막강한 생산량을 바탕으로 일본을 따돌리고 마침내 93년 10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회장님은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외치던 개혁가이셨습니다.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하셨습니다. 국제화 시대에서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된다고 하시며 장장 68일 동안 1800명의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지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류기업일지라도 세계무대에서는 한참 뒤쳐져 있다는 냉정한 자가진단을 내리시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도약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신경영을 선언한지 20년이 되던 2013년 6월에는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자리에 머물지 말고 앞서서 달려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위치가 바뀌어도 경쟁자들과 초격차를 벌이려는 회장님의 개척정신과 일류주의의 발현이었습니다.미래를 향한 뚝심 있는 전진은 연구개발, 우수인재 발굴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고스란히 이어졌으며, 이는 기술도 자원도 없는 한반도에 4차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세계 1위의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2차전지 같은 첨단산업을 일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회장님은 품질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이셨습니다.1995년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의 ‘불량제품 화형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선전화 제품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높아지자, 불량을 근절하자는 회장님의 단호한 의지 하에 15만대의 무선전화기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한 결의가 느껴졌으며 국민들에게도 회사의 철저한 반성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전해졌습니다.“이제는 양에서 질로 전환하자”를 선언하시고 불량품이 있으면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중단하는 등 품질관리에 집중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품질은 직원들의 인격이자 고객존중의 표현이며 세계 일류기업으로 가는 원동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품질로 인한 손해는 본인이 감수하겠으니 최우선 순위로 하라 하시며 강한 책임감과 방향성을 보여주셨습니다.회장님은 더 나은 미래국가 건설을 위해 애쓰시며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셨던 애국경영인이셨습니다.우리 경제가 살 길은 인재양성 밖에 없다고 하시며 장학재단을 만들어 ‘한국을 위해 일한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을 약속 받고 해외유학생들을 선발하셨습니다. “인재양성은 사과를 얻는 것이 아니고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다”라며 이 땅에 인재를 키우는 토대를 만들고 나아가 전 세계 인재를 모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국가가 잘 되려면 국민, 정부, 기업이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른바 ‘삼위일체론’을 강조하셨습니다. 1993년 당시 기업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국제자유무역도시 건설 등 20개의 SOC 프로젝트를 정부에 제안하기도 하셨습니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20년을 넘게 활동하시며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격을 높이는데 힘을 보태셨습니다. 특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10차례에 걸쳐 170일 동안 지구 5바퀴가 넘는 21만km를 이동하셨습니다. 2011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발표되는 순간, 회장님께서는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민간외교관으로서 헌신하신 회장님의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이건희 회장님,오늘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패자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호해줄 이념도 사라졌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으며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수출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헤매게 합니다. 위기경영의 선구자이셨던 회장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때입니다.회장님께서 걸으셨던 길은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초일류기업을 넘어 초일류국가를 향한 쉼없는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각고의 노력으로 변신을 통해 얼마든지 새 생명을 얻고 영속할 수 있다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2등 정신을 버리십시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후배들은 회장님의 그 큰 뜻을 소중히 이어받아 일등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이제 무거웠던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2020. 10. 25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창수
- [이건희 별세] 한국 스포츠 발전 이끈 큰 별이 지다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는 순간 이건희 IOC 위원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데일리 이석무 기자] 한국 스포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이 회장은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이 회장이 스포츠와 본격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이었다. 당시 레슬링 선수로 2년간 활동했고 1959년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고교 시절 맺어진 레슬링과의 인연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계속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2년 제21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선출된 이후 1997년 IOC 위원에 선출돼 물러날 때까지 15년간 회장직을 맡았다.이 회장은 1996년 7월 애틀랜타올림픽 기간 중 열린 제 105차 IOC총회에서 IOC위원에 선출된 뒤 2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박태환이 실격 해프닝을 겪었을 때 마침 현장에 있던 이 회장이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 극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일은 체육계의 유명한 일화다.이 회장이 이끈 삼성그룹은 IOC와 올림픽 공식후원사로서 올림픽의 성공과 함께 했다. 올림픽 현장 곳곳에 이 회장과 삼성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뛴 이 회장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회장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반 동안 무려 11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치활동을 벌였다. 날짜로는 170일이나 됐다..이 회장이 일군 삼성스포츠단은 한국 스포츠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인기종목은 물론 탁구, 레슬링,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 종목에도 아낌없는 투자와 관심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를 키워냈다. 한국 스포츠 구석구석에 삼성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남다른 야구 사랑은 유명한 내용이다. 일본 와세대 대학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는 이 회장은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아 직접 구단 운영을 챙겼다.이 회장이 구단을 이끌던 당시 1985년 삼성은 프로야구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떠났다. 최초의 2군 전용훈련장인 경산볼파크도 건립했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선진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한 삼성은 단숨에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곧 한국 야구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 [이건희 별세]'인간·기술' 중시 철학으로 신경영 펼쳐
-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고(故)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으로 요약된다.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이는 삼성의 경영이념인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고인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 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고인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으며,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고인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사업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이런 점유율의 배경에는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세계 최초 64Gb NAND Flash 개발(2007),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의 ‘기술이 있었다. 또한,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믿음에 의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고인은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하기도 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이러한 활동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맹인 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한다.고인의 사회공헌 철학은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연인원 50만명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땀 흘리고 있다.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도 활동한 고인은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울산 청솔초·청주 대길초, 올해 최우수 학교숲에 선정
- 청솔초등학교가 조성한 숲 등굣길.사진=산림청 제공[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울산의 청솔초와 충북 청주의 대길초가 올해 학교숲을 가장 잘 조성한 학교로 선정됐다.산림청은 전국에 조성된 학교숲 중 6개 학교를 ‘2020년 학교숲 우수사례’로 선정, 21일 발표했다.학교숲은 청소년들에게 친자연적인 학습 공간 제공과 정서 함양 증진을 위해 학교와 그 주변 지역에 조성하는 산림·수목을 말한다.학교숲 우수사례는 산림청에서 2011년부터 매년 조성 분야와 사후관리 분야로 나눠 6개 학교를 선정해 조성을 담당한 지자체에 상금과 포상을 하는 제도이다.올해는 전국 11개 시·도에서 22개 학교가 경쟁해 조성 분야 3개 학교와 사후관리 분야 3개 학교가 각각 뽑혔다.신규 조성 분야에서 심사위원의 최고점을 받은 울산시 남구청에서 조성한 청솔초등학교는 도심지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로 삭막한 주변에 학교숲을 조성해 녹지공간을 이끌어냈다.특히 배수로인 유휴부지를 가시나무, 백목련, 홍가시나무, 동백나무, 가우라, 에메랄드그린, 황금사철, 산수국, 노랑무늬사사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 및 지피식물을 배치해 즐거운 숲 등굣길로 재탄생시켰다.또 기숙사형 학교에서 머무는 학생들과 지역주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둘레길 형태의 숲을 조성한 강원 평창의 평창고등학교가 우수상을, 광주의 조선대 부속중학교가 장려상을 각각 차지했다.대길초등학교가 조성한 학교숲.사진=산림청 제공사후관리 분야에서 최우수로 선정된 충북도 청주시 대길초등학교는 2017년 학교숲 조성 후 생태환경교육 연구학교를 추진할 만큼 자연친화적인 학습 분위기를 조성했다.학교숲 프로그램 운영 및 생태교육의 홍보를 통해 학교 정원수가 증가하는 등 학교숲 활용을 통해 학교가 활성화됐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와 함께 경기 평택의 동방학교가 우수를, 경북 구미의 도개고등학교가 장려를 각각 받았다. 김주열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은 “학교숲 조성은 학생들에게 자연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해 정서 함양을 증진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녹색 쉼터의 역할로 쾌적한 환경 및 경관을 연출한다”며 지자체와 학교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 블랙스완, 16일 정식 데뷔…“브라질·벨기에 멤버 포함”
-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그룹 블랙스완(BLACKSWAN)의 데뷔 날짜가 잡혔다. 소속사 DR뮤직은 “블랙스완이 16일 싱글 ‘투나잇’(Tonight)을 발표하고 정식 데뷔한다”고 15일 밝혔다.베이비복스, 라니아, 나태주, 케이타이거즈를 키워낸 DR뮤직이 론칭하는 블랙스완은 영흔(한국), 혜미(한국), 파투(벨기에), 주디(한국), 레아(브라질) 등이 5명의 멤버로 구성된 다국적 걸그룹이다. 팀명 블랙스완에는 ‘독보적이고 차별화 된 실력으로 가요계를 접수하고, 나아가 세계적 아이돌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있다.데뷔곡인 ‘투나잇’은 방탄소년단, 두아 리파, 저스틴 비버, 할시, 시아, 체인스모커스 등 유명 뮤지션들과 협업한 바 있는 세계적 히트 메이커 멜라니 폰타나가 프로듀싱한 팝댄스 스타일 곡이다.블랙스완은 지난 7월 평창군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데뷔 전부터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팬층을 쌓았다. 소속사 관계자는 “남미와 유럽 출신 멤버가 포함된 만큼, 해외 반응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브라질 출신 멤버 레아는 “첫 브라질 출신 K팝 걸그룹 멤버로 데뷔하게 되어 꿈만 같다. 궁극적 목표는 BTS 선배들처럼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