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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집·숙녀·색시… 수많은 '여성', 자수틀에 수놓여 매달린 까닭[정하윤의 아트차이나]<23>
- 린톈먀오의 ‘배지’(Badge·2011∼2012). 설치미술가이자 섬유디자이너로 활약하는 린톈먀오가 두 타이틀을 한자리에 응축한 대표작. 실과 자수란 소재·기법으로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사전어는 물론, 비속어·신조어까지 포함해 ‘여성’을 뜻하는 수많은 단어를 영어·중국어로 수놓은 자수틀 수십 개를 천장에 매달았다. 2012년 미국 뉴욕 갤러리르롱에서 전시(10. 25∼12. 15)했을 때의 전경이다. 비단·실·자수틀·음향, 61피스(각 지름 55㎝, 80㎝, 100㎝, 120㎝), ⓒ린톈먀오·갤러리르롱 제공(ⓒLin Tianmiao, Courtesy Galerie Lelong & Co.).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린톈먀오(林天苗·62)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의 여성작가 중 하나다. 환갑을 넘긴 그녀의 세대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존재다. 요즘에야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중국 여성미술가들이 여럿 있지만, 1990년대부터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한 중국 여성작가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대 주목받았던 다수의 여성미술가가 그랬듯이, 린톈먀오 또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단, 그녀만의 방식으로. ‘린톈먀오’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이란 재료다. 주로 여성이 집에서 옷이나 이불 등을 꿰맬 때 사용하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재료를 그녀는 꾸준히 사용해 왔다. 작업 초반에는 집에서 사용하는 가사 도구(냄비나 가위 따위)를 실로 칭칭 감아 바닥에 늘어놓았고, 최근에는 원하는 모양(예를 들면 인체의 뼈)을 만들어 역시 실로 칭칭 싸맨다. 실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도 한몫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린톈먀오의 어머니는 종종 어린 딸이 집안일을 돕게 했는데, 린톈먀오가 자주 했던 일은 어머니가 뜨개질하는 동안 실뭉치를 들고 있거나 흐트러진 실패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미술가가 돼 다시 실뭉치를 조우했을 때, 그녀는 이것이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린톈먀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배지’(2011∼2012)는 실과 관련된 활동, 다시 말해 자수를 작품의 주요 방법으로 사용한 거대 설치작업이다. 작품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십 개의 자수틀로 구성돼 있고, 각 자수틀에는 ‘여성’을 뜻하는 수많은 단어가 영어와 중국어로 수놓여 있다. 그녀의 단어는 사전에 등장하는 공식적인 언어와 그렇지 않은 비속어, 또 신조어까지 포괄한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여자, 여성, 계집, 미스코리아, 된장녀, 맘충 정도 될까. 조신한 여성이 아름다운 꽃을 수놓던 자수라는 방법으로 ‘비치’(Bitch) 같은 단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블랙유머 같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이 단어들을 읽어주는 목소리도 들린다. ‘요즘 작가’답게 사운드도 첨가한 것이다. ◇여성미술가로 규정되기 원치 않은 여성미술가얼마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으면 ‘여성’이란 단어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린톈먀오는 스스로를 ‘여성미술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렇게 규정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여성주의’에 대해 묻더란다. 그 질문들이 그녀로 하여금 ‘여성’, 또 ‘여성미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좋은 미술가란 한 번 품은 질문에 대해서 끝을 보는 법. 내친김에 린톈먀오는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여기는지, 그 생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리서치에 착수하면서 린톈먀오는 사전에서 여성이란 단어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했고,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중국어사전에 여성을 뜻하는 단어만 200여개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전에 아직 기재되지 않은 신조어는 위챗이나 웹툰 등 인터넷을 이용해 수집했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린톈먀오는 100년 사이 여성과 관련된 단어 중 많은 것이 사라졌고, 동시에 새로운 단어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알게 됐다. 거의 매주, 새로운 표현이 생겨난 셈이었다. 지금까지 린톈먀오가 수집한 단어는 약 900개. 이 중 100개 남짓한 단어로 작품을 만들었다. 린톈먀오의 ‘또렷하게 06-598A’(Focus Print 06-598A·2007). 눈과 눈썹, 코와 입 등 사람 얼굴 형상이 어렴풋하게 잡힌다. 초상사진에 실을 놓고 머리카락을 붙여 만든 작품은 제목과는 달리 초점이 맞지 않는 게 특징. 린톈먀오가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란 존재를 찾는 방식이다. 종이에 프린트, 50×39㎝, AP(작가소장용) 4점 포함한 에디션 20점 중 세번째. ⓒ린톈먀오·갤러리르롱 제공(ⓒLin Tianmiao, Courtesy Galerie Lelong & Co.).조사를 진행하면서 린톈먀오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단어가 대개 남자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 주로 남자였으니 이해가 갈 법한데, 최근에도 마찬가지라는 점은 이상했다.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할 수는 없는가,’ 린톈먀오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답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여성미술가’란 수식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으며 자신에 대해 정의 내린다는 것이 어떻게 여성에게만 필요한 일이겠나.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디에서 행복을 찾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린톈먀오의 ‘또렷하게’(포커스 프린트) 시리즈는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보는 듯하다. 일련의 초상사진 위에 바느질과 자수로 실을 놓고, 머리카락을 붙여 만든 이 작업은 ‘또렷하게’란 제목과는 달리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다. 설명을 읽지 않거나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사람 얼굴의 형상이 있는지도 알아채기가 어렵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품 안에서 눈과 눈썹, 코의 위치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인지는 당최 알기가 어렵다. 성격, 직업은커녕 성별이나 연령조차 짐작이 안 된다.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라는 존재다. 그래도 린톈먀오는 자신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은 일찍이 알아차렸던 편이다. 그중 하나는 본인은 꼭 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예술의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통미술을 했던 아버지, 무용가였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일찌감치 알았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감시 심했던 1990년대 ‘오픈 스튜디오’ 열어 게릴라 전시지금 린톈먀오는 설치와 사진, 바느질과 자수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녀에게 낯선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문화대혁명의 그늘 아래서 보냈기에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선전 포스터가 전부였고, 이후 베이징 미술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사실적인 회화를 배웠을 뿐이다. 사진, 설치, 퍼포먼스 같은 동시대 미술의 문법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겼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였다. 기상천외한 뉴욕의 아트신을 보며 린톈먀오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임을 선명히 깨달았다. 린톈먀오의 ‘더도 덜도 말고’(More or Less the Same·2011). 사람의 뼈와 기계·기구 등을 결합한 형상을 만든 뒤 실로 칭칭 싸매 마무리한 작품들. 좌대 위에 조각품처럼 설치했다. 옷이나 이불 등을 꿰맬 때 쓰는 가장 일상적인 ‘실’을 작업소재로 삼기 시작한 초기부터 이어온 린톈먀오의 주요 작업 중 하나다. 비단실·스테인리스스틸·폴리요소, 가변크기, ⓒ린톈먀오·갤러리르롱 제공(ⓒLin Tianmiao, Courtesy Galerie Lelong & Co.).그럼에도 이후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95년 린톈먀오가 베이징으로 돌아왔을 때 중국 정부의 규제는 생각보다 심했다. 전시 공간도 턱없이 부족했고, 전시를 단독으로 기획해서는 체포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난관을 뚫기 위해 린톈먀오는 남편과 함께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다. 작가의 작업실을 때때로 대중에게 오픈하는 이 방식은 뉴욕에서는 이미 흔했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안도 없었다. 린톈먀오는 오픈 스튜디오를 감행했고, 전화를 일일이 돌려 사람들을 초대했다. 이를 여러 번 반복했고, 많게는 200명이 모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든 이벤트는 고작 2∼3시간 정도였다. 게릴라전으로 진행하며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피했던 거다.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린톈먀오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알았다. 그래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뤄나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집안일을 도우며 린톈먀오는 인내와 참을성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녹록지 않은 세월 동안 꾸준히 실을 감고 수를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배운 인내심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 덕분에 린톈먀오는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오늘도 미술사에 수놓아지고 있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尹정부, 對日 행보에 외신도 촉각[통실호외]
-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최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보상문제 해법을 발표하고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성사시키자, 주요 외신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소식에 양국 간 무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한국 주도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 등 우려와 함께 통큰 결단이었다는 반응도 보였다.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외신, 10년 만 셔틀 외교 복원에 초점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공식화하자 외신들은 한일 셔틀 외교가 10여년 만에 재개되려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이하 현지시간) 주요 기사로 윤 대통령의 방일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방문을 “10여년 만의 쌍방회담 외교(two-way summit diplomacy) 재개”라고 표현했다.이어 “북한, 중국과의 긴장 관계가 미국 동맹국들로 하여금 더욱 긴밀히 움직이도록 했다”고 분석했다.WSJ은 또 윤 대통령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및 핵 프로그램 진전에 따라 방공 등 영역에서의 협력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의 독려 하에 일본과의 결속을 강화하려고 노력해왔다”면서 일본도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맞서기 위해 역내 국가 간 협력체 구축을 열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도 양국 회담 계획을 보도하며 한일 셔틀 외교 복원 움직임에 초점을 맞췄다.이 매체는 “모든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두 정상이 무역과 안보에 있어 협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번 방문으로 수출 규제 문제 등에 있어 양국 간에 진전이 있을 것이란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레이프 에릭 이슬리 교수의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AP 통신은 그간 불안한 한일관계에 대해 중국의 역대 영향력 확대와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삼자 간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또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공식화한 시점이 지난 6일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주도로 풀겠다는 해법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발표에 대해 “두 이웃 국가가 무역에서 안보에 이르기까지 (양국) 협력을 방해해왔던 불화를 종결시키기 위한 해법을 시사한 지 며칠 만에 나왔다”고 강조했다.또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한 건 지난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오사카를 찾은 이래 처음이고, 당시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문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했다는 점을 언급했다.AFP는 “(양국이) 일본의 전시 만행에 대한 외교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번 방문이 성사됐다”고 보도했다.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 “앞으로 일본에 전적 책임 달려”하지만 한국 주도의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6일 “이번 제안은 일본 측의 환영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정부가 일본에 굴복했다고 비난하는 일부 피해자와 야권의 즉각적인 반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로이터는 별도의 설명 기사에서는 “동북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인 두 나라의 관계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한국 강점으로부터 이어진 분쟁으로 긴장을 겪어왔다”면서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과 여러 다른 역내 문제에 더 잘 맞서기 위해 두 나라에 분쟁 해소를 압박해 왔다”고 설명했다.WSJ도 “일본의 식민통치 잔재로 인한 (양국) 갈등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경제적 도전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방해해 왔다”고 전했다.그러면서 “(한일이) 화해한다면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 간 협력을 증진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신장시킬 것”이라면서 “미 정부는 군사정보 공유와 지적재산권 보호 등 분야에서 동맹국들이 더욱 밀착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AP 통신은 “일본 전범 기업들로부터 직접 배상과 사과를 받아내길 원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야권은 이번 발표를 ‘외교적 항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반발은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심하게 분열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정부의 이번 발표에 일본이 어떤 식으로 화답할지에 초점을 맞혔다.이 매체에 따르면 스탠퍼드대학 소속 한일관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는 해당 발표를 ‘매우 정치적으로 취약한 타협안’이라고 평가하면서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할 책임은 이제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 한국 측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어쩌면 그 이상을 했다”고 말했다.AFP 통신 역시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일본이 어떻게 화답하느냐에 따라 이번 발표가 갖는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서울대 국제학연구소의 벤저민 엥겔 연구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최소한 일본이 일종의 사과를 내놓고, 한국 대법원에서 책임을 인정한 두 일본 (전범) 기업들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금을 내는 성의를 보여야 한국 국민이 이러한 갈등 해소 방안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한편 일각에서는 그간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을 의식해 한일 간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던 점도 상기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의 과거 행위와 관련한 (한국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한일 간의 합의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면서 “일본제국군 위안소에 끌려간 위안부와 관련한 분쟁을 끝내려 한 2015년 합의는 이후 한국 정부에 의해 파기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 “선생님이 만져주면 낫는대”…정가은도 JMS 피해자?
- [이데일리 이선영 기자]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78) 총재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가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배우 정가은이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했던 종교 집단 일화가 재조명되고 있다.(사진=정가은 인스타그램 캡처)배우 정가은은 2010년 2월 9일 방송된 SBS ‘강심장’에서 “저렴한 가격만 믿고 모델 워킹 학원을 갔다가 사이비 단체에 피해를 당할 뻔 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정가은은 모델을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로 모델 학원에 다닐 돈이 없었다. 그러다 저렴한 비용으로 워킹을 배울 수 있는 예술단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갔다고 한다. 정가은은 “그곳에선 수업 전에 늘 기도하고, 산 중턱에 ‘선생님’이 있는 조금 독특한 곳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종교단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델 수업만 듣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두세 달 뒤 학원 관계자들은 정가은에게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가 됐다”며 깊은 산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들을 따라간 정가은은 “산의 한 면이 전부 잔디로 깔려있는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졌다”고 했다. 이어 “선생님으로 불리던 남성은 노천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수영복만 입고 앉아 있었다”며 “더 놀라운 것은 여자들 역시 수영복만 입고 그 선생님의 예쁨을 받으려고 주변에 모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같이 수업을 듣던 한 언니는 “이 모든 게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며 “모델 수업도 선생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가은은 그제야 모델학원의 실체를 직감했지만, “목표가 모델이라 워킹만 배우려 했다”고 당시 느낀 감정을 전했다.어느 날 정가은이 목과 허리에 통증이 생기자, 학원 언니는 “선생님이 한 번 만져주면 낫는대”라는 말을 건넸다. 이에 정가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찾아갔으나 자리에 없어 결국 만나진 못했다는 내용이었다.정가은은 그러면서 “며칠 후 TV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의 존재와 ‘별천지’였던 장소가 소개됐고, 그곳이 사이비 종교단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많은 여성이 선생님이라는 교주에게 성적인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정말 다행인 게 선생님을 못 만나고 온 것”이라며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정가은이 찾아간 선생님이 JMS의 정명석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JMS 신도들은 정명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대학가에서 키가 170㎝ 정도 되는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가은의 일화도 이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JMS를 30여년간 추적해온 김도형 단국대 교수는 지난 7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여고, 특히 여대 앞에서 키 크고 예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런 예쁜 여성이 있으면 다가가서 ‘모델 혹시 하지 않겠느냐’라며 포섭을 한다”고 말했다.이어 “모델 학원에서 워킹 연습을 시키며 서서히 친밀감을 만든 다음에 우리 성경 공부하는데 너도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한 뒤, 교리 교육을 통해 ‘정명석이 재림 예수다. 메시아다’라고 세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쁜 여성일수록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어느 정도 교육이 됐다 싶으면 정명석에게 면담이라는 이름으로 면담을 시키는데 그러면 바로 성폭행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한편 정명석은 수많은 여성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아 2018년 출소했고, 최근 신도였던 여성들에게 다시 성폭행 혐의로 피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 김주애·김여정 띄우는 北…북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책에 등장하는 북한 여성의 모습은 다면적이다. 경제난을 겪으며 국경을 넘는 주체적 삶을 살다가도, 가부장제를 온몸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난 북한의 ‘여성 파워’는 착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 김 위원장과 동생 김여정(사진=노동신문/연합뉴스 갈무리).[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북한 2인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으로 알려져 있다. 핵협상 대표도 여성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그의 딸 ‘주애’(3남매 중 둘째)를 군사 퍼레이드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현장에 데리고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김씨 왕조가 그동안 능숙하게 구사해 온 ‘극장 정치’의 반복인 셈이다.여성파워를 과시하는 북한의 행태는 착시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북한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나 고위직 진출은 극히 제한적이다. 북한 여성 권력의 면면을 보면 김씨 일가이거나 그의 복심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실제로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중 여성도 김여정 부부장이 유일하다. 가족 부양과 국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북한 여성들은 정당한 지위를 누리지 못한 채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착취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펴낸 북한 여성의 삶을 다룬 두 권의 책은 이런 실태를 드러낸다. 탈북 회고록 ‘런던에서 온 평양여자’(더미라클)와 북한 여성 150명을 심층 인터뷰한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창비)이다. 책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북한 사람, 그중 ‘가장 낮은 서열’인 북한 여성의 삶을 추적한다. 그리고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이들의 생을 흔들고 비틀었던 상처들을 짚는다. 그 속에서 여전히 식민과 전쟁, 분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자신을 깨닫는다.‘살아남는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는 분단 문제를 탐구해 온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쓴 책이다. 책에는 건실 만자 혜원 수련 연길 등 수많은 북한 여성이 등장한다. 북한 매체에서 선전을 목적으로 여성을 활용한 영화, 신문기사, 다큐멘터리와 150명의 북한 여성의 심층 인터뷰, 그동안의 연구 지식을 통해 북한 여성들의 삶을 복원해냈다.책은 ‘이악스럽다’(억척스럽다의 북한말)로 대변되는 북한 여성의 궤적을 꺼내놓는다.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라는 관습은 그대로 남은 채 노동자라는 새로운 역할까지 감수하게 된 한국전쟁 전후의 북한 여성들이 가졌을 혼란과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동시에 그들이 사실은 우리의 거울상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김 교수는 “아무쪼록 분단 같은 것은 이제 별 의미 없다고, 북조선은 우리와 별 상관없는 타자라고 외치는 대부분의 남한 사람이 그녀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기울였으면 한다”며 “그녀들의 전쟁과 같은 일상을 통해 여전히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한사회를 한 번쯤 되짚어보는 기회로 삼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정희진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도 추천사를 통해 책은 분단이라는 한반도적 사회구조를 여성의 경험, 인식, 감정의 층위에서 분석한 “북한 연구의 절경”이라며 “지역학, 증언사, 문화 연구, 탈식민의 사유가 교직된 질적 연구의 모델”이라고 썼다. 외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탈북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부인 오혜선 씨(사진=AFP/연합뉴스).책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는 북한 고위직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부인 오혜선 씨의 탈북 회고록이다. 북한 최고 금수저 ‘항일 빨치산’ 가문 출신인 저자는 두 아이를 위해 탈북을 감행했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살아왔지만 늘 불안했다고 고백한다. “신적 존재인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것이 평생의 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온 가족과 함께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며, 이제껏 누리던 안락함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흔히 다뤄지지 않은 북한 고위층의 삶과 북한 인민의 실상을 털어놓는다. 탈북을 결심한 계기, 한국에 건너온 뒤 느낀 자유와 그에 대한 대가, 그리고 남편 태영호 국회의원의 정계 진출 과정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담았다. 오 씨는 남편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망신당할 거라고 말렸다”면서도 “해외(외교관)에 나가자고 한 것도, 북한을 떠난 것도, 다 남편의 의지였다. 그런 남편을 남들은 다 믿는데 내가 왜 못 믿지 싶었다. 이후 응원하게 됐다”고 했다.2016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뒤 오씨는 2021년 이화여대 북한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대남 비난 행태를 분석한 논문에서 오씨는 김 위원장에 대해 ‘선친들을 능가하는 독재자’라고 평가했다. 북한 사회에서 아내와 엄마로서 살아온 치열한 삶도 그렸다. 북한과 같은 나라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호소가 인상적이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열병식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와 부인 이설주 여사가 함께 참석했다(사진=노동신문/뉴스1).
- '영남제분 청부살인 피해자' 21세 '하지혜'를 기억해주세요[그해 오늘]
-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02년 3월 6일 오전 5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 이화여대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하지혜(당시 21세)씨가 영남제분(현 한탑) 회장의 부인 윤길자의 지시를 받은 남성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범행엔 윤길자 친오빠의 둘째 아들은 윤남신을 비롯해 남성 5명이 가담했다. 하씨에 대한 2년의 넘는 의심과 미행 끝에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윤길자는 결국 살인으로서 막 스무 살이 넘은 젊은이를 참혹하게 살해했다.윤길자 청부살인 피해자 고(故) 하지혜씨.(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갈무리)살인마 윤길자의 엽기적 범행의 시작은 1999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윤길자(당시 53세)는 1999년 11월께 외동딸과의 결혼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예비사위 김모 판사(당시 26세, 현 변호사)가 결혼 전부터 이종사촌인 하씨(당시 19세)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두 사람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의심을 넘어 확신으로 이어져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그리고 얼마 후 사위 김 판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 판사에게 젊은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윤길자는 김 판사에게 “전화한 것이 누구냐”고 따져 물었고, 김 판사는 다른 사람에게 걸려온 전화임에도 장모의 날카로운 질문에 엉겁결에 “(하)지혜다”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결과적으로 김 판사의 이 말은 윤길자의 거짓된 의심을 더욱 커지게 했다.윤길자는 그때부터 사위인 김 판사를 감시하는 한편, 하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운전기사로 일하던 조카 윤남신에게 하씨의 인상착의와 거주하는 아파트 위치를 알려주며 미행을 하도록 했다. 윤길자의 지시에 따른 하씨 미행에는 현직 경찰관 5명 등 20여명이 동원됐다. 이들은 김 판사와 하씨가 실제 불륜관계인지를 밀참감시했다. 윤길자는 지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승복 차림으로 직접 미행에 동참하거나 제대로 미행이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하기도 했다.◇윤길자, 명예훼손 기소유예 처분·피해자 접근금지 가처분 받기도김 판사 감시를 위해선 사위집의 현관출입문에 가는 실을 끼워 넣거나, 자신의 집에 왔을 때 김 판사가 하씨와 컴퓨터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며, 이를 녹화하겠다며 아들(김 판사 처남) 컴퓨터 부근에 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윤길자는 2001년 3월 26일, 느닷없이 김 판사에게 “하씨가 판사실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앞으로 하씨가 전화하거나 법원으로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경고했다.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었다.이를 전해 들은 하씨 아버지는 3일 뒤인 3월 29일 윤길자를 직접 만났다. 여기서 윤길자는 또다시 “하씨가 사위 김 판사를 찾아오는 것을 내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씨 아버지는 “딸은 김 판사가 근무한다는 서울지법 서부지원(현 서울서부지법)의 위치를 알지도 못한다. 찾아간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결국 이 자리에선 양측간 언쟁이 벌어졌다.하지혜씨 살인사건 주범 윤길자. 사진은 공범들이 해외도피 중이던 2002년 8월 20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광주경찰서를 나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두 사람은 결국 현장 확인을 위해 함께 차를 몰고 김 판사가 일하던 서부지원 판사실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윤길자는 하씨 아버지에게 느닷없이 “딸 단속을 잘하라. 딸이 이놈 저놈 붙어먹고 시집가서 잘 사나 두고 보자”라고 막말을 했고, 하씨 가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결국 하씨 미행 배후가 윤길자임을 확신하게 된 하씨 가족은 같은 해 4월24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윤길자를 고소했고, 같은 해 8월 윤길자는 검찰에서 죄가 인정된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하씨 가족은 같은 달 “윤길자가 직접 또는 제3자를 시켜 하씨를 미행하지 못하게 해 달라”며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도 이 같은 가처분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윤길자는 정신을 차리는 대신 더욱 막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하씨 가족에게 앙심을 품으며 ‘기필코 사위와 하씨의 불륜관계 증거를 잡아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한 후, 몇개월 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요하게 뒷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불륜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음에도 윤길자는 불륜에 대한 의심을 전혀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사위 불륜에 대한 의심과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내 딸이 행복하기 위해선 하씨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하씨에 대한 살해계획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불륜증거 전혀 나오지 않자 “내딸 행복 위해 죽이자” 범행지시그리고 2001년 10월 8일 서울 청담동의 한 고등학교 부근에서 조카 윤남신에게 “더 이상 불륜현장을 잡을 수 없다. 차라리 하씨를 없앴으면 좋겠다. 죽일 사람을 찾아봐라”고 살해를 지시했다. 윤남신은 고교 동창이자 사채업자인 김용기를 끌어들였다.윤길자는 김용기에게 하씨 살해대가로 현금 1억7500만원을 주기로 합의한 후, 2001년 10월 17일 청담동 한 길거리에서 조카 윤남신에게 착수금 명목으로 현금 5000만원을 건넸고, 윤남신은 다음날 이를 김용기에게 전달했다. 애초 이들은 하씨를 독살시키려고 약물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후엔 윤남신과 김용기는 지속적으로 하씨를 납치해 살해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던 하씨가 주로, 재학 중이던 이화여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납치에 실패했다. 범행 1년 1개월만인 2003년 4월 11일 도피 중이던 중국에서 체포돼 국내로 압송되던 유남신과 김용기. (사진=연합뉴스)그러자 윤남신과 김용기는 범행 계획을 수정했다. 김용기가 하씨 아버지에게 사업을 빙자해 접근한 후 약점을 캐겠다는 계획이었다. 김용기는 이를 위해 가짜 명함을 만들어 하씨 아버지에게 접근해 사업 얘기를 나누자며 호텔방으로 유인하려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하씨 아버지가 눈치를 채며 범행은 또 실패했다.윤길자는 살해 범행을 지시한 후 거의 날마다 윤남신에게 대포폰을 이용해 전화를 걸어 압박을 가했다. 그는 2002년 1월 “왜 돈만 가져가고 죽이지 않느냐. 돈 5000만원을 도로 내놓든지 아니면 김용기를 독촉해 빨리 하씨를 납치해 살해해라. 살해 후에 상황을 바로 보고하라”고 더욱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 같은 압박에 윤남신도 김용기에게 “빨리 하씨를 살해하라”고 재촉하며 같은 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7차례에 걸쳐 720만원을 송금했다. 김용기는 이 돈을 이용해 2002년 2월 공기총과 실탄 등 범행 도구를 구입했다.윤남신은 2002년 2월 하순, 하씨 아파트 앞에서 윤길자를 만나 구입한 공기총을 보여주며 “공기총으로 살해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여기서 윤길자는 뒷조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하씨가 새벽에 수영장을 다닌다. 그 기회를 틈타 납치해 살해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김용기는 납치를 위해 평소 알고 지낸 폭력배 등 5명을 범행에 가담시키기로 했다.윤남신과 김용기 등은 범행을 위해 2002년 3월 3일 새벽시간 하씨 아파트 인근에서 하씨가 수영장을 가기 위해 나서길 기다렸다. 그러나 당일 하씨가 새벽시간 집을 나오지 않자 그대로 철수했다. 이들은 이틀 뒤인 3월 5일에도 다시 하씨 집 앞을 찾았으나 범행에 실패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3월 6일 오전 5시37분께 하씨가 수영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목격했다. 윤남신이 차량을 운전하고 김용기가 밖에서 하씨를 잡아당긴 후, 다른 일당 3명이 하씨를 승합차 밖에서 안으로 밀어넣는 방법으로 하씨를 납치했다. 공범 3명은 곧바로 현장을 벗어났고 윤남신과 김용기는 하씨를 뒷좌석에 태운 채 차량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김용기는 미리 준비해둔 도구를 통해 하씨를 결박한 후 쌀포대 2개로 하씨 신체 전부를 덮어 씌웠다.◇곧바로 공범 해외도피 시켜…13개월 뒤에야 송환하씨는 납치 열흘 후인 3월 16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윤남신은 납치 당일인 6일 오전 8시8분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인천에서 윤길자에게 전화를 했다. 윤길자는 곧바로 윤남신과 김용기에게 해외도피를 지시했다. 윤남신은 3월 8일 오후 부산으로 내려가 윤길자에게 “하씨를 죽였다”고 알렸다. 윤길자는 이틀 후 울산에서 윤남신을 만나 현금 2700만원을 지급했고, 윤남신은 이를 김용기에게 곧바로 전달했다. 윤길자는 이후 윤남신과 김용기에게 베트남 등 해외도피를 지시했다. 김씨는 해외도피 중 검거를 피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기도 했다.경찰은 하씨 시신 발견 후 초기수사에 애를 먹었다. 시신 등에서 지문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4월 초 범인 중 한 명의 몽타주를 전국에 배포했으나 수사에 애를 먹었다. 이때 하씨 부친이 과거 김용기에게 받은 가짜 명함이 수사에 활력을 줬다. 경찰은 국내에 남아있던 납치공범들을 우선 붙잡은 후 윤남신과 김용기의 신원을 특정했다. 이 과정에서 김용기가 윤길자 조카인 윤남신의 고교 동창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또 김용기의 공기총 구입 등의 흔적을 확인했다.아울러 김용기와 함께 윤남신 또한 해외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4월 말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지만 이들은 꽁꽁 자취를 감췄다. 윤남신, 김용기를 붙잡지 못한 상황에서 윤길자 조사를 시작도 하기 어려웠다. 경찰은 윤길자와 이들 간의 금전거래 등을 추적해 같은 해 8월 윤길자에 대해 일단 체포감금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도 일단 윤길자를 체포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윤길자는 공범들이 해외 도피 중인 상황에서 이뤄진 체포감금 혐의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조카 윤남신에게 하씨 미행을 지시한 사실은 있지만, 납치나 감금을 지시한 적은 없다. 김용기는 알지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용기에게 자금이 전달된 경위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결국 윤길자는 2003년 1월 1심에서 체포감금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그리고 얼마 후인 2003년 3월 마침내 윤남신과 김용기가 중국에서 검거됐다. 이들은 같은 해 4월 11일 국내로 압송됐다. 이들은 첫 경찰 조사에서 “윤길자 지시를 받고 하씨를 납치한 것은 맞다”면서도 살인에 대해선 진술을 거부하다, 두번째 조사에서부터는 “윤길자의 지시를 받아 하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검찰은 윤길자와 윤남신, 김용기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1심은 윤길자에게 무기징역, 윤남신과 김용기에게 각각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심은 윤길자의 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윤남신과 김용기에게도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형을 높였다. 2심 재판부는 “10년 전이라면 이 같은 사건에 사형을 선고했을 것”이라고 밝하기도 했다. 윤길자는 상고했지만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유죄 확정 판결 후 느닷없이 공범들 “윤길자 지시 없었다” 스스로 위증 주장윤길자와 윤남신, 김용기 등이 모두 검거됐지만 여전히 하씨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윤남신과 김용기는 수사기관에서 “하씨를 납치한 후 곧바로 검단산으로 데려가 쌀포대로 씌워진 하씨를 땅바닥에 내려놔 눕히고 주위에 있는 낙엽으로 덮은 후, 곧바로 김용기가 윤남기에게 넘겨받은 공기총으로 하씨 머리를 겨냥해 6발을 발사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씨가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윤길자 지시를 받고 하지혜씨를 납치해 살해한 윤남신과 김용기가 2003년 4월15일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하씨 사망시각은 ‘사체가 발견된 16일로부터 이틀 이내’였다. 하씨 시신 곳곳엔 골절과 자상 흔적 등 가혹행위를 당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흔적들도 남아있어 윤남신과 김용기의 진술과는 맞지 않았다. 또 쌀포대를 씌워놓고 총을 발사했다는 진술과 달리 포대엔 총알 흔적이 없었다. 결국 법원도 “윤남신과 김용기는 ”6일 검단산에서 살해한 것이 아니라 납치 당일 일단 하씨를 미상의 장소에 수시간 내지 수일간 감금했다가 살해 후 사체를 검단산에 유기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며 ”객관적인 증가로 일부 배치되는 윤남신 등의 진술은 하씨를 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범행 시간을 ‘3월 6일 오전 6시10분부터 (시신이 발견된) 16일 오후 9시 사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무기징역 확정 판결로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결코 마무리되지 않았다. 윤길자는 2005년 10월 느닷없이 공범 윤남신과 김용기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이 고소장을 토대로 윤남신과 김용기를 불러 조사하자, 이들 역시 ”살인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하씨를 납치해 불륜사실을 자백받으려 했으나 공기총 오발사고로 살해하게 됐다“고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검찰은 이들이 진술을 뒤집은 배경에 ‘경제적 대가’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관련 수사도 진행했지만 끝내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검찰은 2008년 이들을 위증 혐의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2010년 2월 ”번복 진술은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일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에 대한 유죄가 선고될 경우 재심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윤길자의 꿈도 산산조각 났다.◇재력 동원해 형집행정지 악용…VIP병실서 호화 수감생활윤길자는 얼마 후 또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2013년 윤길자가 형집행정지를 악용해 교도소가 아닌 VIP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을 드러난 것이다. 윤길자는 2007년 7월 첫 집행정지를 시작으로 약 30개월의 형집행정지를 받아 VIP병실에서 생활했다. 그는 병실에서 생활하며 수시로 외출을 하기도 했다.형집행정지를 악용해 VIP병실에서 호화 수감생활을 하던 윤길자 모습.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갈무리)결국 허위진단서를 통해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도운 남편인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과 주치의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류 회장은 2017년 10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고,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준 교수 박모씨는 벌금 50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윤길자의 형집행정지 관련으로 여론의 거센 분노가 일던 2014년 7월 사위 김 전 판사는 처음으로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10년 침묵을 깼다. 당시 법복을 벗은 지 약 2년 4개월가량 됐던 김 전 판사는 ”당시 장모의 심리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의부증도 있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하면, 장모는 당신의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니까 그 반대급부로 어린 딸과 사위에 집착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신혼 초에 ‘장모가 정서적으로 내게 의지하고 싶어서 그렇게 제게 집착했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장모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면, 그래서 지혜에 대한 의심을 확실히 풀어드렸더라면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때는 장모가 저와 지혜의 사이를 터무니없이 의심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하지만 윤길자는 끝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유족들은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씨 어머니 설모씨는 하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하남 검단산 인근에서 거주하다 2016년 사망했다. 그는 딸을 잃은 고통을 술로 해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하씨 아버지는 2021년 한 방송국에 보낸 편지를 통해 ”그동안 내 딸을 죽이라고 사주한 그 사람이 진정한 반성과 사과의 뜻을 보여줬더라도 내 마음이 이토록 분하고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용서하려 해도 쉽게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 경영권 분쟁 중인 디엔에이링크 "본업서 성과, 올해 흑자전환 기대"
- [이데일리 지영의 기자] 유전체 분석 전문 기업 디엔에이링크(127120)는 소액주주와 수년째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진단키트 사업 추진으로 과열됐던 주가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경영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주주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 분쟁의 시발점이다. 진단키트 사업부를 담당하던 임원이 회사를 이탈해 소액주주를 모아 경영권 획득을 시도하다 실패한 이후 분쟁이 소강 되는 듯 하다 최근 외부 코스닥 법인들의 중도 개입으로 재점화된 모양새다. 일부 코스닥 기업체들이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디엔에이링크의 지분을 돌발 취득해 소액주주연대에 합류했다. 소액주주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중도 개입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들이 소액주주연대의 주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디엔에이링크 경영권 향방을 결정지을 주주총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 이종은 디엔에이링크 대표이사가 회사를 둘러싼 오해에 대해 직접 입장표명에 나섰다. 최근 서울 강서구 디엔에이링크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이 대표는 현재까지 진행된 회사의 국책사업 및 매출 현황 등을 공개하고, 중점 추진 중인 경영 방향을 제시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종은 디엔에이링크 대표 인터뷰소액주주들은 회사 경영 상황에 대해 소통이 없었다며 불만이 높다. 현재 디엔에이링크의 주요 사업 현황과 매출 동향은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심스럽긴 하지만 올해부터 적자 탈피를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먼저 코로나19를 계기로 시작된 중요한 사업이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담당 사업본부의 ‘코로나 서베일런스’ 사업을 수주해서 지난해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와 우세종, 새로운 변이 동향을 분석하고 검사하는 사업이다. 우리의 유전체분석업과도 잘 맞는 비즈니스다. 일주일 단위로 1000명씩 진행을 하고 있고, 해당 부문이 억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또 주주분들도 익히 아시는 K-DNA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되면 내년부터 9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여기서 내년부터 안정적인 매출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사업비 1조 수준에 달하는 사업이고, 절반에 달하는 5000억대가 우리가 포함된 유전체분석회사들 컨소시엄에게 지원된다. 컨소시엄에는 디엔에이링크와 또 다른 유전자분석 기업인 마크로젠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신생회사도 참여하고 있다.우리 회사가 10년 전부터 해온 개인유전체분석 서비스 시장이 최근 들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사업 기대감도 높다. 유전자분석 사업 중에서 고급기술 위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기존에 하던 유골 DNA분석 사업도 지난해부터 매출이 잘 나오기 시작했다. 518위원회와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에서 유골 DNA 관련 사업을 수주한 상태다. 올해 관련 국가 예산이 배정된 게 30억대인데, 디엔에이링크 외에 다른 곳은 할 수가 없으니 독점인 사업이다. 글로벌 시장 쪽에서도 매출 효과를 내고 있다. 베트남 빈그룹 산하에 있는 빈맥병원에서 의뢰하고 있는 유전자검사 매출 부문만 지난해 기준으로 2억원대이고, 계속 매출 발생하고 있다. 이밖에도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운영 중인 헬스케어 빅데이터 사업체 ‘빅케어’와도 바이오유전체 데이터베이스 구축 논의를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구체화 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진단키트 테마주로 급부상해서 폭등했던 주가가 많이 가라앉았다. 주가 하락에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경영권 교체 시도도 이어지고 있는데우선 디엔에이링크는 유전자 분석이 본업이고, 코로나19 시기에 진단키트 테마주가 됐던 게 본의는 아니었다. 다들 진단키트에 대한 핑크빛 전망을 쏟아내던 시기에 한 임원이 관련 사업을 추진해보겠다고, 자신이 있다고 나서기에 맡겨보게 됐다. 산업 전반에서 진단키트에 대한 기대가 높을 때고 연관성도 있어 해보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닌데 시도한 것은 무리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과열됐고, 회사 차원에서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3만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하락세를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일반 소액주주분들께는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주가 과열 시기에 주식을 매입해서 크게 손해를 보고 계신 분들이 있다. 디엔에이링크는 기본기가 탄탄한 회사다. 현재 본업에서 매출이 계속 나오고 있고, 신규 사업 수주도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주주분들이 입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 그러나 회사를 계속 공격하는 일부 인사들 중에는 일반 주주분들과 달리 최근에 주식을 취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경영권 분쟁이 생긴 기업에 개입하기 위해 지분을 취득한 주주들에게는 필요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진단키트 사업 중단에 대해 소액주주 불만이 높았다. 소액주주연대 측은 경영진 교체 시 진단키트 등 회사 영업이익을 끌어올릴 사업만 중점 추진해 주가를 부양하겠다고 주장하는데지금 진단키트 사업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도 그 사업으로 매출을 내겠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조 단위 매출을 내던 대형사들도 다 손실을 보고 있다. 디엔에이링크는 유전자분석업 관련 사업에 충실해야 한다.그리고 디엔에이링크를 경영하겠다는 사람들 중 유전자분석업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없다. 지금 그 주주연대를 주도하는 주축에서 추천한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주식시장에 있었던 인사들이다. 복잡한 바이오 회사를 운영해 이익을 내기 힘들다. 바이오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경영권을 가져가게 되면 소액주주가 희생되는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다.코로나19 시기에 진행한 유상증자 자금이 기존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은유상증자 자금을 150억원에서 200억원 정도 진단키트에 쓰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진단키트 사업이 사업성 하락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투자를 할 수가 없었다. 사업을 계속 추진해보기 위해 공장도 매입했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사업으로 돈을 번 회사들은 전부터 본업으로 영위해와서 영업망과 파트너들이 있는 곳이었다. 기술 이해가 되면 금방 만들 것 같았던 우리 같은 후발주자들은 회사들은 아무리 투자를 해도 안 되겠다는 현실적 한계를 체감해서 멈췄다. 진단키트에 유상증자 자금을 썼으면 지금 다른 업체들처럼 손실을 크게 보고 있을 것이다.대신 헛되이 쓰지 않았다. 유전자분석 기술 보강과 회사 재정을 보강할 수 있는 부동산 및 이익 창출이 가능한 자회사 지분을 얻는 데에 투자했다. 올해 새로운 기술을 공개할 예정이고, 기존 기술에 혁신을 더하는 데에 투자금을 썼다. 바이오 업황이 극히 어려워진 속에서도 우리 회사가 올해부터 흑자전환을 기대해보는 것은 다 그 증자를 기반으로 진행한 투자 덕분이다.엔터미디어, 국민비투멘 등 본업과 관계없는 회사 지분을 취득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우리 업종은 꿈과 희망만으로 버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투자를 못 받은 바이오 회사들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바이오업은 지속적인 투자금 확보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벤처캐피탈 등이 투자해놓고 장기간 기다려줄 여건이 되지 않는다. 장기간 책임질 수 있는 투자사가 없다. 기본적으로 개별 회사들이 버틸 체력을 확보해둬야 살아남을 수 있고,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선박회사와 엔터회사 지분을 가져온 것이 일견 이해 안 갈 수 있으나, 안정적인 현금 배당과 사옥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먼저 엔터미디어 지분 취득은 회사 사옥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결정한 부분이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관 계약이 종료되는 상황이었고, 고가의 유전자 분석 기계를 대량 보유한 우리는 적어도 1000평 되는 공간이 필요했다. 계속 발품을 팔아 사옥을 구하러 다니던 중 코로나19 시기에 경영이 어려워진 엔터미디어가 불가피하게 사옥을 팔고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자금력이 많지 않은 우리가 엔터미디어 지분을 인수해 사옥을 보유하게 됐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회사를 위해 재정적 면에서도, 부동산 지분 가치 상승을 봐서라도 좋은 결정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엔터미디어도 스크린 골프 사업과 노래방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회사에 이미 사옥으로 크게 보탬이 됐지만, 향후 재정적으로도 보탬이 될 부분이 없지 않다.선박회사인 국민비투멘의 경우 이익도 많이 나고 견실한 곳이다. 올해부터 3억의 배당금을 받을 예정이다. 올해 예상 이익이 50억대인데, 그럼 내년에 우리가 받게 될 배당은 10억대 이상이다. 배당 이익으로 생기는 현금은 디엔에이링크의 재정 안정성을 높여줄 것이고,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종은 디엔에이링크 대표 인터뷰소액주주들은 여러 관계사에 불필요한 자금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한 입장은일부 성공하지 못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와 기술 제휴나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곳들이라 초기에 투자하거나 지원금을 냈던 경우다. 먼저 엘엔씨바이오는 외국 시약수입 판매대리점을 운영 중인데, 외려 우리에게 돈을 벌어주는 회사다. 매출도 좋고 이익을 내고 있다. 오디세우스바이오(최현일 바이오랩)과 비피이뮨은 창의적인 신약개발 회사라 소액의 지분투자를 한 것이다. 피비이뮨테라퓨틱스의 경우 디엔에이링크와 면역항암제 개발을 함께 하려 한다. 오디세우스바이오의 경우 박테리아를 이용한 암 치료제 분야에서 좋은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성과를 내고 있다. 병원균으로 알려진 살모넬라라는 균을 세균조작 작업을 통해 독성 유전자를 제거하고, 암을 죽일 수 있는 단백질 등을 넣어 암 조직으로 보낸다. 식약처 기준에 맞춰서 기반이 다져졌고, 올해 3-4분기에는 전임상을 갈 상황이다. 디엔에이링크와는 함께 할 일이 많은 회사다. 오에이치코리아, 이피세라의 경우에도 추후 성과를 기대하고 적은 투자를 해둔 상태다.디엘파마는 아픈 손가락이다. 저희의 100% 자회사로 시작했는데 지속적으로 파이프라인을 늘려가고 있다. 다만 신약 개발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부담이라 자금 지원을 끊은 지 1년이 넘는다. 그런데 일을 전담하던 대표가 자기가 해보겠다 해서 지분을 대부분 거기로 넘겼다. 회사가 잘 되기만 바라면서 필요한 조언을 하는 상황이다. 지분 정리 이후 우리는 4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디엔에이링크앤랩은 내부 임원들이 새로 비즈니스를 해보겠다고 해서 초기에 일부 지원을 했는데, 수십억 벌겠다는 포부와 달리 실적을 내지 못했다.디엔에이링크USA 사업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갖는 주주들이 있다미국에 실험실을 만들고 외부 인력을 채용했는데 투자 대비 성과가 크지 않았다. 고민 끝에 그 사업부를 축소해 영업사업부로 개편한 것이다. 미국 쪽에서도 유전자 분석업 관련 사업 수주를 하거나, 샘플을 주고받고 제휴를 늘리려면 영업사업부가 필요해서 축소 상태로 운영한다. 일방적으로 자금을 쏟고 있다는 오해가 있는데, USA 사업부는 오히려 연간 100만달러 가량의 매출을 끌어오는 곳이다. USA 사업부에 지원하는 자금은 현지 체재비 정도다. 실험실 유지비를 아끼기 위해 주거지와 실험실을 합쳐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향후 주주들과 소통하기 위한 계획이 있나기존에 회사에 IR을 전담하는 조직이 없었는데, 최근 창구를 마련했다. 주주와 소통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오해를 쌓이게 만들었고, 안타깝다.주주들과 소통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창기부터 우리와 오래 함께하신 주주분들이 회사로 찾아오신다. 그럼 제 방에 앉아 한 두 시간 이상씩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주주분들과의 소통 기회도 대면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늘려나가겠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토종 챗GPT 나오려면 '데이터 족쇄' 풀어야
- [이데일리 김근우 기자]다음은 2월 1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토종 챗GPT 나오려면 ‘데이터 족쇄’ 풀어야-4분기 반도체로 번 돈 2700억뿐 삼성 “그래도 감산 없다” 자신감-경제 혹한기 접어든 한국…경기 회복세 뚜렷한 중국-레드라인 넘어선 미분양…7만가구 육박△금융위, 배당 절차 개선안 발표-‘깜깜이 배당’ 없앤다…배당액 보고 투자 결정△환경부 ‘기후탄소·자원순환정책’ 로드맵 발표-탄소감축·순환경제 투자확대 포스코·SK이노 수혜 기대감-中, 한국발 입국자 대상 PCR 검사 의무화△삼성전자 ‘어닝쇼크’-“투자 후퇴없다, 하반기 치고 나갈 것”…흔들림 없는 삼성 초격차 전략-“메모리 중심 사업구조 한계…파운드리 더 투자해야”-‘시장 전망 빗나가자 기대가 실망으로’…6만전자 흔들△커지는 경기 침체 경고음-공장 가동 줄고, 투자마저 꺾여…소비 늘었지만 ‘추위 반짝효과’-세계 성장률 전만 높인 IMF, 한국은 2%→1.7%-월급 오르면 뭐하나…고물가 반영하니 ‘제자리걸음’△대화형 AI ‘챗GPT’ 신드롬-챗GPT에 한국시장 먹힐라…토종 IT기업들 AI생태계 확장 안간힘-PT 초안부터 엑셀 입력까지…단순작업은 AI가 맡을 것-“국내 기술력 충분…정부, 저작권 규제 등 정비해줘야”△종합-“미분양·미입주 맞물려 잔금 못 받을라” 속타는 건설사들-응급·분만·소아진료 의료인에 보상 늘린다-尹 “혁신적 프로젝트 발굴로 UAE 37조원 투자 화답해야”-거래소, 파생상품시장 개장 15분 앞당긴다△정치-국민의힘 당권주자 4명만 본선행…3·4위 티켓 놓고 경쟁 치열할 듯-美국방 “F-22·F-35 스텔스 등 전략자산 전개 더 많아질 것”-與, 난방비 지원 ‘중산층 확대’ 만지작-캄보디아 환아 초빙, 디자인계 신년인사회…김건희 광폭행보 ‘눈길’-대형 정치적 이벤트 줄줄이…북한 ‘위기의 2월’△與 당권주자 인터뷰-“尹정부 성공 위해…대통령에게 쓴소리 마다않는 당대표 될 것”-“총선 승리 위해서라면…안철수·유승민 포함한 누구와도 연대”△경제-“1월에도 5%대 물가…연간 상승률 3.4% 전망”-공공기관 채용 토익 인정 2→5년-정부 보조금으로 늘린 중산층 ‘자식이 더 잘살 것’ 기대 줄어-한전 ‘튀르키예 30조원 원전 수출’ 시동△금융-삼성·한화생명은 웃고…동양은 ‘적자전환’ 비상-‘킥스’ 기준 미달 보험사 곧 공개된다-尹관심에 금융회사 CEO 셀프 연임 시대 끝난다-보험연구원장 “고령화시대 대비 사적연금 활성화해야”-“연초 상승 랠리, 이번주 끝난다” 글로벌 IB 잇단 경고-우크라 F-16 요청에…바이든 “NO” 마크롱 “가능”-中경기 4개월 만에 확장 전환-화웨이 숨통 조이는 美-“러서 철수한다더니”…EU·G7 기업 10곳 중 9곳 사업 지속△산업-LNG 73만㎘ 담은 탱크들 우뚝…“전국민 20일간 난방용으로 쓸 수 있죠”-LG화학, 배터리서 웃었지만…석유화학 부진에 영업익 ‘뚝’-디스플레이 시장 상반기 회복 전망△ICT-민간 클라우드에 플랫폼 구축…서류 받지않는 정부 만들것-3000억이면 5G 신규 사업 가능? 정부 통큰 혜택에도 기업들 머뭇-서비스 종료냐 상폐냐…페이코인 오늘 운명의 날-카카오T, 라오스行 고젝·그랩과 ‘맞짱’△소비자생활-신도시·복합몰 입점 총력…패밀리 레스토랑, 혹한기 끝낼까-스타벅스 ‘리워드’ 1000만명 넘었다-금리인상에 투자 뚝…유통 플랫폼, 옥석가리기 시작-현대百·현대그린푸드 “인적분할 후 자사주 소각”△증권-증권사가 팔라던 카뱅, 주가는 되레 올랐다-“용 꼬리보다 뱀 머리가 낫다” 체급 낮추는 예비 중형주들-‘수주 잭팟’ 포스코케미칼, 중장기 성장 발판 마련…증권가 목표가 줄상향-게임체인저 꿈꾸는 ‘챗 GPT’…국내 ETF로 담아볼까-성과급 시즌 자사주 처분 기업…절반은 주가 뚝-하나UBS자산운용 K200액티브 ETF 출시-“글로벌 사이버보안기업으로 도약할 것”△부동산-“안전진단 통과하면 뭐하나요, 시공사 모시기 어려운데”-노후 단지들 “재건축 위해 돈 모아요”-올림픽훼밀리타운 안전진단 통과…시장 견인까진 ‘글쎄’△건강-제대혈 줄기세포, 손상된 연골 재생 효과 우수…골골한 관절 팔팔하게-꾸준한 홍삼 섭취, 면역세포 활성화·폐렴 예방에 도움-쪼그려 앉으면 무릎 관절에 무리…근력 키우세요△Book-당신은 ‘꼰대’입니까, ‘어른’입니까-줄리엣의 발코니처럼…당신의 사랑은 어디서 꽃피었나요-예일대생이 사랑한 ‘나를 강하게 하는 심리학’△오피니언-이민자 출신 여성이 서울대 총장으로 선출된다면-도박 중독 양산하는 카지노 정책-정상엽업에 소송?…생떼 부리는 은행노조-이나진 ‘고마워 나를 키운 꽃과 바람아’△피플-“전차서 엄마 손 놓쳐”…58년 전 헤어졌던 4남매 상봉-“국내 유일 여성경제? 역량 키우는 데 집중할 것”-안호상 사장 “시민과 가까워진 세종문화회관, 공연으로 보답”-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서호주 총리와 면담-한화투자증권 대표에 한두희…한화자산운용 대표에 권희백-서춘기 한양대 교수 경기아트센터 사장 임명-현대무벡스, 대표이사에 이수강 “30년 물류·IT 관련 경영 전문가”-순천향대 천안병원 심재준 교수 대한말초신경학회장 선출-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에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사회-김성태 “北 만난 자리서 이재명과 통화”-마스크 벗었지만 상복은 못 벗었다-대중교통 요금 줄인상에…서울시, 따릉이 요금 인상 미룬다-148개 대학총장 만난 이주호 “등록금 자율화 검토 안해”
- “소비자에게 도움(HELP)되는 게 경쟁력”
- [이데일리 정병묵 윤정훈 김범준 기자] 코로나19 발생 3년차였던 지난해 유통산업 특징은 ‘양극화 소비’로 요약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가처분 소득이 낮아진 가운데 대부분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거나 가성비 위주의 품목을 소비했다. 반면 여유가 있는 소비자들은 명품 등 고가품에 지갑을 열며 ‘보복 소비’에 나섰다.올해는 경기 및 소비전망의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올해 유통산업을 주도할 키워드로 △건강(Health) △친환경포장(Environment) △라스트마일(Last Mile) △가격(Price)을 꼽았다. 소비자에게 도움(HELP)을 줄 수 있는 업체가 경쟁력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설명이다.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는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될 전망”이라며 “가성비 소비를 계속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늘어나 가격이 가장 중요한 소비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MZ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소비, 누가 집 문 앞으로 빠르고 효율적이게 배송할 것인지 등도 유통업계의 주요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대형마트 PB 상품 강화할 것”“본격적인 리오프닝으로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가처분소득은 감소하는 시기라 국내 유통산업의 성장 둔화는 불가피합니다.”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가진 이경희(사진)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이같이 말하면서 “올해는 생활필수품 위주로 소비하고 비식품군은 소비를 줄이는 불황형 소비패턴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이 소장은 올해 유통산업 키워드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스몰럭셔리 △오프라인 다변화 등을 꼽았다.그는 “경기침체 속 외식물가는 30년만에 최고치로 올라 올해는 외식을 지양하고 내식소비가 증가할 것”이라며 “내식소비 유행에 맞는 즉석식품, HMR(가정간편식) 등의 신제품 출시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지난해 큰 히트를 친 대형마트의 ‘반값치킨’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자체브랜드(PB)의 매출 점유율이 높아졌다”며 “생필품을 중심으로 가성비 높은 PB상품을 개발해 매출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지속 증가하는 명품 수요 속에서도 올해는 ‘스몰럭셔리’ 형태로 변화가 예상된다.이 소장은 “수백만~수천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 대신 주얼리나 지갑과 같은 잡화, 뷰티 등으로 대체소비를 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며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적 만족감은 얻으면서 돈은 상대적으로 덜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특히 소비력 있는 30대 남성을 겨냥한 명품 매장 오픈이 이어질 전망이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남성 해외패션관을 리뉴얼 오픈한 것을 비롯해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루이비통, 구찌,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의 남성전용 매장 오픈을 계획중이다. 럭셔리 제품을 즐겨 소비하는 비혼·비출산의 남성을 뜻하는 ‘럭비남’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팝업스토어, 대형마트 리뉴얼 등 오프라인 다변화도 2023년에 활발히 이뤄질 전망이다.이 소장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이커머스와의 차별화를 위해 리뉴얼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백화점은 MZ세대 집객을 위해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고 대형마트는 키즈카페, 식음료(F&B) 특화 매장을 확대하는 전략이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어떤 형태가 됐든 집객을 할 수 있는 흡입력 있는 매장을 조성하는 게 과제”라고 강조했다.(그래픽= 문승용 기자)◇대체 탄수화물·단백질 등 건강 고려한 식품 확대식품업계는 올해 유통산업 키워드로 꼽은 ‘H.E.L.P’와 더욱 밀접하게 경쟁이 이뤄질 전망이다.문정훈(사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는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는 결국 대체 당·단백질 등 미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맞춤형 식단관리 수요와 냉동식품은 새벽배송과 퀵커머스 등 라스트마일(소비자와 최후의 접점) 활성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어 “장바구니 물가에서 가격은 항상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가성비 만족도가 높은 간편식과 홈술(집에서 음주) 등 관련 시장도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특히 건강은 다이어트와 아름다움과도 직결되는 만큼 살찌기 쉬운 쌀과 밀가루 등 정제 탄수화물에서 대체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수요가 빠르게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제로칼로리와 논알코올 음료 출시와 소비가 늘고 있는 점도 기존 당을 대체하고 성분을 빼면서도 식감과 품질은 유지하는 푸드테크(음식+기술)의 핵심이라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문 교수는 “쌀과 밀 대신 보다 열량은 낮고 건강하다고 알려진 ‘메밀’이 뜨면서 ‘냉면’ 외에도 ‘메밀밥’, ‘메밀온국수’, ‘메밀파스타’ 등으로 확산할 것”이라며 “육류에서는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고 고단백 부위인 ‘안심’이 주목을 받고 있다. ‘소 안심’과 ‘닭 안심’에 이어 ‘돼지 안심’ 수요가 늘며 관련 제품 출시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건강기능식품은 약 개념이 아닌 건강과 식단관리 등 ‘케어푸드’ 측면에서 보조 섭취하는 맞춤형 식품으로 ‘구독경제’ 개념과 함께 발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인플레이션에 따른 외식 물가 상승으로 대안으로 떠오르는 냉동 간편식의 성장과 카테고리 확장도 빨라질 전망이다. 2022년 농촌진흥청 패널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38%가 냉동 보관 형태의 간편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시기 온라인으로 구매한 냉동 간편식 경험이 늘며 포스트 코로나에도 선호도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이다.문 교수는 “기존 냉장 간편식·밀키트가 ‘프레시(신선)’였다면, 급랭 기술 발달 등 푸드테크가 더해지며 가성비가 좋은 냉동 간편식이 ‘프로즌 프레시’ 영역을 주도할 것”며 “긴 유통·보관 기간과 재료의 신선함 유지 등 장점으로 소비자들의 조리 편리성 극대화뿐 아니라 라스트마일 등 배송 측면에서도 유리해 관련 산업 발달로도 이어진다”고 전망했다.사회적 거리두기 시절 발달한 홈술 문화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정 중심의 와인소비가 이어지면서 가성비 좋은 와인뿐만 아니라 치즈·샤퀴테리(육가공품) 등 페어링(음식 궁합)에 좋은 안주류 수요까지 견인할 것으로 내다봤다.
- '한나라 도자기' 박살은 시작이었을 뿐[정하윤의 아트차이나]<14>
- 아이웨이웨이의 ‘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2016·위)와 ‘색을 입힌 화병들’(2015). 기원전 20년, 무려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제작한 도자기를 떨어뜨려 박살내는 퍼포먼스를 촬영한 사진(1995)을 다시 레고 블록으로 제작했다. 마오쩌둥 시대 문화대혁명 당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행해진 ‘옛것 파괴행위’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비난한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는 이가 아이웨이웨이다. 아래 작품 역시 유사한 맥락. 신석기시대 유물로 추정하는 토기를 공업용 페인트에 담갔다 꺼내 제작했다. ‘현실에서 이런 일쯤은 흔하게 벌어지지 않느냐’는 작가의 탄식과 경종을 동시에 녹였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에 설치한 전경. (위) 레고 조각, 각 240×200㎝, (아래) 도자기·페인트, 각 지름 25∼28×31∼36㎝, ⓒ아이웨이웨이·이데일리DB.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계묘년 새해에 혹 새롭게 결심한 바가 있는가. 또는 꼭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는가.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66)의 소원은 올해도 같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아이웨이웨이는 미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불린다. 작품을 통해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미술가이기 때문이다. 아주 적극적으로. 그래서 때론 매우 시끄럽게. 1957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아이웨이웨이가 사회적인 미술가가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예전 중국이었다면 ‘문인’으로 존경받을 수 있었겠지만, 마오쩌둥의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지식인은 자산계층, 다른 말로 위험한 분자로 취급됐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1957년 반우파투쟁 때 아이웨이웨이의 아버지는 ‘우파’로 낙인 찍혔다. 그가 쓴 글이 문제시됐던 것이다(하고 싶은 말을 했다가 큰 코 닥치는 일이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 한 살이 된 아이웨이웨이를 포함해 온 가족은 ‘하방’(번역하자면 ‘귀향’ 정도 될 거다) 됐다. 흑룡강의 노동캠프로, 또다시 신장지역으로. 주거의 자유 따위는 없었다. ◇권위 상징 세계 명물 앞에서 가운뎃손가락 사진아이웨이웨이로서는 태어나자마자부터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당한 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뭘 잘못한 걸까’ ’‘왜 우리는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나’ 등등. 의아한 점은 많고도 많았다. 꼬마 아이웨이웨이가 품었던 ‘언론의 자유’와 ‘거주의 자유’에 대한 의구심은 후에 ‘인권’이란 작품의 주요 테마로 이어진다. 아이웨이웨이 가족은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웨이웨이는 베이징중앙미술학원에서 영화를, 미국에서 뒤샹이나 워홀과 같은 서구의 여러 새로운 작업을 접한 후, 1993년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와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실험적인 혹은 도발적인 작품들을. 초기작 중 하나가 한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깨뜨리는 퍼포먼스다. 아이웨이웨이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유물을 떨어뜨려 깨뜨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었고(1995), 최근에는 그 사진을 다시 레고 블록으로 만들었다(‘한나라 도자기 떨어뜨리기’ 2016). 흡사 문화파괴자 같은 그의 행위는 보기 불편하다. 이런 야만인 같으니. 물론 아이웨이웨이가 진짜 문화파괴자일 리는 없다. 그는 ‘문화대혁명’(문혁) 시기의 마오쩌둥의 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은 옛것을 파괴하는 것”이란 말을 그대로 실행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과정이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웨이웨이는 도전적인 작품들로 이목을 끌었다. 톈안문광장에서 여자가 치마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거나 ‘권위’를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명물들(톈안문광장, 백악관, 모나리자, 에펠탑 등) 앞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권력이나 권위에 대한 조롱이나 경고일 수도, 또는 그런 ‘힘’에 겁먹지 말라는 격려일 수도 있다. 아이웨이웨이의 ‘여행의 법칙’(2017). 거대한 고무보트에 올라탄 채 목숨을 건 탈출 중인 난민들의 절박한 모습을 길이 60m의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올라탄 사람만 258명. 작품을 발표하면서 아이웨이웨이는 “불확실성 시대에 우리에겐 더 많은 관용, 연민, 신뢰가 필요하다”며 “아니라면 인간성은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시드니비엔날레에 나왔을 때 작품. 고무, 가로 600㎝, ⓒ아이웨이웨이·탕컨템포러리아트 제공.◇검열에 대한 저항 ‘민물 게’ 도자기로 만들어 전시그렇지만 아이웨이웨이가 처음부터 특정 인물이나 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 정부와 사이가 꽤 좋기도 했다. 2008년 열릴 베이징올림픽 주 경기장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을 만큼. 하지만 아이웨이웨이와 중국 정부의 관계가 크게 틀어지는 ‘사건’이 생기게 된다. 2008년 쓰촨에서 8.0 강도의 대지진이 발생한 무렵이다. 지진 때문이 아니다.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 때문이다. 당국은 사망자 집계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대규모 사상자를 낸 학교가 부실시공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조사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아이웨이웨이는 분노했다. 학교는 반드시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 만에 하나 그렇지 못했을 때 당국은 정확히 조사하고 투명하게 모든 사실을 밝혀야 했다. 그것이 아이웨이웨이가 당연히 믿는 바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마땅한 바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웨이웨이가 직접 움직였다. 현장으로 달려갔고, 인터넷으로 자원자를 모아 사망한 아이들의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1년이 못 돼 5000명이 넘는 명단이 나왔고 아이웨이웨이는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현장 사진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물론 설치작품도. 학교 건물에 널브러져 있던 책가방을 떠올리며 책가방으로 미술관 외벽을 싸는 대규모 설치를 선보였고, 현장에서 모은 철근을 바닥에 놓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미술관 벽에는 사망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빼곡하게 적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목소리를 녹음해 틀었다. 아이웨이웨이의 작업은 뉴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기록했고, 공론화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이웨이웨이의 활동을 예뻐할 리 없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예의주시 당했고, 각종 제재를 받았다. 2009년 아이웨이웨이의 블로그는 폐쇄됐고, 그는 경찰에게 머리를 맞은 뒤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받기도 했다. 2010년 11월에는 자택에 구금됐으며, 2011년 1월에는 상하이 스튜디오가 철거됐다. 같은 해 4월에는 탈세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수감돼 185만달러(현재 23억여원)가 미납세금·벌금으로 부과됐다. 81일 만에 석방됐지만 여권은 당국에 뺏긴 채였다. 아이웨이웨이의 ‘민물 게’(2011). 구금 중 상하이 작업실이 강제로 철거된 뒤 마을주민을 초대해 상하이 명물인 민물 게를 한상 차려 대접한 연회를 기념한 동시에 ‘저항’을 상징한다. 중국말 ‘민물 게’ 발음이 중국 정부의 슬로건이던 ‘화해’와 발음이 비슷한 데서 비롯됐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에 설치한 전경. 자기, 각 약 5×10×256㎝, ⓒ아이웨이웨이·이데일리DB.◇난민이 사용했던 구명조끼·옷으로 ‘인간의 위기’ 표현이 모든 사건은 국제사회 뉴스에 오르내렸고,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서 아이웨이웨이의 이름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웨이웨이가 뼛속까지 예술가인 것은 이 모두를 예술활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구금 중일 때 그는 상하이 건물에서 상하이 게를 먹는 파티를 열고 수천 마리의 게를 만들어 전시장에 설치했으며(‘민물 게’ 2011), 구금 중 겪은 바를 모조리 미니어처로 만들어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 아이웨이웨이를 지지하는 이들은 세금 납부를 위한 기부를 시작했고, 석방을 위한 서명을 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일종의 ‘기록예술’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했다. 중국 정부가 아이웨이웨이를 탄압할수록 그의 작품은 주목받았고, 그를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응원은 더해졌다. 2015년 여권을 돌려받은 아이웨이웨이는 그 길로 중국을 떠나 지금까지 외국에 거주 중이다. 자의 반 타의 반 고향 밖을 떠도는 일종의 ‘난민’이 된 셈이다. 그래서인가. 아이웨이웨이는 요즘 난민의 삶에 대한 작업에 힘을 쏟는다. 시리아 내전으로 자국을 떠나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촬영하고, 구명보트에 올라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60m 규모의 대형 설치작품(‘여행의 법칙’ 2017)으로 만든다. 도자기에 난민의 이야기를 입히기도 하며(‘기둥으로 쌓은 도자기 꽃병’ 2017), 그들이 사용했던 구명조끼(‘구명조끼 뱀’ 2019), 갈아입지 못했던 옷가지 또한 작품화(‘빨래방’ 2016)한다. 아이웨이웨이는 ‘난민의 위기’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위기’라고 부른다. 아이웨이웨이의 ‘구명조끼 뱀’(2019). 그리스 남동부 레스보스섬에서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 140벌을 연결해 만든 설치작품이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에 설치한 전경. 22.5m나 되는 푸르고 붉고 긴 뱀이 전시장을 연결하는 복도 천장을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구명조끼 140벌, 65×2250×85㎝, ⓒ아이웨이웨이·이데일리DB.수십 년 동안 조각,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기저에 흐르는 주제는 하나다. 인권. 도자기를 떨어뜨리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려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경고하고, 힘을 잃은 자들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말하는 이 모두는 ‘인권’을 위함이다. 작년 한 해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계묘년 새해, 아이웨이웨이 또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인권을 위한 힘찬 행보를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 월세 맞먹는 HPV 백신…“대학생 할인도 사라져” [급빡한 뉴스]
-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 안녕하세요. 청년들의 이주의 빡침을 소개해드리는 급빡한 뉴스입니다.● 1달 월세 맞먹는 가다실9가 가격 “빡친다!”가다실9가 맞는다고 이번 달 완전 ‘텅장’됐음. 꼭 맞아야 하는데 보험 처리도 안 해주고 정말 화남. 대부분 20대가 맞지 않음? 20대가 무슨 돈이 있다고… (대학생 K씨, 23세)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가다실9가 가격을 조회해보니 통상 1회당 20~25만원이었어. 권장 접종 횟수인 3회를 모두 채우면 60~70만원이 드는 셈이지. 가다실9가는 비급여 항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거든.● H…PV 백신? 그게 뭔데!?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이야. 사람의 유두 모양을 닮은 종양을 유발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주로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첫 성경험 전에 맞아야 효과가 좋아. HPV 바이러스의 종류는 100가지 이상인데 그중 약 30개가 생식기에 영향을 미친대. 정확히 어떤 질병으로 이어질까?-여성: HPV 백신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으로 아는 사람도 많을 거야. 최악의 HPV 감염이 자궁경부암이거든. 자궁경부암은 5~24세 사이의 여성암 중 발병률 3위를 차지할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유일하게 예방 백신이 존재하는 암이라고도 해.-남성: 자궁이 없다고 안심하긴 금물! HPV 백신은 △생식기사마귀 △항문암 △두경부암을 일으키는 저위험군 바이러스도 예방해. 특히 남성도 걸리는 생식기사마귀 수술 시행 건수는 여성이 1만3144건에서 2만1155건으로 약 1만건 증가하는 동안 남성은 남성은 2만1711건에서 7만8846건으로 5만건 이상 증가했대.● 가다실만 들어봄. 서바릭스는 또 뭐야?HPV 백신은 서바릭스2가와 가다실4가 그리고 가다실9가로 나뉘어. ‘가’ 앞에 붙은 숫자는 백신이 예방하는 바이러스의 종류를 말해. 즉, 가다실9가가 질환 예방 범위가 제일 넓어.-서바릭스2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16, 18번 바이러스를 예방해.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만 딱 막아주는 거야. 자궁경부암만 예방하니까 남성은 맞을 필요가 없어.-가다실4가: 16, 18번 바이러스와 함께 생식기사마귀를 일으키는 6, 11번 저위험군 바이러스를 예방해. 6, 11번 바이러스는 생식기사마귀 발병의 약 90%를 차지한다고 해.-가다실9가: 가다실4가가 예방하는 바이러스에 31, 33, 45, 52, 58번 바이러스를 추가로 예방해. 전문가들은 31, 33, 45, 52, 58번 바이러스를 추가로 예방할 경우 자궁경부암 예방 효과가 최대 약 92%까지 높아진다고 말했어. 가다실9가는 현재 HPV 백신 중 가장 비싸. (사진=염정인 인턴 기자)● 좀 싸게 맞을 방법 정말 없어?-그냥 가다실4가 맞으면 어때?가다실9가가 가장 비싸다고? 그럼 그냥 가다실4가를 맞으면 안 돼?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직접 물어봤어. 한 여성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가급적 9가 접종을 권해드리고 있다”고 말했어. 이어 “4가 접종을 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덧붙였어. 실제 취재 결과 서울 소재 여성병원 10곳 중 4곳은 4가를 접종하지 않거나 재고가 없다고 전했어. 가다실4가와 9가 간의 비용 차이는 1회당 3~6만원 정도였어.-우리 학교에서 할인행사 하던데?대학교 총학생회(이하 총학)이 대학 인근 병원과 제휴를 맺어 자대 학생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꽤 많았어. 그런데 최근 총학 관계자들은 “백신 공급가가 올라 제휴사업 진행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말했어.전주대학교 제49대 총학 ‘ABLE’은 연대사업국의 주요 공약으로 ‘가다실9가 제휴사업 추진’을 내걸었어. 이환 전주대 총학생회장은 지난달 23일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가다실9가는 제휴사업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다”면서도 “공급가 인상으로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했어. 이어 “다른 총학도 가다실9가 제휴사업 추진에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지. 실제 전주대 총학 ‘ABLE’은 10곳이 넘는 병원을 방문하며 어렵게 제휴사업을 실시했다고 해.국민대학교 제53대 총학 ‘포인트’도 재작년 11월 “올해 4월 가다실9가 공급가 인상으로 제휴업체를 선정하지 못했다”면서 “학교 인근만이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제휴 병원을 찾았지만 무산됐다”고 전했어. 실제 한국MSD는 가다실9가 공급가를 최근 2년 사이 약 25%를 올렸어.매운맛처방 청년들의 빡침을 파헤치는 ‘매운맛 처방’입니다. 빡침의 원인을 분석해 드립니다.● 정부 지원은 없어?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가다실9가 접종 지원을 시작하겠다”고 공약했어. 실제 지난해 3월 HPV 백신 무료접종 대상이 확대됐지. 지원 대상이 그동안 만 12세 여성 청소년에 한정됐는데 △만 12~17세 여성 청소년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까지로 바뀌었거든.● 공약은 실현된 거야?-여전히 남성과 성인 여성에 대한 지원은 없어.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남아까지 접종 지원을 확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어.-국가가 지원하는 HPV 백신 종류에는 가다실9가가 없어. 서바릭스2가와 가다실4가만 지원하고 있다고 해. 2019년 12월 질병관리청이 발행한 ‘주간건강과질병’에 따르면 미국과 호주에서는 국가예방접종에 9가 백신을 도입했다고 해.● 연구개발도 필요해전문가들은 HPV 백신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국산화’가 필요하대.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팀장은 “가다실은 특허가 만료돼 국내 제약회사가 유사한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어. 실제 가다실9가는 특허가 유효하지만 가다실4가 특허는 2014년 만료됐어.디저트처방 식사 후에 디저트로 입가심은 어떠신가요?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직접 인터뷰한 핵심만 쏙쏙 골라왔습니다. 본문에는 없는 특별한 디저트로 준비했습니다.● 이거라도 해보자-저렴한 병원 쉽게 찾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비급여 진료비 정보 조회하기를 이용하면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병원을 검색할 수 있어.-완납하면 할인해준다: 많은 병원에서는 3회분을 한 번에 완납하면 통상 6~15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어.-대학교 복지사업 알아보기: 대학교 건강센터에서 가다실9가 접종을 운영하는 곳이 있어. 이화여대 대학건강센터는 1회에 18만2천원에 접종이 가능하대. 시중가보다 저렴해. 또 대학교 총학생회 제휴사업을 통해서 할인받을 수도 있으니 찾아보자.
-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정하윤의 아트차이나]<9>
- 웨민쥔의 ‘주먹꽃’(Fist Flower·2022).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크게 벌린 채 가지런히 박힌 하얀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고 있는 사내 혹은 사내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웨민쥔이 만들고, 또 웨민쥔을 만들어낸 캐릭터다. 초기에는 세상에 냉소를 던지는 자신과 주변인 모습에서 윤곽을 잡아나가다가 점차 과장된 표정·제스처를 늘려갔다. 이후 작가 자신으로 인물을 대체하면서, 중국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배반하는 현실을 비웃고, 폭력적 현실에는 눈감는 자아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캔버스에 유채, 170×140㎝, ⓒ웨민쥔·탕컨템포러리아트 제공.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중국 현대미술에는 ‘4대 천왕’이라 불리는 미술가가 있다. 웨민쥔(岳敏君·60), 왕광이(王廣義·65), 장샤오강(張曉剛·64), 쩡판즈(曾梵志·58). 1990년대 초, 중국의 개방과 미술의 국제화라는 흐름 속에서 단숨에 거물급 스타작가로 떠오른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웨민쥔은 작품값이 10여년 만에 무려 1000배가 뛴 것으로 큰 이목을 끌었다. 1995년에 5000달러(당시 약 500만원)였던 작품이 2007년 영국 런던 소더비경매에서 590만달러(당시 약 55억원)에 판매된 것(‘처형’ 1995). 이만하면 거의 잭팟이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웨민쥔의 시그니처는 웃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얀 이와 잇몸을 훤히 드러내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는 사람들을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그려왔다. 1962년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그가 노동자계급이던 부모님을 따라 기름공장에서 오래 일을 한 뒤, 베이징으로 온 후에야 기어이 발견한 그만의 독창적인 도상이다.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 사실적인 유화를 배웠던 만큼 인물의 비례도 정확하고 묘사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작품 속 사람들은 웃고 있는데 보기가 영 불편하다. 모두 밝게 웃고 있지만, 가식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함께 있는 그림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어서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이렇게 웃어야 해!’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웃고 있는 것 같다. 웨민쥔은 왜 하필 이런 식으로 웃는 사람들을 그린 것일까. 이왕 그릴 거면 좀 기분 좋게 그리면 안 되나? ◇절망적 상황서 황망한 웃음…‘영혼의 정지상태’ 그려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1980년대 후반 중국에는 이상주의적 기운이 만연했다. 중국인들은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대가 열리리란 기대감, 꿈꾸는 대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을 공유했다. 희망에 찬 사람들은 1989년 6월, 톈안먼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사회여 오라!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톈안먼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뒤따르는 대포와 총소리는 금세 사람들의 외침을 집어삼켰다. 탱크와 총알이 사람들을 쓰러뜨렸고, 무거운 침묵만이 톈안먼광장을 채웠다. 이 ‘톈안먼사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는지는 여전히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예상할 뿐이다. 이후 중국사회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깊은 절망감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거대한 이상을 향한 열망이 처참히 짓밟히는 것을 목도한 생존자들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꿀 힘을 잃었다. 비관과 낙담이 사회를 지배했고, 젊은이들은 더이상 세상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다. 웨민쥔의 웃는 사람들은 바로 이때 탄생했다.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큰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다. 이 상황에 웃음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누구라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고대한 일이 모두 실패로 끝나버리고 더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을 때, 어이가 없어 그냥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순간이. 웨민쥔의 ‘한 가닥 줄로’(Stranded·2021). ‘냉소적 사실주의’라는 세간의 평가 그대로, 작가의 ‘웃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웃음의 역설’을 옮겨낸다. 언뜻 해학적으로 보이는 웃음에는 중국의 급격한 변화가 불러온 개인·사회적 혼란에 대한 반항과 슬픔, 분노와 체념이 뒤섞여 있다. 캔버스에 유채, 150×180㎝, ⓒ웨민쥔·탕컨템포러리아트 제공.웨민쥔도 마찬가지였다. 비애감이 가득한 그 공기 속에서 황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진 것에 대한 그의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영혼의 정지상태’란 말로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다. 이후 평론가 리셴팅은 웨민쥔의 그림에 ‘냉소적 사실주의’란 적확한 이름을 붙였고, 웨민쥔을 필두로 한 이 경향은 1990년대 초중반 중국미술의 대표격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물론 웨민쥔의 웃음을 단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그림의 의미란 것이 원래 다양해야 마땅하기도 하거니와, 작가 자신조차 때때로 다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영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웨민쥔은 자신이 그린 웃음은 두려움과 의심을 완화하고, 새 시대에 대한 낙관을 의미한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앞선 해석과는 거의 정반대다. 당에 반대 의견을 강하게 표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불가능한 해석 또한 아니다. 낙담한 마음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웃음은 희망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니까. 웨민쥔은 이후 최근까지도 웃는 사람을 꾸준히 그렸다. 혹자는 이에 대해 자기복제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도상은 같을지라도 시대가 변한 만큼 그 의미는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중국은 톈안먼사태의 공황상태로부터 서서히 회복해 나갔다. 젊은이들도 절망과 낙담의 구렁텅이로부터 차차 빠져나왔다. 다만 그들은 더이상 ‘대의’에 목매지 않았다. 대신 ‘개인의 안위’가 최대 관심사가 됐다. 동시에 ‘돈’이 무서우리만치 절대적인 가치로 부상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의 도래였다. ◇‘웃는 얼굴’ 같아도 시대 변한 만큼 의미 달라져 이 시기 웃음에 대해 웨민쥔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한다. ‘세상의 가치’가 교묘하게 인간의 사고를 잠식하는 상황, 그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르면 행복한 줄 착각하는 동시대 중국사람들에 대한 풍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 메시지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우리 모두를 겨눈다. 혹시 무엇이 자신을 진정으로 웃게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온 세상이 외치는 것처럼, 돈이 많으면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걸까. 혹시 ‘부’가 ‘좋은 것’이라고 인식하도록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은 실은 그 조종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웨민쥔의 그림 속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 젖히면서. 웨민쥔의 ‘장미’(Rose·2020).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거치며 새롭게 탄생한 ‘웃는 얼굴’이다. 강요된 듯한 웃음이 만들어온 부자유스럽고 어색한 얼굴을 활짝 핀 꽃이 감추고 있다. “내 그림 속 인물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내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란 작가의 말 그대로다. 캔버스에 유채, 150×120㎝, ⓒ웨민쥔·탕컨템포러리아트 제공.2020년 3월, 웨민쥔은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웃는 사람의 얼굴 위로 꽃이 활짝 폈다. 팬데믹과 맞물려 새롭게 등장한 도상이다. 2020년, 세계가 코로나에 잠식됐던 때, 웨민쥔은 복잡한 베이징을 벗어나 한적한 윈난지방에 머물고 있었다. 우울과 불안에 잡아먹히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으로부터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 기운을 담아 화면 한가득 꽃을 그렸다. 이번 웃음만큼은 가식이 아닌, 억지웃음일지라도 희망을 피워내고 싶은 진심을 담은 듯 보인다. 노년에 접어든 화가는 이제 냉소 대신 희망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웨민쥔은 자신이 그리는 사람들이 곧 자신의 모습이자 친구의 초상이며, 나아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웨민쥔의 그림에는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는 톈안먼사태 직후의 절망감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희망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물질만능주의에 온 정신을 뺏긴 사람들이면서, 팬데믹 위기 속에 위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분명 1990년대 중국이란 특수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한 도상이지만, 삶에서 종종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두려움, 그럼에도 희망을 붙들고 위로를 찾고 싶은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바로 웨민쥔의 작품이 중국을 넘어 온세계의 공감을 얻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그릴 다음 시대의 초상 또한 기대하며 기다린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