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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작품의 근원은 사랑”…한강, 노벨문학상 강연[전문]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통해 지난 31년 간의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한강 작가는 이날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소설을 쓰며 삶에 대해 질문하고 통찰해온 시간들을 작가 특유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그는 약 30분에 걸쳐 미리 준비해 간 원고를 한국어로 읽어내려갔다. 한강은 “나는 쓰는 사람”이라며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고 했다.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어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란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다”며 “하지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다음은 한강의 강연 전문.빛과 실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그 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 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 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사랑이란 어디 있을까?사랑은 무얼까?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한 뒤 축하받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 김성주·채수빈, '2024 MBC 연기대상' MC 확정[공식]
- [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김성주와 채수빈이 ‘2024 MBC 연기대상’에서 MC로 호흡을 맞춘다.오는 12월 30일 방송될 ‘2024 MBC 연기대상’은 2024년 한 해, 시청자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선물했던 드라마 작품들을 돌아보는 자리다.올해 MBC는 ‘밤에 피는 꽃’을 시작으로 ‘세 번째 결혼’, ‘원더풀 월드’, ‘수사반장 1958’, ‘용감무쌍 용수정’, ‘우리, 집’, ‘나는 돈가스가 싫어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친절한 선주씨’, ‘지금 거신 전화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모든 작품 속 배우들이 모두 대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어 과연 누가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대상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김성주와 채수빈이 MC로 뭉쳐 신선한 케미스트리를 예고해 기대감이 높아진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줄곧 ‘MBC 연기대상’의 MC로 든든히 중심을 잡아 온 김성주는 이번 ‘2024 MBC 연기대상’에서도 탄탄한 진행 실력을 발휘하며 축제의 열기를 더할 예정이다.또한 ‘지금 거신 전화는’ 속 수어통역사 홍희주 역으로 매주 금, 토요일 밤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고 있는 채수빈은 ‘2024 MBC 연기대상’으로 데뷔 후 첫 MC에 도전한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진행자로 변신한 채수빈의 새로운 활약이 주목되고 있다.김성주와 채수빈이 이끄는 ‘2024 MBC 연기대상’은 오는 12월 30일 월요일 방송된다.
- ‘절’로 힐링할까…‘힙’한 템플스테이 모은 ‘절로 힐링’ 출간
-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 정도면 AI 수준이다. 여행전문기자 신익수가 또 책을 냈다. 이번 주제는 ‘템플스테이’다. 조용하고 경건한 주제인 템플스테이를 저자 만의 남다른 딕션과 글발로 독자를 템플스테이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요즘 가장 ‘핫’한 개그맨이라고 하면 ‘극락도 락(樂)이다’와 ‘부처 핸섬’을 외치는 뉴진스님이 아닐까. 그만큼 불교라는 종교와 사찰이 우리와 가깝다는 이야기다. 속세의 물건으로 가득 채운 여행 가방보다 작은 에코 백에 꼭 필요한 물건만 담아 가볍게 떠나는 사찰 여행이 요즘 2030세대, 즉 MZ 세대의 여행법이라는 것이다. 최근 템플스테이가 ‘힙’한 여행지로 주목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찰에서 보내는 쉼과 체험의 시간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트렌드에 아주 예민한 신익수 기자가 놓칠리 없는 아이템이다. 누구보다 발빠르게 150여가 넘는 전국 템플스테이 사찰 중 이색적이고 인기있는 프로그램 50개를 엄선해 ‘절로 힐링’(생각정거장)을 내놨다. 책에 소개한 프로그램도 신익수 기자다운 곳들이다. 딱 2시간이면 끝나는 초스피드 템플스테이부터 사찰 고양이와 함께하는 냥플스테이, 드넓은 잔디밭에서 반려견과 뛰노는 댕플스테이, 홍대 한복판 도심 속 템플스테이, 혼자 갔다 둘이 되어 돌아오는 솔로 탈출 템플스테이 등등. 사찰별 프로그램 주안점과 특징, 기본 정보(위치, 가격, 예약 방법 및 유의 사항 등)를 비롯해 관련 사진을 다수 담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여러 절을 순례하며 글을 써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각 사찰의 연혁과 역사를 두루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몸으로 체험하는 것을 넘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지적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며 “뉴진스님도 놀랄 힙한 곳부터 세계 기록 보유 사찰, 소원 명당, 스타들이 자주 찾는 사찰, 풍경 맛집, 사랑이 싹트는 러브 명당, 미스터리 사찰 등 취향 따라 떠날 수 있게 테마별로 구분했다. 차례를 보고 끌리는 곳이 있으면 지금 바로 신청하고 가볍게 떠나면 된다.”고 추천했다.
- [미식가의 세계⑪] 유배지에서 반찬 타령한 조선최고의 선비
- 조선시대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겸 음식문화평론가] 인류의 역사는 음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밥상은 이미 과거의 밥상이 아니다. 조선후기의 기록에 성인 남자는 7홉(약 420g)의 쌀로 한 끼 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요즘 공깃밥의 두 배 규모다.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 반면 돼지, 소, 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 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브로콜리, 셀러리, 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 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식기와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던 ‘추사 김정희’추사 김정희(1786년~1856년)는 그 역량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조선의 우뚝한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사구시를 주장한 학자이며, 화가, 금석학자, 시인, 전각가로 이름을 떨친 선비다. 그의 집안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벌족가문이었다. 증조모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였으니 왕실과도 혼맥이 닿아있고, 고조부는 영의정, 조부는 형조판서, 부친 김노경은 예조, 이조, 형조의 판서 등을 두루 지냈다. 추사는 요즘 말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던 셈이다. 게다가 그는 신동이었다. 추사는 젖을 떼자마자 심상치 않게 붓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그가 7살 되던 봄에 ‘입춘대길’이라고 쓴 휘호를 대문 앞에 붙여 놓았더니, 지나가던 영의정 채제공이 보고는 집에 들어와 대단한 솜씨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인의 영수이자 시파였던 채제공은 노론 벽파의 명가인 추사 집안과는 교류가 없었다. 그런데 불쑥 찾아온 그를 보고 놀란 추사 부친 김노경이 어쩐 일이냐고 연유를 물었다. 체재공은 “이 아이는 장차 명필로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팔자가 기구할 것이니 절대 붓을 잡게 하지 마시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대동기문’에 수록된 이야기인데 이 말은 훗날 그대로 적중한다.추사는 어려서부터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했던 실학자 박제가의 가르침을 받았다. 초정 박제가는 북학파의 영수 연암 박지원의 제자로 추사는 그들의 학통을 계승한다. 추사의 글씨는 자신의 타고난 재주도 재주지만 집안내력이 있는 것으로 증조부 김한신, 부친 김노경이 다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추사는 부친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809년 24세 때 동지사 겸 사은사의 부사로 연경(북경)에 가는 아버지를 자제군관의 직책으로 수행했다. 추사는 그곳에서 뛰어난 서예가이자 금석학의 대가인 옹방강과 역시 대학자인 완원을 만나 많은 배움을 얻고 자료도 기증받는다.추사는 그들을 흠모한 나머지 완원의 완자를 따 완당이라는 아호를 갖게 되고, 옹방강의 아호 담계에서 담자를 취해 보담재라는 아호를 얻었다. 훗날 추사학 연구의 권위자인 후지츠카 치카시는 이 세 사람의 만남이 청조학의 완성과, 조선으로의 유입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추사는 그 후에도 그들과의 꾸준한 교류와 연구를 통해 학문과 예술 모두에서 최고의 위치에 다가가게 된다. 그는 벼슬길도 순탄해서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형조참판에 올랐지만, 1840년 9월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돼 고초를 겪고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제주도로 가는 길에 추사는 오랜 벗 초의선사가 주지로 있는 해남 대둔사(지금의 대흥사)에 들린다. 그곳의 대웅보전에는 동국진체를 확립한 원교 이광사의 편액이 걸려있었다. 추사는 초의선사에게 그 글씨가 형편없다며 떼어버리라 하고는 새 현판을 써주고 떠났다. 추사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때의 이야기다. 심지어 전주를 지나면서는 지역 명필 창암 이삼만을 만나, 작품을 감상하고는 시골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다는 혹평을 해 그의 제자들에게 봉변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창암은 추사보다 16살 연상이었다.김치 모음 (한국관광공사)◇가혹한 귀양생활을 버티게 한 아내의 집밥추사의 귀양생활은 가혹했다. 제주도에서도 오지인 대정현에 위리안치됐다. 위리안치는 중죄인에게 내리는 높은 수위의 유배형으로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치고 지정된 곳 외에는 외출을 금하는 것이다. 추사는 병고도 많이 겪었지만 무엇보다 조악한 음식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예산에 있는 부인 예안이씨에게 한글편지를 써 반찬을 보내달라는 투정을 하기 시작한다. 추사는 부인에게 진장을 보내라, 김치를 보내라하다 젓무와 김치, 조기젓, 곶감, 겨자에다 귀한 어란과 민어까지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당시 사정으로 예산에서 제주도까지는 도착이 빨라야 두 달, 늦으면 6, 7개월도 걸렸다. 보내는 것도 힘들지만 보낸다고 성히 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물건을 받고 나서는 상한 것이 왔다고 불평 가득 담은 편지를 보냈다. 마른반찬은 괜찮지만 약식과 인절미는 상해서 아깝고 새우젓은 맛이 변했다고 투덜거렸다. 그런 철부지가 없었다. 그러기를 2년여, 추사는 제주도에서 19통의 편지를 아내에게 보냈다. 1842년 11월, 병중에 있으면서 묵묵히 뒷바라지만 하던 부인은 마지막 편지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추사는 밤새워 목 놓아 울었다. 그녀의 빈자리는 컸다. 추사는 부인을 추도하는 시에서 “내세에는 서로 바꿔 태어나/ 나는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가 나의 이 슬픔을 알게 했으면”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했다. 후대의 ‘언간학’ 연구자 김일근이 묘사한 것처럼 추사는 “대담 강직한 태음인”이면서도 “이지와 정감의 소유자”였다. 그때부터 추사는 모질게 마음먹고 현지에 적응해 나갔다.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그런 고난 속에서 그는 이른바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개의 붓을 닳게 하는 정진’ 끝에 추사체를 완성했다. 연암의 손자 박규수는 추사체를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하며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다”고 했다. 제자 이상적은 청나라에서 귀한 서책을 구해 그 먼 곳까지 꾸준히 갖다 줬다. 추사는 그의 신의에 대한 보답으로 세한도를 선물했다. 지금의 국보 180호이다. 추사가 좋아하는 차를 보내 주던 초의선사와 제자 허소치가 가끔 대정으로 그를 방문해서 위로해 주는 것도 큰 힘이 됐다. 추사는 이따금 초의선사에게도 부인에게 하듯 차를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제주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사재를 털어 백성을 구휼했다는 객주 김만덕의 미담을 듣게 된다. 그 선행에 감동 받은 추사는 ‘은광연세’라는 편액을 써서 그 후손에게 전하기도 했다. 은광연세는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퍼지다’라는 의미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추사는 달라지고 있었다. 1848년 12월, 8년 3개월에 걸친 긴 유배생활 끝에 추사는 풀려난다. 귀경길에 그는 대둔사에 다시 들러, 초의선사에게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떼라고 했던 원교의 편액을 다시 걸라고 했다. 전주에도 들러 이삼만에게 과거의 무례를 사과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추사는 서울로 돌아와 강상(지금의 용산)에 머물렀는데, 1851년 7월 예송논쟁에 휘말린 영의정 권돈인의 배후로 지목되어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된다. 권돈인은 추사의 친구였다. 66세 노구를 이끌고 떠난 귀양길은 그에게 형극이었다. 북청에서도 추사는 독서와 작품 활동, 그곳에서 많이 나오는 고대석기를 연구하는 일로 소일했다. 북청 유배는 이듬해 여름에 풀린다. 추사는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의 별서 과지초당에 기거하면서, 서화와 선학에 몰두하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살랐다.말년에는 봉은사에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즈음에는 음식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 ‘대팽두부’라는 예서대련을 남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大烹豆腐瓜薑菜), 최고의 모임은 남편과 아내, 아들, 딸, 손자와 함께하는 것이다(高會夫妻兒女孫).” 추사는 타계하기 사흘 전 봉은사의 현판 ‘판전(板殿)’을 썼는데 소위 큰 재주는 오히려 서투르게 보인다는 ‘대교약졸’의 상징적인 걸작이다. 추사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한 인간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술가다.
- '신랑수업' 김일우, 박선영과 핑크빛 "시집 못가면 나한테 와"
- [이데일리 스타in 김가영 기자] ‘신랑수업’ 김일우와 김종민이 1등 신랑감으로서의 매력을 뽐냈다. 4일 방송된 채널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이하 ‘신랑수업’)’ 142회에서는 김일우가 절친한 후배 연기자인 박선영과 성수동에서 만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김종민은 “여자친구의 생일상을 직접 차려주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심진화, 김가연의 도움으로 요리 수업을 받아 안방에 훈훈한 웃음을 안겼다. 이날 방송은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 시청률 3.1%(유료방송가구 전국)를 기록했다.서울 성수동에 나타난 김일우는 특유의 ‘꾸안꾸’ 패션으로 시선을 강탈한 채, 한 꽃집으로 들어갔다. 성수동에서 만날 여성을 위해 그녀의 ‘탄생화’로 꽃다발을 준비한 김일우는 “먼저 이덕화 선배님과, ‘신랑수업’ 선생님들이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찾으라고 하셔서 오늘 (그녀를) 한 번 찾아보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잠시 후, 한 공방에 도착한 그는 “오다 주웠다~”면서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건넸는데, 바로 배우 박선영이었다. 김일우는 박선영에 대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사이인데, 편하지만 가끔 둘이 있을 때는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라며 박선영의 작업실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박선영은 “가죽 공방에 왔으니까 함께 ‘키링’을 만들어보자”며 김일우에게 손수 앞치마를 매줬다. 이후 작업을 하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는데, 박선영은 “얼마 전 오빠를 방송에서 봤다”면서 “오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완벽한 남자?”라고 칭찬 했다. 또한 김일우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등 달달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일우 역시 ‘제너럴 P(박선영 이니셜)’라는 글자가 새겨진 박선영의 가방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는데, 알고 보니 ‘제너럴 P’는 김일우가 직접 지어준 박선영의 별명이었다. 당시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 박장군님~”이라고 살갑게 부른 김일우는 “요즘 근황은 어떤지?”라고 물었다. 박선영은 “축구를 하다가 다쳐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 뒤, “사실 혼자 살면서 남자의 존재(필요성)를 별로 못 느꼈다. 그러다 얼마 전 축구용 보온통을 샀는데 도저히 뚜껑이 안 열리는 거다. 그때,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일우는 “어딨어? 그 보온통!”이라고 받아쳐 박선영을 폭소케 했다.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김일우는 “혹시 이상형이 있는지?”라고 물었다. 박선영이 “기왕이면 운동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하자, 그는 “나도 골프를 좀 치다가, 요즘 허리가 불편해서”라고 덧붙여 이승철과 문세윤의 지적을 받았다. “허리 안 좋다는 얘기는 하지 말지”라는 조언에 김일우는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고, 박선영은 다시 “오빠도 구체적인 이상형이 있는지?”라고 궁금해했다. 김일우는 “나를 업고 응급실까지 뛰어갈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여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건 박선영밖에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 화답했다. 드디어 박선영과 강아지 커플 키링을 만드는 데 성공한 김일우는 근처 맛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 중 김일우는 박선영의 첫인상은 물론, 단둘이 처음으로 밥을 먹었던 일을 떠올렸고, “독신주의자는 아니잖아?”라며 슬쩍 속을 떠봤다. 박선영은 “아니다”라면서 “10년 후 쯤에는 결혼해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김일우는 “10년 후까지 (시집) 못 가면 그냥 나한테 와~”라고 박력 있게 외쳤고, 박선영은 “나 갈 곳 있다. 오빠한테”라고 유쾌하게 ‘접수’했다. 데이트 후, 김일우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농담으로 던진 말이지만, 선영에게도 내 마음도 작은 플러팅이지 않을까?”라며 수줍게 미소지었다.김일우의 성수동 데이트가 끝난 뒤, 이번엔 김종민의 ‘버킷리스트’ 도전기가 펼쳐졌다. 김종민은 “여자친구를 위해 해주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며 ‘직접 생일상 차려주기’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직후, ‘연애부장’ 심진화와 김가연을 찾아간 김종민은 여지친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결혼 관련 주제에 대해 심층 대화를 나눴다. 김종민은 “결혼을 결심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여자친구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라고 행복해했으며, 뒤이어 “사실 궁금한 게 있는데, 결혼할 때 집은 자가, 전세, 살던 집에서 합가 중 뭐가 좋은지?”라고 고민 상담을 했다. 김가연은 “굳이 처음부터 ‘자가’일 필요는 없다. 신혼이니까 둘만의 공간은 좁을수록 좋다”고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건넸다. 심진화 역시 “제일 중요한 건 경제권”이라며 서로의 다름을 잘 절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훈훈한 분위기 속 김종민은 “얼마 전 여자친구가 제 생일상을 차려줬다”면서 “저도 여자친구의 생일상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요리를 못 한다”고 고백했다. 김종민의 따뜻한 마음에 두 사람은 박수를 보낸 뒤, 황태 미역국과 명란 계란말이 등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좌충우돌 끝 김종민과 김가연은 명란 계란말이를 만들었고, 자신감이 차오른 김종민은 “앞으로 매년 미역국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심진화는 “혹시 나중에 2세가 태어나면, 누굴 닮았으면 좋겠냐?”라고 물었다. 김종민은 “눈은 나, 코는 여자친 구, 머리도 무조건 여자친구!”라고 답했다. 이에 심진화는 “여자친구도 예쁘던데, 본인 외모에 되게 자신감이 있나 봐”라며 놀렸고, 김종민은 “과거 댄서로 활동할 때, (잘생겨서 인기가) 장난 아니었다”라고 너스레를 떤 뒤, (나를 닮으면) 느낌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심진화는 “(여자친구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손편지가 있으면 더 감동적일 것”이라고 조언했가. 이에 김종민은 “제 여자친구도 제 생일 때마다 (손편지를) 써줬다”고 공감했다. 잠시 후 그는 “어설프지만 맛있게 먹어줘. 내년 생일에 또 해줄게~”라고 마음을 담은 첫 손편지를 써서, 스튜디오는 물론 안방까지 훈훈하게 만들었다.채널A ‘신랑수업’은 매주 수요일 오후 9시 30분 방송된다.
- 르노의 '소년가장'…전체 판매 5위 기염 '그랑 콜레오스'[타봤어요]
-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지난 9월 르노코리아가 4년 만에 출시한 신차 그랑 콜레오스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9월 9일 출고를 시작한 이후 11월 말까지 영업일 기준 54일 만에 누적 판매 1만5912대를 기록 중이다. 그랑 콜레오스는 11월에만 6582대 팔리며 국내 판매량 전체 5위, 하이브리드차 2위에 올랐다. 11월 국내 판매 10위권 중 현대차·기아 브랜드가 아닌 유일한 차다. 르노코리아의 ‘소년가장’이지만 남 부럽지 않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가솔린 터보 2.0’ 외관(사진=정병묵 기자)3일 그랑 콜레오스 가솔린 터보 2.0을 서울 성동구에서 시작해 강원도 홍천, 원주를 돌아 복귀하는 경로로 약 230km를 타봤다. 9월 출시한 하이브리드의 뒤를 이어 10월 말 선보인 가솔린 모델은 하이브리드에 뒤지지 않는 파워와 정숙함을 갖춘 차였다.그랑 콜레오스 가솔린 모델은 2.0리터 터보 직분사 엔진(최고출력 211마력, 최대 토크 33.1kg.m)을 탑재했다. 하이브리드 모델 대비 오르막에서는 다소 힘이 다소 달리는 듯 했지만 안정적 주행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차 내 진동 및 소음이 일반 가솔린차보다 덜했다. 하이브리드 모델과 동일한 저감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더블 밸런스 샤프트 모듈’을 이용해 엔진 진동을 두 개의 축으로 상쇄시켜 저속 주행 중 진동과 소음뿐 아니라 고속 주행 중 공명음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는 설명이다.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가솔린 터보 2.0’ 운전석 및 보조석 내부 모습.(사진=정병묵 기자)운전자의 선호에 맞춰 차량 성능을 조정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에코·컴포트·스포츠·스노·오프로드·인공지능(AI)으로 운전석 우측 물리키를 돌리면 편리하게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지난주 폭설로 아직 눈이 덜 녹은 강원 산간 국도 구간에서 스노 모드를 선택했는데 코너 주행감이 특히 안정적이었다. 다만 스포츠 모드는 급가속할 시 차체 진동이 다소 커 다소 불안정한 느낌을 줬다.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보조석 디스플레이 (사진=정병묵 기자)동승석까지 이어지는 대형 파노라마 스크린과 풍부한 인포테인먼트가 눈에 띈다. 앞자리에 운전석 클러스터와 센터, 보조석까지 총 3개의 디스플레이가 있다. 그랑 콜레오스에 적용한 ‘오픈알 파노라마 스크린’이다. 보조석 스크린은 주행 안전을 위해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도록 처리했다. 보조석 디스플레이에서는 동승자가 디즈니플러스·티빙·쿠팡플레이·왓챠·애플TV 등 OTT 서비스는 물론 네이버 웨일 웹 브라우저를 통한 유튜브, FLO(플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하면 운전자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 센터 디스플레이. “통풍 시트 작동” 음성 지시를 수행하는 모습. (사진=정병묵 기자)SK텔레콤 ‘누구(NUGU)’ 기반 음성인식 기능은 거의 오류가 없었다. 주행 중 “통풍 시트 켜 줘”라고 말하면 곧바로 통풍 시트가 작동했다. “서울 성수동에 도착하면 갈 만한 괜찮은 맛집이 어디지” 같은 다소 긴 문장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단순한 질문은 곧바로 알아듣고 수행했다. 넓은 외관에 걸맞게 내부 공간이 넉넉했다. 그랑 콜레오스는 패밀리카에 걸맞은 4780mm의 차체 길이에 2820mm의 동급 최대 휠베이스로 넉넉한 2열 공간과 동급에서 가장 긴 320mm의 무릎 공간을 확보했다. 트렁크 적재 공간도 넉넉하다.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2034리터(가솔린 모델 기준)까지 활용 가능하다.동급 차량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기술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응급 상황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운전자의 개입 없이 평행, T자, 대각선 주차 등 다양한 주차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풀 오토 파킹 보조 시스템’은 편안한 운행을 돕는다. 그랑 콜레오스는 초음파 센서(전방 4개, 후방 4개, 측방 4개), 카메라 4개(전후좌우), 컨트롤러 1개를 탑재하고 있다. 초보운전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기능이다.
- '신랑수업' 김종민, 결혼·2세 고민…"신혼집 몇 평이 적당할까"
- [이데일리 스타in 최희재 기자] ‘신랑수업’ 김종민이 결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사진=채널A)4일 방송하는 채널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이하 ‘신랑수업’) 142회에서는 김종민이 ‘여자친구의 생일 때 직접 생일상 차려주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연애부장’ 심진화, 김가연을 만나 요리 수업을 하는 현장이 펼쳐진다.앞서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싶다고 선포한 김종민은 이날 “최근 여자친구에게 생일상을 받았다”며 자랑한다. 그러면서 “저도 여자친구의 생일에 직접 음식을 차려주고 싶다”며 심진화와 김가연을 찾아간다.심진화는 김종민을 반갑게 맞은 뒤 “나도 시집가자마자 김가연 선생님한테 요리를 배웠다.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된 분에게 배워야 한다”라고 칭찬한다. 요리 시작 전, 김종민은 “몇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서 “혹시 결혼할 때 집은 자가, 전세 중 뭐가 좋나. 그리고 평수는 어떤 게 적당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김가연은 “집이 있어야 하긴 하지만, 굳이 처음부터 자가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혼이니까 둘만의 공간은 좁을수록 좋다”며 웃는다. 심진화는 “제일 중요한 건 경제권”이라고 조언한다.드디어 본격 요리 수업에 들어간 김종민은 ‘스승’ 김가연에게 명란 계란말이, 황태 미역국, 겉절이 만드는 을 배운다. 이때 심진화는 ‘흑백요리사’처럼 눈을 가리고 심사에 나서 웃음을 안긴다.심진화는 김종민에게 “나중에 아기 낳으면 누구 닮았으면 좋겠냐?”라고 슬쩍 묻는다. 김종민은 “눈은 나, 코는 여자친구, 머리도 무조건 여자친구 닮았으면 좋겠다”라며 웃는다. 심진화는 “여자친구가 무척 예쁜데, 본인 외모에도 자신감이 있나”라고 농담을 던지는데, 김종민은 “(나를 닮으면) 느낌이 더 재미있을 거 같다”고 답해 눈길을 끈다.‘신랑수업’은 4일 오후 9시 30분 방송한다.
- '강간 상황극' 나서 애먼 女 성폭행했는데 무죄, 지켜보던 그놈은? [그해 오늘]
-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강간 상황극’이란 말에 처음 본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에 대한 판결이 뒤집혔다.4년 전 오늘, 2020년 12월 4일 대전고법 형사1부 이준명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 등 혐의를 받는 오모(39)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사진=‘강간 상황극’ 사건을 재연한 E채널 ‘용감한 형사들2’ 방송 캡처오 씨는 2019년 8월 랜덤 채팅 앱에서 ‘35세 여성’이 “강간당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황극 할 남성을 찾는다”라고 올린 글에 관심을 보였고, 주소를 받아 해당 원룸에 강제로 들어가 안에 있던 여성을 성폭행했다.그러나 오 씨가 본 글은 남성 이모(29) 씨가 거짓으로 꾸민 내용이었다. 이 씨는 오 씨에게 자신의 집 근처인 세종시 한 원룸 주소를 일러주며 ‘35세 여성’이 그곳에 사는 것처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검찰에서 “이런 범행은 처음”이라고 할 만큼 전례 없었던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사게 된 건 1심 판결 때문이었다.2020년 6월 5일 대전지법 형사 11부 김용찬 부장판사는 오 씨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선고를 내렸다.이 씨 속임수에 넘어가 일종의 ‘강간 도구’로만 이용됐을 뿐 실제 범죄를 저지를 뜻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재판부는 이 씨에게 받은 주소가 존재했고, 찾아간 집에 사람이 있었던 데다 거주자(피해자)가 지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으며, 그 거주자가 여성이었다는 등 ‘이례적이고 우연한 사정들’이 결합해 발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오 씨는 112에 신고하려는 피해자 전화를 뺏기도 했는데, 경제적 이용·처분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신고를 막으려는 차원이었다는 취지가 인정돼 절도 혐의까지 벗었다.이 씨가 채팅 앱에 ‘35세 여성’처럼 꾸며 올린 글 (사진=E채널 ‘용감한 형사들2’ 방송 캡처)검찰은 “놀이, 상황극, 플레이라는 이름으로 오 씨에게 면죄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항소했다.특히 “피해자가 실제 상황극이라고 인식했다면 뭔가 연출하는 행동을 했을 텐데, 오히려 피해자는 겁에 질려 떨면서 크게 저항하지 못했다”고 반발했다. 오 씨는 키 190㎝에 달하는 거구로 알려졌다.사건 이후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피해자는 1심에서 오 씨가 무죄를 선고받자 항변하기 위해 용기를 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검찰은 법리 검토를 거쳐 오 씨에게 강간 혐의를 따로 추가했다.그로부터 6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오 씨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행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도 명령했다.항소심 재판부는 ‘강간 상황극’이라면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선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피해자가 주소를 알려줄 정도로 익명성을 포기하고 이번 상황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강간 과정에 피해자 반응 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을 거라 보이는데도 상황극이라고만 믿었다는 피고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이후 2021년 2월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오 씨 강간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오 씨를 유도해 애먼 여성을 성폭행하게한 이 씨 역시 징역 9년이 확정됐다.이 씨는 1심에서 오 씨를 도구로 이용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논리의 주거침입강간죄가 적용돼 징역 13년을 받았으나, 2심에선 미수죄만 인정돼 감형받았다.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강간 상황극 피해자를 특정한 이유’를 묻자 “딱히 없다”고 답했다.이 씨가 한 여성이 사는 집 현관문에 붙인 쪽지 (사진=E채널 ‘용감한 형사들2’ 방송 캡처)이 사건을 수사한 형사들은 2022년 10월 한 방송에서 “오 씨가 성폭행하던 도중 현관문 쪽을 바라봤는데 살짝 열린 틈으로 어떤 남자가 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니까 겁나서 도망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문틈에서 지켜보던 남성은 이 씨로 드러났다.탐문 수사 중 피해자와 같은 원룸촌에 사는 한 여성은 여행 갔다 돌아와 보니 현관문에 “맨날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던데”, “사진 몇 장 있는데 잘 볼게”라는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했다. 피해자도 출입문에 이상한 쪽지가 붙어 있길래 안 보고 그냥 버린 적이 있다고 경찰에 말했다.이 씨는 집 인근 주차 차량에서 다른 여성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뒤 20여 차례에 걸쳐 음란 메시지를 보낸 혐의(통신매체 이용 음란 등)로도 기소됐다.형사들은 “원룸촌 내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다 보니 옥상에 올라가면 누가 뭐 하는지 다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 씨는 틈만 나면 옥상에 올라가서 여성들을 지켜보면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고 설명했다.이 씨에 대해 “겉으로 보기엔 정말 평범했다. 직장도 멀쩡히 다니고 심지어 범행 당시 같이 사는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이에 경찰청 1호 프로파일링 마스터(범죄행동분석관) 권일용 교수는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이 빨리 시행됐다면”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스토킹 처벌법’은 2021년 시행됐다. 그동안 경범죄로 분류돼 과태료 10만 원 처분에 그치던 스토킹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 288g부터 기형아까지... 2만명 살린 기적의 공간
-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288g과 302g으로 태어난 건우와 사랑이부터 전 세계 단 6명만 진단된 선천성 소화기질환 신생아, 1030g으로 태어났지만 생후 5개월에 3.4㎏까지 자라 국내 최소 체중 간이식에 성공한 아이까지 그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던 작은 생명이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은 1989년 개원 이후 35년간 이른둥이와 선천성 기형을 가진 신생아 약 2만명을 치료했다고 3일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이병섭 교수(가운데)가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500g 미만 이른둥이 생존율 35%…日 어깨 나란히엄마의 뱃속에서 37주 이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일찍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의 ‘조산아’로 불린다. 과거에는 ‘미숙아’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표현인 ‘이른둥이’로 바꾸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의학적인 공식 명칭은 ‘극소저출생체중아(1500g 미만)’, ‘초극소저출생체중아(1000g 미만)’이다.이른둥이 및 신생아 중환자는 작은 몸집과 미성숙한 생리적 상태 때문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혈관이 작아 주사나 수술이나 투약 과정이 훨씬 까다롭고, 성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상황도 치명적일 수 있어 더욱 세심한 모니터링과 관리가 요구된다.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62병상의 신생아중환자실을 운영하며 의료진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연평균 출생체중 2000g 미만이며 35주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 또는 수술 등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 신생아 8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연평균 130명의 1500g 미만 이른둥이가 치료를 받는다. 이들의 생존율은 90%를 웃돈다. 이 중 1000g 미만 이른둥이도 연평균 약 60명으로, 85% 생존율을 기록 중이다. 이 중 출생체중 500g 미만인 아기들은 학계에서 용어조차 확립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드물지만, 최근 5년간 35명의 500g 미만 이른둥이 중 23명이 생존해 약 66%의 생존율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평균 생존율 35%를 크게 웃돌며, 세계적인 이른둥이 치료 선두주자로 알려진 일본과 유사한 수준이다.선천성 질환을 앓는 신생아도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입원하는 신생아 중 약 48%는 선천성 심장병을 포함해 위장관 기형, 뇌 및 척수 이상 등 선천성 질환이나 희귀질환을 동반한 경우가 많아 고도의 전문적 치료가 요구된다. 이중 1500g 미만 극소저출생체중아가 선천성 기형을 동반한 경우도 12%로, 국내 평균 4%의 세 배에 달한다.◇ 의료진 노력·다학제 협진 시스템 생존율↑이곳에는 선천성 기형을 가진 신생아들도 많다. 산부인과 태아치료센터를 통해 고위험 산모와 산전 기형 진단을 받은 태아들이 집중적으로 전원 되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른둥이 및 선천성 기형이나 희귀 질환을 동반한 신생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학제 협진 시스템을 운영하며, 신생아과 및 소아심장과 전문의 13명, 전문간호사 4명을 포함한 120여 명의 간호사들이 최적의 치료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신생아중환자실에 상주하는 전담 약사, 전담 영양사, 모유관리인력이 중증 및 희귀질환 신생아에 적합한 맞춤 진료를 제공하여 치료 효과를 더하고 있다.2021년 서울아산병원의 최저 출생체중인 288g으로 태어난건우의 생후 4일째 치료 당시 모습.(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1989년 18병상으로 시작한 이래, 점차 늘어나는 중증 신생아 치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꾸준히 병상을 확충해왔다. 2013년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1·2중환자실로 나눴고, 2018년에는 신생아과, 소아심장과, 소아심장외과, 소아외과가 함께 국내 최초로 신생아 체외막산소화술(ECMO) 전문팀을 운영하며 난치성 호흡부전 신생아를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2023년에는 이른둥이, 발달 케어, 외과질환 등에 따라 1·2·3중환자실로 세분화해 운영함으로써 맞춤형 신생아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소아 환자 치료는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위한 투자와 관심은 성인 환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병섭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고위험 신생아 치료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향후 더 아늑한 진료환경에서 가족중심 진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태성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장은 “신생아중환자실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이른둥이와 중증 신생아들이 건강히 성장할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작고 연약한 생명이 존중받고 건강한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세심하고 따뜻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 반백년 두 가정 두고 살아온 할아버지의 상속 고민, 결국[별별법]
- [배정식 법무법인 화우 수석전문위원]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는 계절 12월이 시작됐다. 한해를 돌아보면 늘 많은 일들이 있지만 다가올 2025년에는 우리의 삶이 더욱 건강하고 의미있길 기대해본다. 2025년은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해가 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1000만명을 넘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령화2017년 후반에 고령사회, 즉 65세 인구 비중이 14%를 넘었다며 곧 일본처럼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통계자료와 다양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의와 기사들을 본 것이 엊그제 같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이전되는데 각각 59년, 41년이 걸린 영국, 프랑스는 차치하더라도 23년, 12년이 걸린 미국, 일본보다도 빨리 7년만에 변환된다. 고령화 이면에는 급격한 변화와 격동이 자리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층 등의 고령층 증가와 의료기술의 진화 등의 단선적인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출산율이 0.7명으로 떨어진 급격한 저출산의 이슈도 우리가 함께 감내할 원인들일 것이다.고령화라는 구조변화 외에도 1인 가구의 비율 증가는 필연적으로 자산관리와 상속·승계 패러다임에도 큰 영향을 주며 다른 솔루션을 요구하게 된다. 일본의 국립사회보장 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0년에 일본 1인 가구는 35%를 넘고 70세 이상의 고령층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2023년 통계청 자료에서 우리나라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섰지만 앞으로도 1인 가구는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울타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각자만의 가구를 구성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 경제적 측면과 재산의 관리와 이전의 측면에서도 그 이유들 때문에 다양한 솔루션이 나와야 할 것이다.◇두 가정이 있는 80대 할아버지 사례소위 만석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교육도 많이 받아 정부와 공기업에서 근무 후 사업으로 큰 자산을 일군 김창수(가명) 씨.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살았지만 평생 마음에 담고 있던 고민을 해결하려고 한다. 젊은 시절 부모님이 맺어준 사람과의 배우자로서의 짧은 인연으로 아들도 두었지만,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정작 법적 배우자가 아닌 사실혼 배우자로서 가정을 꾸려온 지 반백년이 넘었다.현 배우자와도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건강이 나빠지며 병원을 찾는 일이 늘었고 배우자 관계정리와 양 집안의 자녀간의 재산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상속에 대한 자신의 계획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병의 악화로 거동조차 힘들어진 김씨는 남은 인생숙제를 100% 해결하지 못한 채 현 배우자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뜻만을 겨우 남겨 놓고 사망했다.김씨와 현 배우자를 몇 차례 상담하고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의 뜻을 남길 수 있도록 도와드렸던 필자는 김씨 사후에 법적 배우자의 상속분쟁 이슈와 상속세 신고 등 유산정리 업무 전반에 걸친 문제를 전문가들과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조정하고 풀어갔지만, 당사자들에게 몹시 힘든 시간일 수 밖에 없던 기억이 있다. 물론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만 있고 법정에 가면 모든 사람이 분쟁만 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씨와 같은 사유 때문에 재산문제로 고통을 겪는 많은 가정을 목도하면서 삶의 숙제는 돈이 많든 적든, 유명한 ‘셀러브리티’(인지도가 높은 유명 인사)든 평범한 가정이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혼과 재혼, 그리고 만혼, 비혼이 늘고 있는 우리사회의 결혼 문화의 변화는 단순한 상속 문제 외에도 양육과 친권, 그리고 이와 밀접한 경제적 문제로 인한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이혼과 재혼, 그리고 자녀 양육의 문제2023년 우리나라 이혼 통계자료에 의하면 연간 약 9만2000건의 이혼 절차가 진행됐다. 2022년 대비 0.9%정도 감소한 수치다. 결혼의 감소와 경제적 문제 등으로 그 이유를 찾기도 하고 앞서 김씨의 경우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분들도 그 중 일부일 것이다.이혼 평균연령은 남성 40대 후반, 여성 40대 초반이고 결혼 5~9년 사이가 18%를 차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이혼은 자녀를 위한 양육문제와 경제적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양육비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와 감치명령, 더 나아가 재산압류와 출국금지, 운전 면허 정지 처분까지 하도록 많은 규정들이 있지만 양육비 의무자 입장에서는 지급되는 금액이 클수록양육권이 있는 전 배우자에게 지급되는 재산에 대한 투명한 지급절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호소도 듣게 된다.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는 여하한 형태의 출산이든 그 출산이 축복이 되고 그 자녀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본 명제라 할 것이다. 가족제도의 새로운 개념과 버려지거나 비혼의 자녀라는 이유로 홀대되지 않도록 민간 영역에서의 새로운 기부제도의 등장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다음 회 ‘재혼가정 아버지의 고민…자녀들 위한 맞춤형 상속’으로 이어집니다.■배정식 수석전문위원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서울대 금융법무과정(신탁법 수료) △하나은행 론센터, 검사부 등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및 센터장 △(현)법무법인 화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