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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인터뷰)`자금운용 실전 20년 집대성` 김재철 상무
  • (edaily인터뷰)`자금운용 실전 20년 집대성` 김재철 상무
  • [이데일리 이진철 기자] "지난 97년 한보철강 부도이후 무보증 회사채 보유현황을 파악한 후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무보증 기아자동차를 매도할 것이냐? 아니면 만기까지 보유할 것이냐?` 라는 의사결정이었습니다. 국민기업인 만큼 부도를 내더라도 대통령선거 이후에 부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선거 이후에 만기가 도래하는 무보증 회사채만 매도하고, 그 이전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보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97년 7월 기아자동차가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됐지요. 이때 얻은 결론은 딱 한가지. `자금운용 의사결정 때 정치적 변수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김재철 NH투자증권 상품운용본부장(상무·사진)는 지난 20년 이상 기관자금 운용 담당을 맡으면서 느낀 교훈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은행 자금운용 담당자들은 항상 리스크는 낮고, 수익률은 높은 투자상품을 찾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답은 없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제2금융권 자금운용 담당자들에겐 이메일 통신을 통해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2005년부터 `김재철의 금융시장 리뷰`를 시작으로 최근 `여의도 통신`에 이르기까지 매일 아침 금융시장 관련 정보들과 전망을 정리해 지인들에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현재는 이메일 수신자가 4500여명에 달하고 있다. 김 상무는 `여의도 통신`의 발송작업을 위해 매일 새벽 5시 이전에 출근하는 것으로 회사내에서도 유명하다. 김 상무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모아온 자금운용 관련 자료와 경험담, 지역농협 여유자금 외부운용과정 강의원고, 각종 인터넷 자금운용 관련 기사들, 5년이상 지속해 온 `여의도 통신` 관련 자료들을 중심으로 최근에는 `실전 유가증권 투자(코리아본드웹 출판·사진오른쪽)`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론 위주의 서적보다는 자금운용 경험이 생생히 담겨있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자금운용 참고서를 쓰고 싶었고, 만 5년만에 비로소 작은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김 상무는 1997년말 외환위기와 이후 대우그룹 사태,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사태를 체험하면서 자금운용의 어려움과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이 컸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위기는 곧 기회`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체험했다. 그러나 기관자금을 운용하는 담당자 입장에선 `위기가 곧 기회`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돈이 아닌 기관자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책임 때문에 `베팅`을 할 수 없다는 것도 한계라고 말했다. 김 상무가 `실전 유가증권 투자`란 책을 집필하게 된 것도 이러한 자금운용 담당자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줘야 한다는 평소 지론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제2금융권 여유자금 외부운용 업무 담당자는 물론 은행권의 PB, FP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작은 꿈을 꾸게 됐다는 것. 따라서 책의 목차도 자금운용 일반, 채권의 이해, 실전 채권투자전략, 주식투자전략, 펀드투자전략, 파생결합증권투자전략으로 나누었고, 자금운용 실무담당자들이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통해 이론을 습득하도록 구성했다. 김 상무는 개인적인 견해로 올해 시장전망에 대해선 주식보다는 채권에 관심을 둘 것을 권했다. 주식시장의 경우 경기지표는 좋게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경기가 회복될 지는 아직은 불투명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내리는 응급조치를 취했는데, 이게 계속되긴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응급조치들이 정상화될 경우를 대비해 주식운용 담당자들은 올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채권시장의 경우 출구전략과 금리인상 이슈가 있지만 주식시장 보단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상무는 "경기회복의 연속성이 있지 않다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지 못할 것"이라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더블딥 가능성도 채권시장에 이슈로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같은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자금운용시장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오늘 현재 이 시각에는 이것이 정답이지만 돌아서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김재철 NH투자증권 상품운용본부장은 1960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해 87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후 농협중앙회 신탁부 신탁운용팀장과 상호금융자금부 투자운용팀장 등을 거쳤으며, IB사업부 부부장과 자금운용부 부장을 역임했다.
2010.02.03 I 이진철 기자
'천방지축' 김종국이 가수로 성공한 이유는?(인터뷰④)
  • '천방지축' 김종국이 가수로 성공한 이유는?(인터뷰④)
  • ▲ 김종국(사진=원오원엔터테인먼트)[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개인적으로는 터보 이절 이후 약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김종국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었다. 거칠었던 과거 모습과 달리 지금은 여유가 넘쳤다. 그의 20대를 아는 이들에게 김종국의 최근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과거 그는 늘 심각한 표정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까맣게 그을린 듯한 근육질의 겉모습 그대로 거칠고 어두웠다. 해묵은 시절 얘기에 김종국은 쑥스러운 듯 미소부터 지어보였다. "터보 때는 힘들었어요. 가수로 질풍노도의 시기, 말하자면 사춘기였다고나 할까요. 인생을 모르니 불안하고 여유가 없을 밖에요. 그룹 활동을 마칠 무렵이 거의 최악이었는데 가수생활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 어느 순간 철이 들데요. 사실 솔로 1집 때는 잘 안됐었잖아요. 그런데도 뭐가 늘 그리 좋고 행복했는지요. '한 남자' 부를 때 달라졌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는데 사람이 그런가 봐요. 생각이 바뀌면 표정 하나, 얼굴 생김새까지도 달라지는 거 말예요." 그는 터보시절 숨겨진 비화도 털어놨다. 2인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사실은 3인조 였다는 것. “데뷔 전 꽃미남이 한 명 있어야 한다는 소속사의 조언에 따라 3인조로 구성됐어요. 하지만 얼굴마담으로 마지막에 합류한 멤버가 저하고 정남이 형 얼굴을 보더니 다음날 ‘안 되겠다’며 자진 탈퇴를 했지 뭐에요. 어쩔 수 없이 2인조로 나서게 됐죠.” 김종국은 시간을 더욱 거슬러 올라가 데뷔 전 이야기도 들려줬다. 사고뭉치였던 그가 데뷔시절 안양에서 강남 사무실까지 두 시간 넘는 시간을 통학하면서 연예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형 때문이었단다. 효자였던 그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노래뿐이었던 것.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형과 비교되는 것이 싫어 가수가 됐어요.(김종국의 형과 형수는 현재 의사로 활동 중이다). 엄마에게 인정받는 아들이고 싶어 가수가 됐는데 그런 의미에선 일찍이 그 꿈을 이룬 셈이죠.” 그는 꿈을 묻자 ‘넘버원’보다 ‘온리원’ 같은 존재로 대중과 오래 호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가수에게 노래하며 늙는 것보다 더한 행운이 또 있을까요? 현역가수로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어요.” ▶ 관련기사 ◀☞김종국 "차태현 '아저씨', 난 '오빠'"(인터뷰③)☞김종국, '패떴'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인터뷰②)☞서른셋 김종국 "여섯 번의 사랑, 연예인도 있었다"(인터뷰①)☞'혼' 임주은, 김종국 '못 잊어' 뮤비 주인공☞김종국 정규 6집 '일레븐스 스토리' 27일 발매
2010.02.01 I 최은영 기자
서른셋 김종국 "여섯 번의 사랑, 연예인도 있었다"(인터뷰①)
  • 서른셋 김종국 "여섯 번의 사랑, 연예인도 있었다"(인터뷰①)
  • ▲김종국(사진=원오원엔터테인먼트)[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내 나이 서른셋, 여섯 번의 사랑, 열한 번째 음악 이야기…." 가수 김종국(33)은 투명한 유리병 같은 속내를 지녔다. 더하고, 빼는 법 없이 언제 어디서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사랑과 음악에서도 한결같다.  ◇솔담토크 1-“제 숨겨진 사랑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김종국은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에 잠시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조심스럽고 쑥스러운 듯 했지만 이야기에는 진정성이 묻어났다. 김종국이 데뷔 후 지금까지 만난 인연은 모두 여섯. 인스턴트 사랑은 체질에 안 맞아 모두 1년 이상 교제를 했고 그중에는 연예인도 있었다고 했다. 가장 오래 교제한 시기는 5년 남짓. 그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고 열정적이었다. 데뷔 16년간 거의 대부분 여자 친구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자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김종국은 "지금은 정말 여자 친구가 없다"고 웃으며 "이제는 결혼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형이 겉보기와 다르게 꽤나 수수하다. 동양적인 이미지에 통통한 몸매, 무엇보다 착하게 생긴 얼굴이 좋단다. "외모 상관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더니 "인형 같은 외모에 쭉쭉 빵빵 섹시 녀는 싫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꽤나 진지해 ‘푸훗’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은 동갑내기 ‘절친’ 차태현의 그것이다. 초등학교 친구와 결혼한 차태현처럼 오래도록 한결같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처럼 술, 담배를 멀리하고 자기 절제가 강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솔담토크 2-"축구 아닌 음악 일레븐스" 가수 이전에 남자로 진국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진정 어린 자세가 본받을만했다. 김종국은 결코 사람을 가볍게 사귀는 법이 없다. 한번 사귄 벗과는 평생을 가는 것도 특징이다. 그의 음악에 공감 가는 사랑 노래가 많은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게다. 그는 최근 솔로 6집 '일레븐스 스토리(Eleventh story)'를 펴냈다. 김종국은 '열한 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 아래 정확히 11곡의 새 노래를 담았다. 11이라는 숫자에 집착한 이유를 묻자 "이번이 가수로 꼭 11번째 앨범이어서"란다. 가수에게 앨범은 나이, 즉 연륜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10집은 더하다. 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랄까. 그런 점에서 그의 10집, 거기에 한 장을 더한 이번 앨범은 지난 시간 그가 해온 음악의 집대성이자 새로운 한 세기를 준비하며 또 한 발을 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앨범에서 김종국은 데뷔 후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나서는 도전을 했다. 처음으로 듀엣곡도 녹음해 선보였고, 밝고 산뜻한 느낌의 팝 댄스곡 '이 사람이다'와 흑인 음악 '못 잊어'로 더블 타이틀 곡 활동도 펼치고 있다. ▲ 김종국(사진=원오원엔터테인먼트)◇솔담토크 3-"걸그룹 대세, 나만의 색깔로 겨룰 것"  모두(冒頭)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음악은 솔직하다. 아이돌과 걸그룹이 강세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면승부를 택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컸어요. 걸그룹 주도 가요계에서 빈틈을 찾기가 무엇보다 쉽지 않았죠. 고민 끝에 대중이 좋아한 내 색깔을 찾아, 편하게 보여주자 했어요.” 그는 자신을 "대중가수"라고 소개했다. 대중가수는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고집하고 강요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중이 원하고 감동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 그의 꿈이자 한결같은 목표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불과 1~2년 지났을 뿐인데 대중의 평가 기준은 몰라보게 달라졌거든요. 보는 음악에 중독된 이들에게 듣기 위주의 내 노래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관건이었죠. 그래서 음반 출시가 늦어졌는데 지금도 문제에 딱 맞는 정답을 찾았다고 하긴 어려워요. 그냥 부딪혀 보는 수밖에요. 제 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예능 출연에, OST 참여, 앞으로는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음반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기 어렵다면 싱글도 낼 거구요." 다양한 시도들이 엿보이지만 이번에도 앨범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건 역시나 그의 개성 강한 목소리다. 가요계에 노래 잘하는 가수는 많다. 하지만 김종국처럼 남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목소리를 가진 이는 드물다. 때문에 그는 부침 심한 가요계에서 장수할 수 있었고, 여전히 현역 가수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며 산다. 가수 이전 인간 김종국은 대중에 더없이 친절한 그의 노래와도 일면 닮았다. 감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가 않는다. 기쁘고 슬프고, 때론 화도 났다가 이내 즐거워지기도 하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표정 가득 그대로 묻어난다. 방송 복귀를 앞두고 만난 김종국은 요즘 가요계에 어린친구들이 많아 걱정이라며 이런 소리를 했다. "얼마 전 (신)승훈이 형을 방송국에서 만났는데 사전 녹화 마치고 그냥 가버렸대요. 어린 후배들 보기 쑥스럽다고요. 저도 그럴 거 같아요.(웃음)"   ▲ 김종국(사진=원오원엔터테인먼트)▶ 관련기사 ◀☞김종국 "차태현 '아저씨', 난 '오빠'"(인터뷰③)☞'천방지축' 김종국이 가수로 성공한 이유는?(인터뷰④)☞김종국, '패떴'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인터뷰②)☞'혼' 임주은, 김종국 '못 잊어' 뮤비 주인공☞김종국 정규 6집 '일레븐스 스토리' 27일 발매
2010.02.01 I 최은영 기자
"종돈·종우 지켜라" 농가 구제역 비상
  • "종돈·종우 지켜라" 농가 구제역 비상
  • [조선일보 제공] 소·돼지 전염병인 구제역 발생에 축산농가들이 떨고 있는 가운데, 종돈(種豚)·종우(種牛) 업체들도 '방역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의 소독작업을 벌이고 있다. 종돈·종우란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우량한 품종의 수퇘지·수소를 말한다. 돼지고기 가공업체 선진은 충북 단양에 운영 중인 씨돼지 농장에 2~3중의 소독 방어막을 쳐놓고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막고 있다. 550마리 씨돼지가 살고 있는 농장으로 구제역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24시간 자외선 살균을 거친 물건만 농장 안에 반입된다. 농장 직원 10여명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를 하고 살균 의복을 입고 농장에 출입한다. 안경을 쓰는 직원은 농장 외부용과 내부용을 따로 사용할 정도다. 농장 내 직원식당에선 혹시나 구제역 바이러스가 묻었을 수 있는 육류는 꿈도 꿀 수 없다. 생선·참치캔과 익은 계란 정도만 먹을 수 있다. 이들에겐 별도의 격리 수당까지 지급된다. 이처럼 철저한 소독·방역을 실시하는 이유는 구제역에 감염되면 수십년간의 유전자 개량연구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씨돼지의 몸값은 일반 식용돼지의 2배에 달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용돼지가 마리당 25만원 안팎인 반면, 씨돼지는 마리당 50만원 안팎에 팔린다. 돼지의 구제역 전파력이 소에 비해 최소 100배나 크기 때문에 한번 감염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다는 점도 철벽 방역의 이유다. 농협중앙회가 1982년 설립한 국내 유일 한우개량기관인 충남 서산시의 한우개량사업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곳엔 종우 50마리와 종우의 정액이 냉동보관되고 있다. 전국 한우 암소의 98%인 130여만마리가 이곳의 종우 50마리에게 정자를 받아 수태를 할 정도로 국내 한우의 생산 중심지다. 만약 사업소 반경 500m 이내에 구제역이 발생하면 종우는 모두 살처분, 폐기해야 한다.
  • (미리보는 경제신문)韓·인도 교역 5년내 두배 확대
  •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다음은 1월26일자 경제신문 주요 뉴스다.(가나다순) ◇ 매일경제 ▲1면-집 안사고 전세대출만 늘어-쌀독 대문밖에 내놓던 선인들…-정부 일자리 창구 고용센터 플렉스타임 확산 교두보로-한국-인도 교역 5년내 두배 확대-G20 서울 정상회의 11월 중순 유력▲트렌드-스마트폰 나눠주는 기업 "모바일로 업무 혁신하라"-ADB부총재 한국 몫될까-한전 청년인턴 1635명 뽑는다'-황금보다 백금 수요 늘고 상승여력 높아▲종합 -모건스탠리 자회사 분리 추진 골드만, 상업은행 매각 나설듯-MB, 오바마 금융규제에 난감-오바마發 이머징마켓 돌발 충격▲종합 -세종시 `3차례 전쟁` 관전포인트-1년 반만에 나온 `뉴민주당 플랜`▲경제 종합-`담합` 수렁에서 방향 잃은 공정위-정부 스마트그리드 로드맵 확정 일자리 해마다 5만개 만든다-경제위기로 결혼 줄고 이혼 늘어-탄력근무제 덕분에 출근전쟁 사라졌죠▲기획-美금융권 `대마불사` 깨지지 않으면 위기 언제든 재발-40주년 다보스포럼 내일 개막 올 화두는 금융개혁·중국 경제▲국제-오바마, 루스벨트 닮은꼴-오바마 대통령 내일 연두교서 1750억달러 2차 부양책 발표할듯-구글 창업주 55억달러 주식 매각▲금융·재테크-은행권 사외이사 `최대 물갈이`로 이어질듯-카드사 지난해 `대박` 금융계 카드분사 움직임 빨라질듯-실손의보 지고 연금저축 뜨고▲기업과 증권-CJ 창사이래 최대 투자-최태원·김승연 회장 다보스 찾는 까닭은?▲기업·경영-중견 IT서비스 기업 "우리도 CIT"-철강가격 인상 현대제철 철근 t당 5만원 올려-LS산전, 광명경전철 수주-삼성 설 앞두고 성과급 1조 푼다▲유통-소주가 음악듣고 산소 마시고-신세계백화점, 천안점 문연다▲기업과 증권-시장 매입보다 청약이 낫다-S&T대우·중공업 영업이익 `껑충`▲기업과 증권-우리투자證-인도 금융사와 5억弗 펀드-펀드당 면허세 4만5000원씩 내라니…-몸집 커진 아·태 증시 전세계 시가총액 30%-코스피 14P 밀려 올해 최저▲부동산-전세금 싼 대단지 새 아파트 어디?-오피스텔 매매가도 꿈뜰-세종시 땅 10년내 팔면 차익환수◇ 서울경제 ▲1면 -통신, 이종산업 만나 `脫통신` 가속-지주사 회장·이사회 의장 겸임 우리금융 "겸직하겠다" 신한·하나 "지켜 보자"-소주업체 담합 공정위, 내주 제재-금호산업에 2000억대 신규지원 -한국 원전·일관제철소 印度 건설 논의▲종합 -현대·기아차 혼류생산 늘려 유럽 공략 가속-오바마 금융개혁안에 월가 반격 나서나-`하나로` 세계 최고 연구용 원자로로 우뚝▲해설-FRB "긴축전환은 아직…" 금리 동결할듯 -"엔화강세·물가하락 대응" 추가 유동성 공급 검토-中 당국 자본확충·통화긴축 조치로 은행 전환사채발행·증자 잇따라-韓銀 `기준금리 상반기까지 동결`에 무게▲종합 -신성장동력 펀드 최대 2조로 늘린다-민간에 원형지 공급 근거 마련-재정부 인사 서서히 윤곽▲종합-"e페이퍼 등 컨버전스가 미래 좌우" 적과의 동침 나서기도-2030년까지 27조5000억 투입 전기차 충전소 2만7000곳 구축▲한-인도 정상회담 -2014년까지 교역량 300억弗로 키운다-"CEPA는 양국에 기회" 李대통령, 韓·印 경제인 만나 협렵확대 주문▲기획 -삼성 휴대폰·LG 가전·현대차는 인도 중산층 `富의 상징`▲금융-지배구조 변화 불가피…CEO거취 주목-금감원, 올부터 대형은행 해마다 검사▲국제Ⅰ-美 헤지펀드들 속속 `독립 채비`-"中 위안화 5%이상 전격 절상 할수도"-美·中 `구글발 사이버전쟁` 전면전 양상▲국제Ⅱ-지구촌 곳곳 기상재앙…"수십년내 환경 난민 1억5000만명"▲산업-현대家 `상선 경영권 대결` 재연되나-삼성, 태양전지 기판유리 만든다-CJ, 올 1조 2537억 투자 `사상최대`-두산重, 1조2000억원 印 발전소 수주▲산업(정보기술)-"통신업계, 해외시장 적극 개척을"-온라인게임 시장쟁탈전 불꽃튄다▲산업(중기·벤처)-`휴대용 집 지킴이` 세계서 러브콜-LS산전, 광명경전철 사업 수주▲산업(생활)-아웃도어와 막걸리의 `랑데부`-롯데백화점 올 MD전략 `두토끼 몰이` "20대 타깃 상품·콜래보레이션<협업> 강화"▲증권-수출株 당분간 `환율 수혜` 예상-정책테마株 급등락 주의보-CJ CGV, 겹호재 타고 4%대 올라▲증권Ⅱ-한국 증시 시총 세계 13위▲증권Ⅳ-온라인 게임주 여전히 `매력적`-"대한항공 올해도 영업익 고공비행"◇ 한국경제 ▲1면 -위기의 와이브로…스마트폰 시대에도 뒷전-문화·서비스 부문에 CJ, 올 5700억 투자-韓·인도 교역 2014년 300억弗로 늘린다-은행 이사회 의정 매년 선출-삼성·LG 교차 구매 확대 LCD장비도 곧 계약-두산重, 인도서 1조2천억 수주▲종합-법인 아닌 펀드에 "면허세 내라" 논란-신종플루 백신 500만명분 남아돌아 `접종 세일`-모든 신출 건물 耐震설계 의무화한다▲종합·해설-원형지 10년내 팔면 차익 환수-노동계 "상급노조 파견자 無賃 대상서 빼야" 정부 "국제 관행에도 없는 무리한 요구"▲종합-`전략적 동반자` 한국-인도…IT·원전·방산 전방위 협력-`스마트 그리드`에 20년간 27조원 투자▲경제-신한·하나금융 `비상`…이사회 의장 분리 나설 듯▲금융-금감원, 때 아닌 소통강화…금융사 대상 설명회-예금 하나마나…실질금리 `제로`-하나은행, 수수료 확대 `잰걸음`-삼성카드 작년 당기순익 껑충 6038억▲산업-통신3社 CEO "휴대폰 보조금 경쟁 자제하겠다"-철광석값 급등…철강제품 줄줄이 오른다▲산업 종합-네이트 급부상…검색시장 지각변동 예고-LS산전, 광명 경전철사업 수주▲중기 과학-안전성·경제성 높인 신형 핵연료 개발-천연 비타민 日 이어 세계시장 `노크`▲생활경제-"영지버섯·자라·로열젤리는 건강식품 아니다"-2000억 책가방시장 `신학기 결투`▲부동산-2월11일 양도세 감면 `막차` 임박…집 서둘러 사둘까▲부동산-강남과 `딴판`…남양주·고양·광명 전셋값 `뚝`▲증권-방산 등 `신성장 정책테마주` 조정장서 꿋꿋 -코시프 `美·中외풍`에 올 상승률 반납▲증권-"펀드 옮기는데 2시간…판매수수료 비슷" 아쉬움-우리투자證, 인도 금융사와 5억달러 펀드 조성▲펀드·증권-글로벌 금융주펀드, 美악재에 속탄다-IR 우수기업 수익률 20%이상 높다-기관 "중국계 상장사 실적 좋다" 러브콜
2010.01.25 I 김영환 기자
  • 피겨 여왕 김연아, 글도 잘 쓸까
  • [조선일보 제공] '피겨 퀸' 김연아(20·고려대)가 직접 쓴 에세이집이 나온다. 오는 28일 출간을 앞두고 21일부터 온라인 예약판매 되는 이 책 제목은 '김연아의 7분 드라마'(중앙출판사·1만5000원).'7분'이라는 의미는 피겨 스케이팅 경기의 쇼트 프로그램을 연기하는 2분 50초와 프리 스케이팅의 4분 10초를 합친 시간이다. 김연아는 이 책에서 자신을 "피겨 스케이팅 세계챔피언이지만 '자유'와 '평범'을 꿈꾸며 단순하고 쿨한 O형에, 안 먹는 거 빼곤 다 잘 먹는 꿈 많고 소탈한 스무 살의 피겨 스케이터"라고 소개했다.출판사측은 김연아가 피겨를 처음 시작한 7살부터 다음 달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깔로 친구에게 얘기하듯 솔직하게 담아냈다고 전했다. 초등학생 시절 국내 대회를 휩쓸며 신동 소리를 듣고, 12살 무렵 5가지의 트리플(3회전) 점프를 마스터했던 김연아. 하지만 부상 등으로 10대에 이미 두 번이나 은퇴를 고려했을 만큼 시련도 많았다. 이 책엔 김연아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뒷얘기들이 담겨 있다. 김연아가 시즌별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음악을 고르고 안무를 하였는지, 경기 전후의 심정과 당시 상황들은 어땠는지도 선수 특유의 발랄한 말투로 그려졌다. 훈련을 마친 매일 밤 일기를 쓰듯 자신의 기록들을 정리했다고 한다.김연아는 책 속의 부록인 '집중 인터뷰-연아의 스무 살 스케치'를 통해 "내 편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에 대한 팬의 궁금증에도 솔직하게 답변했다. 좌우명은 'No pain, no gain(고통 없인 얻는 것도 없다)'이라고 소개했다.
개인 쇼핑몰, 브랜드로 성공할수 있어
  • 개인 쇼핑몰, 브랜드로 성공할수 있어
  • [이데일리 EFN 강동완 기자] “개인 쇼핑몰도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 줄 겁니다.” 여성의류 전문쇼핑몰 블럼(www.blum.co.kr)의 성의석 대표(33)는 자신 있고 분명한 어조로 쇼핑몰 창업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블럼을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온라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이 성 대표의 계획이자 꿈이다. 패션회사에서 여성의류 기획MD로 7년 근무한 성 대표는 온라인 쇼핑몰도 브랜드몰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 들었다. 직장에서의 경력 역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남들보다 늦기는 했지만 온라인 쇼핑시장의 꾸준한 성장도 창업을 하는데 분명한 이유가 됐다. 우선 지인의 권유로 오픈마켓에서 제품 구입과 자체 제작을 병행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철수했다. 성 대표는 “브랜드나 스타일 보다는 가격 중심으로 움직이는 오픈마켓의 특성과 고객의 기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실패의 원인을 밝혔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작년 5월 케이블 방송의 신인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런웨이코리아 프로젝트)을 통해 알려진 최혜정(29)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성 대표는 자신의 구상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최 디자이너 역시 ‘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저렴한 옷만 팔아야 되나’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백화점 수준의 품질을 가진 옷들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그 해 8월 카페24(www.cafe24.com) 솔루션을 통해 쇼핑몰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블럼의 브랜드화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자체 제작 비중은 40%에 달했다. 올 상반기까지는 절반 수준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최 디자이너는 “고객들에게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좋은 품질의 고급스러운 옷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블럼’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성 대표 역시 “자체 제작의 경우 재고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3명의 디자이너가 블럼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럼은 20~30대 여성을 주요타깃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화 전략은 홈페이지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성 대표는 높은 품질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홈페이지도 시각적 요소를 강조했다. 패션은 옷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파는 것이라는 게 평소 생각이다. 그래서 홈페이지에서도 브랜드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품 이미지 역시 모델 컷 대신에 제품 컷을 사용해 마치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제품 마다 스팀 다림질과 태그 부착, 고급스러운 포장 등을 통해 매장에서 직접 구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직 창업 초기이지만 브랜드화 전략의 성과는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회원규모는 적지만 월 매출은 억대를 기록할 정도로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최 디자이너의 감성과 성 대표의 실무능력이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백화점 고객도 블럼의 단골이 될 정도로 디자인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성 대표는 올해를 블럼의 성장기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자체 제작시스템을 확고히 구축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힘을 쏟을 방침이다. 매출은 전년 대비 50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브랜드가 정착되면 국내 시장 보다는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성 대표는 “앞으로는 나만의 개성, 희소성 등을 강조하는 구매 패턴으로 인해 자체 제작 상품을 찾는 고객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컨셉트가 명확하지 않으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2010.01.20 I 강동완 기자
(Zoom-in 증권가)`한우물만 파는` 강명자 지점장
  • (Zoom-in 증권가)`한우물만 파는` 강명자 지점장
  •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솔직히 여러 군데에서 스카우트 제의 많이 받았는데 한 번도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원래 한우물만 파는 성격이라 정중하게 거절했죠" 남자 못지 않은 의리를 자랑하는 이 여성은 바로 강명자 골든브릿지증권 일산 지점장(사진)이다. 골든브릿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려증권에 입사해 명동지점에서 증권맨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려증권은 외환위기때 부도처리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중견 증권사로 고려금융그룹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여직원들에게는 치명적인 사규가 있었으니 바로 결혼하면 퇴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93년 결혼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낸 강 지점장은 이듬해 기혼자를 받아주는 상업증권에 입사했다. 그 이후 대유증권에 합병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대유리젠트증권, 리젠트증권, 브릿지증권, 골든브릿지증권으로 회사는 여러 번 변신했지만 강 지점장은 그 역사를 지켜보며 항상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nbsp;이렇게 부침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지점도 50여개에서 11개로 줄었다. 회사는 올해 초 그중 한 지점을 강 지점장에게 맡긴 것이다. 그동안 강 지점장이 보여준 성과를 믿었기 때문이다. 일산지점장으로 옮기기 전 금호동 지점에 있을 때 1년 가까이 매달 100억원 가량의 약정을 했다. 늘 약정 1~3위에 들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실적이 저조한 일산 지점을 맡겨볼만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적이 좋았던 것은 좋은 고객을 만난 덕이라며 고객 덕으로 돌린다. 강 지점장은 "무리한 대접을 요구하기보다는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며 "투자한 주식에서 손실이 나도 마음 써주고 같이 속상해 해주면 고객들이 오히려 위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소액투자자들을 공략한 것도 강 지점장의 전략이었다. 거액 자산가들만 계좌관리서비스를 받으라는 법도 없고, 티끌 모아 태산이기도 했다. 그는 "소액 투자자들은 남성 직원에게 가는 것을 꺼린다"며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이런 소액투자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의 영업력에 밀려 속상했던 적도 많았다. 기억에 제일 남는 고객 중 하나도 자산이 50억원대였던 일식집 사장이다.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매일 일식집에 가서 사비로 1인당 20만원 가량하는 회를 사 먹는 등 정성을 들인 결과 성공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다른 대형 증권사로 옮겨갔다. 강 지점장은 "섭섭했지만 다른 면에서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대형 증권사로 간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며 "지금도 가끔 안부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한번 고객이었으면 떠나도 영원한 고객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의리에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 때문에 강 지점장을 믿고 계좌를 맡긴 고객이 상당하다. 금호동 지점에서 강 지점장을 따라 일산 지점으로 온 고객도 50명 정도 된다. 금융위기 때에도 무리하게 매매하기 보다는 고객들의 자산 중 일부를 현금화하는 등 자산관리에 치중하면서 무사히 넘겼다. 그래도 워낙 증시 하락폭이 컸던 만큼 피해 갈 수 없었던 손실에 대해서는 수시로 분석 보고서와 메일을 보내면서 언젠가는 회복될테니 기다리자고 고객들을 설득했다. 강 지점장은 "회사 입장에서야 매매를 많이 하는 것이 좋지만 자산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2008년 10월부터 3개월 정도는 매매보다는 고객관리만 했다"고 말했다. 주가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고객들의 신뢰는 더욱 높아졌고 강 지점장의 더욱 확실한 고객이 된 것이다. 강 지점장의 꿈은 여성 직원들로만 꾸려진 여성화 점포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성이 갖고 있는 부드러움과 꼼꼼함을 영업에 접목시키면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0.01.19 I 권소현 기자
  • [최익성의 저니맨⑩]실패에 움추린 나를 발견하다
  •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2004시즌이 끝난 뒤 최익성은 삼성에서 방출된다. 그에게 손을 내민 팀은 SK. &nbsp;그러나 최익성은 의외의 제안을 한다. 계약하기 전 팀에 합류해 테스트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방출 선수가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nbsp;혹자는 최익성의 괜한 오만과 고집이라 비웃었다. &nbsp;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절박함의 다른 표현이었다. 자신이 정말 필요로 하는 팀에서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의 누적된 상처가 그를 힘겹게 몰아부쳤다. &nbsp;다만 그는 대화법이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도 몰랐다. &nbsp;현대로 옮겨가면서 난 사람들에게 "언제 또 옮겼냐"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내 이미지가 형성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첫해는 꽤 괜찮았다. 운동장에 있는 자체가 즐거웠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 난 좌투수 전문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우완 투수나 언더핸드 투수에겐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선을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전혀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상황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꼭 다시 한번 운동장을 미친 듯이 누벼보고 싶었다. 2002 시즌이 끝난 뒤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2003년 스프링캠프 부터 또 불길한 조짐이 보였다. 내 타격폼이 또 문제가 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코치님으로부터 타격폼 수정 지시가 내려졌다. 난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조금만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만해도 그런 내 스타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속 시원히 남자답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2003시즌은 그렇게 시작했다. 역시 출발은 좌투수 전문 타자였다. 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부상이 먼저 발목을 잡았다. 시즌 초 잠실 경기였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공을 잡기 위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펜스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끝까지 가면 공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펜스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망설이지 않았다. 펜스를 향해 돌진했다. 내 야구는 그런 것이니까. 공은 잡았지만 무릎을 다쳤다. 결국 난 2군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1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군에선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부름을 받지 못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둔 연습경기서는 9타수 7안타를 쳤지만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렇게 현대와도 이별이었다. 이번엔 친정팀 삼성에서 연락이 왔다. 단장님까지 직접 연락을 해오셨을만큼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삼성에서도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난 다른 선수들과는 출발부터 다른 선수다. 아마추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입단했던 선수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순 없었다. 내 타격폼이 교과서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폼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버텨왔다. 그러나 훈련이 시작되면 늘 그 폼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내겐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실패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주위에선 이런 조언을 했다. 감독님이나 코치님 앞에서만 하는 척 하다 경기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고. 그러나 난 그런 융통성도 기본기도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방식대로 인정받는 것 뿐이었다. 다시 시작된 대구 시절은 날 지치게 했다. 다들 날 오뚜기라고 했지만 좌절 또한 컸다. 그때 홀로 술 먹는 법을 배웠다. 술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바닥까지 추락해봐야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먹는 것 하나까지 신경쓰며 야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삶에 지칠때면 한번쯤은 술에 기대기도 했다. 그렇게 한번 쓰러지고 나면 난 다시 그 친구(술)를 멀리한 채 야구에 전념했다. 2004년이 그렇게 흐르고, 코치님들은 내게 1년 더 뛸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는 내가 아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난 방출을 원했다. 지난 1년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난 또 방출선수가 됐다. 이젠 정말 날 원하는 곳에서 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SK에서 연락아 왔다. 더 이상 그런 전화가 기쁘지만은 않았다. 난 구단에 테스트를 제의했다. 그저 선수 한명을 뽑아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걸 직접 보고 판단해주길 바랬다. SK 구단에선 황당해 하면서도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난 영입 제의를 물리치고 테스트를 자청한 뒤 입단한 첫 방출 선수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안고 SK에 입단했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해 겨울 SK는 KIA에서 박재홍을 영입하고 FA로 팀을 떠날 예정이었던 조원우와도 계약을 하게 된다. 한순간에 외야가 포화상태가 됐던 것이다. 시범경기서 난 9타수 5안타 2홈런의 맹타를 휘둘렀고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다.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10타석 만에 2군으로 내려가야했다. 그리곤 2군과 1군을 오가는 날들이 계속됐다. 어김없이 부상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절대 휴식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날, TV 하이라이트 속에 비친 날 볼 수 있었다. 내 스윙이 아니었다. 거칠지만 호쾌하던 스윙은 온데 간데 없고 한없이 작아진 날 볼 수 있었다. 계속되는 타격폼 수정 지시에 반발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폼이 작아졌던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내가 돼 있었다. 난 다음날 경기가 기다려졌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법도 찾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난 삼성 전병호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고 다음 경기서도 또 홈런을 쳤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홈런 한방을 또 때려낸다. 추석 연휴, LG전이었다. 1-3으로 뒤진 9회말 2사 1,2루. 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는 김민기. 난 바깥쪽 승부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바깥쪽 커브가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방망이가 나갔고 손목이 가볍게 돌아가는가 싶더니 공은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끝내기 스리런 홈런. 완전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던 한방이었다. 결과적으로 난 2005년이 끝난 뒤 SK에서 다시 방출된다. 코치님들로부터 절대 방출은 없다는 약속까지 받았었지만 끝내 방출됐다. 그것도 모든 팀들이 전력 보강을 마친 11월31일에. 며칠 뒤 민경삼 당시 SK 운영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도 날 많이 챙겨주셨던 분이다. 내가 트레이닝 파트에 노하우가 있으니 관련 준비를 하고 있으면 코치로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고마웠지만 거절했다. 학연도 지연도 없는 놈이,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코치를 할 수 없게될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난 야구 선수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다시 내 감각을 찾은만큼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 앉게됐지만 포기는 없었다. 날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 최향남과 함께 화악산에 들어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2010.01.18 I 정철우 기자
  • (VOD)리더스 클럽 `김밥파는 CEO 김승호의 자기경영노트` 外
  • [이데일리 신욱기자] &nbsp;앵커: 한 주동안 새로 나온 서적과 출판계 움직임 알아보는 리더스 클럽 시간입니다. 영풍문고의 북 마스터 박근용 팀장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질문1> 오늘 첫 번째 책 알아 보죠. 자기 계발서군요?1. 김밥파는 CEO 김승호의 자기경영노트 저자 : 김승호/ 출판사 : 황금노트 <답변> 저자는 《아들에게 주는 26가지 지혜》라는 익명의 글로 인터넷에서 유명 인사가 된 인물이자 《김밥 파는 CEO》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하고는 동업하지 말거라.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너는 항상 내 아내인 엄마를 사랑해라. 그러면 너의 아내가 나의 아내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너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친구가 되거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것 같으면 아버지를 택하라. 친구는 너 말고도 많겠지만 아버지는 너 하나이기 때문이다.”이런 조언들을 하고 있습니다.미국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해 김밥 하나로 700억 원대의 기업체를 일군 신화의 주인공, JFE사&nbsp;CEO 김승호가 기적 같은 성공의 노하우를 담은 책입니다. <질문2> 저자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책의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답변> 저자의 글은 지금도 수십만 개의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에서 인용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가슴 한켠이 따스해지고 새로운 도전 정신이 샘솟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불가능에 끝없이 도전하고 행복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진정성이 곳곳에서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힘든 일상에 휘둘리다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그러나 소중한 지혜들로 가득한 그의 메시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과 비즈니스맨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희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질문> 신화적인 인물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고요. 다음 책 알아 볼까요?2. 독립군 골드미스 홍병장의 독립만세 저자 : 홍경미 / 출판사 : 랜덤하우스 <답변>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병 여성 vs 나이와 경력이 만만치 않은 사회 고참 직장여성. 결코 없을 것 같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아직 미혼에다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독립은 꿈으로만 꾼다는 것! 이쯤 되면 나이가 많다거나 경력이 높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하기가 껄끄러워집니다. 생활인으로서는 사회 신참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기고, 회사 내에서는 커리어를 제대로 쌓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집에서 해주는 음식만 먹고, 잠만 자고 나오는 키덜트 미스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 그녀들에게도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질문>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신체적인 나이만 성인이지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저자가 커리어 우먼으로서 성장해 가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담고 있군요?<답변> 이 책은 바로 그런 입장에 있었던 저자가 독립을 감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지식들을 담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생활인으로서의 단순한 독립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서, 직장 내에서 그리고 결혼이란 글자 앞에서 오롯이 독립심을 갖고 일을 해나가는 멋진 커리어우먼의 생활 노하우를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독립이 함께 해야 경제적인 독립도 그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무수한 광고를 제작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광고대행사 ECD의 자리에까지 오른 홍경미 국장. 결코 쉽지 않은 ‘사회 전투’들이었지만 홍병장, 홍마녀, 홍고집, 홍여사 등의 수식어를 훈장으로 달아가며 멋지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그녀도 생활인으로서는 완전 초보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집에서 나와 혼자 살 집을 구하고, 혼자 생활하고,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과 선택, 그리고 독립과 성공에 대한 의지가 이 책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질문> 마지막 책 알아 보겠습니다. 제목이 독특하군요? '이중세뇌' 무슨 뜻이죠?3. `이중세뇌` 저자 : 이소무라 다케시/ 출판사 : 더숲 <답변> 지난해 출간되서 일본에서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바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담배, 알코올, 다이어트, 인터넷게임, 섹스, 일 중독, 사이비 종교 등에 세뇌되어 그것에 의존하는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책으로, 일본에서는 출간 즉시 언론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의학박사이자 메디컬 코치, 의존증심리학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지난 5년간 최첨단 뇌과학을 연구하고 수많은 임상치료를 거쳐 현대인의 수많은 의존증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질병에 관한 책인군요. 책 내용을 좀더 자세히 알아 볼까요?<답변> 네, 의존에는 ‘신체적 의존’과 ‘정신적 의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예로, 몇 개월 혹은 몇 년이나 잘 지켜오다가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은 신체적 의존이 원인이 아닙니다. &nbsp;그만큼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몸에서 이미 니코틴이 빠져 나가기 때문에 ‘니코틴이 부족해 담배를 피우고 싶어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심리적 의존’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의존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이중세뇌’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잠재돼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마음의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무자각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게 하는 커다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마음의 함정을 알아차리고 그 구조를 확실히 인식하기만 해도 문제에서 벗어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이렇듯 ‘깨달음’은 큰 힘을 지닙니다. 하나의 깨달음이 다른 깨달음을 불러오고 이것이 또 다른 깨달음을 불러오는 식으로 연쇄작용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연, 다이어트, 게임 등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하루 빨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똑똑한 실천매뉴얼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01.12 I 신욱 기자
박노해 사진전,''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 박노해 사진전,''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 [노컷뉴스 제공] 박노해 시인의 중동 사진 한장 한장에는 쿠르드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적 참상이 담겨 있다. 그의 사진 작품<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은 쿠르드 청소년들이 단 한명의 관객인 박시인을 위해 전통민속공연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이들은 자기나라의 말과 전통복장, 노래와 춤을 빼앗겼다. 터키군부는 쿠르드인들의 모든 전통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이들 쿠르드 청소년들의 꿈은 세계전통페스티벌에 참가해 모국어로 마음껏 노래를 부르며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귀향을 꿈꾸는 쿠르드 난민가정>은 해발 3,000미터의 마을에서 풍족하게 살던 중 터키군인들의 만행으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맞은, 이스탄불 외곽의 쿠르드 난민가정을 담고 있다. 1992년 터키 군인들은 '바시르 이르한'의 집에 불을 지르고 8개월된 아이를 불에 던져 죽였으며,이 때 방화로 2개월된 아이 역시 한쪽 팔에 화상을 입었고,남편은 고문으로 장님이 되었다. 이 아홉식구는 전기도 없는 차가운 단칸방에서 귀향과 해방을 꿈꾸며 산다. 사진속 주인공의 일화를 소개하던 박시인의 눈에서는 어느 순간 굵은 눈물방울이 흘려내렸다.이렇게 처참한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쿠르인들이 3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스라엘군의 체크포인트>는 팔레스타인 곳곳에 설치된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할 때면 긴 줄로 세워진 채 발가벗겨지기도 하고 죄수처럼 치욕적인 검문을 받는다. 체크포인트 앞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보낸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는 날마다 걸어다니는 수인입니다." 이곳에서 허락없이 가방을 열면 바로 총살이다. 박 시인이 이 장면을 찍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무슬림 여인이 옷자락으로 박시인을 가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행위는 총에 맞에 죽겠다는 결단이었다. <빵을 구하러 가는 남매>(2006), <폭격더미에서 살아남은 사나샬흡(13세)>(2006),<죽은 아빠의 사진앞에서>(2006) 등의 사진은 분쟁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비애가 처연하게 전해진다. &nbsp;박시인의 사진에는 풍경과 인물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는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 농부가 강물을 받아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다. 이 농부는 박시인에게 "왜 우리를 미국과 서구가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다.돈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이 이 땅을 지킬 것이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시인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5천년 역사의 농경작업을 목격하고서, 사진에 뛰어든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수장될 위기에 처한 8천년 된 하산케이프>는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한 다리이다. 인류의 문화유산이고 영감의 원천인하산케이프는 터키정부의 댐 건설로 서서히 수장되어 가고 있다. <광야의 아잔소리>. 양을 안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이곳의 긴장과 불안,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소년은 총성과 포성이 울리자 돌을 던지다가 주변의 만류로 언덕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새끼 밴 양이 언덕에서 배회하자 다시 올라가 이 양을 끌어안고 내려왔다. 이 때 아잔 소리(코란 낭송소리)가 울리자 양을 끌어안은 채 슬픈 눈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 소년의 생각은 단호하다. "이스라엘 탱크가 공격해온다면, 저는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 돌멩이를 들 수 밖에 없어요." 박노해 시인이 중동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작업을 해온지도 10년이 되었다. 그가 찍은 중동현장 4만여컷의 흑백필름 사진 중 37점이 첫 사진전 <라 광야> 전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의 말마따나 사막의 낙타처럼 끈기 있게 매달린 '빛으로 쓴 시'의 결실인 셈이다.박시인은 "소리없이 고통받는 중동사람들의 진실, 죄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아픔이 사진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전해지리라 생각한다"며 "오 피스 코리아"를 외쳤다. 그렇다. 박시인은 사진작업을 통해 중동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우리 앞에 들려주고 있다. 미국적 · 서구적 시각에 가려 보지 못한 것들, 놓치고 있는 진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진전을 기획한 갤러리M 이기명 관장은 "박노해 시인은 사진은 사실성과 진실성, 현장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며 "찍을 때 완벽한 구성과 아날로그 흑백사진의 깊은 색조를 느끼게 될 것이다"고 평했다. 전시기간 : 1월 7일-1월 28일 전시장소 : 갤러리 M (서울 중구 저동 2가 금풍빌딩 1층) 문의 :02-734-1977 바그다드의 봄 -박노해 공습사이렌이 울리는 바그다드의 밤중에도 연인들은 몰래 만나 마지막인 듯 서로를 애무하고 무서워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포탄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섯구름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다시 축구를 하고 아잔 소리가 울리면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동생은 어제 산 운동화를 바꾸러 나가고 둘째 형은 낡은 자동차를 고친다고 기름투성이고 누이는 저녁을 준비하며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인다 지난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 죽은 아홉살 아지자의 피가 말라 붙은 벽돌 틈에서 노란 민들레는 무심히도 꽃망울을 피워내고 포연 속에서도 새들은 알을 까고 올리브 나무가지에 꽃은 피어나고 밀밭은 푸르고 대추야자 열매는 봉긋이 오르고 골목에 널린 흰 빨래는 눈부시게 펄럭인다 사진제공:갤러리M ▶ 관련기사 ◀☞(VOD)"아름다운 등대는 다 모였다"☞"나 지금 웃고있니?" 물고기 표정 보러오세요☞세계 최고의 직업 6개월간 해보니... 골병 들겠네
인생을 바꿔 준 피묻은 한방
  • [최익성의 저니맨④]인생을 바꿔 준 피묻은 한방
  • ▲ 삼성 시절 최익성(오른쪽). 그의 출발은 사진처럼 주변인이었지만 점차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야구의 격언 중에 매우 유명한 것 중 하나. "한 경기서 최소 3번의 찬스는 옵니다." 실제로 야구를 보다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경기를 열심히 쪼개 살펴보면 아무리 강한 상대와 붙어도 3번 정도는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생과 매우 닮아 더 매력적이라는 야구. 때문에 인생에서도 3번의 기회는 찾아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막상 살다보면 선뜻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우리네 삶에서 '역전의 찬스'는 언감생심. 그저 버텨내기만해도 용하다 싶을 때가 더 많다. '최익성의 저니맨'은 이제 잠시 성공을 이야기 하려 한다. '지독한 불운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최익성의 인생에서 기회가 있었다면&nbsp;우리네 삶 속에서도 한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2군 첫해, 난 시즌 막판까지 2군 타격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루는 감독님이 물으셨다. "2군 타격왕 하면 소원이 뭐냐." 난 거침없이 대답했다. "1군에서 한 타석이라도 서 보는 것입니다." 타격왕이 확실시되던 어느날, 감독님 호출이 있었다. 그리고 단 한마디. "오늘 1군 가라." 난 정신이 없었다. 꿈같은 현실이었다. 1군 경기 전 훈련이 끝난 뒤 나는 탈진 상태였다. 내겐 너무도 긴 하루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삼성은 해태 이강철 선배의 역투에 막혀 0-10으로 지고 있었다. 8회였나 9회였나,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었다. 구름을 걷는 듯 했다. 하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여전히 이강철 선배. 눈 감고 떠 보니 볼 카운트 2-0였다. 그리고 3구째 나름 대비하고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포수 파울 플라이. 어디선가 "뛰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덕아웃에 돌아온 뒤 코치님께 치고 달리지 않았다며 꾸지람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2군행 통보. 나중에 알고보니 김충 2군 감독님이 "2군에서 타격왕 하는 선수가 있는데 1군서 뛰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간청해 이뤄진 1군행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다음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다. 다들 내 1군 경험은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단은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해야 했다. 난 지금은 사라진 6개월 단기사병이었다. 홀어머니 모시고 산 덕(?)에 혜택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것 역시 아버님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짧은 군 생활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나는 다시 2군에서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가며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시즌이 끝나면 2군 선수들에겐 인생이 걸린 기로에 서게 된다. 정리되는 선수들의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다. 삼성은 95시즌이 끝난 뒤 미국으로 교육리그를 보냈는데 그 명단에서 빠진 선수는 해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먼저 투수가 호명되고 이어서 포수. 내야수를 거쳐 외야수의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명. "최익성". 내 인생이 늘 그렇듯, 난 맨 마지막에서야 선택을 받으며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평소 동경하던 미국 야구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난 그렇게 치열한 45일을 보냈고 '교육리그 최고 유망주'라는 멋진 타이틀을 거머쥐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사이 한국에선 큰 변화가 있었다. 삼성에 백인천 감독님이 부임하신 것이었다. 1996년 첫 팀 미팅. 난 매우 익숙한 한 마디를 듣게 된다. "난 여러분을 똑같이 평가하고 지켜보겠습니다. 이름이나 이전 성적은 중요치 않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선수가 경기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순간, 내 머릿속엔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난 나만의 방식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객관적인 내 위치는 60명 중 50등 정도였다. 아무리 이름값을 따지지 않는다해도 그 차이는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백 감독님은 훈련이 끝나면 선수 한명을 지목해 선수들 앞에서 파이팅이나 구호를 이끌어내도록 시켰다. 이 순간만은 모든 선수에게 반말을 해야 했다. 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날, 난 선수들 앞에서 큰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감독님께 물었다. "감독님, 제 이름 아십니까." 백 감독님은 약간 당황하신 듯 하더니 껄껄 웃기만 했다. 난 외쳤다. "너희들, 감독님이 내 이름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내 이름을 목청 높여 10번 부르고 끝낸다." 그날 삼성 훈련장에선 처음으로 "최익성"이란 이름이 멀리 울러 퍼져나갔다. 내가 조금이라도 감독님께 더 다가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전지훈련 초반, 난 한차례 고비를 맞았다. 타격보다 더 엉성했던 내 캐치볼을 비웃는 선배의 농담 한마디에 흔들려 버렸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바심이 날 약하게 만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철성 코치님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무사히 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시범경기서는 잠시 2군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결국 이름만 보고 뽑는건가'싶어 또 한번 좌절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왔다. 1군 주전 선수의 부상이 생기자 내가 가장 먼저 1군에 불려올라갔다. 1군 합류 첫날, 난 선발 출장의 기회까지 얻었다. 상대는 당대 최강 좌투수 이상훈선배였다. 결과? 두타석 내리 삼진. 그리고 세번째 타석은 내야 플라이였다. 다행히 이후로도 기회를 제법 얻었다. 내 보직은 좌완 투수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한동안 난 이상훈 송진우 조규제 구대성 등 최강의 좌완 투수들과 맞서야 했다. 빙그레와 경기였다. 0-1로 뒤진 8회. 구대성 선배를 상대로 1안타에 묶인 상황. 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불같은 강속구에 움찔한 사이 볼 카운트 2-0. '또 이렇게 삼진을 당하는구나' 싶었다. 그 짧은 순간, 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보고 쳐도 못 치는거 눈 감고 쳐보자. 날 만만히 볼테니 정면승부 하겠지. 하나,두~울,셋 타이밍 맞혀 배트나 힘껏 휘둘러 보자.' 이것 저것 아무 생각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딱'. 공이 배트에 맞았다. 순간 손에서 감각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 내가 구대성을 상대로 홈런을 친 것이었다. 그것도 프로야구 1군 첫 안타를 말이다. 기쁨도 잠시. 10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 난 아무것도 아닌 성적표를 들고 다시 2군으로 내려왔다. 실망이 컸다. 솔직히 아프다는 핑계로 한동안 훈련도 게을리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1군 복귀 콜이 떨어졌다. 더 이상 기회를 놓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LG와 잠실 3연전이었다. 첫 경기서 대타로 나서 2루타. 2차전은 3만 관중이 들어찼다. 우리가 1-3으로 뒤진 9회초 2사 만루. 감독님 목소리가 들렸다. "대타 최익성" 마운드엔 내 데뷔전을 망쳐(?)버린 이상훈 버티고 있었다. 또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계속 파울을 쳐내며 저항했다. 라인쪽으로 파울 타구를 날리고 1루로 달려나가는 순간, 왼쪽 장딴지에 경련이 생기며 그대로 끄러지고 말았다. 잠시 훈련을 게을리했던 탓일까. 짧은 순간,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져 있을 순 없었다. 트레이너가 달려와 나를 업고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바늘로 찌르면 경련이 멈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달라"고 외쳤다. 긴급 처방 후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다. 좌측으로 날아가는 파울. 1루로 달려나가던 난 또 쓰러졌다. 이번엔 오른쪽 장딴지였다. 다시 트레이너에 업혀 덕아웃으로 돌아와야 했다. 난 감독님을 향해 외쳤다. "저 빼지 말아주세요. 칠 수 있습니다." 심판들까지 덕아웃으로 와서 빨리 선수를 교체하라고 했다. 그러나 감독님은 날 기다려줬다. 다시 바늘로 허벅지를 수차례 찌른 뒤 타석에 섰다. 그게 몇번째 공이었을까. 난 이상훈 선배의 공을 받아쳐 유격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트레이너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에 들어온 난, 한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스쳐간 건지, 좋은 건지 나쁜건지도 몰랐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기쁨이 몰려왔다. 며칠 뒤 김용철 타격 코치님이 날 불렀다. "너 1번타자 칠 수 있겠냐. 감독님이 너 1번 타자로 쓰고 싶다신다. 1번 타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있어라." 다른 선수들은 이럴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난 세상을 모두 얻은 듯 했다. 그리고 곧바로 1번타자가 무엇인지 공부를 시작했다. ▶ 관련기사 ◀☞[최익성의 저니맨③]내가 늘 몸을 날려야 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②]내 기본기가 부족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①] 최익성이 책을 낸다고?
2010.01.07 I 정철우 기자
정몽구 녹색제철소, 첫 불 당겼다
  • 정몽구 녹색제철소, 첫 불 당겼다
  • [당진= 이데일리 윤종성기자]&nbsp;연산 800만톤 규모(400만톤 고로 2기)의 현대제철(004020) 당진 일관제철소의&nbsp;1고로에 첫 불을 당기는 '화입(火入)식'이 열렸다.&nbsp;&nbsp;대내외에 제철소 본격 가동을 알린 것이다.&nbsp; 이날 화입식 행사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nbsp;고로 엔지니어링을 주관한 폴워스(Paul Wurth)사 마크 솔비(Marc SOLVI) 사장 등 내외빈,&nbsp;그리고 임직원 60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nbsp; '화입식'은 철광석과 코크스가 들어있는&nbsp;고로 하단부에 처음으로 불씨를 넣는 행사다.&nbsp;이는 일관제철소의 심장인 고로가 본격 가동이&nbsp;시작됐음을 의미한다. 화입과 동시에 지상 110m 높이로 우뚝 솟아있는 고로는 붉은 쇳물을 토해내는 용광로&nbsp;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5조8400억 투자..17만명 일자리 창출&nbsp;정몽구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nbsp;"2006년 10월 기공식 이후 전 임직원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사명감으로 땀과 열정을 바쳐&nbsp;건설에 매진해 왔다"고 말했다. &nbsp;정 회장은&nbsp;"현대제철은 전세계적 경기침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관제철소 건설에 5조84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며&nbsp;"이를 통해 약 17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및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nbsp;축사에 나선 폴워스사의 마크 솔비 사장은 "오늘 가동되는 현대제철의 제1고로는 폴워스가 공급한 고로 가운데 가장 큰 모델로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제작한 설비"라며 "현대제철이 세계 제일의 철강업체로 도약하는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nbsp;◇ 마침내 결실 맺은 '현대家의 꿈'&nbsp;이번 현대제철 고로의 본격 가동으로 현대차그룹의 일관제철사업에 대한 염원도 결실을 맺게 됐다.기공식 후 정 회장은 일주일에 2~3번씩 건설현장을 직접 방문할 만큼, 일관제철사업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나타냈다. 정 회장 스스로가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제철 사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정 회장은 밀폐형 원료처리시설을 비롯해 ▲코크스공장 ▲고로공장 등 일관제철소 각 공장들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주말에도 수시로 건설현장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는 등 임직원들을 적극 독려했다.한편, 일관제철소 건설에 따른 경제유발 효과도 막대하다. &nbsp;국내 한 연구소에 따르면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의 고용유발 효과는 건설에 9만3000명, 운영에 7만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800만톤 규모의 일관제철소가 가동되면 총 1조7000억원의 중소기업 매출 창출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됐다.&nbsp;&nbsp;▲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제1고로 화입식에서 화입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2010 재계)②이것이 관전포인트다☞12월 29일 최승욱의 쪽집게 리포트☞증권사 신규 추천 종목(29일)
2010.01.05 I 윤종성 기자
  • (주식시장 읽기)외국인 따라하면 내 투자도 성공할까?
  • [이데일리 최용식 칼럼니스트] 투자자에게는 지나간 2009년 한 해가 꿈같은 시절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말 코스피 지수는 1683을 기록하여 전년도 말에 비해 49.7%가 상승했고, 코스닥 지수도 514를 기록하여 54.7%나 상승했다. 물론 세계 주요국의 주식시장도 대체적으로 상승을 기록했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20.2% 상승했고, 일본의 니케이 지수도 19.0% 상승했다. 우리나라 주가지수 상승률은 상하이 주가지수의 상승률 79.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양호한 성적을 남겼다. 그것마저 평균적인 수익률일 뿐이고, 주식투자자가 선호하는 안정적이면서도 유망한 종목들의 수익률은 대부분 이 수준보다 훨씬 더 높았다. 여러 산업분야의 유망 종목에 분산하여 투자를 했더라도 두 배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수익률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는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더욱이 2009년 주식시장은 과거 사례에서 흔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가지수가 안정적인 상승세를 지속했다. 1분기에는 1100 대 중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분기에는 1300~1400 대에서 등락을 보였고, 3분기에는 대체적으로 1500~1600대에서 등락을 보였다. 9월22일에는 1719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4분기 중 한 때 1500대로 하락하기도 했지만 연말에는 다시 1700에 육박하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주식투자자라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목돈을 챙겼어야 했다. 그러나 그 몫은 변함없이 외국인 투자자의 몫이었을 뿐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2009년 한 해 동안에만 우리 주식을 약 30조원 어치 사들였고, 내국인 투자자는 그 금액만큼 우리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운 셈이었다. 그랬으니 내국인 투자자 특히 개인 투자자는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반면 연평균 주가지수가 1713을 기록하여 주가가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던 2007년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27조 원 어치를 순매도했고, 주가지수가 한 때 1000을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까지 하락을 지속했던 2008년에는 무려 38조 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치운 이때에는 내국인 투자자가 그만큼 비싼 값으로 되사들였다. 내국인 투자자가 비싼 값으로 사들인 주식의 가격이 그 후에는 줄기차게 하락했으니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이처럼 내국인 투자자는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일 때에도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손해를 보고, 부진을 보일 때에도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으니, 이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나 우리 기업에 대한 정보를 외국인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입수할 수 있는 내국인 투자자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주식투자 이익을 거의 모두 뺏기고 있으니, 이런 사태를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2010년, 새해에는 이런 일이 제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혹시,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고 있으므로, 그들을 뒤따라서 투자를 하면 개인 투자자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상당수 내국인 투자자들은 외국인 투자자가 매수하면 같이 매수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매도하면 같이 매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하는 종목을 내국인 투자자도 함께 사들이곤 한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결코 아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상투를 잡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왜 그럴까? 다음과 같은 내 개인적인 경험은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줄 것이다. 2009년 4월 어느 날 나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었다. 이 예측을 들은 어떤 이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해도 좋다는 말이냐`고. 그는 `내 경제예측이 그동안 여러 차례 정확한 것으로 드러나서 이제는 무조건 믿는다. 그리고 주가지수는 경기흐름의 후행지수라는 말도 믿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내 답은 간단했다.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그 이유를 물었고, 내 답은 다음과 같았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시작할 때에는 조금씩 한다. 그 투자가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투자규모를 점점 더 키운다. 주가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호황을 보이면 투자규모는 점점 더 커져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때에는 주식시장 분위기가 몹시 들떠 있게 되고, 누구나 이런 분위기에 쉽게 지배당한다. 그러면 내가 어떤 경고를 하더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일이 2007년 상반기 중에 실제로 벌어진 바 있다. 적정 주가지수는 1800 수준이므로 혹시라도 2000을 넘어가면 그 뒤에는 폭락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누구도 이 경고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가지수가 1000을 넘어섰던 2005년부터 장차 주가지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고했던 터라 내 지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나섰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 삼아 조금씩 투자하다가 이익이 점점 더 쌓이면서 투자규모를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부동산을 팔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투자에 나섰다. 이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2007년 4월 주가지수가 1400을 넘어선 뒤부터는 주식시장이 온통 `비이성적 과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가세하여 너도나도 `묻지 마` 투자에 나섰던 것이다. 이런 열기는 주식시장을 점점 더 뜨겁게 달궜다. 4월 말에는 주가지수가 1500을 넘어섰고 5월 말에는 1700도 넘어섰다. 그 뒤 잠시 주춤거리다가 7월 말에는 1900까지 넘어섰고, 10월 중에는 2000까지 넘어섰다. 우리 주식시장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셈이다. 그러자 시장은 온통 뜨거운 열기 속에 파묻혔고, 주식투자 전문가들이나 경제연구소들은 거의 대부분 주가지수가 조만간 2500도 넘어서고 3000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만간 폭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내 경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내 덕에 그동안 큰돈을 벌었다던 친지에게는 일부러 여러 차례 찾아가 경고했으나, 그는 끝내 내 경고를 외면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 비참했다. 부동산을 팔아서 주식투자에 나섰던 터라 타격은 더 심각했다. 때마침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어 닥쳐 상대적으로 헐값에 팔아치웠던 부동산 가격이 두세 배나 올랐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를 따라서 투자하는 것도 위와 같은 결말로 귀결되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가장 못난 투자 방법이라고 과감히 말하곤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경험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주식투자를 쉽게 권유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를 조금씩 늘려가다가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에는 결국 상투를 잡곤 하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와 같이, 경기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낸 뒤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하면 당연히 성공할 수 있다. 경기지표는 주가지수에 선행하므로, 경기가 상승할 경우 미리 주식을 사두면 당연히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경기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낼 능력이 부족하다면, 은행 정기적금에 들듯이 주식을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매입하는 방법이 아마 최선의 길이 아닌가 한다. 반복하거니와, 경제는 일시적으로 뒷걸음치거나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하기 마련이므로. 또한 내가 최고의 기업 경영인은 될 수 없을지라도 주식투자를 통해서 최고의 경영인을 부릴 수도 있으므로. 이런 투자방법은 우리 주식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국하는 길이다. 2010년 경제예측과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와 21세기경제학연구소가 합동으로 작성한 ‘2010년 경제예측보고서’를 참고하면 투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2010년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투자자 여러분이 투자의 중심에서 꼭 성공하는 한해가 되길 바라며,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바란다. <최용식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
2010.01.04 I 최용식 기자
'파스타' 이선균, '미실' 고현정 뒤 이을 악역변신 도전
  • '파스타' 이선균, '미실' 고현정 뒤 이을 악역변신 도전
  • ▲ MBC '파스타'의 이선균[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배우 이선균이 고현정의 아성에 도전장을 냈다. 2009년 MBC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웠던 ‘선덕여왕’의 미실 고현정에 이어 이선균도 악역 변신에 나섰다. 이선균은 ‘선덕여왕’ 후속으로 4일 첫 방송되는 MBC 새 월화드라마 ‘파스타’에서 자신의 주방에 여자의 존재를 불허하는 최현욱 역을 맡았다. ‘파스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스페라의 주방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다. 이선균이 연기할 극중 최현욱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스페라 주방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여자 요리사들을 모두 내쫓고 주방보조로 요리사의 꿈을 키우던 주인공 서유경(공효진 분)마저 내보내려고 하는 캐릭터다. 카리스마가 넘치고 요리에 대한 열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지만 주방에서는 마초적 기질이 있고 직설적이어서 막말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 최현욱이다. 그런 점에서 최현욱과 ‘선덕여왕’의 미실, 이 배역을 각각 맡은 이선균과 고현정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고현정은 미실 역을 연기하기 전까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던 이미지는 단아함이었다. 이선균은 그동안 따뜻한 남자, 다정한 남자의 이미지로 안방 시청자들에게 익숙했다. 그러나 고현정은 권력욕의 화신으로 자신의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직접 칼을 휘두르는 것도 마다 않는 냉혹한 캐릭터 미실을 연기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선균도 ‘파스타’에서 맡은 배역은 그동안 팬층의 주류를 이루던 여성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할로 기존에 주로 맡아오던 캐릭터와 다르다. 이선균은 최근 열린 ‘파스타’ 제작발표회에서 “이미지 변화의 결과에 대한 부담은 없다”면서도 “지금까지 연기해본 캐릭터가 아닌 만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걱정은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더구나 고현정과 이선균 모두 ‘선덕여왕’과 ‘파스타’에서 각각 맡은 역할의 비중은 순서로 따지자면 두번째다. 하지만 고현정은 성공적인 변신으로 실질적으로 ‘선덕여왕’의 인기를 주도했다는 평을 이끌어 냈다. 그러면서 고현정은 주인공과 대치하는 인물이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준다는 점을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켰다. 그런 점에서 ‘파스타’의 성공여부에 이선균이 이 짊어질 책임은 크다. ‘착한 남자’ 이선균이 ‘나쁜 남자’ 변신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관련기사 ◀☞이선균, '파스타' 제작진에 점퍼 70벌 선물☞'파스타' 공효진 "예쁘기만 한 역할은 싫다"☞'파스타' 이하늬 "실제 나는 엉망진창에 천방지축"☞'파스타의 연인' 이선균-이하늬 크리스마스 인사☞'파스타', MBC 음식 소재 드라마 불패신화 이을까?
2010.01.04 I 김은구 기자
  • (전문)이명박 대통령 신년 대국민 연설
  •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2010년 경인년 호랑이해가 밝았습니다.오늘 출근 길에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만,그래도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것을 보니새해의 시작을 축복하는 듯합니다.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올해는 호랑이의 힘찬 기상이방방곡곡 온 누리에 넘쳐나길 기원합니다.지난해 9월 25일, 피츠버그에서 G20 정상회의 2010년 개최국으로한국이 선정되던 날, 제 마음 속에는 감격의 눈물과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지난 12월 27일 원자력 수출 협정이 체결되던 날,부르튼 입술 사이로 ‘대한민국 국운이 열리고 있구나’하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2009년, 우리가 얻은 것은 자신감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대외의존형인 한국 경제가금융위기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생각했지만,우리는 세계에서 경제 위기를가장 잘 극복한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해외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습니다.우리의 수출은 세계 9위로 올라 섰습니다.인도와 EU 등 거대 시장과 속속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습니다.대한민국은 전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2, 인구의 절반 가까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되는 유일한 나라입니다.세계 곳곳에 대한민국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우리의 구호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60년,기적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기 위해참으로 열심히 해주셨습니다. 노사는 일자리를 나누어 Job Sharing이라는 용어를국제 사회에 확산시켰습니다. 고통을 분담하려는 정부의 정책에국민들은 너무도 잘 참고 호응해주셨습니다. 공무원들도 2년 연속 임금 동결을 감내하며더 열심히 일해 주었습니다.위기 속에 빛나는 우리 국민의 저력은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기적을 일구고 신화를 창조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것이저는 늘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2010년, 우리는 큰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 있습니다.지금 세계는 구질서가 해체되고 신질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경제의 위기와기후변화로 인한 지구환경의 위기가 신질서를 재촉하고 있습니다.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세계는‘공멸이 아니라 공생이 가능한 경제‘, ‘탐욕이 아니라 윤리가 살아 있는 시장 경제’의 필요성을절감하고 있습니다. 일부 선진국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신흥국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푸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G20은 이러한 세계의 열망이 응축된 새로운 국제기구입니다.지구 온난화의 위험은 서서히 축적되기 때문에 그 심각함을 평소에는 잘 느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게으르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계 지점을 넘는 순간 위험은 폭풍처럼 몰아쳐오기 때문에 뒤늦게 대처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후 변화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근원적으로는 경제 체질과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저탄소’를 우선적인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말이 아니라행동으로 지구의 위기에 공동 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코펜하겐 회의에서 제가 제안한 대로‘Me First', 즉 ‘나부터 실천하자!’는 경쟁에모두가 앞 다투어 나서야 합니다. 기후 변화에 선제적이고 근원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녹색 산업 강국을 겨냥한 우리의 발전 전략이기도 합니다. 원전 수출은 그 하나의 상징입니다.세계적인 큰 질서의 변화는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과 실천의 전환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낡은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세계사의 큰 흐름을 포착하고 미래로 향하는 역사의 길목을 지켜야 합니다.신질서는 국제적인 세력 관계를 재편하기 마련입니다.신질서에서 주도하는 나라가 되느냐 끌려가는 나라가 되느냐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운명이분리될 수 없음을 압니다. 나라의 안과 밖이 구분될 수 없습니다.외교와 경제가 둘일 수 없습니다.우리는 지난 2년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글로벌 외교에 성공하는 것이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여는 데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지난 2년 우리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가까워졌고모든 나라가 친구와 형제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여전히 군사적 경제적 힘이 중요합니다.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세계를 주도하는 나라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우리가 내세운 비전이세계가 내세우는 비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경제발전을 꾀하는 우리의 비전, 녹색성장은 이미 세계의 비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지난 해 우리는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원조를 주는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습니다.도움을 받던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우리가 도움을 받던 때의 심경을 떠올려남을 도울 때는 두 손으로 도움을 드려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가 장차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가 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성숙한 세계국가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이 흐름을 계속 타고 나아가야 합니다.세계의 변화를 대한민국의 위대한 변화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운 융성의 호기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더 큰 대한민국의 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새해 국정을 “시야는 넓게, 일은 탄탄하게” 수행하겠습니다. 국민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 데역점을 두겠습니다.2010년이 실질적인 선진일류국가의 기초를확실히 닦는 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3대 국정운영기조를 설정하고자 합니다.첫째, 글로벌 외교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둘째, 경제 활력을 높이면서 선진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셋째,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습니다.이런 기조 하에 내년에는 특히 5대 핵심 과제에 주력하겠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국정 과제는 누가 뭐라 해도 경제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상반기에는 비상경제체제를 끝내고 하반기에는 서민들도 경제 회복의 온기를체감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올해 우리 정부는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일자리의 보고인 서비스산업을 진흥하고,혁신중소기업을 육성하겠습니다. 한 쪽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다른 쪽에서는 기업들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노동력 수요 공급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통합정보망을 구축하고 직업훈련체제를 혁신하겠습니다. 일자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평생 하나의 직장만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탈피해야 합니다.임금 피크제도 확산해야 합니다. 재택근무, 1인 기업, 사회적 기업 등 새로운 일의 형태도넓혀나가야 합니다.유급 근로와 자원 봉사를 결합하는 모델도 발굴해야 합니다. 주부와 노인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합니다. 일자리가 생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되게 해야 합니다.경기회복이 일자리 창출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제가 매달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열어 정책을 발굴하고 점검하겠습니다. 둘째, 교육개혁에 매진하겠습니다.교육경쟁력이 국가경쟁력입니다. 창의적인 인재 육성과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이명박 정부는 일관된 교육개혁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자율화하고, 사교육 의존 입시제도를 혁파하기 위해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교도 경쟁하고 선생님도 경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기숙형 고등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도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습니다.취업 후 학자금 대출 제도 등‘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교육 현장과 학부모들은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우려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새해에는 이 교육개혁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국민들에게 믿음이 가는 교육개혁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서도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겠습니다.대통령이 직접 챙기겠습니다.셋째, 지역 발전의 전기를 만드는 한 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이명박 정부는 분권, 특화, 상생의 원칙 하에5+2 광역 발전모델을 추진해왔습니다.각 지역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 특성화 발전 전략을 지원해왔습니다.금년은 각 지역의 발전 전략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지방에서도 경제 회복이 피부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지역이 원하는 산업육성, 인재양성, 인프라 확충,정주여건 개선 등을 위하여5년간 100조원 수준을 지원하는 투자계획은 차질 없이 시행될 것입니다.전국 72개 시&#8228;군&#8228;구를 거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지역의 일자리와 소득창출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역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8228;반영해 나가겠습니다.혁신도시,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등이 조기에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 재정지원 등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금년에는 지방자치제 실시 15년 만에 오랫동안 논의만 무성했던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가 드디어 도입됩니다.오랜 숙원이 풀린 것입니다.이것이 지방자주재원 확충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넷째, 정치 선진화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우리가 선진일류국가로 가고자 한다면모든 분야가 선진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행동양식, 우리의 제도를 선진화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지키는 토대인 법질서를 확립하고 선진화해야 합니다.노동법 개정을 계기로 선진 노사문화도 정착시켜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생산적인 정치, 합리적인 정치국민을 통합하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정치의 선진화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습니다.정치 제도 개혁으로 뿌리를 만들고정치 문화 개혁으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다행히 행정구역 개편은 이미 일정에 올랐습니다. 자율 통합에 나선 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배타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대결정치를 극복하기 위한선거제도 개혁도 반드시 올해 완수해야 할 과제입니다.다섯째, 5대양 6대주의 모든 나라들과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남북관계도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올해는 G20 정상회의와 기업인 회의를 포함한크고 작은 부수 회의가 한국에서 열립니다.이는 ‘더 큰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는 매우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세계 경제를 빨리 회복시킴과 동시에최빈국을 지원하고, 신흥국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할 것입니다.또한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을 포함한 세계 금융질서의 개혁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도록 할 것입니다.그리하여 세계가 균형 있게 발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나라가 생각과 책임을 공유하고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회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한미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고해졌습니다.새해에는 한중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고 신아시아 외교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금년에는 특별히 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하겠습니다.국제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ODA를 늘리고 PKO 참여를 확대하겠습니다.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활동에도 참여하겠습니다.올해는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북한이 조속히 6자 회담에 복귀하길 촉구합니다.그리하여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되고본격적인 남북 협력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합니다.이를 위해 우선 남과 북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를 위한 기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북한도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서길 기대합니다. 올해는 6.25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금년에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북한에 묻혀 있는국군 용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낯선 땅에 와 생명을 바친 참전 용사들의 넋을 우리 대한민국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임기 중반을 통과하는 금년,저는 ‘一勞永逸’의 자세로 일하고자 합니다.어렵다고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궂은일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올해가 저물 때 서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고,대한민국의 국격이 한층 향상되고, 우리의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위대한 변화를 시작했습니다.이 위대한 변화를 우리는 반드시 이루어낼 것입니다.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한 시각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해냅시다.감사합니다.
2010.01.04 I 정원석 기자
  • 이 대통령 "남북간 상시 대화기구 설립" 제안
  • [이데일리 김춘동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4일 남북간 새로운 전기 마련을 위한 상시적인 대화기구의 설립을 제안했다. 또 일자리 창출과 교육개혁,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한 3대 국정운영기조와 5대 핵심과제를 제시하면서 올 하반기엔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면서 서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 수 있도록 성과를 내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4일 `2010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올해 국운 융성의 호기를 적극 활용해 더 큰 대한민국의 길을 활짝 열자"고 강조하면서 "새해 국정을 `시야는 넓게, 일은 탄탄하게` 수행하겠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글로벌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경제활력을 높이면서 선진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기조를 이어가겠다는 3대 국정운영 기조를 제시하면서, 이에따른 5대 핵심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교육개혁 ▲지역발전의 전기 마련 ▲정치 선진화 개혁 ▲글로벌 외교 강화와 남북관계의 실질적 변화 등을 5대 핵심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올해 첫 번째 국정과제는 누가 뭐라해도 경제를 살리는 것이며, 그 핵심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며 "상반기엔 비상경제체제를 끝내고 하반기에는 서민들도 경제회복의 온기를 체감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일자리 정부`로 자리매김하겠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비스산업 진흥과 혁신중소기업 육성, 노동력 수요공급의 불일치 해소를 위한 통합정보망 구축 등을 제시했다. 매달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열어 정책발굴을 직접 점검하겠다고도 말했다. 교육부문에서는 "창의적인 인재육성과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일관된 교육개혁을 시행하겠다"며 "특히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이 원하는 산업육성, 인재양성,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해 5년간 100조원 수준의 지원하는 투자계획을 차질없이 시행하겠다"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지역의 일자리와 소득창출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역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진 일류국가로 가고자 한다면 모든 분야가 선진화되어야 한다. 정치의 선진화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다행히 행정구역 개편은 이미 일정에 올랐으며, 배타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대결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도 반드시 올해 완수해야 할 과제"라로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나라들과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남북관계도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특히 올해 남북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비핵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되면서 본격적인 남북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크게 향상되길 기대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 남과 북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성숙한 세계 국가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며 "이제 세계의 변화를 대한민국의 위대한 변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임기 중반을 통과하는 금년, `일로영일(一勞永逸)`의 자세로 일하겠다"며 "올해가 저물 때 서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한층 향상되고, 우리의 자신감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2010.01.04 I 김춘동 기자
  • (신년사설)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자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경인년(庚寅年) 새해가 밝았다. 60년만에 찾아오는 백호랑이의 해다. 백호는 四神(청룡/백호/주작/현무) 중 유일하게 실존하는 동물이다. 그 신령함으로 인해 민간신앙에서는 산신령이나 산군자로 통한다. 직전 백호랑이 해였던 1950년에는 6.25 동란이 발발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의 깃발을 올린 지 60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섰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 아침이지만 6.25 한 갑자를 맞는 올해의 감회는 남다르다. 70년대 ‘한강의 기적’과 90년대 ‘외환위기 극복’에 이어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기 때문이다.지난해 우리 경제는 글로벌 신용위기의 파고를 잘 헤쳐왔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 취업난, 가계부실, 사교육..,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지만 미래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양극화 해소는 이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화두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채택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양극화 심화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자본시장 자유화로 투기성 소득은 늘어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공고화되면서 ‘있는 자는 더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는‘ 불평등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경쟁을 공정한 경쟁으로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모토 가운데 하나가 ‘기회의 균등’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 말은 허구다. 기회라는 것 조차 자본의 논리로 얼마든지 불평등하게 바꿀 수 있는게 지금의 구조다. 자본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공정한 출발선을 논하기 어려운 이유다. 양극화는 사교육을 통해 후손에게 대물림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사교육 집중은 사회 양극화와 중층적 접점을 이루고 있다. KDI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개천에서 용(龍) 나는 일은 앞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인생을 좌우하는 정도가 점점 강해지고, 교육이 계층상승의 사다리 보다는 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통로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자성이다.열심히 일해 자기 집 장만하고, 자식교육만큼은 제대로 시켜보겠다는게 이 땅 장삼이사들의 소박한 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라면 구성원들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창발적 도전 보다는 자기생존과 방어에 집착하게 되고, 한탕주의와 패거리문화, 집단이기주의가 득세한다. 자연히 사회발전 동력은 떨어질 것이고,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나라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양극화와 사교육, 일자리 문제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함께 가는 세상이어야 경제도 살고, 정치도 살고, 미래도 살아난다.양극화 해소를 위한 현 정부의 정책은 유별나다. 주요 정책 발표 때마다 ‘서민’을 앞세운다. 대통령이 포장마차를 방문해 음식을 팔아주며 서민대책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조치를 완화하고, 법치논쟁을 불사하면서 까지 재벌회장에게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벌어진 경쟁의 출발선을 정부가 더 벌려놓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 양극화는 일조일석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양극화의 골이 더 넓어지지 않도록 좁혀놓는 일이다. 경쟁의 출발선을 정비하고, 당장은 어렵더라도 다음에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경제성장의 과실을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라를 단합시키는 궁극의 방도다. 이를 위해서는 성장의 과정에 국민이 함께 뛰어야 하고, 분배의 과정에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분이나 학습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경인년 새해. 한반도를 일깨우는 백호랑이의 기상과 함께 모두가 어깨 걸고 같이 나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2010.01.01 I 이종석 기자
(신년사)길종섭 케이블TV협회장 "내년 15살..국민편익 최선"
  • (신년사)길종섭 케이블TV협회장 "내년 15살..국민편익 최선"
  • [이데일리 유용무기자] 길종섭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사진)은 31일 "올해로 15살을 맞은 케이블TV는 각오를 새로이 다져 방송통신시장의 가장 건전한 참여자로 거듭나 국민에게 가장 큰 편익(便益)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가겠다"고 밝혔다. 길 회장은 이날 미리 배포된 `2010년 경인년(庚寅年) 신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nbsp;특히&nbsp;"내년 케이블TV를 디지털·참여·소통의 광장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nbsp;길종섭 회장은 이어 "MVNO(가상이동통신사업자) 진출을 통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이동통신 서비스의 요금을 낮추겠다"고 했다.&nbsp;다음은 신년사 전문이다. 호랑이의 해, 경인(庚寅)년 새해가 밝았습니다.&nbsp;새해에도 1500만 케이블TV 가족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화목이 항상 함께 하기를 희망합니다.&nbsp;지난해 케이블TV는 방송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보다 심화된 경쟁 환경을 맞았습니다. 또한 대외적인 여러 위기들을 맞아 그야말로 고군분투(孤軍奮鬪)의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nbsp; 힘들었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케이블TV를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신 국민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nbsp;&nbsp; &nbsp;올해로 15살을 맞은 케이블TV는 각오를 새로이 다져 방송통신시장의 가장 건전한 참여자로 거듭나, 국민에게 가장 큰 편익(便益)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가겠습니다.&nbsp; &nbsp;케이블TV는 이를 통해 국민들을 `디지털 광장`, `참여의 광장`, `문화의 광장`, `소통의 광장`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nbsp; 첫째,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광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2013년이 되면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방송 시대가 열립니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디지털방송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단지 디지털 방송을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보게 될 우려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nbsp;하지만 케이블TV가 꿈꾸는 디지털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의 국민도 소외되지 않고 사회 계층·지역 간 갈등과 차별이 없는 세상, 모든 국민이 양방향 소통을 하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케이블TV가 디지털방송 도우미가 돼서 역사적 짐을 지고 당당히 나서겠습니다.&nbsp; 둘째,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참여의 광장`을 만들겠습니다. 2010년은 광역 및 기초단체장, 교육감 등을 새로 선출하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수많은 후보자 중 우리 고장의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떤 공약을 제시하고 또 성품이 어떠한지 자세히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nbsp;지역별 모든 후보자들의 토론과 연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방송은 오직 케이블TV 지역채널 뿐입니다.&nbsp;선거관련 국민들의 알 권리, 케이블TV가 지켜내겠습니다. 유권자들이 `참여의 광장`에서 함께 토론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역방송 케이블TV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nbsp; 셋째, 고품격 콘텐츠가 살아 숨쉬는 `문화의 광장`을 조성하겠습니다. 15년 전 시작된 케이블TV는 우리나라에 다채널방송을 정착시켰지만 수백 개로 늘어난 채널들에 비해 시청자들의 평가는 냉엄함 그 자체였습니다.&nbsp;하지만 지난해 케이블 콘텐츠가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케이블채널에서 방송한 프로그램이 지상파 시청률을 넘볼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케이블이 만든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다`는 공식을 세우기 위해 적극 나서겠습니다. &nbsp;또한 고화질 HD방송채널을 대폭 확대하고, 신개념의 3DTV 콘텐츠도 케이블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케이블TV 하나로 모든 방송 콘텐츠를 이용하는 ‘문화의 광장’을 만들어 가겠습니다.&nbsp; 넷째, 국민들에게 가장 편안한 `소통의 광장`을 제공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디지털방송, 인터넷, 전화와 같은 방송통신서비스는 국민들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미 필수품이 됐습니다. &nbsp;케이블TV는 방송 뿐 아니라 통신서비스 분야에서도 저렴하면서 품질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서비스를 통해 통신시장의 요금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케이블TV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합니다. MVNO(가상이동통신사업자) 진출을 통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이동통신 서비스의 요금을 낮추겠습니다.&nbsp;케이블TV가 방송과 통신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 방송통신 융합이 가져 올 선물보따리를 풀어 모든 국민들이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나눠드리겠습니다.&nbsp; 이 모든 것이 이뤄지기에는 많은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nbsp;하지만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기 위해 케이블TV 2만5000여 종사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지혜를 모아갈 것입니다.&nbsp;&nbsp; &nbsp;케이블TV 15년, 국민들은 난시청 해소와 다채널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TV에 뜨거운 사랑을 주셨습니다.&nbsp;이제 케이블TV가 대답합니다.&nbsp;국민사랑 15년, 케이블TV가 `국민을 최우선으로 섬기는` 방송통신 서비스로 하나하나 보답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2.31 I 유용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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