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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가 中心이다)⑨김영민 대표 "韓中日 경쟁보다 협력을"
- ▲ 김영민 SM 대표[이데일리 SPN 박미애 기자]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해외 진출은 1990년대 후반 H.O.T와 S.E.S로 물꼬를 텄다. SM은 H.O.T와 S.E.S를 중국과 일본에 각각 진출시켰고 이들을 통한 시행착오와 가능성을 거듭 확인하며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M이라는 성공 모델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SM 수장인 김영민 대표는 보아와 동방신기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도운 일등공신이다. 그는 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일본에 관한한 가요계에서 가장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최근 그를 만나 SM이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집중 공략해 온 배경과 성과, 그리고 전망을 들어봤다. ◇ SM, 10년 전부터 日中 시장 개척으로 노하우 축적 SM의 해외 진출 첫 공략 국가는 일본과 중국이었다. "첫 공략지로 일본과 중국을 택한 건 이들 시장의 규모와 잠재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0년 전에도 세계 2위의 음악시장을 자랑했는데 그 규모가 자그만치 5조 원에 달했죠. 그때 한국은 4000억 원 정도였습니다. 반면, 중국은 당시 시장은 미미해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봤습니다. 시장의 파이를 넓히려면 두 나라만큼은 반드시 공략해야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사전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해외 진출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왔다. H.O.T는 단수여권밖에 발급되지 않아 활동에 제동이 걸렸고(그 당시만 해도 입대 전의 남자가수들에게는 단수여권만 발급됐다) S.E.S는 현지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언어 문제가 해외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SM은 H.O.T와 S.E.S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이때부터 현지화 전략으로 해외 진출을 꾀했다. 그러는 동안 H.O.T의 해외 활동을 계기로 남자 가수들에게 복수여권이 나오게 됐고 현지화 전략으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M을 일본과 중국에서 잇따라 성공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특히 보아는 2001년 5월 데뷔 싱글 `ID:Peace B`를 발표하고 지금까지 총 29장의 싱글음반과 7장의 정규음반, 2장의 베스트음반을 발표했는데 한때 그녀의 경제적 가치가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이라는 연구 발표로 화제가 됐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기업`이란 타이틀이 붙여지기도 했다. 동방신기도 그렇고 중국에서 인기 급상승중인 슈퍼주니어-M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영민 대표는 현지화 전략도 일본과 중국에서 다르게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현지화 전략을 취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10년 전에도 스타를 발굴하고 양성해서 기획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지만 그 당시 중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지 매니지먼트사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는 대신 현지인을 포함시켜 중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택했고 그 방법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SM의 해외 진출은 일본과 중국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고 양국을 넘어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소속 가수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10년 이상 축적된 해외 진출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SM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하나의 거대 시장으로 묶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 韓中日, 아시아 통합 시장 위한 협력 관계로 "굳이 미국과 견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중일이 단일 시장이 되는 순간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도 아시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견입니다만 한중일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메카 시티가 생겼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할리우드 영화도 아시아 스튜디오에서 제작될 수 있고 미국의 팝스타들도 아시아를 더 많이 찾겠죠. 기왕이면 정부의 지원으로 메카 시티가 서울에 조성되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중일이 단일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우선돼야 하는 일은 세 국가가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프로듀싱 능력, 중국은 인적 자원과 잠재 시장, 그리고 일본은 자본력과 마케팅으로 서로 다른 이점을 갖고 있는 만큼 각국이 하나로 뭉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아시아 시장도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한중일의 경쟁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김영민 대표는 한중일의 통합 시장 형성을 막는 한류의 현주소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한류를 아시아류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한류는 일부 스타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주변 국가들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어 걱정스럽습니다. 한류가 사라지는 건 우리로선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그 전에 한중일이 단일 시장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한류의 필요성은 무의미해지면서 한국의 콘텐츠는 남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죠." 김영민 대표는 아시아 통합 시장을 위해 먼저 한국의 강점인 프로듀싱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조속한 산업화와 관련 인프라 구축 그리고 시의성 있는 법제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머지않아 아시아가 세계 제1의 시장이 될 겁니다. SM은 아시아 통합 시장에 대비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그 일환으로 얼마 전부터 우리의 프로듀싱 능력(CT, Culture Technology)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그룹의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한중일 등 여러 국가 출신으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의 성공 모델 발굴을 SM이 해보려고 합니다"▶ 관련기사 ◀☞(아시아가 中心이다)⑩정태원 대표 "다작보다는 완성도가 관건"☞(아시아가 中心이다)⑧류시원 "나는 아직도 꿈 꾼다"☞(아시아가 中心이다)⑦`명랑소녀` 장나라의 대륙 정복기☞(아시아가 中心이다)⑥비, 이수만·박진영식 세계화의 合作☞(아시아가 中心이다)⑤亞와 美, K-POP 세계화 지름길은?
- (아시아가 中心이다)⑧류시원 "나는 아직도 꿈 꾼다"
- ▲ 류시원[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일본에서 이룬 단독공연의 꿈, 내년이면 100회 채워요." 2005년 일본 부도칸. 한국에서 온 한 미남 가수는 무대에서 큰절을 올렸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엔 이슬이 가득 맺혔다. 일본 도쿄 부도칸을 채운 1만여 팬들의 가슴도 저렸다. 이들의 볼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는 “꿈이 이뤄졌다”며 흐느꼈다. ◇ "한류 1세대 후발주자, 지금도 나는 진행형" ‘자국에서 실패한 스타가 외국에서 성공할 확률은? ’ ‘0.0000001%’ 요즘 유행하는 모 광고의 카피 얘기가 아니다. 바로 한류스타 류시원 이야기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웃 나라 일본에서 실현해낸 류시원은 사실 연기자로선 1994년 드라마 '느낌'을 시작으로 '프러포즈'(1997) '순수'(1998) '진실'(2000)을 거쳐 '아름다운 날들'(2001)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상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가수로서는 순탄치 못했다. 내놓은 음반은 예상외로 고전했고 콘서트 한 번 해보지 못했다. 한 번으로 부족해 거듭 음반을 내며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연예활동을 하면서 승승장구했던 그였기에 충격은 남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춘다. 2004년 일본 NHK에서 이병헌 최지우 류시원 주연의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방영되면서부터다. 류시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02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1세대 끝자락에 일본을 찾았다. 말하자면 후발주자였던 셈이다. 남들처럼 계기는 드라마였고, 시작은 팬미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류 관계자들은 류시원만한 스타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일본에서 세운 기록은 하나 둘 열거하기도 힘에 부칠 정도다. 일본에서만 싱글 11장에 정규 앨범 7장, 베스트앨범 2장을 더해 총 19장의 앨범을 냈다. 그리고 이 모든 음반을 일본의 공신력 있는 음악차트인 오리콘에 이름을 올렸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 여겼던 단독 공연의 열망도 일본에서 이뤘다. 2005년 부도칸 공연을 시작으로 5년간 일본 18개 도시에서 74회 공연을 펼쳤고 전회 매진을 기록해 총동원 관중만 45만 명에 육박한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도 류시원은 18회에 걸친 일본 전국순회공연을 진행 중이었다. 잠시 짬을 내 한국을 찾은 그는 "내년이면 100회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전 세계 두 번째로 큰 음반시장을 보유한 일본에서도 최정상급 아티스트만이 설 수 있다는 도쿄돔 공연도 한국인 남자 솔로가수 가운데는 비 다음으로 두 번째를 장식했다. 하지만 5만석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장을 2회 연속 채운 한국가수는 류시원이 유일하다. 일본에서 류시원의 인기는 'KPR'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만을 봐도 알 수 있다. 'KPR'은 '코리아 프린스 류시원(korea Prince Ryusiwon)'의 약자로 이곳에선 류시원이 이제껏 발매한 음반들을 비롯해 그가 한일 양국에서 출연한 드라마 DVD, 류시원 관련 기념품 등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 외국 스타의 건물이 생기기는 '류시원 빌딩'이 처음으로 이런 건물이 5층 규모로 도쿄 록본기와 간사이에 모두 세 개가 있다. 아무리 MD 시장이 발달한 나라라지만 쉬 믿기 어려운 광경임엔 분명하다. ▲ 류시원◇ 지피지기 백전불태···"끼와 열정, 한국인의 강점 살려야" 류시원이 파악한 일본은 "알면 알수록 한국과 다른 나라"다. 그곳의 엔터테이너 시장은 철저히 자본력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전문화되고 체계화된 마케팅 없이는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 류시원은 이 같은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체질개선이 필수라고 봤다. 신인의 자세로 새롭게 시작한 건 바로 그래서다. 성공에는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아름다운 날들'에서 부른 노래 '약속'을 일본어로 바꿔 선보였고 한국의 스타들이 출연을 꺼리는 오락프로그램에도 스스럼 없이 나갔다. “일본의 전 에이전시를 돌며 직접 인사를 다녔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먼저 인사부터 하는 등 신인처럼 일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일본 팬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또 팬미팅 등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를 줄이고 대신 자신만의 차별화된 공연으로 일본 대중과의 스킨십을 늘렸다. 노래와 토크쇼로 어우러지는 류시원의 콘서트는 최소 3시간, 길게는 4시간까지도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서트가 끝나는 말미에는 직접 캠코더를 들고 팬들 사이를 누비며 교감한다. 이 같은 열성에 지난 2009년에는 전국 투어 30회 공연을 마치고 허리에 탈이나 수술을 받기도 했다. 동시에 철저한 기획력으로 완벽을 꾀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일본 취향에 맞게 일본 스태프와 일을 했다. 국내에서 10년 넘게 소속사 없이 일했던 그는 일본에서 매니지먼트사와 처음으로 전속계약도 체결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저변확대와 더불어 인지도 상승의 효과를 동시에 불러왔다. 지난 2004년 일본에 진출해 올해 6년째를 맞은 류시원은 “데뷔 때만 해도 여성 팬들이 100%였는데 요즘엔 남성 팬들이 크게 증가했다”면서 “40~50대 중년이 주류를 이뤘던 여성 팬들의 나이 층도 10~20대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달라진 변화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류 위기에 대한 지적도 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어요. 한류 스타의 일본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현저히 줄었으며 방송관계자들의 한류스타 섭외도 맹목적이 아닌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런 점은 안타까운 부분으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국스타들의 일본진출에 대해 “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활동에 앞서 그 나라를 조사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인의 최대 강점인 끼와 끈기, 열정 여기에 현지화와 약간의 운까지 따라준다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 류시원의 상징색인 주황색 풍선을 들고 그의 무대에 연호하는 일본 팬들.▶ 관련기사 ◀☞(아시아가 中心이다)⑥비, 이수만·박진영식 세계화의 合作☞(아시아가 中心이다)⑦`명랑소녀` 장나라의 대륙 정복기☞(아시아가 中心이다)③`세계화 유전자` K-POP이 사는 법☞(아시아가 中心이다)②`공감` 아시아流 드라마 레시피☞(아시아가 中心이다)①韓 엔터산업 '이젠 아시아류다'
- 왜 다시 노무현인가
- [경향닷컴 제공] 이달 초 출간 직후 바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로 올라가 3주째 1위를 지키는 책. 바로 유시민이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다. 23일로 서거 1주기가 되는 현 시점에서 왜 다시 노무현인가.다른 대통령들이 군부, 운동가, 사상가, 최고경영자 출신이라면 그는 ‘시민’ 출신이었다. 그래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가 꿈꾼 세상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뒤 1988년 7월8일 첫 대정부질문에서 했던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떨어질 것을 알면서 지역주의에 맞서겠다고 부산시장, 부산 동구 국회의원 선거에 네번 도전해 ‘바보 노무현’이 됐다. 그 바보가 내는 울림에 사람들은 공명했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상고 출신 변호사인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5년 임기동안 그는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완성’에 도전했지만, 끝을 보지 못했다.임기를 마친 뒤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시민이 됐다. 장군차를 키우고 하천을 청소하며 찾아온 손님들에게,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던 할아버지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참모와 학자를 모아 다시 민주주의의 완성과 진보의 미래를 연구했다.하지만 평범한 시민으로 남을 수 없었다. 검찰은 그에게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했다. 그래서 지난해 5월23일 봉하마을 옆 부엉이 바위 위에서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500만명 넘는 조문객이 그의 영정 앞에서 옷깃을 여몄고, 지금 다시 인간 노무현, 시민 노무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목소리는 높았지만, 눈높이는 같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일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노 전 대통령이 희원했던 것 가운데 그나마 싹이 튼 게 하나 있다. 복지다. 그는 퇴임 후 “보수와 진보의 가치 논쟁에서 핵심 쟁점은 결국 복지와 분배”라면서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라고 아파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지방선거에서 복지가 주요 의제가 됐다. 진보 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성장을 외쳤던 보수정당에서도 제한적이지만 복지 확대를 주창하고 있다.하지만 그가 풀지 못한 숙제는 여전히 ‘산 자’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평생을 추구했던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완성’은 현저하게 후퇴했다. 국민에게 돌려주려고 했던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흔들리고 있다. 진보는 제 갈 길을 찾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유연화는 심화했고, 삶의 보루인 일자리가 무너졌다. 균형 발전과 남북 평화라는 국가적 과제는 그나마 구축됐던 토대마저 파탄 지경이다.노 전 대통령이 직접 시민에게 요구한 것도 있다. 그의 비석에 새겨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인식은 노 전 대통령이 시민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탄핵 심판이 기각된 뒤 복귀한 기자회견에서 “한밤중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의 물결을 봤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수준 높은 시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려면 앞으로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그럼 어디로 가야할까.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결국 유럽 북구식 복지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군대에서의 장거리 행군 훈련 같은 것이다. 언제든 낙오하는 병사가 생기는데, 내버려두지 않고 이송 차량이 따라와서 무사히 복귀시켜 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게 22년 전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이 국회 단상에서 외쳤던 ‘사람 사는 세상’이다.
- (미리보는 경제신문)상장사 1분기 이익 급증
-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다음은 5월19일자 경제신문 주요기사입니다.(가나다순) ◇매일경제신문▲1면-3D TV, 부품없어 더 못만들어요..LCD 등 가전업계 발동동-"천안함 결정적 증거있다"..조사단 물증 다수 확보-종편 보도채널 연내 선정..8월 심사기준 확정, 9월 공고-재무약정 대상이라니..화난 현대그룹 "주채권은행 교체"▲종합-글로벌 더블딥 가능성 낮지만 그리스 국가부도위험 높아져-유로존 재무장관 21일 2차 긴급회동-현대차, 車반도체 도전..SK텔레콤 텔레매틱스 상용화-반쪽짜리 R&D 개혁 우려..국가 R&D전략기획단 내달 출범하지만..▲국제-태국 유혈 시위 소강국면..군부 강제진압 미온적-미국 식품업체 소금과 전쟁중-아이폰 만드는 `폭스콘` 어떤 회사?..올해 4G 2400만대 제조-원유값 70달러대 붕괴 눈앞-GM, 1분기 3년만에 첫 흑자▲금융·재테크-재무약정 체결에 뿔난 현대그룹.."그룹 부채비율 견딜만" 반발-보험료 카드결제 앞으로도 가능▲기업과증권-구본무 회장 디자인경영..사용자 경험중심 디자인 당부-반도체 투자 하려는데 장비 없어요-미국 가는 재계. 한-미FTA 촉구-삼성 26조원 투자에 일본 화들짝-3G 이동전화 통화품질 SK텔레콤이 최고-롯데 삼성 한화 등 "세종시 늦어지면 대체용지 찾겠다"-유럽위기에 세계증시서 5153조원 사라져-증권사 자문형랩에 돈 몰리는데..소수종목 몰빵투자 주의해야-상장사 1분기 영업이익 152% 급증▲부동산-합정지구 용적률 20%포인트 높인다-시세보다 높은 경매 아파트 속출-LH, 미분양상가 최대 53% 할인-땅값 13개월째 상승..시흥 하남 상승률 높아◇서울경제신문▲1면-삼성전자, 애플 아이패드-전자책 겨냥..컬러 전자종이 개발한다-상장사 1분기 실적 호조..2분기 더 좋을듯-오바마 "한국정부 천안함 조사 신뢰"-저축은행 부동산PF 부실 `위험수위`..평균 연체율 10% 육박-마늘 양파 등 농산물 100% 산지 직거래..이마트 업계 최초로 도입▲종합-현대그룹 `재무개선 약정` 강력반발.."해운업황 좋아지고 있는데"-두달 연속 도요타 추월..현대-기아차 유럽 질주-종편 보도채널 선정 심사기준 8월 나온다-보금자리 일반공급도 강남 쏠림..내곡 세곡2 첫날 조기마감-EU, 삼성 등 반도체업체 가격담합 제재..9개사에 벌금 3억유로 물릴듯-은행세 뜨거운 논란.."안전망 역할" 대 중기 서민에 부담-애플 "스마트폰 연내 2위 도약"..아이폰 4G 내달 출시-임종룡 차관 "급격한 자본 유출입 선제적 조치 필요"-삼성SDS 등 대기업 소프트웨어사 "수출비중 5년내 매출의 20%로 확대"-민간소비 회복 기대감 커진다..백화점 택배업체 매출 늘고 가구당 소비지출도 지속 증가-전문직 등 고소득자 116명 소득 686억 빼돌려-대형 유통업체 불공정거래 서면조사▲금융-은행 외화차입금 관리 초비장 "유로존 재정위기 불똥 튈수도"-"ELD 투자, 수익률 눈높이 낮췄어요"..3개 시중은행 분석-기업은행 외부인사를 지점장에..파격 `인사실험`▲국제-버핏 가치투자 포기했나..현금 부족해 보유주식 대거처분-"구글 개인정보 무단 수집"..독일 미국 조사 나설듯-EU "신용평가사 관리감독 강화"-태국 "반정부 시위 장기화로 경제 타격"-룰라 지지율 고공행진..성장 복지 두 토끼 잡아▲산업-SK `자원부국의 꿈` 영근다..연내 1일 원유생산량 5만배럴 돌파 전망-구본무 LG 회장 "편안함 즐거움 주는 고객중심 디자인 만들라"-한국 차 내수시장 세계 12위-국내 휴대폰업계 `차이완 주의보`-LG IT 계열사 전열 재정비 나섰다..전자 MC사업본부 조직개편, LGT는 사명변경 등 脫통신 가동▲증권-내수주 조정장 대안 부상-그룹주 펀드 돋보이네..시장대비 수익률 양호-주가 빠져도 공모청약 열기 여전..인피니트헬스케어 증거금 2조 이상 몰려▲부동산-경매시장 고감정가 주의보..입찰까지 4~6개월간 소요 따라-청라지구 IHP(인천하이테크파크) 개발 탄력 붙을듯-영종지구에 유럽형 복합쇼핑몰 들어선다-월드건설 사장 "1년내 꼭 경영 정상화 시킬 것"-내달 수도권 1만7829가구 공급..작년보다 60% 급증◇한국경제신문▲1면-도요타 1000불 팔아 10불 벌때 현대차 83불 벌었다-오바마 "한국방위 책임 지겠다"-중국경제 정점 찍었나..원자재값 급락, 제철소 일부 감산 돌입-고소득 전문직 세무조사 116명에 323억원 추징▲종합-MB앞에서..장관들 친서민정책 격론-"종편사업자 연말까지 선정"..최시중 위원장 발표-상위 10%가구 월소득 1000만원 넘었다▲경제·금융-종부세, 재산세로 통합..총액 계산해 지자체별로 나눠 거둔다-서민금융 정책 중구난방..지원자금 종류만 23가지-공정위, 대형 유통업체 실태조사▲국제-그리스 구하기 뒷수습 못하는 유로존..재무장관회의 21일 재소집-일본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중국본토서 판다본드 발행-"그래도 달러"..안전자산에 쏠리는 자금-구글, 아프리카 선점 작전 돌입..월드컵 앞두고 시장확대 겨냥▲산업-구본무 회장, 디자인 특명.."고객의 기대 뛰어 넘어라"-현대, 재무구조 개선약정 유감-수입차 연 10만대 시대..유통망 확장 등 공세▲생활경제-신세계, 서울 도심에 연수원 짓는다-원할머니보쌈, 놀부 따라 잡겠다▲상품 원자재-국내 고철가격 3개월만에 하락 반전-휘발유 경유값 내림세 이어질듯-외식업계 특수에 채소값 급등..일주일새 양배추 32%올라▲부동산-강남 재건축 실거래가 최고 1억8000만원 하락-지구단위계획 10년만에 대폭 손질-어? 경매 감정가가 시세보다 비싸네-땅값 13개월째 상승..광명 시흥 `최고`▲증권-불안한 증시..단타매매 판친다-송경철 금감원 부원장 "부실 증권신고서 수리 거부할 것"-술 담배 카지노..죄악주에 `햇살`-삼성전자 영업익 일본전자 빅5의 2배 넘어-상장사 1분기 순이익 9배 급증..하이닉스 대한항공 등 흑자전환-"단기 유동성 급증..아시아 신흥국엔 불안요인"
- `아바타` 캐머런 감독, "앞으로는 3D가 대세"(일문일답)
- ▲ 제임스 캐머런 감독(사진=SBS)[이데일리 SPN 김영환 기자] `아바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자신의 영화로 전세계에 열풍이 분 3D 시장에 대한 소견을 전달했다. 캐머런 감독은 13일 오전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비스타 홀에서 진행된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해 `상상력과 기술 신(新) 르네상스를 맞다`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로 `아바타`가 이룩한 3D 기술력을 소개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보다 상세한 질문이 쏟아졌고 캐머런 감독은 이에 대해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는 "앞으로 대세가 3D가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고한 생각을 전했다. 다음은 캐머런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 3D가 미래 영화의 표준이 될 수 있을지. ▲ 컬러 TV가 도입된 이후에도 이런 논란은 있었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전환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1~2년 사이에 무성 배우 일부의 생명이 끊겼다. 컬러가 표준이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39년 처음 컬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컬러 영화가 표준이 된 지 25년이 소요됐다. 3D 시장이 정착하는 데는 훨씬 짧은 시간이 들 것이다. 할리우드에도 3D 제작에 관심이 몰려있다. 영화의 제작 기간도 짧아질 것이다. 3D TV 역시 그렇다. 지상파나 케이블 TV도 3D 전략을 갖고 있다. 50~60인치 대형 스크린에서의 3D의 몰입감은 2D는 따라갈 수 없다. 스포츠를 3D로 중계하는 프로젝트는 결과가 좋았다. 가능할 수 있을지 증명하는 단계였는데 개별 스포츠마다 경험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기존 촬영 기법에 3D를 덧입혀 중계할 수 있었다. - 3D의 문제점은. ▲ 두통과 눈의 피로를 느낄 수 있다. 또 프로그램 숫자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카메라와 제작 인원도 부족하다. HD TV로의 전환은 쉬웠다. 기술적 변화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D 전환은 거대 규모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TV는 노출 시간이 길기 때문에 눈의 피로와 두통 없이 오래 시청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게임도 앞으로 3D 보급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드라마나 코메디의 경우에는 나는 개인적으로 `아바타`에 드라마틱한 장면을 많이 만들었다. 3D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더욱 강하게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코메디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지금까지 본 3D 제작물, 수중 다큐멘터리나 콘서트 모두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 2D를 3D로 변환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 2D를 3D로 바꾸는 것은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것들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 `타이타닉`을 2D에서 3D로 바꾸는 데 1년이라는 시간과 1200만 달러의 비용을 생각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확실히 바꿔야 할 것이다.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죠스` `터미네미터` 등 고전영화에 국한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3D로 촬영하라. - 한국 영화 산업이나 한국 3D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솔직히 한국 영화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가장 최근에 본 한국영화는 `쉬리`다. 김윤진이 "한국에서 `타이타닉`은 2위고 `쉬리`가 관객수 1위"라고 말해 `쉬리`를 봤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제(12일) `해운대`의 감독(윤제균)을 만났다. `해운대`도 3D로 변환한다는데 흥미진진할 것이다. - `아바타2`는 바다에 관한 이야기라던데. ▲ 1편은 제작에 4년 반이 걸렸다. 2편은 3년 정도 소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극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날짜는 그정도로 예측한다. 당장 언제 개봉한다고는 발표 못 하지만 곧 2편 개봉 날짜를 공식 발표할 것이다. 2편은 판도라 행성의 외계 해양 생태계 관심을 둔다. 나비족이 어떻게 해양 생태계에 적응하고 있는지 중심으로 그릴 예정이다. `아바타`에서 3D 모션 캡쳐 기술을 적용했는데 2편에서는 다른 기술 선보이기 보다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전할 목표가 있다. 1편보다는 조금 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3D 기술 자체의 문제점이나 장애요소는 없나. 또 그 해결책은. ▲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관객이 볼 때 불편하다. 3D의 역효과가 있는 만큼 잘못 만들면 시장 자체가 잘못될 거라는 판단 하에 테스트를 많이 했다. 더구나 영화는 2시간이지만 TV는 시청자에게 수천 시간 노출된다. 제대로 기술이 적용돼야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극장에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화면 밝기의 문제다. 3D는 선글라스 끼고 보기 때문에 어두워진다. 2D만큼은 밝게 볼 수 있게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2번째 문제는 프레임 수다. 스크린에서 24프레임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느리다. 조금더 빠르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 영화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 성공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좋은 팀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배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스텝을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중요한 요소는 기술 혁신과 인간의 이야기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창의력이 없이 기술만으로 승부하는 결정은 잘못이다. 어느 정도가 균형인지 찾아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감동이나 이야기를 앞지르면 안된다. -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은?▲ 영화 감독이니 `아바타` 후속으로 선보일 또다른 영화에 관심이 있다. 중요한 소망 중 하나는 환경 문제에 관한 것이다. 브라질이나 캐나마 북미 지역 원주민 권리나 지구촌의 에너지 정책 등에 관심이 크다. 전세계 어느 나라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후, 에너지 이런 것에 영화인으로 도움을 줄 방법을 찾고 있다. - 경쟁자를 누구인가?▲ 한국적인 질문이다. 마음에 든다.(웃음) 영화인들 모두 그렇겠지만 경쟁자는 자기 자신이다. 본인이 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자기와 경쟁이다. 다른 영화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다른 작품으로 개선할 여지를 찾긴 하지만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 엘비스 프레슬리도 트럭을 몰았다. 트럭운전사로 있으면서도 영화의 꿈을 꾸었나. ▲ 엘비스가 트럭을 몰았다는 이야기는 몰랐다. 노래는 나보다 잘한다.(웃음) 그 때도 항상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야기를 쓰면서 캐릭터를 구상했다. 아이 때부터 감독의 꿈이 있었지만 감독이 될 방법을 몰랐다. 저예산 영화에 참여하며 시작했다. `아바타`의 스토리는 1995년에 생각했다. 3D로 제작할지는 생각 못했었다. 기술 제약 때문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이 되면서 3D가 시장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2005년에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3D가 미처 성숙 안돼 시장 키우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국내 삼성과 LG 등 대기업의 3D 기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 한국의 대표적인 2개 회사가 3D 비 DVD 시장 등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판매를 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한국에 대해 자세히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얼리어답터 성향으로 최첨단 시험을 즐긴다. 때문에 3D TV 시장을 키우는 데도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위성 채널로 3D 방송을 할 것으로도 알고 있다. 다만 컨텐츠가 필요하다. 방송사나 영화 제작사에서 제작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 편광안경 없이도 3D 감상이 가능하나. ▲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지금도 가능하다. 2시간 정도지만 관객의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가정의 3D TV는 노출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3D TV 시장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여러 명의 시청자에게 선글라스 없이 3D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될 것이다. 3~4년 내에는 힘들 것으로 본다. 현재는 3D 기술의 과도기다. 가장 먼저 기술적으로는 랩톱부터 실현될 것이다. 싱글 유저에 맞게 초점이나 밝기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태블릿 등으로 시작해서 점점 TV로 발전할 것이다. - 앞으로 또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보나? ▲ 새로운 것? 앞으로 기대한다. 생각해보면 볼 때 들을 때 우리는 항상 3D로 느낀다. 공간적으로 지각한다. 가장 먼저 소리가 진화했고 컬러 화면과 와이드 화면이 이어졌다.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소리를 실제 공간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보는 것도 3D에 이르렀다. 4D나 5D, 홀로그램 시장이 개척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3D는 아직 개선할 것이 많다. 인터넷과 TV 등에 적용해야 하는 기술, 퀄러티 개선, 화질, 밝기 등 지금보다 개선할 여지가 많다. 10년 정도는 3D 개선에도 기술적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 기술은 당장은 어렵겠지만 내가 미처 모르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 영화 감독으로서 가장 원초적인 꿈은?▲ 꿈꾼 건 지금까지 실현했다. 마지막 꿈은 화성에 가는 것인데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아티스트로서 열망은 창의력을 인류 문명이 직면한 문제, 환경, 지구 온난화 등 개선에 힘보태는 것이다. - 2D를 3D로 변환하는 것이 경제적이란 의견에 대해서는. ▲ 그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2D 변환이 경제적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숫자만 봤을 때 그렇다. 2D와 3D의 경제적 효과를 비교하는 것은 정확한 비교 아니다. 처음부터 3D로 만들었을 때 쓰는 모션 캡쳐 등을 2D에서 완벽한 변환으로 이루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비용도 크다. 또 처음부터 찍는 것과 차후 변환은 창작하는 사람의 창조성을 빼앗는다는 문제가 있다. `일단 흑백으로 찍고 나중에 컬러로 변환해준다`고 한다면 그렇게 찍고 싶은 사람은 없다. 창의력이 제한된다. 물론 2D의 변환이 필요한 영역도 있다.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인디아나` 시리즈 등은 3D로 변환한다면 새로울 여지가 있다. 변환하는 회사는 잘 모른다. 기술력을 살펴보고 싶다. 2D를 3D로 변환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수백명의 아티스트가 작업한다. 2D에서 3D로 변환하는 마법의 상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맡은 요소 제대로 해야 질을 높일 수 있다. 1~2년 후에는 변환 이야기 안할 것이다. 수많은 콘텐츠를 3D로 변환한다면 수천시간이 소요된다.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말이 안 된다. 라이브 촬영시 3D로 제작하는 것이 답이다. 단가 자체도 점점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 캐머런에게 가족의 의미는. ▲ 아내인 수지와 같이 살고 5명의 아이가 있다. 가족은 중요하다. `아바타`가 시간 많이 걸려 원하는 만큼 함께 보내지 못했다. 올 여름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영화를 통해서 감독이 되고 싶은 아이들과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좋은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바타`도 자연 문명 파괴 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과를 보고 `아바타`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 캐머런 감독의 다큐멘터리? ▲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 매우 지루하다.(웃음) 흥미로운 주제가 많다. 물론 제작된다면 영광이다. 인터뷰에 응할 수는 있지만 재미있을 것 같진 않다. 만들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답변은 성심성의껏 하겠다. - 끝으로. ▲ 기조연설에서 내 생각은 충분히 전했다. `아바타`로 3D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3D는 내가 개발한 것이 아니다. 이전에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다만 3D 파도의 물꼬를 `아바타`가 텄다고 본다. 3D 대세가 되고 가정이나 영화 등에서 보편화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많은 회사들이 성공과 도산의 갈림길에 설 것이다. 여러 미디어나 회사들이 고민할 거리가 있다. 내가 축적한 노하우나 기술에 대해서 공유할 용의가 있다. 닫아놓을 생각은 없다. 3D 기술을 활용해 양질의 컨텐츠가 공급되도록 하고 싶다.▶ 관련기사 ◀☞`해운대` 윤제균 감독 "캐머런, 3D 촬영 도움 약속"☞`아바타` 캐머런 감독, "한국인은 얼리어답터"☞제임스 캐머런, "김윤진 소개로 한국영화 `쉬리` 봤다"☞캐머런 감독, "`아바타2` 개봉시기 곧 공식발표할 것"☞제임스 캐머런 감독 "미래방향 3D가 주도"
- '한물간 스타' 김국진의 고백이 특별했던 이유
- ▲ 김국진[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개그맨 김국진의 인생 고백이 화제다. 김국진은 지난 2일 방송된 KBS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강연하며 굴곡진 자신의 삶을 롤러코스터에 빗대 담담하고 솔직하게 털어놔 감동을 안겼다. 이날 김국진을 비롯한 '남자의 자격' 일곱 남자에게 주어진 미션은 '남자, 청춘에게 고함'이었다. 인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복해서 걸어온 그의 진솔한 인생고백은 뜻밖이어서 눈길이 갔고, 진심이 담겨 감동의 크기를 더했다.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이날 방송의 주제처럼 그의 강연이 저마다의 꿈을 키워가는 우리 시대 청춘들에 더없이 값진 양분이 됐을 거란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잊힌 과거가 됐지만, 한때 김국진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맡는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쳤고, 생각 없이 뱉는 말 하나하나가 모두 유행어가 됐다. 심지어는 그의 이름을 딴 빵(국찌니빵) 조차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김국진은 그 누구도 누려본 적 없는 최고의 전성기를 맛봤고, 거짓말처럼 또다시 초고속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날 김국진은 "인생이 한마디로 버라이어티"라며 "20년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모든 것에 실패했다. 사업, 여러분이 아는 그것, 골프 프로테스트 15번 연속 탈락···.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내려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고 사업실패, 이혼 등으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그리고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등으로 재기에 나선 요즘을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단계"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국진은 그러한 인생을 통해 스스로 깨친, 더없이 값진 교훈 하나를 전하는 것으로 이날 강의를 갈음했다. "아이는 걸음을 걷기까지 2000번을 넘어진다고 한다. 여러분은 2000번을 넘어지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또 넘어질 것이다. 일에 넘어지고, 학업에 넘어지고, 사랑에 넘어지고. 그렇지만 여러분의 롤러코스터에는 보이지 않는 안전 바가 있다. 롤러코스터는 안전 바 없인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 그러니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롤러코스터를 즐기듯이 인생을 살라" 사실 김국진은 바닥으로 치달았던 '5년간'의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단 한 번도 먼저 꺼낸 적이 없다. '꺼리'가 되는 만큼 그의 과거사를 듣고자 공을 들인 기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김국진은 이 모든 제안을 거절해왔고, 웃음의 소재로 포장되기 쉬운 방송에서는 더더욱 언급을 삼갔다. 과거 한 후배 개그맨은 "과거 아픔에 관한 이야기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듣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오랜 상처를, 그것도 스스로 드러내고 나선 것이다. 이제 곧 사회로 나갈 청춘들에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을 게다. 김국진의 고백은 폭로 일변도로 치닫는 최근 예능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강은비 유인나 등 스타들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신인 또는 무명시절 유명스타, 소속사 관계자에게 대본으로 맞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논란을 빚었다. 충격적인 고백 뒤엔 어김없이 가해자를 짐작게 할만한 내용이 따라붙었다. 화제를 낳은 측면에선 김국진의 그것과 같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확연히 달랐다. 실체가 불분명한 폭로는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등 독이 됐고, 진실한 고백은 살아갈 힘이 되는 등 약이 됐다. 김국진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화제와 동시에 감동을 안겼고 이혼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도 상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여러분이 아는 그것'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배려와 진중함도 보였다. 김국진의 고백이 전파를 타던 날, 연예가는 온통 '한국의 브란젤리나' 커플로 이날 결혼한 장동건-고소영의 이야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여론의 한 지표가 되는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선 '한물간 스타' 김국진이 1위였다.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국진의 인생고백에 감동을 받았다는 호평의 글이 쇄도했다. 김국진의 강연을 풀버전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요청도 줄을 이었다.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진실되게 전해 재미와 함께 감동을 안긴 개그맨 김국진. 한탕주의식 폭로가 난무하는 요즘, 그의 고백이 더욱 값지고 특별하게 여겨진 이유다.▶ 관련기사 ◀☞'남격' 김국진 강의 풀버전 공개될까?☞폭로의 장으로 변질된 예능프로☞강은비 "이수경과 무관, 질타는 내게 하라" 논란 해명☞김국진 "나는 개그계의 '수비형 미드필더"[인터뷰]☞김국진, 방송3사 예능프로 섭렵…'조용한 재기' 성공?
- [조광래 감독과 딥토크1] "재능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송지훈 기자)[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본래 기획 취지는 조광래 경남FC 감독을 만나 '인간 조광래'의 향기를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로 명성을 떨쳤고, 감독으로 새출발 한 이후에는 '스타 조련사'로 주목받은 인물에 대해 담백한 '사람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진행 과정에 경남이 창단 이후 처음 K리그 1위에 오르는 경사가 겹치면서 본의 아니게 '축승(祝勝) 인터뷰'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때문에 수많은 '조광래 찬양' 류의 기사 중 하나로 비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어쨌든 좋다. 축구로도 사람으로도 조광래 감독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볼만한 인물이었으므로. ◇ 축구 늦둥이 조기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두 세 살 때부터 자녀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비칠 지 모르겠지만, 조광래 감독이 축구선수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다. 유행어를 빌어 표현하면, '축구 늦둥이'였던 셈이다. "사실은 진주 봉래초등학교 다닐 때 볼을 찼어. 자랑같지만 경남 지역 또래 아이들 중에 내가 제일 낫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근데 그때 내가 공부도 좀 했거든. 진주에서 제일 좋은 중학교(진주중)로 시험을 쳐서 들어갔는데, 축구부가 없는 거야. 캄캄한 밤에도 혼자 연습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지만, 어떻게 하겠어. 아쉬움은 가슴에 묻어놓고 공부를 파고들었지." 간혹 방과 후에 다른 반 아이들과 볼을 차는 것으로 축구 갈증을 달래던 우등생 소년이 본격적으로 축구화 끈을 동여맨 건 진주고 2학년 진학을 앞둔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볼을 찬 선수들 중 진주고 축구부로 진학한 친구들이 "볼 잘 차는 아이가 한 명 있다"며 감독에게 조광래를 추천했고, 테스트를 거쳐 입단이 결정됐다. 축구를 사랑한 소년이 4년 간의 외도를 마치고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한 순간이었다.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경남FC)◇3개월간의 '봉래산 특훈' 축구부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차고 맹활약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드라마와는 조금 달랐다. 수년 동안 공부에만 전념하던 학생에게 갑자기 시작한 축구부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재능만 가지고 이뤄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소질은 있었어. 초등학생 때도 동네 아저씨들이랑 같이 볼을 차곤 했는데, 체력은 모자랐어도 기술은 내가 제일 좋았거든. 솔직히 축구부 가입할 땐 기대도 컸고. 그런데 운동과 담 쌓고 지낸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어. 특히나 선수로 뛰기엔 체력이 너무 모자라더라고. 당연한 이야기지." 당시 '신입 축구부원 조광래'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간단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 체력을 기르는 것. 줄넘기를 하나 사서 매일 새벽 진주고 뒤에 솟은 비봉산에 올랐다. "비봉산에 올라서 능선을 세 개 넘으면 모교인 봉래초등학교가 나와. 그땐 봉래국민학교지. 산 중턱에서 줄넘기도 하면서 그렇게 3개월을 죽기살기로 버텼어. 오전 5시에 일어났고, 비가 와도 쉬지 않았지. 그렇게 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체력이 올라오더라고. 다른 애들은 내가 새벽 운동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때쯤 비로소 아침 운동하겠다면서 슬슬 숙소에서 나오곤 했지." '봉래산 특훈'의 효과는 놀라웠다. 타고난 소질에 준수한 체력이 뒷받침되자 '축구선수 조광래'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입단한 지 5개월 만에 주전으로 나설 수 있었고, 이내 진주고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후 '조광래의 진주고'는 전국대회에서 세 차례나 우승하며 학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연세대 진학 이후에도 1학년때부터 주전을 꿰찼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예도 맛봤다. 3개월의 특훈이 가져다 준 놀라운 변화는 이토록 컸다. ◇ 재능만으론 곤란하다 지난 발자취를 흐뭇한 표정으로 들려주던 조광래 감독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남모를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당시는 맨땅에서 경기를 할 땐데, 잔디 위에서 드리블 훈련을 하면 실력이 빨리 늘어날 것 같더라고.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다 잔디 위에서 볼을 차잖아. 그래서 밤에 몰래 학교를 찾아가서 아무도 없는 잔디밭 위에서 볼 다루는 훈련을 했지. 잔디가 많이 망가졌으니 걸렸다면 물론 정학감이었을 거야.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노력들이 선수로서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 위험과 고생을 무릅써가며 굳이 남들이 하지 않는 훈련 방법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광래 감독은 '재능만 믿어선 곤란하기 때문에'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내가 축구에 재능이 있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 워낙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남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힘든 상황을 끈질기게 버텼고,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건 그것 하나뿐이었던 것 같아. 우리 선수들한테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해. 재능만 가지고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 조광래 경남FC 감독(사진_송지훈 기자)▶ 관련기사 ◀☞[조광래 감독과 딥토크4] "내 꿈은 기술축구의 완성"☞[조광래 감독과 딥토크3] "나는 축구 외곬수"☞[조광래 감독과 딥토크2] "조광래 유치원, 자랑스럽다"
- 윤정희, "예순 일곱,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인터뷰)
- ▲ 윤정희[이데일리 SPN 장서윤 기자] "이창동 감독이 '연기를 하지 말라'고 주문하더라구요. 배우가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해보고 나니 새로 탄생한 듯한 기분이에요"(웃음)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총 330편을 찍고 325편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윤정희(66)는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한 평생을 영화계와 함께 해 왔다. 그런 그가 16년만의 스크린 복귀작 '시'(감독 이창동)를 촬영하면서 "'제 2의 데뷔작'이라고 할 만큼 오히려 데뷔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는 손자와 힘겹게 살고 있는 노년의 여성이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 후 예기치 못한 사건에 맞닥뜨린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가미돼 사실감을 더하고 있는 영화다. 2년 전 시나리오 집필 당시부터 배우 윤정희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 감독은 "'시'의 여주인공 미자는 실제 윤정희와 매우 비슷한 면이 많다"고 귀띔한 바 있다. 윤정희 또한 이런 면에 공감한다. 그는 "감성이 풍부하고 들꽃에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면은 영화 속 미자와 내가 닮아 있다"며 "나는 구름 속의 달을 봐도,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봐도 아직도 신기하다. 이런 날 두고 가족들은 '꿈 속에 산다'고 종종 놀리기도 한다"며 웃음지었다. 이창동 감독이 그간 철저히 사실감 있는 연출 스타일을 고수해 온 만큼 윤정희는 이번 작품에서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현을 해 줄 것을 주문받았다. 윤정희는 "울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감정을 발산하는 연기는 오히려 쉽지만 '연기 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건 결코 녹록지 않았다"라며 "차츰 차츰 마음을 열고 미자의 상황 속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 윤정희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윤정희는 "작품을 볼 때 황금종려상도 기대해 볼 만하다"며 "사실 지인과 수상을 두고 벌써 와인을 걸고 내기를 했다"고 귀띔했다. 오랜만에 밟은 고국 땅에서 한참 어린 '팬'들을 갖게 된 것도 경이로운 경험이다. 윤정희는 "며칠 전 남편(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대구 연주회에 따라갔는데 고등학생 쯤 되는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서 '선생님 '시' 꼭 볼게요' 라면서 한참을 떠들다 가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라며 "내가 한참 영화 찍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아이들인데 말이다"라고 웃음지었다. 1972년 영화배우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홀연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윤정희는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 이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1년에 1~2편 꼴로 영화에 출연했다. 유학 당시에 대해 윤정희는 "우연히 영화배우가 된 후 개인생활 자체를 잃어버렸었다"라며 "마치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내 세계를 찾고 싶어서 떠난 곳이 프랑스였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간 곳에서도 다시 시작한 공부가 바로 '영화학'이었다"(웃음)라며 "유학생활은 내가 영화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고 들려주었다. 벌써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윤정희는 아직도 꿈을 꾼다. 나이 아흔을 넘겨서도 백발을 휘날리며 카메라 앞에 서는 꿈이 그것이다. "청룡영화상 심사할 때 신인상 후보로 만났던 봉준호, 홍상수, 박찬욱 감독이나 송강호같은 배우들이 이제는 한국영화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언젠가 내가 필요할 때가 있다면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나는 단점도 많지만 최대 장점은 희망과 꿈이 많다는 것이니까"(웃음) 물론 40여년 가까이 꾸준한 사랑을 보여주는 오랜 팬들에게는 특별한 애틋함이 자리한다. "예전 꿈을 되찾고 싶어하는 우리 세대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30년 전 그랬듯 이번 작품도 극장을 한바퀴 뱅뱅 돌도록 줄도 늘어섰으면 좋겠고…"▲ 윤정희 (사진=이대선 수습기자)▶ 관련기사 ◀☞이창동, "'시', 관객들에게 질문 던지고 싶은 작품"☞윤정희, "영화 '시', 40여년 만에 만난 제2의 데뷔작"☞[포토]윤정희, '칸 영화제 경험한다는 자체로도 큰 의미'☞[포토]'한국 여배우의 전설' 윤정희, '많이들 오셨네~'☞윤정희, "심은하 이른 은퇴 아쉬워…."
- '대 실망쇼'는 '개그콘서트'?···엽기+발랄했던 두 시간①
- ▲ 가수 루시드폴 [이데일리 SPN 양승준 기자] 완벽한 미션 '실패'였다. '안테나뮤직배 보컬 경연대회-대 실망쇼'(이하 '대 실망쇼')는 관객들에게 단 1%로의 실망도 안겨주지 못했다. 오히려 관객들에게 '대 실망쇼'는 웃음과 발견의 '신천지'였다. 정재형·유희열·루시드폴(본명 조윤석)·페퍼톤스·박새별 등 안테나 뮤직 식구들은 지적인 외피에 숨겨진 개그 본능을 마음껏 발산했다. 유희열의 농익은 입담과 '저질' 보컬 실력 그리고 페퍼톤스의 촌스러운 '쾌남' 변신에 관객들은 1년 치 웃음을 소비했다. '박사 가수' 루시드폴의 로커 변신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망가져야 괜찮아'를 모토로 안테나뮤직 소속 가수들은 의상과 음악적 도발(?)을 두 시간 남짓의 공연 내내 쉬지 않았다.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상아트홀에서 열린 '대 실망쇼' 공연장에는 '엄숙'·'뮤지션' 등의 단어는 발 부칠 틈이 없었다. 다음은 3일간의 공연 동안 1,200여 관객들이 웃다 지친 '대 실망쇼'의 현장 스케치다. ◇'언발란스의 극치'..루시드폴 한복 입고 '오 사랑~' "악!" 루시드폴이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의 함성은 극에 달했다. 루시드폴이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냥 한복도 아니었다. 그는 도포는 물론 상투를 틀고 갓을 썼고 고무신도 챙겼다. 그리고 '고등어', '알고 있어요' 등을 기타로 연주하며 '옹알이 창법'으로 노래를 읊조렸다. "풋!". 객석에서는 중간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저는 음악으로 장난치지 않습니다"라고 조윤석은 재치있게 응수했다. "황사·화산재 그리고 유희열·정재형을 조심하세요"라는 사려깊은(?)멘트도 잊지 않았다. ▲ 가수 루시드폴과 이적◇"록 인 더 스카이!"...루시드폴 로커 파격 변신 '음유시인' 루시드폴은 '대 실망쇼'에 없었다. 그는 공연 내내 철저히 망가졌다. 루시드 폴의 마지막 무대. 갑자기 1980년대 슬래시(Slash) 메탈에서나 들었을 법한 속주 기타 연주가 스피커를 관통했다. 루시드 폴은 스탠드 마이크를 휘어잡고 '헤드 뱅잉'을 하며 로커로 변신했다. 자신의 노래 '봄 눈'을 록 버전으로 편곡해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는 무모한 도전도 서슴지 않았다. 심사위원 이적도 루시드 폴의 도발에 폭소를 감추지 않았다. 루시드폴 공연 도중 휴대전화로 루시드폴의 엽기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무대 한쪽에서 조용히 심사하던 이적은 루시드폴이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자 손을 흔들며 그의 무대에 열광했다. 루시드폴과 이적 버전의 '닥터피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가수 유희열◇유희열, 수건 두르고 부장님 회식 포스 '대 실망쇼'는 유희열에 '보컬의 꿈'을 키워준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토이 활동 중 객원가수의 그늘에 가려 차마펴지 못한 가수의 욕망을 3일간의 공연에서 마음껏 표출했다. 하지만, 다소 무모했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유희열은 김동률 곡과 이적의 '레인'이란 노래를 부르며 꺾기 창법을 시도해 "아!"라는 관객들의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냈다. '저질 바이브레이션'은 또 하나의 민폐였다. 하지만, 열의만은 뜨거웠다. 성시경의 '미소천사'·'뜨거운 안녕'·'좋은 사람'등을 부를 때는 땀을 흘리면서도 곡을 완주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이를 안타깝게 본 이적은 공연 도중 유희열을 부축해 무대 뒤로 그를 데려가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적은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다 힘들었다. 어디까지가 웃기려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열심히 하는건지 모르겠다"며 촌평했다. ▲ 그룹 페퍼톤스◇'DMC' 재연? 페퍼톤스, 탁월한 패션 감각과 무대 페퍼톤스의 무대는 마치 일본 만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DMC)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스위트팝을 사랑하는 뮤지션이 악마 같은 여사장에게 속아 데쓰메탈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결성해 극과 극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 이날 페퍼톤스는 '샤방샤방'한 자신의 음악을 내려놓고 1970년대 '복고남'으로 변신했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가죽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른 페퍼톤스는 오른쪽 가슴에는 컬러풀한 빅 리본으로 패션 센스를 뽐냈다. 해당 의상은 '2010 S/S 파리 쁘레따 구리떼' 제품 중 하나라는 후문. 믿거나 말거나. ▲ 그룹 페퍼톤스'열혈남아'들의 무대 매너는 열정적이었다. 반면, 연출은 조악했다. 로커의 포스를 내기 위해 무대 앞에 선풍기를 틀었지만, 풍력이 약해 셔츠와 머리는 크게 흩날리지 않았다. NG였던 셈. 그러나 두 남자는 스스로 셔츠를 흔드는 재기를 발휘하며 무대 위에서의 '간지'를 연출했다. 그리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시 오브 러브'(Sea Of Love)와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 이적의 '다행이다'를 코믹하게 불러 관객들의 축 처진 웃음 세포를 자극했다. 페퍼톤스 멤버 이장원은 "창피함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1등을 향한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는다"고 욕심을 보였지만 이적은 "자기 노래를 제일 못한다"며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 가수 정재형◇ 정재형이 부른 혜은이의 '열정'은? "피아노 음반내고 첫 공연이었는데..." 안테나 뮤직의 맏형 정재형의 '대 실망쇼'도 성공적이었다. 마술사 모자를 쓰고 제레미 스콧이 만든 듯한 트레이닝복 같은 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 정재형의 공연은 반전의 묘미가 도드라졌다. 피아노 건반 위를 격정적이면서도 기품있게 오가던 그의 손에는 클래식 연주가 아닌 혜은이의 '열정'이 흘러나와 관객들은 순식간에 폭소했다. 그리고 곡 도중 정체불명의 불어로 애드리브를 해 관객들은 자지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말미에는 '오솔길'과 '달빛' 등 자신의 피아노 연주 새 음반에 수록된 곡을 '정상적으로' 연주해 관객들을 감동케 했다. (2편에 계속)▶ 관련기사 ◀☞"유희열·정재형 반짝이 브라더스"···'대 실망쇼' 비하인드②
- 베스트일레븐, 태국 모겐족 어린이에 축구용품 전달
- ▲ 증정식에 참석한 신현원 감독, 오정석 베스트일레븐 발행인, 강성민 선교사(왼쪽부터, 사진_베스트일레븐)[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발행인 오정석)이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2 - 모겐족의 월드컵'(감독 신현원) 속 주인공인 모겐족 어린이들에게 축구용품을 기증하며 격려하는 행사를 가졌다. 오정석 베스트일레븐 빌행인은 22일 오후4시30분 동대문 싸카스포츠 매장에서 용품 증정 행사를 갖고 태국에서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활동 중인 강성민 선교사를 통해 모겐족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축구용품을 기증했다. 베스트일레븐 측이 모겐족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물품은 유니폼 22벌, 축구화 22켤레, 축구공 20개, 라면 20박스 등으로 싯가 500만원 상당이다. 모겐족은 태국 해안가에 살고 있는 바다집시 부족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2 - 모겐족의 월드컵'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모겐 족 어린이들은 열악한 경제 사정 탓에 맨발로 축구를 즐기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선보여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한 바 있다. 오 발행인은 "모겐족 어린이들을 다룬 영화를 보며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공을 차고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언급하면서 "축구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스포츠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겐족 어린이들을 대표해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 선교사는 "태국에서 유소년들을 대상으로 축구 클리닉을 열고 있는데, 100번째 축구팀이 바로 모겐족"이라며 "축구를 통해 그들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도 너무나 감동적"이라는 말로 기쁨을 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 발행인과 강 선교사를 비롯해 영화를 연출한 신현원 감독, 오근석 싸카스포츠 사장, 권혁일 싸카스포츠 전무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