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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오,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오픈ㆍ연재 작가 모집
-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브런치 로고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가 좋은 작가-독자간의 연결과 창작자 생태계를 한층 확대한다.카카오(대표이사 임지훈)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는 엄선된 작가들의 글을 모아 매일 발행하는 ‘위클리 매거진’을 오픈하고, 매거진 참여 작가를 모집한다.다음ㆍ브런치 이용자는 브런치가 직접 선정한 뛰어난 콘텐츠와 작가를 쉽게 만나볼 수 있으며, 매거진 참여 작가는 자신의 고정 팬을 확보하고 더 많은 출판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됐다.브런치가 지난 7월 27일 시작한 ‘위클리 매거진’은 브런치팀이 엄선한 작가들이 매일 돌아가며 글을 연재하는 웹진 개념의 서비스다. 여행/일상/직장/인문/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34명의 작가가 위클리 매거진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일 4~5명의 작가가 자신이 맡은 요일에 글을 작성한다.매주 월요일에는 송민승 작가가 ‘디자이너로서의 실리콘밸리 생존기’를, 매주 수요일에는 심원 작가가 ‘대치동 논술 작가의 글쓰기 팁’을, 매주 금요일에는 미미최 작가가 ‘한의사가 알려주는 여자 건강백서’를 연재하는 식이다.브런치 위클리 매거진 연재 글은 매일 다음앱ㆍ브런치 첫 화면에 노출된다. 브런치 이용자뿐 아니라 다음 이용자도 브런치의 다양하고 풍부한 글과 작가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위클리 매거진 글을 읽은 이용자는 글 안에 있는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 해당 작가의 글을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 다음과 브런치 이용자는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고, 작가는 더 많은 독자와 연결됨으로써 자신의 고정 팬을 확보하기 용이해졌다.브런치 위클리 매거진브런치는 10일부터 위클리 매거진 참여 작가 공개 모집을 시작하고, 참여 작가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위클리 매거진 참여 신청 방법은 브런치 내 공지(https://brunch.co.kr/@brunch/105)에서 확인 가능하다.위클리 매거진 참여 작가에게는 연재 작품의 도서 출간 및 출간 마케팅을 지원한다. 브런치는 은행나무, 푸른숲, 알에이치코리아, 메디치미디어, 중앙북스 등 33개 출판사와 제휴 계약을 체결하고,, 제휴 출판사를 통해 위클리 매거진 연재 작품에 대한 출간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출간이 확정되면 카카오 메이커스를 통해 ‘퍼스트 오더’ 마케팅 프로그램도 지원한다.카카오 이호영 브런치 셀장은 “좋은 글과 독자간의 연결 확대는 자연스럽게 창작자 생태계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작가에게는 창작 활동에 대한 혜택을, 독자에게는 좋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갈 계획” 이라고 밝혔다.브런치는 브런치 작가들이 출간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2회에 걸쳐 책 출간 공모전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 열린 제 4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는 3회 대비 40% 증가한 5만 8천여 개의 작품이 접수된 바 있다. 또한 ‘부크크’와의 제휴를 통해 브런치 작가를 대상으로 주문형 출판 서비스(P.O.D, Publish On Demand)를 지원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책 주문을 받아 디지털 인쇄기로 책을 제작해 배송하는 서비스로 출판 비용/계약 등 출판 장벽을 크게 낮춘 것이 특징이다.
- "베이징 아파트? 당나라 때부터 밭 갈아야 산다"
- 중국서 1980년대 태어난 ‘바링허우’의 절규. 극심한 경쟁,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의 도시화,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 과거 역사와의 단절. 바링허우는 화려한 대국굴기·슈퍼차이나의 그늘이 짙은 ‘헬차이나’를 헤매고 있다(이미지=이데일리 문승용 기자).[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수학과 역사가 뒤섞인 퀴즈문제부터 풀고 가자. 평범한 중국시민이 베이징에 100㎡(약 30평) 정도 되는 아파트를 사려면 얼마나 걸릴까. 가격은 300만위안(약 5억원)쯤 된단다. 10년? 30년? 아니면 100년? 답은 계층별로 갈린다. 일단 농민. 당나라(618∼907) 때부터 밭을 갈아야 한다. 노동자라면 아편전쟁(1840)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화이트칼라는? 1960년부터 먹고 입고 마시는 데 전혀 쓰지 않고 번 돈을 모조리 모아야 한다. 내친김에 강도도 알아볼까. 연속 2500회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30년쯤 걸릴 거란다. 극심한 경쟁,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의 도시화,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 과거 역사와의 단절. 이 모두는 지금 중국 젊은이의 어깨에 드리워진 현실이다. 학자이자 시인으로 중국현대문학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가 7%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이 가린 중국의 청년세대를 조명했다. 화려한 대국굴기와 슈퍼차이나에 치인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이 바로 1980년대 태어난 ‘바링허우’라고. 바링허우를 특히 조명한 까닭은 이렇다. 중국의 역사·문화·정치·사회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세대라서다. 이들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시장경제를 수용하자마자 시작한 ‘1가구 1자녀’ 정책 속에 태어난 귀한 ‘소황제’들이다. 하지만 위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산당 1당독재라는 견고한 사회체제 위로 무자비하게 밀려드는 자본주의 물결에 속수무책 휩쓸린 탓이다. 전형적인 ‘풍요 속의 빈곤’ 세대가 된 이들은 이내 길을 잃어버렸다. 책은 바링허우를 키워드 삼아 격변기 중국사회·체제를 꺼내 보이려 한 저자의 진중한 시도다. 역사의 변곡점을 타고난 이 세대를 보지 않고선 중국을 봤다 할 수 없다고. 바닥엔 연민과 우려도 깔았다. 그 자신도 1980년생 바링허우라는 저자가 스스로 속한 세대에게 날리는 안타까움이라고 할까. △줄타기부터 배우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끝에서 10여 년 전인가. 중국에선 출생연대에 ‘후’(後)를 붙여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10년이란 세월이 지구적 시대의 흐름을 구별하는 구간이란 지극히 중국적인 셈법이다. 그중 대표격인 ‘80후’가 바로 바링허우다. ‘70후’인 치링허우, ‘90후’인 주링허우도 있지만 유독 바링허우가 중심이 된 건 일종의 시대가 찍은 낙인이라고 할까. 배경은 이렇다. 혁명의 목적이 사라졌지만 명목까진 버리지 못한 사회주의에 한 발이 빠져 있다. 다른 한 발은 돈의 각축장이 돼버린 자본주의에 담겼다. 회색지대, 그곳이 이들이 사는 곳이다. 적응해서 잘살 수 있다면 양 체제의 강점을 고루 취한 ‘이상향’을 이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반대라면 가히 최악이다. 문제도, 시달림도 배가 될 테니까. 대다수의 바링허우가 딱 그 처지라는 거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은 기본, 도시와 농촌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진다. 소득양극화도 서러운데 상대적 박탈감까지 괴롭힌다. 여기까진 자본주의 영역. 사회주의 영역은 별도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용했던 보호장치가 사라지고 역사적 허무주의가 몰려온다. 정치의 본질이 사라지니 무력감이 엄습, 가치관·정체성이 빠져나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기에 결정적 한 가지. 이들에겐 무거운 역할이 생겼다.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의 갈등을 흡수하는 완충지. 저자가 주위를 계속 돌아보며 긁어낸 바링허우의 삶은 결국 줄타기였다. △“역사는 역사고 생활은 생활” 저자의 고백 한 가지를 보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대국굴기’란 극도의 흥분에 빠진 적이 있단다. 국가의 꿈이 개인의 꿈이고 국가의 영광은 개인의 영광이란 믿음을 다졌다고. 하지만 이후는 대국굴기를 점점 갉아먹는 일상이었다고 했다. 결정적 계기는 2011년 미국 타임스스퀘어에 올린 광고영상. 야오밍(NBA 진출 농국선수), 우징롄(중국의 양심이란 경제학자), 우위산(홍콩 영화감독) 등 59명의 중국인을 성공의 대명사로 둔갑시킨 영상이었다.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내미는 명함 같은. 하지만 카메라와 이데올로기를 벗겨냈을 때의 공허가 보이더란 거다. 바로 그날 저자가 받았다는 임대아파트 계약해지 통보가 복잡한 감정상태를 부추겼을 거다. 임대기간을 연장할 뜻이 없으니 나가달라는 주인의 얼굴이 홍보영상과 겹쳐 보였을 거고. “보이기 식 성공을 과시해 얻은 게 뭔가. 나는 꺼져가는 아파트의 임대료조차 못 낼 정돈데.” 바링허우의 마지막 구원은 샤오즈계급이 되는 거란다. 서양식 생활로 물질적·정신적 향유를 추구하는 젊은 계층 말이다. 그저 주말 저녁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시내로 나가 외식하고 영화 한 편 보는 것. 다름 아닌 프티부르주아의 삶인 거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꿈은 계속 연기되다가 잔혹한 형태로 깨지고야 만다고 탄식한다. 유일한 출구? 빈털터리다. 새로운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거라고까지 목소리를 높인다. △‘대국’? 이제 없다 ‘소시민’으로 살아갈 뿐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가 부제다. 인생을 회고한 듯한 문장으로 요약한 이 테마가 사실 책의 전부다. 중국이 유난스러운 건가. 이 같은 이상현상을 어찌 설명할 건가. 그 질문에 중국 유명작가 위화는 이렇게 답했다. “인구가 많아서.” 체제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고 결국 사람으로 화살을 돌린 걸 비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판에 대고 저자는 바링허우를 들여다보라고 외친다. “한 세대 전체가 실패를 마주하고 있다면 이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거기까지다. 결론은 저자의 현실항거를 넘어서지 못한다. 놀랍게도 그는 ‘언제 베이징에 집을 살 건가’를 묻지 않는다. ‘어째서 집을 못 사는가’를 따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누구고, 어느 계급에 속하고, 세계서 어디쯤 위치할 건가를 고민한다. 바링허우라면 자기역사를 점검하고 기원을 짚어야 한다고. 그래야 개인의 실패와 사회적 실패에 저항할 수 있다고. 그뿐인가. 물질에 탐닉하는 또래의 청년을 욕할지언정 이중고리를 만든 국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헬차이나’에서 헤매고 있을지언정 기형적 구조를 만든 정부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에는 통계도 없고 과학적 분석도 없다. 그림은 나왔으나 귀퉁이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있다면 그 탓일 거다. 안 만든 건지 못 만든 건지 미처 내보이지 못한 뒷심이 아쉽다.
-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비밀과 거짓말, 그 눈물겨운 서정(抒情)에 대하여
- 영화 ‘프란츠’[오동진 영화평론가] 프랑스의 문제적 감독 프랑수와 오종의 개봉 신작 ‘프란츠’는 원래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32년작 ‘내가 죽인 남자’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보다는 1500년대에 프랑스 남서부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 ‘마르탱 게르의 귀환’을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에게는 제라르 드 파르디외 주연의 1982년작 ‘마틴 기어의 귀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집을 떠났다.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홀연히 돌아 온다. 그래서 다시 행복한 삶을 살아 간다. 하지만 이 남편은 남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남편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이에 비해 ‘프란츠’는 이야기의 궤적이 전혀 다른 영화다. 일단 1차 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여자의 애인이 전사했고 그 애인과 예전에 친구였다는 남자가 찾아 오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어쨌든 ‘프란츠’의 아드리엥(피에르 니니)도 죽은 애인이 아니다. 그런데 잠깐 애인처럼 된다. 아니 그런 척 하거나 그럴 수 있다는 착각을 준다. 이 모든 일은 어느 날 프랑스 남자 아드리엥이 독일 여인 안나(폴라 비어)의 죽은 애인 프란츠(안톤 폰 루케)의 무덤 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진다. 아드리엥은 안나와 (안나의 시부모가 될 뻔한) 프란츠의 부모 호프마이스터 부부(에른스트 스퇴츠너, 마리 그루버)앞에 나타나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다. 프란츠는 1차 대전에 나가 전사했다. 아드리엥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 프란츠가 파리에서 지낼 때 만난 프랑스 친구라고 했다. 아드리엥은 점차 프란츠 대신 안나의 마음 속을 파고든다. 프란츠의 부모도 아드리엥이 안나와 계속 ‘함께 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비밀이 담겨져 있고 거짓말과 거짓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영화 ‘프란츠’는 결국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는, 사람의 과거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많은 오해와 풀리지 않는 비밀, 아니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거짓말로 점철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운명은 늘 베일 속에서 움직인다.안나는 결국 아드리엥의 비밀을 알아 낸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거짓말을 위해 스스로 거짓을 꾸며 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러는지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괴롭다. 다만 모든 사람들, 특히 프란츠의 부모가 진실을 알게 된다 한들, 그게 꼭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드리엥이 보내 온 편지를 거짓으로 꾸며 부모한테 읽어주기 까지 한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일까. 아니면 모든 일을 더욱 더 질곡(桎梏)에 빠뜨리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한 것일까. 마음 속이 갈기갈기,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 안나는 신부를 찾아 가 모든 것을 고백한다. 고해성사 실의 신부는 늘 그렇듯,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안나에게 되묻는다. “진실을 알린다 한들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모든 것을 용서 하시오. 예수가 그랬듯이. 이제 그 청년을 용서 하시오.”영화 ‘프란츠’프랑스와 독일은 1차 대전 때 사생결단으로 싸웠다. 안나가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이라면 언제든지 얼굴에 침을 뱉을 준비가 돼있다. 게다가 안나는 연인인 프란츠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한 아픔이 있다. 프란츠와 전쟁 전부터 친구였다고는 하지만 아드리엥은 프랑스인이다. 그가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 와서 편견과 부당한 공격에 시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을에 찾아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안나와 프란츠의 부모, 곧 호프마이스터 부부는 프랑스를 받아 들인다. 적국을 용서한다. 전쟁을 용서하기에 이른다. 그 전쟁에 참여한 자신의 조국을 더 이상 탓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호프마이스터 박사는 프랑스 청년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는 마을 남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프랑스의 아들들이 죽었을 때 우리들은 축배를 들었소. 우리들의 아들이 죽었을 때 저쪽에서도 축배를 들었소. 우리 모두는 아들의 죽음에 축배를 들었던 아버지들이오.” 용서는 자각과 반성에서 온다. 역사적 용서는 개인의 용서에서 온다. 아드리엥을 받아 들이면서 호프마이스터 부부에게는 비로소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있게 된다. 아드리엥을 받아 들이게 되면서 안나 역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문제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관계는 원래부터 꼬여 있거나 늘 꼬여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밀과 거짓말이 필요한 것이며 이 비밀과 거짓말을 어떻게, 얼마만큼 슬기롭게 이용하느냐, 또 그것을 두고 때론 슬쩍 눈감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삶의 의지란 모든 비밀과 거짓말을 능가하는 것이다. 안나가 선택하는 것 역시 바로 그 부분에서 찾아진다.영화 ‘프란츠’프랑수와 오종이 스타일 면에서 많이 변했다. 그는 이번에 ‘도발과 파격’보다는 ‘서정(抒情)’을 택했다. 하지만 피치 못할 비밀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들, 그 휴매니티에 대한 그의 주제 의식은 이번 역시 일관되게 펼쳐진다. 어쩌면 그의 전작(全作)들 대부분이 선의의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오종의 전작(前作)인 ‘나의 사적인 여자 친구’는 죽은 친구의 남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지켜주는, 그래서 결국 사람들에게 그 거짓말과 비밀을 지켜주는 여인의 이야기다. 오종의 초기작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이 주제의 범주 안에 들어 가 있는 영화들이다. 저택에 고립된 8명의 여인들이 벌이는 비밀과 거짓말의 잔치에 대한 이야기(‘8명의 여인들’)였거나, 자신이 친딸이라며 갑자기 찾아 온 젊은 여성 때문에 빚어지는 미스터리(‘스위밍 풀’)였다. 이제는 헤어진 부부 각자가 지닌 숱한 과거의 기억들, 그 거짓과 진실들에 대한 얘기(‘5x2’)도 있었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한 사진작가의 선의의 거짓말을 다룬 얘기(‘타임 투 리브’)도 있었다. 오종의 영화는 늘 그렇게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우연이 되는 거짓말의 관계들로 가득 차 있다. 오종이 느끼기에 세상은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어쩌면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행복한 거짓말일 수 있거나 행복하기 위한 거짓말일 수가 있다. 그 거짓말은 거짓말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본색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오종의 영화, 특히 이번 영화 ‘프란츠’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영화 ‘프란츠’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영상은 주인공 안나의 의식 속 무의식 속 욕망을 교차시킨다. 1차 대전 직후 프랑스-독일 사회의 음영(陰影)을 적절하게 그려내는데 있어 매우 성공적이기도 하다. 쇼팽의 녹턴 20번이 피아노 곡이 아닌 주인공 아드리엥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그게 그렇게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자살>은 새삼스럽다. 안나는 당신도 이 작품이 좋은 가라고 묻는 옆의 청년에게 답한다. “살아갈 이유를 주니까요.” 죽음과 헤어짐. 그리고 좌절과 실연은 때론 사람들에게 역설의 희망을 준다. 영화 ‘프란츠’가 애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이, 어떻게든, 그리고 안나처럼, 늘 새롭게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다. 만고의 진리다.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글을 쓴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 해 깨알과 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윗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시대의 해방은 욕망의 광기를 낳는다
- 영화 ‘레이디 멕베스’[오동진 영화평론가] 유명 원작, 특히 고전을 영화로 만든 작품은 두 가지 면으로 관찰해 들어가면 흥미가 배(倍)가 된다. 영화와 원작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무엇보다 ‘왜’ 달라져 있는 가이다. 감독은 원작을 왜 바꾸고 재해석 하려고 했을까. 어떤 영화는 원작과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의 평작이 그렇다. 어떤 영화는 소설과 아주 다르다. 그런데 그것 역시 예상 외로,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범작들이 많다. 반면 아슬아슬하게 다르거나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영화들이 있다. 대부분의 수작, 걸작들은 거기에서 나온다. 최근 작품으로는 박찬욱의 ‘아가씨’가 좋은 예이다. 국내에 수입돼 곧 개봉될 화제작 ‘레이디 맥베스’도 그렇다. 영화를 보는데 고전문학을 읽는 느낌이 드는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원작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넘어 서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동시에 읽는 느낌을 준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있는 착시(錯視)까지 준다. 한 편의 영화로 그 모든 것을 망라하기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레이디 맥베스’가 접근하고 있는 예술적 성취의 경로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레이디 맥베스’는 영국의 연극 연출가 출신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의 데뷔작이다. 올드로이드 감독은 이야기의 시공간을 제정 후기로 가고 있는 짜르 체제의 러시아(원작은 1865년에 발표됐다.)에서 더 뒤의 시기, 곧 1800년대 후반의 빅토리아 시대 말기인 영국 지방의 고립된 성(城) 안으로 옮겼다. 소설 속 주인공인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정략 아닌 정략결혼으로 들어가게 되는 가문은 갑자기 돈을 벌게 된 상인 부자의 집안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 캐서린(플로렌스 퓨)이 가는 곳은 몰락해 가고 있는 지방의 토호 지주다. 이건 거의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약간은 다른데 그 차이가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사뭇 다른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차이의 간극에 영화는 이른바 여성주의(feminism)적 시선을 깊이 개입시킨다. 허구 속 인물이지만 카테리나와 캐서린의 운명은 거기서부터 확연히 갈리게 된다.(영화의 결론과 소설의 끝에서 여자들의 운명은 아주 다르다.) 두 작품은 같이 시작해서 아주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그렇다고 완전히 갈라 서지도 않는다. 이 기묘한 동이(同異)야 말로 올드로이드 감독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레이디 맥베스’로 만들며 성취해 낸 미학의 꼭짓점이다. 영화 ‘레이디 멕베스’17살 밖에 되지 않은 캐서린은 보수적인 집안의 분위기로 숨통이 턱턱 막힌 채 살아 간다. 어린 여자에게 이건 심한 고문과 같은 일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폴 힐튼)은 그런 아내를 수음(手淫)의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내심 초야(初夜)를 기대했던 어린 신부는 첫날의 실망감에 이어 날이 갈수록 점점 마음 속에 불만과 증오, 반항심을 쌓아 가기 시작한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시아버지(크리스토퍼 페어뱅크)는 그런 그녀의 ‘비뚤어진’ 욕망이 피어나고 살아날까,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기 일쑤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대 저택에서 그녀는 할 일이 없어 무료하고 권태롭기 짝이 없다. 때 마침 육체적으로 탄탄해 보이는 하인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이 어린 여주인에게 접근한다. 둘은 곧, 불붙은 장작에 기름을 부은 듯 타오르기 시작한다. 둘이서 매일 같이 벌이는 섹스의 향연은 곧 끔찍한 참살(慘殺)의 비극, 그것도 연쇄적인 살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이 집안의 하녀인 애나(나오미 아키)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되기에 이른다. 캐서린이 매일 아침 크리놀린(드레스를 볼록하게 만드는 틀로써 잘록한 허리를 한층 부각시키는 스커트 버팀대. 1800년대에 유행했다.)을 착용하기 전 애나가 등 뒤에서 코르셋을 조일 때야 말로 이 집안에서 캐서린이 얼마나 숨막혀 하며 살고 있는 가를 느끼게 해 준다. 캐서린이 숨을 훅 들여 마시기도 전에 애나는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데 마치 그건 개 목줄을 당기는 느낌을 준다.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가문의 여자라면 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 계급 상승 욕구를 지닌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여자들은 코르셋을 더더욱 바짝 죄면서 살았던 시대다. 캐서린이 세바스찬에게 욕정을 풀게 되는 것은 미천한 남자지만 자신의 코르셋, 그 조임 쇠를 풀어 줄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섹스 때문이 아니라 해방감 때문에 남자의 몸을 탐하기 시작한 셈이다. 캐서린의 마음속에는 하인과의 관계를 통해 보란 듯이 남자 중심의 집안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은 욕구도 작동한다. 계급의 간음(姦淫)이라는 금기를 넘어서고자 했던 욕망 이야말로 그녀가 추후에 일으키게 되는 모든 비극이 절대적 씨앗이었던 셈이다. 예전 같으면 캐서린의 그 같은 일탈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서린은 여자의 육감으로 그것을 알아채지만 이 집안의 남자들, 그 당시의 남자들만이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다.영화 ‘레이디 멕베스’끔찍한 참상은 대체로 ‘자본=물적(物的) 토대’의 대 전환기에 벌어진다. 한때 일대를 호령하던 대 지주였을 지는 모르지만 캐서린의 집안도 이제는 ‘업종 전환’을 해야 살아 남게 돼있을 만큼 황량하고 척박한 분위기다. 그건 바로 산업혁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장사’로 돈을 벌거나 재산을 축적해야 한다. 새로운 중산층들(상인 자본가들과 광산업이나 철도 업을 하는 대형 사업가들)이 사회 권력을 차지하려고 제도 안으로 들어 오고 있는 참이다. 모든 계급이 들끓고 있던 때였다. 아래 계급이 위로 가고 위의 계급이 아래로 내려가던 때였다. 모든 계급 관계가 뒤죽박죽이 되던 시기였다. 돈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는 언제나 그렇지만 정숙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부터 내심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세바스찬이 흑인과의 혼혈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전 시대의 고루한 모든 것이 붕괴되기 직전 임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캐서린의 남편이 집 안을 자주, 그리고 오래 동안 비우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빈 침대에 세바스찬이 들락날락 할 수 있었던 데는 그가 광산 일에 열중하느라 집 안을 오래 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육감적인 하층 계급의 여자를 만나 캐서린에게 얻지 못한 육체적 회포를 풀고 살다 아이까지 생긴다. 그런데도 그는 캐서린이 정숙치 못하다고, 이미 자신에게까지 그 소문이 들려 온다고 따지다가 결국 두 불륜 남녀에 의해 무참하게 사단이 난다. 그건 모두 이 남편 정도 되는 인물에게는 시대적 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돈 버는 양상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곧 하부구조(노동수단과 노동의 대상, 방식 등)의 변화, 혹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적 변화는 상부구조(정치, 종교, 도덕, 규범, 결혼 윤리 등)의 변화를 가져 온다. 예전의 가치관, 그 기득권=남성 중심적 사고로 살아가려는 남편 같은 인물은 시대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리가 없다. 자신과 같은 남자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캐서린은 폐쇄적인 집 안의 룰로 살아 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여자는 남자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어차피 두 부자(父子)는 몰락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그들 없이도 자신이 알아서, 더 나아가 자신이 집안을 좌지우지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시대의 전환은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바스찬이 여주인을 성적으로 넘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캐서린이 주도하고 세바스찬이 따라 가는 식의, 무모 하리만큼 과도했던 둘의 살인 행각과 그 원죄는 이들 자신보다 이들이 속한 사회구조에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셈이 된다. 캐서린이 알고 보면 지독한 악녀이고 팜므 파탈(치명적인 여자)이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천연덕스럽게 사랑스럽고 그 모든 악행이 역설적으로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의식, 특히 남자들의 생각이 따라 가지 못한다. 모든 개인사의 비극은 그럴 때마다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역사와 예술, 특히 문학이 그것을 증명해 왔다. ‘레이디 맥베스’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 역시 그 부분이다. 영화 ‘레이디 멕베스’영화감독들이 100년이 훨씬 넘은 고전 문학에 탐닉하는 것에는 이유가 다 있다. 하나의 텍스트 안에 이토록 다양한 층위의 얘기가 겹쳐져 있는 작품이 이 때 거의 다 나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올드로이드 감독이 지금의 시대 역시 100년 전 영국 시골에서처럼 급속하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계급적 편견과 인종적 차별, 특히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과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인물들 때문에 지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윌리엄 올드로이드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원작으로 회귀한 까닭일 수 있겠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사람들은 종종 깨달음을 얻는다. <레이디 맥베스>가 해 낸, 비교적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글을 쓴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 해 깨알과 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윗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고리키의 어머니, 그리고 위르겐의 택시 기사
- 영화 ‘택시운전사’[오동진 영화평론가] 생각지도 않은 얘기일 수도 있고 늘 생각해 왔던 얘기일 수도 있다.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 운전사’는 상당 부분 막심 고리키의 혁명 소설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1980년대에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 금서(禁書)였다. ‘택시 운전사’ 속 택시 운전사와 ARD 동아시아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의 얘기도 80년대 당시에는 철저하게 금기시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어머니’를 얘기하지도, ‘광주의 학살’을 얘기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은 고리키의 소설도 잊고 광주의 비극도 점차 잊어 간다. 장훈 감독이 놀라운 것은 그렇게 광주의 과거를 잊으라고 강요하던 시기, 곧 가장 끔찍한 역사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박근혜 정부 때 이 영화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 감독은, 종종 뛰어난 예지(叡智) 능력을 선보인다. 장훈은 2년 전 지금이야 말로 광주에서의 ‘그때처럼’ 저항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관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택시 운전사’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아마도 궁금증때문에 시작됐을 것이다. 힌츠페터는 어떻게 광주에 들어갔을까. 그는 또 어떻게 나왔을까. 현장에서 그는 어떻게 촬영을 할 수 있었을까. 혼자였을까? 누군 가와 같이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은 힌츠페터가 자신을 태워 준 택시 기사 김사복의 존재를 오래전에 밝혔음에도 그의 실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더 확장됐을 것이다. 김사복은 지금 어디 있을까. 왜 그는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김사복과 힌츠페터는 광주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역사에는 디테일이 없다. 역사는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독일 기자가 광주에 몰래 잠입해서 광주의 참상을 기록했고 그것을 해외 언론에 알렸다는 정도로만 기술한다. 힌츠페터의 ‘활약’으로 광주는 ‘폭동’에서 ‘학살’로 바뀌게 됐다. ‘택시 운전사’는 힌츠페터 만큼 주요한 역할을 했을 법한 한 평범한 사람에게 주목한다. 그가 역사의 현장에서 느꼈을 그 참혹한 정서를 알리려고 애쓴다. 그의 생은 광주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리게 됐을 것이다. 우리 모두도 그렇다. 광주를 직접 겪었던 그렇지 않든, 광주의 역사를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갈리게 된다. ‘택시 운전사’는 2시간 동안 그 역사의 갈림길 한가운데를 주행(走行)해 간다. 영화 ‘택시운전사’다시 고리키로 돌아가면, 그의 책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랜 기간 금서였던 이유는 ‘사회적 의식화’의 주요한 기제(機制)쯤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소설 ‘어머니’ 속 어머니는 원래 아무 지식도, 이념도, 욕망도 없는, 그저 폭력적인 남편(제정 러시아 말기의 농노 출신 남자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에게 학대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여자였을 뿐이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는 딱 하나, 혁명적 의식으로 살아가는 노동자 아들 빠벨을 위해서다. <택시 운전사>의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루하루 시내를 쏘다니며 대학생들이 허구 헌 날 공부는 안하면서 ‘데모 질’만 하고 산다고 불평을 쏟아 내는 인물이다. 박정희 시대 때 사우디에서 중장비 기사로 일하며 열사(熱沙)의 노동을 견뎌 냈던 그는 자신이 한국의 경제 중흥을 이끌어 낸 진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운전을 하며 이런 식으로 중얼대곤 한다. “그 뜨거운 사막에 한번 있어 보라지. 저거 다 배가 불러서 그러는 거야.” 문제는 그 자신조차 배가 부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를 일찍 여읜 그는 사글세 방에서 홀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를 키우며 산다. 만섭은 자유가 어쩌고, 독재가 어쩌고 하기 보다는 오직 딸 애를 잘 해 먹이고, 잘 해 입힐 생각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돈이 최고다. 만섭이 아무 생각없이 광주로 간다는 외국 손님, 곧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래취만)를 가로 챈 것은 순전히 ‘돈 욕심=딸 아이 양육비’때문이었다.결국 고리키의 ‘어머니’가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아들 ‘빠벨’때문에 변하게 되는 것처럼 만섭 역시 독일에서 온 기자 때문에, 딸 아이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 군부 독재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해 가던 당시의 정치환경에 눈을 뜨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섭이 광주에서 겪은 공수부대의 만행만으로 기존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장훈은 야만의 국가 폭력을 생생하게 그려 내는데 주력한다. 주인공 만섭이 자책(自責)을 해 가며 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共感)의 폭을 넓혀 가게끔 이야기를 엮어 낸다. 하지만 만섭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되는 계기는 이 독일인을 현장에 버리고 혼자 떠나 오면서부터 이다. 영화가 사람들의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그렇게 만섭의 ‘회군’에서 이루어진다. 영화 ‘택시운전사’사람들이 머리통이 깨져 죽어 나가거나, 죽은 아들 앞에서 통곡하는 에미나 할머니의 모습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묵묵부답,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운전하다가 순천 어디쯤에서 홀로 국밥을 먹으며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만섭에서 사람들은 심금(心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섭은 광주에 남아 있는 것이 무서웠었다. 무엇보다 딸 아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었다. 그는 돌아가야만 한다. 여기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이 사람이라면 아무리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돌아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새벽에 몰래 광주를 벗어 난다. 하지만 그는 순천으로 가는 오전 내내 마음이 무겁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인을 사지(死地)에 놓고 온 것 같아 안절부절이다. 국밥 집에서 사람들이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가지고 설왕설래, 빨갱이 폭도가 어쨌다는 둥 해도 그는 그게 아니라고, 거기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고 말 한 마디 변변하게 하지 못한다. 이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비겁이 점점 두려워 지기 시작한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그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장훈이 뛰어 난 점은 어쩌면 평면의 역사로 일반화 되고 있는 약 40년 전 광주의 비극을 택시 운전사와 독일 기자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입체화 시키고 구체화 시킴으로써 이 때의 역사에는 여전히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이 켠 켠이 쌓여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무릇 세상은, ‘단 한 사람’을 구하려는 ‘단 한 사람’의 노력이 경주될 때 비로소 궁극의 구원을 얻는다. 세상 자체를 구하려는 영웅은 그 세상은 구할지 언정 그 안의 사람들까지는 구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이라도 구하려는 평범한 사람은 끝내 세상까지 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역과 귀납의 논리는 기이하게도 역사 속에서 감춰져 있기 일쑤다. 장훈의 ‘택시 운전사’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준다. 얼마나 많은 범인(凡人)들이 세상을 구해냈는지 보여 주려 애쓴다. 우리가 다 아는 척,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광주’의 얘기를 깨닫게 해 준다. 만섭이 위르겐을 다시 태우려고 광주로 유턴을 하는 장면 이야말로 이 영화가 줄곧 얘기하고 싶었던 지점의 중심에 서있다.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가 아무리 위험해도 사람이라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섭이 핸들을 돌리느냐 마느냐의 순간이야말로 우리 역사에서는 진정한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택시 운전사’는 어쩌면 의미 있는 반복 어와 같은 영화다. 이제 더 이상 광주의 얘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극의 얘기는 이번 ‘택시 운전사’처럼 끝까지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한(恨)의 멍울을 풀어 줄 방법이 없다. ‘택시 운전사’로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정신적 트라우마를 해소하게 될 것이다. 그거면 됐다. 영화는 때론 제작의 과정이나 방법보다 그 목표와 의지가 더 중요한 법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송강호의 연기, 그의 전매 특허인 중얼대는 독백 연기(만섭이 위르겐을 버리고 혼자 떠나기 전 돌아 누어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 중 하나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이런 연기는 역사적 공감이 없이는 공허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는 연기를 위해 역사 혼을 스스로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번 영화로 그는 자신이 당대 최고의 연기자 중 한 명임을 당당하게 입증해 냈다. 송강호 만큼 토마스 크래취만의 연기 역시 발군에 발군이다. 그는 진짜 위르겐 힌츠페터처럼 느껴진다. 그를 캐스팅한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찬란한 성취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장훈 감독은 그가 늘 한국 현대사의 골짜기를 다니면서도(‘고지전’ ‘의형제’) 따뜻한 심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는 착한 사람이다. 역사의 주체는 착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 장훈과 그의 새 영화 <택시 운전사>는 지금의 우리들의 삶이 과거 어떤 사람들에 의해 간신히 나마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근데 그건 참 진부한 얘기일 수 있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거기에 늘 진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글을 쓴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 해 깨알과 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윗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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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세 '에릭 테일러'…다섯 번째 빌리 엘리어트 합류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총 5명 배우들의 단체사진. 왼쪽부터 성지환, 심현서, 천우진, 에릭 테일러, 김현준(사진=신시컴퍼니).[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책임질 다섯 번째 빌리가 탄생했다. 에릭 테일러(10)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배역은 남다른 재능과 힘, 성숙함은 물론,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린 배우만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 어떤 작품보다 성장기의 어린 소년이 작품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무게감도 남다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 측은 아역 배우들의 안전과 안정적인 공연을 위해 새로운 다섯 번째 빌리를 추가하기로 결정하고 유력한 후보자였던 ‘에릭 테일러’를 합류시켰다. 에릭 테일러는 2016년 4월 시작한 1차 오디션부터 도전해 약 10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았던 7명의 최종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춤을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었던 에릭 군은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을 계기로 발레·탭·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접했다. 뛰어난 체력과 유연성, 그리고 대담함을 바탕으로 10개월 간의 트레이닝 기간 동안 많은 성장이 있었지만 최종 오디션에서 컨디션 난조로 재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고배를 마셨다.에릭 군은 오디션 탈락 후에도 탭과 아크로바틱을 꾸준히 배우는 중에 다시 기회를 잡았다. 지난 4월 초 재오디션에서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오디션에 임하면서 마침내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에릭은 “다시 빌리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매일 매일 빌리의 꿈을 꿀 수 있는 요즘 정말 행복하다. 나만의 개성을 담은 빌리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에릭 테일러는 지난 4월 20일부터 빌리 스쿨에 재합류해 천우진(13), 김현준(12), 성지환(11), 심현서(10) 군과 함께 빌리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현재 다섯 명의 빌리들은 방과 후 연습실에 모여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빌리 스쿨’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 중이다. 빌리들은 오는 8월부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본격적인 공연 연습에 돌입한다. 지난 2010년 한국 초연 이후 7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한국 공연은 오는 12월부터 5개월 간 뮤지컬 전용극장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다섯 번째 빌리로 합류하게 된 에릭 테일러(사진=신시컴퍼니).
- [골프人]유현주는 그저 섹시할까... 스물셋 홀로서기와 내면 스토리
- 유현주는 성적에 관계없이 매 대회 사진기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건 별로 없다. 그는 "외모가 아닌 기량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박태성 기자 [이데일리 골프in 김세영 기자]성적에 관계없이 매 대회 주목 받는 이가 있다. 유현주(23·골든블루)다. 그의 이름 앞에는 ‘섹시 퀸’ ‘팔등신 미녀’ ‘골프 여신’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사진기자들은 신장 172cm에 탄탄한 몸매를 가진 그의 모습을 매 라운드 렌즈에 담는다. 그런데 정작 유명세와 달리 유현주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그래서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경남 사천 서경타니 골프장에서의 만남과 18일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외모에만 신경을 쓸 것 같다’는 선입견과 달리 내면의 세계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부모의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고, 비록 남들보다 느릴지언정 천천히 꾸준히 걷겠다는 자세였다. - 사실 당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다. 골프는 언제 입문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4년 11월 9일에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골프에만 매달린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선수 인터뷰를 하면서 골프 입문 날짜까지 기억하는 경우는 유현주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게 나의 길이라고 정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미술과 체육에 소질이 있었다는 유현주는 “개인 스포츠 종목을 하고 싶었던 차에 아버지가 골프를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골프를 하게 됐다”고 했다. 11월 9일은 그가 연습장에 등록하고 프로에게 처음 레슨을 받은 날이다. - 어린 시절 운동에 소질이 있었나. “신체적인 능력은 있었다고 본다. 달리기든 뭐든 운동만큼은 항상 1등을 했다. 체력장을 봐도 가볍게 1등급 받았다.” - 미술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 “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전국 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은 적도 있다. 그 기쁨에 한창 미술에 빠지기도 했다.” - 지금도 가끔 그림은 그리나.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을 때 가끔 스케치한다. 주로 연필로 인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는 걸 즐긴다. 풍경은 수채화를 주로 그린다.” - 작년부터 사진기자들의 ‘타깃’이 됐다. 본인도 예쁘다고 생각하나.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글쎄...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까 거울도 자주 보고 예뻐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미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만의 매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각자만의 개성이 더 중요하다. 나만의 특징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 그럼 당신만의 매력은 뭔가. “일단 틀에 박힌 걸 싫어한다. 어제 친한 언니가 전화하면서 그러더라. ‘한 번 보고 굉장히 여운이 남는다, 잔상이 남는다’고. 첫 인상으로 좋은 각인이 남는다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 프로 선수에게 중요한 건 실력이다. 한편으로는 외모도 상품성으로 인정받는 시대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어렸을 때부터 폴라 크리머나 미셸 위를 봤을 때 기량이 뛰어나면서도 외모가 뛰어난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걸 봐왔다. 그 선수들은 영향력도 크다. 선수의 기량이 중요하지만 사이드로 외모도 뒷받침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본다.” - 몸매는 특별히 가꾸나. “어렸을 때는 너무 마른 몸이어서 그게 고민이었다. 처음 골프를 할 때는 아빠가 팔굽혀펴기를 매일 시켰다. 처음에는 5회, 10회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300회까지 했다. 물론 다섯 번 정도 나눠서다. 그러면서 근육이 몸에 붙으면서 체중이 느니까 탄탄한 몸이 되지 않았나 싶다.” - 혹시 ‘외모에만 너무 치중한다’ 등의 악플에 시달린 적은 없나.“모든 분들이 저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살고 싶다. 저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저를 응원해 주는 분들에게 집중하면서 보답하고 싶다.” 유현주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 입회한 건 2011년이다. 이듬해 정규 투어를 뛴 그는 2013년 2부 투어로 내려갔다 한동안 대회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다시 정규 투어를 뛰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유현주.  사진=박태성 기자 - 한동안 공백기가 있었는데. “2013년 2부 투어 뛰다가 이후 안 나갔다. 2~3년 정도 쉬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골프를 시작하고 프로 데뷔까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어떻게 해서 내가 투어까지 왔는지, 골프를 잘 하고 있는 게 맞나 등등의 생각을 했다. 쉬는 동안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나의 골프란 어떤 건가 고민했다. 나에게는 중요한 시기였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었나. “처음에 골프를 선택한 건 내 뜻이었지만 이후에는 부모님이 연습시간이나 방법 등 나에 대한 모든 걸 관리했다. ‘과연 이게 나의 골프가 맞나, 무엇을 위해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나를 되돌아 볼 때 보고 싶지 않은 나도 있더라. 골프 외에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의존적이라는 것도 발견했다. 그런 걸 알게 되니까 스스로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유현주는 “현재는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고 했다. “부모님이 외국에 나가 있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그는 “독립했다”고 했다. 한국, 특히 여자 선수에게 부모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다. 한국만의 ‘골프 대디’ 문화는 선수 기량 향상에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론 선수와 부모 사이의 갈등 등 부작용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유현주의 입에서 나온 ‘독립’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 독립을 한 이유는. “투어나 내 골프 생활이 바쁘다 보니 부모님도 항상 저를 챙겨줘야 했다. 부모님이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게 보이더라. 외국에서는 스무 살이면 독립하지 않나. 나도 그런 심정으로 했다. 이제 2년 됐다. 부모님이 조금 보조해 준 것과 내가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작은 집을 얻었고, 금전적으로도 독립했다.” - 지금까지 상금으로 번 돈이 별로 없는데. “(웃음)최대한 아껴 쓰는 게 정답이다. 감사하게 스폰서가 생기면서 계약금 받은 것도 있어 경비 정도는 충당한다. 그래도 알뜰살뜰하게 운영해야 한다. 운전도 직접 한다. 나중에 성적이 좋아지면 로드 매니저부터 구해야겠다. 운전은 너무 힘들다.(웃음)” - 독립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 없었나.“대한민국 정서상 딸을 홀로 쉽게 내보낼 부모는 별로 없다. 하루아침에 한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밥벌이를 할 수 모습을 보여줬고, 내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과거에 투어 그만 둘 때는 그 즉시 레슨을 하면서 스스로 돈도 모으고, 그것 중 일부는 부모님께 드리기도 했다.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 독립은 같다. 경제적 독립 없이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간다는 건 모순이다. 스물한 살 되던 해 1월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 독립의 장단점은. “부모님은 부모님 인생에 집중할 수 있고, 나는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다. 조금 더 주체적이 된다. 과거에는 의존적이었는데 스스로 헤쳐 나가면서 여러 것들을 느끼고 깨닫는 것도 훨씬 빨라졌다. 성숙해 진다는 느낌이다. 단점은 집밥을 못 먹는다는 거다. 엄마가 요리를 잘 하시는데 그걸 못 먹으니 아쉽다.” - 부모님은 현재 투어 활동 등에 전혀 관여를 안 하시나. “상의는 있지만 강요는 없다. 물론 응원도 하신다.” - 이제 자신의 골프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과거에는 완전히 나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20% 찾았다고 생각한다. 필드에서 나의 꿈을 이뤄보고 싶다. 내가 이보다 잘 할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하고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뤄질 거라고 믿는다.” - 요즘은 선수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그들에 비해 조금 느린 것 아닌가. “대한민국의 단점인 것 같다. 외국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오래 투어 뛰는 선수 많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야 되고, 뭐든 ‘빨리빨리’다. 그런 마인드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안시현 언니나 홍진주 언니 등 마미 골퍼들의 우승은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본다.” - 올해 성적을 보면 컷을 통과하지 못한 대회가 훨씬 많다. 본인의 부족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 “작년까지는 뭐가 부족한지 몰랐다. 단순히 공을 똑바로 멀리 보내는 것보다는 코스를 운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해야 쉽게 파를 하고, 어디서 버디를 잡을지 등 전체적으로 코스를 바라보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다는 걸 작년부터 느끼고 있다. 올해도 경험을 하면서 하나씩 내 것을 만들다 보면 성적이 좋아질 거다. 시간은 조금 필요하다.” 유현주가 올 초 그린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유현주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을 때 지금도 가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사진=유현주 제공 - 코스는 설계가들이 땅에 그림을 그린 것 아닌가. 그럼 코스매니지먼트에 도움이 되지 않나. “코스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다 보니 그걸 골프에 적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웃음)” - 미술을 한 게 골프에 도움이 되나. “그림은 인물과 나와의 사색의 시간이다. 그 사색을 골프에 적용해서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 프로 선수로서 기량과 미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미모를 내세우려는 게 아니다. 실력을 쌓기 위해 남모르는 사투를 펼치고 있다. 연습이 일상이다. 시합장에 나올 때 준비 시간도 30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의상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 나중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 내 경험을 살려 심리 상담 등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다.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런 부분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면 한다. 현역을 뛰는 동안에는 모든 분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 <!-- EMBED START YouTube --><!-- EMBED END YouTu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