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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해설 로봇 ‘큐아이’ 공주·국회박물관서도 활동한다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국회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도 인공지능 문화해설 로봇 ‘큐아이’ 서비스를 만날 수 있게 된다.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정보원과 함께 인공지능 문화해설 로봇 ‘큐아이’ 서비스를 확대해 국회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도 새롭게 구축한다고 9일 밝혔다. 큐아이는 ‘문화’(Culture)와 ‘큐레이팅’(Curating), ‘인공지능’(AI)의 합성어로, 문화정보를 추천(큐레이팅)하는 인공지능과 문화정보를 추천(큐레이팅)하는 아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문체부는 2018년부터 AI 대화 서비스와 자율주행기반의 문화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문체부 주요 문화시설 11곳에서 ‘큐아이’ 17대를 운영 중이다.인공지능 문화해설 로봇 ‘큐아이’ 문화해설 활동 모습(사진=문체부).‘큐아이’는 방문객이 ‘하이 큐아이’라고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하면 약 15만 건의 지식데이터에서 적절한 답을 찾아 답변해준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물 앞을 이동해 다니면서 수어 해설, 동행 안내, 어린이 해설, 다국어(한·중·일·영) 해설 등을 제공, 문화 향유 취약계층인 장애인과 어린이, 외국인 등의 문화관람을 돕고 있다.국회박물관에서는 국회 100년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맞춤형 해설 서비스를 구축하고,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실인 웅진백제실과 충천권역 수장고의 문화해설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아울러 문체부는 기존 모델(2018년형)의 기능을 개선한 다채로운 기종의 로봇을 도입할 계획이다. 올해는 ‘큐아이’ 몸체 앞면과 뒷면에 화면을 각각 부착, 총 2개의 화면을 통해 이동 중에도 문화해설과 안내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2023년부터는 산간벽지 거주자, 지체 장애인, 소아 병동 환자 등을 위한 원격 관람용 로봇을 도입할 수 있도록 검토할 방침이다.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큐아이’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시설 이용과 대면 서비스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화해설 서비스 8만 건 이상, 인공지능 안내 서비스 46만 건 이상을 수행해 자율주행 로봇을 통한 문화 향유가 이미 우리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증명했다”며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는 지난 3개월 동안(22년 1~3월) 문화해설 약 3만 회를 진행해 크게 활약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도 다채로운 로봇 도입을 통해 관람객들이 기존에 없던 문화해설 서비스를 체험하고 각종 비대면과 맞춤형 서비스를 받음으로써 문화 향유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 올해도 비대면 설맞이…혼합현실로 떠나볼까
- 이프랜드 내 설맞이 풍경. SKT 제공[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올해도 3년째 ‘언택트 설 연휴’를 맞이하게 되면서, 메타버스와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등 혼합현실(MR) 설맞이 서비스도 다양해져 눈길을 끈다.SK텔레콤(017670)은 설 연휴 기간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임인년 호랑이 그림전(展)’ 등 다양한 행사를 선보인다.이 그림전은 2월 1일부터 27일까지 열릴 예정으로, 가상 공간에 원작 그대로 재현한 작품부터 MZ세대 작가들의 일러스트까지 총 42명의 작가들이 호랑이를 주제로 선보이는 50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 이프랜드 공식 인플루언서 ‘이프렌즈’들이 출동해 ‘설날 특집 퀴즈쇼’ ‘명절 음식 이야기’ ‘설날 덕담 나누기’ 등 매일 약 30개가 넘는 설날 특집 모임을 연휴 기간인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상시 운영할 예정이다. 이프렌즈는 이프랜드에서 운영하는 신개념 메타버스 인플루언서 그룹으로 아나운서, 작가, 배우, 교수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됐으며, 현재 230여명이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지난 1월 1일 이프랜드에서 생중계했던 정동진 해돋이 영상 ‘2022 근하신년-새해 첫날 해돋이’도 설 연휴 기간 매일 오전 7시부터 이프랜드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다. SRT 기차여행 VR콘텐츠. LG유플러스 제공LG유플러스는 설을 맞이해여 SRT(수서고속철도) 운영사 SR과 협업해 ‘U+다이브’ 앱에 SRT 기차여행 VR콘텐츠를 선보였다.양사가 공개한 기차여행 VR콘텐츠는 SRT 운전자 1인칭 시점에서 열차가 고속 주행하는 장면을 VR영상으로 제작한 실감형 콘텐츠로, 실제 SRT를 타고 기차여행을 가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동탄-공주 △공주-익산 △익산- 광주송정 △광주송정-나주 △나주-목포 등 다섯 구간의 주행영상을 담은 각 5분 분량의 5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최대 300km/h의 빠른 이동에도 불구하고 상하좌우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지난 24일 U+DIVE 앱에 SRT 기차여행 VR콘텐츠를 포함해 총 34편으로 구성된 ‘귀성길 여행’ 카테고리를 편성했고, 2월 4일까지 콘텐츠 시청 이벤트를 진행한다. 시청 횟수에 따라 추첨을 통해 닌텐도 스위치(1명), 에어팟 프로 3세대(1명), 스타벅스 커피교환권(50명)을 증정한다.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과 박수근의 작품도 비대면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문화체육관광부는 1월 28일부터 2월 6일까지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비대면 공연·전시·행사 등을 통합 안내· 제공하는 ‘집콕 문화생활 설 특별전’을 ‘집콕 문화생활’사이트에서 진행 중이다.각 기관이 보유한 다양한 비대면 문화·예술·체육·관광 콘텐츠 260여건을 만나는 특별 기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근: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을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 명작’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 ‘대지의 시간’전 등 인기 기획전을 제공한다.
- ㈜에이블벤처스, 'ABLE K-Culture 시즌2 데모데이' 성료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21년 전통문화 청년 창업육성 지원사업’의 수행기관인 ㈜에이블벤처스는 지난 14일 전통문화분야 창업기업들의 IR피칭 행사 ‘ABLE K-Culture 시즌2 데모데이’를 성료했다고 18일 밝혔다.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본 행사는 총 6개월간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수료한 초기 창업자들에게 벤처캐피탈,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전통문화 전문가, 언론 등 유관기관 심사역을 대상으로 유통과 투자유치 및 제품 전시를 통한 홍보의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행사에서는 권주형 공주대학교 교수의 ‘전통문화의 디지털전환 XR’라는 주제강연에 이어 보육 창업기업들이 IR피칭을 통해 각자의 사업모델과 비즈니스 스토리를 발표했다.(사진제공=㈜에이블벤처스)이 날 데모데이에는 한글 제자원리로 추출한 한글의 색과 형으로 한글 고유 문양을 제작하는 한글공방(대표 정유진), 현재와 전통을 잇는 나전칠기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피움(대표 이진영), 한국의 고미술품 메타버스 전시관 및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조선앤틱(대표 김용재), 자연과 전통을 담은 도자 리빙 브랜드 ‘미브레’를 선보인 세라이너(대표 박미래), 한국화의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는 디지털 복원 사업인 댓타임비(대표 송혜연), 자개 공예 키트를 제작·판매하는 호래이(대표 홍수진), 한국의 전통 악기 ‘비파’의 보급과 연주 컨텐츠를 제공하는 비파선셋(대표 김주영),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패브릭 브랜드를 운영하는 온바이소이(대표 송주혜), 전통문화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르테바(대표 최유주), 고객이 원하는 향을 찾아주는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벤투싹쿠아(대표 서지운) 팀의 순서로 IR피칭과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사진제공=㈜에이블벤처스)본 사업을 수행한 성상기 에이블벤처스 대표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시즌 2 프로그램에서는 메타버스 등 신기술 융합을 통한 디지털혁신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확대를 강조해왔다”고 밝혔다.한편 이번 IR 피칭 데모데이 행사는 자체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어 350명 이상의 시청자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 UAE 방문한 김정숙 여사 “한류열풍 속 K-콘텐츠에 국제적 관심”
-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두바이를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16일(현지시간)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 속에 K-콘텐츠에 대해 국제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김정숙 여사가 1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모하메드빈라시드(MBR) 도서관에서 열린 한-UAE 지식문화 교류식에서 모하메드 살람 알마즈루이 MBR 도서관장에게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을 기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김 여사는 이날 아랍에미리트(UAE)의 모하메드 빈 라시드 도서관(이하 MBR 도서관)에서 열린 ‘한-UAE 지식문화 교류식’에 참석해 양국의 활발한 문화 교류 협력의 계기가 마련된 것을 축하하며 이같이 밝혔다.아울러 “중동 최대 규모의 MBR 도서관이 한국 문화와 한국학 콘텐츠를 전파하고 확산시키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김 여사는 대표 기증 도서로 전달한 ‘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해 “모든 국민이 글자를 쓰고 읽을 수 있도록 쉽고 과학적으로 만든 한글의 원리가 담겨 있다”며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가 활발히 공유되며, 누구라도 평등하게 환대하고 응원하는 도서관의 정신을 훈민정음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된 김치와 관련된 도서, 죽음 앞에서도 폭력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숭고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등을 언급하며 “기증하는 한국 도서들에는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정신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함께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오는 4월 개관에 앞서 한국과 UAE 양국 간 지식·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두바이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인 라티파 빈트 모하메드 공주, 할라 바드리 두바이 문화예술청장, 모하메드 알 무르 MBR 도서관장,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등이 참석했다.교류식을 통해 도서관에 기증 예정인 한국 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마련한 250여 권으로서 ‘훈민정음 해례본(영인본)’ ‘The Story of Hanbok’ ‘매거진 F No.12:김치’ ‘한눈에 보는 한지’ 등 한국 문화 관련 도서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의 아랍어 번역본,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 ‘한국의 바다’ 한국 지리 관련 영문 도서,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유산 관련 도록,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 관련 도록 등 한국의 문화와 지식 유산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도서 중심으로 선정됐다.
- 오늘도 나는 '낙원'을 가꾼다[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15>
- 고대 부유한 로마인의 별장이 있던 스타비아에의 아리아나빌라 한 침대에서 1759년 발견된 프레스코화 ‘플로라 혹은 봄’이다. 빌라를 지은 서기 15∼45년부터 화산재에 묻힌 서기 79년 이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작가미상의 작품이다. 오른손으로 꽃을 따 왼손에 든 바구니로 옮겨담는 맨발의 여인이 홀로 등장하는데, 여인의 모델이 사람인지 요정인지는 확실치 않다. 당시 정원을 엿볼 만한 배경 외에도,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노란색 키톤, 머리의 티아라, 팔의 브레이스 등 의복사에서도 중히 여기는 작품이다. 프레스코, 38×32㎝,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큐레이터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큐레이터·미술평론가] 천국, 낙원, 극락….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면, 그곳은 적어도 초고층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장소는 아닐 것 같다. 가장 세련된 도시도, 가장 멋들어진 건물도, 호화찬란한 인테리어가 있는 방도, 잠깐은 좋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이고 영원한 행복의 이미지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사람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지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는 아무래도 자연이다. 물론 행복한 상상 속 자연은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컴컴한 밀림이거나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로 꼼짝도 못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꽃이 피고 물이 맑고 그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닐 수 있는, 말하자면 창세기의 에덴동산 같은 곳이 아니겠는가. 밥벌이를 찾아 도시의 좁은 공간에 구겨져 살더라도 우리가 화분에 식물을 키우고 거기서 꽃이 피면 즐거워하는 이유도, 자연의 일부를 내 공간에 들여 숨 쉴 구석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나면 간단해지는 문제인가 생각해보면, 물론 도시인의 환상을 자극하는 농촌이라고 해도, 어디서나 삶의 방식은 마찬가지라는 것, 이상은 환영일 뿐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저 삶의 터전이 어디든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진 정원을 향한 갈망정원에 대한 갈망은 고대인에게도 있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화산재에 덮여버린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있던 고급스러운 도시였지만, 건축물의 실내는 어두컴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벽의 두께와 기둥으로 천장을 지탱해야 하는 건축구조라, 창을 뚫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그들은 벽에 그림을 그려 창밖으로 보고 싶은 풍경을 대신했다. 고스란히 묻혀 있다가 1700년대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발굴된 폼페이의 가옥들에 그려진 벽화에는 여러 가지 소재가 있었지만, 그중 정원을 표현한 벽화, 일명 ‘플로라’라고 불린 ‘플로라 혹은 봄’(서기 79년 이전)이 그 하나다. 회벽에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린 ‘플로라’는 맨발로 사뿐히 걸어 다니며 꽃을 꺾어 모으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다가 지나친 꽃을 돌아보기 위해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여인의 뒷모습은, 살랑거리는 바람 한 자락을 보여주는 옷깃과 더불어 조용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처음 그려졌을 때는 지금보다 더 선명했을 이 그림의 주인공을 두곤 여러 추정을 했지만, 실제 인물인지 아니면 신화 속 꽃의 요정 플로라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근거가 없다. 다만 그림에서 우리는 적어도 고대 로마 사람들이 벽 너머 무엇을 보고 싶어 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들도 현대의 우리처럼, 정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그리운 풍경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중세인은 벽으로 담을 둘러친 밀폐된 정원을 가꾸며 이를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에 대한 상징으로 종종 그림에 담았다. ‘라인강 상류의 대가’라고만 알려진 독일화가가 그린 작은 정원 속에는 책을 읽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악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기 예수, 날개 달린 천사, 마리아의 시중을 드는 이들이 고루 등장한다. ‘천국의 작은 정원’(1410∼1420)이라 불리는 이 그림에는 얼핏 봐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갖가지 꽃과 열매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이보다 풍요로운 정원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화면 왼쪽의 오렌지색 치마를 입은 여성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서 한바구니를 모았고, 그 아래 장방형 우물은 바닥의 자갈이 다 보일 정도로 맑다. ‘천국의 작은 정원’(1410∼1420). 라인강 상류의 대가로만 알려졌을 뿐 작가가 정확치 않은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역시 정원이다. 담장이 둘러쳐지고 그 안에서 키우던 온갖 꽃과 식물은 중세 수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 천국에 대한 암시로 지상에 구현한 천국을 의미한 낙원의 정원, 마리아의 정원이란 의미를 품었다. 꽃과 열매, 우물 등 정갈하고 풍요로운 전경으로 성모 마리아의 미덕을 상징했다. 나무패널에 템페라, 26.3×33.4㎝,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 슈타델미술관 소장.◇마리아의 내면 담은 ‘천국의 작은 정원’ 이 모든 풍요와 깨끗함은 성모 마리아의 미덕을 상징하는 것이라, 이 정원의 주인공은 당연히 책을 읽고 있는 마리아다. 한 손으로는 책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며, 책의 내용에 푹 빠져든 듯 마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다. 손에 든 책은 성경일 것이다. 실제 마리아의 삶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날은 결코 없었으리라. 영아 살해를 피해 임신한 채 이집트로 가서 남의 집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고, 범상치 않은 아들의 치다꺼리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며,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해야 했는데, 꽃피는 정원에서 책장을 넘길 여유가 언제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중세의 모든 그림은 상징의 총체다. 마리아의 삶이 고난의 여정이었을지라도 그 정신은 누구보다 온화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아 ‘풍요로운 정원’ 속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성모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다른 한편 귀족들에게 정원은 자신이 가진 권세와 부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저택의 정원을 배경으로 한 단독 초상화나 가족 초상화를 당대 유명화가에게 주문·제작했으며, 인기 있는 작가에게는 줄을 서서라도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화 겸 초상화를 받아내 자랑삼아 걸어두곤 했다. 앙겔리카 카우프만(1741∼1807)이 그린 ‘나폴리공국의 왕 페르디난도 4세와 그의 가족’(1783) 초상이 바로 정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 초상화의 예다. 스위스 태생이지만 이탈리아 여행으로 일찍이 고전을 습득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로열아카데미 창립 회원이 됐으며, 종국에는 로마에 정착한 카우프만은,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만난 귀족과 왕족뿐 아니라 괴테와 헤르더 같은 문인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교양 있는 여인’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당대를 휩쓸던 인물이었다.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인재’였을 뿐 아니라, 상업적인 재능도 뛰어나 어느 지역에 정착하든 고객을 줄 서게 해 단기간에 부를 축적하곤 했다. 나폴리공국의 왕 페르디난도 4세는 마침 이탈리아에 머무는 카우프만에게 가족 초상화를 의뢰했고, 정원 풍경을 배경으로 한 왕가의 가족 초상을 완성한 것이다. 앙겔리카 카우프만의 ‘나폴리공국의 페르디난도 4세와 그의 가족’(1783). 여성화가를 인정해주지 않던 18세기에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쥘 만큼 재능과 수완이 좋았던 카우프만은 12세부터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프레스코화가던 아버지와 다닌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화풍에 다졌는데, 영국에서 초상화가로 큰 성공을 거뒀으나 역사화로 인정받으려 한 꿈이 좌절되자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고, 그때 페르디난도 4세에게 가족 초상화를 의뢰받았다. 인물들과 어우러진 장엄한 자연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정원이 돋보인다. 캔버스에 유채, 310×426㎝, 이탈리아 나폴리 카포디몬테박물관 소장.◇계몽주의 영향…자연스러움 중시한 18세기 정원 그림의 배경은 얼핏 보면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자연처럼 보이지만, 손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한 인공 정원이다. 당시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이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미쳐, 정원을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는 게 유행이었던 것이다. 대신 커다란 석조 좌대와 그 위에 함께 조각한 항아리가 이 정원의 품격을 인증하고 있다. 이 가족 초상화는 동일한 그림으로 몇 개의 버전을 더 제작했고, 어떤 작품에는 왕과 왕비, 여섯 명의 왕자와 공주 외에, 이즈음 사망한 요셉 왕자까지 포함해 그렸다. 정원을 배경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당시 유행이기도 했지만, 프랑스혁명 소식에 민감한 나폴리 시민들의 눈을 의식해 그린 이 초상화는 위엄있는 왕가보다는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가족으로 그려졌다. 울타리조차 보이지 않는 꾸밈없는 정원은 이 초상화의 의도를 한층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연스럽든 질서정연하든, 담을 높게 치든 담이 없든, 사람이 만든 정원은 자연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곁에 두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정원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상은, 실제로는 더 먼 곳으로 나아가야 맞닥뜨릴 수 있는 자연의 어떤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사람은 정원을 가꾼다. 자랑할 정원이든 비밀의 정원이든, 광대하든 손바닥만 하든, 예나 지금이나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서민의 삶에서는 만만히 누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정원이 있다면 그것을 현세의 작은 낙원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이윤희 큐레이터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산업 격변기 세대교체 가교, 부회장이 늘었다
- [이데일리 윤기백 기자] 다음은 6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산업 격변기 세대교체 가교, 부회장이 늘었다-“고령층·고위험군 추가접종 간격 3개월로 일괄 단축하자”-성장·일자리창출 모두 잡은 쿠팡-오늘부터 식당·카페도 방역패스 적용-[알림]좋은 일자리 정책을 찾습니다-[사설]국민도 반대하는 기본소득 공약, 기업 왜 끌어들이나-[사설]여야가 따로 없는 퍼주기, 재정준칙 법제화 시급하다△종합-가계빚 급한불 잡은 고승범… “중저신용자, 총량규제서 제외 검토”-‘30대 임원’ 천국인 美… 이곳엔 선배도 후배도 없다, 오직 동료뿐-‘묻지마 공약’ 낱낱이 파헤칩니다△오늘부터 4주간 거리두기 강화-의료계 “모임 인원축소·방역패스 확대로는 한계”… 3차접종 속도전 주문-“해외 출국자, 최대 한달 앞당겨 접종 가능”-연말 특수 날린 소상공인 “손실보상 대상 확대해야”△종합-지역 투자, 고용 창출, 소상공인 확대… ‘상생’ 쿠팡, 매출 20조 쾌속 질주-서울 집주인 5명 중 1명 종부세 낸다… “1주택자 비과세 필요”-비트코인 ‘검은 토요일’ 이후… ‘추가하락 VS 연말 랠리’ 엇갈린 전망-3분기 밥상물가 5.0%↑… OECD 회원국 중 ‘4위’△2022 대기업 인사 트렌드 뜯어보니-여성·혁신·공학도·해외통·MZ세대에 ‘기업 미래’ 맡겼다-후배에 밀려… ‘50대 초반’ 대거 짐 싸△정치-금태섭·임태희 등 속속 합류… 尹 선대위 ‘김종인 원톱’ 진용 갖췄다-‘오미크론’에 정치권 촉각 곤두… 대선 판세 뒤흔드나-청년 목소리 제대로 담아내려면 ‘우리가 옳다’ 태도부터 버려야-안철수, 홍준표에 잇단 러브콜… 김동연, 조만간 신당 출범-與, ‘尹 장모’ 농지법 위반 의혹 추가 제기△경제-세입예산 4조 7000억 증액… 내년에도 ‘종부세 폭탄’ 터지나-열심히 벌어도 수수료로 다 나가… ‘온플법’ 처리 언제까지 늦출 건가-오미크론 변수에도… 한은 “내년 세계경제 회복세”-납품업자에 갑질한 홈쇼핑 7곳 41억 과징금△글로벌-맥 못 추는 美증시… 오미크론보다 무서운 ‘파월 입’-예상보다 불안한 中경제… “적절한 시기 지준율 인하”-美 내년 GDP 성장률 전망… 골드만삭스, 3.8%로 하향-헝다, 디폴트 불가피… 결국 해체 수순 밟나-佛 공화당 첫 여성 대선후보로 선출된 페크레스△증권-IPO시장 12월 찬바람에도… 옥석 잘가리면 ‘따상’도 기대-인사관리 ‘시간+비용 절감’ 두 토끼… HR테크 투자·인수 줄이어-오미크론서 美 FOMC로 증권시장 시선 옮겨갈 듯△부동산-‘양도세 비과세 12억’ 시행일 깜깜… “잔금일 미루자” 북새통-GTX 호재 믿고 샀는데… 인덕원 ‘3억원’ 뚝-공공주택 다섯 개 단지서… LH, 이달 2351가구 공급-3기 신도시 3차 사전청약, 오늘부터 일반공급 접수4△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라라랜드 만든 ‘엔데버 콘텐츠’ 한가족 돼… 글로벌行 천군만마 얻은 듯-“넷플릭스보다 불편? 익숙함의 차이일 뿐”△돈이 보이는 창 - 커버 스토리-작년보다 신용카드 5% 넘게 썼다면 최대 137만원 더 돌려받아요△‘13월의 월급’ 연말정산의 모든 것-연금저축과 함께 활용땐 최대 115.5만원 더… IRP 막차, 아직 안늦었다-신용·체크카드 ‘지출 밸런스 팁’ 기본… 환급액도 미리 알려줘△투자 지렛대 CFD 빛과 그림자-2.5배 레버리지 장점, 급락장선 독… CFD 활용 배당주·리츠 투자 짭짤-개인이 주문하면 증권사 이름으로 거래하고 차액만 정산△아트테크&-하나뿐인 미술품… 주머니 사정 맞춰 사서 묻어둬라-‘돈나무 언니’ 반대로 베팅했더니… 한달새 수익률 26%-보장은 기본 절세까지… 보험으로 두 토끼 잡아라△산업-해외서도 빛난 ‘JY 동행’-종횡무진 ‘崔 경제외교’-친환경차 판매 1년새 두배 껑충… 수입차, 탈내연기관 ‘가속페달’-中, 원통형 2차전지 도전장… 韓·日 ‘양강구도’ 흔들리나-‘먼지괴물 제거 미션 클리어’… LG 광고영상 1000만뷰 돌파△ICT-중소 알뜰폰 보호냐 VS 알뜰폰 소비자 편익이냐-키오스트에 스마크공장까지… 맞춤형 ‘보안 끝판왕’-카카오, OECD에 中企 상생 사례 소개-“유튜버 대신 ‘이프랜드’로 환승”… 메타버스서 가상 인플루언서가 뜬다△중소벤처기업-“반·디·태 장비 3박자 척척...글로벌 기업과 어깨 나란히”-기업 1만5000곳 대상 수·위탁 부당거래 조사-로롯이 목재 자르고 가구 뚝딱...생산량·속도 5배↑-화력·안전·친환경 업그레이드...인덕션 쏟아진다△소비자생활-10만명 다녀간 ‘두껍상회’ 전국 순회...“내년에도 달려야죠”-성탄절 홈파티 특수 겨냥 이마트 ‘키친델리’ 기획적-집콕·캠핑족 덕에...롯데百, 구스 침구 매출 ‘쑥’-KT&G, 청년 손잡고 문화예술·지역상생 프로그램 지원△식품박물관 시즌5 -반백년 한국인 입맛 사로잡은 새우깡...‘젊은 브랜드’로 우뚝 서다-송로버섯 품은 ‘새우깡블랙’ 최고 궁합 와인 안주로 인기△스포츠“도전 멈추면 발전도 멈춘다”...이경훈 집념 결실-드라이버샷 연습한 타이거 우즈, PNC 챔피언십 나오나-전북 ‘K리그 5연패’ 금자탑-김찬, 日프로골프 상금왕-왼 엄지발가락에 체중 실어 스윙하면 프로급 ‘굿샷’-KIA 새 감독에 김종국 수석코치...3년 계약-모리카와, 男골프 1위 예약△오피니언-[법조 프리즘]입법지상주의에 제동 건 윤창호법 위헌 판결-[데스크의 눈]금융당국 수장의 말뿐인 시장친화 행보-[기자수첩]보여주기식 인재영입에 체면 구긴 與-[e갤러리]채혜선 ‘친구들’△피플-BTS “‘버터’는 우리에게 특별한 곡… 상 받게 돼 감사”-흩어진 정보 모아… 고객 투자진단 콘텐츠 제공할 것-차기 한국언론법학회장에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BFG그룹, 결식아동에 따뜻한 한 끼 선물-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 사회공헌대상 특별상-신임 농정원장에 이종순씨-[알림]나눔, 모두를 위한 ‘사회백신’△사회-윤 후보 사건 ‘올인’하는 공수처… “정치 중립성 잃어, 폐지 불가피”-또 연기된 결혼식… “이젠 화낼 힘도 없어요”-3연발 ‘한국형 테이저건’ 도입… 강력사건 현장대응력 높아질까-겨울 바다 수놓는 서퍼들-‘대장동 4인방’ 재판 본격화… 로비·윗선 드러날까-홍남기 아들 서울대병원 ‘특혜 입원’ 논란
- 요람, 내 인생 출발지인 줄 알았는데…[이윤희의 아트in스페이스]<4>
-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이 1787년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절친이자 전속화가로 알려진 르브룅이 그린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는 30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은 그중 한 점. 기존 왕실 초상화에선 볼 수 없던, ‘자상한 어머니’ 앙투아네트를 등장시켰다. 캔버스에 유채, 275×215㎝, 프랑스 베르사유궁 소장.200여년 전 소설 ‘오만과 편견’이 탄생한 곳은 낡은 책상이었답니다. 종이 몇 장과 잉크병, 깃대펜이 전부인 그곳이 바로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업실이었던 셈입니다. 장서가 그림처럼 꽂힌 책장, 큼직한 책상이 근사한 ‘서재’란 공간은 남성 작가만 차지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뿐인가요. 화가의 공간이던 ‘아뜰리에’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카페’와 ‘술집’ ‘광장’도, 한 가정집의 ‘부엌’과 ‘식당’ ‘침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해 있던 공간이지만, 그곳이 모든 이들에게 늘 공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오랜 시간 미술관을 일터로 삼아온 이윤희 학예연구관이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론 객관적 기록으로, 때론 상징을 담아, 때론 비틀린 풍자를 숨겨낸 ‘그림으로 읽는 공간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사람이야기’입니다. 주말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요람은 사람이 태어나서 머무는 가장 작은 공간이다. 그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왔을 거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작은 공간 둘. 삶의 첫 몇 개월, 아직 스스로 앉거나 걷지 못하는 시기에 꽁꽁 싸매어진 아기는 요람이란 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예수가 마리아와 요셉의 피신 중 지나던 농가의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를 요람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아기 요람이 서기 원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말구유는 말의 먹이를 담아주는 나무그릇으로 그 크기가 임시 요람으로 사용하기 적당했던 모양이다. 태어나면서 깨끗한 요람이 아니라 말구유에 작은 몸을 뉘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을 예정이었던 예수 고난의 첫 번째 상징일 것이다. 요람의 가장 가까이에 늘 있을 사람은 당연히 아기의 어머니다.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들은 유모가 수유와 육아의 수고를 대신했고, 프랑스에서는 서민층조차도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집에 맡겨 일정한 나이까지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으면서 달라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부모 중 단연 어머니 쪽이다. 따라서 과거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요람이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고 어머니 초상과 함께 그려진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아기 요람은 지켜낼 어머니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1627∼1678)이 그린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1670경)는 당시 네덜란드의 가정에서 사용하던 요람의 형태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버들가지를 다듬어 짠 요람은 어느 하나 손에 거슬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고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 요람 안에는 작은 침구를 높게 채우고, 그 위에 갓난아기를 편안하게 눕혀 재우고 있다. 이불로는 가장 부드러운 흰 천을 덮었고 보온을 위해 털 담요도 얹어뒀다. 요람의 머리 쪽은 덮개가 있는데, 때에 따라 이 덮개에 가벼운 천을 씌워 따가운 햇살로부터 아기의 눈을 보호하기도 했다. 바닥 부분에는 완만한 곡선으로 이뤄진 나무받침이 있어 좌우로 요람을 흔들 수 있게 돼 있다. 곁에 앉은 어머니는 금빛 자수가 놓인 흰 옷에 다시 금색 숄을 둘러 아기의 흰 이불과 더불어 자체 발광체처럼 보인다. 어머니의 머리 위에 걸린 시커먼 액자는 심한 폭풍우가 치는 그림이지만, 어머니는 그림과 같은 거친 환경이 닥치더라도 아기를 보호할 것이다. 이들 옆으로 여섯 칸의 계단을 올라간 공간에는 붉은 침대와 의자가 보인다. 부모의 잠자리는 이 붉은 침대일 것이고, 요람은 밤이 되면 이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가로 40㎝ 세로 46㎝의 이 작은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원근법과 미술이론 연구로 실험적이고 놀라운 시도를 지속했던 반 호흐스트라텐의 기질에 비춰보면, 이 그림은 그림 속 주인공인 아기 어머니를 위한 가벼운 선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이 1670년경 그린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 렘브란트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했다는 반 호흐스트라텐은 대상을 실물인 듯 착각할 정도로 재현해 이름이 높았다. 버들가지로 짠 아기요람, 금빛자수를 입힌 어머니 옷 등 사물을 튀어나올 듯 묘사한 작품은 그 사실적 작업 중 한 점이다. 캔버스에 유채, 46×40㎝, 독일 네덜란드미술관 소장.◇프랑스혁명 2년 전…어머니상 부각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이 작은 작품과는 달리, 특별한 목적을 가진 요람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18세기 프랑스 여성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1755∼1842)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1787)이다. 가로 215㎝ 세로 275㎝의 장대한 크기를 가진 그림은 1787년 프랑스의 관전(官展)인 살롱전의 주요 작품으로 선뵀다. 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에 육박하게 그려졌고, 관객들은 그림 앞에 모여 화려한 드레스를 입던 왕비가 비교적 간소한 차림으로, 더군다나 자녀들과 함께 화가 앞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선뵌 지 2년 후인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해 전 살롱에 걸린 그림의 의도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앙투아네트는 붉은 드레스와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있다. 무릎 위에는 어린 왕자가 있고, 공주 마리 테레즈는 어머니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앙투아네트의 옆에는 푸른 벨벳으로 감싼 커다란 요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왕자가 덮개를 열어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요람 안에는 아기가 없다. 요람의 주인은 1786년, 그러니까 그림이 그려지기 직전 해에 결핵으로 죽은 딸 소피 엘렌 베아트리스이다. 앙투아네트가 네 자녀를 둔 어머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빈 요람을 함께 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연출은 왕비의 절친이자 전속화가였던 르브룅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앙투아네트는 당시 이미지 개선이 급박했다. 타국(오스트리아)의 공주 출신이라 왕가를 향한 비난은 앙투아네트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프랑스 재정은 이미 사치를 즐기던 선대 왕 루이 15세 때부터 나락으로 치달았지만 대중은 확실한 희생양을 원했다. 세련된 패션의 유행을 주도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던 앙투아네트가, 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하는 어이없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악의성 소문일 뿐이었다.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B급 소설들이 넘쳐났고 무엇이 사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됐으며 휘몰아치는 괴이한 소문들을 잠재우기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 시점에 왕비는 자녀들과 죽은 딸의 요람까지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어머니로서의 초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빈 요람은 어딘지 섬뜩해 보인다. 빈 요람을 일부러 가리키는 왕자의 행동 역시 계산된 포즈일 수밖에 없다. 자식의 죽음이란 큰 슬픔을 겪은 평범한 어머니, 자녀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 어머니란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동원한 요람은, 추락하는 민심을 어떻게라도 돌려보려는 최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혼·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에드마 모리조 180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프랑스 미술의 경향은 인상주의란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이때 또 한 점의 요람 그림이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의 ‘요람’(1872)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모리조의 언니인 에드마 모리조와 그의 딸이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1872). 19세기 인상주의 운동에 참여한 선구적인 여성화가로 알려진 모리조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양식을 추구했다. 소박한 실내 정경, 일상 속 여성·아이들을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친밀하고 부드럽게 표현했다. 언니 에드마와 조카 블랑시를 모델로 그린 작품은 모리조의 대표작이다. 캔버스에 유채, 56×46㎝,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아기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세상의 모든 아기는 잠잘 때가 가장 예쁜 법. 24시간 곁을 지켜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아기가 잠을 잘 때 비로소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해서다. 그림 속 어머니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드마도 베르트와 함께 여러 스승을 거치며 그림 공부를 했고, 재능이 뛰어나 결국 화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살롱전에 적어도 다섯 번의 출품 승인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경화와 초상화를 수백점 남기기도 했던 에드마의 화가로서의 이력은 결혼·출산과 더불어 중단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잠든 아기 옆에서 한 손으로는 아기의 침대 발치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눈길이 아기를 향해 있긴 하지만 어쩐지 표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일까. 아기가 이대로 좀더 깊이 잤으면 하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전문화가의 꿈을 꾸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던 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17세기 평범한 가정의 아기 요람이든, 18세기 왕비의 죽은 아기 요람이든, 19세기 화가를 꿈꾸던 여인의 아기 요람이든, 요람은 그 곁을 지키는 어머니 인생의 한 자락을 보여 준다. 행복과 안락,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신만의 인생에 대한 회한 등이 세상 모든 사람의 출발지이자 첫 공간인 요람에 스며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자녀들’(1787·위), 사뮈엘 반 호흐스트라텐의 ‘요람 곁에 있는 어머니’(1670경·아래 오른쪽),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1872)의 각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르브룅의 ‘푸른 벨벳으로 덮인 화려한 요람’, 반 호흐스트라텐의 ‘버들가지로 정교하게 짠 요람’, 모리조의 ‘반투명한 천을 보호막처럼 두른 요람’ 등, 마치 17·18·19세기를 대표하는 듯하지만, 요람 곁에 스민 ‘어머니 인생’이란 불변의 진리는 그대로 녹아 있다.△이윤희 학예연구관은…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해외여행 자유화 덕분에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누구나 들렀던 어느 미술관에서 뜻밖에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그 수많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도 함께였다. 이화여대에서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를 시작으로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거치며 오래전 그 렘브란트의 감동을 현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으로 일한다. 일터에 나가면 미술작품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전시기획을 하고, 글을 쓴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 ‘여성의 눈으로 보는 미술 키워드’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 둘리뮤지엄·응답하라 1988·쌍리단길…도봉구는 가족 나들이 종합세트
-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가정의 달인 5월 가족과 함께하는 국내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상황.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에 방문하고 싶지만, 막상 발걸음을 주저하기도 한다.마이크로 투어리즘(micro-tourism)은 이런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집에서 한두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는 이른바 근교 여행을 일컫는다.둘리뮤지엄 앞에 화단에 설치된 둘리와 친구들 조형물.(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아기공룡 둘리’와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이의 고향 서울 도봉구는 8090세대와 그 자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이크로 투어리금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쌍문동은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가 둘리 만화를 집필했던 둘리뮤지엄과 둘리테마거리가 있고, 2015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기도 하다. 또 도봉구에는 연산군 묘, 세종대왕의 딸 정의공주 묘, 우리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의 고택, 독립운동가 함석헌의 기념관, 자유시인 김수영의 문학관 등 다양한 역사·문화 관련 명소가 있다.◇만화 체험놀이 공간 ‘둘리뮤지엄’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4월호에 처음 선보인 후 10년 4개월간 연재됐다. 지상파 방송의 애니메션으로도 방영돼 한국 만화 열풍을 일으켰다. 캐릭터 산업에도 이바지하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둘리뮤지엄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캐릭터 박물관이다. 중년에게는 추억을, 아이에게는 만화 속 주인공들과 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둘리뮤지엄은 뮤지엄동과 도서관동으로 나뉘는데, 뮤지엄동 1층 ‘매직어드벤처’ 전시실에는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1996)’ 이야기에 인터렉션 기술과 가상현실(VR) 콘텐츠를 접목한 실감형 체험 전시물이 있다. 2층 2전시실 ‘코믹 테마타운’에서도 체험 전시물을 통해 둘리와 친구들의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다. 3전시실 ‘김파마의 작업실’은 둘리 역사관 같은 공간이다. 김수정 작가의 쌍문동 작업실, 둘리 연대기, 둘리 원화, 둘리 역대 캐릭터 상품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3층 4전시실 ‘드림스테이지’는 시계추 그네, 대왕문어 미끄럼틀 등을 타며 신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유아 놀이방이다. 3층은 야외 미로공원과 통한다. 미로 곳곳에 숨어 있는 둘리와 친구들 조형물을 찾다 보면 옥상에 설치된 해적선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있는 둘리 3D영화는 지하 상영관에서 1일 4회 상영한다. 극장 옆 기획 전시장에서는 내달 27일까지 체험형 전시인 ‘감성놀이 보일락말락 전(展)’이 열린다. 도서관동에는 어른도 이용할 수 있는 둘리도서관이 있다.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을 비롯해 만화의 고전 삼국지부터 신작까지 비치했다. 뮤지엄동 3층, 도서관동 1층에 카페가 있으나 현재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운영하지 않는다.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모티브가 되었던 쌍문시장 골목 풍경.◇쌍문역 일대 맛집 골목 쌍리단길과 ‘응답하라 1988’ 배경지 쌍문역 2번 출구 골목은 ‘쌍리단길’로 불린다. 이 골목에는 가성비 좋은 파스타 맛집이 여럿 있다. ‘노말키친’은 삼겹살 스테이크를 얹은 크림파스타가 맛있다. 양이 푸짐하면서도 값이 저렴해 단골이 많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파스타 전문점 ‘헬로’는 크림파스타 위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이탈리아식 주먹밥 아란치니를 얹어준다. ‘리얼파스타’에서는 인기 메뉴인 베이컨토마토파스트와 새우필래프를 다른 식당의 반값으로 먹을 수 있다. ‘화승꽈배기’는 설탕 대신 쌀가루로 단맛을 내고, 기름을 먹지 않는 반죽으로 건강한 도넛을 만든다. 1개 단돈 500원이다. 찹쌀탕수육이 생각날 때는 중식당 ‘미미’를 방문해보자. 드라마 ‘봄밤’에 등장해 이름을 알린 ‘쌍문동커피’는 40년 된 주택을 목재로 인테리어 한 주인장 부부의 감성이 돋보인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아이스커피 ‘쌍리단길’이 대표 메뉴다. 이밖에 소금커피가 별미인 ‘카페 작약’,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고르’ 등이 쌍리단길 핫플로 소문났다.레트로 감성을 더 즐기고 싶다면 1970~1990년대 쌍문동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지를 찾아보자. 쌍문역 3번 출구 앞 쌍문시장 골목이다. 주택가에 형성된 시장으로 사람 냄새 나는 골목 풍경이 정겹다. ‘응팔’을 이곳에서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속 약국, 금은방, 덕선이네 집 등의 모티브가 된 가게와 골목이 존재한다. 쌍문역 3번 출구 쌍문약국 앞에 ‘응팔’속 장소가 표시된 쌍문3동 마을 지도가 있다.5월 중순 창포원의 붓꽃원에 보랏빛 붓꽃이 만발했다.◇봄날 붓꽃의 향연 ‘창포원’붓꽃 특화 식물원이자 생태공원인 창포원은 도봉산과 수락산, 중랑천 사이에 조성됐다. 도봉산역이 바로 옆인데도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져 교외로 나들이 나온 기분이 든다. 창포원 정문에 들어서면 백합목 붓꽃과 식물들이 있는 붓꽃원과 꽃창포원이 가장 먼저 반긴다. 창포원에서 볼 수 있는 붓꽃과 식물은 노랑꽃창포, 부처 붓꽃, 타레붓꽃, 범부채 등 13종의 자생붓꽃과 117종의 독일 아이리스다. 꽃봉오리가 붓과 닮아 붓꽃이라 불린다. 만개한 붓꽃과 꽃창포 군락을 보려면 5월에 방문해야 한다. 이 시기에는 탐스럽게 핀 작약과 모란, 백발을 휘날리는 할미꽃 군락도 볼 수 있다. 붓꽃원과 꽃창포원 옆에는 습지원이 자리했다. 이곳에 능수버들, 어리연, 부들, 생이가래, 속새 등 50여 종의 식물이 산다. 습지원 안에는 수생식물과 수변 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관찰 덱이 설치돼있다. 꽃창포원에서 도봉산을 바라보고 섰을 때 습지원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수면에 도봉산 봉우리의 반영이 비친다. 습지원 둘레에 조성된 넓은잎목원, 소나무군락, 초화원, 억새원, 부들원, 초화원 등도 5월의 싱그러움을 뽐낸다.12개 주제원 사이에는 울창한 숲 속의 쉼터와 잔디마당, 원형광장처럼 사방이 트인 구역이 고루 배치돼 있다. 소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버드나무 등 18종의 나무에 에워싸인 ‘책읽는언덕’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즐길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부들원의 연못과 이어진 수로에는 시골 냇가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 수로 가에 앉아 ‘물멍’하기에 좋다. ◇자유시인의 역사를 담은 ‘김수영문학관’자유시인, 저항시인, 4·19의 시인 등으로 불린 김수영(1921~1968)은 도봉구에 살면서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했다. 대표작은 1968년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2주 전에 쓴 ‘풀’이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1970년대 민중시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김수영은 처음에는 소시민의 슬픔을 담은 시를 주로 썼다. 1960년 4·19혁명을 기점으로 자유와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망하기 전까지 사회의 부조리와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글을 주로 썼다. 김수영문학관 1층 전시실에 김수영이 한국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쓴 시와 시학, 육필 원고,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생활인으로서의 김수영을 조명했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김수영이 앉아 원고를 썼던 식탁과 즐겨 읽던 서적들을 볼 수 있다. 창가에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3층은 김수영도서관이다. ◇우리 문화재 지킴이 간송이 머문 고택 ‘간송옛집’ 간송미술관 설립자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대부호의 차남으로 태어난 독립운동가 오세창과 교류하며 20대부터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의 국난을 겪는 중에도 문화재를 향한 간송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청자기린형향로(국보 제65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국보 제66호),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등의 국보 12점과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김득신의 풍속도 화첩(보물 제1987호) 등의 보물 32점 등 총 48점의 문화재와 고미술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의 최고 수집품으로 손꼽힌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 창제 이유와 원리가 밝혀질 수 있었다.간송이 말년까지 머물렀던 간송옛집은 1900년 무렵 간송의 양부(작은아버지)인 전명기(1870~1919)가 별장으로 지은 집이어서 단출하다. 본채, 협문, 담장, 화장실로 이뤄져 있는데, 본채의 유리문과 함석으로 만든 지붕 물받이가 근현대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본가는 종로4가에 있었고, 99칸 저택이었다. 간송은 간송옛집을 곡물 관리를 위한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양부가 사망한 뒤에는 옛집 옆에 묘소를 조성하고 재실로도 사용했다. 간송 사후에는 후손들이 재실 용도로만 사용했다고 한다. 간송옛집은 2012년 국가 등록문화재 제521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으로 등재되면서 2015년부터 일반인에 공개되었다. 간송옛집 오른쪽 언덕 위에는 간송 부부와 양부 전명기의 묘역이 자리한다.
- '2021 박물관·미술관 주간' 13일 온라인 개막
-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2021 박물관·미술관 주간(이하 박미주간)’의 온라인 개막식이 5월 13일 14시부터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중계된다.온라인 개막식은 박미주간의 홍보대사인 손미나 작가의 사회로 진행되며 올해의 주제인 ‘박물관의 미래- 회복과 재구상’을 중심으로 1부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사랑하는 홍보대사들의 이야기와 박미주간 미리보기를, 2부에서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주제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1부에서는 박미주간 홍보대사이자 JTBC ‘그림도둑들’에 출연 중인 김찬용 도슨트가 쉽고 재미있게 올해의 주제와 프로그램별 관전 포인트를 설명하고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거리로 나온 뮤지엄’이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2부에서는 한수 국립공주박물관 관장이 좌장이 되어 올해 주제에 대해 안현정 큐레이터, 장동선 관장, 신상철 교수와 시민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고고학, 박물관학, 미술사학과 학생들과 온라인 사연 모집을 통해 선정되었다.2부 토론의 세부 주제는 ‘박물관·미술관을 통한 경험의 확장 & 콘텐츠의 미래’로서 신기술 활용과 소통형 콘텐츠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박물관·미술관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관람객이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2021 박미주간은 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신기술을 접목, 치유와 회복을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특히 누리 소통망을 통해 집에서도 전국 박물관, 미술관을 여행할 수 있는 ‘뮤궁뮤진’, 일상 공간 속에서 박물관, 미술관의 소장품을 볼 수 있는 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 ‘거리로 나온 뮤지엄’ 외에도 기술을 활용한 박물관, 미술관 문화 체험, 사회적 연대, 치유와 회복 등에 대한 ‘주제 연계 프로그램’, 전국에 숨겨진 박물관, 미술관 명소를 찾아다니는 ‘뮤지엄 꾹’ 등이 오는 14일부터 23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온라인 개막식은 공식 유튜브 채널(박물관미술관주간)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진행되며 박물관·미술관 주간 공식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이 온라인 개막식에 함께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영감도 얻어가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 [미리보는 이데일리 신문]강남 큰손들 주식시장서 돈 안 뺐다
-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다음은 18일자 이데일리 신문 주요 뉴스다.△1면 -강남 큰손들 주식시장서 돈 안 뺐다-봉은사·국기원 일대 공공주도 개발 추진-가짜 농부 2만5000명, 여의도 12배 땅 사들였다-美국무장관 방한 일성…“北, 권위주의 정권”-[사설]원전으로 돌아간 탈원전…정책 오류로 큰 대가 치렀다-[사설]부동산 특검과 국정조사, 공직 투기 근절 계기 삼아야 △줌인&-[줌인]방수·방진·손떨림방지…‘성능A+’ 갤럭시A, 삼성 선두 다질 에이스로 -고동진 사장 “올해 갤노트21 출시 어렵다”…단종설엔 선그어△LH발 투기의혹 확산-가짜농부 다 빠져나갈라…정부 대책은 지지부진, 국회는 정치공방만 -이해충돌법, ‘언론인·사립교사’로 확대 주장 논란-캐나다·중국인까지 농지 매입…투기꾼 놀이터된 3기 신도시 △기승전ESG…<4>한화그룹-사막화 지역에 숲 조성, 메콩강에 태양광 청소보트…환경문제 해결 나서-10년째 과학기술 영재 발굴…외부전문가 사외이사로 영입-[ESG라운지]“ESG 공시 의무화는 과속 기업에 충분한 시간 줘야”△PB 7인이 본 ‘부자들의 투자’-주식 말고 수익 낼 곳 없더라…강남 부자들, 성장주 대신 경기민감주 담아-짧게 보면 안정적인 ELS…길게 보면 성장주·TDF -비트코인 가능성 본 부유층…“자녀들에게 투자 권유”△정치-吳·安, 단일화 안갯속…후보 등록일 넘기나-‘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호소에도…말 아낀 박영선-文대통령, 美국무·국방장관 접견 바이든 정부 대북전략 베일 벗나△국제-또 아시안 혐오범죄인가…美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한인여성 4명 사망-강경모드 美, ‘알래스카 회담’ 앞두고 中관료 제재 -배터리 독립 선언한 폭스바겐 CEO “테슬라와 협업 없다”△금융-시장금리 오르는데…생보업계 보험료 인상 예고-카드사용 줄었는데 페이도 후불결제…카드업계 한숨-은행들은 지금 ‘디지털 열공’ 중 △산업&기업-‘TSMC 언제 따라잡냐’ 질문에…김기남 “경쟁력 손색없다” 자신감-“100% 옥수수로 만든 신소재, 내년 3월 양산”-대한항공 ‘통합전략’ 제출…아시아나 인수 탄력받나 △산업·바이오-라인, 고객정보 中유출 논란…네이버 日사업 ‘긴장’-종근당 코로나 치료제 허가 불발…“유효성 입증 안돼”-정부·삼성이 도운 K주사기, 유럽CE 인증△소비자생활-코로나에 ‘집콕’ 늘자 콘돔 판매도 쑥…왜?-‘쿠팡거지’ 양산…쿠팡이츠 ‘묻지마 환불정책’ 원성-삼양식품 환골탈태…감사위원 전원 ‘사외이사’로 △식품박물관 시즌4-할리스-한국 첫 커피전문점…‘카공족 성지’ ‘콜래보 명가’로 우뚝-체류형공간·먹거리로 ‘MZ세대’ 사로잡아△증권&마켓-“이왕이면 큰 물에서”…脫코스닥 움직임 커지나-모두 ‘메타버스’ 수혜주라지만…주가 전망 엇갈리는 엔터사들-‘중위험 중수익’ 재조명 EMP펀드에 자금 몰려 △증권-스튜어드십 코드 5년…주주 제안 ‘역대 최다’-사퇴 표명·회의 중 퇴장…국민연금 위원회간 ‘불통?’-온라인 패션 플랫폼 ‘W컨셉’ 이커머스 대박행진 이어갈까△문화-걸그룹 출신 ‘연기돌’ 무대서 男心 조준-대학로 대표극단, 신작 쏟아진다…활기 되찾은 공연계-옷인가, 미술품인가…예술의 경계를 허물다△스포츠-임성재 “디펜딩 챔피언다운 경기 펼칠 것”-일주일 휴식 주어진 김연경 PO서 ‘흥벤저스’ 되살릴까 -보기 쏟아지는 ‘베어트랩’ 잘 넘어야 우승 보인다△부동산-오피스텔도 ‘공시가 폭탄’…신혼부부 뿔났다-“대세하락 속단은 아직 이르다”-인천 미추홀구 ‘시티오씨엘 3단지’ 22~25일 분양△피플-“반려견 치매약 개발 성공…반려묘 임상도 나설 것”-고 정주영 자서전 독후감 대회 대상에 홍성준 학생-강은호 방사청장, 인니 잠수함 인도식 참석△오피니언-[임규태의 테코노미] AI는 ‘사이버 고흐’를 꿈꾸는가-[생생확대경]전금법 개정안이 수상한 이유 △전국-부천에 ICT를 입히다…“스마트시티 챌린지 올해부터 본격화 할것”-횡단보도부터 돌봄까지…스마트시티 서비스 ‘속도’-소송 휘말린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이르면 이달 26일 재개장…6개월만△사회-朴 “한명숙 모해위증 재검토” 수사지휘권 발동…法·檢 갈등 재발 예고-박원순 피해자 “2차가해·왜곡 큰 상처…與서울시장 나올까 두려워”-AZ 접종 후 ‘혈전’ 사망 보고 당국 “심근경색·폐렴 가능성”
- 뱅크시 '비틀기' 존 원 '오마주'…세상 움직인 그 정의로운 반란
- 이데일리문화재단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에 걸린 셰퍼드 페어리의 대표작 ‘지식+행동’(Knowledge+Action·2019·왼쪽)과 ‘O.G.립스’(O.G.Rips·2019). ‘지식+행동’은 ‘스트리트 아트’ 전의 테마가 된 작품이고, ‘O.G.립스’는 32년 전 페어리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그때 만든 흑백의 ‘앙드레 더 자이언트’(1989)에 색을 입힌 것이다(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문화재단이 최근 문을 연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은 현대미술의 총아로 꼽히는 ‘스트리트 아트’다. 세계서 손꼽히는 거리예술가 6인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는가. 6인 아티스트가 선명한 메시지를 만들어낸 그 배경을 살피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이어간다. 첫 회는 셰퍼드 페어리, 존 원, 뱅크시다. <편집자주>[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2015년 8월 영국 서머싯주 웨스턴슈페메어, 한 폐장한 수영장에 테마파크가 들어섰다. 상식적인 놀이공원을 염두에 뒀다면 오산이다. 즐겁기는커녕 음침하기 짝이 없으니까. 일그러진 인어공주, 전복된 호박마차,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성 등. 이름하여 ‘디즈멀랜드’.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48)가 세계 58명의 동료 예술가를 불러모아 만든 설치작품이다. 음울하다는 뜻의 디즈멀(dismal)을 붙인 그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 ‘디즈니랜드’를 배배 꼬아놓은 거다. 우울한 현실을 풍자한 이 테마파크는 딱 5주만 문을 열었다. 테마파크에 들인 작품 하나하나에 뱅크시의 기발한 ‘비꼼’이 반영됐지만, 그중 눈에 띄는 하나가 ‘디즈멀달러’다. 테마파크 안에서만 유통한 화폐다. 미국의 1달러짜리를 본뜬 외형에 특유의 ‘문제의식’을 담은 그림을 새겨넣었다. 뱅크시가 세계 58명 작가들과 함께 세웠던 ‘디즈멀랜드’에서 유통한 화페 ‘디즈멀달러’(2015) 중 한 점.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에서는 ‘디즈멀달러’ 원화 22점을 소개한다(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중 ‘뱅크시’ 코너. 연작 ‘디즈멀달러’(2015)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운데는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2006)를 새겨넣은 동전이다(사진=이영훈 기자).#2. 앙드레 더 자이언트(1946∼1993).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거인 레슬러다.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란 본명 대신 ‘더 자이언트’란 별칭으로 불린 건 223㎝, 227㎏의 거구 때문. 프로레슬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지만 오래전 ‘한물 간’ 그가 어느 날 다시 회자된 건 엉뚱한 계기였다. 1989년 미국 북동부 로드아일랜드 거리에 그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포스터와 스티커가 나붙으면서다. ‘작품’은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더니 이내 로드아일랜드를 넘어 동부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한 대학생의 장난쯤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이후 그 대학생의 이름이 세상을 강타할 때마다 떠올랐다. 셰퍼드 페어리(51)다. 자신이 만든 브랜드인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로 더 잘 알려진 그가 확실하게 ‘뜬’ 건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희망’(HOPE)을 제작하면서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아티스트로서 직접 만든 작품은 이내 오바마 캠프의 공식 포스터로 채택됐고, 페어리와 오바마 둘 다를 대중에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반전·평화·환경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단출하면서도 강렬한 포스터에 옮겨낸 그의 작업이 세계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트리트 아트’로 부상한 건 물론이다.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중 ‘셰퍼드 페어리’ 코너. 전시에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1989)부터 시작한, 셰퍼리의 창작활동 3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30점 중 22점을 엄선해 걸었다(사진=이영훈 기자).◇‘디즈멀달러’ ‘오베이 포스터’…미공개 원작 대거 공개뱅크시가 2015년 제작한 비틀기의 역작 ‘디즈멀달러’ 22점이 한국에 왔다. 페어리가 2019년에 작업한 메시지의 압축 ‘오베이 포스터’ 22점도 함께 왔다. 특히 페어리의 작품은 ‘앙드레 더 자이언트’부터 시작한, 창작활동 30주년을 기념하는 30점에서 엄선한 것들이라 의미가 적잖다. 이들이 나란히 걸린 곳은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 최근 문을 연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전이 열리고 있는 공간이다. 전시는 두 아티스트 외에 이름만으로 세상의 눈과 발을 움직이는, 세계의 거리예술가 4인이 합세했다. 미국 아티스트 존 원(58)과 존 마토스 크래시(60), 프랑스의 제우스(54)와 포르투갈의 빌스(34).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서도 결코 빠지지 않는 내로라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역량을 그대로 살려 ‘튀는 조화’를 이뤄낸다. 80여점을 걸고 세운 ‘6인 6색’ 전이다. 전시의 부제는 ‘지식+행동=힘’. 이 명제는 페어리의 포스터 연작 중 한 점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다고 전시가 페어리의 철학만인 것도 아니다. 전쟁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외치고,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환경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쓰고 버리는 일회성 소비문화를 반대해온 6인의 접점이기도 하니까. 이번 전시의 테마이자 방향인 이 작품 ‘지식+행동’(2019) 역시 전시장에 걸렸다. 나무패널에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페어리가 만든 6점의 에디션 중 4번째다. ◇실험·자유·저항…거리예술의 정신을 내걸다“세상을 움직이는 힘(power)은 지식(knowledge)과 행동(action)을 결합할 때 나온다.” 이 단순하면서도 단순치 않은 명제를 온몸으로 내보인 또 한 명의 아티스트는 존 원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채 지난해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의 흑인문명박물관에서 개인전 ‘유산’을 열었다. 지역문화를 ‘알고’ 자신의 ‘행동’을 결합해 세상을 위로할 ‘힘’을 만들자 했던 거다. 평면 회화작품에서 시작, 세네갈 거리문화를 대표하는 서핑보드 10개에 칠을 했고, 어부들의 생업도구인 카누에 색을 잔뜩 입힌 뒤, 종내는 60m가 넘는 거대한 벽화까지 만들어냈다. 세네갈의 국기색깔을 차용해 초록·빨강·노란색의 물감을 뿌리고 칠하고 던져 완성한 대작이다. 바로 그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추상회화 10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라운드 더 월드’(Round the World·2019), ‘러닝 아웃 오브 타임’(Running Out of Time·2019), ‘시큐어’(Secure·2019) 등. 캔버스에 애써 가둔 자유·희망의 분출이라고 할까. 존 원의 ‘라운드 더 월드’(Round the World·2019). 존 원 특유의 ‘뿌리고 칠하고 던진 듯한’ 기법과 강렬한 원색의 감각이 드러난 추상회화다(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중 ‘존 원’ 코너. 거리 벽화를 캔버스로 들인 추상회화 10점과 드로잉 2점을 걸었다. ‘러닝 아웃 오브 타임’(Running Out of Time·2019), ‘시큐어’(Secure·2019), ‘투 머치’(Too Much·2019), ‘디퍼’(Deeper·2019) 등이 보인다(사진=이영훈 기자).또 다른 ‘힘’을 설명할 수 있는 뱅크시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보자. ‘디즈멀랜드’로 ‘비틀기를 통한 창조’를 했던 그가 ‘파괴를 통한 창조’에 나선 일이다. 2018년 10월, 영국 런던 소더비경매장에 한 장의 그림이 대중 앞에 걸렸다. 흑백톤의 어린 소녀가 붉은 하트모양의 풍선을 날리는 모습을 담은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2006)다. 사실 대중의 관심을 끈 건 그림보단 작가였다.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 없던 그 뱅크시였으니. 작품은 경합 끝에 104만파운드(약 15억 4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래, 여기까진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해두자. 이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기상천외한 장면이 펼쳐지기 전까지 말이다. 경매사가 낙찰봉을 내리치는 순간, 마치 신호인 양 그림이 액자 아래로 스르륵 내려오면서 길게 잘려나가는 게 아닌가. ‘파쇄기가 된 액자’의 행진은 그림이 반 정도 남은 상태에서 멈춰섰다. 다음날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현장사진을 공개하며 피카소의 말을 인용해 붙였다. “파괴하려는 충동 또한 창조적인 충동이다.” 작품에 스민 본질은 외면한 채 가격 정하기에만 몰두하는 경매시장이 못내 거슬렸던 건가. 결국 이 모두는 페어리, 존 원, 뱅크시가 거리예술로 지향한 실험·자유·저항정신의 한 단면일 터. ‘스트리트 아트’ 전은 그 무형의 무한형태를 역설적으로 화이트큐브 전시공간에 끌어들였다는 의의가 크다. 그 시작을 알린, 드라마틱한 과정을 이어갈 전시는 6월 2일까지다. 이데일리문화재단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개관전 ‘스트리트 아트’ 전경 중 일부. 존 마토스 크래시(왼쪽부터), 뱅크시, 셰퍼드 페어리, 제우스 등의 작품이 보인다. 전시는 세계서 손꼽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 6인의 80여점을 전시한다(사진=이영훈 기자).
- 문체부, 우수 국립박물관 26곳 인증
-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등록 후 3년이 지난 국립박물관 36개관을 평가하고, 그중 우수한 26개관을 인증했다고 8일 밝혔다.이번 평가는 △설립목적의 달성도 △조직·인력·시설 및 재정 관리의 적정성 △자료의 수집 및 관리의 충실성 △전시 개최 및 교육 프로그램 실시 실적 △공적 책임 등 5개 범주(13개 지표)에서 정량평가 50점, 정성평가 50점 등 총점 100점 만점으로 진행했다.문체부는 지난해 1월 36개 국립박물관을 평가 대상으로 고시한 뒤 △자료평가 △현장평가 △평가인증심사위원회 심의를 진행했다. 평가 기간 동안 리모델링을 진행한 3곳은 평가에서 제외하고, 33개관을 평가한 결과 인증 기준(70점)을 넘어선 26개관을 인증기관으로 선정했다. 인증받은 26개관 중 16개 기관은 5개 평가 범주에서 80% 이상의 달성도를 보였고,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 8개관’(경주, 공주, 광주, 김해, 대구, 전주, 제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수목원산림박물관(산림청)’ 등 10곳은 3개 이상 평가 범주에서 90% 이상 달성도를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문체부 소속 기관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그외에 △설립목적의 달성도 범주에서 ‘국립산악박물관’ △조직·인력·시설 및 재정관리의 적정성 범주에서 ‘국립수목원산림박물관’ △전시 개최 및 교육프로그램 실시 실적 범주에서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문체부는 3월 중 공동 연수회를 열어 국립박물관 담당자들과 평가인증 결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에는 국립박물관과 공립박물관, 미술관의 운영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담당자를 대상으로 기관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평가 범주 및 지표별 미흡한 사례에 대해 상담할 계획이다.문체부 관계자는 “전국 단위 국립박물관 평가인증으로 운영 성과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 국립박물관이 국가 대표 문화기반시설로서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줌인] 보물 지키려 보물 내놓는 아이러니...'간송 장손'의 고뇌
- 간송 전형필의 장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할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문화재를 남겼다는 생각은 안 한다”를 지론 삼아 ‘간송 컬렉션’의 곳간지기 역할을 해왔다(사진=이데일리DB).[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잘 손질한 양복 차림. 적어도 공식석상에선 그의 캐주얼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목까지 꽉 죈 넥타이는 물론이고,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모양까지. 꼿꼿하다. 한결같다. 흔들림 없다. 맞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간송가 자손답다.” 전인건(49) 간송미술관장 얘기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장손이자 전성우(1934∼2018) 전 간송미술관장·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아들, 또 전영우(80)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조카로, 그는 3대째 간송 집안의 ‘가업’을 잇고 있다. 193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보화각’이란 이름으로 세운 간송미술관(1966년 개칭)의 문을 지키고, 조부 간송이 수집한 전통미술품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그 가업 말이다. 내다 팔아 내 것으로 바꿀 수도 없는 엄청난 보물을 지키는 ‘문지기’이자 ‘감시자’. 버거운 일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을 훼손해선 안 되는, 유지·관리에 한 점 누락이 생겨도 안 되는, ‘명예’와 ‘현실’ 둘 다를 지켜내야 하니까. 시스템보다는 개인기, 재능보단 정신력이었다. 그런 전 관장이 간송미술관의 파격 변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 시절, 미술관 담 밖으론 한 걸음도 떼지 않았던 소장품을 대거 끌어낸 일이다. 한 해 봄·가을 두 차례씩, 낡고 좁은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던 기획전이 중구 DDP로 나온 건 2014년. 첫 기획전을 연 지 42년 만에 감행한 ‘빗장 풀기’였다. 때마다 몰려든 관람객이 세운 몇백미터의 긴 줄을 사라지게 한 뒤 그는 “공개는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것이 할아버지의 유지였으니까”라고. DDP가 간송 소장품과 맞지 않는다는 둥, 40여년 무료전시 관행을 깨고 입장료를 받은 건 상업화로 가는 수순이라는 둥 입방아가 쏟아졌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한 5년을 지켜내고, 지난해 1월 마지막 외부전시인 ‘3·1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을 열며 그는 “이르면 오는 가을 수장고 공사를 끝내는 대로 성북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다른 소문이 솔솔 피어났다. ‘재정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거였다. 그러던 차에 결국 지난 21일 엄청난 얘기가 들렸다. ‘보물’ 소장품 두 점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소식이다. 대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과 신라시대 불상인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 82년 간송미술관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간송미술관이 82년간 소장해온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37.6㎝·7세기·왼쪽)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18.8㎝·6~7세기). 이들 두 점이 27일 케이옥션 ‘5월 경매’에 특별출품작으로 나온다(사진=케이옥션).△‘명예’…민족문화유산 수호자 집안 간송은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온 인물. 증조부 때부터 서울 종로 일대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재산을 지켰다면 조선 몇대 갑부로 남았을 일. 하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민족문화재 수호에 한평생을 바치자’ 결심했던 거다. 간송이 일본으로 흘러간 문화재를 사들인 장면을 기억하는 일화는 한두 편이 아니다. 1933년 친일파 송병준의 집 아궁이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화첩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을 시작으로, 고급 기와집 10채 값인 2만원을 일본인 골동품상에게 덥석 주고 얻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1000원을 부르던 거간꾼에게 1만 1000원을 쥐어주고 건네받은 뒤 눈물을 쏟았다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등. 1936년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드라마도 연출했다. 경성구락부(한국 최초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경매에 부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을 두고 일본 최고 골동상과 벌인 ‘기싸움’이다. 500원을 부른 시작가가 1만 4580원까지 치솟았지만, 간송은 기어이 낙찰을 받아내고야 만다. 1937년에는 일본에 정착한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고려자기 컬렉션’을 끌어오기도 했다. ‘청자기린유개향로’(국보 제65호),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 제66호), ‘청자오리형연적’(국보 제74호) 등 국보·보물 9점을 포함해 20점. 이를 위해 200평을 1마지기로 치던 충남 공주 땅 1만마지기를 팔았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현실’…상속세까지 겹쳐 쌓이는 재정난 “난 아버님이 수집한 문화재를 지키고, 그 대의를 받드는 창고지기일 뿐이다. 귀중한 유산이 다치지 않게 살피고 정리하는 게 내 사명이다.” 이는 전 관장의 아버지인 전성우 전 이사장의 말이다. 그 말 그대로 그이는 한평생을 그리 살았다. 미국서 성공한 출중한 화가였지만 그저 ‘간송의 아들’로 생을 마쳤다. 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더랬다.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이태 전 타계한 그의 아들 전성우는 “밤에 족자를 걸어놓고 보거나 고려청자를 어루만지던” 간송의 모습을 기억하곤 했다(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80여년 동안 정부지원은 물론, 이렇다 할 수익원이 없던 것도 그들의 대쪽 같은 고집 때문이었다. 못 받았다기보다 안 받았으니까. 왜? “지원을 받으면 간섭도 받아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그러니 재정난이 쌓이는 건 안 봐도 훤한 사정.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년 전 전 이사장이 별세한 뒤 발생한 상속세까지 떠안았다. 간송의 소장품은 5000여점. 모두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귀속돼 있다. 이 중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국보에 대해선 상속세가 없으니 결국 이보다 더 많은 수천점의 소장품이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오는 27일 케이옥션이 진행할 ‘금동여래좌상’ ‘금동보살좌상’의 경매의 시작가는 각각 15억원. 낙찰금이 얼마가 되든 재정난을 해소하는 데 턱없이 부족할 거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여론이 들끓고 상황이 커지자 전 관장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입장문을 내고 “송구하다”고 했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소리다. 정작 ‘지못미’를 외쳐야 하는 담 밖의 이들을 향해 “재정 압박에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간송의 미래를 위해서니 혜량해 달라”고 했다. ‘왕관의 무게 재기’라고 할까. 머리에 꽂히는 그 하중이 어느 정도일지 누가 안다고 하겠나. 실제 전 관장은 평소 “간송의 손자란 부담감은 없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왜 아니겠느냐”며 웃어 넘겼다. 그럼에도 지론은 ‘칼’ 같았다. “할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문화재를 남겼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이번 결정에 앞서서도 그는 조부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터다. 해방 후 간송의 한 인터뷰. “아직도 모으시나”란 물음에 간송의 대답은 이랬다. “이제 독립을 했으니 난 좀 게을러져도 된다. 이제 누가 사도 우리 것이지 않은가.” 과연 이 장면이 전 관장에게 위로가 됐을지 비수가 됐을지, 알 수가 없다.
- 반역인가 반전인가…명화로 진격한 '아이돌'
- 작가 마리킴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연 개인전 ‘마스터피스’에 내건 ‘생명의 나무’(2019) 앞에 섰다.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동명원작(1909)에 등장하는 여인의 자리에 자신의 캐릭터 ‘아이돌’을 접목한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문양이 여기저기서 번쩍한다. 나선을 따라 박아넣은 금박이 조명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다. 한눈에 봐도 알 만한 그림. 독창적인 패턴과 강렬할 색채, 찬란한 황금빛을 뒤집어쓴 관능적인 여인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생명의 나무’(1909)가 분명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거대한 나무에, 금박에, 여인은 그대로인데 ‘관능’이 빠진 거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나 볼 법하다는 자태를 뽐내는 여인 대신 커다란 눈의 앳된 소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으니. #2. 아미타불 본존이 결가부좌한 채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그 아래 좌우로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 두 협시보살이 본존을 보필하듯 서 있고. 뒷머리 쪽엔 광배가 둥글게 아우라처럼 뻗쳐 있는 모양이, 그림 한 폭에 삼존을 그린 전형적인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14세기)가 맞다. 그런데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그림은 색까지 바래 얼굴조차 희미한 지경이라는데. 여기 이 그림은 역시 뭔가 이상하다. 예의 그 커다란 눈을 가진 세 여인이 한껏 치장을 하고 삼존을 흉내내듯 들어가 있으니까. 마리킴의 ‘아미타삼존도’(2019·왼쪽)와 ‘수월관음도’(2019). 14세기에 그려진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의 삼존과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 대신 커다란 눈의 ‘아이돌’을 들였다(사진=가나아트갤러리).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벽마다 큼직한 액자 속 낯익은 그림들이 걸렸다. 지구촌 유수의 미술관에 있어야 할 굵직굵직한 간판작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고 할까. 마치 세계명화전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 전경. 그런데 어디까지나 멀찍이 떨어져 봤을 때의 얘기다.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는데. 그림마다 박혀 있는 바로 그 과장된 큰 눈과 마주치는 그 일이다. △“유능하면 모방하고 위대하면 훔친다” 작가 마리킴(43)이 국내서 4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이름 하여 ‘마스터피스’ 전. 타이틀 그대로 전시는 명화로 시작해 명화로 끝난다. 다만 늘 봐오던 그것들과는 다른 모양인데. 작가의 독특한 캐릭터 ‘아이돌’(Eyedoll)을 명작 속 주인공(주로 여성) 자리에 과감하게 등장시킨 거다. 하나같이 ‘마리킴 아이돌’로 변신한, 그렇게 아이돌이 진격한 명화를 재구성한 작품은 26점. 회화 25점과 조각 1점을 걸고 세운 작가는 이 모두를 “원작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한다. 마리킴의 ‘오송빌르 백작부인의 초상화’(2019). 프랑스작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동명원작(1854) 속 여인이 ‘마리킴 아이돌’로 변신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원작을 변형했지만 작품명은 원작 그대로 삼았다. 시작은 ‘웨스턴 모텔’(1957/2019). 미국작가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그림이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프랑스작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오송빌르 백작부인의 초상화’(1854/2019)가 보이고, 에두아르 마네의 ‘철도에서’(1873/2019),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뿌리개를 든 소녀’(1876/2018)도 눈에 띈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고야가 옷을 벗기기도, 옷을 입히기도 했던 여인 마하를 그린 ‘옷을 벗은 마하’(1797∼1800/2019), ‘옷을 입은 마하’(1803/2019)는 세트로 걸려 있고, 디에고 벨리스케스의 그 유명한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1659/2019)는 더 어려졌다. 이뿐인가. 이탈리아의 중세 걸작품도 나왔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흰 담비를 안은 여인’(1400s/2019),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상적 여인의 초상’(1400s/2019) 등등.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시공을 고려 후기로 옮겨놨으니. ‘수월관음도’ ‘아미타삼존도’ ‘관음·지장보살병립도’ 등이 불화시리즈(2019)로 나섰다고 할까. ‘수월관음도’에서 좌상으로 빼낸 조각작품(2019)까지 말이다. 마리킴의 ‘옷을 벗은 마하’(2019·위)와 ‘옷을 입은 마하’(2019).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명연작(1797∼1800 & 1803) 속 여인들도 작가의 ‘오마주’ 대상이 됐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작가의 ‘아이돌’은 이미 유명하다. 2007년 한국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릴 때 팝아트의 줄기로 이름을 알렸다. 그 ‘만화 같은 그림’은 2011년 아이돌그룹 2NE1 앨범표지에 등장하면서 ‘아이돌과 손잡은 아이돌’로 한 차례 더 부상했다. 그런 작가가 처음부터 ‘아이돌’을 작정하고 탄생시킨 건 아니란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배운 적이 없다”는 작가는 “만화를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큰 캐릭터가 스타일이 됐다”고 말한다. 실제 작가는 미대에서 미술이 아닌, 공대에서 멀티미디어를 공부했단다. 컴퓨터로 애니메이션 그리는 일이 훨씬 익숙했다는 소리다. ‘공학도 출신’답게 그간 작품은 주로 ‘프린트’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그랬던 것이 이번 ‘명화시리즈’에선 다른 시도를 선뵀는데. 이른바 ‘물감 덧입히기’.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대형 캔버스로 출력한 뒤 그 위에 다시 붓질을 한 거다. 원작의 질감을 내려했단다. 화면의 절반 이상이던 얼굴 작업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얼굴을 바꿨지만, 얼굴만 바꿀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돌을 들이기 위해선 원작인물이 가진 몸의 균형·규모까지 손을 봐야 했다는 거다. 그럼에도 “비율보단 기법의 다양성에 집중하려 했다”고 한다. 마리킴의 ‘관음·지정보살병립도’(2019). 전신에 하얀색 옷을 입은 관음보살상(오른쪽)이 등장하는 고려불화로 2008년 뒤늦게 발견돼 화제를 모은 ‘관음·지정보살병립도’(연도미상)를 원작으로 삼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오마주인가 훼손인가…보는 이가 가려야 그렇다면 왜 굳이 명화에 접목했을까. 미술작품은 단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 어깃장을 놓고 싶었나 보다. “사진복제시대를 지나면서 ‘원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 않은가. 명화에도 기술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전유물처럼 꺼내보고 소유하던 명화를 대중화하고자 했다는 거다. 고려불화는 한국적인 상황의 ‘대중화’인 셈.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그 ‘걸작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노출한 셈이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작품은 극과 극의 평가에 놓일 만도 하다. ‘원작 오마주’인지 ‘원작 훼손인지’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말이다. 이를 의식한 듯 작가의 반응도 조심스럽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피카소가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난 그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명화의 색다른 방식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 한 근거로 작가는 ‘흰 담비를 안은 여인’(2019) 속의 다빈치 사인을 가리킨다. 원작을 훼손하거나 훔치려 했다면 굳이 그 사인까지 옮겨놨겠느냐는 거다. 작가 마리킴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서 연 개인전 ‘마스터피스’에 건 ‘흰 담비를 안은 여인’(2019) 옆에 섰다. 이탈리아 중세 걸작품이라 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세기에 그린 동명원작에 자신의 캐릭터 ‘아이돌’을 접목한 작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을 인용해 작가는 이렇게 주장한다. “현대미술에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거니까.” 그 말대로 작품은 불멸의 예술성에 최신의 기술을 과감하게 얹은 상상력의 승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한다”(톨스토이)며 작가가 신봉해온 ‘미론’에선 호불호가 생길 만하다. 다른 손을 타야 아름다워지는 예술이란 점에서 반기가 들릴 여지가 충분하니까. 결국 반역인지 반전인지는 보는 이들이 가려내야 할 터. 어쨌든 미술계에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던져놨다고 할까. 전시는 31일까지.
- 국립 박물관·미술관·도서관 24곳, 6일부터 '부분 정상화'
-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됨에 따라 오는 6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소속 24개 박물관·미술관·도서관의 서비스를 부분 정상화한다고 1일 밝혔다.부분 정상화하는 24개 기관은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지방박물관 13곳(경주, 광주, 전주, 대구, 부여, 공주, 진주, 청주, 김해, 제주, 춘천, 나주, 익산) △국립현대미술관 4곳(과천, 서울, 청주, 덕수궁) △국립중앙도서관 3곳(서울, 세종, 어린이청소년)이다. 이들 기관은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대책을 마련한 후 이용인원을 제한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재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박물관·미술관 21곳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단체관람과 교육·행사는 계속 중단하고, 개인 간 거리유지(1~2m)가 가능한 범위에서 개인관람만 허용한다. 특히 사전예약제를 통해 시간당 인원을 제한하고 시간대별로 이용자가 분산될 수 있도록 관람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용객은 기관별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시간, 관람 가능 인원, 예약방법 등을 사전 확인해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우편복사서비스를, 국립세종도서관은 복사와 대출·반납 서비스를 우선 제공하고, 추후 자료실 열람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문체부는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일상에서 정착돼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면 이용인원을 차츰 늘리는 등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코로나19 위기경보의 ‘심각’ 단계 격상으로 문 닫은 국립중앙박물관(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