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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용의 軍界一學]'사면초가' 내몰린 기무사, 개혁 성공하려면
-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는 과거 군부정권 하에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군보안사령부의 후신입니다. 실제로 보안사령관에는 정권 창출을 주도했던 군 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들이 맡았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하나회 출신으로 각각 20대와 21대 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것으로 알려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15대 사령관을 지냈습니다. ◇보안사→기무사 명칭 변경…사령관, 대통령 독대도 폐지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던 보안사의 ‘힘’이 크게 꺽였던 때가 1990년 민간인 사찰 파문 이후입니다. 당시 보안사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303명을 상대로 정치 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습니다. 사찰 명단에는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사찰 대상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비판이 쇄도했고, 야당과 학생들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을 전격 경질하고 부대 명칭도 기무사로 변경했습니다. 순수 군 관련 업무로 조직과 체제도 축소시켰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대통령과 기무사령관의 독대도 폐지됐습니다.서울 종로구 소격동 소재 옛 국군보안사령부 본관 전경. 1928년 개원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진찰소 건물로 1932년 일부 준공 후 1933년 증축을 통해 완성된 철근콘크리트 3층 건물이다. 지난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가 부활했습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과 사상검증 등 불법 활동 의혹은 계속됐습니다. 실제로 새 정부들어 기무사에 대한 불법 정치활동 조사에서 사이버 댓글활동 등을 통한 여론조작과 대통령 및 정부를 비난하는 이른바 ‘극렬 ID’를 수집해 불법으로 신원조회한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또 기무사는 국정현안 대응을 위해 안보단체를 관리하는가 하면 ‘예비역 사이버 전사(戰士)’ 육성 등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지지 확산을 위해 안보단체 등에 접촉하며 여론 지지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또 불거진 민간인 사찰 의혹특히 기무사는 2014년 4월경 세월호 관련 유가족 모니터링 등 현장지원 TF를 운영하면서 세월호 추모 집회에 대응한 안보단체의 맞불집회를 돕기 위해 시위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에 대한 사찰, 단원고 동향 사찰, 수색중단을 위한 논리 개발 등의 업무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무사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당시 각종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위수령 발령과 계엄 선포를 검토한 문건까지 작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국방부 검찰단은 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의 작성 경위와 시점, 적절성, 관련 법리 등에 대해 확인 및 검토 작업을 거쳐 수사 전환 여부를 판단한다는 방침입니다. 기무사의 현재 모습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문재인 정부들어 이석구 사령관 체제로 전환된 지난 해 8월 이후 기무사는 4차례의 ‘고강도 개혁TF’를 운영하면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정치적 중립 준수와 보안·방첩 중심으로 임무와 기능을 재정립하는게 핵심입니다. 이에 따라 기무사 본부의 군 인사정보와 동향 파악 등을 담당하던 1처를 해체했습니다. 장병 사생활 확인도 금지하고 신원조사는 장군 진급자 및 주요보직 예정자만을 대상으로 범위가 축소됐습니다. 또 군사정보 분야도 국방 핵심 이슈에 대한 사실 위주의 안정적 상황관리를 위해 ’융합정보실‘로 통합했습니다.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군기무사령부 본관 전경 [사진=연합뉴스]◇기무사 개혁,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조직돼야그러나 이같은 기무사 자체 개혁안이 미비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방부는 민간위원들이 중심이 된 기무사 개혁위원회를 꾸려 ’환골탈퇴‘ 수준의 개혁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광역 시·도 11곳에 설치된 기무부대 폐지입니다. 대령급 지휘관이 담당하고 있는 이들 조직은 600·601·608·613 부대 등으로 60단위 기무부대로 불립니다. 각 지역의 군 부대 내에 설치된 기무부대를 지휘·감독하는 역할입니다.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서는 사령부 본부 조직 뿐 아니라 60단위 부대를 포함한 전 예하부대에 대한 조직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게 현실화 될 경우 현재 4000여명 규모의 기무사 조직은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개혁위원회는 기무사 명칭 변경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특무부대, 방첩부대, 보안부대 이후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번에 또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전망입니다. 보안과 방첩을 아우르는 명칭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부대 이름을 바꾸고 조직과 권한을 축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습니다. 기무사 개혁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은 정권의 부당한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사실 과거 정권에서 이뤄진 각종 불법 행위는 기무사가 스스로 하기 힘든 일들입니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들이었기 때문에 윗선이 개입돼 있다는 게 합리적 추론입니다. 군의 속성상 기무사가 상부에서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국방장관이나 청와대 등 정권의 부당한 지시가 없어야 기무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 文대통령, 靑영빈관서 세월호·천안함·연평도 희생자 유족들과 오찬
-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229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가진다. 이번 오찬에는 보훈단체 및 모범회원 209명이 참여한다. 6.25 전쟁영웅과 국가수호 희생자의 유족과 민주화운동 유공자, 순직 소방공무원, 세월호 희생자와 군 의문사 순직자 유족 등 20명도 특별 초청됐다. 6.25 전쟁영웅의 유족은 6.25 당시 공군 최초 전투기인 F-51를 인수하는데 기여한 김신 공군 중장의 딸 김 미씨와 서울탈환작전 당시 해병제2대대 소대장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대령의 아들 박석용 씨다. 국가수호 희생자 3인의 유족은 △제2연평해전 당시 벌컨포를 사수하며 마지막까지 방아쇠를 손에 쥔 채 전사한 황도현 중사의 부친 황은태 씨 △연평도 포격 당시 사격장 임무수행 중 전사한 문광욱 일병의 부친 문영조 씨 △천안함 희생자 이상희 하사의 부친이자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 회장인 이성우 씨다.소방공무원 유족 2인은 지난 3월 충남 아산에서 유기견 구조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25톤 화물차 추돌사고로 순직한 김신형 소방교의 배우자 이충준 씨와 소방관 임용예정자로 현장 실습에 나섰다 사고를 당한 문새미 교육생의 아버지 문태창 씨다. 청와대 측은 이와 관련, “공무원 시험 합격자가 정식 임용 전 직무 수행 중에 사망할 경우, 사망 전날을 공무원 임용일로 소급 적용토록 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문새미 교육생도 순직 공무원과 동일한 예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민주유공자 유족 3인은 △4.19혁명 희생자 김주열 열사의 동생 김길열 씨 △김치호 열사의 조카 김성실 씨 △5.18 최초 사망자 김경철 씨의 어머니 임금단 씨다. 196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는 3월 15일 시위 중 행방불명되어 28일 후 마산 앞바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대학생이던 김치호 열사는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시위 중 총상을 입고 같은 날 수도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뇌막염으로 청각을 잃고 말도 배우지 못했던 김경철씨는 5.18 당시 계엄군의 폭행으로 인해 시민 중 처음으로 숨을 거두었다. 세월호 유족과 순직 교사, 소방공무원 유족 4인도 이번 오찬에 초청됐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제자들에게 구명복을 챙겨주며 탈출시키고 본인은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교사 고창석 선생님의 배우자 민은성 씨, 단원고 교사로 학생들을 구조하다 25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세월호 의인’ 전수영 선생님의 어머니 최숙란 씨, 세월호 수색지원 후 복귀 중 기상 악화로 소방헬기가 추락하며 순직한 정성철 소방령의 배우자 방은영 씨와 박인돈 소방경의 배우자 김영희 씨다. 군 의문사 순직자 유족 2인은 1998년 공동경비구역 내 소대장으로 임무수행 중 벙커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씨와 1984년 4월 최전방에서 복무 중 3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씨다.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끝내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김 중위는 사망 19년, 허 일병은 33년만인 지난해 11월과 10월 각각 순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2018년 정부포상자 2인은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인 이수길 강남새마을금고 이사장과 국민훈장 ‘목력장’ 수상자인 권순영 충북대병원 상임감사다. 이수길 이사장은 2017년 4월 세월호 참사 기부금, 2016년 태풍 차바 피해성금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와 지역 봉사활동에 앞장서 온 공로를, 권순영 상임감사는 ‘한국여성의집’ 원장으로 취약 및 소외계층 지원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밖에 민주화 기여자 2명도 참석자에 포함됐다. 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의 실존인물로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독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광주로 가도록 도운 고 김사복 씨를 대신해 아들 김승필가 참석했다. 또 5.18 당시 광주에 파견된 한국일보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전쟁터와 다름없었던 광주 ‘5.18민주화운동’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박태홍 씨도 초대됐다.
- [전문] 文대통령 4.3 추념사 “대통령으로서 국가폭력 사과드린다”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주 4.3사건과 관련,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주제로 제주4.3평화공원 일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12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추념식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국가적 추념행사로 위상을 높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다음은 문 대통령 추념사 전문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이 땅에 봄은 있느냐?”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저는 오늘 여러분께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4.3의 명예회복은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우리의 미래입니다.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우리 국민들에겐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여러분,“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2018년 4월 3일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