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빠지는 학자금대출의 늪, 열심히 일해도 닿기 어려운 내 집 마련의 꿈. 한국 청년들의 현실은 대개 이렇지만, 프랑스 청년들은 달랐다. 한국 청년들이 스스로를 연애·취업·결혼·출산·주택 구입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 자조한다는 말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 청년들은 의아해했다. 교육과 주거를 아우른 전반적인 사회제도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가 사회생활의 시작점과 불안 강도를 바꾸고 있었다.
한국의 MZ세대(1980~2005년생)처럼, 프랑스에선 젊은 세대를 YZ세대(1984~2010년생)라 불렀다. 지난 5월 파리에서 만나 인터뷰한 YZ세대 10명 중 대부분은 현재의 삶에 만족을 표했다. ‘생존투쟁의 치열함’은 느낄 수 없었다.
|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교 앞에서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김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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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중인 남성 루카(21)씨는 “프랑스는 대학들에 서열이 사실상 없고 웬만한 대학이 모두 무상이기 때문에 사교육비나 학비가 들지 않는다”며 “한국처럼 학자금 빚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생활비 정도만 벌면 돼 경제적인 걱정이 크지 않다”고 했다. 루카씨는 “동거 커플도 가족처럼 지원을 받는데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적다”며 “집값이야 비싸긴 하지만 주거문제 해결엔 여러 방법이 있어서 ‘내 집’이 고민거리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집값 비싼 도시 중 하나이나 에펠탑과 샹젤리제 인근 등 시내 중심에도 자리한 질 좋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사회주택·HLM)이 있고, 노인인 집주인이 사망하면 세입자가 집을 갖는 ‘비아제’(Viager) 방식 등이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선 내 집 마련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단 설명이었다.
우리나라 청년처럼 취업을 걱정하는 이들은 당연히 있었다. 다만 직장 선택의 기준은 월급 수준, 안정성보다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라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나중을 기약하기보단 지금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는 것이다. 구직활동 중인 여성 일루이즈(26)씨는 “좋은 일자리를 찾고 싶다”며 “월급은 적어도 상관없다, 우리 세대는 야근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세대, 우리 윗세대야 일주일에 50시간 일해도 불만이 없었지만 우리는 직업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의 질 문제를 더 중시한다”며 “어른들이나 신문에선 ‘젊은 애들이 일하기 싫어한다’고 비난하지만 시각차가 크다”고 했다.
연금개혁 문제에 있어선 불만이 컸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7년부터는 현행 62세가 아닌 64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여 관철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다. 화염병·최루탄을 들고 나온 시위대에 경찰이 물대포로 맞서는 등 과격했던 연금개혁 반대 시위는 누그러졌지만 불씨는 여전했다. “지금도 62세 이상 사람들이 계약연장 등으로 일하고 있는데 연금 수급 연령이 늦어지고 은퇴가 늦어지면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더 줄어드는 게 아닌가”(플레흐·22세 남성), “일을 오래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불리냐·21세 여성)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한국과 프랑스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였다.
(통·번역 도움=한국외대 장민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