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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의 세무사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김범섭 자비스앤빌런즈(이하 자비스) 대표가 꺼낸 첫 마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올 때까지도 ‘문제의 법 조항’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허탈함이 묻어져 나왔다.
잇단 고발…세무사·플랫폼간 갈등 첨예
세무사법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여야 이견으로 결국 통과되지 못한 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다만 다음 전체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여야 간사간 합의가 있었던 만큼 다음 법사위에선 통과 가능성이 높다. 국정감사로 인해 다음달께 법사위 통과가 유력하다.
당초 이 개정안은 변호사들의 세무 업무 제한이 골자로, 세무사와 변호사간 갈등으로 주목을 받은 법안이다. 하지만 ‘세무대리 업무의 소개·알선 금지’(제2조의2) 조항이 지난해 7월(추경호 의원 대표 발의) 갑자기 포함되면서 이 법안은 세무대행 플랫폼 이슈로까지 확대됐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세무대행 업무나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약 30곳의 플랫폼 업체들은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법 위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스타트업계는 문제 조항이 포함된 배경에 세무사단체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1년간 세무대행 플랫폼과 세무사단체 사이엔 갈등과 잡음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승합차 공유서비스 ‘타다’, 법률 플랫폼 ‘로톡’ 등 주요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겪었던 갈등과 유사하다.
올 4월만 해도 한국세무사고시회가 세무사법을 위반했다며 자비스를 경찰에 고소한 바 있다. 현재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한국세무사회도 지난 3월 자비스를 포함한 세무대행 플랫폼 업체 7곳을 고소했다. 자비스는 총 500만명의 누적 가입자를 확보한 국내 최대 세무대행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 중이다.
세무사회 관계자는 “이전부터 세무사들이 어렵게 키운 시장을 해당 플랫폼들이 ‘무임승차’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세무대리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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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업계 “고객층 달라, 소상공인만 피해볼 것”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영세사업자들이 세무사를 통한 세무대리 서비스를 원활히 받지 못했던 것을 플랫폼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실제 삼쩜삼의 경우에도 500만명에 달하는 회원 중 70% 이상이 영세사업자(연수입 1000만원 이하)들이다. 규모가 큰 법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무사들과 주요 고객층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삼쩜삼의 경우 종합소득세 신고 대행 기준으로 평균 1만4000원 정도의 이용료를 받는다. 반면 세무사들은 연매출 3억원 이상 법인이나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가 주류인데, 지역별·세무사별로 이용료가 천지 차이다.
소상공인을 주고객으로 두고 있는 세무대행 플랫폼 ‘세친구’도 갑갑한 건 마찬가지다.
한세옥 세친구 대표는 “당장 우리 서비스가 운영되지 못하면 간단한 세무대행 서비스를 활용해왔던 소상공인들의 세무대행 비용은 2배 이상 올라갈 것”이라며 “결국 법 규제를 통한 모든 피해는 소상공인들이 입게 되는 것이어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번 세무사법 개정은 최근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추진된 것이어서 업계 전반에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이해집단인 세무사들과 플랫폼간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규제와 잡음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산업과 기존 산업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는 이번 세무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그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특히 의원 발의 법안의 경우 부처에서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라며 “거대 기득단체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 법 발의와, 이를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하고 있는 정부 사이에서 영세한 스타트업들은 너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은 이들 플랫폼을 통해 갈등보다 조화와 공생으로 세무대행 시장을 키우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법 개정은 신산업 육성은 물론 소비자 편익에도 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신산업 육성, 국민 편익 측면에서 세무대행 플랫폼의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법 개정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며 “플랫폼 업체들이 늘어나는 건 결국 세무사 시장 전체로 보면 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지고 결국 전체 시장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