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누가 이 배우를 늙었다 하는가`(인터뷰)

  • 등록 2012-05-09 오전 8:25:42

    수정 2012-05-09 오후 3:02:01

▲ 윤여정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09일자 37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 얼마 전 배우 박해일은 이런 말을 했다. "노인에겐 `만성`이란 단어가 따라다닌다. 만성 피로, 만성 두통, 만성 관절염. 행동이 느리고 생각이 많아져 때론 주위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은교`를 촬영하며 70대 노(老) 시인의 삶을 살아본 것에 대한 소회였다.

배우 윤여정(65)도 비슷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엉망"이라며 코를 훌쩍였다. "공진단 먹어가며 대사 외우는데 대본 늦게 주는 작가가 제일 싫어"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더킹 투하츠`,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TV 배우를 왜 그렇게 깔봐. 배우 아니라 탤런트라고 하고. 탤런트, 재주가 많다는 건데 좋은 거 아닌가? 돈도 가장 많이 벌고" 뼈만 앙상한 몸으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그의 화법은 독특했다. 이율배반적이다. 투정하고 짜증 내고 화내면서도, 이해하고 반성하며 받아들인다. 홍상수, 임상수. 성(姓)만 다른 두 감독과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영화 `하하하`를 찍을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일같이 화를 냈다. 통영까지 가는 장거리 스케줄에 모텔 생활. "나 안 해! 못 해!" 서울로 도망을 친 적도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김상경, 문소리 등 다른 배우는 다 잘하는데 나만 못했다"고 자책했다. 윤여정에 따르면 홍상수는 기억력이 좋다. 한 번 오간 말은 절대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때가 되면 꺼내 상대를 옭아맨다. 윤여정은 홍상수의 차기작 `다른 나라에서`에도 출연했다. "다음에는 꼭 잘할게". 그는 그렇게 `하하하` 때 약속을 지켰다.

임상수와도 첫 만남은 유쾌하지 못했다. 2005년 `그때 그 사람들`이 시작이었다. "불손까지는 아니었지만 불친절했다"고 임상수와의 첫 만남을 회고한 그는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잘 나왔더라. 이후 임 감독의 모든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됐다"고 털어놨다. 물론 고약하기로는 윤여정을 능가한다. 차기작 `돈의 맛`에서는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와의 베드신을 요구했다.
▲ 영화 `돈의 맛`에서 배우 윤여정.
"처음에는 나도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랑. 뭐냐?`라고 따졌다. `보는 사람들이 많이 불쾌할 거다` 라고 했더니 `그러라고 썼다`더라. `돈 많고 권력 있고 모자란 것 없이 다 가진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라면서. 임상수는 잘 알다시피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는 감독이다. 술 먹고도 말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 본능 같은 거. `그 불쾌감을 왜 하필 내가 주느냐?` 하는 부분에선 불만도 있으나 이번에도 결국 내가 졌다. 한마디 하면 두 마디, 말로는 못 당한다.(웃음)"

임 감독은 디렉션도 직설적이다. "재벌가 안주인인데 지금 동네 아줌마 같거든요?" 콕 짚어 말한다. "오히려 정확해서 좋고 편하다" 스무살이나 어린 감독의 지적이 불쾌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보기보다 유연했다.

윤여정은 이렇듯 젊다. 할 말은 꼭 하고 산다. 귀도 트였다. 더불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그는 "늙은이라 잃을 게 없어서"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어느 나이 지긋한 여배우가 이처럼 대담할 수 있을까.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여배우에게는 없는, 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는 연기에의 마르지 않은 열정, 젊음에서 나왔다.

윤여정은 올해도 한국의 여배우를 대표해 칸에 간다. 최근 출연한 영화 두 편(`다른 나라에서``돈의 맛`)이 모두 올해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영화제 초반에는 홍상수, 후반에는 임상수 감독의 팔짱을 끼고 레드카펫을 밟는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로 생애 처음 칸을 방문한 이후 2년 만이다. 소감을 묻자 윤여정은 "내가 말년에 복이 많은 것 같다"며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꾹꾹, 있는 힘껏 눌러가며 말했다.

"어려서 연기할 땐 외국 한 번 나가려면 여권을 샅샅이 훑어보는 등 없는 나라에서 왔다고 얕잡아보곤 했다. 그러면 시작부터 기가 죽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국력이 강해져 어디서도 그런 대우 안 받지 않나. 어려운 시절도 살았지만, 누리는 시절도 살다 가게 돼 감사하다."

(사진=한대욱 기자)
▲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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