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15일 수능 수험생 92명이 ‘과탐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문제엔 명백한 오류가 있고 그러한 오류는 수험생들로 하여금 정답항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문제는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험생들의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평가지표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결론 냈다.
구체적으로는 “문제의 제시 조건을 사용해 동물 집단의 개체 수를 계산할 경우 특정 유전자형의 개체 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생명과학 원리상 동물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일 수는 없으므로 이 사건 문제에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단 Ⅰ, Ⅱ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이 같은 상황에서 수험생들에게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에 명시된 조건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항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없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답을 5번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면 앞으로 수험생들은 과탐에서 과학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그러한 오류가 출제자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수능을 준비하며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응시생들이 제기한 이의신청의 주요 내용은 ‘문항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어 문항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가원은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는 타당하다”며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항에서 제시한 조건이 완전하지 않아도 성취 수준은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응시생 92명은 서울행정법원에 해당 문항의 정답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함께 본안 판결 전까지 정답 결정을 미뤄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답 결정의 효력을 본안 판결 전까지 중단하도록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