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 반려동물 흔적…"보증금 다 못줘" 임대차분쟁 급증

지난해 분쟁조정 '보증금반환' 유형 급증
원상회복 비용 일방 공제 등 분쟁 사례
계약갱신요구권 관련 분쟁↓…"학습효과"
'시장 침체' 2022년 난항…지난해 '개선'
  • 등록 2024-02-21 오후 2:48:38

    수정 2024-02-21 오후 7:34:5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세입자 A씨는 보증금 3억원, 월세 75만원에 집주인 B씨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대로 2년간 거주하고 퇴거했다. 그런데 집주인 B씨는 보증금을 2억9500만원만 돌려줬다. 바닥재가 훼손됐다고 보고 일방적으로 500만원을 빼고 반환한 것이다. A씨는 통상적인 사용 흔적이라고 생각해 나머지 보증금 500만원도 지급받고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았다.

보증금 일부를 반환받지 못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인해 보증금 전체를 돌려받지 못해 발생하는 분쟁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최재석 변호사(법률구조공단 상임조정위원)
2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서울중앙지부에 접수된 임대차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지난해 646건이다. 유형별로 보면 절반에 육박하는 309건(47.8%)이 보증금 반환 관련 사례다. 전년(188건) 대비 64% 증가했다.

최재석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상임조정위원(사무국장 겸임, 변호사)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집중적으로 접수되는 유형이 잔액 보증금 반환 신청”이라며 “보증금 전액 반환 신청이 여전히 더 많기는 하지만 추세를 보면 잔액 보증금 반환 신청의 증가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빌트인으로 설치된 세탁기를 고장냈다거나 벽에 낙서를 해놓고 간 것에 대해 수리비용, 도배비용 등을 공제하고 보증금을 지급한 사례 등에서 분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많아지면서 퇴거 후 남은 흔적을 제거하는 비용과 관련해서도 분쟁이 잦아졌다는 것이 최 위원의 설명이다.

단위: 건, 자료: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서울중앙지부
최 위원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전세사기와 관련한 사례는 이미 형사사건화한 것이라 조정의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조정신청이 들어오면 가능한 법적 절차를 안내한다”고 했다.

주택임대차조정위원회에서 7년째 활동중인 최 위원은 “시기별로 주택임대차분쟁 유형의 트렌드가 나타난다”며 “2020년 7월 계약갱신요구권 도입 이후 2년 뒤인 2022년에는 손해배상 유형이 폭증했다가 어느 정도 학습효과가 생기면서 지난해에는 다시 줄었다”고 설명했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위해 계약갱신요구권이 보장되면서 임차인은 최장 4년간 이사 걱정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집주인의 실거주 시엔 계약갱신요구가 거절된다. 이때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가 거짓이었거나 내보낸 뒤 다른 임차인을 구한 경우엔 집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액 산정 방법이 법률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 유형은 상대적으로 조정이 용이한 편이다.

최 위원은 “법정 손해액에 양 당사자의 사정을 각각 고려해 적정한 조정액을 권고하면 80~90%는 받아들인다”며 “소송을 하면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판결 직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조정은 당사자들과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만족감이 큰 편”이라고 전했다.

최근 3년간 임대차분쟁조정 실적을 살펴보면 2022년 성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2021년까지 매년 오르던 집값이 2022년 정반대 양상으로 돌아서면서 임대차시장에서도 집주인과 임차인간 갈등이 커졌던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해 조정신청 건수가 증가했고 분쟁해결률은 70% 아래로 떨어졌다. 평균처리 소요일수도 36.2일로 전년대비 6일 길어지는 등 조정을 통한 분쟁해결이 특히 어려웠던 한해였다.

최 위원은 “다행히 지난해에는 분쟁해결률이 73.9%로 회복되고 평균처리소요일수도 34.9일로 개선됐다”며 “조정은 대부분 사건의 수수료가 1만~2만원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면제되는 사유가 많아 소송에 비해 비용 측면에서도 매우 유리하고 절차와 결과 모두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분쟁 해결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단위: %, 일, 자료: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서울중앙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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