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희고 광택이 도는 피부에 호리호리한 체구를 자랑하는 나무가 있다. 자작나무다. 북유럽의 울창한 수림을 떠올리게 하는 자작나무는 한자어 같지만 순우리말이다. 얼핏 서양 귀족의 다섯 품계를 나타내는 한자어(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 뜻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름으로 다시 들여다본 우리 자연생태계의 숨은 이야기다. 여러 말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근원적인 어휘와 형태소로 이루어진 생물이름들을 표제어로 빼냈다. 42종을 다뤘다. 얽힌 사연은 물론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선 충분한 설명을 곁들였다.
잡지 `자연과생태`에서 오래도록 기자로 활동했던 저자가 언어로 표기되기 전 생물에 붙여진 이름을 통해 우리말 어원을 찾아나선 성과물이다. 서양철학을 전공했던 데다 생물의 유래나 연구사 혹은 생물학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크게 늘었다. 궁극적으로 생물학이 품고 있는 인문학적 주제로 귀환한 셈이다.
도마뱀은 행태가 그대로 이름이 된, 재미있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생물 중 하나다. 위급할 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것으로 유명한 도마뱀에 쓰인 `도막`은 토막의 옛말이다. 칼로 요리재료를 다듬을 때 사용하는 받침대인 도마도 도마뱀의 도마라고 설명한다.
의미가 왜곡된 후 굳어진 경우도 있다. 백조가 대표적이다. 백조(白鳥)는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다. 고니가 우리말이다. 생물학계에선 이미 백조라는 말을 퇴출시켰으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아직도 `고니의 호수`가 못되고 있다.
우리 마당에 사는 생물의 정체성을 세우고 확보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초인 이름을 규명하는 시도가 생명의 근원을 밝히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사라져 가는 생물과 언어는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물이 진화하듯 언어도 진화하고, 생물이 멸종하듯 언어도 사멸한다. 방학 중인 아이들 붙들어두고 생물과 언어의 생명력을 주제 삼아 책 얘기 한 번 풀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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