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생무상…지구의 지배자들 발자국만 남았네

1억년 전 공룡의 세계로…경상남도 고성 여행
  • 등록 2013-08-20 오후 2:34:30

    수정 2013-08-21 오후 3:20:24

경상남도 고성 신월리에서 바라본 해넘이. 늦은 오후 신월리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붉게 타오르는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번 여행지는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다도해의 절경을 만들어 내는 곳, 경상남도 고성입니다. 고성은 이웃한 통영이나 거제, 남해보다 덜 알려졌지만 사람과 자연이 유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 빚어낸 위대한 유산을 간직한 곳입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문수암은 남해 보리암 못지 않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고, 밥상머리를 닮았다 하여 ‘상족암’이라 불리는 덕명리에는 1억년 전 거대한 공룡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외에도 사라져버린 옛 가야인들의 흔적이 온전히 남은 송학리 고분과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고성오광대’의 탈춤에서는 당시 양반들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상족암과 공룡 발자국. 상족암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그 모양새가 밥상다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그 앞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공룡의 발자국이 나 있다. 약 1억여년의 시간을 지나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사진=고성군청>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 ‘상족암’

고성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남쪽 바닷가 상족암. 고성 땅 서남쪽에 자리 잡은 상족암은 고성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다. 이곳에 상족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 바위의 남다른 모양새 때문이다. 마치 시루떡을 쌓아 올린 듯 켜켜이 쌓인 층층단애가 오랜 땅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그 나이가 무려 1억여년을 헤아린다고 하니 그 시간의 무게감에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그 우뚝한 절벽 아래로 해식동굴이 숭숭 뚫려있는데 그 모양새가 밥상다리 같다 하여 상족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샘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옛날 하늘의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이 맑게 샘솟는 물로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목욕을 마친 후 절벽들 사이로 날아 올라갔으리라. 수억년 시간이 쌓은 돌들을 따라 동굴을 빠져 나오면 또 다른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백명이 족히 앉아 쉴 만큼 느린 이 바위를 마당바위 또는 너럭바위라고 고성 사람들은 부른다. 이 너럭바위에는 놀라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의 주인들로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들이다. 백악기에 멸종되기까지 중생대를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들은 1억여년이 시간을 건너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30년 전인 1982년 경북대 지질학팀에 발견되기까지 공룡 발자국은 오랜 시간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이 마당바위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다.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먹이를 먹거나 때로는 무언가를 쫒듯 또는 쫒기듯 빨리 뛰어간 것처럼 보인다.

고성군은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로 꼽힌다. 지금까지 약 5000여종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특히 물결무늬연흔화석은 호수지역에 나타나는 화석으로 먼 옛날 고성군 일대가 일본 열대와 연결되는 거대한 호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흔적이다.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고성지역은 우리에게 공룡의 땅으로 자리잡았다. 공룡들이 남긴 발자국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저 편에 잠들어 있다가 어느 날 홀연히 우리 앞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그 오랜 시간을 건너왔음에도 어떻게 그렇게 뚜렷이 남아있는지 놀랍다. 저 켜켜이 얹힌 시간 속에 우리 인간들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상족암 바로 위쪽으로는 고성공룡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공룡전문박물관이다. 중생대 초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약 1억 6500만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공룡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전시실엔 실물크기의 공룡 골격 화석을 비롯해 ‘오비랍토르’와 ‘프로토케라톱스’ 진품화석 등 세계 다양한 공룡화석들을 만나볼 수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책까지 들고 온 아이들은 실물 크기의 공룡 화석과 모형들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모형으로 재현한 백악기 시대를 통해 당시 공룡들의 삶을 살펴볼 수도 있다.

상족암과 물결무늬연흔화석. 물결무늬연흔화석은 호수지역에 나타나는 화석으로 먼 옛날 고성군이 일본 열대와 연결되는 거대한 호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흔적이다. <사진=고성군청>
문수암의 아침. 하얀 구름이 산허리에 파도처럼 밀려와 장엄한 풍광을 선보인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보현사의 전경. 보현사 뒤편으로 보석처럼 박힌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이산은 고성 앞바다 풍광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짙은 안개로 시계가 좋지 못해 다도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진= 고성군청>
▲무이산 정상에 자리 잡은 문수암

갈 지(之)자로 굽이쳐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인상적인 무이산은 고성 앞바다 풍광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이 무이산 높은 자락에 문수암이 있다. 문수암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풍광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눈에 굽어 보이는 쪽빛바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눈 안에 들어오는 풍광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어떤 훌륭한 화가가 있어 이 풍광을 화폭에 담을 수 있을까.

문수암은 1300여년 전인 신라 신문왕 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문수암이 자리 잡은 무이산은 다른 이름으로 청양산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해 해동의 명승지로 알려져 왔고 삼국시대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가파른 산자락에 의상대사는 어떻게 암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그와 관련해 문수암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져 온다. 문수암이 창건될 당시 의상대사는 부석사·범어사·화엄사 등 화엄 10대 사찰을 건립했다. 이후 의상대사는 당신이 말년을 보낼 토굴 자리를 찾기 위해서 남해 금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민박을 위해 잠시 들른 고성에서 잠깐 참선 정진하는 선정 중에 남루한 차림의 걸인 두 사람이 나타나 “금산까지 갈 필요가 없고 고성에 청양산이란 데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라”고 일러줬다. 두 걸인은 다음날 의상대사를 이끌고 지금의 무이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자리에 문수암이 세워지게 됐다.

그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법당 뒤편에는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이 의상대사를 인도한 후 사라졌다는 문수단이 있다. 가파르게 서 있는 석벽 아래쪽으로 문수단이라 적힌 글씨가 보이는데 의상대사의 글씨라 전해진다. 이곳에서 올려다 보면 석벽이 갈라진 틈 사이로 문수보살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절경이고 터가 좋아도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법. 문수단 오른편 아래에는 신기하게도 바위 틈에서 자연적으로 샘솟는 석간수가 있다. 서너 명 정도는 항상 살 수 있을 정도다. 아마도 그 옛날, 무술을 연마하고 목이 마른 화랑들도 이 물을 마셨으리라. 의상대사가 이곳에 암자를 세운 뜻은 어쩌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들러 세파에 찌든 마음과 눈을 저 풍광에 씻어가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무이산 정상에 위치한 문수암
무이산 정상에 위치한 문수암에서 바라본 약사전의 모습.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약사여래불이 뚜렷이 보인다. 깊게 내려 앉은 안개로 인해 약사전 뒤로 펼쳐진 다도해가 보이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쉬웠다.
▲여행메모

▶그외 볼거리

경상남도 고성 지도
◇송학동 고분군: 고성읍 초입에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내는 능선이 있다. 바로 송학동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고성 일대에 존재했던 소가야의 고분군으로 현재는 약 7기의 고분이 남아 있다. 북쪽으로는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는 송학동 조개더미가 남아 있어 이 곳이 소가야국이 있었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즐길거리

◇ 남해안의 바닷속이 궁금하다면 고성스쿠버(055-674-6999)에서 스쿠버 다이빙 교육을 받은 후 체험해 볼 수 있다. 고성만 또는 동해만 앞바다는 물이 깊지 않고 파도가 세지 않아 초보자들이 교육받기 좋은 장소 중 하나다. 고성스쿠버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수료한 후 SDI(Scuba Diving International)에서 인증하는 다이버 교육 수료 확인증을 받을 수 있다.

▶가는길:

◇ 서울에서 경남 고성까지는 아주 먼 거리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차량을 렌트해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으니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승용차: 경북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고성IC→고성읍

- 버스: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매일 25회 출발, 심야버스 2회 출발.

◇먹거리

- 바다장어(붕장어 혹은 아나고)는 지금이 제철이다.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민물장어보다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상족암 너른바위. 너른 바위 위를 잘 살펴보면 1억 년 전, 공룡들이 지나간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경남 고성의 고성만과 동해만은 스쿠버다이빙 초보자 교육에 적합한 바다다. 초보자들도 일정기간의 교육기간을 거치고 난 후 바닷속에 들어가 체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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