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스스로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부죄의 원칙에 따라 거짓말을 하거나 도망가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는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을 동원한 행위가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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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021년 10월 A씨가 다른 사람들과 공모해 태국에서 마약류를 밀수입한 혐의로 A씨의 주거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A씨는 압수수색 다음 날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가까운 지인 B씨에게 “법적으로 어지러운 일이 생겼다. 회사 대표가 구속이 되고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머리카락을 잘라가고 소변검사도 했다”며 “어디 머물 곳이 있느냐,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1대만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B씨는 약 1개월간 자신의 주거지에 A씨를 숨겨주고 자신의 지인 명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A씨가 쓸 수 있도록 했다. 수사관들이 B씨의 주거지도 찾아왔지만 B씨는 “나는 A씨의 번호도 모르고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 당시 집안에 있던 A씨를 도피시키기도 했다.
A씨는 불복해 상고했다. 이에 대법원은 A씨를 마약 혐의로는 처벌할 수 있지만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으므로, 범인이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역시 도피행위의 범주에 속하는 한 처벌되지 않으며, 범인의 요청에 응해 범인을 도운 타인의 행위가 범인도피죄에 해당하더라도 마찬가지”라며 “(피고인 A씨가 B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같은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A씨가 B씨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는 등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는 방어권 남용으로 보고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이때에도 방어권 남용으로 볼 수 있는지는 범인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한편 A씨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수사관들에게 “나는 A씨 번호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한 B씨는 별도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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