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영화를 뒤로하고 마치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일은 더 있다. 닭을 키우는 미국 가정 얘기다. 집에서 가축을 키워 잡아먹는 문화는 애초 미국에 없었다. 그런데 뒤집혔다. 고기와 달걀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더 절실한 심정에선 식량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를 키운다. 부작용도 생겼다. 닭울음이다. 밤잠을 설친 주민들의 빗발친 민원에 급기야 어느 시의회는 한 가구당 닭 한 마리씩만 키우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건 로스앤젤레스 시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그 잘 나가던 미국은 이제 없다는 것이 책의 제목인 동시에 주제다. 세밀화를 통해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하는 쉰두 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막연한 미국 위기의 실체를 명확히 했다.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된 지적은 점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사회관계망의 붕괴를 전망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닭을 키우는 행위는 “정상적인 교환경제 사회의 그물망이 해체되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유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생존전략”이란 주장이다.
한때 미국을 흠모했다는 미국 유학파 사회학자인 저자가 품었던 전형적인 시선을 스스로 벗겨낸 데 의미가 있다. 그는 빛바랜 옛 영광을 그리며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전에 당신이 그리웠노라고 목 놓아 우는, 반미라기보다는 헌사”라고 에두르며 질퍽한 애정관계를 감추진 않았다. 애증의 대상에서 `타산지석`을 챙겨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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