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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출신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70)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가 ‘등대’ 앞에 섰다. 그러곤 그 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 23명 인물들을 만났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는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공자(BC 551∼479)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같은 고대 사상가부터 인류사를 움직인 거대한 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나 토머스 에디슨(1847∼1931), 감히 시대가 좇지 못한 예술적 영감을 드러낸 화가 카라바조(1571∼1610)와 음악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를 봤다. 글쓰기로 철학을 말한 월트 휘트먼(1819∼1892), 살아가는 이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제시한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1225∼1274), 국가와 정치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준 토머스 홉스(1588∼1679)와 호치민(1890∼1969) 같은 정치인도 있다.
왜냐고? “소설 속 운명보다 광적이고 더 강렬하고 더 허구적이고, 우여곡절과 모순이 더 많은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 때문이란다. 그 어떤 이론도 “예술가와 발전가, 모험가와 크리에이터, 반항하는 자와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의 풍요로운 인생 여정만큼 역사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지 못해서”라고 단언했다.
▲왜 지금 ‘공자’인가
하지만 ‘인간성’을 좇아 신념까지 버릴 순 없다. 아탈리는 그 대상으로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를 뽑았다.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 그는 결국 불경죄로 화형을 당하기에 이른다. 나폴레옹 시대를 산 스탈 부인(1766∼1817)도 있다. 당시로선 드물게 독일 관련 논문까지 써낸 여성. 자유로운 인생을 꿈꿨으나 쉽지 않았다. 이룰 수 없는 갈망은 나폴레옹 독재정치에 대한 증오로 연결됐다. 결론은 추방. 이들에 대한 최대한의 찬사는 아탈리가 붙였다. “얼마나 대단한가. 단 1분도 행동의 중심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단 1분도 생각하거나 쓰거나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왜 하필 ‘등대’인가
아탈리가 굳이 ‘등대’를 세운 이유는 뭔가. 23명 거인들의 삶과 지혜가 “허술한 쪽배를 타고 시대의 격랑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인 우리”에게 “길을 밝혀주고 운명의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뚜렷한 확신을 바탕으로 극적인 삶을 산 인물에서 인생의 지혜와 묘미가 도드라지는 건 당연했다. ‘등대’들이 비추는 지점에는 단 한 가지 주제만 뒀다.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건가.”
다시 말해 내용과 형식은 달랐지만 아탈리의 ‘등대’에 속한 이들이 품었던 질문은 하나였다는 거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려 하는데 모든 것이 그것을 막겠다고 단합하고 나선다면 어떻게 ‘나’로서 살아낼 것인가.” 아탈리에 따르면 그들이 생의 대부분에 전력투구했다면 바로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결국 아탈리가 독자에게 기대한 것도 다르지 않다. “당신, 어떻게 당신답게 살 건가”다.
장구한 세월과 역사를 헤집고 등대를 세워 거인들을 깨우면서 아탈리가 의도했던 건 이렇게 정리된다. 우리도 과연 그들처럼 의지적이고 창조적이며 강한 집념을 가졌는가. 만약 그들이 겪어낸 불행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역사 속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욕심 따윈 어서 내다버리라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