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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가 원산이라 흔히 볼 수 있었던 콩이 몸에도 이롭고, ‘맛’으로 변화하기에도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유는 대두 단백질 덕이다. 지방과 탄수화물 등 다른 영양소와는 달리 단백질은 곧 감칠맛을 의미한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이 감칠맛의 성분이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단맛을 내고 지방에는 고유의 느끼한 지방맛이 있다. 단백질의 경우 감칠맛이다.
감칠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선 육류나 조개, 생선 등 비싼 식재료를 많이 써야 했지만 인류는 단백질을 발효하면 그 맛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대 로마의 젓갈인 가룸과 메콩강 유역의 남쁠라나 느억맘 등 어장 문화권에서도 오래전부터 발효과정을 통해 감칠맛을 얻었고, 유목민들은 낙농 유제품에서 좋은 맛을 찾을 수 있었다. 각자 주변에서 구하기 좋은 단백질을 맛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한국인은 콩을 소금과 함께 발효시키면 상당한 맛이 된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된장, 즉 두장(豆醬)이다. 간장 아니냐고?. 메주를 띄워 된장을 얻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것이 간장이다. 된장, 간장이나 액젓(어장)은 원리가 같다. 단백질을 분해시킨 아미노산에 입맛이 든 한국인은 일상적으로 장을 담게 됐다.
메주의 역사는 삼국사기에도 나올 정도로 무척 길다. 그 이전에도 고구려의 장이 특히 맛있다고 기록한 중국 고서(정사 삼국지)가 있다. 메주를 담그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메주콩을 불려 삶은 다음 이를 으깨야 한다. 다시 네모지게 빚어 말리는 시간을 거친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의 맛’이 깃든다. 된장을 얻기 위해서는 메주를 소금물 독에 띄워 발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발효시킨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메주는 꾸덕꾸덕한 된장으로 바뀐다.(된장 이름의 유래는 ‘되다랗다’는 뜻이다) 발효를 거친 간장과 된장은 아미노산으로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다.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동시에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궁핍한 농경민족의 식탁에 든든한 밑반찬이 됐다. 봄이면 된장찌개에 냉이를 넣고 여름이면 다슬기와 우렁이를, 가을엔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다. 부추와 우거지, 시래기 등 밭과 들, 강·바다에서 나는 온갖 산물을 넣고 끓여도 언제나 맛이 좋았다. 영양가 든든한 찌개로 또는 국으로 거친 밥 한 끼를 먹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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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식의 기본은 된장이다. 김치찌개나 고추장찌개는 된장에 입맛이 떨어질 때 차리는 대체재였을 뿐이다. 고추를 사용한 음식의 역사도 된장에 비하면 길지 않다.
국은 기본적으로 된장국을 의미할 정도로 늘 미소(일본 된장)를 상식하는 일본의 고서에 흥미로운 기록이 등장한다. 에도시대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아라이 하쿠세키가 1717년 쓴 동아 중 장조에 따르면 “예전에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왔는데 고려 북쪽 방언인 ‘미소’로 부른다”며 미소의 유래에 대해 썼다. 미소가 고려의 미소, 미조였으며 메주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만주가 원산지인 대두와 이를 이용한 두장의 전래 경로가 한반도였다는 뜻이다. 이전에도 ‘말장’에 대한 서술이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일본에서 최고 유행한 음식인 ‘된장과 간장’은 한반도에서 전래됐다고 볼 수 있다. 말장이란 간장을 빼고 난 마지막 장이란 뜻이다.
현재 세계에서 간장·된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인구수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고추장, 고춧가루, 액젓 등 기타 조미료의 소비가 많은 한국에 비해 대부분 일식에선 양념으로 간장을 쓰고 끼니마다 된장국을 마시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계란 프라이, 생선회, 메밀국수 등에 사용하는 다양한 전용 간장이 있을 정도다.
한민족은 콩 덕분에 맛있게 살아왔다
간장에는 공법상 5가지 종류가 있다. 조선간장으로 알려진 한식 간장과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등이다. 국내에선 간장에 대한 명칭 논란이 한창이다. 메주나 누룩을 쓴 한식 간장 등 발효간장 외에는 간장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없고 산분해 간장은 아예 ‘아미노산액’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간장은 생각보다 칼로리가 높다. 예전 한식 상차림에서 5첩·7첩·9첩 반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간장 종지다. 고소한 간장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밥을 삼켰다. 간장은 애초 소스가 아닌 반찬 반열에 당당하게 끼었던 셈이다.
세종 때 한양도성 건설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간장국을 줬다는 기록이 나온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성하던 조선군 식량 기록에 ‘쌀 1만 섬, 간장 100 항아리’가 나오는데 이는 간장을 중요한 반찬이자 식량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도 오랫동안 종갓집에서 내려오는 씨간장의 경우 1ℓ에 수천만 원이 넘는다. 고급 위스키 이상의 가격이다. 비싼 모든 재화가 그렇듯 대대로 내려온 희소성이 더해진 가치다.
이처럼 유용한 작물 콩. 지금은 구미나 중동 등 세계적으로도 많이들 먹고 있지만 ‘3대 곡류’ 분류에는 들지 못한다. 쌀과 밀, 그리고 신대륙의 옥수수가 콩 대신 대표 곡류로 이름을 올린다. 콩 자체만으로는 주식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콩고기’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중국과 일본 등에선 과거 사찰에서 다양한 콩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중국과 대만, 일본 사찰의 정진요리나 홍콩의 자이루웨이 등이 그것이다.
다른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장(醬)’으로 바뀌면서 ‘감칠맛’을 책임졌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농경민족이었던 한민족은 사실 콩 덕분에 맛있게 살아온 것이다.
당장 햇된장과 간장이 나오니 곧 들이닥칠 무더위에 입맛 되살리고 몸도 보할 수 있으니 밥상 받아들기가 더욱 즐겁다.
맛집
▶또순이네집 = 서울에서 된장찌개 맛집하면 늘 이름을 올리는 곳이 바로 이 집이다. 이른 봄에는 냉이나 달래, 요즘부터는 부추를 넣은 된장찌개를 숯불에 보글보글 끓여낸다. 소고기 덩이를 넣고 진하게 우려낸 육수가 끊임없이 밥을 부른다. 몇 숟가락 얹어 밥을 비비면 구수한 된장 맛에 매료돼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지 잊을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로47길 16
▶태안 솔밭가든 = 까먹기 귀찮은 꽃게가 간장을 만나 밥도둑의 원조 격인 꽃게장이 됐다. 짭조름한 간장에 재운 암꽃게에는 샛노란 알이 한가득 들었다. 살을 쭈욱 짜내면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피어난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면 세상이 제 것이 된 기분이다. 간장게장은 태안군이 유명하고 그중에서도 솔밭가든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장터로 176-5.
▶두림 = 두부요리 전문점인데 손두부며 전골이 모두 맛있다. 점심에는 청국장을 내는데 이 또한 구수하니 좋다. 특유의 정겨운(?) 냄새는 나지 않아 아쉽지만 깍둑 썬 무와 두부, 숟가락을 뜰 때마다 알알이 건져 나오는 청국장에 밥이 잘도 넘어간다. 비빔그릇도 필요 없이 그저 밥 위에 끼얹어 먹어도 좋다. 서울 종로구 종로7길 2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