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뭔 줄 아는가? 입학시험을 공정하게 확립시켜준 일일세.”
인간의 속성을 잘 나타낸 ‘배고픈 건 참을지 언 정, 배 아픈 건 용납하지 못 한다’는 명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진리에 가깝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 북유럽 국가들, 그 중 해마다 행복지수 일등을 하는 덴마크에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나라엔 우리와는 다른 파티 문화가 있다.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고 주말이면 각자 준비한 먹을거리와 술을 한 병씩 바구니에 담아 파티를 주최한 어느 집에 모인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 자식이 큰 시험에 붙었다’느니 ‘내가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등 개인자랑은 절대 금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사람의 법칙’, 바로 ‘배 아픔’을 유발하지 않는 묵시적 규례가 오랜 공동체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낮은 국민 평균소득에 비해 주관적 행복도가 월등히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남미국가이고 이와 반대 현상을 보이는 국가는 석유가 풍부한 잘사는 아랍 국가들이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도 ‘행복은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넘어서면 그 이후부터는 부(富)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극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정수준의 경제력’은 얼마일까 하는 기준은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경제사회적 중산층’이 아닐까 한다.
오늘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신은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여기엔 우리가 과연 선진국이 말하는 ‘성숙하고 합리적이며 지성적인 사회’ 속의 중산층인가 하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달 간 표창장 위조, 부실인턴 증명서 의혹들 그리고 정의로운 척 해온 말과 행동의 이중성에 실망한 분노들을 보면서, 우리가 교육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성, 길러내야 할 인재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라는 소신이다. 이것이 새로운 ‘행복(幸福) 중산층’을 길러내는 길이고 일류국가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