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인간 다 모아야 하는 이유

로봇 vs 괴짜…4차 산업혁명 주역은?
고고한 천재보다 손 잡는 괴짜 필요
'반복하는 노동'은 로봇·AI에 맡기고
인간은 '의미·재미' 융합하는 일해야
……………
협력하는 괴짜
이민화|282쪽|시그니처
  • 등록 2017-11-08 오전 12:12:00

    수정 2017-11-08 오전 12:12:00

‘세기의 대국’에서 바둑기사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라고 해도 데이터만 뽑아버리면 깡통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 이민화의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로봇을 이길 수 있는 혁신은 황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괴짜군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고 했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한 과학자가 가설을 세웠다. “소의 뇌에 전기 자극을 주면 소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 가설은 만들었는데 이걸 어찌 증명한다? 그는 사나운 소들이 북적거리는 투우장으로 갔다. 그러곤 소 한 마리를 살살 약 올린 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소를 향해 들고 간 작은 상자의 단추를 한번 눌렀다. 어찌 됐을까. 신기하게도 소는 그 자리에 뚝 멈춰 섰다. 별 관심도 없다는 듯 고개까지 살랑 돌려버린다. 잠시 후 소가 다시 돌진해오면 과학자는 다시 단추를 뚝. 돌진 뚝! 돌진 뚝!

1960년대 미국 예일대 의과대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호세 마누엘 로드리게스 델가도 박사의 놀라운 실험. 인간의 뇌와 마음, 정신 간의 상관관계가 몹시 궁금했던 그는 인간 대신 소를 대상으로 ‘괴짜짓’을 벌여 난폭한 소 한 마리를 바보로 만들었다.

델가도뿐인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으로 한국서 CF 모델까지 한 배리 마셜(66) 박사도 있다. 파일로리균이 위염·위궤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해 그 역시 남들이 다 말리는 괴짜짓을 단행했다. 자신의 몸에 파일로리균을 주입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아낸 동시에 심각한 위장병을 얻었다.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 과연 이 실험들을 누가 해낼 수 있을까. 위험한 일이니 로봇에게 시켜보자고 할 건가. 그래 그런다고 치자. 정신이니 마음이니 균이니, 로봇에는 아예 빠진 이 인체기관에 관한 결과를 믿을 수나 있겠나. 예나 지금이나 ‘괴짜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괴짜는 단수가 아니란 것. 시쳇말로 ‘골 때린다’고 하는 괴짜가 복수로 모여야 한다는 것, 그 복수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 바로 ‘협력하는 괴짜’다. 이 재미있는 주장은 기업과 학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미래전략을 옮겨내는 저자에게서 나왔다. 1980년대 중반 한국벤처의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받는 ‘헬스케어 벤처기업’을 창업했던 그이다.

이번 배경에는 시대적인 핫이슈라 할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저자는 그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이 올곧게 인간만의 가치로 생존하고 성장하는 법을 ‘협력하는 괴짜’로 찾아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봇을 이길 수 있는 혁신이란 건 황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괴짜군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는 거다.

거칠게 말해 책은 ‘로봇 vs 인간’ 둘 사이에 경쟁을 붙이면 누가 이길까에 관한 것이다. 물론 뻔히 답이 보이는 답안지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이 질문에 대한 근거다. 어쩌다가 둘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는지,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 걸로 끝나야 하는 건지, 인간 생존의 마지막 그림은 어떤 장르여야 하는지 등.

△로봇 vs 괴짜…세기의 대결?

인간, 특히 한국에서 인공지능(AI)이 두려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3월 있었던 ‘세기의 대국’ 탓이 크다. 바둑기사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가 거대한 적군로봇처럼 보이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실체를 제대로 몰랐을 때의 사정이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제아무리 알파고라고 해도 데이터만 뽑아버리면 깡통로봇에 불과하다는 거다. 로봇은 그저 데이터로 공부하고 문법을 만들어내는 기계이니까. 그러다가 방대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학습해 룰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되면 인공지능이 되는 거고. 결국 반복의 승리라는 거다.

기계가 하는 반복을 어찌 당하겠나. 얼핏 불가능한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마리는 또 여기에 있다. 인간이 로봇을 이기려면 반복할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다. 다시 말해 반복은 로봇에게 맡겨두고 인간은 재미와 의미를 찾는 거다. 아예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칠 일을 피하는 거다. 무섭다고 로봇을 막아봤자 돌아오는 건 평생 ‘삽질’뿐이라고.

아주 낙천적으로 그려내면 이런 그림이다. 일에는 노동과 업(미션), 놀이가 있는데 셋 중 로봇·인공지능에겐 노동만 떠넘기는 거다. 인간은 미래를 위한 미션, 현재를 위한 놀이를 챙기면 된다. 의미와 재미를 융합한 미션. 저자는 이것이 진정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괴짜, 그들이 과연 협력할까

흔히 괴짜의 특징이라면 당최 소통이 안 되는 캐릭터를 꼽는다. 그러곤 그 대표주자로 ‘불통’ 스티브 잡스를 들먹인다. 하지만 저자는 잡스조차 자신이 모자라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협력자를 끌어들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폰 이메일 서비스를 담당했던 야후의 공동설립자 제리 양이라든가 애플이사회 이사던 에릭 슈미트 구글 CEO 등. 현재 애플 CEO인 팀 쿡도 있다. 물론 결과는 좀 틀어졌다. 양은 망한 야후와 함께 사라졌고 슈미트는 안드로이드를 발표하며 애플 이사진에서 물러났으니까.

어찌 됐든 괴짜는 양산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고고한 천재보단 좌충우돌 괴짜군에 경쟁력이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교육이 최상위과제가 되는 셈. 우선 ‘사회문제해결형 프로젝트 중심 교육’을 제안한다. 산업과 교육을 합친 형태라고 할까. 콘텐츠교육은 상호참여하는 온라인콘텐츠플랫폼에서 담당하면 된단다. 오프라인의 플립러닝이 보조역할을 할 수 있으며, VR(가상현실)과 게임으로 실감·재미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로봇과 차별화하면서 혁신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다.

△4차 산업혁명? 4차 욕망혁명!

역으로 괴짜의 싹을 죽이는 최악의 형태도 봐두자.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효율을 높인답시고 각종 규제·규정을 끌어들이는 거다. 경직된 틀로 4차 산업혁명에 접근하려 드는 방식도 심각하다. 1차 기계혁명, 2차 전기혁명, 3차 정보혁명, 4차 지능혁명으로만 봐선 답이 안 나온다는 거다. 어째서? 이건 공급 주도니까. 그래서 기술이 필요했던 거고.

그렇다면 수요 주도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긴가. 물론이다. 이때 키워드는 ‘욕망’이 된단다. 1차 생존의 욕망, 2차 안정의 욕망, 3차 사회적 연결의 욕망. 아마도 4차는 자기표현의 욕망이 될 거라고 했다. 명예를 세우고 심미를 추구하고 인지적 욕구를 채우는 것. 결국 모두가 걱정하는 일자리도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돼 있다. 4차 욕망에 썩 걸맞은 형태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진화하는 걸로. 4차 산업혁명의 실체는 4차 욕망혁명이니까.

밋밋한 과제가 돼가는 4차 산업혁명에 문패처럼 붙인 ‘괴짜’란 열쇳말이 신선하다. 잘 다듬어낸 인재가 이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걸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지만 메시지는 선명하다. 마치 문패에 칩을 박아둔 듯.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 풀어낸 내용·방식이 전혀 괴짜스럽지 않다는 것. 사고 치는 괴짜, 그들이 모여 이룬 시너지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허탈할 수도 있다. 그저 괴짜가 돼서 괴짜 친구를 가까이 둘 것, 지키려 하지 말고 어디로든 치고 나갈 것.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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