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70년 가까이를 따로 살면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 비단 낙지와 오징어 뿐일까요. 남북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만이라도 풀어보고자 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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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는 엉뚱한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바로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요, 그 질문의 깊이는 차치하고,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 모습이 눈꼴 시렸겠지만 문 대통령을 비토하는 세력에서는 그 공격적인 질문이 비호할만 했을 겁니다. 요는, 태도는 정쟁의 대상이 될 뿐이란 거죠.
독재자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닌가요?”라고 질문한 기자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비호한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돼지 같은”이라고 수식하며 면전에서 비꼬았습니다. 그 때 카다피가 지었을 표정은 우리가 그를 조망하는 한 근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기자도 그 ‘무례한(이라 여겨지는)’ 질문 때 문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때로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질문에 반응하는 태도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첫 세 번의 답변을 하는 동안 두 차례나 한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독자가 있을까요?
김 위원장의 신년사와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보면 두 지도자의 대화 방식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질의응답’입니다. 두 지도자 모두 30여분간 ‘정견 발표’의 시간을 가졌지만, 김 위원장과 다르게 문 대통령은 86분이나 질문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80분으로 예고했던 질답 시간을 문 대통령이 임의로 늘여 진행했음에도 현장에서 손을 든 기자는 줄지 않았습니다.
90여분을 추가 질문을 하고도 국정 철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0분에 불과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만을 듣고 이를 분석해야 하는 북한학 석학들이나, 이들의 분석을 포함해 기사화시켜야 하는 통일부 출입 기자들의 고충도 간접적으로마나 이해가 되실 겁니다.
김 위원장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김 위원장이 그에 대한 답을 했다면? 설령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겠다’고만 해도 그 자체로 기사화될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김 위원장은 그간 자신의 생각을 말해오기만 했지 누군가의 질문을 받아 대답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야경 시찰을 나섰을 때도 김 위원장은 자신을 알아보는 인파에는 손을 흔들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직접 만났던 북측 고위급 인사들 중에서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만이 “다음에 합시다” 정도의 대꾸(?)를 해줬을 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질문 자체를 안 듣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해놓고도 후일 남측 취재진의 질문을 회피한 그입니다. 최선희, 최강일, 김성혜 등등이야 말해야 무엇할까요.
그런데 최근 김 위원장의 2019년 첫 방중과 관련해 재미있는 리포트를 접했습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의 분석이었는데요, 중국 언론이 이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죠. 신화통신이나 CCTV 모두 김 위원장의 네 번째 방중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해석이었죠.
북한은 어땠을까요? 당연하게도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늘 1면이었습니다. 흡사 1980년대 ‘땡전뉴스’를 방불케하죠. 그들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서너번째 뉴스로 전하는 중국의 언론이 예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예의라는 건 불변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돌고돌아 우리에게 팔라치 같은 기자가 있어서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할 기회가 생겼다면 어떨까요? 영화 ‘공작’의 흑금성(황정민 분)처럼요. 그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닙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를 예의가 없다고 비판할까요? 그 때 ‘김정은’은 무어라고 답할지 그의 입을 주목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