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지랑이 일렁이는 '땅끝'에서 봄을 마중하다

전남 해남 봄맞이 봄꽃 여행
백두대간의 종착역 '달마산'
천년고찰 '미황사' 입구에 핀 동백
순수 인력으로만 조성한 '달마고도'
문재인 대통령이 고시 공부하던 '대흥사'
두륜산 자락에 자리한 차밭 '설아다원'
따뜻한 봄볕에 매화가지마다 꽃망울 터져
  • 등록 2018-03-16 오전 12:00:01

    수정 2018-03-16 오전 12:00:01

봄기운 가득한 전남 해남 설아다원 차밭에 핀 매화
미황사에 핀 봄의 전령 ‘동백’
전남 해남의 따스한 봄기운에 고개를 내민 민들레 꽃


[해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아지랑이 일렁이는 전남 해남 땅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가지마다 맺혔던 꽃망울이 방울방울 터지고 봄을 맞는 녹차 밭은 연둣빛 여린 잎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3월에 들면서 한껏 따스해진 봄날. 봄꽃들도 안부를 주고받듯 얼굴을 내밀었다. 봄꽃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동백은 수줍게 웃다가 뚝뚝 떨어지고, 개나리는 노란 손을 귀엽게 내민다. 진달래는 온천지를 마치 활활 불태우는 듯하다. 여기에 매화는 상춘객의 애간장을 녹인다. 조금 더 있으면 촌철살인으로 마음을 앗아갔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벚꽃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땅끝의 산과 들은 이미 하얗고, 노랗게,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봄꽃 마중하러 해남으로 향한다.

달마산 중턱에 자리한 미황사.


◇달마산 ‘미황사’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동백’

봄향기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달마산.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사실상 종착역이다.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바위봉우리로 이뤄졌는데, 멀리 보이는 해안이 달마산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이 산 중턱에는 천년고찰 ’미황사’가 자리하고 있다. 대흥사의 말사로 서기 749년 의조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찰 내에는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당(보물 제118호) 등이 있다. 사찰 뒤로 달마산 기암괴석들이 돌 병풍이 한 폭이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사찰 곳곳에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인 ‘동백’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미황사는 달마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미황사는 산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 부근에 닿자 의조 스님이 향도 100인과 함께 소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한번 크게 울면서 머문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누운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1692년(숙종 18년)에 세운 ‘미황사 사적비’에 실린 기록이다. 여기에 달마대사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 고려말 달마산을 찾은 중국인들이 감탄하며, 이곳에는 달마대사가 항상 머물만하다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달마산 미황사 옛길인 ‘달마고도’에는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들바위 지대가 있어 산행이 쉽지 않지만, 암릉, 억새, 다도해 조망 등 온갖 재미를 두루볼 수 있다.


달마산의 역사를 몸소 느껴보고 싶다면 달마고도(達摩古道)를 걸어보자. 미황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12개 암자를 연결한 코스로, 달마산 미황사의 옛길이다. 총 길이는 사십오리(17.74km). 전 구간을 순수 인력으로만 시공했다.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명품길이다. 4개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달마산 정상 부근을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이다.

달마고도의 백미는 ‘천년숲길’. 미황사에서 시작해 뾰족 바위봉우리 위에 앉은 도솔암 가는 길이다. 약 5km의 숲길이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 했다는 유서 깊은 암자이다. 주변의 경관과 법당이 들어선 자리가 너무나 절묘하고 아름다워 ‘추노’ ‘각시탈’ ‘내여자친구는 구미호’ ‘마녀도감’ 등의 드라마 등을 촬영하기도 했다.

두륜산 깊은 산중에 자리한 대흥사. 해질 무렵 스님이 천불전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염불을 외우고 있다.


◇남도의 가장 아름다운 봄날을 맞다

봄기운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두륜산 중턱에 자리한 대흥사. 문재인 대통령이 고시 공부하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명성을 얻고 있다.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장춘(長春)숲길. 봄이 오래 머무는 숲이라는 뜻이다. 산 입구에서 대흥보전까지 거리는 4km로 이 길을 숲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구간에 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서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해가 지기 전 서둘러 대흥사로 향했다.

자동차가 운행할 수 있는 숲길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면 마침내 대흥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흥사는 20개 시군에 말사 50여 곳을 거느린 종찰로, 승탑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절의 초입에 수십 개의 탑들이 울타리 안에 늘어서 있다. 이 부도들은 ‘사리탑’이다. 그중 서산대사 탑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대흥사로 들어서는 길가의 동백나무 몇 그루에는 이미 선명한 붉은 꽃망울이 달렸다. 이미 봄기운은 벌써 땅끝까지 밀고 올라와 동백나무 끝에 한 송이 붉은 등을 달아놓았다.

봄기운 가득한 전남 해남의 설아다원


대흥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각마다 내걸린 현판이다. 대웅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맑고 깨끗한 정신이, 침계루와 무량수각의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기운이 느껴진다. 단정한 표충사 현판의 정조대왕 글씨에서는 위상과 기엄이 느껴진다.

대흥사를 나와 오늘 여정의 마지막 코스인 ‘설아다원’으로 향했다.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 암봉 반대편 자락에 자리한 차밭이다. 이곳 주인장인 오근선(57)·마승미(48) 부부가 차 씨앗을 뿌려 22년째 가꾸고 있는 곳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두륜산이 매서운 동풍을 막아주고 따뜻한 해풍이 불어와 해남읍내와 비교해서도 기온이 3도 이상 높은 곳이다. 여기에 차밭에다 한옥을 짓고 민박을 들였다. 늦은 밤 찾아온 불청객에게 오 씨 부부는 가장 먼저 따뜻한 차를 달여냈다. 찻잔에는 매화 꽃잎이 둥둥 떠 있었다. 저녁 이슬에 차가워진 몸에 온기가 올라올 때쯤, 부부는 막걸리 한 사발을 다시 내왔다. 매일 저녁 손님들을 위해 남편은 정성껏 달인 차를 내고, 부인은 10년 동안 배운 판소리로 해남동요, 진도아리랑, 사랑가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부른다.

다음 날 아침, 차밭에 올랐다. 봄볕이 쏟아지는 차밭 한가운데 매화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봄은 맞은 녹차 밭은 연둣빛 여린 잎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고, 매화나무 가지마다 맺혔던 꽃망울이 방울방울 터졌다. 남도의 가장 아름다운 봄날을 여기서 맞는다. 주인장이 내려준 차 한잔에 꽃내음까지 가득하다.

설아다원 찻잔에 핀 매화


◇여행메모

△가는길= 해남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졌다. 고속철도(KTX)를 타고 목포역이나 나주역, 또는 광주송정역에서 하차해 시외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사실 번거롭기는 하지만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종점인 목포까지 가서 다시 영암방조제를 지나 806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해남이다. 목포에서 아예 2번 국도로 강진 방향으로 향하다가 13번 국도로 갈아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목포에서 해남까지는 50분가량이 걸린다.

△잠잘곳= 대흥사 쪽은 유선여관(061-534-3692)이 추천할 만하다. 설아다원(061-533-3083)에서는 숙박과 함께 정갈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해남읍에는 호텔급 숙소로 남도호텔(535-9595)와 해남호텔(537-1000)이 있지만, 시설이 낡은 편이다.

△먹거리= 해남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 시장부근의 ‘천일식당’(061-535-1001)이다. 떡갈비와 한정식을 내놓는다. 한정식집으로는 땅끝기와집(061-534-2322)과 한성정(061-536-1060) 등도 손꼽힌다. 땅끝마을의 ‘땅끝바다회집’(061-534-6642)은 전복 등이 곁들여진 생선회를 내놓는다. 녹우당에서 대흥사 방면으로 가는 길 쪽에는 원조집인 장수통닭(061-536-4410)을 비롯해 20여 곳의 닭요리 전문점들이 있다. 닭모래주머니와 닭가슴살 등을 마늘과 참기름에 버무려내는 닭회무침을 비롯해 닭불고기, 녹두닭죽까지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매월리 낙조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 목포 등대
땅끝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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