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도 기존 산업에서 IT를 융합하지 않은 곳은 없다. 공장에서 흔히 쓰이는 CNC 공작기계는 기계 동작과 데이터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자동화하고 정밀한 센서로 오차를 줄인다. 대교나 빌딩 등 대형 구조물을 설치할 때도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도 감지하는 센서가 필요하고 영하 162℃의 초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LNG선에도 IT는 이미 들어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과거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 이기주의도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이름만 달랐을 뿐 정부 주도의 IT·융합 사업을 키우려 했다. 지식경제부, 미래창조과학부 같은 부처를 만들었다. 올해 AI, 로봇 등 4차산업 혁명 대응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4707억원으로 49.6% 증액했고, 지난해에는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자칫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인 중국의 성장 속도가 무서우며 일부 분야는 한국을 앞질렀다.
다행인 점은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민간에서는 기업들이 앞장서서 생존을 위해 일찌감치 IT를 기반으로 산업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정부 주도 연구개발(R&D)이나 산업진흥 정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이미 IT와 기존 산업의 융합은 전 세계 전산업에 걸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전 세계로 퍼지는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졌다. IT의 평준화다. 그래서 IT를 무엇과 어떻게 융합하고 시장에서 어떤 요구가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우는 방향의 정책과 산업 흐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관련 부처 조직부터 만들자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은 필요하나, 대학 R&D에 최대한 자율성을 주고, 정부 출연연구소는 민간이 하지 않는 소재 등 투자회수 기간이 긴, 5년이상 짜리 중장기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 공무원의 관여 폭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