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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법자' 장신영, "청승은 이제 그만"(인터뷰①)
- ▲ 장신영[이데일리 SPN 최은영 기자] "달라지고 싶다" 배우 장신영(26)의 일성이다. 배우로도, 인간으로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강조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영화 '무법자'(감독 김철한·신재혁, 제작 청강스토리)는 확실한 전환점이 될만하다. 극 중 배역부터가 이전과는 180도 다른, 뚜렷한 변화를 감지케 한다. 살인마를 쫓는 강력반 여형사. 미인대회 출신에 여리디여린 그녀의 본모습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는 캐릭터다. 어느 누가 감히 그런 센 역할에 장신영을 캐스팅할 생각을 했을까. 이 같은 반문에 장신영은 자신도 신기한지 크게 웃으며 "그래서 놓칠세라 덥석 잡았죠"라고 했다. 사실 '무법자'는 사이코패스 범죄 스릴러로 '추격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2008년 제작된 영화다. 2년 전 가을 촬영을 모두 마쳤으나 후반 작업이 예상외로 길어지며 개봉이 늦어졌다. 장신영은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겐 득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달라진 자신을 보일 최적의 시기라는 판단에서다. 장신영은 지난해 10월 전 남편과 이혼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개봉이 늦어지며 이혼 후 첫 작품이 '무법자'가 된 것. 영화 속 짧게 자른 커트 머리에 가죽 재킷, 그리고 액션스쿨을 다니며 갈고 닦은 액션연기 등은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대중에 더욱 뚜렷이 각인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임에 자명하다. 게다가 올해는 2001년 춘향선발대회에 입선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햇수로 꼭 10년이 되는 해. 돌이켜 보면 열일곱에 데뷔해 스물두 살에 결혼, 3년 뒤 이혼까지 남들보다 빨라도 한참을 빠른 길을 걸었다.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벌써 네 살이다. 모든 것이 빨랐고, 그런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던 인생이다. 하지만, 장신영은 그 어떤 순간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 남편과 결별에 관한 물음에는 "아이 아빠로 잘 지내고 있다."라고 짧게 말하고는 "이젠 밝고 기분 좋은 이야기만을 하고 싶다."라며 우울한 이야기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사랑에 대해서도 "지금은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녀의 생각은 온통 일과 집에 있는 아이에만 초점이 맞춰진 듯했다. "지금까진 무난한 걸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남 앞에서 튀는 것도 사실 꺼렸었고요. 내 주장을 펴기 보다, 남에게 맞춰 사는 게 편하고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이미지에 고착된 감이 없지 않은데 이젠 달라질 겁니다. 단아하고, 청승맞고, 우울한 역할과는 이제 작별하고 싶어요." 장신영에게 새 영화 '무법자'는 비록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존의 틀을 깨고 처음으로 과감한 변신에 나선 작품이라는 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 세상 모든 첫 경험이 그러하듯 그녀의 변신 또한 어설프고 낯설 수 있다. 장신영 또한 최근 있었던 영화 '무법자'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영화의 완성본을 처음으로 접하고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쉬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라며 "이젠 좀 바꿔보고 싶다. 밝고 명랑한 역할도 해보고 싶고, 더 나아가 코믹한 연기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하며 쌩긋 웃는 그녀에게선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녀는 "달라지고 싶다"라던 말을, 인터뷰 말미 "달라지겠다"로 고쳐 말했다. 장신영의 의미 있는 변신이 기대를 모으는 영화 '무법자'는 오는 18일 개봉한다. (사진=김정욱 기자)▲ 장신영▶ 관련기사 ◀☞장신영, "드럼 배우며 우울증 위기 극복"(인터뷰②)☞[포토]장신영 '섹시한 허리라인'☞[포토]장신영-이승민 '미녀들의 귓속말'☞송병준, 이승민 출연 영화 언론시사 참석 '애정과시'☞韓사회 이슈 다룬 영화 연이어 개봉 '눈길'
- 강남발 전세불안 확산… 수도권 현장 가보니
- [조선일보 제공] "전세난요? 다들 강남이나 목동 얘기지 여기엔 전세난 같은 것은 없어요. 오히려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더라도 세입자나 빨리 구해달라고 난리죠." 27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의 '대림 e편한세상·센트레빌' 아파트 단지 입구. 15일부터 입주가 시작돼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이삿짐 차량과 인테리어업체 차량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공인중개업소 김모(47) 사장은 "강남 사람들이야 그 동네 떠나면 뭔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버티다 보니 전세금이 치솟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광명시는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맞닿아 있다. 전세 대란을 겪고 있는 양천구 목동과도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지난해 중순부터 서울 주택시장은 전세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광명에선 전혀 '딴 세상' 얘기다. 이 아파트 주변만 하더라도 자이·래미안, 위브 아파트 단지 등 4개 단지에서 7400여 가구가 입주한다. 새 아파트 입주 영향으로 지난 3~4개월 사이 철산동의 기존 아파트 단지의 전세금이 10% 안팎까지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전세금 비싼 강남 떠나고 싶어도 아이 때문에 수도권 전세 시장이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강남구와 양천구 목동 등지에선 불과 2~3개월 사이에 전세금이 3000만~4000만원씩 오른 것이 예사다. 하지만 이들 지역만 벗어나면 전세금이 1년 내내 꼼짝하지 않는다. 경기도로 빠져나가면 오히려 전세금이 떨어지는 곳도 있다. 우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목동에서 전셋집에 사는 주민들은 말 그대로 '전세 대란'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트리지움 단지의 84㎡(25.4평)에 사는 직장인 박보영(41)씨는 지난달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 4000만원을 올려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2년 전 2억6000만원에 계약을 했다. 박씨는 "전세금이 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싶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교육 문제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금 급등 현상은 강남 지역 전체로 확산돼 있다. 강남구 대치동 미도2차 112㎡는 지난해 6월 말 3억~3억6000만원이던 전세보증금이 최근 3억8000만~4억5000만원으로 8000만~9000만원 올랐다. 서초구 반포자이 82㎡ 역시 같은 기간에 3억1500만~3억8000만원에서 4억~4억3000만원으로 올랐다. 송파구 지역은 지난 한 해 무려 20%가량 전세금이 올랐고, 서초구도 10.7%, 양천구도 11.1%로 올랐다. 다만 강남구는 6.4%로 올라 다소 상승폭이 적었다. ◆경기도는 오히려 전세금 내릴 수도 있어 하지만 같은 서울이라도 강남권 외 다른 지역의 상황은 다르다. 국민은행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말 이후 전세금 상승률은 서울 서대문구는 2.7%, 강북구는 3.5%, 중랑구는 4%에 그쳤다. 강북 지역 14개구의 전세금은 지난 한 해 전체적으로 4%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서도 강남구를 제외한 지역은 매주 평균 0.1~0.2% 오르는 수준이다. 경기도권은 올해 오히려 전세금 폭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남양주시 평내동과 고양시 행신동, 광명시 하안동 등의 전세금은 지난해 12월 초보다 3.3㎡당 10만~20만원 정도 떨어졌다. 최근 이들 지역에 대규모 입주가 시작되면서 기존 주택의 전세금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경기도에서 입주하는 아파트 수는 9만1359채로 2005년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른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올해 경기도에는 입주 아파트가 몰려 있어 전세금이 소폭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도 입주 주택 많아도 강남 수요 흡수하긴 어려워 전문가들은 수도권 전세 시장이 매매시장과 마찬가지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학군과 입지, 서울 도심과의 접근성 등이 좋은 강남 등지는 전세금이 급등하지만 다른 지역은 잠잠한 것이다. 문제는 강남권 전세 수요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쉽지 빠져나가지는 않는다는 것.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강남에서 4억~5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사람은 학군이나, 직장 등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몰려든 계층"이라며 "경기도에 아무리 새 아파트가 많이 입주하더라도 수요층이 달라 강남 전세 수요를 흡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따른 이주수요가 증가해 강북지역 전세금이 오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겠지만, 강남권 전세 시장은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만희 국토해양부 토지주택실장은 "다른 지역의 집값보다 비싼 전셋집에 사는 계층을 위해 세금이 들어가는 주거 대책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최익성의 저니맨⑤]화양연화,그 찬란한 슬픔에 대하여
- ▲ 사진=삼성 라이온즈[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화양연화'라는 말이 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슬픔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아쉬움, 그래서 더 깊게 묻어나는 애잔함까지. 최익성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97시즌, 최익성은 야구 선수로서 최고를 경험한다. 비단 20(홈런)-20(도루)을 달성해냈다는 기록적인 의미만이 아니다. 그 시절 최익성은 누군가에게 '믿음'이란 걸 얻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최익성은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를 가장 오랜시간 동안 지켜봐 준 분들이 지도자로 계셨던 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시간? 인연의 기간은 고작 3~4년이 전부였다. 그는 삼성을 떠난 이후엔 길어야 2년간 한 팀에서 뛰었을 뿐이다.최익성의 '화양연화'가 화려하면서도 아련한 이유다. 1997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훈련을 했었던 탓인 듯 하다. 순조롭게 진행됐던 훈련의 기억은 별로 나질 않는다. 훈련은 꽤 힘들었지만 몸이 힘든 것 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삼성의 1번타자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언론은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8개팀 중 가장 약한 1번타자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톱타자들은 정말 쟁쟁했다. 이종범(해태) 전준호(현대) 최태원(쌍방울) 유지현(LG) 정수근(두산) 이영우(한화) 등이 각 팀의 톱타자를 맡았다. 인터뷰를 할때면 늘 그에 대한 내 느낌을 물었다. 난 자신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지켜봐주세요. 과연 시즌이 끝난 뒤에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궁금하군요." 시범경기서 나는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믿음'을 등에 업고 뛰는데 거칠 것이 있을리 없었다. 난 시범경기 스타로 떠오르며 더욱 이목을 끌었다. 그때만해도 언론의 반응은 반반 이었다. '모처럼 큰 인재를 발굴했다'는 시선이 있었는가 하면, '시범경기 반짝 스타는 얼마든지 많았다'는 회의론도 있었다. 신경쓰지 않았다. 난 언제나 한결같이 싸워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아마추어건 프로 에이스건 공만 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과 싸움이다. 출발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평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백인천 감독님은 날 꾸준히 톱타자로 기용해 주셨다. 마음이 너무 편했다. 방망이가 안 맞아도 무조건 출루가 우선이라 생각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난 조금씩 진화했다. 어느 순간 홈런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도루도 크게 늘었다.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홈런이 제법 나오며 "4번타자 같은 1번타자"라는 말을 듣게되면서 내 스윙이 조금씩 커졌던 탓이다. 어느날 감독실에 불려갔다. 백 감독님은 "익성아, 넌 삼성의 1번타자야. 4번타자가 아니라구. 20-20을 노린다는 기사도 나오던데 네가 벌써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면 되겠냐." 난 솔직히 20-20이 뭔지도 몰랐다. 한 신문 인터뷰서 그 이야기를 먼저 묻길래래 "그런게 있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점차 크게 퍼져나갔다. 어찌됐건 난 마음 깊이 반성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정신 차리자. 넌 몸에 공을 맞아서라도 출루만 하면 되는 톱타자다. 잊지 마라." 백 감독님은 내게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처음 톱타자로 기용되던 1996시즌 중반. 난 슬라이딩 캐치를 하다 발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2루수 정경배가 공을 잡기 위해 함께 달려오는 것이 뻔히 보였지만 피하지 않았던 탓이다. 충돌은 피했지만 발목이 꺾이며 부러지고 말았다. 신기한 건 그 경기는 아무렇지 않게 마쳤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내 발목은 한눈에도 심각할 만큼 부어 있었다. 병원에선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깁스를 하고 발목을 짚은 채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감독님은 내게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주셨다. 그러더니 "이 돈으로 약 지어먹고 좋은 거 많이 먹어라. 돈도 못 버는 연습생이 홀어머니한테 폐 끼치지 말고. 난 널 믿는다. 네가 다시 돌아와도 우리 팀 1번타자라는 걸 잊지 마라." 그 순간은 아픈 것도 잊을 수 있었다. 백 감독님은 날 눈물짓게 한 첫번째 남자였다.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우리 팀의 감독님인데 못할 것이 없다고 느껴졌었다. 그러나 인연은 그리 길게가지 못했다. 1997시즌 막판, 백 감독님이 쓰려지셨다. 그것도 내 아버지와 같은 뇌졸중으로….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다. 그리고 팀은 수석코치이던 조창수 감독님이 맡게 되셨다. 내겐 감독님 못지 않게 소중한 분이셨다. 조 감독님의 지원 속에 난 꾸준히 톱타자를 맡을 수 있었다. 그때처럼 나를 오랫동안(대략 3~4년 정도) 지켜본 사람들이 많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그것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 또 프로야구에서 얼마나 중요한건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시즌 막판, 현대와 경기였다. 홈런 19개에 도루 30개를 기록하던 중이었다. 조 감독님이 날 부르셨다. "오늘은 홈런을 한방 노려봐라." 야구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내게 홈런을 노리라고?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 눈 앞에 멈춰선 공을 받아쳐 담장을 넘겨버렸다. 드디어 20-20을 달성한 선수가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록에 대해 별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매 경기 최선을 다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의 톱타자를 지켜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컸다. 그해 삼성은 모처럼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이전보다 이름값에선 크게 약해져 있었다. 또 감독님도 중도에 팀에서 이탈하셨지만 팀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친 결과였다. 난 그해 타율 3할에는 실패했다. 마지막 4경기서 부진했던 탓이다. 그 경기를 나서지 않았다면 3할까지 기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이 자력으로 4강을 확정지으려면 4경기서 3승을 거둬야 했다. 감독님은 내게 출장 의사를 물으셨다. 난 당연히 나간다고 했다. 개인적인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관중들의 열기는 내 피를 끓게 했다. 준플레이오프서 쌍방울을 꺾은 삼성은 LG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삼성은 충격의 2연패를 당한 채 대구로 내려왔다. 내 힘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 다행히 3차전서 팀은 승리를 거뒀고 나도 첫 홈런을 때려내며 힘을 보탰다. 그리고 4차전. 4-4 동점, 2사 1루서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엔 내 야구인생 고빗길서 숱하게 만난 이상훈 선배가 서 있었다. 초구 승부였다. 이상훈 선배의 과감한 공략에 나 역시도 과감하게 맞섰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대구 구장 펜스를 훌쩍 넘어가는 역전 투런 홈런. 난 관중들 향해 펄쩍 펄쩍 뛰며 홈런 세리머니를 했다. 내가 야구를 하며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온 세상이 내 이름을 부르는 듯 했다. 경기 후 난 "삼성 팬들에게 한 경기를 더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그 팬들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다.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아쉽게도 삼성은 5차전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너무 분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뒤, 내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백인천 감독님이 팀을 떠나신다는 것이었다. 다들 그 소식을 전하며 내 걱정을 해줬다. "너 이제 어떻게 하냐." 처음엔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신임 감독이 누구인지 알게되며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야구 인생이 크게 흔들리는 출발점이었다. ▶ 관련기사 ◀☞[최익성의 저니맨④]인생을 바꿔 준 피묻은 한방☞[최익성의 저니맨③]내가 늘 몸을 날려야 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②]내 기본기가 부족했던 이유☞[최익성의 저니맨①] 최익성이 책을 낸다고?
- (주간부동산)강남 재건축 오름세 지속..4주째
- [이데일리 온혜선기자] 연초부터 몰아친 폭설과 한파 속에서 아파트 거래시장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 지역이 보합세를 띠거나 미미한 가격 변동을 보이는 데 그쳤다하지만 서울 재건축시장은 사업 진척에 대한 기대감으로 4주 연속 올랐다. 일부 단지는 저가매물 소진과 호가 상승으로 인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이전 수준으로 가격이 회복됐다.10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값은 0.03% 올랐고 서울 재건축시장은 0.22% 상승했다. 서울지역 전세가는 학군 주변지역과 중소형 물건이 부족한 곳을 중심으로 0.05% 올랐다. 수도권은 0.01% 하락했으나 신도시는 0.01% 상승했다. ◇ 송파·강동·서초일대 재건축 값 상승 서울은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에 힘입어 송파(0.16%), 강동(0.09%), 서초(0.06%), 중구(0.02%) 등이 올랐다. 송파구는 잠실주공5단지와 가락시영1,2차가 1000만~2500만원 가량 상승했다. 강동구는 둔촌주공4단지 102㎡가 8억1500만원으로 DTI 규제 전보다 2000만원 가량 올랐다. 고덕주공은 최근 조합설립을 추진하면서 1주일간 500만~1000만원 올랐다. 구로(-0.02%), 성동(-0.01%), 마포(-0.01%), 강서(-0.01%)는 하락했다. 구로구는 개봉동 현대홈타운2단지 중소형이 수요가 없어 250만~500만원 정도 떨어졌다. 성동구는 마장동 대성유니드 단지에서 일부 급매물이 나왔지만 거래가 없어 하향 조정됐다. 수도권은 가격 변동을 보인 지역이 적었다. 광명(-0.06%), 안양(-0.05%), 고양(-0.02%), 화성(-0.01%), 시흥(-0.01%) 등이 하락했다. 나머지 지역은 보합세를 보였다. 광명시는 하안동 주공2,4단지 소형이 350만~750만원 떨어졌다. 광명시는 작년 말부터 대단지 입주가 이어졌고 이달에도 하안동에서 2815가구 규모의 하안e편한세상센트레빌 단지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때문에 매매와 전세가격의 동반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안양시는 비산동 삼성래미안과 롯데낙천대가 150만~500만원 하락했다. 고양시는 성사동 원당e편한세상1단지, 래미안휴레스트 등 신규 아파트 입주로 탄현동 탄현건영5단지, 행신동 샘터주공2단지가 지난 11월 이후 거래가 뜸하다. 신도시는 중동(-0.05%)이 하락했고 나머지 지역은 보합세를 유지했다. 한파 영향으로 매수 문의가 거의 없었고 가격변동을 보인 단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동 포도삼보영남 중소형 등이 매수 부진으로 500만원 정도 떨어졌다. ◇ 학군 인기지역 전세가 상승서울은 학군수요가 형성되는 곳과 중소형 물량이 부족한 곳 중심으로 전세가가 올랐다. 서초(0.14%), 강동(0.12%), 강남(0.09%), 광진(0.09%), 양천(0.08%), 마포(0.07%), 종로(0.05%) 등이 상승했다. 서초구는 래미안서초아파트와 방배래미안 등이 중소형 위주로 올랐다. 재건축 단지인 신반포(한신1,3,15차) 단지도 학군수요 때문에 전세가가 상승했다. 강남구는 대치동 쌍용, 삼성동 힐스테이트1단지, 압구정동 구현대3,4차 등 주거환경이 양호한 단지의 전세가가 올랐다. 광진구는 자양동 한강극동 109㎡가 물건이 부족해 상승했다. 수도권은 새 아파트 입주 여파가 지속되면서 물량 공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여전히 약세를 보였다. 광명(-0.21%), 남양주(-0.08%), 안양(-0.04%), 고양(-0.04%), 구리(-0.01%) 등지가 하락했다. 광명시는 11월에 입주를 시작한 하안동 두산위브트레지움 단지는 물론 80~90년대에 입주한 주공(1,2,4,12단지) 아파트도 가릴 것 없이 전세가가 하향 조정되고 있다. 남양주시도 진접지구 물량이 많아 전세거래가 쉽지 않다. 평내동 대주파크빌, 화도읍 보미청광플러스원, 호평동 2차중흥S-클래스로하스 등 중소형 전세가가가 250만~500만원 가량 하락했다. 수원(0.04%), 인천(0.01%), 성남(0.01%), 시흥(0.01%)은 상승했다. 수원시는 영통동 일대 전세물건이 부족해 영통동 신나무실극동, 풍림, 건영 단지가 500만원 올랐다. 신도시는 중동(0.07%), 일산(0.01%)만 상승했고 나머지 지역은 보합세를 유지했다. 일산은 주엽동 문촌우성3단지 125㎡가 500만원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