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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내기 직장인·베테랑 기사…비통한 죽음, ‘인재’ 왜 못막았나”[르포]
- [청주=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마지막에 할머니한테까지 전화를 할 정도로 착한 아이었어요. 갓 취업을 해서 이제 엄마랑 좀 편하게 사나 했는데…”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숨진 여성 안모(23)씨의 외삼촌 A씨는 17일 착잡한 표정이었다. A씨는 “취업하느라 고생할 대로 고생하면서 엄마와 할머니 등을 생각하는 착한 아이였다”며 “남자친구도 있고, 이제 돈도 벌고 재미있게 살아야 할 꽃다운 나이의 조카를 잃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씨의 빈소는 전날 충북 청주 하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하나병원 장례식장에는 안씨 외에도 이번 사고의 희생자 2명이 안치돼 있다. 이들은 이번 사고가 이례적인 홍수 경보에도 제대로 된 도로 통제와 대비가 미진해 일어난 ‘인재’(人災)였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구조대원 등이 견인된 침수 차량의 트렁크를 개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 없어” 답답한 유족들지난해 취업에 성공해 경기도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던 안씨는 친구들과 여수 여행을 가기 위해 KTX를 타러 오송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숨졌다. 안씨의 빈소에는 그가 졸업한 대학 작업치료과의 동문과 교수들이 보낸 근조 화환이 있었고,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안씨의 아버지는 “할 말은 많은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더 말을 할 수가 없다”며 눈물지었다. 앞서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미호강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물이 유입되며 충북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는 약 2분여만에 물에 잠겼다. 이 사고로 인해 버스 1대를 포함, 차량 10여대 이상이 침수됐다. 충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새벽까지 총 4구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됐다. 이에 현재까지 숨진 이들은 총 13명이 됐다. A씨는 사고 이후 신원 확인은 물론, 각종 행정 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청주시와 충청북도는 희생자들의 빈소를 3군데(하나병원, 청주의료원, 충북대병원)로 분산시켜놓고, 각 빈소에 전담 공무원 1명씩을 보내놓은 게 전부”라며 “합동분향소 운영을 포함해 사고 이후에 본격적인 대책 논의 등이 필요한데 유족들의 연락처 등도 제대로 공유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 등도 검안 등 행정 절차 처리를 위해 방문하는 대신, 슬픔에 젖어 있는 유족들에게 직접 방문하라고만 하는 등 지원 절차는커녕 사태 수습도 안 도와준다”며 “전례 없는 폭우라면 제대로 통제를 잘 하고 그에 걸맞는 안전 대비를 했어야지, 그렇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7일 충북 청주의료원에 숨진 버스기사 이모(58)씨의 빈소가 마련돼있다. (사진=권효중 기자)◇ 마지막까지 승객 챙긴 ‘베테랑’ 버스기사…“황망해” 이번 사고로 숨진 버스기사 이모(58)씨의 빈소도 이날 이른 아침 청주의료원에 마련됐다. 이씨의 시신은 이날 오전 1시 25분쯤 소방당국에 의해 수습됐다. 이씨의 가족은 물론, 버스 회사 동료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이씨의 빈소에는 각종 운수회사, 모범운전자협회 등에서 보낸 근조 화환과 깃발이 놓여 있었다. 이씨는 사고 당일 747번 버스의 기존 노선인 미호천교가 침수로 통행이 제한되자 궁평2지하차도로 우회했고, 순식간에 들이닥친 빗물에 승객들과 함께 갇혔다. 그는 마지막까지 창문을 깨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숨진 안씨의 외삼촌 역시 안씨가 가족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기사가 창문을 깨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재확인했다.이씨의 버스 기사 동료들은 빈소를 찾아 연신 한숨을 쉬었다. 이씨와 10여년 같이 일했다는 동료 B씨는 “‘안전운전 베테랑’이었고, 제일 일찍 출근해 동료들을 챙기는 사람이었다”며 “뉴스에서 ‘창문을 깼다’는 내용을 듣고 그라면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선 버스 특성상 고령의 승객들이 많아 승객들부터 돕다가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다른 동료 C씨도 “사고 당일 출차 전에도 동료들과 우회 지시, 안전운전 등을 공유했던 기록이 휴대폰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훌륭했는데, 이렇게 되어서 황망하다. 회사 차원의 대책 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장례부터 잘 치러주고 싶다”고 슬퍼했다.이씨와 35년지기 친구라는 D(58)씨는 이씨를 항상 솔선수범하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던 친구로 기억했다. 그는 숨진 이씨에 대해 “화물차 운전부터 시작해 택시, 버스까지 안 몰아본 것이 없는 베테랑”이라며 “무사고 10년 달성으로 각종 표창을 수상하고, 모범운전자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개인 택시 자격을 얻은 후에도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 봉사를 하는 등 항상 먼저 발을 벗고 나섰다”고 했다. 또 “아흔살 먹은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인데, 아침에 소식을 듣고 주저앉으셨다”며 “자기 아들 일처럼 슬퍼하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소방당국에 따르면 17일 오후 1시 현재 지하차도 안에 남아 있는 차량은 6대다. 소방당국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를 포함, 최소 1명이 고립돼 있을 것으로 보고 배수 및 수색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