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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사람이 되련다’
-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아들의 결혼식 대신 모로코 현지인들의 곁에 남아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번 코로나19 때 모로코하고 한국을 오가는 특별기가 네 번 떴었다. 그때 아들 결혼식도 있었는데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아내와 의논하면서 ‘우리가 지금 특별기를 타고 나갈 수 있고, 결혼식에도 참석해야 되지만 어려울 때 이곳에 있으면 모로코 사람들한테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들 결혼식 참석을 포기하고 현지인들과 직원들에게 “우리는 귀국하지 않고 여기 남아 있겠다” 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엄청 좋아하더라. 가능하면 이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울 때에 같이 있으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었다.◇ 해외 의료 봉사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 부산의대 재학하던 1980년 중반, 의료선교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의료선교로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봉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계기는 부산침례병원(현재는 폐업)에서 인턴으로 수련 받던 때, 이라크 쿠르드 난민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다. 그때 의료봉사를 가고 싶어 지원했지만 당시엔 군 미필자는 해외를 가기가 어려워 가지 못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결핵환자들이 의료보험이 안 돼 입원을 못하고 고생하는 걸 많이 보면서, 동료들과 급여 일부를 모아 병원비를 내주기도 했지만 기회가 되면 외국에 나가서, 의료행위를 통해 결핵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군대를 다 마쳐야 외국에 나갈 수 있으니 군대 문제를 해결한 35살, 95~96년도부터 조금씩 해외에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며 인생을 바꿨던 한 사람이 있다면- 98년도에 경남 마산에 개인병원을 개원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해외 의료소외지역을 찾았다. 베트남 구순구개열 수술 지원을 시작으로 중국, 몽골, 아제르바이잔 난민촌 등을 5년간 7차례 방문했다.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아르메니아 난민촌에서 만난 한 청년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이제 오면 어떡하냐. 전쟁 나고 어려울 때는 오지도 않다가 지금 다들 난민이 된 다음에야 와서 - 약주며 이렇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며 나를 보고 울부짖으며 분노하고 절규하는 청년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 내가 옆에 같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그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곳에 있는 공동체 안에서 이렇게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의료인의 역할을 하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그런 중에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있고,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워낙 준비가 안 돼 바로 출발하지 못했지만 그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됐고 헌신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2002년 즈음, 내 나이 마흔 때었다.◇ 해외의료봉사활동을 준비했던 과정은?- 2002년쯤 해외의료봉사를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개인병원을 처분하고 해외의료봉사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있어야 현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듬해인 2003년 호주에서 영어, 문화인류학, NGO학 관련 과정을 2년 동안 공부했다. 2005년쯤 해외의료봉사활동에 대한 준비가 끝나갈 무렵,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으로 인해 의사나 의료시설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가족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활동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05년부터 수도 카불의 큐어 국제병원에서 일반외과 과장, 가정의학과 교육부장으로 일했다.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해 한국의 NGO와 파병부대까지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바그람 미군부대 안에 있는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계속 일할 의사가 필요했다. 한국 외교부의 제안으로 수도 카불 인근 바그람 한국병원의 병원장을 맡았고, 병원장 부임 이후 트레이닝 병원으로 바꿔서 현지 의사 등 훈련에 힘쓰며 의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가니스탄 가정폭력 피해자, 존스홉킨스로 떠난 계기가 되었다고?- 아프가니스탄에는 가정폭력 문제로 여자들이 목숨을 끊으려 할 때 바늘을 삼킨다. 바늘을 삼킨 환자를 치료해서 살려놓고 집으로 보내면 또 남편에게 맞아 병원으로 오는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병원 밖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병원 안에서 외과의사로 일을 하는 게 내 할 일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개발국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는 현장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이 ‘보건’과 연결된다는 말을 듣고, 50세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보건학 공부를 시작하며 지역주민의 건강향상을 폭넓게 도모하는 공중보건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아프리카에 결핵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도 이 시기였다.◇ 존스홉킨스 석사를 마치고 모로코를 선택한 이유- 2012년 보건학 석사 공부를 마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현지 상황이 악화되어 외국인의 입국이 어렵게 됐다. 그래서 의료봉사자도 없고 NGO 활동이 부족한 북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고 모로코를 통해서 모리타니아, 말리 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으로 거점 국가로 모로코를 선택했다. 모로코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의료 환경이 열악해 결핵 발병률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또한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으로 건너가기 위한 길목에 위치해 있어 밀입국자들이 몰려들었고, 1개 주택에 3~4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결핵 감염률이 높아 무엇보다 보건사업이 필요한 나라였다. ◇ 모로코의 결핵 퇴치를 위해 고안한 스마트 약상자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 우리가 결핵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을 먹는 것인데, 나는 약을 먹이는 것보다는 ‘이 사람들이 왜 약을 잘 안 먹을까’ 라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국내 헬스케어 업체와 함께 스마트 약상자를 고안했다. 약의 무게를 감지해 결핵약 복약여부를 확인하고, 알람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려 환자의 복약을 돕고 있다. 복용하지 않으면 결핵전담 보건요원이 전화나 방문교육을 실시한다. 기존 결핵환자의 완치 비율은 70%에 그쳤으나, 스마트 약상자를 건네받은 환자들은 6개월간 꾸준히 약을 복용해 완치율이 90%에 이른다. ◇ 마지막 꿈이 있다면?-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사람이 돼야 한다’ 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의사로 있든 청소부로 일을 하든 그곳에서 나이가 들어서 일을 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다면 충분하다. 최종 목표는 북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그 국가의 의료 시스템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 이근 "한국 최초 '의용군'으로 우크라 출국"...처벌 수위는?
-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이근 전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위가 지난 6일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의용군을 꾸려 출국한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이 전 대위는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당신이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언제나 인생의 패배자들이 당신을 질투하여 당신을 비방하고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그는 이 글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ROKSEAL’은 즉시 의용군 임무를 준비했다”며 “따라서 2월 28일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서 그 기사를 게시하고 ‘WE WILL SUPPORT UKRAINE’이라는 힌트를 공지했다. 48시간 이내 계획 수립, 코디네이션, 장비를 준비해 처음에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출국을 하려고 했으나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를 느껴 마찰이 생겼다”라고 밝혔다.이어 “결국, 우리는 여행 금지국가를 들어가면 범죄자로 취급받고 1년 징역 또는 1000만 원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협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사진=이근 전 대위 인스타그램그는 “하지만 처벌받는다고 우리가 보유한 기술, 지식, 전문성을 통해서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지 않고 이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무식한 사람들은 보안을 이해 못 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비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저의 팀이 문제없이 출국하고 우크라이나 잘 도착해야 해서 관계자 몇 명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저희의 계획을 공유하지 않았다”라고 했다.그러면서 “얼마 전에 출국 했으니, 이제 이렇게 발표를 한다”며 “저의 팀원들은 제가 직접 선발했으며 제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그때는 제가 다 책임지고 주는 처벌 받겠다”라고 전했다.이 전 대위는 “최초의 대한민국 의용군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위상을 높이겠다”며 “그럼 임무 끝나고 한국에서 뵙겠다”라면서 글을 맺었다.그가 이 글과 함께 올린 사진에는 그를 포함해 남성 3명의 뒷모습이 담겼다.이 전 대위는 또 다른 글에서 “우크라이나 대사관 오피셜: 최초 대한민국 의용군 ‘ROKSEAL’ 우크라이나로 출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아울러 이 전 대위는 비행기 수화물로 이송되는 캐리어와 그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비행기 등을 사진으로 공개했다.사진=이근 전 대위 인스타그램앞서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고조된 지난달 13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여행금지’를 뜻하는 여행경보 4단계(흑색경보)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은 현재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수 없다.여행경보 4단계 발령 전부터 현지를 방문하거나 체류 중이던 우리 국민도 출국해야 하며, 만일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현행 여권법 제26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실제로 외교부는 지난 2017년부터 약 2년간 여행금지 국가인 시리아에서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 소속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싸운 강 모씨가 귀국하자 여권 반납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그러나 지난달 2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해외에 의용군 참여를 호소한 이후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이 ‘외인부대’에 자원하려는 희망자가 이어지고 있다.이와 관련해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측은 지난 3일 “희망자가 대사관에 연락하면 일단 입대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특정 자격을 충족하면 입대와 관련한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대 자격은 18세 이상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인이다.대사관은 향후 전담자를 정해 연락망을 일원화하는 등 지원방식을 체계화할 예정이다.다만 대사관 측은 “개인 자격으로 자발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이 가운데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외국 국적 의용군이 러시아군에 체포될 경우 전쟁포로로 대우하지 않고 형사 처벌하겠단 입장을 밝혔다.한편, 이 전 대위는 2018년 대통령경호처 경호안전교육원 교관단 감사장을 받았으며, 2020년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에서 훈련 교관으로 활약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 [런던에서 온 편지] 58.인권보다는 실리?
-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왼쪽),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오른쪽)(출처=영국 총리실)[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회담하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티타임도 가졌죠.영국과 터키 관계는 복잡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장하는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영국은 장기집권 하면서 반대파 숙청, 언론 탄압 등 인권 침해를 공공연히 자행하며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터키 정부와 거리를 두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영국으로서는 다른 시장을 찾고 무역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터키도 잠재적으로 교류 확대를 할 수 있는 시장 중 하나죠. 이 때문에 여가 경제적 실리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 등을 둘러싼 영국의 딜레마가 시작되는 것입니다.영국은 경제적 실리로 기우는 모습입니다. 특히 브렉시트가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더욱 부추겼죠. 헌법 개정 등을 통해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꿔 자신의 독재 권력을 더욱 공고히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올 6월 선거에서 대통령 연임에 도전합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에르도안에 맞서 출사표를 던졌던 주요 대통령 후보는 투옥을 겪었으며 대규모 집회, 언론 자유 등이 불허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하에 투표가 진행됩니다.에드로안 대통령 집권하에서 터키의 민주주의가 크게 퇴보하고 있다며 터키 정부와 각을 세우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영국은 터키 내 인권 문제에는 되도록 침묵하며 터키와 관계를 증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메이 총리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 총리 자리에 오르고 난 뒤 작년 1월 첫 해외 방문지로 터키를 택했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무역을 현재 160억달러(약17조400억원) 규모에서 200억달러로 늘리는 방안과 대테러 정책 등의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영국은 터키 공군의 전투기 개발 등을 돕는 조건 등이 포함된 1억파운드 수준의 군수 거래도 맺었습니다. 영국 군수품 제조업체 BAE 시스템스, 롤스로이스 등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국은 그러면서 영국 기술과 부품으로 터키가 제조한 전투기를 다른 국가에도 팔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터키가 다른 독재국에 전투기를 팔수도 있다고 우려를 하며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얼마나 새로운 동맹을 만들고 거래를 따내는데 급급한지 보여준다”고 지적했죠. 이에 대해 영국 정부는 “영국 내 일자리와 군수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반박했었죠. 영국은 작년 터키로의 금융서비스 등의 수출을 이전보다 두 배 증가시킨 35억파운드로 늘렸습니다. 또한 에너지, 헬스케어, 제조 부문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죠.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대해서 영국 총리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영국과 터키의 가까운 양자 관계를 보여주고, 양국이 공유하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밝혔습니다.그러나 영국 야당인 녹색당 캐롤린 루카스 의원은 “영국이 브렉시트를 맞닥뜨린 가운데 영국 정부는 전 세계 독재자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에르도안은 자국 국민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가하는 독재자인데 우리는 그에게 수백만달러의 무기를 팔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그래도 적어도 터키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중동에서 대테러 프로젝트, 난민 문제 등과 관련해 정보 공유와 협력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한 영-터키 관계 개선이 터키 내 영국인 처우 개선 등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도 있고요. 일각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중동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터키에 대해 영국이 무조건 인권을 들며 각을 세우기는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내놓습니다.실제 터키는 미국이 발을 뺀 이란 핵협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의 방침을 지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이란 핵협정 파기는 결국 미국을 패자로 만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었죠. 미국과 터키는 터키 정부군이 격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리아 내 쿠르드 군사조직을 미국이 지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지야 머렐 정치군사 부문 평론가는 “영국의 터키에 대한 태도는 분명히 터키 내 우려할 만한 상황이 많음에도 완전히 등을 돌리기에는 터키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