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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신용등급 강등될라"…환 리스크 무방비 노출된 기업들
- [이데일리 김정남 김성진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정국 대혼란에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내년 사업전략 수립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환율 폭등(원화 급락)으로 원재료 조달 비용이 치솟고 미국 현지 공장 가동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당 당하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원재료 부담 커도 제품값 못 올려”환 리스크 헷지를 잘 해놓는 대기업들마저 요즘은 환율 폭등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달러화, 유로화 등 주요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환율 변동 여파를 최소화해 왔다. 그러나 환율이 급변할 경우 리스크가 커지는 점은 막기 어렵다. 특히 국내외에서 조달하는 원재료 규모가 연 100조원을 넘다 보니, 환율이 뛰면 원재료 부담은 고스란히 커지는 구조다.(그래픽=김정훈 기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삼성전자의 반도체(DS)부문, 완제품(DX)부문,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와 하만 등을 더하면 원재료 매입 규모는 79조8937억원이다. 특히 스마트폰, TV, 가전 등의 사업을 하는 DX부문만 52조5743억원에 달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퀄컴, 미디어텍 등으로부터 달러화로 사들이는데, 그 규모만 8조7051억원을 기록했다. TV사업을 하는 VD사업부와 생활가전사업을 하는 DA사업부 역시 디스플레이 패널 등을 해외에서 조달한다. DS부문(올해 1~9월 12조3310억원)은 DX부문보다는 원재료 조달 규모가 작지만, 반도체 제조의 기본 소재인 웨이퍼의 일부 등을 해외 기업들에서 사들인다. 1200~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번달 갑자기 1400원 후반대로 치솟으면 고스란히 조(兆) 단위 추가 손실이 날 수 있는 셈이다.다른 기업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웨이퍼를 미국, 독일 등으로부터 사들인다. LG전자 역시 TV, 전장 등에 필요한 칩을 퀄컴, 미디어텍, NXP 등으로부터 조달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는 ‘내추럴 헤지’(철강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재료를 사들이는 방식)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생산 원재료를 전량 수입하다 보니 비용 부담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원재료 조달 비용이 올라도 업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제품값을 올리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27년만 신용등급 강등될라” 불안감또다른 환 리스크는 미국 현지 공장 가동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달러화로 현지에 투자하는 금액을 원화로 환산하면 투자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가뜩이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배터리업계에 직격탄이나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전사 차원의 위기경영 메시지를 통해 “투자비 증가로 인한 부담이 높아 당분간 의미 있는 수익 창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 투자 속도조절을 고민하는 현실은 SK온, 삼성SDI 역시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미국 공장 건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더 폭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거래된 원·달러 1개월물은 1473.50원에 최종 호가됐다. 최근 1개월물 스와프 포인트(-1.00원)를 고려하면 전 거래일 서울외환시장 종가(1467.50원) 대비 7.00원 오른 셈이다.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가 추가 약세를 띨 수 있다는 의미다.재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 S&P(AA), 피치(AA-), 무디스(Aa2) 등 3대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을 20위 안팎에 올려놓고 있다. 금융시장 한 관계자는 “피치가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렸을 정도로 예외는 없다”며 “‘설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 여객기 수습·고환율·비상정부…엎친 데 덮친 경제사령탑
-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1인 3역’의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경제팀의 업무 과부하가 불가피하게 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을 점검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열렸던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 운영이 어려워지는 등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여야정 협의체’를 출범해 과부하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기재부, 총리실 등과 ‘비상정부’ 운영 방안 검토 기재부는 국무총리실, 국가안보실, 외교부 등과 함께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비상 정부’를 운영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29일 전해졌다. 전례없는 ‘대대행’ 체제에 최 권한대행의 역할이 갑작스럽게 늘어났지만, 기재부로선 관련 업무를 담당할 조직이 없기 때문에 업무 분담을 꾀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지난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다. 최 권한대행은 당장 첫날부터 대통령을 대행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으로서 외교·안보를 챙겼다. 휴일인 이날엔 비공개로 업무보고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으나 전남 무안공항에서 참사라고 할 수밖에 없는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급작스럽게 사고 지휘에 나서기도 했다. 사고 직후 서울정부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연 최 권한대행은 바로 사고 현장으로 출발, 관련 보고를 받고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뿐 아니다. 최 권한대행은 국무총리를 대신해 행정부 간의 업무를 조정하고 국무회의도 주재해야 한다. 경재 콘트롤타워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환율 1500원 코앞인데…F4회의 운영도 고심최 권한대행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경제 콘트롤타워의 역할에는 공백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그간 외환·금융시장을 방어해오던 F4 회의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F4 회의는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해 경제·통화 등에 대한 주요 사안을 다루는 최고 회의체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매일 F4 회의를 열어 외환·금융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잇달아 내놓아 그나마 시장 변동폭을 줄였다. 최근에도 주2회 회의를 이어갔다. 하지만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서 일정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격에도 맞지 않는단 지적이 많다. 김범석 기재부 1차관 주재로 열리고 있는 경제금융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로 F4 회의를 대체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환율·금융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7일 1480원대를 뚫은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후 전남 무안공항 관제탑 앞에서 사고 여객기 탑승객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경제팀 과제 산적…‘여야정 협의체’서 역할 분담해야내수 부진에 따른 성장률 둔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팀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부처 간 조율은 물론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국회와 협상을 해야 하는 사안들도 대다수지만 대응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이미 주요 기관들에서 한국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1%대로 잇달아 내리는 상황에서,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정책 기조 전환과 구조개혁 등 큰 결단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고 우려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외적으로 환율 급등 및 자본유출에 대내적으로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금융 부실이 확산돼 조만간 금융위기급 상황이 올 수 있다”경고했다.김 교수는 “대출규제를 줄이거나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면서도 “그동안의 건전재정 기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현재 경제팀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하루라도 빨리 여야정 협의체가 출범해 최 권한대행에 과도하게 부여된 업무를 효율화해야 한다고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야정 협의체에서 외교·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경제팀은 내수 부진 등 경제 살리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이번주 초 발표 예정이었던 2025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는 이날 발생한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로 연기됐다. 181명의 탑승자 중 대다수가 사망한 대형 참사에 최 권한대행이 당분간 사고 수습에 주력해야 하는 점 등이 고려됐다.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는 내년 1월 초에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