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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보는 경제신문)류우익실장 靑수석 곧 교체
- [이데일리 윤진섭기자]다음은 6월19일자 경제신문 주요기사. (순서는 가나다순) ◇매일경제 ▲1면 -류우익실장 포함 靑 수석 곧 교체-울산유화공단 마비-배국환차관 '유가뛰면 공공료 인상 불가피'-김황식 대법관 감사원장 내정-청와대도 총리실도 에너지 절약은 없다▲종합 -글쓸때 ID·필명 대신 실명 공개해야-한국, 美서 핵실험 평가물품 구입-대출연체 이자도 못갚는 중기속출-건설사 "외환위기때와 비슷"-하반기 글로벌 자금흐름 '유로채·美주식에 투자 몰릴 듯'-화물연대 "실마리 못 찾으면 전면투쟁"-민주노총-한국노총 난타전 -기업들 신규투자도 채용도 안한다-하반기 채용없거나 미정 46% -한미 쇠고기 막판 줄다리기-북한 2년 마이너스 성장▲정치·외교안보-대통령실장 윤진식, 윤여준 거론-2008 대한민국 정치 9단 실종▲국제-중 베이징·선전 등 집값 하락 확산-오바마, 한미 FTA 또 비판-美 금리 조기인상 가능성 높지 않다-월가, 650억弗 추가조달 필요▲금융 -증시조정받자 인덱스보험 인기-우리·기업은행 민영화 지체없이 추진-안택수 전의원 신보이사장 지원 논란-대한생명 모기지론 판매▲기업과 증권 -한진重 수빅조선소 첫 선박 만들었다-물류대란·파업 해결사 정회장..글로비스에 협상지시-이건산업, 바이오사업 진출-백화점 여름세일-하이닉스, 실리콘화일 인수 ◇서울경제 ▲1면 -현대車, 잔업거부 노조간부 고소-화물연대 파업 다소 진정 조짐-류우익 실장 교체한다-배국환 재정부 2차관 "유가 더 오르면 공공요금 현실화"-환율정책, 3대 딜레마에▲종합 -"美 '수출증명' 버금가는 보장 조치"-美, 8월 금리인상설 약화-"달러매도 개입, 잘하는 건지.." 당국도 답답-협상 타결돼도 복귀 지연 "피해 여전"-부산항 화물 물동량 다소 개선-원재로 바닥난 화학·섬유사 '발동동'-공정법 개정안 9월 국회상정-금융위 막강 파워 어디까지-하반기 취업문 좁아질 듯-대통령실장 의외 인물 발탁 가능성▲금융 -은행권 대출급증..카드사 눌러-온라인 자보 '거침없는 질주'-국민연금, 신한 PE와 공동참여 추진..대우조선 인수전▲국제 -양자간 무역협상 곳곳서 '표류'-美·中 "에너지 부문 공조 확대"▲산업 -현대..'玄 회장식 내실경영' 본 궤도에-GM대우 "내수시장 공격적 전략"-삼성전자 2차 조직개편설 솔솔-한진중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1호 선박 완공-삼성 "바타입 휴대폰시장 잡아라"-대한통운 국제택배사업 독자추진▲증권 -"이익 모멘텀 강한 IT·자동차 사라"-대우조선 인수관련 기업들 '주가 요동'-농업 관련주 일제 상승◇한국경제 ▲1면 -공기업 구조조정 명퇴제 부활-화물파업 속속 타결-류우익 실장 교체 확정▲종합 -그린벨트 해제지역 개발, 외자·민간지본에도 허용-고유가에, 파업에, 시중자금 급속히 부동화-하반기 취업문 더 좁아진다-현대차 노조원 "산별노조로 이중, 삼중 파업 휘말려"-의왕 컨테이너 기지 처리물량 절반 회복-쇠고기 추가협상 막판 진통-공정위, 동의명령제 도입▲국제 -"올해 아시아 부동산에 투자하라"-"中 국영기업 CEO에 非 공산당원 허용"▲사회 -서울대 "정치이슈 촛불집회 참여않겠다"-자율화 건의하랬더니..대학들, 황당한 요구▲산업 -한진중, 수빅서 다시 쓰는 조선신화-하이닉스, 실리콘화일 인수한다-삼성전자, 의료기기 생산한다-생수시장 성장세 거침없다-백화점, 20일부터 여름 세일▲금융 -"우리금융, 매각 내년 착수"-캐피탈사 선박리스 운용 하반기 '흐림'-예보 부실소송 미회수금 7000억원▲증권-신동엽·유재석 등 소속 DY엔터 우회상장 '관심'-예탁결제원 사장 후보 5명으로 압축-코스닥 상장문턱 확 높아졌다
- [Why] 다시 뜬 국진이 ''개그 인생''을 얘기하다
- [조선일보 제공] 사진 촬영을 위해 좀 웃어달라고 부탁하자 표정이 어색해졌다. "제가 낯을 가려서요. 옛날에는 출연자 대기실에도 못 들어갔다니까요." 그럼 개그는 어떻게? "그러게요, 그게 참 묘하죠?"TV만 켜면 유재석, 강호동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세상이다. 1990년대 중·후반 김국진(42)이 그랬다. 그가 방송에 나와 '여보세요?'하면 다음 날 동네 꼬마들이 따라 했고 곧 유행어가 됐다. 혀가 짧아 말도 길지 않았다. '어라?' '오 마이 갓' '사랑해요' '밤새지 마란 말이야'….김국진은 키 171㎝ 몸무게 57㎏이다. 그런데 씨름 천하장사를 지낼 때 180㎝에 한때 120㎏이 넘었던 강호동이 방송에서는 그에게 꼼짝 못 했다. 그런 김국진이 어느 순간 TV에서 사라졌다. 이혼하고 골프 선수가 되겠다더니 급기야 사업하다 망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김국진이 작년 9월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로 컴백했다. 5년 만에 돌아온 그를 보고 시청자들은 '90년대 개그는 안 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 김국진만 보면 배꼽을 잡는다. 복귀의 비기(秘技)는 '수비형 개그'다. 다른 사람 말을 귀기울여 듣다 맞받아치는 것이다.물이 오르자 라디오스타에서 췄던 김국진의 일명 '야야야 춤'이 인기를 끌더니 MBC 예능 프로그램 '명랑히어로', KBS '사이다'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10년 전 세상을 웃겼던 억양 그대로다. 지난달 30일 홍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라디오스타'는 '정글' 같은 분위기더군요. 괴성이 오가고 독침 같은 개그가 난무하던데."시작할 때 사람들이 말렸어요. 제 스타일과 안 맞는다고요. 막상 시작하고 나서 저도 놀랐습니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개그가 파괴적이었으니까요. 방송이라는 게 주고받는 흐름이 있는데 그런 게 없어요. 파도로 비유하면(그는 손을 들어 넘실대는 파도를 표현했다) 이렇게 너울거리면서 '탕' '탕' 뱃머리를 때리는 게 아니라 휙~ 하고 저리로 갔다가 휙~ 하고 이리로 떨어져요. 말하자면 토네이도 같은 개그죠."―처음에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김구라 씨 멱살을 잡기도 했는데 그게 적응 과정이었나요."그때는 정말 이게 뭔가 싶어서 그랬어요. 축구로 비유하자면, 목표는 상대방 골대에 골을 넣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건 골 넣을 생각은커녕 자기편 골대에 슛을 해요.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요. 초대손님 불러 놓고 진행자끼리 얘기하고 막말하는 걸 보면서 '야, 이게 뭐니, 도대체!' 한 거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하면서 흐름이 끊어지고 오히려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 버렸죠."―최근 시청자들은 그런 스타일의 개그를 원하나요."네. 초반에는 '안녕하세요? 이말 한마디 하고 나서 '아~' '아~' 하거나 웃다가 프로그램이 끝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묘한 흐름이 보였어요. 무(無) 흐름 속에도 흐름이 있더군요. 제 방식대로 토네이도를 한 번 뿌려보기도 하고 춤도 추게 됐죠. 그게 인터넷 동영상으로 돌더군요. 이렇게도 가보고 저렇게도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만 바본가'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격렬한 개그를 겪으면서 앞으로 다른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구라씨가 김국진씨 이혼 경력을 소재로 개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별의 아이콘''이별을 집대성하신 김국진'이라면서요. 기분 나쁘지 않았나요?"기분 나쁘기보다는 깜짝 놀랐죠. 당황스러웠어요. 대본에도 없는 얘기를 막 하잖아요. 그 친구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건너뛰는 게 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좋은 면도 있어요. 어차피 인터넷으로 돌고 도는 얘기잖아요? 다 아는 거 어설프게 숨기는 것보다 낫죠. 지금은 웬만한 얘기를 들어도 웃으며 넘기죠."―짜고 하는 건 아닙니까?"그런 건 없어요. 그런 걸 어떻게 짜고 해요? 중구난방으로 오가는 얘기를 짜고 하려면 아이큐 400은 넘어야겠죠."김국진은 1991년 1회 KBS 대학 개그제에서 동상을 받았다. 그때 동기가 유재석,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김수용이다. 김국진은 데뷔 1년도 안 돼 인기를 끌었다. 그는 어릴 때 꿈이 "대통령과 개그맨이었다"고 했다.―웃기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나요."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든 어디든 제가 꼭 마이크를 잡게 됐어요. 그러면 꼭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져요.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 주저했는데 주변에서 '너한테 딱'이라는 거예요. 그러다 개그맨 시험 한번 보고 붙은 거죠."―KBS에서 인기를 끌다 MBC로 간 게 문제가 돼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게 사실인가요. "원래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당시 저하고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이 입사 동기로 '감자꼴 4인방'이라 불렸죠. 그때 김용만이 허리가 아팠고 박수홍은 입대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미국행을 생각했어요. '이때 가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 싶었던 거죠. 미국식 토크쇼도 접해보고 싶고요. 박수홍씨가 제대하고 돌아오고, 우리는 유학 갔다 돌아왔을 때 다시 뭉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들은 '잘나가는 애들이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초대 받은 거예요. 고별 인터뷰하러 가는 거였는데 '이적(移籍)'으로 오해를 받은 거죠."―연예인협회에서 징계를 받았었죠."신문 보고 알았어요. 선배들은 화가 난 상태에서 사과를 요구했어요. 그런데 사과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게 되는데 우리는 안 그랬으니까요.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입니다. 말이 요새는 인터넷으로 돌고 돌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요. 돌이켜보면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일이죠."―미국에서 뭘 했나요."박사 학위를 따러 간 게 아니잖아요. 그냥 사는 게 공부였어요. 자니 윤 선생님께 얘기도 듣고 돈 벌어야 하니까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그때 LA에 지진까지 나 정말 많은 걸 경험했어요. 코미디라는 게 평범한 일상에 웃음 요소를 집어넣는 거잖아요.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죠."김국진은 1년 만에 귀국해 KBS로 돌아왔다. 복귀 후 맡은 프로그램은 '오키도키쇼'였지만 그는 "처절하게 실패했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 7시 황금 시간대 프로그램에서 쫓겨나자 어느 프로그램, 어느 방송국에서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게 됐다. 그 후 MBC로 옮겨서 '도전추리특급'을 하며 김국진은 살아났다. '테마게임''일요일 일요일 밤에''칭찬합시다' 등 그가 나온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쳤다. 1997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코미디언 연기상, 1998년 MBC코미디언 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1999년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20세기를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로 그를 올려놓기도 했다.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요."그때는 잘 몰랐죠. 제가 방송에서 한마디 하면 다음 날 아이들이 제가 한 말을 따라 했어요. 당시 MBC 사장께서 가끔 제게 들러 '국진아, 뭐 하니?'라고 할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방송계를 움직이는 파워 10인에 들어간 걸 보고 그냥 신기했었죠. 그때는 '내가 열심히 하니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5년 동안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스케줄이 꽉 찼었다면서요. 1주일에 한 편씩 광고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고."어느 날 일정이 취소돼서 하루가 빈 적이 있었어요. 쉬는 날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매니저하고 둘이서 우왕좌왕할 정도였어요."당시 그의 인기를 반영하는 사례가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국찐이 빵'이다. 지금까지 제과 역사상 연예인 이름을 딴 빵은 이후 '핑클 빵'밖에 없었다. ―'국찐이 빵'으로 돈 많이 버셨습니까?"당시 IMF로 그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많이 못 받았지만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당시 식품 광고와 내의 광고를 공짜로 해줬다고 들었습니다. "공짜는 아니었고 생각할 수 없는 적은 가격을 받았었죠. 기업이 힘든데 돈을 많이 받을 수 없잖아요?"―어쨌건 돈은 엄청 많이 벌었겠네요."많이 벌었습니다."―더 벌 수도 있었을 텐데요."마음먹었으면 10배는 더 벌 수 있었죠. 그때 소속사라는 게 없었으니까 계약을 모두 제가 결정했어요. 프로그램이든 광고든 돈보다는 저한테 맞는 일인지를 먼저 고민했어요."―그런데 왜 갑자기 어느 날부터 TV에 안 나왔습니까? 골프 때문이었나요.김국진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골프 때문은 아닙니다. 굉장히 지친 상태였어요. 5년간 방송을 그렇게 하면 사람이 골병이 들어요. 방송을 관두고 나서 운동을 시작했죠. 저는 도전을 좋아해요. 골프 안 했으면 에베레스트 에 올랐을지도 몰라요."―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은 이유는요."2년 정도 되니 한계가 보이더군요. 그다음에는 그렇게 골프에 열중하지 않았어요. 제 덩치에 운동 선수처럼 지옥 훈련을 통해 끝장을 보겠다는 것도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골프 친다는 걸 아니까 꼭 누군가 '며칠 있다가 골프 시험이 있어' 귀띔하죠. 저는 '그래?' 하면서 어차피 취미로 치는 거니까 나갔던 거예요. 그런데 악재가 겹치니 '다 골프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런 소리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어요. 지금은 최대한 골프 안 치려 합니다."―주변에서 말려도 끝까지 해보는 성격이라면서요."그게 장점으로 작용할 때는 좋지요. 그런데 골프 치면서 그런 성격이 안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게 많잖아요? 모든 걸 끝까지 다 파볼 필요는 없는 거라는 걸 골프를 통해 배웠어요. 사실 지금도 고집이 센 편이지만요."김국진은 2002년 시트콤 '연인들'에서 만난 이윤성과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1년5개월 만에 합의 이혼으로 끝났다. 그 이야기를 예상했다는 듯 김국진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안 좋은 시절을 겪으며 많은 걸 배웠어요. '내가 너무 동굴 속에서 살았구나'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많은 일이 펼쳐지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한동안 코미디를 하지 않고 MBC '반달곰 내사랑'(2001), KBS '달래네 집'(2004), MBC '진짜 진짜 좋아해'(2006)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죠.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저는 연기를 잘 못해요.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제 얼굴을 카메라에 대면 가만히 있어도 슬픈 느낌이 나요. 똑같은 표정인데도 묘하게 익살스러운 표정도 나온대요. 그것도 자연스럽게요. 당시 저를 제외하면 모두 전문 연기자였어요. 새 분야인 드라마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요."―결과가 좋지 않아 오래 쉬고 하는 일마다 안 됐는데, 복귀할 때 두렵지 않았나요. "저는 '무모한 자신감'은 있어요. 그게 성공하면 자신감의 결과가 되고, 실패하면 무모함만 남는 거겠죠. 저는 출발선에 서서 똑같이 출발했을 때 최종 골인 지점에 다가갈수록 더 잘 달릴 자신감은 있어요. 세상은, 신은 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이 제가 5년 동안 잠도 못 자면서 그렇게 일을 하고 나서 또 5년간 푹 쉬었어요. 데뷔했을 때도 1년 반 동안 정신없이 일하다가 미국 가면서 2년을 쉬었고요. 성공과 실패의 꼭짓점을 찍어봤지만 연예계 생활 17년을 돌이켜보면 평균적으로 적당히 일한 셈이죠."―복귀한 이유가 돈 때문인가요."돈 때문이라면 더 빨리 복귀했어야죠. 인기를 조급해했다면 5년을 못 쉽니다. 저는 방송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길 바랐어요. 제가 즐겁게 일해야 시청자들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 쑥스러워하고 소심해요. 기다렸습니다. 평온했던 느낌이 돌아오도록. 그리고 지난해부터 엉켰던 실타래 같은 게 하나씩 풀려가는 걸 느꼈죠. 그래서 복귀한 겁니다."―예전 같은 인기를 얻을까요?"제 목표는 인기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면 인기가 따라올 때도 있고 안 따라올 때도 있죠. 그걸 의식하면 안 돼요. 욕심이라면 방송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저는 신인의 마음으로 출발선에 새롭게 서서 달리려 합니다."김국진은 현재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주셨지만 저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 외롭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잘나갈 때 결혼식 사회를 정말 많이 봤어요. 그 커플들이 잘살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죠. 제가 방송에 나와서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이가 있으니 다시 시작해야 해'라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하루하루 살다 보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겠죠.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습니까?" 사족(蛇足)―사진기자와 그는 구면(舊面)이었다. 사진기자가 말했다. "데뷔했을 때쯤 제가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그때랑 하나도 안 변하셨습니다. 저만 늙은 것 같아요." 김국진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눈 주위에 잔주름이 피어올랐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어제 촬영하느라 밤을 새워서요, 사진이 난민처럼 나올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