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1,051건

  • (인물포커스)커코리안, GM 장악 성공할까
  • [edaily 하정민기자] 아흔을 바라보는 한 억만장자가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를 놓고 도박을 시작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41대 부자이자 보유 재산만 89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억만장자 커크 코커리안은 실적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GM 주식에 대한 대량 매입 의사를 밝히며 세계 자동차업체를 놀라게 했다. 그는 10년 전인 1995년 크라이슬러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한 바 있어 이번 지분 투자가 GM 인수를 위한 전초전이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커코리안이 이끌고 있는 투자회사 트라신다는 4일(현지시간) GM 주식 2800만주를 주당 31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트라신다는 이미 2200만주(3.9%)의 GM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매수가 성사될 경우 커코리안의 GM 지분율은 8.84%로 높아지고 그는 GM의 3대 주주가 된다. 공교롭게도 커코리안이 지분매입 의사를 밝힌 지 하루 뒤인 5일 GM의 회사채는 정크본드로 추락했다. 그간 `위기의 기업`들을 사들여 엄청난 투자수익을 거뒀던 커코리안이 이런 미묘한 시기에 GM 지분을 매입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늘어나고 있다. 커코리안은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갖은 고생을 겪은 후 미국을 주름잡는 거부로 변신했다`는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를 부모로 둔 그는 1917년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가정부와 과일재배 등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커코리안은 16세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권투에 입문한다. 커코리안은 퍼시픽 지역의 아마추어 웰터급 챔피언에도 오르지만 체격이 너무 왜소해 프로 전향에는 실패한다. 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는 커코리안은 1945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항공 사업을 시작한다. 항공회사를 설립한 그는 라스베가스로 가기를 원하는 고객들을 실어나르며 돈을 모았다. 그는 단발비행기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15년 후 이 항공사를 매각할 때 100만달러를 받았다. 이 돈은 커코리안이 세계적 거부의 반열에 오르는 `종잣돈` 구실을 했다. 커코리안은 1962년 100만달러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네바다 사막의 땅 80에이커를 사들여 라스베가스 거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1967년에는 카지노를 매입한 커코리안은 이를 라스베가스 최대 규모 카지노인 `MGM 미라지`로 키워냈다. MGM 미라지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갑부된 커코리안은 이후 화려한 투자실적으로 기업 사냥꾼의 명성을 떨친다. 그는 1960년대 트랜스인터내셔널 항공에 300만달러를 투자한 후 이를 1억4900만달러에 매각한 바 있다. 미국 영화사 MGM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트라신다를 통해 MGM 지분을 세 차례나 팔고 사들였으며 지난해 MGM 지분을 일본 소니에 매각, 무려 3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크라이슬러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커코리안은 1990년 크라이슬러가 대대적인 실적 부진에 빠지자 크라이슬러 주식 2200만주를 매수했고 이듬해 600만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1992년 커코리안은 크라이슬러 대표직을 요구했으나 이사회에 의해 묵살당하자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1995년 크라이슬러가 66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하자 커코리안은 주주들에 대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며 추가로 주식을 매입했고 몇 달 후 전격적으로 적대적 인수를 선언했다. 양측의 싸움은 크라이슬러가 커코리안에게 이사 자리를 줌으로써 일단락됐지만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그와 싸우느라 경영에 제대로 전념할 수 없었다. 크라이슬러가 독일 다임러와 합병한 후에도 양측의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커코리안은 1998년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때 이에 찬성했으나 이후 "다임러가 합병 당시 약속을 어겨 투자자들을 속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합병을 할 경우 인수 업체에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이는 것이 관례지만 대등 합병을 함으로써 주가가 떨어져 큰 손해를 봤다는 것. 커코리안은 2000년 제기한 이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항소를 제기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커코리안의 이런 전력 때문에 GM과 커코리안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커코리안은 GM 추가 투자 의사를 밝힌 후 "단순한 투자로 GM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GM의 3대 주주로 떠오른 커코리안이 크라이슬러 때와 마찬가지로 이사회에 진출할 것이며 이사회에서 GM이 자회사를 매각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커코리안은 크라이슬러 이사로 재직할 당시에도 주주배당을 늘렸고 트라신다의 직원을 크라이슬러의 이사진으로 앉히는 등 경영에 깊이 관여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커코리안의 지분 매입이 GM 경영진에게는 `악몽`이 되겠지만 주주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콜니체르 자산운용의 존 콜니체르 회장은 "커코리안으로 인해 GM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며 경영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조에 대해서도 더욱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업에서는 성공만 거듭한 커코리안이지만 그의 개인사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세 번 결혼한 그는 모두 이혼했고 세 번째 부인과의 이혼 소송은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단골 스캔들로 남았다. 1997년 커코리안은 무려 48세 연하의 테니스 스타 리사 본더와 결혼했지만 한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1986년 테니스 장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리사가 아기를 가지자 정식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이혼소송 중 커크의 불임 사실과 리사의 불륜이 드러났고 리사가 딸의 양육비로 매월 32만달러의 엄청난 양육비를 요구한 것 또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커코리안과 리사의 이혼을 갑부들의 이혼 중 가장 `치졸한` 이혼으로 꼽은 바 있다.
2005.05.06 I 하정민 기자
  • (신간)개미투자자가 주식으로 성공하는 길
  • [edaily 김호준기자] 증시가 5년 만에 활황을 맞아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대다수 개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주식시장을 주시한다. 증시 전문가들은 과거와는 달리 1000포인트 돌파 이후에도 대세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며 낙관론을 펴지만 장미빛 전망을 액면 그대로 믿는 개미는 별로 없다. 개미들의 `시장관`이 아직 비관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동안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번 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부자된 사람들의 5가지 원칙`(홍찬선 저. 뜨인돌 펴냄)은 개인투자자들이 강세장에서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잘 모르고 주식시장에 섣불리 뛰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04년 10월만 해도 꿈만 같았던 종합주가지수 1000, 코스닥 지수 500" 시대가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해서 돈 번 사람(개미)는 불과 5%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하지만 저자 역시 이번에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장이 왔다고 말한다. 우선 1000포인트 시대가 과거 달리 불황의 끝 무렵에 시작됐고,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종목들도 저평가된 건강한 기업들이라는 점을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기활황기에 주가가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우량주보다는 작전주가 득세했다는 것. 저자는 이제 부동산보다는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노후 준비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성공투자를 위한 5가지 원칙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울고 웃은 개미들의 사연이 풍성하다. 또 증권전문 기자인 저자는 ▲감정을 통제하라 ▲시장의 흐름을 읽어라 ▲분석하고 관리하라 ▲상상하고 공부하라 ▲전문가에게 배워라 등 5가지 투자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제시한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서강대 MBA를 졸업하고 현재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대한투자신탁 경제연구소 연구원, 일본 주오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하고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경제부, 증권부 기자와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를 거쳐 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
2005.04.14 I 김호준 기자
  • 허재 "지도자의 길 너무 힘드네"
  • [조선일보 제공] "지도자의 길 너무 힘들다"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는 허 재(40)가 그야말로 혹독한 수업을 받고 있다. 누가 천하의 "농구대통령"인 그에게 지도자가 되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일까. "시련(?)"을 안겨주고 있는 이는 다름아닌 큰 아들 웅(12)이다. 친정팀 TG삼보의 챔피언 결정전이 보고싶어 한국을 방문중인 허 재는 가장 큰 근심거리가 웅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웅이는 농구선수가 돼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게 꿈이었다. 때마침 농구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살게 되자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허 재는 초등학교에 농구팀이 없는 미국의 특성때문에 YMCA 농구교실에 아들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 농구교실이지 농구 가르칠 생각은 안하고 아이들에게 레크리에이션만 가르치고 있는 게 영 마뜩치 않았다. 결국 허 재는 농구코트가 구비된 집 근처 스포츠센터를 찾아 웅이를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른 운동은 그렇게 잘하던 웅이가 농구에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모양이다. 기본기만 가르치기 위해 슈팅할 때 팔을 위로 올리라고 그렇게 강조해도 앞으로만 내미는 게 아닌가. "내밀지 말고, 올리란 말이야"란 말을 수천번은 반복했지만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개인지도를 포기했다가 아들의 고집때문에 다시 시작한 것도 여러차례. 이 때문에 부자간의 정이 깨질 위기도 심심찮게 있었다고. 결국 허 재는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이 실감난다"며 아들 때문에 조기 귀국도 고심하고 있다. 허 재는 농구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권력승계"가 더 힘들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 (투자!定石이 해답이다)②수학정석의 성공비결
  • [edaily 김희석기자] 올해들어 주식시장이 기대 이상의 랠리를 펼치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동안 잊혀졌던 주식계좌를 다시 찾고 있고 은행예금이나 부동산투자에 관심을 뒀던 사람들도 서서히 주식시장을 넘보고 있다.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 안착하는데 진통을 겪고 있지만 대세는 이미 상승기에 진입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아울러 이번 상승기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충만하다. 주식시장의 질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투자 패러다임도 변해야 한다. 이른바 `정석투자`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석투자의 중요성은 `수학의 정석`(이하 정석수학)의 성공사례를 통해서도 배울수 있다. ◇오래 살아남는 비법은 중고등학교때 수학을 공부하기로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석수학을 접했을 것이다. 설령 정석수학을 교재로 삼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석수학과 비교해서 교재선정을 했기 때문에 정석과 수학의 관계는, 정석(定石)이란 말이 생겨난 바둑과 정석의 관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정석수학은 지난 66년 첫선을 보인 이후 기본 포멧을 흔들지 않은 채 지금까지 거의 40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기간 팔려나간 정석수학은 4000만부에 달한다는 것이 출판사인 성지출판의 얘기다. 얼추 대한민국 국민 1인당 정석수학 한 권씩을 보유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정석수학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쉽다`고 판단하지만 `어렵다`고 말하는 경험자도 적지 않다. 정석수학의 라이벌로 꼽는 대상도 `수학의 완성`에서부터 `해법수학`이나 `개념원리`등 까지 다양하다. `분명한 뭔가`를 가지고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라" 세대를 뛰어넘으며 정석수학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무엇일까. 정석수학의 출판을 오랫동안 관장해온 김준호 성지출판 전무는 "교육정책이 엄청나게 변했고 특히 대입 본고사가 폐지됐던 80년대 이후 입시정책이 매년 바뀌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생존할수 있었던 것은 원칙으로 내세우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김 전무는 "우리는 `최소한 고등학교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한다`는 입장을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며 "시험체제가 주관식에서 객관식으로 바뀌더라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석수학의 예에서 보듯 어느 분야에서나 롱런할 수 있으려면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주식투자에 있어서는 원칙을 갖고 덤비지 않는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 배우며 자기원칙을 만들어라" 그렇다면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부자가 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부자를 따라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검증된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첩경이다. 성공사례의 교훈을 자기것으로 만들어 현실에 대응하면서 응용하는 것이다. 이는 정석수학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석수학을 둘러싼 편견 가운데 하나는 일본 참고서를 베꼈다는 주장이다. 저자인 홍성대 상산고등학교 이사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책을 쓸 때는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외국의 참고서를 많이 본다"며 "문제의 절반 가량은 외국 서적의 문제들을 응용한 것들이고 나머지는 직접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치밀한 프로세스를 구축하라" 정석수학을 공부해본 사람들은 책의 구성이 잘돼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것. 정석수학은 비교적 쉬운 문제로 예제를 제시하고, 상세한 해설을 통해 개념을 이해시키며 마지막으로 이해한 개념을 응용한 문제를 풀게 한다. 앞에서 문제만 나열하고 뒷부문에서 답을 알려주는 방식과 대비되는 프로세스다.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만식 삼성증권 파트장은 "주식투자에서도 실수를 적게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항상 실수하는 사람은 실패한다"며 "성공투자를 위해서는 치밀한 프로세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파트장은 "목표수익률 등 투자목표를 세운후 시장흐름을 파악하고 종목을 선정, 매매타이밍을 점검해 투자에 나서고 이후에는 리스크 관리 등을 감안해 원래 수립했던 투자목표를 다시 보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2005.04.04 I 김희석 기자
  • (금요일 오후에)`생각 주간`이 필요하다
  • [edaily 문주용기자] 빌 게이츠의 휴일 하루는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을 은행같은 금융기관에 맡겨 이자를 계산해봐도 되겠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일 안하고 생각만 하는 그의 하루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보다 수천, 수만배 가치있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세계 최고부자에 오른 빌 게이츠가 일을 하지 않고 머리만 쓰는 생각주간(Think Week)을 가졌다. 그에 대한 관심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기업이라는, 정보를 독식하려는 기업이라는 음모적 시각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지구의 미래에 엄청난 `변수`다. 그가 무엇을 생각해내고, 결정해내는가에 따라 지구촌 IT族이 누리게 될 지식정보의 크기가 달라진다. 95년 그는 무시하던 인터넷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네스케이프가 주도하던 인터넷의 미래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네스케이프를 꺾기 위해 MS의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네스케이프가 MS에 덜미를 잡힌 의미 이상으로, 빌 게이츠의 생각의 결과물인 `인터넷 브라우저 경쟁`이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MS를 뒤집어놓을 10가지 미친 아이디어`를 비롯한 1백건의 보고서중 어떤 것을 생각하고 결심했는지가 IT업계 CEO뿐아니라 전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관심이다. 그의 `생각의 속도`만큼 IT 발전의 속도는 빨라지고, 우리의 상상력은 확장될 것이다. `생각 주간`이라는 빌 게이츠의 독특한 지식 경영은 미래를 결정할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심사숙고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도 `생각 주간`이 필요하다. 지금 한반도는 엄청난 외교 지형이 변하고 있다. 독도 갈등.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등으로 한국와 일본은 갑자기 저 먼 나라가 되고 있다. 여기에 한-미-일 3각 동맹은 좌초 직전이다.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미일동맹은 격상되고, 한일 관계는 적대시화하고 있다. 이 시점에 동북아 균형자론이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쪽 편을 들기보다는 양쪽 사이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성 메시지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에 국민들이 따라가기가 쉽지않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인지, 가서는 안될 방향인지를 차치하자. 그 내용 자체보다 이런 전략의 결정과정에서 생각해볼 대목이 많다. 첫째, 외교전략은 외교카드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동북아 균형자론은 외교전략인가 외교카드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전략이 중국과 미국사이 균형을 잡겠다거나, 일본의 배후인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이거나, 북한 문제까지 염두에 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이 부분이 명확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의 장기 외교전략이 단기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카드`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둘째, 이 외교전략이 대통령의 공군 사관학교 연설에서, 정부 당국자의 `일부 비보도` 전제아래서 공개될 성질인가 하는 점이다. 한반도와 주변국간의 근본관계를 모색하는 외교전략은 정부의 전유물이 될 순 없다. 그러기엔 그 의미와 영향이 너무 중대하다. 관계 정부부처, 청와대 당국자의 머리는 물론이고, 학계전문가, 前외교당국자, 국가원로들과 폭넓게 논의해서 성숙시켜야할 전략이다. 전략의 허점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세부전략들이 점검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공개되어서는 안될 신중함과 공개되어도 될 모호함을 갖춰야한다. 세째, 이 전략의 대상인 상대국들의 이해를 구해야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위상 변화를 우려하는 당사국들이 과민반응하지 않도록 우리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한다. 기존의 동맹의 장점을 더욱 활용하면서도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은 상대국의 신뢰가 있어야 수월하다. 미국이나 일본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쉽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다. 한미동맹은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미국과의 대화가 부족해서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의 급변을 우려하고 있다. `외교카드`가 아닌게 확실하다면, 동북아 균형자론은 당국자와 외부 민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가 정교하게 다듬어야할 외교전략이다. 빌 게이츠 처럼 파격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아니라, 정교하게 다듬고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꼼꼼히 점검할 `생각 주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2005.04.01 I 문주용 기자
  • 조류독감 감염동물 식품제조땐 `1년이상 징역`
  • [edaily 이정훈기자]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탄저병 등에 감염된 동물을 이용해 식품을 만든 제조업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는 등 처벌이 무거워진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위해식품 근절을 목적으로 지난해 개정된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판매액의 2~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형량하한제 적용대상 불법행위로, `광우병 탄저병 조류독감 등의 질병에 걸린 동물 또는 독성이 강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마황 부자 천오 초오 백부자 섬수 등을 이용해 식품을 제조, 판매하는 행위`를 규정했다. 수단색소와 같이 식약청장이 국내외의 공인된 연구결과나 과학적인 평가 등을 통해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한 것을 식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1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받도록 했다. 또 외국에서 사용이 제한되거나 유해물질이 검출된 식품 또는 소비자단체 등에서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한 식품 등에 대해서는 식약청장이 그 식품 등에 존재하는 잔류농약, 중금속, 성장호르몬, 방사선, 병원성세균 등의 위해요인을 과학적으로 평가해 그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식품안전 감시활동에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소비자에 대해 음식점 등 식품접객업소의 위생 계도나 학교주변 등 취약지역의 부정불량식품 감시업무를 하는 소비자식품 감시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위해 우려가 있는 식품을 제조, 판매했더라도 해당 영업자가 이를 모두 회수한 경우에는 행정처분을 면제받도록 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식품에 대해서는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안은 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친 후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오는 7월28일부터 시행된다.
2005.03.29 I 이정훈 기자
  • (미국의 부자들)은수저 물고 하버드 직행
  • [뉴욕=edaily 안근모특파원] 미국 부자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 전쟁은 걸음마를 막 떼고 말을 좀 배운다 싶을 세살 안팎 무렵부터 시작된다. 사립 유아원(preschool) 입학이 그 것이다. 미국의 사립 유아원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정도의 각오로는 턱도 없다. 지난해 미국 사립 유아원의 평균 수업료는 1만2140달러에 달했다. 여기에 스쿨버스비와 기타비용까지 합하면 2000달러 정도가 더 든다. 눈치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기금모금 행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뉴욕의 명문학교에 비하면 헐값(?)이다. 브롱스에 있는 호러스만 유아원은 올해 학비를 2만6100달러로 인상했다. 프린스턴 대학 등록금과 비슷한 수준이고, 웬만한 주립대학의 두 배에 달한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뉴욕 맨하탄의 경우 최근 실시된 사립 유아원 입학사정 경쟁률이 무려 15대1에 달했다. 하버드대 입학 경쟁률 11대1보다 높아 `하버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몇년전 시티그룹의 통신업종 애널리스트인 잭 그러브먼이 자신의 쌍둥이 자녀를 맨하탄 92번가의 명문 `Y` 프리스쿨에 입학시키기 위해 당시 그룹 CEO인 샌디 웨일과 모종의 거래를 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러브먼은 웨일 회장이 이사직을 갖고 있는 AT&T 투자등급을 올려줬고, 웨일은 그 보답으로 `유아원의 하버드`로 알려진 `Y`에 100만달러 기부를 약속해 그러브먼 아이들의 입학길을 열어줬다. 제비뽑기만 잘 하면 입학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일단 십여 군데의 사립학교를 알아본다. 그런 뒤 원하는 학교에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입학원서를 낸다. 명문학교일수록 일찍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이후 부모는 일종의 논술시험을 치르고, 아이는 면접고사를 받는다.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관찰받는 과정도 거친다. 힘깨나 쓰는 친지의 추천서도 필요하다. `아이비 와이즈 키즈(Ivywise Kids)` 같은 유명한 컨설팅 업체에 수천달러씩 주고 요령을 배우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대부분은 떨어진다. 돈이면 뭐든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평생 실패라고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부자 부모들은 그야말로 패닉상태가 된다고 한다. 부자들이 이렇게 사립 유아원에 매달리는 것은 먼 장래를 보기 때문이다. 사립 유아원은 사립 유치원, 사립 초등학교, 사립 중고등학교로 착착 올라가는 일종의 관문이다. 공립학교에 비해 월등히 나은 환경에서 공부해 아이비 리그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립 유아원 입학이 필수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부자들은 이를 일종의 `투자`로 여긴다. 실제로 2만6000달러짜리 호러스만의 경우 고3생의 대학 합격률이 100%라고 한다. 물론 사립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명문대학에 넣기 위해서는 돈을 좀 더 들여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그럴듯하게 쓰고, SAT에 새로 추가된 논술시험을 준비하고, 면접고사 기술을 익히는 등의 과정을 도와주는 사설 컨설턴트를 통해 이른바 `last-minute coaching`을 받는 것이다. 시간당 100달러를 받는 저렴한 곳도 있지만, `아이비 와이즈` 처럼 신문에 자주 이름이 오르는 곳은 전 과정에 2만9000달러를 받는다. 대학 입학 사정관들은 논술 답안지를 대충 훑어만 봐도 학원작품인지 여부를 알아낸다고 주장하지만, 중산층 부모들까지 사설 대입 컨설팅 업체를 찾는 걸로 봐서는 효험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2005.03.21 I 안근모 기자
  • (가판분석)3월5일자 조간신문 주요기사
  • [edaily 윤진섭기자]◇헤드라인 -경향: `이헌재 땅` 투기지역 심의직전 처분 -동아: 기아車-쌍용車 유럽수출제동..이산화탄소 배출기준 충족 못해 -조선: 국제유가 연일 최고가..2차 오일쇼크 수준 넘어 -한겨레: 한승조 교수, "일 식민지배는 축복" 망언 -한국: 학교폭력 피해자 전학 `쉽게` -매경: 핵심기술 유출 `빗장`이 없다 -서경: 유가, 경기회복 `발목`우려 -한경: 구로공단은 지금 `천지개벽`..첨단IT, 지식벤처 속속입주 ◇주요기사 (과학기술부 업무보고-전조간) -과천정부청사 자리에 산학연 협력단지 조성 -이공계 `맞춤형 교육` KAIST ROTJF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에서 7개 이상 시제품 개발 추진 -`스페이스 코리아` 붐 조성..오는 11월 다목적위성 아리랑 2호 발사 (정보통신부 업무보고-전조간) -인천 송도 등 8개권역 `IT클러스터` 구축한다 -연내 `와이브로` 시험 서비스 실시 -DMB 방송 올 상반기 중 일부지역 실시, 2006년 전국서비스 -광대역통합망, 전자식별, 차세대 인터넷주소체계 본격 추진 -통신, 방송 융합 홈서버 등 국산화 추진 -OPEC `유가 2년내 80달러 가능성`경고..유가 연일 최고가 경신 (전조간) -연기·공주 이주자택지-아파트 입주권, 작년 5월 이전 전입자만 자격(매경) -당·정 행정도시 후속대책, 과천 일대 웰빙형 `연구공원` 만든다(경향) -`행정도시 난개발 방지 산 정상까지 모두 매입`(경향) -땅부자 상위 1% 전국땅 45% 소유(동아, 한국) -강남 68평형 225만원 올라..조세저항 불보듯(동아) -`주식백지신탁제` 4월 처리시사..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경향) -`LG카드 대주주` 본격수사..유동성위기 직전 주식처분 혐의(경향) -SK이사회 `GE따라잡기`..재배구조 비교 합격점 자평(경향) -수도권 외국기업 공장 신증설 허용(경향, 동아) -수도권 190개 공공기관 12개시도로 이전(동아) -현대차, 올해 매출 36조원,,올해대비 12% 늘려(동아) -연기, 공주땅 11월부터 매입(한겨레) -진로 `몸값` 신경전..골드만삭스 3조6000억원 제시(한겨레) -온·오프라인 `셀프방` 확산 (경향) -서비스업 생산 두달연속 증가..도산매업은 14개월만에 최악(전조간) -변호사 정부특채에 몰려..최고 20대 1 경쟁률(동아) -2050년 고교 졸업자 60% 감소(조선,한겨레) -지하철역서 발생 지하수..청계천 물로 활용(한국) -한은, 옛 상업은행 본점건물 매입(전조간) -야간주식시장(ECN) 왜 실패했나(동아) -은행권 스톡옵션 붐(동아) -아르헨 `디폴트` 벗어나나..전세계 채권자 76%, 채무 30%상환동의(경향) -日 재벌 총수 고난의 시대..다케후지그룹 탈세로 1300억엔 추징(조선) -정수장학회 후임 이사장 `박정희 사람들` 거명 논란(경향) -`시일야 방성대곡` 장지연 경남일보 주필때 `일왕찬양` 한시 게재(경향) -반외교 방일 돌연 연기(경향) -정치권 李 부총리 해임요구 확산(전 조간)
2005.03.04 I 윤진섭 기자
  • 하버드, 기부금 유치도 역시 `최고`
  • [edaily 하정민기자] 세계 최고 부자 대학인 미국 하버드가 지난 해에도 미국 대학 중 가장 많은 기부금을 유치했다. 미국 랜드코퍼레이션 연구소 산하 교육지원위원회(CAE)는 2일(현지시간) 2004학년(2003년 9월~2004년 6월) 기간 동안 하버드가 총 5억4030만달러를 받아 기부총액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2위는 5억2420만달러를 모은 스탠포드, 3위는 3억8590만달러를 받은 코넬 대학이 차지했다. 펜실베니아 대학, USC, 존스홉킨스, 컬럼비아, MIT, 예일이 4위부터 9위까지 올랐다. 주립대 중 1위를 차지한 학교는 UCLA로 2억6200만달러를 기탁받았다. UCLA는 전체 순위에서도 10위에 올랐다. 한편 교육지원위원회(CAE)는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대학들이 유치한 기부금 규모가 2003년보다 3.4% 증가한 244억달러를 기록했다고 공개했다. 대학 기부금 납부자의 48.8%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들의 활발한 기부가 기부금 총액 증가를 이끌었다. 개인들의 기부금은 2003년보다 9.7% 증가했다. 특히 개인 중 대학 동문이 아닌 사람들의 기부금은 21.5% 급증했다. 기부금 납부자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기부금은 한 해 전보다 3.5% 늘었다. CAE의 앤 캐플런 이사는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 기부금 증가율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기업 기부금이 항상 기업 이익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5.03.03 I 하정민 기자
  • (부동산레이다)돈없어 아파트 투자 못하는 사람들①
  • [양은열] 우리는 부동산을 투자하는데 “돈”이 없어서 부동산 투자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정말 그럴까? 또, 돈이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투자에 있어서 신중해 진다. 따라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동산에 투자에 대한 신중성은 그렇지 않는 사람 보다고 더 조심한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투자에 대해 한번 결정을 하면 지체없이 투자하는 경향이 깊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투자수익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유는 빠른 판단력과 결과에 대한 승복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반사람들은 아마도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큰 요소가 “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단순한 논리로 생각하여 부동산은 돈으로 산다고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돈은 부동산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기초적인 요소일 뿐이다. 전쟁에서 돈은 총알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자는 총알이 많다고 승리하지 않듯 부동산에서도 돈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중요요소는 아니다. 부동산에서 투자하기 위해서는 돈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그 요소로는 돈을 포함하여 ‘정보’ 그리고 ‘타이밍’이다. 이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부동산 종목에 맞는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돈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기초적인 요소다. 부동산에서는 하나의 요소가 작용해서 성공하지 못한다. 문제는 3가지 요소가 적용 혼합되어야만 부동산의 높은 수익률을 가져 올 수 있다. 다시 말해 3가지 요소(돈,정보,타이밍)가 적절하게 잘 결합이 될 때 부동산의 가격에 영향을 주고 변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활용하여야 수익률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 중에서 돈에 대한 요소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돈 모으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사실이다. 왜 그럴까? 모두 다 돈 모으는데 목표를 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으기에만 최선을 다하고 관리하는데는 관심이 적다. 동일한 돈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의 결과는 하늘과 땅차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일까?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찾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돈도 모으기만 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수익률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 같은 1,000만원을 은행에 예금한 사람과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결과는 차이가 많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은행에 예금해 두면 된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우선 귀찮아 진다. 세금이 어쩌고 부동산 정책이 어쩌고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혼하는 배우자나 사회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은 얼마든지 선택하여 친하게 지내던가 그렇지 않던가 할 수 있다. 여기서 친구개념을 부동산 투자의 3요소 중 정보의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배우고 싶지 않으면 안 배워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교육을 받는다든지 친구를 만난다든지 결정은 자신이 100% 결정할 사항이다. 그러나 돈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결혼할 수 없듯이 돈도 벌고 싶다고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돈이나 결혼을 부동산투자 3요소 중 동일한 개념으로 정리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시말해서 돈이나 결혼은 100%로는 아니지만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잇을 것이다. 이에 비해 부모는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부동산은 사고 싶거나 팔고 싶어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모를 자기가 선택할 수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타이밍이야 말로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 할 수 있다. 필자는 “盡人事 待天命”이라는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다음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말로서 부동산에서 교육과 정보수집 현장학습 그리고 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후에 좋은 수익률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타이밍과 비슷한 개념으로 본다. 부동산 투자 3요소 모두 다 중요하다. 그러나 ‘타이밍’이라는 것이 ‘돈’보다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동산 투자 3가지 요소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하자. 이곳에선 우선 종자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추후 정보와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종자돈이란? 돈이 많은 부자들도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 종자돈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해야 목돈이 될까 수없이 고민하여 지금의 부자가 된 것이다. 종자돈이란 무엇인가? 농부는 내년의 알찬 수확을 위해 제일 좋은 씨앗을 모아둔다. 이게 종자(種子)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처음 시작은 종자돈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종자돈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특히 단순계산식의 수치 논리가 아닌 부동산에서는 종자돈을 보는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부동산에서의 종자돈에는 유형 및 무형 종자돈과 만족적 종자돈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떠한 종자돈이든지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이게 되는 종자돈이기 때문에 동일한 돈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첫째, 유형의 종자돈이다. 은행이나 적금에 들어 있는 돈을 말한다. 단순하게 은행에 있기 때문에 이자 이외의 것은 기대하기 힘든 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기종자돈을 만들 때 쓰는 방법이다. 이자이외의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데 많은 사람은 은행에 저금을 한다. 왜 그럴까? 아마 은행이라는 안정성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돈을 벌려면 안전성보다는 수익률을 절대로 무시하면 안된다. 유형의 종자돈은 가장 기초적인 종자돈이다. 이러한 종자돈을 만들려면 3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 수입보다 지출을 더 해서는 안되는 종자돈이다. 둘, 노동으로 번 유형의 종자돈을 70%는 반드시 종자돈으로 저축한다. 셋, 유형의 종자돈으로 모아진 것은 투자자금으로만 사용한다.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형의 종자돈은 이자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금융기관 이 곳 저 곳 이율이 높은 곳을 따라 이동한다. 그러나 유형의 종자돈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무형의 종자돈 또는 만족적 종자돈으로 반드시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유형의 종자돈은 그것으로 생명을 다할 뿐이다. 둘째, 무형의 종자돈이 있다. 이것은 현금은 아니지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종자돈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300만원을 가지고 있다고 보자. 은행에 넣어두면 유형의 종자돈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청약예금에 가입을 하게 되면 300만원의 종자돈은 아파트 청약이라는 보너스를 받게 되어 어떤 아파트에 당첨되느냐에 따라 유형의 종자돈 보다 몇 수십배 이익을 볼 수 있는 돈이다. 마찬가지로 청약저축에 월5만원씩 저축하여 24개월이 넘으면 그 청약통장에는 1백2십만원과 약간의 이자만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청약통장을 사용하여 아파트에 당첨되면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종자돈 효과는 투자금액의 몇 십배를 안겨다 줄 것이다. 불법이지만 판교 지역 40세 이상 무주택자 청약저축 통장 자체가 아파트 당첨 여부를 떠나 프리미엄만 1억원이 넘는 이유가 왜 그럴까? 무형의 종자돈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만족적 종자돈이 있다. 만족적 종자돈은 종자돈이론 중 중요한 부분으로서 동일한 종자돈을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종자돈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부자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부자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부자일수도 아닐 수도 있을 수 있듯이 말이다. 이처럼 만족적 종자돈이란 스스로가 부자라는 신념이 있을 때 부자가 된다는 이론과 동일한 개념이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종자돈을 모으려는 사람은 각별히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10년전 쯤 기억이다. 도봉구 우이동 S아파트를 가지고 있던 양모씨 이야기다. 우이동 아파트를 팔고 분당으로 이사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양씨였다. 그러나 31평 아파트 시세가 1억3천만원 정도인 S아파트는 아무리 많은 복덕방에 내놓아도 팔리지가 않았다. 위치로 보나 교통, 학군여건으로 보나 타 아파트에 비해 장점이 거의 없었던 아파트였다. 그러나 이렇게 고민하던 차에 아파트를 매입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단 조건이 아파트 가격을 5백만원이나 깍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로는 적은 금액이 아니어서 망설였다. 그러나 스스로 계속적으로 팔지 못해 고민하고 신경 쓰는 것보다 빨리 팔고 양씨 스스로 원하는 분당으로 가는 게 낫다 싶어 과감히 팔 것을 결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도리어 사는 사람이 원하는 금액보다 2백만원을 더 깍아 준 1억2천3백만원에 매매를 했다. 매입하는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 뒤 양씨는 우이동 아파트 판돈과 대출을 안고 분당 아파트 48평을 2억5천만원에 매입했다. 현재 분당 48평 아파트 시세는 6억원이 넘는다. 만약 양씨가 우이동 아파트를 계속 제값을 받으려고 고집을 부렸다면 분당의 아파트 매입은 고사하고 우이동 아파트마저 아직까지 못 팔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우이동 S아파트 31평 값은 1억 5천만원이다. 만족적 종자돈이란 스스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냐에 종자돈의 효력이 달려 있다. 매매가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31평아파트가 3억이면 어쩌고 5억이면 어쩌냐? 결국 돈으로 환금되지 않는 아파트는 아파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에 어떻게 만족을 하느냐에 따라 아파트 가격은 결정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친구 중에 좋은 아파트를 잘 사서 아파트 가격이 자꾸 올랐다고 매번 식사를 접대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계속 오르던 아파트는 외환위기를 맞이해서 폭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같이 먹었던 식사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만족적 종자돈은 자기가 어떤 만족을 하고 이를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또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아파트를 매매할 때 5억4천3백만원 중에 3백만원은 쉽게 깍아 준다. 그런데 4천3백만원 짜리 물건을 살 경우 3백만원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여 깍아 줄꺼라는 생각도 못한다. 동일한 3백만원인데 그 결과는 왜 그렇게 다르게 나타날까? 그것은 스스로가 종자돈을 대할 때 어떤 마음을 먹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족적 종자돈의 위력이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만족적 종자돈에는 종자돈 제곱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종자돈이 2의 제곱법칙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법칙이다. 2배,4배,8배,16배로 늘어가는 원리를 말한다. 종자돈은 금액에 따라 투자가치가 달라진다.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각 종목마다 최소한의 투자 금액이 있다. 토지가 평당 2만원이라고 해도 토지의 경우 평수가 크기 때문에 많은 돈이 투자된다. 아파트는 더욱 그렇다. 투자는 투자금액과 시간과 비례해서 수익률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파트는 최소 매입 후 2년 정도는 지나야 투자효과가 나타나지만 임야나 밭은 최소한 10년 정도를 보고 투자 하여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종자돈 제곱의 법칙이다. 다시 말해 한사람이 임야를 투자했다고 하자. 그런데 임야는 투자기간이 길어서 2년 정도의 기간으로는 수익을 높일 수 없다. 따라서 임야 같은 종목을 2년만에 팔았을 경우 투자 수익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므로 투자수익을 남기려면 최소한의 기간과 금액이 종합적으로 맞아 떨어져야 한다. 종자돈 제곱의 법칙에서는 투자금액과 기간을 적절하게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같은 금액을 같은 기간에 투자하였을 경우 나오는 수익률은 천차만별이고, 이를 시기적절하게 찾아내는 것이 종자돈 제곱의 법칙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 상기와 같이 필자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종자돈 제곱의 법칙을 부동산에 적용할 경우 100만원은 평균 373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종자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종자돈의 원리는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투자금액과 투자방법, 투자시기와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부동산 부자들은 종자돈을 만들고 종자돈 원리를 터득하여 종자돈을 키워왔다. 특히 부동산은 종자돈 키우는데 더없이 좋은 재료다. 따라서 부동산 부자들은 종자돈을 키우기 위해 처음에 목돈이 없어서 실전이 아닌 모의투자로 출발하였다. 모의투자를 하려면 현장을 자주 가야 한다. 현장에 가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그때 상황과 여건을 보아 모의투자를 실전과 같이 해 본다. 모의투자는 향후에 상당한 자료를 쌓아주고 실전보다도 좋은 경험을 준다. 돈 없어 아파트 투자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은 우선 종자돈 3,000만원부터 출발하자. 그리고 이를 기초로 부자의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출발하자. 부자는 열심히 찾는 자에게 찾아온다는 사실은 믿으면서 말이다.
2005.03.02 I 양은열 기자
  • (법원경매천하평정)나의 경매입문기
  • [우형달] 나의 경매입문기 몇 년 전만 해도 1억 원 만들기라는 제목의 책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어느 사이에 부자 기본 단위가 10억 원으로 높아져 버렸다.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는 10억 원은 고사하고 1억 원도 없고, 심지어는 전세보증금 5천만 원이 자산의 전부라며 낙망하는 분도 계신데 말이다. 나는 가혹하지만 부자의 기준을 좀더 명확히 제시하고자 한다. 막연한 10억 원이 아니고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 빼고, 그리고 부채 빼고 10억 원 정도는 있어야 비로소 요즘 유행하는 웰빙스런 삶이 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바보들중 하나가 집하나 달랑 가지고 있으면서 집값 올랐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무슨 말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설령 10억 원짜리 강남의 아파트라고 해도 이 집은 이미 자산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적어도 이런 생각이 타당하려면 적어도 다섯채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서라야 설득력이 있다. 이런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나라면 팔아서 5억 원짜리 같은 평수의 강북아파트로 이사 가고, 나머지 5억 원으로는 재테크 종자돈으로 쓸 텐데!’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또 하나, 부채도 제외해야 한다. 수중에 10억 원의 현금이 있지만 은행 부채가 10억 원 있다면 상계처리해서 현금자산은 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따져 보면 여러분의 대차대조표는 어떨까? ** 나 역시 가난했다 무일푼에 가까운 처지에서 IMF를 거치면서 짧은 기간에 오직 부동산 경매로만 오늘의 부를 어떻게 축적했는가? 인생역전을 가져다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정말 우연히(?) 시작한 부동산 경매에 대한 나의 생각과 투자전략, 철학을 가감 없이 보여드리며 낙찰사례도 소개하겠다. 게임은 끝나지 않아 결론으로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누가 언제 시작해도 지지 않은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경매를 통한 부동산 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환희의 순간도 있었고, 몇천만 원이라는 거금의 입찰보증금을 날려야만 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이 본인의 실제 투자사례인가 아닌가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유는 자신의 투자사례나 명도 경험은 단 한차례도 없이 오로지 책상과 인터넷의 산물로 투자현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공허하기 짝이 없는 부동산 경매투자서가 재테크 비법을 전수하는 관련 서적들이라고 오늘도 유명 서점 진열대를 꽉 채우고 있는 현실에서, 내 돈 싸들고 경매판에 뛰어들어 조사·분석하여, 응찰하여, 낙찰 받고, 잔금내고, 명도하여, 부동산을 차지한 다음 처분(임대나 매각)해서 수익을 올린 생생한 투자 체험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벌써 10년이 지나갔다 부동산 경매시장을 처음 경험한 것이 1994년 말이었으니 벌써 10년 이상이 흘러갔다. 처음부터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여 투자하겠다는 야무진 각오가 있어서라 아니라 뒤늦게 입사한 곳이 경기도 성남에 있던 모상호신용금고였다. ‘뒤늦게’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것이 1990년 2월 이었는데, 공부를 좀 더하고 싶어 4학년 때부터 유학을 준비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동경으로 가서 약 3년여의 유학생활을 하였는데, 너무 가난했던 일본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 너무나 가난했던 일본유학시절 춥고 배고팠던 동경시절 이야기 하나만 하자면, 유학 생활 거의를 동경 나까노구(中野區)의 와까미야(若宮)라는 곳의 조그마한 아파트(다다미 4.5장짜리 실평수 3평정도)에서 살았다. 한 층에 공동 화장실이 한개 있던 주택으로 동경의 여름은 길고 높은 습도와 무더운 날씨로 에어콘 없이는 생활하기가 힘들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샤워를 해야 하는데 동전샤워장에는 갈 돈도 없고, 아까워 가지 못하고 집안 싱크대 수도꼭지에다 조그마한 호수를 연결하여 최대한 약하게 물을 틀고는 싱크대 안에 올라가 샤워하는 식의 생활이었다. 아파트에서 역(高円寺驛)까지는 자전거로 10분 정도를 가서 전철을 타고 학교를 가는데, 어느 하루는 역에 도착해서 전철패스(1개월 정기권)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천천히 생각해보니 전날 정기권이 1개월이 다되어 검색기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학교까지 일반권으로 가려면 130엔이 있어야 했는데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70엔 뿐이었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무료티켓을 하나 받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내리는 비와 함께 한없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마침 그날은 쌀까지 떨어져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학교 가서 교수님한테 밥값을 얻어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3년 내내 거의 그런 생활이었다. 참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생의 또 다른 밑받침이 되고 있다. * 무슨 인연으로 경매를 시작하게 되었나 그런 동경생활을 3년 넘게 버티다 경제적으로 기력이 완전히 소진하여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어 내 인생에서 공부는 끝났다고 체념하고 귀국해서 입사한 곳이 성남의 모 신용금고였다. 하는 일이 고객의 이자·원금 밀렸으니 언제까지 송금해 주세요, 채무자가 시간 없다면 직접 받으러 가고, 또 연체상태가 심한 경우는 담보로 잡아놓은 부동산을 경매 넣는 일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경매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게는 두 분의 인생 은인이 있다. 그 중 한 분이 이 시절에 내게 경매공부를 권유한 직장 상사이다.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없이 포기하고 돌아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 직장에서의 업무는 단순한 회사의 일로만 여겨졌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일을 아무리 오래 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고 배우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경매공부 부동산 경매와 관련된 일을 나름대로 하면서도 내공을 쌓지 않고 업무로만 익숙해지며 회사를 다니기 2년 정도 될 즈음에 나를 아껴주던 직장의 상사가 어느 날 “우계장 경매공부를 한번 해보지!”라고 지나가는 듯 한마디 하셨다. 이처럼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가 천상에서 들려오는 신의 복음처럼 내 머리를 때렸고 “어떻게 공부하면 되나요? 방법을 알려 주세요” 하면서 신천지 경매세계로 뛰어 든 것이 1996년도였다. 그렇게 시작한 부동산과 경매공부가 그렇게 즐거울 줄은 정말 몰랐다. 기본적인 법률공부, 권리분석, 수익률분석, 물건분석 요령, 임차인에 관한 사항 등 공부하다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심지어 새벽 두세 시에도 자다 일어나 성실하게 응대해준 상사가 있었기에 오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감사하다. 처음 부동산 경매공부를 권하면서 상사가 권해 준 경매 서적이 『당신도 이틀이면 경매박사』(강현구 지음, 매일경제신문사)였는데 최소한 30번은 읽어보라고 하던 일이 바로 어제 일 같기만 하다. 이렇게 나에게 지나가듯 다가온 부동산 경매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도구가 되었고, 내가 부동산에 입문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 인생역전의 계기가 왔다 본인이 처음 경매법원에 다니던 시절은 호가제와 입찰제가 병행되던 시절로, 아직은 호가제가 주류였던 시기였다. 호가제란 원하는 물건이 진행되면 응찰자들이 집행관 앞으로 나가 구두로 가격을 올려가면서 응찰하여 더 이상 응찰자가 없으면 그때까지 최고가격을 제시한 사람에게 낙찰시키는 방법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 농수산물 도매시장이나, 동산 입찰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되는데,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경매에 투자하기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요즘처럼 여성들이 법원경매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럼 누가 응찰했는가 하면 극히 한정된 꾼(?)들만의 잔칫집으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상시로 벌어지면서 경매꾼들에게 떼돈을 벌어주었다. 경매꾼들만이 잔치집이라며 일반인들은 꺼리던 그곳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부동산 경매가 인생역전의 전환점을 가져다주리라고는 공부시작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회사 모르게(?) 아르바이트 생전 처음 낙찰 받은 물건이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에 있는 대지 면적이 20평이고, 건물은 반지하 1층 지상 2층 단독주택이었다. 지금 성남 구시가지 재개발 논의가 한창 뜨거운 지역의 물건으로 당시 감정가격이 8천500만 원 정도였는데, 3회 유찰로 4천352만 원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4천620만 원에 응찰하였는데 결과는 단독이었다.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비용과 1층에 살면서 보증금을 날린 임차인에게 이사비용으로 준 200만 원을 합해 총 5천여 만 원이 들어갔다. 이중 2천만 원은 잔금융자를 받았으니 실제로 투자된 내 돈은 3천만 원 정도로 소유권을 취득한 다음 전체를 전세로 임대한 내용을 보면 지층은 보증금 1천500만 원, 1, 2층은 각 3천만 원으로 총 7천500만 원이 회수되었다. 이 물건처럼 회사에 근무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낙찰 받은 물건이 총 4건이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낙찰 받는다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비밀(?)에 붙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서서히 부동산 경매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되었고 자립의 기틀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었다. 이 물건은 전세로 임대하고 있다가 경기도 성남 구시가지가 개발 열풍에 휩싸이던 2002년에 1억 2천500만 원에 매도처분 하였다. * 실직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1997년 말에 몰아닥친 IMF 한파로 다니던 금융회사가 부도나기 일보직전에 실시한 명예퇴직을 자진신청하면서 조직(회사)생활 4년 만에 실직자가 되었고, 차라리 잘 되었다고 판단하고 경매에 전념하기로 작정하고, 집사람과 퇴직하기로 합의하고 이틀만에 사표를 내고는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경영기술개발원’이라는 곳에서 노동부 고용실업급여를 받으며 고급 이론무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경매세계에 뛰어 든 것이 1998년부터였다. 당시 함께 명퇴를 신청했던 동료가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는데 송별회식장은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였다. 그때가 J모 은행의 눈물비디오가 TV에 방영되던 시기였다. 경매투자 시작 당시 수중에는 퇴직금 포함해서 투자가능 총금액이 3천100만 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부터 가난하기도 했지만 다니던 회사 3층에 모 증권회사 지점이 있어, 그곳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날린 돈이 4천여 만 원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당시 우리 회사 직원들 중 주식으로 까먹은 금액이 내가 가장 작았다는 점이다. 주식에 손 안댄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 경매 시작 당시 경제·사회분위기 정상화되면 다시 받아주겠다던 신용금고는 퇴직 얼마 후 회사도 부도처리 되었고, 올데갈데없어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경매에 뛰어들 때는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도 했지만, 당시 사회분위기는 부동산을 가진 것 자체가 더없이 고통스럽고, 적어도 이 땅에서는 부동산은 더 이상은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염세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었다. 미달러 대비 환율은 2천 원을 넘었고, 은행이자율은 30%에 육박했으며, 대통령은 TV에 나와 하루라도 빨리 외환위기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하고 그것에 동참해서 착한 국민들은 몇 시간씩 긴 줄을 선 다음에도 아무런 군말 없이 금 모으기에 동참하던 시절이었다. 신문이나 방송에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경제코너 기자님들과 언필칭 전문가를 자칭하는 일부 부동산 점쟁이들은 이 나라에서는 부동산은 더 이상 재산증식 수단이 아니라 애물단지일 뿐이라고 침이 마르게 떠들던 시절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하에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단군 이래 초유의 부동산가격 대폭락을 목격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의 재테크수단이 아니라고 아우성치는 기사들을 읽으면서 착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맞아”, “그래 정말이야”, “부동산은 이제 끝이야!”라고 중얼거리던 시절이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 당시 전체 분위기는 부동산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이런 시절에 부동산 경매는 권할만한 재테크 방법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많은 돈이 있던 것도 아니고 가진 돈이라고는 3천100만 원이 전부인 종자돈을 몰빵 치는 심정으로 남들을 경매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을 때 본격적으로 경매를 시작했다.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던 당시 경매시장을 잠시 들여다보면, 고리사채도 아닌 은행이자율이 연 27~30%에 육박하자 파산에 빠진 경매물건이 폭증하는 바람에 자고 나면 법원경매계가 하나씩 생기는 판이었고, 인천·수원지법의 경우는 경매계가 23~25계까지로 늘어나 공휴일·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경매가 진행되었고, 하루에 진행되는 물건이 200~250여건에 이르렀다. 서울 시내 크고 작은 빌딩들이 외국계 투기 자본에게 속속 소유권을 강탈당하던 가슴 아픈 시절로, 부동산 매매시장은 종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최고 반토막 난 것들도 허다했고, 부동산 경매시장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서울 남부법원에서 진행된 목동의 40평형대 로열층 APT가 감정가격이 2억 2천만 원에 형성되어 2차 유찰은 기본이고, 심지어 3차 유찰되어 감정가대비 51%(1억 1천200만 원)에서 55%(1억 2천100만 원)에 응찰하면 경쟁률은 높아야 3대 1이면 낙찰 받을 수 있었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감정가 1억 8천여 만 원 짜리 분당의 32평형 로열층 아파트가 2차례 유찰되고 3차에서 1억 2천만 원 정도 쓰면 너끈히 낙찰 받던 시절이니, 다른 물건들은 어땠을까는 쉽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것이 2002~2003년의 부동산 폭발장세를 맞아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의 경우 현재는 평당 매매가가 대략 1천500-1800만 원 선으로 약 6-7억 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분당의 경우는 5억 원 전후에 거래가 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자체만 보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을 규제하겠다는 것과 금융측면을 보면 은행의 금리가 낮다는 것 정도가 당시와는 차이라 할 수 있다. ** 그 동안의 투자실적은 3천100만 원으로 시작한 부동산 경매 건수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개인적으로 낙찰 받은 것이 15개이고, 동업자와 공동으로 투자한 것이 15건, 법인과 펀드로 투자한 것이 20여 건으로 총 50여 건에 이른다. 이 중에 IMF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99~2001년 사이에 낙찰 받은 20여개 물건들은 현재 원금대비 최소한 2배에서 많게는 6배까지 부풀어 올라 있는데, IMF 당시 나는 권리분석이 좀 복잡하고 세입자가 많아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다가구주택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는데, 그래서 본인이 ‘다가구 전문’으로 소문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실제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감정가격 3억 5천만 원짜리 마포구 망원동 소재의 대지 47평,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20여 평으로 총 9가구의 세입자가 들어있던 다가구주택이 3차 유찰되어 감정가격 대비 51% 상태인 1억 7천800여 만 원에서 2억 1천300만 원에 입찰하여 경쟁률 6대 1로 낙찰 받아, 선순위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인수한 금액 빼고, 이전비와 공사비 합해서 총 투자금액이 2억 4천 500만 원 정도 들어갔는데, 전세로 회수한 보증금만 3억4천만 원을 받았다. 임대만으로 1억 원 정도를 더 확보하는 식으로 재산을 불려 왔다. 지금 생각해도 뭘 믿고 홀로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왔는지 지나고 보니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결과를 가지고 출발점을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가 말이다. 남들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해 난리법석을 떨던 시절에 낙찰로 부동산을 사들이겠다는 돈키호테 식 발상은 신념과 확신이 있어 가능했다. ** 경매투자 이력서 * 시작(1994년)부터~1998년(IMF로 회사퇴직)까지 이 때는 경매를 접하고 배우던 시절로 회사 업무에 충실하여 그다지 본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식투기로 돈 까먹는 줄 모르고 허송세월 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경기도 성남의 구시가지에다가 낙찰 받은 20평지 구옥 두 채를 낙찰가의 거의 세배 가격에 매매했다는 것으로 공부에는 확신을 가졌지만 투자로는 재미를 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 1998년 퇴직부터 ~ 2002년 월드컵 개최 시까지 솔직히 말씀드려 내가 평생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놓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비장한 호들갑이 전국을 덮고 있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부동산 경매시장에 투자한 사람치고 재미 보지 못한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본인의 경우도 이때 낙찰 받은 물건들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당시는 이자율이 높아 경매물건은 넘쳐나도 낙찰 받는 사람들은 미친놈(?) 취급당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미친놈 취급하던 분들이 그러나 지금은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하고 있다. * 2003년부터 현재까지 개인적인 투자와 법인 및 펀드 물건을 구분해서 입찰에 임하고 있다. 1억 원 전후의 물건이나 오래 버티기를 해야 하는 경매물건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낙찰 받아 장기전으로 임하고, 덩치가 큰 물건이거나 수익용 부동산의 경우에는 법인이나 펀드를 구성해서 입찰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현재 상황을 보면 수익률이나 우량물건이 IMF 때보다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 이후 부동산 경매시장 전망 부동산 시장의 가격전망에 대한 영역은 귀신도 모르는 부분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아 장래를 예상해 본다면 적어도 2006년 말까지 경매시장은 다른 어떤 시장보다도 수익률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이유로는 부동산시장과 경매시장의 서로 연관된 특성 때문이다. 부동산매매 시장이 나빠지면 경매시장은 구조적 특성상 약 6개월 후부터 감정가격이나 낙찰가격이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현재는 참여정부의 10·29 규제정책으로 불황(부동산매매시장은 2005년 말까지 지금 같은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음)국면을 지나가고 있다. 본격적인 회복국면을 2006년 초로 본다면 그 1년 뒤인 2006년 말까지는 부동산 경매시장은 다른 어떤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할 것이다. 다만 현재 과열되고 있는 경매시장의 일부 ‘토지’는 이 전망에서 제외해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고 좀더 쓰겠습니다. 나의 책 초고라는 점을 미리 밝히며, 제가 이글을 올리는 것은 자랑을 하려고가 아니고 부동산투자는 장기에 걸쳐서 평생하는 투자여서 당장의 어떤 상황에 너무 민감해하지 마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5.02.23 I 우형달 기자
  • (부동산레이다)지금 강남아파트를 사야하는 이유②
  • [양은열] 첫째,10,29 부동산 대책의 피해는 대부분 서민용 아파트였다는 사실이다. 10,29부동산 대책의 대부분은 부자를 향한 정책들로 이루어졌다.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 주택거래신고제,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이루어진 정책의 화살은 결국 서민에게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강남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아파트를 움직이지 않는다. 1가구 3주택 중과세 도입하면 정부의 의도대로 부자들은 아파트를 팔고 소유 주택을 축소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이 바뀔 때까지 보유하고 세월을 낚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10,29부동산 대책은 서민용 아파트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에 거품이 있었다면 서민의 아파트였단 말인가? 필자는 과거 10,29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 많은 부분을 우려 했다. 그 중에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을까 였는데 돌이켜 보면 예상했던 대로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세금위주의 부동산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왜냐하면 부동산에 있어서 세금은 결국 약자가 뒤집어 씌기(?) 때문이다. 둘째, 저변에 깔려 있는 ‘강남불패 신화’의 신뢰감이다. 부동산시장은 정부의 가격안정 대책이 나오면 잠시 가격이 주춤거리다가 다시 재상승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단기적인 대책이라면 효과도 일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10,29 부동산 대책의 약발의 효과는 너무 커서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택거래신고제,재건축개발이익환수제,종합부동산세등 굵직한 정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에 영향은 막대했다. 그러나 기간이 1년을 넘기고 나니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정책 보완으로 선회하기에 이르렀다. 강력한 정책도 길어봐야 1년6개월을 넘지 못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모르핀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모르핀 효과는 먼저 투자자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이미 정부 정책에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 대책에 중독이라도 된 듯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는 지역과 상품으로 발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아파트를 잡으니 토지로 도망가고 토지를 잡으니 농지로 이동한다. 투자자뿐만이 아니다. 또다시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 강남의 집값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강남 집값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강남 불패 신화"에 빠져 들고 있다. 강력한 10,29 부동산 대책 영향도 강남의 재건축 시장을 빼고는 영향이 미미했다.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이 강남 집값을 계속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생각할 수 없는 서민들조차 "더 강력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한다. 정책의 변화로 잠실 등 사업승인 난 저밀도 아파트 단지 내 가격이 한달여 사이에 5천만원 오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들이 느끼는 강남불패 신화는 절대적으로 변화되었다. 정부로서도 고민이 될 것이다. 계속되는 처방에 대한 효과가 시장에 반영 되어 해당 시장이 죽어 가면 부동산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간다.강남의 부동산시장은 "메커니즘"을 갖는 정상적인 시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책당국은 좀더 생산적인 곳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돈의 흐름을 바꾸는 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과 기업이 건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자금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이런 밑바탕 위에서 정부는 일관성 있는 시장 정책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정부를 믿게 될 때 부동산시장 안정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정부는 투자자들의 발을 묶어 놓기엔 웬지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셋째, 계속적인 저금리 현상이다. 계속되는 콜금리 인하는 실물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경제가 연착륙을 할지는 의문이지만 부동산에는 호재로 계속 남아 있다. 이러한 저금리가 2007년까지 갈 것으로 본다면 이자율 3%대로는 금융소득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투자수익률 측면에서 외면단계에 와 있다. 지금의 부동산 펀드로 부동자금이 몰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저금리는 부동산 급등의 한축인 것은 확실하다. 과거 미국의 금리도 6~7%대에서 1%대까지 급락한 것은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금리를 왜 내리는 걸까? 물론 다양한 경제 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쉬운 논리는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다. 거꾸로 보면 경기가 살아난다고 했을 때 금리는 지속적으로 오른다고 봐야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당분간 국내경기가 아직 회복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금리 상승에 대해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금리와 관련이 있을지 는 몰라도 꼭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동산은 경제 원리로 풀지 못하는 비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간혹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발표하는 통계는 참고할 수 있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희박한 확률게임에 불과하다. 부동산은 사용가치요소 및 투자이익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우연히 토지가 용도 변경이 된다든지 개발계획이 발표가 된다든지 할 때마다 엄청난 자본 이득이 생겨난다. 이자율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이익을 창출해 내니 투자자가 몰릴 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부동산은 외환위기 이후 3년도 안 되어서 부동산 가격이 극복됨으로써 일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저금리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경우 정책에 의해 하락된 부동산의 가격은 상당기간 유지 또는 가격 조정을 거친 뒤에 또다시 상승할 거라 예상이 된다. 넷째, 10년 주기설 과 5년 중주기설이다. 강남 불패론을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가 ‘10년 주기설’과 ‘5년 중주기설’이다. 부동산이 호황기는 경기흐름상 10년마다 대세상승이 찾아오고 그 중간에 5년마다 선거와 개발에 따라 아파트 상승기가 온다. 과거 예를 들어보면, 1960년대 말과 70년대 말,80년대 말, 90년대 후반과 2000년말 부동산값은 여지없이 상승했다.과거 60년대 초 강남 땅값은 한 평에 90∼120원이었지만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완공되면서 크게 개발될 것이라는 소문에 말죽거리(현 양재동) 일대 땅값이 평당 4,000∼5,000원으로 올랐다. 당시는 외자도입 덕에 시중자금도 풍부했다. 그리고 77년 초부터 79년 2월까지를 보면 부동산이 급등했음을 알 수 있다. 70년대 중동 특수에서 번 돈이 시중에 넘치면서 집값, 땅값이 급등했다. 88년부터 시작된 세 번째 부동산값 대상승은 91년 5월을 정점으로 꺾였다. 3년간 전국 아파트값은 평당 평균 280만원에서 727만원으로 160%나 올랐다. 같은 기간 강남은 332만원에서 1,017만원으로 206%나 상승했다. 3저(저유가·저금리·저환율) 활황의 결과였다. 그리고 네 번째는 2001년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불붙기 시작한 아파트값 대상승은 계속이어져 가고 있다. 엄청난 부동자금이 부동산에 몰렸다. 90년대 말에 대상승이 나타나지 않고 2000년대로 넘어온 것은 98년 IMF 경제위기를 겪느라 순환주기가 1∼2년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5년 중주기설로 보면, 83∼84년과 95∼96년이다. 경기부양에 따른 통화팽창으로 부동산값이 상승했다. 따라서 5년,10년 주기설에 따르면 2006년초와 2010년초에 또다시 부동산이 폭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32평아파트가 10억원이 되는 시기가 왔다. 우리나라 은행대출 관행을 보면 감정가에서 전세를 빼고 대출을 해주고, 대출한도 또한 전체 실거래가의 50%를 넘지 못하게 제한을 두었다. 과거 일본의 100%이상의 대출과는 전혀 다른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에서 우리나라만 특별히 존재한 제도가 있다. 전세라는 제도 인데 서방국가의 모기지론과 상응되는 제도다. 또한 서울의 경우 대출할 경우 무조건 방 1개에 1,600만원을 뺀다. 따라서 매매가에 대비하여 부동산 대출시 절대로 50% 이상은 대출받기가 어렵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 하더라도 급격히 50%이상 가격이 빠지지 않는 한 금융대란은 오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지금과 같은 강남권 아파트 규제책이 지속될 경우 32평 중산층 아파트가 10억원이 되는 날도 멀지 않음을 감각적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버블의 징후로 보는 성수기때 인기지역 아파트 가격 하락, 소비자 지수 계속적인 하락, 매도우위 지속, 인터넷상 실거래가격 하락등이 버블의 징조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경제는 부동산 안정 대책이전부터 어려움이 계속 되어 소비자 지수는 계속 하락을 유지했고, 10,29 부동산 대책이후로 투자자들이 주춤하는 사이 급매물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할 것인가? 인터넷상의 가격은 믿을만한 것 보다 참고사항일 뿐이다. 언제나 시세는 변동이 있기 마련이고 최고가와 최저가 사이의 가격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요즈음의 인터넷상의 가격은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세금조사나 양도세관련 기준을 피하기 위해 실거래 가격보다 더 높게 제시하는 가격이라 신뢰하기 힘든 부분이다. 일곱째, 국민소득으로 보는 부동산 버블 기준이다. 우리나라 4인가족 가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민주택규모(32평아파트) 주택을 구입할 경우 7.5년이 조금 넘는다. 만약 현재 우리나라 1인당국민소득이 1만달라라고 할 때 한가정의 국민소득 총액은 4만달라, 약 4,500만원이 된다. 4,500만원을 매년 모아서 7.5년간 아파트를 사는데 투자했다고 했을 경우에 3억3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만약 거품이 있다면 4인가족 전원이 각자 자신의 1인당 국민소득을 전부 투자 했는데도 아파트를 살 수 없다면 아마도 거품의 징조가 아닐까?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평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라의 기준은 어느 지역으로 볼 것인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울산같은 도시는 이미 2만 달라를 넘긴지 오래다. 따라서 평균치로 본다면 부산, 대전과 서울의 경우 강북이나 강서 지역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만약 강남의 경우는 1인당 국민소득은 얼마로 잡을 것인가? 예시로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라로 잡는다면 32평아파트 가격은 10억원이 넘어야 버블의 징조가 보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덟째, 출산율과 베이비붐 시대. 1990년대 우리나라가 부동산이 급등한 요인중의 하나가 60~70년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시기가 되었고,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누렸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에는 부동산이 실수요 및 공급부족으로 인한 충분한 실거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이붐 시대를 지나고 현재의 출산율을 보면 2004년 말 기준으로 1,17명으로 급락을 하게 된다. 따라서 베이붐시대 와는 달리 출산율의 저하로 주택이 남아돌게 되어 결국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거라는 예상이다. 필자도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출산율은 떨어지는데 홀로된 가구수는 년간 20%씩 늘어 난다는 것이다. 결국 나홀로 가구가 늘어 난다는 것이다. 이혼과 독립, 직장과 학교의 거리상 가족과 떨어지게 돼 출산율보다도 몇 배 높은 나홀로 가구가 급증하는 것이다. 결국 임대사업이 호황을 누리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에 준비 하는자는 부동산을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의 아파트값은 ‘백약이 무효’라고 한다. 왜냐하면 공급은 없는데 수요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수요를 막는 방법은 어떠한 규제나 정책보다 아파트를 원하는 매입자에게 무제한 공급을 하는 길 밖에 없다. 공급할 수 있는 지역으로는 이미 신도시가 확정된 판교는 물론 청계산 지역과 헌인릉지역, 과천 서울대공원 및 경마장지역 그리고 송파나 강동등의 단지를 택지 개발 단지로 몇 십년을 계획하여 꾸준한 공급을 이룬다면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상당부분 조정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꾸준히 이끌어가는 정부의 의지가 있느냐가 몇 배 더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도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규제 일변도 정책을 펼친다면 공급부족으로 인해 강남 아파트 32평 값이 10억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들 특히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 알았으면 한다.
2005.02.01 I 양은열 기자
  • (미국의 부자들)집이 좋다
  • [뉴욕=edaily 안근모특파원] 최근 몇년새 미국의 모기지 이자비용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대폭 줄었고, 집값은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미국의 부자들 사이에는 집 두 채 갖기가 유행처럼 번졌다.이는 다시 집값 상승의 원동력이 된다. 미국부동산협회에 따르면 `1가구 2주택`이 지난 2003년 한 해 동안에만 총 44만5000호 늘었다. 2년전에 비해 24%나 증가한 것.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1가구 2주택`으로 재미를 본 미국의 부자들이 이제는 `세째 집`을 사는데 열중하고 있다. 주식시장 방향성이 점차 애매해 짐에 따라 투자주택 수를 늘리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게 월지의 설명. 워싱턴 DC에 사는 58살의 치과의사 제이 리버만 씨는 스키별장으로 집을 사 둔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지난해말 집 한 채를 더 샀다. "순수하게 투자를 위해서 세째 집을 샀다"는 그는 이 집을 임대용으로 굴릴 계획이다. 이미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2주간 임대가 나갔었고, 이달에는 선댄스 영화제 손님들이 예약을 해 둔 상태다. 뉴욕시에서 부동산소개업을 하는 에스터 뮬러 씨는 지난 한 해 동안 알선한 `세째집`의 수가 두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주 고객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 뉴욕의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플로리다의 햄프턴스와 팜비치 두 곳이다. `뉴욕-햄프턴스-팜비치`를 엮어서 `럭셔리 트라이앵글(Luxury Triangle)`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 큰 부자들은 이미 이들 두 지역 모두에 집을 한 채씩 사뒀다는 것이 뉴욕 부동산 업자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풍조가 중간급 부자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맨하탄모기지社의 상담역 새리 사델 로젠버그는 요즘 세째집을 찾는 사람들의 평균 재산규모가 300만∼500만달러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회사 사장이나 중역급은 아니지만 소득이 꽤 되고 저축도 상당한 수준으로 했으며,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서 분가시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뉴욕지역의 부동산 업체들이 플로리다의 부동산 업체들을 인수합병하거나 제휴를 맺는 등의 움직임까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투자목적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은퇴후 생활을 즐기려는 사람이라든가, 친지들과 가까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집을 더 사두려고 부동산 업자를 찾는다. 세째 집을 사는데 걸림돌이 있다면 모기지 비용이 더 이상 소득에서 공제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미국 세법은 1가구 2주택까지만 모기지 이자 지불액을 과세대상 소득에서 제외해 준다. 집 세채를 일일이 관리해야 한다든가, 휴가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오로지 둘째나 세째 집으로만 휴가를 가야한다는 점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무엇보다 일부 부자들은 `그 많은 돈을 주택이라는 단일 자산에 몰아넣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고민하고 있다. 학교 교장을 마치고 은퇴한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수전 스텔라 씨의 경우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집과는 별도로 뉴욕 맨하탄의 아파트를 또 살 계획이지만, 2,3년 뒤 맨하탄으로 이사한 뒤에는 롱아일랜드 집을 팔려고 한다. 그녀는 "집 두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5.01.11 I 안근모 기자
  • (홍정민의 `부자는 돼지꿈만 꾼다`)고관대작형과 자수성가형 유학
  • [edaily 홍정민기자] 최근 이기준 신임 교육부총리 장남의 국적 포기 논란이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부 고위 공직자 임명 때마다 여지없이 자녀들의 국적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일겁니다. 이들의 자녀 대부분이 청소년기부터 외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외국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한데서 빚어진 현상입니다. 이제 해외 유학은 사회 고위인사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8학군` 물결을 따라 너도 나도 강남으로 이사를 가던 시절도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특수목적 고등학교에는 외국 유학 대비반이 갖춰져 있고 상당수가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모나 자녀들이 강 아래가 아니라 바다 건너를 바라보고 있는거죠. 부자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부자들 사이에서 자녀 유학이란 이미 으레 밟는 자녀 교육과정의 수순이 돼버렸습니다. 은행 PB센터 고객들의 대부분이 자녀를 유학보냈거나 유학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가는 경우가 가장 많고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MBA 등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상당수입니다. 부자들이 자녀를 유학보내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월등한 교육여건을 경험함으로써 보다 넓고 트인 사고를 갖게 해주자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또 글로벌 네트워크와 경험을 축적해 사회인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도 있구요.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생활에 있어 외국어는 물론 외국 생활 경험까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축적한 양적인 부 외에 `해외 유학`이라는 번지르르한 간판으로 질적인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불순한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부자라도 출신성분(?)에 따라 유학을 보내는 비율이 다르다고 합니다. 교육열의 차이 때문인데요. 집안이 대대로 부유한 `고관대작형` 부자들은 지식교육보다 가정교육에 주안점을 둔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부(富)란 늘 있어왔던 것으로 `신분 상승` 보다는 `자산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공부는 잘 하지만 성격상 문제가 있거나 사회성이 부족할 경우 집안 재산을 쓸데 없이 탕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들에게는 더 크다고 합니다. 좋은 학교나 화려한 간판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에 비해 덜 비중을 두고 있고 자녀 유학률도 당연시되는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해 부와 명성을 축적한 `자수성가형 전문직`, 혹은 `벼락부자`의 경우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상당히 높습니다. 자신들이 밑바닥부터 경험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고등교육을 통해 탄탄한 기반을 쌓고 보다 높은 곳에서 시작하기를 바라는 거죠. 때문에 대부분의 자녀들이 조기유학을 갔거나 대학교육을 마친 후 유학해 학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처럼 학업에만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 은행 PB센터 관계자는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대대로 부자인 집안보다 학벌이나 학업성적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아 자녀들의 인성교육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녀의 실력이나 능력이 기대에 못미칠 경우 부모들의 실망감과 상실감도 상당해 자녀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귀뜸합니다. 어쨌거나 부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학은 대세입니다. 강을 건너고, 바다까지 넘어서는 교육열과 신분상승욕구는 부자나 서민이나 다 같은 모양입니다.
2005.01.07 I 홍정민 기자
  • 美 회계부정 스캔들 연루 CEO, `재판 속개`
  • [edaily 오상용기자]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부정비리와 관련된 재판이 새해 벽두부터 줄을 잇는다. 회사돈을 빼돌려 사치를 일삼았던 타이코인터내셔널 전 경영진의 2차 공판과 회계부정에 연루된 헬스사우스의 전 CEO, 지난 2002년 미국을 뒤흔든 월드컴 CEO의 공판이 내년 1월부터 잇달아 열린다. 여기에 엔론 회계 스캔들 주역들의 재판도 계속 진행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제이콥 프렌켈 변호사는 "올해는 마사스튜어트리빙옴니미디어의 마사 스튜어트 회장의 유죄평결과 아델피아 커뮤니케이션의 리가스 부자의 유죄평결을 제외하고는 굵직한 판결이 없었다"면서 "부정혐의로 기소된 CEO들의 재판은 내년초부터 다시 줄을 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으로 사치의 진수를 보여줬던 타이코인터내셔널 전 경영진들의 공판. 데니스 코즐로스키 전 CEO와 마크 스워츠 전 CFO는 회사돈 6억달러를 횡령하고, 회계를 조작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회삿돈으로 호화 파티를 열고 고가 생활용품을 사들이는 등 사치를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코즐로스키는 아내 생일잔치를 위해 100만달러어치 샹들리에를 회사돈으로 사들였고, 스워츠는 자녀들의 사립학교 학비를 회사돈을 유용해 충당했다. 이들은 또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과 1만5000달러짜리 우산 보관용 스탠드까지 회사공금으로 구입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의 2차 공판은 내달 1월 18일 열린다. 앞서 지난 4월에는 타이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에게 `강압적인` 내용의 편지가 발송된 사실이 드러나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담당판사는 재판을 무효화하고 재판일정을 새로 진행하는 미결(Mistrial)선언을 내렸다. 타이코 공판이 열리는 18일 뉴욕 연방법원에선 월드컴 전 CEO인 버나드 에버스 쥬니어의 공판도 열린다. 월드컴은 110억달러에 달하는 회계조작으로 투자자들과 거래은행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타이코 공판에 앞서 1월 5일에는 건강의료업체인 헬스사우스의 리차드 스크루쉬 전 CEO의 공판이 예정돼 있다. 헬스사우스의 설립자이기도 한 스크루쉬는 27억달러에 달하는 회계부정을 저질러 주주들에게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27일 CNN머니는 "이들 CEO들은 한결 같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4.12.28 I 오상용 기자
  • (미국의 부자들)또 다른 주택투자, 폐교
  • [뉴욕=edaily 안근모특파원]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시골에서는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 문을 닫는 학교가 줄을 잇고 있다. 관리할 돈도 철거할 돈도 없는 지자체에게는 여간 골치덩이가 아니다. 그러나 주택 투자로 한 몫 단단히 챙긴 미국의 부자들에게는 시골의 폐교(廢校)야말로 새로운 투자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값이 상당히 싸다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땅덩어리가 상당히 커 쓸모가 많고, 대부분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은 대체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는 용도변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고 일부는 세금혜택까지 주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실수요자가 없다면 죽은 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최근에는 주거나 상업적인 용도로 폐교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진다. 최근 로스엔젤레스타임즈지에 소개된 아처트씨 부부는 `색다른 주거지`로 폐교를 선택한 사례. 1학년 교실은 안방으로, 여학생용 라커룸은 샤워실로, 6학년 교실은 땔나무 창고로 쓰고 있다. 아처트 부부는 시애틀 외곽에 위치한 3만 평방피트 규모의 이 학교를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단돈 2만5000달러에 구입했다. 부인인 구엔 아처트 씨는 "2만5000달러가 혹시 계약금을 얘기하는 게 아닌지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폐교에 살기로 작정한 것은 번잡한 도시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 밖에는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흔한 맥도날드 햄버거도 이 곳에서는 한 시간을 달려 나가야 먹을 수 있다. 올해 35살로, 녹음장비 만드는 일을 하는 남편 올리버 아처트 씨는 "시애틀에 있을 당시 우리는 단지 존재했을 뿐이었지만, 여기에 온 뒤로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10여개의 폐교가 이베이에 매물로 나왔고, 지금도 7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엔진 매매업을 하는 캔사스주의 수잔 아자렐라 씨(33세)는 인구 210명에 불과한 맥크래큰시의 폐교로 회사를 이전했다. 비용절감 효과가 하도 커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피닉스시에 있을 당시에 비해 토지 비용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땅 크기는 세배로 넓어졌다. 그래서 기존 사업은 중학교 건물에서만 하고, 초등학교 건물에서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베이를 통해 두 건물을 사는데 든 돈은 4만9500달러. 매물로 나와 있는 미국의 한 폐교..850평 규모에 평당 11만원 폐교의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호가 단위도 커지고 있다. 지금 이베이에 나와 있는 7개 학교 가운데 제일 낮은 금액이 5만달러(평당 16만원선). 5600평짜리 학교는 475만달러, 우리돈으로 약 50억원에 `팔자`가 올라와 있다. 평당 90만원 수준이다.
2004.12.28 I 안근모 기자
  • 워싱턴의 흑진주, 콘돌리자 라이스는 누구
  • [edaily 피용익기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부시 집권 2기의 새로운 국무장관으로 내정됐다.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에게 국무장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상태며 이르면 16일 오전(현지시간) 라이스의 국무장관 지명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아빠, 제가 안에 못 들어가고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저는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부모와 함께 백악관을 구경하던 10살짜리 소녀의 당돌한 발언은 25년 후 현실이 됐다. 1990년 조지 H 부시 당시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당당히 입성한 것. 소설과도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콘돌리자 라이스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 안보 보좌관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라이스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라이스는 1954년 인종차별이 극심하기로 유명했던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어머니와 장로교 성직자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3살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을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싶던 라이스는 흑인 최초로 버밍햄 음악학교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에 한계를 느끼고 꿈을 바꾸게 된다. 어느날 국제정치학 강의를 듣던중 `소련학`의 대가가 되기로 결심한 라이스는 덴버 대학과 노트르담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학을 전공했으며, 노트르담 대학에서 석사, 덴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불과 26살이란 나이에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의 정치학 부교수가 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학계에서 그녀는 러시아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라이스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무기 통제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라이스를 처음 만난 스코우크로프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라이스는 수줍어하지 않았다. 그렇다교 교만하거나 직관적이지도 않았다. 참으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녀를 더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도 그녀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4세에 조지 H 부시 행정부 당시 소련 자문역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라이스는 탄탄한 지식과 반대파를 끌어들이는 설득력으로 큰 일을 처리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라이스를 만난 미하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은 훗날 "그녀는 내가 아는 소련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며 라이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아버지 부시 밑에서는 외교정책 보좌관으로서 소련 해체와 베를린장벽 붕괴의 역사적 사건을 지켜봤으며, 아들 부시 현 대통령 밑에서는 안보 보좌관으로서 9·11사태 수습과 이라크전쟁의 승리를 일궈냈다. 부시 대통령은 그녀에게 `콘디(Cond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19세 덴버대 우등 졸업, 26세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스탠퍼드대 부교수 임용, 34세 조지 H 부시 전 행정부 국가안보위 소련 자문역, 38세 스탠퍼드대 최연소 부총장, 46세 첫 여성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50세 국무장관…. 독신여성 콘돌리자 라이스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콘돌리자 라이스 이야기(The Condoleezza Rice Story)`의 저자 안토니아 펠릭스는 "그녀는 최고를 지향했고, 또 그 정상에 올라섰다"며 "라이스는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 차기 부통령, 더 나아가 미래의 대통령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4.11.16 I 피용익 기자
  • (부동산 레이다)부동산으로 부자되는 열가지 방법
  • [양은열]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공주나 왕자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그렇게 원하면서 어떻게 해야 공주나 왕자가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는 좋은 부모 만난 것에 대해 부러워하면서 좋은 부모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박을 터트리기를 원하면서도 대박을 위해 그다지 고민이나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박이 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생각들에 동참한다면 대박이라는 것을 부동산의 일부분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부동산으로 부자된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좋은 부모 만나 부자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지식을 쌓고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결단을 내리는 결과 정상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부동산 강의하면서 많은 상담과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부동산으로 부자 될 수 있느냐고 또는 좋은 부동산이 있으면 찍어달라고 말이다. 이들의 심정이야 이해가지만 부동산으로 부자 되는 방법은 사람과 시기가 각자 달라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기를 원하고 우리나라와 같은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 좋은 환경에서 부동산을 빼놓고는 부자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동산 원리를 잘 활용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부자 되는 길이 있다고 본다. 부동산(不動産)이란 움직임이 없는 재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부동산은 움직일 수 없는가? 만약 마음대로 부동산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이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부동산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은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부동산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람의 마음과 돈’이 부동산을 움직이는 첫째조건이다. 마음과 돈이 부동산을 움직이게 하고 부동산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때 많은 변화가 뒤따른다. 변화란 부동산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부가가치가 높아지면 부동산은 또 다른 재화를 재생산을 하게 되고, 이런 것이 반복되는 가운데 부동산은 상당한 위치에 올라가 있다. 이것을 부동산의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자(富者)란 무엇인가? 신기하게도 부동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이다. 얼마만한 돈을 가진 사람들을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 부자를 정의하면 ‘경제적 자유를 가진 자’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주거자산을 제외한 금액이 은행금리 년 4%로 환산하여 이자수입이 월1,000만원이면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30억원쯤 있어야 부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30억원이라는 액수에 상당한 사람들이 기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30억원이란 극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30억원을 가지고 있다면 부자의 기준을 또다시 올라갈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부자시리즈가 유행할 때는 10억원 정도 있어야 부자라는 대열에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의 아파트40평형대 가격이 10억원을 족히 넘으니 부자의 기준은 또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자를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부자의 개념을 정한다면 항상 유동적인 환경 때문에 부자의 개념을 정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진정한 부자는 무엇인가? 부자란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돈을 좋은 곳에 만족하며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말할 수 있다. 돈버는데 선수인 사람이 있다. 그러나 쓸 줄을 모른다면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돈의 노예가 될 것이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도 더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부자가 되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부자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부자는 누구나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특히 30억이 넘는 부자들의 대부분은 부동산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해서 무조건 돈을 벌었던 게 아니라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3요소인 종자돈, 정보, 타이밍을 적절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소를 적절하게 사용한 부자들의 부동산 재테크의 기본은 아파트였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부터 강남이 개발되면서 아파트는 재산 목록 1순위였다. 부자들은 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좋은 정보와 타이밍을 통하여 아파트에서 부의 기반을 이룩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부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대부분 자기 자산의 70%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부자들은 부동산을 신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부동산은 폭락하지 않고, 깡통 될 가능성이 적으며 목돈이 목돈을 불려 주는 원리를 부동산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도 부동산은 임대이익보다는 개발이익이 훨씬 많을 뿐더러 막대한 개발이익에 비해 세금은 너무 적었기 때문에 부동산에 발빠른 사람들은 상당한 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대부분 부자들의 출발은 아파트였다. 블루칩아파트나 로얄 지역 아파트였다. 이것들은 물가상승률의 몇 십배 이익을 가져다 주었고 지금도 이러한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 이미 국세청이나 건설교통부에서도 아파트에 대한 분석이 다 끝나 통합시스템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의 동향을 훤히 꿰뚤어 보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누리기가 힘들어졌다. 만약 아파트에 계속적인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은 투자가치가 적은 다주택들은 빨리 처분하고, 대형블루칩 아파트로 투자를 전환하여야 한다. 매매가 않되 투자전환이 어렵다면 다주택을 묶어서 임대주택사업자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얹어준다. 그래서 부자들은 부동산을 좋아한다. 필자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에 대해 조언하고자 한다. 이것이 절대적일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필자의 경험이나 필자가 만난 많은 부자들을 통해 얻은 방법들이다.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 위한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늘 지도를 지니고 다닌다.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의 공통된 첫 번째 특징이다. 지도는 우리에게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현장에 가지 않아도 그 지역 정보는 물론 방향까지 제시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가 어떤 지역을 처음 간다고 가정해 보자.안내도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는 자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또한 안내도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게 되어 여러 지역을 자유롭게 계획하면서 다닐 수 있지 않는가! 지도는 부동산에서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필자도 시간만 나면 지도를 보고 어떤 지역이 어떻게 변화되고 바뀌는지 지도를 보고 아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초보자들이 지도를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어디일까? 아마도 자기 자신의 주거지일 것이다. 자신이 사는 동네 아파트는 어떻게 표시되어 있고, 주변에는 무슨 편리시설이 있으며, 자녀 학교는 어디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아는 사람, 과거 언젠가 가 본 곳을 찾아 볼 것이고, 궁금증이 더해지면 생소한 곳도 가보고 싶은 충동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습관이 어려서부터 있어 처음 보는 곳이라면 반드시 찾아가고 그 지역 주변과 기본적인 건물들을 둘러보고 와야 궁금증이 풀렸다. 그 시간이 새벽이든 아침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다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필자가 살고 있지 않았던 부산이나 영남지역을 자주 가 보았고, 그때마다 지도는 생소한 지역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즐거움으로 변화 시켜 주었던 지렛대로 기억된다. 지금도 이러한 버릇이 습관화되어 자동차로 돌아다니는 지역 상세지도는 반드시 옆에 있어야 했고 돌아다니는 거리도 매년 평균 10만km를 넘는다. 이러한 일들이 몸에 익숙해지게 되면 나중에는 머릿속에 해당지역 지도가 그려지고 대도시나 국도나 지방도로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그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따라서 해당지역에 정책과 개발 계획이 발표가 되면 발표 지역과 주변이 연계가 되고, 이는 복합적인 투자 마인드를 형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필자가 1991년에 중국 북경에 간 일이 있었다. 지금과는 중국의 환경이 달라 그때만 해도 기차가 연착되고 비행기 스케줄도 마음 놓고 세울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북경에서 연길 가는 기차는 이틀이 넘도록 불통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자동차 빌려 북경을 3일간을 돌아다니며 북경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북경 안내도의 도움이 너무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복잡하게 연결된 북경 도로도 4개의 순환도로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원하는 건물에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지도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에서 돈 벌기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지도책을 보자.지도도 5만분의1이나 2만5천분의 1보다는 5천분의1과 같은 세밀한 지도를 권하고 싶다. 세밀한 지도일수록 정보의 양은 배가되고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지역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매일 신문과 뉴스는 꼭 본다. 뉴스와 신문은 정보 집합체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도 있을 수 있겠으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의 경제와 세계변화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뉴스와 신문이다.부동산 종합대책이 나오면 발표현장과 연결하여 신속하게 뉴스를 전해 줌으로서 현장감을 더해주고, 전문가의 설명까지 곁들이며 고마운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전달해 주는 게 뉴스다. 신문은 속도감은 떨어지나 요약정리 된 자료를 영구적으로 남게 해 주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특히 부동산 정책등 정보를 요약, 정리하여 경쟁적으로 핵심만 전달해 준다. 우리는 정보화시대에 살기 때문에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다 볼 것인가 고민하지만 감사하게도 뉴스와 신문은 이러한 황금과도 같은 정보를 요약, 정리하여 매일 우리 곁에 쌓아둔다. 무료라는 서비스와 함께 말이다.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이러한 종합 정보체를 그냥 두지 않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뉴스는 물론 요약된 신문정보를 스크랩하고 분석하기까지 한다. 또한 정보화된 자료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구입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버릇이 짙다. 그런데 우리는 무료라는 값어치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경제가 어려워 유명 브랜드 옷을 싸게 팔던 옷가게에서 종업원의 실수로 가격에 0을 하나 더 붙여놓았더니 금방 팔렸다는 아이러니한 사건들을 쉽게 듣곤 한다. 무료니까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는게 아니라 좋은 정보는 값어치에 관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문과 뉴스 속에 정보가 있고, 이러한 정보는 부동산을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값어치에 관계없는 필요불가결한 정보이기 때문에 부동산 부자들은 신문과 뉴스를 매일 꼭 챙긴다. 셋째, 현장답사로 발품을 판다. 어떤 일을 하든지 발품이 필요하지 않는 사업은 없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현장답사는 생명줄과도 같다. 직접 발품을 팔아 눈으로 확인하고 느껴야만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현장답사를 위해 여기저기 수도 없이 다니고 또 다닌다. 시간과 장소 여건을 핑계삼지 않는다. 발품을 팔면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 평화의 댐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정보 때문에 화천지역의 땅값이 급상승한 경우가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장을 가보지도 안고 서울에서 묻지마 투자를 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러한 묻지마 투자 사람들의 결과야 뻔하여 20년이 넘는 지금도 원금에 밑도는 시세로 고생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현장학습을 통하여 안목만 길렀어도 이러한 낭패는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답사를 통해 발품을 팔았던 사람들은 평화의 댐 근처는 수도권 상수도와 연결된 지역 때문에 상당한 규제가 있을 거라 예측하여 매입을 미루고, 차라리 서울과 가까운 평택지역근처에 땅을 매입하였던 것이다. 현장에 가면 직접 걸어보고 시간을 재고, 발전가능성을 위해 시,군청에 발이 닳아지도록 돌아다니고, 유해시설 설치 계획 여부등을 꼼꼼히 따져보자. 또한 목표지역 주변 부동산 중개소는 3군데 이상 꼭 들러서 주변의 분위기와 상태를 파악하는 게 발품 파는 길임을 알자.현장을 자주 가다보면 이상하게도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보는 현장인데도 낯설지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상을 느끼게 되었다면 어느 정도 현장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세간에 기획 부동산이라는 게 있다. 특정 개발 호재지역이 발표가 되면 일반인을 상대로 토지를 분할하여 6개월내 책임지고 두, 세배로 팔아주겠다고 매매를 부추이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토지를 여러 필지로 나누어 공유형태로 두고 투자를 유치하고 몇 개월내 잠적하는 수법을 쓰는 일명 부동산 브로커를 일컫는다. 이러한 기획부동산의 가장 편한 상대가 현장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현장 감각 없는 초보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금액과 동일한 토지가 있다는 것에 고마워한다. 이미 기획부동산에서 초보자에 맞게 작업해 놓은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은 이러한 기획부동산은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자기가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절대로 서류만으로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거나 대리인을 통하여 현장을 대신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넷째, 정책을 분석한다. 부동산정책과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부동산에서 부자들이 잘 쓰는 말이다. 이렇듯 부동산 정책의 위력은 메가톤급이어서 절대로 정책과 맞서는 어리석은 부자는 없다. 반면 정책을 분석하고 냉정하게 대처한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잠실에 있는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57평(전용면적 45,7평)을 가지고 있던 부동산 부자 황모씨는 정책을 적절하게 분석하여 양도소득세를 절감한 경우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 거주한지 10년이 넘는 황모씨는 2003년 7월 매매를 위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매수자가 나타나 2003년 8월초에 계약하고, 9월 중순에 중도금을 그리고 10월초에 잔금을 치루기로 했다. 그런데 매매계약 후 중도금 받기전인 9월 중순부터 정부의 부동산 안정책으로 인하여 그동안 고급주택기준이 전용면적 50평이었던 것이 전용면적 45평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황씨 아파트도 9월말이후부터는 고급주택으로 분류되어 양도세가 실거래가로 부과 되고, 황씨처럼 10년간 1가구 1주택이라 하더라도 고급주택이 되면 양도세가 비과세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느긋하게 잔금을 받으려던 황모씨는 매수자에게 5,000만원을 깍아주면서 잔금날을 중도금날로 변경하여 양도세 부과를 막을 수 있었다. 만약 황모씨가 정책변화를 모르고 느긋하게 잔금날짜까지 기다렸다가 잔금을 치뤘다면 약 2억5천만원정도의 양도세를 부과 당했을 것이다. 이처럼 정책 변화 하나에 따라 부동산 결과는 매우 심각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절대로 정책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또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면 정책배경은 물론 파급효과 그리고 타이밍까지 계산하는 노력을 계속한다. 또한, 부자들은 부동산 처분시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판다. 까치밥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해당 부동산이 과열되어 가격이 천정을 향해 갈 때부동산 규제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부동산을 사두면 오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팔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규제정책에 막혀 처분할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적정이익에 도달하면 지체 없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정책분석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자기 책임형 투자를 한다. 부동산 부자들의 투자 특성중의 하나가 자기 관리 능력 범위 내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을 처음 배우는 보통사람들은 부동산을 처음 배운다는 게 신기해서 자기가 부동산을 배운다고 주변에 소문내고 다니는 경향이 깊다. 그러다가 이웃이나 아는 친척으로부터 부동산 컨설팅을 의뢰 받게 되면 흐믓해 하며 정성을 다 받쳐서 부동산매입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다행히 매입한 부동산이 올라가게 되면 큰 문제는 없지만 시간이 흘러 해당부동산 가격이 하락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조언 받아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을 만나 뵙기가 민망해지고 심한 경우 조언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점 근처에 상업부지 500평을 가진 땅부자 박회장이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은 워낙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해 매일 땅을 보지 않으면 그 날 잠이 안온다고 한다. 어느 날 박회장을 만나서 삼성동 상업부지 500평을 팔아서 아프리카 땅 5,000만평을 사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보았다. 박회장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기관리 범위를 넘어서는 땅은 황금 땅이라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책임형 투자를 하는 것이다. 부동산에 정해진 가격은 없다. 다만 어떤 부동산을 누가 어떤 시기에 잘 맞추어 잘 팔고 사느냐에 달려 있다. 설령 잘못 투자된 부동산 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타이밍 운영을 통하여 부동산 부자들은 잘못 매입한 부동산을 처분하기도 한다. 부동산 부자들의 또다른 특징은 투자와 거주지역을 구분하여 투자한다. 투자지역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분석력도 매우 깊다. 거주지역은 자기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살지만 투자지역은 철저한 투자 수익률을 계산하여 투자하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 부자들은 가격이 너무 비싼 경우에 지금 샀다가 떨어지면 어떻하나 또는 사고 나서 오르지 않으면 어떻하나 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한번 결단을 하고 나면 그 결단에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후회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판단만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투자금과 세금문제 수익률을 계산하여 손절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회를 본다. 여섯번째, 내집부터 마련한다. 요즈음에는 토지가 부동산을 이끌어가는 분위기다. 신행정수도 이전지 확정으로 인해 충청권을 중심으로 토지시장이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져 토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깊다. 이럴 때 초보자들은 당황 하게 된다. 과연 토지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집 마련이 된 뒤라면 몰라도 아무리 좋은 투자종목도 내집 마련 후에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초보자들이나 부자들이나 내집 마련은 재테크의 출발점이자 안정의 시작인 셈이다. 앞에서 부자들의 재테크 출발은 아파트부터라고 했다. 그만큼 아파트는 안정성에다 투자보장성이라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어 상당한 매리트를 느끼게 한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고 여행을 하다 보면 집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느낀다. 그만큼 집은 정서적, 육체적 안정을 주는 매개체이다. 집이 있다는 자체는 생활에 자신감을 주게 되고, 불안감을 없애준다. 따라서 내집 마련 안한 상태에서 다른 부동산을 사게 되면 불안하다. 왜냐하면 아파트를 제외한 다른 부동산은 위험할 때 환금성이 적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자들은 내집, 즉 아파트부터 마련하고 다른 종목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토지 투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1990년도에 당진의 토지시장을 보자. 그때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한보철강 당진 제철소 개발 계획에 따라 당진 주변 토지가격이 급상승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개발이 늦어지고 지지부진해 지자 토지시장은 급냉 하게 되고, 겨우 15년이 다되어서야 기지개를 핀다. 이런 기지개도 개발에 다른 것이 아니라 토지시장의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여 언제 또 찬바람이 불지 걱정 스럽다. 이와 같이 내집마련 이외의 부동산 종목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니 만큼 내집 마련 후에 욕심 부릴 수 있는 투자 종목이다. 일곱째,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한다. 부자들의 대부분은 부지런하다. 자기가 할일들을 자기 스스로 계획아래 하기 때문에 생활 만족도나 경쟁력도 강하다. 하루는 물론이고 1달 또는 1년의 스케줄에 따라 투자하고 관리한다. 그리고 생활이나 습관 그리고 취미등 많은 부분이 부동산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부자들하면 생활이나 소비가 엉망진창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계획된 투자와 절제된 생활로 꽉 짜여진 생활을 영위한다. 특히,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생활이나 여러면에서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생활한다. 왜냐하면 부동산은 그 만큼 정직하고 정확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는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급변하는 경제상황이 그렇고 세계시장의 변화, 정책의 변경등 상황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긍정적인 판단에 따라 생활하고 결과에 순종하는 지혜가 있다. 또한 부자들은 대부분 하루 5시간 이내의 잠을 잔다. 잠을 적게 잔다는 것은 생활이 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 밤늦은 시간일 수도 있겠으나 잠자는 시간은 5시간 이내가 대부분이다. 잠이 없다는 것은 그 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부동산 부자들이 잠을 적게 자고 절약된 시간을 현장답사에 활용하고 있다. 잠은 잘수록 는다는 원리를 부자들은 깨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자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도 1주일에 3-4번 이상, 한번에 1시간이상 운동을 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의 특징은 매년 연말이 되면 유서를 쓴다. 남겨줄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다. 유서를 쓰다보면 매년 달라진 재산상황이 나타나게 되고 이를 토대로 투자종목과 방향이 정리된다. 또한 매년마다 쌓인 유서를 보면 자산이 정리 되고, 자산 중 부채현황과 현금유동성, 수익률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몇 모작 투자를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어서 부동산 투자의 기본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싸이클이 한번 돌아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계속되는 부의 순환이 이어진다. 여덟째, 고정관념을 극복한다. 3년 전 쯤 일로 기억된다.강남에 아파트 32평을 살고 있는 대기업 과장 진모씨가 있다. 진과장의 소원은 아파트 40평대로 넓혀 가는게 소원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강남에서 32평아파트를 40평대 아파트로 넓혀 간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수지 상현리에 56평짜리 아파트가 싸게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파트 가격도 강남 32평 아파트를 팔면 상현리 아파트 56평을 사고도 5,000만원이 남았다. 진과장은 지역적으로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교통이 막혀 출퇴근이 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평소에 꿈꾸던 40평대보다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긴다는 것 때문에 그 정도의 고생은 참기로 했다. 그리고 전원의 아파트를 꿈꾸며 이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3개월은 교통이나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통체증은 극에 달했고, 점점 빨라지는 새벽출근시간은 새벽6시30분을 기점으로 교통지옥으로 변하는 출근길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상현리 56평을 팔고 다시 강남으로 옮기려 했으나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 버렸다. 이미 강남의 아파트는 배가 오른 뒤였기 때문이었다. 진과장의 경우 잘못한 것이라곤 지역을 무시하고 대형평수와 전원 아파트라는 순간적 고정관념에 빠져 실패한 경우다. 만약 진과장이 아파트를 40평대로 옮기려 했다면 강남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상현리 아파트 56평도 전세로 얻은 후 살다가 미련 없이 되돌아 왔어야 했는데 이사는 아파트를 팔고 이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진과장은 다시는 돌아오기 힘든 길로 가고 만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사는 경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아파트를 살 때 매입금 전액이 없으면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사람(A)이 있고, 매입금 중 부족한 부분을 전세를 끼고 사는 사람(B)이 있으며, 매입금이 적을 경우 대출과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사람(C)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에게 최대로 대출을 일으켜 승계 받고, 그 매도자를 전세입자 조건으로 아파트를 사는 사람(D)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거의 투자비용이 없어도 된다. 매월이자만 감당할 뿐이다. 상기 사례의 경우 은행 빚을 무서워하는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A 또는 B 형태의 투자를 한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D의 경우를 간혹 택했다. 부동산의 개발이익을 두고 투자하는 경우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고정 관념에 빠져 A 아니면 B 이외는 투기라고 본다. 그러나 부동산 부자들은 수익률이 은행이자보다 높으면 빚도 낸다. 자금의 이용에 따라 더 좋은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투자를 자주한다. 아홉째, 주변부자나 전문가와 친하게 지낸다 類類相從(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부자이기 이전에 부자들과 함께 지내라는 말과 같다. 헬스크럽은 물론이고 골프나 사회적인 모임도 부자들과 함께한다. 특히 부동산 부자 주변에는 전문가가 항상 함께한다. 따라서 부동산 부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부자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전문가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회자되는 정보나 이야기가 부동산이나 그 밖의 재테크 이야기가 많다. 당연히 정보와 판단이 정확해지고 경제흐름이나 부동산 주변상황 분위기를 읽을 수 있어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게 있다. 부동산 부자들을 만난다고 자기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안된다. 부동산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가 있듯이 과욕 된 욕심은 해가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문가 조언을 듣지 못해 내집 마련은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현씨 부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젊은 부부 현모씨는 일찍부터 내집 마련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맞벌이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결혼초에 아이를 갖게 되면 친정 어머님께서 봐주시기로 해서 친정부모님 곁에서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서울 구로동에서 말이다. 6년의 세월이 흘러 열심히 저축한 현씨 부부가 32평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던 곳은 구로동옆 가리봉동 아파트였다. 처음 아파트를 구입하던 날 너무 좋아했던 현씨 부부는 그 뒤 3년이 지난 현재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매입한 아파트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현씨 부부가 전문가 도움을 받았다면 신혼 초 열심히 살았던 생활이 빛을 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흠잡을 때 없이 열심히 살아 온 현씨 부부지만 전문가 조언을 받았다면 상당한 부를 축척할 수 있었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자돈을 모으고 모의투자를 한다. 부동산 부자들도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 종자돈을 만들고 이를 어떻게 해야 목돈이 될까 수없이 고민하였을 것이다. 종자돈이란 무엇인가? 농부는 내년의 알찬 수확을 위해 제일 좋은 씨앗을 모아둔다. 이게 종자(種子)다. 부동산에서의 종자돈에는 ‘유형 및 무형 종자돈과 만족적 종자돈’이 있다. 어떠한 종자돈이든지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이게 되는 종자돈이다. 첫째, 유형의 종자돈은 은행이나 적금에 들어 있는 돈을 말한다. 이러한 종자돈을 만들려면 3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 수입보다 지출을 더 해서는 안되는 종자돈이다. 둘, 노동으로 번 유형의 종자돈을 70%는 반드시 종자돈으로 저축한다. 셋, 유형의 종자돈으로 모아진 것은 투자자금으로만 사용한다. 둘째, 무형의 종자돈이 있다. 이것은 돈은 아니지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종자돈을 말한다. 청약통장에 월5만원을 저축하여 2년이 넘어 1순위가 되면 그 청약통장에는 1백2십만원과 약간의 이자가 있지만 이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당첨되면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종자돈 효과는 굉장한 것이다. 셋째, 만족적 종자돈이 있다. 부자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부자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가 부자라는 신념이 있을 때 부자가 되는 중요한 종자돈을 말한다.굉장히 중요한 종자돈이다. 재미있는 종자돈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논하기로 하자. 또한, 부동산 부자들은 ‘종자돈 제곱법칙’을 알고 있다. 종자돈이 2의 제곱법칙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법칙이다. 2배,4배,8배,16배로 늘어가는 원리를 말한다. 필자는 과거 경험으로 보아 100만원을 373만원으로 여기고 있다. 부동산 부자들은 종자돈을 만들고 종자돈 원리를 터득하여 종자돈을 키워왔다. 특히 부동산은 종자돈 키우는데 더없이 좋은 재료다. 따라서 부동산 부자들은 종자돈을 키우기 위해 처음에 목돈이 없어서 실전이 아닌 모의투자로 출발하였다. 모의투자를 하려면 현장을 자주 가야 한다. 현장에 가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그때 상황과 여건을 보아 모의투자를 실전과 같이 해 본다. 모의투자는 향후에 상당한 자료를 쌓아주고 실전보다도 좋은 경험을 준다. 이상과 같이 부동산으로 부자 되는 열가지 방법을 알아 보았다. 부자는 1%의 운과 99%의 노력으로 결정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필자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10년이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기에 충분한 시간일 뿐 아니라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또한 누구나 부자 되기를 원하면서도 부자 되는 지름길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일반 사람들은 최근 몇 년간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재테크로서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나 진정한 부동산 부자는 부동산과 삶을 같이 한다. 우리가 부자 되기 원한다면 우리 모두 종자돈부터 만들자. 종자돈은 자기 수입의 70% 이상을 모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모으는 방법은 은행을 이용하든지 곗돈을 이용하든지 얼마든지 있다. 종자돈 3,000만원부터 말이다. 그리고 부동산 판단을 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정보를 쌓자. 정보는 100%로 자신의 노력에 의해 쌓여지는 것이다. 정보와의 싸움은 늘 외롭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이 내려주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다. 부동산 초보자들이 부동산으로 부자 되는 그 날을 고대하면서 ....
2004.11.15 I 양은열 기자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