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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드디어 해냈다..10년만에 무분규 타결
-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현대차 노사가 올 노사교섭에서 합의를 보았다. 이로써 현대차는 '무분규 노사교섭'의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대차(005380) 노사는 4일 오후 3시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윤여철 사장과 이상욱 지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 12차 본교섭을 재개, 사측 수정 제시안과 노조 요구안에 대한 절충을 벌인 끝에 2007년 임단협을 극적으로 타결지었다. 현대차지부는 조만간 4만8000여명의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사 대표자들이 도출한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만약 합의간이 가결되면 현대차는 '무분규 임단협'이라는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 현대차 '무분규 임단협' 역사적인 전기 마련 현대차 노동조합이 출범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20년간 현대차에서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했다. 노조가 '무파업'을 선언하고, 사측이 노조의 임금요구안을 모두 수용했던 1994년 한 해를 제외하곤 현대차에선 무려 19년간이나 파업이 일어났다. 올해도 연초 성과급 지급과 관련해 노조가 파업을 전개한데 이어 6월말 금속노조 차원의 한미FTA 반대파업에 현대차지부가 동참함으로써 '무분규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혹시나'했던 기대감은 '역시나'인 것으로 드러나자 현대차 안팎에선 실망감이 매우 컸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가 이날 임단협 교섭에서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함으로써, '무분규 임단협'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아직 조합원 찬반투표가 남아 있지만, 노사 모두 무분규 타결에 대한 의지가 강해 기대가 큰 상황이다. ◇ 급박했던 막후교섭...윤여철 사장 어제밤 급거 상경해 수뇌부 언질받아 울산공장장으로 현대차의 사측 대표자인 윤여철 사장은 전일 11차 본교섭이 끝난 직후 서울로 급거 상경, 본사 수뇌부와 교섭내용을 상의했으며, 하룻 밤을 자고 이날 아침 비행기로 울산으로 급히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사장은 전일 본교섭에서 노조의 요구안을 대폭 수용한 수정제시안을 제출했지만, 노조는 수정내용이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4일 본교섭 결렬시 파업에 돌입할 수 있음도 강하게 시사했다. 이를 감안하면 윤 사장은 서울 본사 수뇌부로부터 상여금 50% 추가 제시안을 비롯해 여러 '협상카드'에 대한 언질을 받고, 교섭장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무분규 교섭'을 반드시 이끌어 내야 한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도 다시 확인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윤 사장은 이날 아침 울산공장으로 돌아오자 마자 '이제 새로운 현대자동차를 보여줄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조합원들에게 돌리며 '무분규 협상타결'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 이는 현대차 안팎에서 '무분규'에 대한 사측의 적극적인 의지표명으로 해석됐다. 파업에 부담을 갖기는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됐지만, 곧바로 열린 중앙쟁의대책위원회에서 4~5일 이틀간의 파업을 유보하고 본교섭에 응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무분규 타결'에 대한 사측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인된데다, 파업에 대한 국민적인 반대기류, 여기에다 노조 내부에 점차 높아지고 있는 파업반대의 목소리 등을 반영, 노조 지도부는 '무분규 합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일회성 이벤트 안돼..노사 상호 신뢰회복에 박차 가해야 현대차가 임금협상 내지 단체협상 관련해 무분규로 합의에 도달한 것은 1997년 이후 10년 만이다. 지난 95년에서 97년 사이에도 현대차에선 파업이 발생했지만, 이는 양봉수씨 분신사태와 노동법개정 등이 배경으로, 임단협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에 따라 현대차 노사는 올 임단협을 계기로 '무분규 교섭'의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현대차 노사 모두의 노력으로 '파국'을 비껴나갔다는 점에서 향후 신뢰회복을 통한 노사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경영환경 악화를 고려할 때 이번 현대차 노사의 무분규 타결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노사는 상호 신뢰회복에 노력하는 동시에 노사전문위원회와 같은 노사협의 채널을 통해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서성문 한국증권 연구위원은 "현대차의 경쟁환경이 하루 아침에 개선되는 것이 아닌 만큼 이번 무분규 타결이 일회성으로 끝나면 안된다"며 특히 "노사 양측이 상호존중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측은 투명경영을 강화하고, 노조는 주인의식을 가짐으로써 노사상생의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도 주문했다. ▶ 관련기사 ◀☞현대자동차, 엔진 공장 건설에 1375억원 투자☞아이써티(i30), 준중형 넘버2 꿰찼다☞현대차 중국판매 부진속 개선조짐도 꿈틀
- 추상미 "결혼 준비하며 여자라서 행복... 첫키스는 집앞에서"
- ▲ 배우 추상미-이석준 커플[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결혼을 준비하는 하루하루가 꿈을 꾸듯 즐겁고 행복해요.” 11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추상미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추상미는 3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홀에서 예비신랑인 뮤지컬 배우 이석준과 기자회견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결혼소식을 전했다. 추상미는 기자회견 첫 인사로 “드라마(SBS ‘8월에 내리는 눈’)가 끝나고 계속 결혼 준비만 하고 있는데 평범한 여자로 돌아간 느낌이고 여자라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결혼 준비를 하는 하루하루가 꿈꾸듯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해 기자회견의 사회를 본 개그맨 박수홍을 비롯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추상미와 이석준은 오는 11월5일 오후 6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서 웨딩마치를 울린다. 예식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주례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추상미와 이석준은 지난 2003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함께 공연하며 교제를 시작, 5년여 사랑을 키워온 끝에 오는 11월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다. 다음은 추상미-이석준 커플의 결혼 발표 기자회견 일문일답이다. -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 처음에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아니었다. 서로 장난치고 시비도 거는 편한 친구였는데 정이 들었다. 내가 많이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항상 옆에서 위로해줘 연인이 됐다. 5년 연애를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연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타이밍에 청혼을 해줬다.(추상미) ▲ 나는 처음부터 결혼 생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어릴 때 말씀하시길 네가 언젠가 여자를 만나면 존경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라고 하셨다. 추상미는 연기 면에서나 모든 부분에서 그에 부합하는 여자다. 내가 없는 부분을 갖고 있고 내 속에 잠재된 무언가를 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이석준) -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싸운 적은 없는지. ▲ 취향이 많이 달라서 사소한 다툼이 있다. 예를 들자면 벽지를 골라도 나는 꽃무늬가 새겨진 로맨틱한 걸 좋아하는데 석준 씨는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크게 다툰 적이 없다.(추상미) ▲ 사실 많이 참고 있다.(웃음) 모든 부분을 상미 씨에게 맞춰주고 싶다. 맞춰줘도 아깝지 않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석준) - 직업이 같아 좋은 점은. ▲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된다. 상미 씨는 어떤 친구, 선생님 보다 가장 혹독하게 모니터링을 해준다. 장인어른(고 추송웅)께서 대단한 배우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보는 안목을 키워서인지 최선을 다해 연기한 후 물어봐도 30점을 못 넘긴다.(이석준) ▲ 부모님도 두 분 다 배우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어머니가 공연을 보러 가시면 노트에 손동작, 표정 하나까지 꼼꼼히 적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그 노트를 보여드렸는데 아버지는 그게 너무 스트레스셨지만 그 다음 무대에서는 꼭 그 부분을 고치셨다고 들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머니보다 유한 편이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추상미) - 몰래 데이트하며 어려웠던 점은. ▲ 전혀 없었다. 추상미와 사귀면서 아이디어 낸 것이 매니저인 척 하는 것이었다. 일명 ‘매니저 가방’을 사서 같이 다니다가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으면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전화를 받았다. 내 얼굴이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니라 다니기 편했다.(이석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공연 하면서 좋아하게 됐는데 당시 조승우와 삼각관계여서 조승우에게 제일 먼저 들켰다. 조승우 외에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때는 눈을 깜박이면서 ‘사랑한다’는 뜻의 암호를 만들어 애정 표현을 하기도 했다.(추상미) - 영화 같은 프러포즈였다고. ▲ 1월 4일이었는데 ‘헤드윅’ 공연이 끝나고 앵콜 무대에 4명의 배우들이 정장을 입고 나와 애국가 반주에 맞춰 내가 6살 때 만든 곡을 합창했다. 이후 이석준이 걸어 나왔고 나를 무대에 올려 ‘소원’이라는 가스펠 곡을 부르며 반지를 줬다. 그날 모든 관객들에게는 기념으로 핫도그를 돌렸다. 둘 만의 공간에서 프러포즈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공개 프러포즈를 받은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한 뭐라 말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 결론은 그날 너무 행복하게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추상미) ▲ 프러포즈 준비를 1년 넘게 해왔지만 상미씨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나 새해 첫 날 프러포즈를 하려던 계획이 매번 취소됐다. 나도 내가 프러포즈를 하며 울게 될 줄 몰랐고 관객들도 같이 울어준 것이 감동이었다.(이석준) - 가족계획은. ▲ 아직 조율을 못했다. 나는 나이가 있으니까 딸 하나 낳아서 예쁘게 잘 키우고 싶다. 딸을 낳으면 이것저것 시키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아들은 내가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추상미) ▲ 나는 둘이 좋다는 생각이다. 우리 둘 다 배우 생활을 끝까지 하기를 원하는데 형제끼리 같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힘들면 쌍둥이로 합의를 보자고 했다.(이석준) - 첫 키스는 ▲ 상미 씨 집 앞에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고 아주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이석준) - 기억에 남는 데이트 ▲ 이벤트를 잘 한다. 사귄 지 100일 되던 날 받은 선물이 감동적이었다. 동작대교 밑 한강시민공원에서 차 안 데이트를 많이 했다. 마셨던 커피 병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 우리가 갔던 바닷가의 흙, 모래, 물을 담아서 모아뒀던 것을 선물로 줬다. 굉장히 소박한 선물이었는데도 그 정성에 감동했다. 값비싼 선물을 받아본 적은 있어도 그런 정성이 가득한 선물은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추상미) ▲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상미 씨는 받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궁합은 좋은 것 같다.(웃음) 남들은 ‘이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선물도 매우 좋아하고 감동해하며 받는다.(이석준) - 특별한 신부 수업을 준비 중인가. ▲ 결혼식 자체를 그냥 단순한 행사가 아닌 우리 둘과 축하해주러 온 분들에게 정말 행복하고 의미 있는 날로 만들고 싶다. 정신적인 준비를 많이 하고 있고 더 성숙해지려고 한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이 사람을 위해서 나의 많은 것을 헌신하며 살 생각이다.(추상미) ▶ 관련기사 ◀☞[포토]추상미-이석준 커플, '예비 신랑신부의 달콤한 입맞춤~'☞[포토]결혼 앞둔 예비신부 추상미, '너무 행복해요~'☞[포토]추상미-이석준 커플, '프러포즈는 핫도그와 함께~'☞추상미-이석준 커플, 11월5일 비공개 결혼식
- `내일을 사는 남자` 슈워츠가 말하는 5가지 시나리오
- [조선일보 제공] 그의 인생 역시 한 편의 시나리오다. 유대계 헝가리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임산부였던 그의 어머니는 1945년 그 곳에서 슈워츠를 낳았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모진 곳에서 그의 부모는 살아 남아, 6년 후인 1951년 어린 아들과 함께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기회의 땅’에서 소년은 수학과 과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줄곧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결국 렌셀러폴리테크닉대학(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우주항행학(aeronautics)을 전공, 아폴로 계획에 로켓 엔지니어로 참여한다. 소년시절의 꿈을 이룬 그의 눈은 우주를 벗어나 먼 미래로 향한다. SRI인터내셔널과 쉘(Shell)을 거치며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1988년,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 등과 함께 글로벌비즈니스네트워크(GBN)를 설립한다.그는 오늘도 많은 기업과 국가들을 위해,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미래를 향한 그만의 최고의 무기는 뭘까. 그에게 묻자 “긍정의 힘”이라는 의외로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긍정의 힘을 믿었습니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유대인 수용소에서 태어난 나는 오늘 벤츠 승용차를 몰고, 몇백만 달러짜리 집에서 삽니다. 결국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 남아요. 그리고 성공합니다.”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가 제시하는 인류의 미래 시나리오 몇 편을 들어봤다. 과연 이 중 어떤 시나리오가 ‘적중’하게 될까?■ 시나리오1.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이 살아 남는다―원론적인 질문부터 시작하죠. 왜 기업이나 국가가 당신의 시나리오를 사야만 하나요?“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경영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죠. 예를 들어, 우리는 현재 세계적인 금융 혼란(turmoil)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CEO들은 고민하겠죠. ‘과연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하나’ ‘우리가 연초에 세웠던 사업 계획들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하나’ ‘구조조정을 해야 하나’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해야 하나’ 등등…. 이외에도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신규 사업을 시작할 때입니다.”―새로운 제품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보편적으로 어떠한 미래 대비 전략이 필요한가요?“눈을 크게 뜨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의 표정을 2~3초간 ‘즐긴’ 후 말을 이었다.) 과연 어떤 기업이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했을까요? 바로 AT&T예요. 1980년에 기술을 개발했지만 오늘날 이 회사는 휴대전화를 팔지 않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AT&T 직원들은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한 후 ‘설마 이런 물건을 사람들이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겠어? 누가 과연 길거리를 걸으면서 전화를 하고 싶어할까?’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은 다른 기업에 싼 값에 기술 라이선스를 팔았어요. 바로 모토로라에! 모토로라는 이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냅니다. 똑같은 기술을 두고도 서로 다른 미래를 본 거죠. 하나는 ‘불가능’, 다른 하나는 ‘가능’. 하나의 시나리오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면 그만큼 가능의 영역이 커지는 거예요.”―특히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한 신제품을 출시할 때 시나리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거군요.“그렇죠. AT&T가 놓친 ‘대박 상품’ 중엔 인터넷도 있었어요. 1978년과 1987년 AT&T는 미국 정부로부터 인터넷을 운영해 달라는 제안을 받지만, ‘인터넷, 누가 쓰겠어? 과학자들이나 컴퓨터 전문가들이나 쓰는 거 골치 아프게 운영해서 뭐해?’라고 판단했죠. 그래서 정중히 사양하죠. 만약 당신이 이 기업의 주주였다면 휴대전화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놓쳐 버린 이 기업 경영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요?”―가능성의 영역을 열어놓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경영진들은 늘 이런 상황에 부딪칩니다. 특히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게 될 때, 제품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될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항상 고민하죠. 따라서, 똑같은 제품을 보고서도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이는 정부에도 해당되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인 도전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안보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죠.” ■ 시나리오2. 최악의 상황은 전쟁·보호무역·기상이변―그렇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안보 상황은 어떤가요?“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정확히 100년 전인 1907년으로 돌아가보죠. 당시 세계적으로 비행기·자동차·전화기·전기 등 수많은 신기술들이 발명됐죠. 혁신과 더불어 국제 교류의 증가에 따라 세계 통합이 오는 듯했죠. 하지만 곧 두 번의 세계대전이 터지고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2007년. 상황이 100년 전과 비슷합니다. 인터넷·휴대전화·태양 에너지 기술·바이오 신약 등 신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세계화 흐름은 급물살을 타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또 다시 이러한 호황을 뒤엎을 수도 있습니다.”―호황을 뒤엎을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는 어디에 존재하나요?“오늘날 최대 리스크는 전쟁이나 보호무역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곧 전쟁을 불러오기 때문이죠. 내 머리 속에 있는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는 각각 통합과 분할(fragmentation)을 주제로 합니다. 20세기를 보죠. 20세기 처음 50년은 분할, 나머지 후반부는 통합의 역사였습니다. 세계가 끊임없이 경제 통합의 길을 걷는다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분할되기 시작한다면, 많은 이슈들이 봇물처럼 터질 겁니다.”―세계 통합이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유는?“이제, 경제적인 발전은 자원에 기대는 게 아니라 인재들의 두뇌에 기대고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차지하는 게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아니에요. 그 대신 혁신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거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나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머리를 맞댈 때 떠오를 가능성이 더 높아요. 오늘날 세계 경제는 정보와 지식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질수록, 전체적으로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불러올 수 있는 요인은 뭘까요?“일단 나는 국내 정치가 세계화에 해(害)가 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합니다. 이를테면 미국 디트로이트시 의원이 ‘이제 자동차 수입 장벽을 높여야 한다’는 법안을 제출할 수도 있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원이 ‘동남아시아산 섬유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죠.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오판은 세계화에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그 외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면?“단연, 환경 문제와 세계적인 전염병 문제죠. 이를 테면 조류 독감과 같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덮쳤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과 해외 비즈니스 출장을 포기했는지 목격했어요. ‘물’과 관련된 재앙도 문제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최근 2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매우 심한 장마(monsoon)로 인해 자신의 주거지에서 쫓겨났어요. 개인적으로 나는 방글라데시가 한 나라로서 수명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서 이 나라는 곧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해수면이 조금만 높아지면, 방글라데시는 불모지가 될 겁니다. 1억6000만 명의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뜻이겠죠. 이 사람들이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다면, 그 주변 지역이 혼란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 시나리오3. ‘늙어가는 대륙’ 유럽이 걱정된다―이들이 이동을 시작한다면, 이민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겠는데요.“이민문제에 관한 시각은 세계 곳곳에서 엇갈립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은 이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너무 다릅니다. 미국은 이민을 하나의 ‘자산’으로 보는 나라입니다. 미국인들은 모두 이민자들이죠. 이민자건 아니건,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르다’는 것에 관대한 시각을 갖고 있죠. 미국 UC(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학생의 47%가 아시아인들입니다. 캘리포니아 최고 대학에 이 정도의 비율이 있다는 것은 미국의 미래가 아시아 출신들에 달려 있다는 말도 되죠. 우린 그런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주지사(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오스트리아 출신이죠. 인텔 창업자 중 80%도 이민자 출신이었습니다.(웃음)” ―유럽은 어떤가요?“유럽은 똑같은 이민 문제도 재앙(catastrophe)으로 여기죠. 이 대륙은 전통적으로 백인·기독교인들이 차지해 왔습니다. 일시적으로 유대인들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몰아냈어요. 이렇듯 미국과 유럽은 이민 문제에 관한 시각이 다르니까, 미래를 향한 시나리오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어떻게 달라진다는 말씀이신가요?“미국의 경우엔 이민 문제에 관해 우려의 목소리는 있더라도 구체적인 행동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엔 매우 추한(ugly) 행동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청소’처럼 말이죠. 유럽은 앞으로 이슬람인들을 쫓아낼 겁니다. 벌써부터 이슬람에 대한 차별이 대륙을 뒤덮고 있어요. 덩달아 인도·파키스탄 사람들 역시 몰아낼 수도 있겠죠. 늙어가고 있는 대륙 유럽은 이민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해요. 이런 상황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을 겁니다.”■ 시나리오4. ‘은퇴’라는 개념에 혁명적인 변화가 분다―지적하신 대로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 문제에 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국가 정부들이 국민연금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데, 각국 정부의 연금 문제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오늘날과 같은 정년에 은퇴하는 게 불가능하게 될 테니까요. (이 시나리오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생각해보세요. 나는 지금 6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일 년의 3분의 1을 출장으로 보냅니다. 아직까지 힘이 넘치고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죠. 50년 전만 해도 내 또래의 사람들이 이렇게 활동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서, 기존 은퇴 연령에 일을 그만두는 건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이와 관련해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나는 노후 억제와 관련된 IGF-1 등 성장 호르몬 연구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의 노화 관련 시나리오에 따르면, 10여 년 후엔 아주 획기적인 항(抗)노화 치료법(anti-aging therapy)이 발견될 것입니다. 평균 연령이 140세까지 갈 수도 있는 일이죠. (기자를 보며) 당신은 아마 지금부터 120년 더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의학 기술이 얼마나 비쌀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량 생산에 성공한다면 싼 알약 형태로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 안락한 노후를 즐기고 싶어하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정년 퇴직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요?“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사람이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곧 일을 찾게 될 겁니다.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1930년대에 와서야 생겼습니다. 그 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일을 했습니다. 앞으로 정년 퇴직이라는 개념이나 채용에 관해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70·80세에도 구직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예요. 세계적으로 이미 정년 연령이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지고 있습니다.”■ 시나리오5. 유조선이 사라진다―기술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가장 각광 받을 만한 기술을 소개해 주신다면? “인공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생명체를 인공 합성하는 학문으로 합성생물학 또는 인조생물학이라고도 하죠. 생소하게 들리죠? 쉽게 설명해 볼게요. 이 학문은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변형해 하나의 작은 공장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공장이 무언가를 생산하게 하죠. 예를 들어, 이 기술을 이용해 항(抗) 말라리아제를 만드는 연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데, 비용은 기존 화학작용으로 만들 때의 10%도 안 돼요.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에탄올과 휘발유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에너지 산업에 대대적인 혁명이 일어날 수 있겠군요. “몇 십 년 뒤 이런 미래를 가정할 수 있어요. 주유소에 간 당신은 주유기 대신 박테리아들로 가득 찬 탱크에 자동차를 갖다 댑니다. 그러면 물과 함께 자라나는 박테리아들이 휘발유를 만들어내고, 곧 이 휘발유로 주유를 하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원유 공급차나 원유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서도 휘발유를 생산하는 박테리아를 기를 수도 있을 겁니다.”―기업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에너기 기업인 BP는 UC버클리 바이오 프로젝트에 5년간 5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어마어마한 산업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죠. 이제 우리는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던 것들을 ‘제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무언가를 생산할 때 유해물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환경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겠죠. 생각해 보세요. 유해물을 배출해 이를 땅에 묻는 건 인간뿐입니다. 자연은 순환 구조를 통해 유해물을 결국 없애니까요.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고도로 통합돼 있죠. 우리도 자연의 구조를 따라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기술로 인해 인간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울 수 있겠죠. 에너지도, 섬유도, 먹거리도 모두 지금보다 ‘깨끗하게’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 슈워츠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북한은 지금 바보 같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결국 리비아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피터 슈워츠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시나리오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북한에 대해 묻자, 그는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Quaddafi) 얘기로 시작했다.“리비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과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 나라였습니다. 풍부한 자원이 있는데도 국민들을 가난에 허덕이게 하던 나라였죠. 국민들은 가다피라는 독재자가 쓴 ‘그린북(The Green Book·가다피의 통치이념을 정리한 책)’을 달달 외워야 했습니다.”슈워츠는 리비아의 상황을 반전시킨 주역은 가다피의 아들인 자이프 알 이슬람(al-Islam)가다피였다고 밝혔다. 아버지 가다피가 2003년 12월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과거 리비아가 저지른 항공기 테러에 대해 배상을 약속하는 등 일련의 유화책을 도입한 이면엔 자이프의 흔적이 엿보인다는 것이다.“자이프는 영어에 능숙하고 유럽에서 교육받았죠. 사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축구 선수가 되려고 하기도 했어요. 많은 곳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곧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자이프는 아무도 리비아에 대해 알지 못하고, 리비아와 삶의 질 수준이 비교가 안 되는 ‘바깥 세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비아로 돌아간 그는 아버지에게 “뭔가 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자이프는 2년 전, 다보스에서 슈워츠가 회장으로 있는 모니터그룹 산하의 GBN(글로벌비즈니스네트워크)과 국가 개조 컨설팅 의뢰 계약서에 사인했다. “북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 거예요. 북한의 현행 지도부 행태가 영영 지속되진 못할 겁니다. 세대가 바뀌고, 그다음 세대가 밖에 나와 선진국들과 한국의 부를 맛보기 시작한다면, 분명 리비아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그렇다면 그가 한국 기업들을 위해 준비해 둔 시나리오는? “결국 모든 것은 통합과 혁신에 달려 있습니다. 이젠 ‘어떻게 싸울까?’가 아니라 ‘중국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의 가치사슬(value chain) 안에 중국을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서비스인지, 제품의 질인지, 디자인인지 한국이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국이 수십 년간 스스로 독특한 혁신의 길을 적절히 찾아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으로의 생산 기지 이전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이웃 국가 일본의 경우엔, 이미 국내 생산보다 해외 생산을 통해 얻는 수익이 더 큽니다. 자국에서 생산된 제품 수출보다 해외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거죠.” 그리고는 한국 역시 중국이 주는 거대한 기회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10년마다 중국 안에 두 개의 ‘한국’이 만들어질 겁니다. 인도에선 한 개 반이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인도와 중국의 성장 기회가 매우 크다는 겁니다.”특히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시장에서도 가깝고, 문화·역사적 유대도 깊죠. 물론 언어적인 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한자를 쓰지 않습니까? 한국 기업들엔 행운입니다.”그는 한국이 갖는 최고의 무기로 ‘혁신’을 꼽으면서, 혁신이란 멈춤이 없는 과정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전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썩기 쉽다(perishable)’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혁신하면, 곧 다른 사람들도 혁신할 겁니다. 한국의 혁신은 곧 다른 국가들의 모방 대상이 될 겁니다.” 혁신은 중심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변두리(fringe)에서 나온다는 점도 강조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Prius)’의 매출액은 대형 트럭 매출액의 10%도 안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혁신의 리더로서 도요타를 자리매김한 것은 트럭이 아닌, 프리우스였어요.”그렇다면 그가 볼 때 한국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뭘까. 그의 대답에 또다시 ‘중국’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내부적 문제(intern al trouble)들에 휩싸인 혼란스러운 중국이 한국엔 최악의 시나리오예요.” 그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이다. 오늘날 중국 인구 중 2억명은 경제 발전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10억이 넘는 인구는 아직까지 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고, 찢어지게 가난하다. “이런 상황이 너무 오래 방치된다면, 그 10억명이 중국 사회를 찢어 놓을(tear apart) 수도 있어요.” 환경과 에너지 문제 역시 중국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중국의 공해 문제는 이미 극도로 ‘위험한’ 수준에 달했고, 에너지를 향한 식욕 역시 무섭다. 중국의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매주 1000메가와트급 파워 플랜트(power plant) 시설이 필요할 정도다. 중국이 이러한 이슈들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매서운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 “태평한 중국이, 곧 풍요로운 한국을 의미할 것입니다. 태평한 중국을 위해 기도하세요.” ■ 슈워츠가 보는 ‘기로에 선 미디어’ [TV] 아무도 안보는 광고… 방송사들 치열하게 생존 고민해야 [신문] 취재 기능은 줄어들더라도 편집 기능은 더 강해질 것정보기술(IT) 발전과 다매체의 등장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는 미디어(media) 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슈워츠는 미디어 산업이 현재 잔인한(cruel)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방송의 경우엔 산업 자체의 패러다임이 아예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충고했다.―미디어 산업, 특히 신문 산업의 미래 시나리오에 대해 진단해 주시죠.“앞으로 일반 취재의 역할은 다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각종 정보들이 컴퓨터를 타고 어느 곳이든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편집의 기능은 분명 살아남을 겁니다.”―편집의 강점은 무엇인가요?“나도 무수한 블로그(blog)들을 읽고 있지만, 거기에선 정보의 가치와 경중(輕重)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듭니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꼭 알아야 할 것과 조금 몰라도 될 것을 구분하는 게 혼동돼요. 신문을 보면 이런 게 한눈에 들어오죠.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지 도움 받기도 하고…. 당신 에디터(editor)의 역할은 앞으로 살아남을 거란 얘깁니다.(웃음)”―신문산업의 대응방식을 조언해준다면.“신문사는 극단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곤 솔직히 살아나기 힘들죠. 뭔가 다르고 한 차원 더 높은 정보를 제공할 건지, 아니면 인터넷 사이트를 개편해 아예 속보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건지 선택해야 돼요.”―방송은 미래에 어떻게 변할까요?“기로에 서 있는 건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최근 나는 미국의 한 유명한 방송사의 미래에 관해 컨설팅을 해줬습니다. 어떤 방송사인지 밝히긴 힘들지만, 이 방송사엔 향후 몇 년간 아주 혁명적인 구조 변화가 있을 겁니다. 17살짜리 내 아들은 단 한 순간도 TV를 보지 않아요.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있죠. 티보(TiVo·TV광고 시청시간을 시청자별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디지털비디오레코더 제조업체) 등이 등장하면서 TV광고도 사람들이 더 이상 안보죠. 변해야 할 시점을 놓친다면, 살아 남기 힘들 겁니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 "살았으니 걱정마라" "죄송해요"
- [오마이뉴스 제공] ▲ 울음바다 아프간 피랍 43일만에 재회한 귀환자들과 가족들이 서로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다. 안양샘병원에 마련된 환영식장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 재회의 기쁨 귀환자 중 가장 먼저 유경식(55)씨가 환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씨의 가족들이 달려나와 유씨를 끌어안고 있다. "살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많이 보고 싶었지?" (어머니 김은주씨) "죄송해요.... (울음) " (귀환자 이영경씨)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생했는데, 살아와서 기쁘다." (할머니 전광실씨) 2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피랍 귀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귀환자들과 가족들은 서로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귀환자들 "죄송하다" "휴식을 취하고 싶다" 오전 6시 36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19명의 귀환자들은 오전 8시께 경기도 안양의 안양샘병원에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났다. 먼저 휠체어를 탄 유경식(55)씨가 환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씨의 가족들이 달려나와 유씨를 끌어안았다. 가족들은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어 다른 귀환자들도 연달아 나타나자 환영식장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귀환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영경(22)씨는 얼굴을 어머니 김은주(51)씨에게 파묻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손은 아버지 이창진(51)씨의 손을 꼭 잡았다. 가족들이 이씨를 위로하자 이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터트렸다. 이씨는 어머니 김씨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산에서 계곡물 먹고 지냈다, 동굴이나 마굿간에서 지냈다, 민가에는 하루 정도만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 이씨는 "걱정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유씨의 할머니 전광실(77)씨는 "위험한데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라면서 "매일 새벽기도 나갔다, 고생했다, 살아와서 기쁘다"며 흐느꼈다. 귀환자 중에서 건강이 가장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유경식씨는 비교적 건강한 목소리로 "잘 지냈다"고 밝혔다. 이어 "배형규 목사, 심성민씨를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유씨는 "풀려나기 5일 전 쯤 외교부 직원과 통화해 며칠있으면 풀려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좀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말을 아꼈다. 30여분간의 환영식이 끝나고 귀환자들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환영식장을 떠났고, 가족들이 남아 기자들에게 그간의 소회를 전했다. "국민 여러분께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다" ▲ 한 귀환자와 그 가족이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귀환자 유정하(39)씨의 어머니 곽옥강(67)씨는 "국민 여러분,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곽씨는 "과연 조국을 밟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43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딸의) 첫 마디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며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곽씨는 또한 "(딸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외부적으로 많이 야위웠다"며 "말을 못하고 눈물 흘리고 위로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19명이 무사히 돌아와서 한쪽으로 기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기쁘지 않다"고 밝혔다. 귀환자 제창희(38)씨의 어머니 이채복(69)씨 역시 "국민 여러분 너무나 감사하다, 고통을 안겨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애가 산속에서 20일을 지냈다고 한다"며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말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귀환자 김윤영(35)씨의 남편 유행식(36)씨는 "오늘 만나보니까 살아왔구나 싶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아내가 '아이들 생각하며 잘 참았다'고 했다"고 밝혔다. "희생당한 두 분 가정에 위로를 해드리고 싶다"며 "앞으로 그 가족들과 함께 섬기면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명화(29), 서경석(27)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잃었던 두 자식을 돌려 받았다, 안았더니 실감이 났다"며 기쁨을 전했다. 피랍자 가족모임 대표인 차성민(30)씨는 "귀환자 중 심각하게 아픈 사람은 없다"며 "정신적으로 회복되는 10일쯤 귀환자들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입원기간은 2, 3주 정도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차씨는 "곧(8일) 배 목사의 영결식을 한다"며 "귀환자들도 참석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가족들은 외교부, 언론사, 각국 대사관에 감사의 뜻을 전하러 인사를 다닐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귀환자들은 안양샘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을 예정이다. 차승균 안양샘병원장은 "전인치유병동에서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치료받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건강검진의 경우 일반검사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풍토병에 대한 감염검사, 개인적 질병이 있는 사람은 따로 검사를 받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 재회 귀환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영경(22)씨는 얼굴을 어머니 김은주(51)씨에게 파묻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 [한들의 친구,야구]양키스 '보물' 챔벌레인... 장애자 아버지 헌신적 사랑(2)
-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자, 이제 현역 빅리거 중 '유이'하게 '네이티브 아메리칸' 인디언(다른 한 선수는 필라델피아 우완 선발 투수 카일 로쉬로 올 시즌 7승12패, 방어율 4.54를 기록 중 입니다) 챔벌레인에 대해 알아보죠. 챔벌레인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수우족의 한 부족, 위너베이고우족(북동부 네브라스카)인 아버지 할란 챔벌레인과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할란은 생후 한 살이 안 돼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때문에 '레저베이션(Reservation)'으로 불리우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떠나 병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병세는 악화돼 왼쪽 팔을 못 쓰고, 왼쪽 귀의 청력을 잃고, 급기야 절룩거림이 심해져 전동 스쿠터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는 일찍 결혼해 5살 위인 딸 타샤와 챔벌레인을 낳았지만 이혼의 아픔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이기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운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고 참고 견디면 무엇이든지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몸으로, 삶으로 보여 준 '롤 모델'이었습니다. 천형의 몸으로 26년간 교도소의 카운셀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 가는 한편,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쳤습니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정상인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아들과 늘 캐치볼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였습니다. 오른손으로 공을 받고, 다시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빼고, 또다시 오른손으로 아들에게 공을 던져 줬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곁을 떠나기 싫어 챔벌레인은 열 한살 때까지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관을 갓 넘긴 챔벌레인은 이렇게 의젓하게 말합니다. "우리 집은 늘 돈에 쪼들렸고 많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랑과 존경이 넘쳤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는 야구란 게임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챔벌레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빅리거가 된 지금도 변함없고, 더욱 커졌습니다. 경기 전 빠짐없이 2분간 통화를 하고, 이후엔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이 안 된다. 아버지는 베스트 프렌드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네브라스카의 주도인 링컨 집에서 아들의 경기를 컴퓨터로 보며 감격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할란은 9월8~10일 양키스가 캔자스시티로 원정 경기를 하러 올 때 보러 갈 계획을 잡아 놓고, 생전 첫 양키스타디움 방문을 위해 전동 스쿠터를 어떻게 운반할지를 항공사와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또 하나의 소수 인종으로 전락해 '인디언 보호구역(광활한 평원과 숲을 빼앗은 백인들이 몰아넣은 황무지나 다름없어 유폐 지역이 차라리 어울리는)'에서 카지노 사업의 배당금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그러나 챔벌레인은 자신이 인디언이란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란 위너베이고우 보호구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고, Pow Wows(북아메리카 인디언 모임)에도 매년 참석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은 나의 분신이다. 앞으로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며 "많은 인디언 어린이들이 다른 어린이들에 비해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임감을 느낀다. 기꺼이 그 책임감으로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합니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챔벌레인은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유망주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270파운드가 넘게 나가는 체중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교도 2부리그인 디비전Ⅱ의 네브라스카 키어니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면서 '땀의 소중함과 꿈을 쫓아야 한다' 는 것이 몸에 밴 그는 체중을 줄이고, 피칭을 다듬고, 다듬는 노력 끝 에 네브라스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정진한 끝에 팀을 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켜 결국 인디언 선수로는 역대 드래프트 최고 순번인 41번째로 양키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토리 감독이 "필 휴즈(또 다른 양키스의 21세 유망주 투수)였으면 모를까. 이름은 듣긴 했으나 싱글A 선수가 이렇게 일취월장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뒤늦게 무릎을 친 챔벌레인의 미래에 대해서 양키스는 신중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챔벌레인 룰'을 만들어 놓고 이닝 수에 따른 휴식일 과 투구 수를 조절할 정도입니다. 일단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불펜이지만 내년부터는 선발 투수로 기용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리베라의 노쇠화가 짙어가고 있는 만큼 마무리 투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도 "링컨에 있는 16개월 된 아들과 아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는 챔벌레인은 "요즘은 정말 내가 경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매일매일 책에 새롭게 수록하는 것 같다"며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한 듯 벅찬 기분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그의 팔이 메이저리그에서 써내려갈 '인디언 부활사'가 더욱 흥미진진하고 주목됩니다. TIP: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챔벌레인의 훠스트 네임, 즉 이름 'Joba'는 여러 가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본인도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점입니다. '자버'라고도 하고, '조버'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본인에 따르면 정확한 발음은 '자버'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이 '조버'로 불려지게 된 것은 순전히 친척 동생이 잘못 발음한 게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원래 '저스틴'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저스틴'이란 이름을 되찾는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의 이름 또한 '저스틴 챔벌레인'으로 제대로 발음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 ▶ 관련기사 ◀☞[한들의 친구, 야구]양키스 '보물 ' 챔벌레인... '인디언 부활사' 쓴다 (1)
- 변정민 "과감하되 절제된 스타일이 굿"
- [한국일보 제공] 모델, 문구디자이너, 푸드스타일리스트, MC에 이어 연기자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멀티플레이어. 역시 모델 출신 연예인인 변정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곧 방송될 SBS TV <조강지처클럽>에서 악처와 달콤한 내연녀를 오가는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 좌우명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 가장 최근 산 옷 뉴욕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세일기간. 평소 눈독을 들였던 프라다의 풍성한 주름치마가 60% 할인을 할 줄이야. 얼른 내 것으로 만들었다. ▲ 내 인생 최고의 쇼핑 지난 해 가을 동대문에서 라인이 예뻐서 색상별로 산 목폴라. 한 시즌만 입어도 이 가격이면 너무 싸다 싶어서 구입했는데 입어보니 제품 질도 좋아서 대만족. ▲ 이번 시즌에 꼭 사고 싶은 패션 아이템 몸에 예쁘게 맞는 블랙 원피스. 액세서리를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서, 옷의 느낌이 달라지니 일석이조. ▲ 이런 스타일 질색이다 너무 많은 장식과 디테일 또는 색상이 들어가 있는 옷 또는 옷차림. 과감하되 절제된 스타일이 좋다. ▲ 쇼핑의 원칙 인테리어 소품을 살 때는 혼자, 옷 살 때는 친구들과 함께. 옷은 친구들과 같이 사면 할인받기 쉽다는 것! ▲ 패션이란 나를 표현하는 수단 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자의식. ▲ 가장 옷 잘입는 연예인 변정수씨. 완벽한 코디네이션과 색상의 조화가 뛰어나다. ▲ CF속의 멋진 몸매는 어떻게 관리하나 1주일에 한번씩 스킨케어를 받고 저녁 8시 이후에는 먹는 것을 피한다. 대신 7시 55분까지 계속 먹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음식들이 소화가 되어서 편하게 잠자는 것이 포인트. ▲ 연기자, 모델, 디자이너, MC, 푸드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비결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같은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나중에 후회하긴 싫다. ▲ 트렌드 세터로서, 패션연출 노하우 의상을 입을 때나 액세서리를 고를 때, 주로 같은 계열의 색상을 써서 의상을 입고 가방이나 신발 등 한 아이템 정도로 포인트를 준다. ▲ 존경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장만옥.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어느 역할에나 없어서는 안될 존재감. ▲ 주부 변정민의 꿈 내조를 잘하는 아내이고 싶고, 자립심을 길러주는 엄마이고 싶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고 싶다. 내가 행복해야 가정의 행복도 있으니까. ▶ 관련기사 ◀☞실속파 멋쟁이들은 ''이곳''에 간다☞올 가을 패션 화두 ''매니시룩''으로 통한다
- (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고래 찬가
- [이데일리 윤영환 칼럼니스트] ‘로마인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유난히 강조한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와 꽃의 도시 피렌체의 엇갈린 운명을 풀어가는 첫번째 화두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강자의 헌신과 관용을 통한 공존의 지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지혜인 이유는 희생과 솔선수범을 통해 획득한 명예와 존경이야말로 장기적으로 강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생태계(Business Eco-system)라는 경영학 이론이 있다.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대하여 자사가 속한 비즈니스 생태계 전체의 관점에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공생공멸의 운명체 의식을 바탕으로 생태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기업이 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강조한다. 우리의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성공, 제로섬의 승리는 일시적이다. 금융시장이 함께 도약해야 지속 가능한 진짜 성공이 된다. ◇ 시장의 규율 금융 시장에는 예민한 이해관계를 명확히 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귀찮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세한 게임의 법칙들이 얽혀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는 정책당국의 규제가 아닌 시장 스스로 만든 규율도 적지않다. 이른바 시장의 규율(Market discipline)이다. 시장의 규율은 누가 만드는가? 대부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관행이지만, 결정적으로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규율은 누군가의 인위적인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시장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과 비전을 바탕으로 시장을 이끄는 노블리스, 마켓리더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다. 시장이 선진화될수록 이런 노블리스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한다. 워렌 버핏이나 빌 그로스는 단순히 수익률만 좋은 투자자가 아니다. 그들이 존경 받는 이유는 단지 새로운 투자영역을 개척하고 남다른 투자철학을 선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차대한 순간에 시장의 규율을 잡아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따로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채권투자의 중심 축이 되어 있는 신용평가가 자리를 잡게 된 데는 바로 연기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선진금융시장에서 연기금은 당국의 규제욕구와 시장의 야성 사이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수익률 이상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투자철학의 성숙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시장의 관행으로 정착된 거래기관 평가와 배분 시스템도 처음에는 일부 대형 기관의 튀는 행동이었다. 대형 연기금이 데이터 서비스를 요구하고 신용분석 서비스를 챙기면서 대부분의 주요 증권사 라인업이 강화되었다. 역시 우리나라도 연기금이 시장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특히 채권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 함께 하는 꿈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큰 것은 욕심이 지나치기 때문인가? 특히 회사채와 관련해서는 당국의 규제보다는 시장의 관행으로 풀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가 규제로 엮어낸 신용평가나 시가평가도 선진시장에서는 관행과 시장의 규율로 일군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규제로 관행을 대신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부분들을 우리 시장의 노블리스가 해결해주면 어떨까? 지난 연말 감독당국이 발표한 회사채 발행시장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주관증권사의 차별화다. 그런데 이를 시장의 규율이나 관행이 아닌 규제로 풀어가자니 여간 자연스럽지 못하고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는 발행시장, 특히 도를 넘어선 대형 발행기업의 횡포는 이해관계의 차원을 넘어서 시장의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어른의 큰 기침이 필요하다. 최근 연기금의 은행채 편식을 지적하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의 논조와는 별개로 우리 연기금의 현실적 어려움이 묻어난다. 연기금의 막대한 자산운용 규모를 감안할 때 자잘해진 회사채나 펀드시장과는 영 보조를 맞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채와 펀드시장의 옹색함은 결코 운명적인 것이 아니다. 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고래가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큰 물을 만들 수 있다. 시장이 가야 할 방향은 별로 이견이 없다. 펀드를 대형화, 장기화하고 신용분석에 기초한 투자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정책도 결국은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정책에만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고래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몇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기본적으로 고래들의 연대는 취약하다. 서로의 태생이 다르니 프로토콜이 다르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탄탄하지 않다. 일부 영악한 고래의 탐식과 몰염치, 역선택과 무임승차는 연대를 해친다. 연대의 법적 기반도 문제다. 애당초 구속력은 기대할 수 없고, 자칫 공정거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대개 어떤 큰 고래가 총대를 메고, 다른 고래들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구조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철학의 문제다. 왜 하필 우리가 총대를 메어야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구현하고자 하는 미래상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한다. 시장의 공론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당장은 실천이 담보되지 않더라도 분분히 견해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이 된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 함께 꿈을 꾸면 그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환경건축가, 오스트리아 - ◇ 고래에 의한 평화 작지만 너무나 현실적으로 절실한 우리 회사채시장의 꿈을 몇 가지 적어본다. 회사채 발행단위를 키워야 한다. 회사채를 연간 몇 번씩이나 작은 규모로 쪼개서 발행하는 우리의 관행으로는 시장의 활성화가 어렵다. 국채만 통합발행(Fungible issue)하는 것이 아니다. 게릴라식으로 신용등급과 평판, 그리고 네트워크와 시장 분위기에 편승하여 뚝딱 해치우는 방식은 너무 재미없다. 기업의 장기전략을 홍보도 하고 이에 대한 심층 분석과 토론도 이루어지는 한마당 큰 잔치가 되어야 한다. 발행단위가 작다 보니 연기금과 같은 대형 투자자의 참여가 쉽지 않을 뿐더러, 유통물량의 실종으로 원활한 가격형성이 되지 않는다. 발행시장 강세와 유통시장 약세는 종국에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치킨게임이다. 발행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일견 좋아 보이지만, 취약해진 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정적 자금 조달이 우선인 기업이다. 또한 시장에 의한 신용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용등급과 평가보고서는 절대 홀로 설 수 없다. 시장의 분석과 평가가 함께 해야 가치가 있다. 평가사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우리 회사채시장은 영원히 손님이다. 얻어먹는 밥으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적어도 주관증권사라면 반드시 정성을 기울여 한 상 차린 신용분석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시장에 의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신용등급은 평가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시장의 목소리, 투자자의 이해를 모두 반영하지 못한다. 대형 투자자의 칼 같은 차별화가 중요한 이유다. 단지 신용등급과 가격의 변동 가능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투자자를 존중하는지 발행기업에게, 평가사에게, 온갖 중개자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러면 ‘고래의 시대’, ‘고래에 의한 회사채시장의 평화와 번영’이 시작된다. 윤영환/굿모닝신한증권/Credit analyst
- 장혜진 "데뷔 17년만에 처음으로 '외도'란 걸 해봤네요"
- ▲ 가수 장혜진[이데일리 SPN 유숙기자] “여자의 변신은 무죄” ‘키작은 하늘’, ‘1994년 어느 늦은 밤’ 등 서정적인 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 장혜진이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댄스 앨범을 발매했다. ‘톰보이(Tomboy)’라는 앨범 제목에 걸맞게 긴 머리를 짧게 '싹둑' 자르고 의상 스타일에도 과감한 변화를 줬다. 이런 장혜진의 변신이 꽤나 성공적이었는지 얼마전 한 지인은 지상파 방송 음악 프로그램에 나온 그녀를 보고 장혜진의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장혜진이 그 장혜진이냐”며 확인을 다 했다고 한다. ◇ “첫 댄스 앨범, 스페셜한 외도 앨범이죠” “앨범마다 댄스곡이 있었지만 주로 사랑받은 곡들이 발라드라 댄스곡 중에 아까운 것들이 많았어요. 이미지도 뭔가 사연 있고 여성스러운 느낌으로만 각인돼 있어서 장혜진에게도 강한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죠. 이번 앨범은 그냥 스페셜 앨범이 아니에요. 아주 특별한 ‘외도’ 앨범인 셈이죠.” 외모뿐만 아니라 노래 자체에도 큰 변화를 줬다. 힙합, 하우스, 디스코, 유로댄스 등 빠른 비트의 음악과 떠나는 남자에게 “잘 가라”고 외치는 가사가 새로운 장혜진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2, 30대 이상 세대들에게는 장혜진의 목소리가 반갑기만 하다. 10대들도 ‘멋있다’는 반응을 잇고 있다. 하지만 장혜진은 앨범을 낼 때마다 대중의 입맛을 따라가기가 점점 힘에 부침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돌, 10대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 가요 시장에서 장혜진이라는 오래된 가수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항상 걱정이죠. 이번에 빠른 음악을 하면서도 너무 옛날 노래 같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니면 어린 친구들의 음악을 따라가는 느낌이 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았어요.” ▲ 가수 장혜진◇ “후배들, 개성 있는 자기만의 목소리 찾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장혜진에게 후배들과의 작업, 가수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큰 도움이 된다. 현시대의 음악적 흐름과 자신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그녀는 좋아하는 후배 가수로 디지털 싱글 앨범 ‘불꽃’을 함께 작업했던 리쌍과 ‘그남자 그여자’의 바이브, 그리고 거미 등을 꼽았다. 장혜진은 현재 한양여대 실용음악과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고 가을 학기부터는 경희대 포스트모던학과에도 출강한다. 또 데뷔 준비 중인 가수 지망생들을 상대로 보컬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가수 생활 17년차인 그녀는 이 학생들에게 모창을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라고 충고한다. “모창은 좋은 노래 연습 방법 중 하나예요. 헌데 그저 모창에서 그치는 친구들이 많아요. 많이 따라해 보고 거기서 내게 맞는 점들을 끌어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그 목소리가 그 목소리 같은 느낌이 들죠. 그래서 자기만의, 새로운 색깔을 가진 가수도 없는 거구요.” 그녀는 나이가 60, 70세가 돼서도 무대에 서는 것이 가수로서의 궁극적인 바람이라고 했다. 또 프로듀서로서 신인가수의 앨범을 제작해보고 싶은 꿈도 이야기했다. "남편이자 소속사 대표인 강승호 사장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하자 장혜진은 “남편에게는 내 앨범으로 민폐만 안 끼치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앨범을 안 내줄 게 뻔하니까”라고 너스레를 떨며 유쾌하게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장혜진이 밝힌 '1994년 어느 늦은 밤' 탄생 비화☞장혜진 생애 첫 댄스 앨범, 클럽 DJ들에 인기☞'키작은 하늘' 장혜진, 생애 최초 댄스 앨범 발매... 화려한 변신▶ 주요기사 ◀☞[차이나 Now]中 연예계도 학력의혹...학력에 혈통 나이까지 속여☞[차이나 Now!]"김태희도 의심스러워"...中언론 학력파문 맹비난☞신혜성 "나한테 연기는 어울리지 않아"☞[포토]정준하, '황보야 우리도 팔짱끼고 결혼(?)하자!'☞초고속 결혼 서민정 "속도위반 아니에요"
- 추미애 전 의원, 대선 출마 선언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한 추미애 전 의원이 22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추미애 전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대선 출정식을 갖고 “대통합은 시대적 과제이며 민족의 미래를 여는 위대한 분기점”이라며 "대통합 대통령이 되어 12월 19일을 '승리의 날'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추 전 의원은 특히 "대통합을 위해 4대 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성과와 비전을 창조적으로 통합하고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남북 통합을 진전시키는 한편 △영남의 딸, 호남의 며느리로서 지역 통합의 기수가 되고 △양극화 해소를 통한 계층 통합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추미애 전 의원은 “이를 기반으로 따뜻하고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3강'(지식강국, 해양강국, 기업강국) '4온'(서민과 패자, 약자와 동포에게 따뜻한 사회) 비전을 정책 공약으로 제시했다.다음은 추 전 의원의 출마선언문 전문.<4대 통합과 3강(强)4온(溫)을 실현하겠습니다.>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당원동지 여러분!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반갑습니다.오늘 여러분들 얼굴을 뵈니 우리가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저 추미애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오는 12월19일을 반드시 ‘승리의 날’로 만들겠다는 것을 약속드립니다.승리의 그 날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던지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여러분!대통합은 시대적 과제입니다.민족을 묶고, 지역을 묶고, 계층을 묶고, 세대를 묶는 도전입니다.분열을 극복하는 첫걸음입니다.민족의 미래를 여는 위대한 분기점입니다.저는 여러분께 이같은 대통합을 위해 4대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첫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성과와 비전을 창조적으로 통합시키겠습니다. 둘째, 햇볕정책의 계승자로서 남북통합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겠습니다.셋째, 영남의 딸 호남의 며느리로서 지역통합의 기수가 되겠습니다.넷째, 세탁소집 둘째딸로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계층통합에 앞장서겠습니다. 저는 이같은 시대적 과제 앞에서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당당히 나아가겠습니다.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몫입니다.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승리는 없습니다.누구도 낙오하지 않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대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저 추미애는 대통합의 정신으로 ‘따뜻하고 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습니다.이를 위해 3강(强)의 비전을 실현시키겠습니다.첫째, 대한민국을 ‘지식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21세기 지식경제사회의 국가경쟁력 원천은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 개성, 끼와 같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입니다.저는 개인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정보화 사회에서 축적된 지식에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창조적 인재’ 양성과 ‘창조지식산업’을 적극 육성하겠습니다.특히 IT, 나노, 환경 등 첨단산업과 문화, 농축수산업에 창의성을 결합시킨 ‘창조지식산업’ 육성을 통해, 500조원의 부동자금을 끌어들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글로벌 국가로 만들겠습니다.둘째, 대한민국을 대륙으로 통하는 ‘해양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우리는 일찍이 장보고의 해상대국과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가졌던 민족입니다.저는 새만금-포항-부산-목포를 연결하는 순환벨트의 동서횡단 고속철도를 건설해 태평양 경제권과 대중국 경제권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한반도를 해양경제 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또한 미일중러 사이에서 국익을 수호하고 안정적인 자원 및 수송로 확보를 위한 대양해군을 육성해 ‘제2의 장보고 해상강국’을 열겠습니다.셋째, 대한민국을 ‘기업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저는 기업활동을 위한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풀겠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보다 강하게 요구 하겠습니다. 중소기업은 국가경제에 있어서 우리 몸의 골격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우리 경제가 건전한 골격을 갖춰 경제부국이 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따뜻하고 강한 대한민국’은 개인은 도전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입니다.이를 위해 4온(溫)의 비전을 실현시키겠습니다.첫째, ‘서민에게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서민이 집값폭등 걱정 없이 내집을 마련하고, 사교육비 걱정 없이 자녀를 교육시키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둘째, ‘패자에게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저는 자신의 성공이 부모의 지위나 경제력이 아닌 노력과 재능에 의해 판가름 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또한 취업실패, 창업실패, 진학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꿈이 있다면 언제든지 실현할 수 있는 패자부활의 기회와 평생교육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셋째, ‘약자에게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저는 여성이 보육걱정 없이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어르신들이 제대로 된 사회적 보장을 받으며, 장애우도 차별받지 않고 참여가 보장되며, 비정규직은 땀의 대가를 당당히 보상받으며,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사회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또한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 문제를 적극 해소해 부의 갈등, 교육의 갈등, 노사의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 대통합을 이뤄내겠습니다.넷째, ‘동포에게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저는 3천만 북한동포와 700만 재외동포가 같은 민족임을 가슴에 새기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건설할 수 있는 한민족 공동체를 만들겠습니다.저 추미애는 ‘따뜻하고 강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반드시 이같은 4대통합과 3강(强) 4온(溫)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12월19일 승리의 그 날을 위해 다함께 나아갑시다.대통합이라는 국민이 주신 마지막 기회를 승리의 전환점으로 만들어갑시다.저 추미애가 대통합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겠습니다.우리 모두 하나되어 다같이 승리합시다.감사합니다.▶ 관련기사 ◀☞손학규, 선대본부 발족..경선 준비 박차☞민주당,10월 8일 대선후보 결정☞정동영 "시한폭탄 해체하겠다"..이명박에 포문
- 삼겹살이 기가 막혀~ 한우가 1인분에 4000원!
- ▲ 한우황소한마리(600g)와 쌈채소, 반찬, 양념을 내는 다하누촌 직원. [조선일보 제공] ::: 강원도 영월 한우마을‘다하누촌’ 300g에 8000원. 돼지고기 이야기가 아니다. 쇠고기, 그것도 엄연히 한우다. 요즘 서울 시내 고깃집에선 쇠고기 1인분(150g)에 5만원 넘게 받는 곳도 있다. 도대체 가능한 가격일까? 강원도 영월 주천면 섭다리마을에 지난 11일‘다하누촌’이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니 1시간 40분 거리. 5일장이 서는 사각형 공터 주변을 둘러싼 식당 6곳이‘다하누촌’이란 간판을 달았다. 식당에 들어가 고기를 우선 산다. 메뉴판에는‘한우 황소(거세우)’반 마리(300g/반근)가 8000원, 한 마리(600g/1근) 1만6000원이다. 계산을 하고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잠시 후 종업원이 등심과 안심, 제비추리, 안창살, 토시살, 치맛살, 차돌박이 등 소 한 마리에서 구이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부위를 나무 도마에 얹어 낸다. ‘테이블 세팅(setting)비’라고 해서 고기를 찍어먹는 기름소금과 된장, 쌈야채 등을 1인당 2500원씩 고기값과 별도로 받는다. 얼마 전부터 전국 각지의 한우 산지에 고기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정육점과 식당이 하나 둘 생겨났다. 정육점에서 사서 식당에 가져가거나, 식당에 붙은 정육점에서 구입하면‘양념값’혹은‘세팅비’만 받고 고기 구울 불과 쌈채소, 기름소금 등을 차려준다. 평소 쇠고기, 특히 한우는 엄청난 가격 탓에 맛보는 꿈도 꾸지 못하던 사람들이 떼로 몰렸다. 한우 산지마다 정육점과 식당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한우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저렴한 고기값의 비결은 유통마진을 대폭 줄였다는데 있다. 다하누촌을 만든 최계경 NH푸드 고문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쇠고기값에는 유통 과정에서 400% 가까운 마진이 붙는다”면서“마진을 걷어내면 이 정도 가격에서도 충분히 이익이 난다”고 말했다. 그래도 믿지 못하고 수입 쇠고기라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우인증서와 DNA검사결과를 벽에 붙여놓고 운영하기도 한다. 싼 고기값의 또다른 비결은‘비(非)거세우’다. 비거세우란 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수소를 말한다. 비거세 황소라고도 한다. 비거세우는 20~24개월이면 다 자란다. 암소나 거세우보다 6~10개월이나 짧아 사육 비용이 덜 든다. 암소나 거세우보다 지방량이 적고 고기는 많다. 고기량이 암소 280여근, 거세우 360여근으로 차이가 크다. 판매 단위를 최하 600g으로 정해놓기도 한다. 비거세우는 대신 맛이 떨어진다. 암소나 거세우와 비교하면 질기다. 지방이 살코기 사이사이 고루 퍼지는, 이른바‘마블링’이 잘 되지 않아 노린내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오픈하는 한우마을 중에서는 암소나 거세우만을 쓰거나, 비거세우와 함께 내기도 한다. 다하누촌은‘한우마을’의 최신 버전이다.‘ 계경목장’등 프랜차이즈업체를 운영하는 NH푸드 최계경 고문이 프랜차이즈 경영 노하우를 도입했다. 브랜드 로고, 간판, 유니폼, 메뉴판을 통일해 다른 한우마을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 고기를 일괄적으로 구매해 공급하기 때문에 식당마다 고기 맛이나 품질 차이가 별로 없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에게 실시하는 서비스교육을 받은 식당 종업원들도 친절한 편이다. 거세우와 함께 암소도 낸다. 씹을수록 배 나오는 고소한 고기맛은 아무래도 암소가 낫다. 거세우는 부드럽고 마블링이 잘 됐지만, 맛이 싱거운 편. 암소 반마리 300g(반 근) 1만6000원, 한마리 600g(1근) 3만2000원으로 거세우보다 두 배 비싸다. 문의 (033)372-0121, www.dahanoo.com ▲ 8000원 받는 한우황소반마리(300g)::: 전국 유명 한우마을 ◆ 정읍 산외 한우마을 전국 한우마을의 원조라 할 만한 곳. 1992년 전북 정읍 산외면에서 1개 정육점으로 시작, 지금은 정육점 34곳과 식당 24곳이 성업 중이다. 산외면장 김훈씨는“주중 하루 2000여명, 주말이면 3000~5000여명이 찾는다”면서“산외면 주민(2800여명)보다 외지인이 더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거세우를 사용한다. 등심 600g이 1만5000원. 불, 양념, 쌈채소는 1인분 아닌 고기 600g당 6000원씩 받는다. 워낙 손님이 몰리다보니 정읍에서 사육하는 소만으로는 부족해 전국에서 소를 가져다 판다. ◆ 장흥 토요시장 2005년 7월 1일 문 열었다. 정육점 4곳과 식당 10곳이 있다. 토요일에만 열린다. 전남 장흥에서 사육하는 비거세우를 쓴다. 가격은 등심 600g(약 3인분)에 1만 5000원으로 정읍산외한우마을과 같다. 1인분(200g)씩도 판다. 마블링이 잘된 꽃등심은 3000원 더 비싼 1만8000원에 판다. 고기를 사서 식당에 가져가면 불을 피워주고 상추, 깻잎 등 쌈채소와 양념을 고기 100g당 1000원에 판다. ◆ 지보 참우마을 거세우를 쓴다. 정읍이나 장흥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마블링이 잘 된 대신 비싸다. 등심 600g에 2만7000원, 불고기용 쇠고기 600g 1만2000원이다. 1인분(200g)씩도 판다. 정육점 1곳, 식당 4곳이 주중 500~600명, 주말 2000여명을 맞는다. 식당에서 반찬, 불, 채소비로 손님 한명당 3500원씩 받는다. ◆ 양주골 한우마을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분에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우마을. 2005년 11개 한우전문점으로 시작, 현재 9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양주시 축협에서 받은 거세우만 판다. 등심 1인분 200g에 3만2000원으로 다른 지역 한우마을과 비교하면 많이 비싸다. 하지만 9개 업소 모두 식당(고깃집) 형태로 쌈채소, 반찬, 불, 양념 등을 따로 돈 받지 않는데다‘무한 리필’가능하다.
- [김정욱의 포토에세이]한 사람을 안다는 것-서정원과 기자의 만남
- ▲ 축구스타 서정원[이데일리 SPN 김정욱기자] '지인(知人)'. 모 기업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 단어를 한자 뜻 그대로 풀면 단순히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말의 속에는 마음이 서로 통하는 벗을 일컫는 지음 [知音]의 의미가 강하다. 얼굴이나 이름을 안다는 1차적 의미를 넘어 오랜 세월 함께 하며 그 사람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만큼 잘 아는 사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음인, 또는 지인이라 부른다. 기자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하루가 멀다하고 아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 명함을 주고 받고 인사를 하며 일로든, 사적인 다른 목적에서든 누가 누구인지도 기억하기 버거울만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진짜 '잘 아는 사람', 지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오랜 시간 함께 할 사람은 정작 손꼽을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뢰'와 '존중'이 가득했던 15년 '지인'들의 대화최근 스포츠팀 축구 전문 베테랑 선배와 서정원 선수의 인터뷰 자리를 통해 '지인'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됐다. 비오는 어느 궂은 날, 서정원 선수를 만나기로 한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 한 카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카페 한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서정원 선수와 그의 앞에서 노트북을 켜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배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른때와 별반 다를바 없는 인터뷰 모습. 하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좀 남달랐다. 우선 서로가 친숙한 듯 이름 뒤에 아무런 존칭없이 편하게 '정원아'라고 부르는 호칭부터가 자연스러웠다. 또한 인터뷰 특유의 딱딱한 '질의 응답'이 아닌 통상 우리네 사이에서 오고 가는 편한 '대화' 가 주를 이뤘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인터뷰의 패턴은 무언가를 캐내려는 기자의 질문과 무언가를 알리고 싶은 취재원의 답변이 오가는 것이었다. 서로 묘한 심리전을 펼치고, 때론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 서정원 선수와 스포츠팀 선배의 대화는 내가 알고 있던 인터뷰의 고정관념을 확실히 깼다. 두 사람은 서로 원하는 질문과 답변에 만남의 목적을 두었다기보다는 그 날의 만남 자체를 더 즐기는 듯 보였다. 촬영이 끝난뒤 전해들은바에 따르면 두사람은 축구 선수와 기자로 알고 지내온 게 무려 15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마 15년 전 당시 축구계의 기대주였던 서정원 선수와 패기만만한 스포츠 기자로 현장을 누볐을 선배는 처음 만나 서로의 열정을 불태우며 꿈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그리고 이제 한 쪽은 은퇴를 결심, 지도자의 길을 떠나려 하고, 다른 쪽은 어느새 20여년간 한 길을 걸은 베테랑 기자가 됐다. 그날의 대화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애정과 사랑이 가득 묻어났다. 1시간 30여분 동안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일정 때문에 인터뷰를 끝내야만 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보였다. ◇ '지인'들의 인연을 카메라에 담는 것...즐겁고 설레는 작업이후 따로 사진촬영을 위해 도산공원으로 이동했다. 근처에서 웨딩 촬영을 하던 신랑신부가 서정원 선수를 알아보고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쾌히 승낙한 서정원 선수를 향해 미소짓는 신랑신부. 이 모습을 바라보는 선배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촬영을 마치고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그냥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 때 한 일은 단지 셔터를 누른 것 뿐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찍은 어떤 사진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서정원 선수의 인터뷰 기사는 온라인에 공개돼 축구 팬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 인터뷰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스포츠 전문기자인 선배의 탁월한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 기사에 담긴 애정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지인'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 이 또한 즐겁고 설레이는 작업인 것 같다. 몇 년 후 잘 아는 그 누군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해 본다. ▲ '15년 지인' 김삼우 기자와 서정원 선수 ▶ 관련기사 ◀☞[김정욱의 포토에세이]'코믹스타' 임형준, 내가 발견한 새 모습☞[김정욱의 포토에세이]9인조 여성 그룹 '소녀시대' 취재기☞[김정욱의 포토에세이]주연만 11명...진땀 흘린 '슈주' 영화☞[김정욱의 포토에세이]스타의 멋진 사진에 숨은 다섯가지 요령☞[김정욱의 포토에세이]인물사진, 기자처럼 찍는 법 다섯가지
- [서정원과 딥 토크 2] 꿈은 크고 높아야...국가 대표 감독 목표
- ▲ 서정원 [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꿈은 높고 큰 게 좋지 않습니까?” ‘국가대표 감독을 목표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서정원의 답변이었다. 분명하게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지도자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그로선 국가대표 감독이 당연한 목표일 것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시절 만난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보면서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팀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아시안컵때의 한국 대표팀, 그리고 핌 베어벡 감독의 사퇴와 박성화 감독 홍명보 코치 체제가 선임된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구성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그의 생각을 밝혔다.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는 이로서의 시각과 위치에서였다.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던 베어벡,. 우선 자진 사퇴한 핌 베어벡 감독에 대한 그의 평가는 썩 높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 코치 생활을 오래 하면서 한국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년만에 그만 둔 부분은 아쉽죠. 자신의 축구를 구현하기에는 시간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 내용은 분명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그가 지도자로서 평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프로 감독은 물론 국내 전문가들과 자주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좋지 않았구요. 큰일을 하기에는 조금...” ▲반드시 외국 지도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가대표 사령탑에 외국인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대표 감독으로 영입할 정도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장일 것이기 때문에 배울 점은 많을 것입니다. 축구에 대한 마인드부터 시스템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플러스 요인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이나 남미와 문화가 많이 틀립니다. 문화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런 게 있어요. 우선 외국인 지도자들은 한국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독특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죠. 마이너스 요인입니다. 반면 국내 지도자는 선수들에 대한 파악은 기본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죠.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축구에 대한 지식 등에서는 외국 지도자에 떨어질 수 있죠. 그렇다고 외국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유럽축구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언젠가는 국내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림픽 대표팀 박성화-홍명보 체제는 이해해야 할 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대표팀 코칭 스태프 선임 과정에 대해선 그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박성화 감독은 능력이나 자격면에선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충분한 지도자입니다. 다만 부산 감독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리를 옮겨 문제가 되지만 급박한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라를 위해 큰 일이 있다고 부르는데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때 홍명보 감독-서정원 코치 체제가 거론된 것을 묻자 조금은 어이없어 했다. “어떤 기자분이 혹시 코치로 가는게 아니냐고 묻길래 웃어 넘겼거든요. 근데 바로 기사화되더라구요. 사실 그런 부분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일을 할만한 능력도 안되거든요. 명보 형은 잘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바뀌는 와중에 고생도 많이 하고 있죠. 그만큼 명보 형을 믿고 따르는 선수와 팬들이 많습니다. 조금 더 고생하시라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홍명보 퇴장당한 한일전 분위기 이해하고도 남아...요즘 선수들과 다른점 홍명보 올림픽 감독 대세론이 꺾인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된 2007 아시안컵 한일전 퇴장건에 대해선 그는 홍 코치를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우리 때만 해도 한일전은 어디가 부러져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언론, 선배 들 모두 한일전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죠. 선수들의 각오도 그랬습니다. 정신적인 부담감은 두배였습니다. 그라운드에 서면 우리 선수들의 눈동자부터 일본 선수들과 차이가 났습니다. 압도했죠. 이러니 질수가 없었습니다. 공을 다투는 상황에선 부러지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다리를 갖다댔습니다.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었습니다. 우리는 한일전에서 지면 죽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라가 부른다면, 원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도 많지만 예전에는 명예밖에 없었습니다. 신세대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동료 선배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 ▲ 서정원 [사진=김정욱 기자]▲지도자 수업은 맨유 같은 명문 클럽이 아닌 레딩처럼 크는 팀에서 지도자 수업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와 함께 유럽 각국 클럽들을 순회하면서 지도자, 관계자와 직접 미팅을 통해 노하우를 익히는 일을 병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등 명문 클럽 등을 우선 찾지는 않을 계획이다. “톱 클래스의 팀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최고의 감독이 이끌고 있습니다. 성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런 클럽들을 우선 보고 싶어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중간 정도나 하위 수준의 팀들 가운데 어려운 상황에서 치고 올라오는 팀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각 리그마다 그런 팀들은 언제나 있거든요. 어떻게 팀을 끌어 올리는지, 감독은 선수단을 어떻게 이끄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얻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그런 팀들과 연락을 해서 미팅도 하고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심리학 지도자 공부는 딱히 몇 년이라고 정해놓고 있지는 않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 자격증도 따야 하고 여러 클럽을 다니면서 보고 배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시간이 나니까’라며 모든 것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리고 그는 심리학을 강조했다. 그동안의 선수 생활, 특히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절실하게 그 필요성을 느낀 듯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럽 클럽들의 훈련 프로그램은 비슷합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죠. 특히 주목할 것은 심리학을 중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명문 클럽들은 대부분 심리 전문가를 활용, 또 다른 것을 이끌어 냅니다. 가령 심리 전문가들은 매 경기를 직접 보면서 선수들의 행동을 파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경고를 받고, 또 실수를 하는지 우선 그라운드에서 지켜 봅니다. 그 상황을 알아야 선수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처방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팀이 좋을때와 그렇지 않을때 그 이유를 선수들과 토론하고 선수들의 의향을 들으면서 리포트를 작성하면 감독이나 선수 모두 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사실 감독이 이 모든 일들을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파악하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이럴때 심리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죠. 사실 이런 심리 전문가는 한국 축구에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유럽에 비해서 지도자와 선수간에 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선수들이 가진 것을 120% 발휘하게끔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문가는 국가대표급 뿐만 아니라 학원 스포츠에도 보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 그는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했다. '국가대표 감독이 목표인가'라는 물음에 내놓고'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세우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가슴에 태극기를 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처럼 멀리, 그리고 크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비단 축구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 종사하건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계속 노력할 수 있으니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도자 공부를 마치고 돌아 올때는 뭔가 잡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죠. 그리고 팀을 맡으면 항상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팬이 없으면 축구가 살수 없으니까요.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섰을때 팬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경기력에 차이가 납니다. 관중석이 썰렁하면 맥이 풀리지만 가득차 있으면 없던 실력까지 나옵니다. 이것도 심리적인 측면이죠.” 여기서 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K리그에 실망스러워 하는 팬들에게는 경기장을 한번이라도 더 찾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오면 선수들의 플레이도 달라지니까요.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면 그만큼 K리그 수준도 올라갑니다.” 서정원은 주위 사람들이 유럽에서 지도자 공부를 한다고 하면 부러워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했다. 강하게 마음을 다져 놓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고 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 등의 어려운 용어도 익혀야 하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자신을 불러준 옛스승 김호 대전 감독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조만간 인사를 하러 대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서정원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매사 좋은 점만을 찾아 받아들이려 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몇 년 후 일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축구가 바라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서정원은 당초 지난 8일 오스트리아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밀려드는 행사 초청을 마다할 수 없어 오는 28일께로 출국 일정을 미뤄 놓았다. ◇서정원은 누구? 생년월일: 1970년 12월 17일 출생지: 경기도 광주 키: 173㎝ / 체중: 67㎏ / 혈액형: AB형 취미: 여행, 음악감상 존경하는 인물: 데트마르 크라머 (92년 올림픽 한국 대표팀 감독) 가족: 부인 윤효진(34)씨와 아들 셋 출신교: 남한산초-연초중-거제고-고려대 대표 경력:청소년(1987~1988) 올림픽(1992) 월드컵(1994, 1998) 프로 경력:럭키 금성(1992)-프랑스 스트라스부르(1997~1998)-수원 삼성(1999~2004)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2005)-오스트리아 SV 리트(2005~2007) A매치 데뷔: 1990년 7월 27일 다이너스티컵 일본전 A매치 데뷔골:1990년 9월9일 호주와의 평가전 A매치 기록: 85경기 출전, 16골 K리그 기록: 269경기 출전 68골 25도움 ▶ 관련기사 ◀☞[서정원과 딥 토크 1] 잊을 수 없는 프랑스 교민의 눈물☞[서정원과 딥 토크 3] 신선한 충격 안긴 크라머 감독☞[서정원과 딥 토크 4] 서정원의 은퇴, 바르셀로나 올림픽 세대의 퇴장
- 미나 "월드컵, 섹시 꼬리표 이제 그만....노래듣고 평가했으면"
- [이데일리 최은영기자] '월드컵 가수', '섹시 가수' 미나가 변했다. 업타운의 정연준이 프로듀싱을 맡은 4집 앨범 '미나스타샤'가 바로 그녀의 터닝포인트다. 새 앨범에서 미나는 '섹시'라는 오래된 옷을 벗고 '힙합'으로 과감히 새 옷을 갈아 입었다. '월드컵 가수'라는 수식어도 가수 미나에겐 더이상 필요치 않은 듯 보였다. 그래서 정한 새 앨범의 타이틀이 '미나스타샤(Minastasia)'다. 미나스타샤는 미나와 아나스타샤를 합성한 단어로 부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미나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따라 붙었던 가수 이외의 타이틀은 모조리 다 잊어달라"며 변신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 "왜 못 벗어 안달이냐"던 안티팬 사라져 쇼케이스를 통해 화려하게 컴백을 알린지 보름여. 미나는 컴백 초반 음반 프로듀서인 정연준과의 열애설을 비롯, 거짓 나이 논란까지 연이어 구설수에 휘말리며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미나가 가수로 인정받길 꿈꾸며 오랜시간 음악에 공들여온 약발은 뒤늦게나마 비로소 제 효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섹시'를 버리기로 마음 먹고 저 또한 내심 얼마나 많이 불안했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역시 가수는 이미지가 아닌 노래로 평가받아야 행복한 것 같아요. 섹시 이미지를 털고 나니 안티팬은 대폭 줄고, 대신 그간 없던 여성팬이 눈에 띄게 늘었죠. 7월 4주차 방송횟수에선 타이틀곡 '룩(Look)'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답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요즘 들어 한꺼번에 보상 받는 느낌이에요." 미나는 변신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 올 초 정연준과의 만남... 가수로의 제2의 인생 열어줘 가수에게 있어 프로듀서는 새 음반의 흥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가수 미나도 프로듀서로 나서준 업타운의 리더인 정연준이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가수로의 모양새를 뒤늦게나마 갖춰 보일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정연준씨를 만나고 제 가수로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흑인음악도 할 수 있게 됐구요, 음악적으로 이름난 유명한 세션 및 랩퍼들과도 난생 처음 작업을 다 해봤네요. 정연준씨는 원래 곡을 아무한테나 안주시는 분으로도 유명하신데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해주셨으니 저로선 영광일 밖에요." ▲ 미나정연준과 가수 미나가 만나 의기투합한 건 올 1월. 당시 정연준은 힙합, R&B 전문 기획사 몹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함께 일할 소속 가수를 물색 중이었고, 미나는 3집 앨범 활동 당시 소속사와의 마찰로 고배를 마신 뒤 새로운 소속사 및 프로듀서가 절하던 찰나였다. "몇해전 절친한 동생의 생일 파티에서 정연준씨를 처음 만났어요. 그러다 정연준씨가 새로운 기획사를 차리는데 소속 가수를 물색 중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는 동생을 통해 넌즈시 의사를 타진해봤죠. 처음에는 '댄스가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가능할까 했는데 흔쾌히 요청에 응해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나중에 물어보니 제 노력하는 모습에서 가수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더군요." '섹시 가수' 미나의 '힙합 여전사'로의 변신은 그렇게 성사됐다. 미나는 불편하기 그지 없던 짧은 치마와 굽 높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대신 헐렁한 청바지에 간편한 운동화 차림으로 꿈에 그려온 가수로의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 4집 앨범으로 아시아 스타로도 거듭날 터 가수 미나의 4집 앨범 타이틀 '미나스타샤'에는 미나의 가수로의 부활 이외에도 '미나 스타 아시아(Mina Star Asia)'란 뜻도 내포돼 있다. 데뷔곡 ‘전화받어’로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던 미나는 이번 4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중국에서 뜨거운 러브콜도 받아냈다. 미나는 "중국팬들의 요청에 앨범 재킷 촬영까지 다시 해야 했을 정도"라며 섹시 이미지를 무대에서는 물론 앨범 재킷에서까지 완전히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배경을 밝혀 보이기도 했다. 미나는 이미 이번 앨범 타이틀곡 '룩'을 비롯, 2곡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등 다섯가지 언어로 녹음을 다 끝마쳐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미나는 "중국에서도 곧 새 음반이 출시될 예정으로 있다"며 "국내활동을 마치면 아시아 지역을 돌며 프로모션을 벌일 계획"이라고 아시아 진출에 대한 남다른 포부도 밝혀 보였다. (사진=김정욱 기자) ▶ 관련기사 ◀☞[VOD]음악적인 모험, 확 변해 돌아온 미나 인터뷰☞미나 "수줍음 많지만 빠지면 물불 안가려...결혼은 마흔살에"☞[포토]섹시지존 미나, '4집 앨범 쇼케이스 열어'☞[포토]미나, '란제리룩 입고 부비부비~'☞미나 측 "정연준과는 친한 친구일 뿐"...연인설 다시 부인
- 미나 "섹시 벗고 나니 안티팬 줄고 여성팬 늘었어요"
-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월드컵 가수', '섹시 가수' 미나가 변했다. 업타운의 정연준이 프로듀싱을 맡은 4집 앨범 '미나스타샤'가 바로 그녀의 터닝포인트다. 새 앨범에서 미나는 '섹시'라는 오래된 옷을 벗고 '힙합'으로 과감히 새 옷을 갈아 입었다. '월드컵 가수'라는 수식어도 가수 미나에겐 더이상 필요치 않은 듯 보였다. 그래서 정한 새 앨범의 타이틀이 '미나스타샤(Minastasia)'다. 미나스타샤는 미나와 아나스타샤를 합성한 단어로 부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미나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따라 붙었던 가수 이외의 타이틀은 모조리 다 잊어달라"며 변신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 "왜 못 벗어 안달이냐"던 안티팬 사라져쇼케이스를 통해 화려하게 컴백을 알린지 보름여. 미나는 컴백 초반 음반 프로듀서인 정연준과의 열애설을 비롯, 거짓 나이 논란까지 연이어 구설수에 휘말리며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미나가 가수로 인정받길 꿈꾸며 오랜시간 음악에 공들여온 약발은 뒤늦게나마 비로소 제 효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섹시'를 버리기로 마음 먹고 저 또한 내심 얼마나 많이 불안했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역시 가수는 이미지가 아닌 노래로 평가받아야 행복한 것 같아요. 섹시 이미지를 털고 나니 안티팬은 대폭 줄고, 대신 그간 없던 여성팬이 눈에 띄게 늘었죠. 7월 4주차 방송횟수에선 타이틀곡 '룩(Look)'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답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요즘 들어 한꺼번에 보상 받는 느낌이에요." 미나는 변신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 올 초 정연준과의 만남... 가수로의 제2의 인생 열어줘 가수에게 있어 프로듀서는 새 음반의 흥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가수 미나도 프로듀서로 나서준 업타운의 리더인 정연준이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가수로의 모양새를 뒤늦게나마 갖춰 보일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정연준씨를 만나고 제 가수로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흑인음악도 할 수 있게 됐구요, 음악적으로 이름난 유명한 세션 및 랩퍼들과도 난생 처음 작업을 다 해봤네요. 정연준씨는 원래 곡을 아무한테나 안주시는 분으로도 유명하신데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해주셨으니 저로선 영광일 밖에요." ▲ 4집 '미나스타샤' 발표하고 타이틀곡 '룩'로 활동에 나선 가수 미나정연준과 가수 미나가 만나 의기투합한 건 올 1월. 당시 정연준은 힙합, R&B 전문 기획사 몹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함께 일할 소속 가수를 물색 중이었고, 미나는 3집 앨범 활동 당시 소속사와의 마찰로 고배를 마신 뒤 새로운 소속사 및 프로듀서가 절하던 찰나였다. "몇해전 절친한 동생의 생일 파티에서 정연준씨를 처음 만났어요. 그러다 정연준씨가 새로운 기획사를 차리는데 소속 가수를 물색 중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는 동생을 통해 넌즈시 의사를 타진해봤죠. 처음에는 '댄스가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가능할까 했는데 흔쾌히 요청에 응해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나중에 물어보니 제 노력하는 모습에서 가수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더군요." '섹시 가수' 미나의 '힙합 여전사'로의 변신은 그렇게 성사됐다. 미나는 불편하기 그지 없던 짧은 치마와 굽 높은 구두를 벗어 던지고, 대신 헐렁한 청바지에 간편한 운동화 차림으로 꿈에 그려온 가수로의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 4집 앨범으로 아시아 스타로도 거듭날 터 가수 미나의 4집 앨범 타이틀 '미나스타샤'에는 미나의 가수로의 부활 이외에도 '미나 스타 아시아(Mina Star Asia)'란 뜻도 내포돼 있다. 데뷔곡 ‘전화받어’로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던 미나는 이번 4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중국에서 뜨거운 러브콜도 받아냈다. 미나는 "중국팬들의 요청에 앨범 재킷 촬영까지 다시 해야 했을 정도"라며 섹시 이미지를 무대에서는 물론 앨범 재킷에서까지 완전히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배경을 밝혀 보이기도 했다. 미나는 이미 이번 앨범 타이틀곡 '룩'을 비롯, 2곡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등 다섯가지 언어로 녹음을 다 끝마쳐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미나는 "중국에서도 곧 새 음반이 출시될 예정으로 있다"며 "국내활동을 마치면 아시아 지역을 돌며 프로모션을 벌일 계획"이라고 아시아 진출에 대한 남다른 포부도 밝혀 보였다. (사진=김정욱 기자) ▶ 관련기사 ◀☞[VOD]음악적인 모험, 확 변해 돌아온 미나 인터뷰☞미나 "알고보면 저 수줍음 많은 여자예요"☞[포토]섹시지존 미나, '4집 앨범 쇼케이스 열어'☞[포토]미나, '란제리룩 입고 부비부비~'☞미나 측 "정연준과는 친한 친구일 뿐"...연인설 다시 부인 ▶ 주요기사 ◀☞'디 워' 오늘 300만 넘는다...개봉 6일만의 기록☞서연 "날 기억할까' 하는 두려움, 데뷔 때보다 더 떨려"☞[1316 몰려온다]새 문화권력 '로우틴(lowteen)'을 아시나요☞[PD열전]'게임 즐기고 꿈 이루고' 온게임넷 김진환 PD☞휘성, 앨범 발매 앞두고 조깅 헬스로 6kg 감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