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6,192건

(오늘의차트)코스피 1000 `잔혹史`
  • (오늘의차트)코스피 1000 `잔혹史`
  • [이데일리 유환구기자] 코스피와 1000이라는 숫자의 질긴 인연은 마치 잔혹사에 가깝다. 출발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코스피는 3년 동안 5배가 껑충 뛰어오르며 처음으로 1000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이는 16년 동안 이어진 기나긴 좌절과 낙담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코스피는 세차례에 걸쳐 호기롭게 1000돌파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불발탄에 그치고 만다. 그 사이 국내 증시는 외환위기(1997년), 대우사태(1999년), 코스닥 거품(2000년), 카드채 사태(2003년)를 잇달아 겪었다.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투자자들이 겪었던 좌절과 손실을 누군가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마의돌담(Stonewall)`으로 알려진 버지니아 프레드릭스버그 외곽 메리스 고지를 둘러싼 피의 전투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2005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드디어 코스피가 1000선을 뚫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뿐 아니었다. 코스피는 내친김에 2000까지 돌파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쳤다. 이제 1000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새로운 신천지가 열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2008년 또 한번 믿기 힘든 일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정확히 1년 만에 코스피는 반토막이 났고, 다시 세자릿수로 돌아갔다. 질곡의 16년 세월을 딛고, 지난 3년 동안 쌓아올린 역사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신화는 없다`. 공교롭게는 이 말은 올해 새로 취임한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결과는 미지수다. 누군가는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통에 불과하달지 모른다. 누군가는 지난 3년 동안 달콤한 꿈을 꾸었을 뿐이라고 한탄할테다. 정답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아래는 지난 20년 동안 코스피의 주가 차트다. 빨간줄=코스피 1000 
2008.10.27 I 유환구 기자
'드라마 대부' 신현택 회장, "스타에 목 매지 않는다"
  • [엔터테인 파워리더②]'드라마 대부' 신현택 회장, "스타에 목 매지 않는다"
  • ▲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은 '최초' 또는 '최고'라는 타이틀을 한평생을 달고 살았다.   신 회장은 국내 비디오 시장은 물론, 드라마 외주 제작 시스템을 개척한 산증인으로도 꼽힌다. 신 회장이 영상 콘텐츠 제작 사업에 뛰어든 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국내 최초의 비디오 전문 프로덕션 삼화를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1981년 9월22일 문화관광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영상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영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할 때다. 외화를 수입해 더빙을 입혀 국내 항공사에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신 회장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그렇게 비디오로 제작한 외화만도 총 3천여 편에 달한다. 그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로 비디오 시장의 활성화에 앞장섰다. 신 회장은 "비디오 세대를 경험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삼화의 비디오를 보고 자랐을 것이다"며 흐뭇해했다. 영상 제작에 비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신 회장은 음반 산업에 투신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포니캐년과 손을 잡고 음반사 삼포니를 설립해 7년간 합작회사로 운영하다 본격적인 드라마 제작 산업에 뛰어들었다. 1986년 KBS TV문학관 '저 은하에 내 별이'가 외주 제작 드라마, 그리고 신 회장의 드라마 제작 외길의 시초가 됐다. 그러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춘향전’, ‘심청전’, ‘배부장전’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외주 제작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춘향전'을 통해선 고등학교 2학년의 앳된 김혜수가, 심청전에선 고3 소녀 하희라가, 배부장전을 통해선 조연 인생을 걷던 김명곤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첫 주연을 맡으며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신 회장은 당시 '배부장전'의 조연출을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맡았었다는 깜짝 일화도 공개했다. 신 회장은 단막극에서 특집극, 그리고 미니시리즈, 일일극으로 드라마 제작 폭을 차츰 넓혀갔다. 신 회장의 미니시리즈 첫 작품이었던 고두심 주연의 8부작 '남편의 여자'는 평균 시청률 42%의 놀라운 인기를 누렸다. 이것이 대박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를 필두로 신회장은 지금까지 '아내' '불꽃' '목욕탕집 남자들' '명성황후' '애정의 조건' 부모님전상서' 등 화제작들을 꾸준히 양산해내며 지금껏 총 51편, 편수로는 3000여회에 달라는 드라마를 제작해냈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는 사이, 그의 드라마를 통해서는 무수히 많은 스타들도 배출됐다. '목욕탕집 남자들'의 김희선, SBS '작별'의 고현정, '불꽃'의 이영애, 차인표, '아름다운 그녀'의 이병헌까지. 때문에 그는 스타에 목을 매는 법이 없다. 스타의 자질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스타로 만들면 그뿐이다. 신 회장은 매 드라마마다 주연급 배역에 신인을 꼭 한명씩 끼워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좋은 연기자를 배출해 내는 일 또한 제작자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자신이 스타를 키웠다 식의 특권의식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설사 드라마가 히트를 기록하고 그 속에서 스타가 탄생됐다 하더라도 그건 작가와 PD, 그리고 연기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이룬 결실이지 어느 한 사람만의 노고랄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27년 전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어느덧 문화인이 되어 버렸다"는 신 회장. 그는 “우리나라 사람만큼 예술성이 강한 국민이 또 없다”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한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이고, 그런 드라마는 국경을 초월해 사랑 받게 마련이다"며 자신만의 드라마 철학을 거듭 강조해 말했다.  (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엔터테인 파워리더①]'엄뿔' '조강지처'...'삼화' 신현택 회장의 성공비결☞[엔터테인 파워 리더ⓛ]조동원 제이튠 대표 "가수 비가 '복권'이다"☞[엔터테인 파워 리더③]비, 그리고 제이튠의 2008 글로벌 프로젝트☞[엔터테인 파워 리더②]제이튠은 '비의 세계화' 위한 꿈의 터전
2008.10.25 I 최은영 기자
'엄뿔' '조강지처'...'삼화' 신현택 회장의 성공비결
  • [엔터테인 파워리더①]'엄뿔' '조강지처'...'삼화' 신현택 회장의 성공비결
  • ▲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사진=김정욱 기자)[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삼화네트웍스 신현택 회장(63)이 걸어온 길은 숨가쁘다. 굳이 '아내' '불꽃' '목욕탕집 남자들'처럼 멀리 보지 않아도 좋다. '하늘만큼 땅만큼'을 비롯, 얼마 전 종영한 '조강지처클럽' '엄마가 뿔났다'까지 올 한해만도 시청률 30~40%대의 대박드라마를 세 편이나 성공시켰다. 신현택 회장의 성공신화는 한국 드라마사에 기록으로 남을 만 하다. 거의 모든 드라마 제작사가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있는 요즘이다. 외주 드라마 제작사 대표들은 현 상황을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는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사들이 처한 현실은 지난해 상반기 최대 화제작이었던 '쩐의 전쟁'을 비롯, 하반기 안방극장을 주도했던 '태왕사신기', 올해 월화드라마 시장을 평정했던 '이산'의 연기자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도 확인된 바 있다.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이 처한 곤란은 시청률로 대표되는 드라마의 인기와도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신 회장이 이끄는 삼화네트웍스만큼은 예외다. 시청률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삼화네트웍스는 드라마 제작 환경이 최악에 달했다는 올해는 물론, 지난 26년간 단 한번의 손해 없이 연속 흑자를 기록, 이익 남는 장사만을 해왔다. 물론 비결은 있다. 삼화네트웍스의 최대 무기는 김수현을 비롯한 16명의 작가군단. 신현택 회장 또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드라마 제작에 있어 작가의 중요성, 이야기의 힘에 대해 거듭 강조해 말했다. 드라마 제작은 시대 기준에 맞춰야 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드라마 왕국' 삼화, 신 회장의 드라마 제작 철칙이다. 드라마는 작가의, 영화는 감독의,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신 회장은 바로 기본에 충실한 드라마 제작으로 성공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신 회장은 또 김수현 작가에 대한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1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작가다"고 김수현 작가를 평가한 신 회장은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는 '목욕탕집 남자들'이 95년 작품이다"며 "10여전이 지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김수현의 드라마는 클래식이다"고 김 작가를 치켜세웠다. 신 회장은 또 스타 마케팅을 하지 않는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들의 위기를 부른 제 1의 원인으로는 편당 수천만원, 혹은 억대를 호가하는 연기자들의 출연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사진=김정욱 기자)이런 현실에 대해 신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난해 인기를 모은 한 스타급 연기자의 편당 출연료가 7천만원을 호가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스타가 없으면 어떤가. 작품 속 캐릭터로 스타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주인공의 회당 출연료로 1100만원 이상을 줘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올해도 바쁜 행보를 이을 예정으로 있다. 지난해 한중 합작 드라마 '미로'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올해 100억 예산이 소요되는 한일 합작 드라마 ‘텔레시네마’를 준비 중인데 이 프로젝트에서도 신 회장은 작가의 중요성에 무게를 뒀다. ‘텔레시네마’는 일본의 인기 작가와 한국의 제작진, 출연진이 함께 하는 한일 합작 프로젝트. 극장, TV에서 모두 상영될 예정이며 일본에서도 극장, 방송, DVD 등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 소개할 예정으로 있다. 신 회장은 이를 위해 지난 6월 이미 일본 각본가 7인과 집필 계약도 끝마쳤다. ‘텔레시네마’ 중 첫 번째 작품 ‘천국의 우편 배달부’는 이미 캐스팅까지 마친 상태로 10월말 촬영에 들어간다. ‘천국의 우편 배달부’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PD가 연출을, 일본의 멜로 여왕이라 불리는 유명 작가 기타자와 에리코가 극본을 맡았으며, 동방신기의 영웅재중과 한효주가 남녀 주인공으로 각각 캐스팅됐다. 신 회장은 “드라마의 질을 높이는 것 이상으로 시장 전체의 파이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며 “‘텔레시네마’는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엔터테인 파워 리더②]'드라마 대부' 신현택 회장, "스타에 목 매지 않는다"☞[엔터테인 파워 리더ⓛ]조동원 제이튠 대표 "가수 비가 '복권'이다"☞[엔터테인 파워 리더③]비, 그리고 제이튠의 2008 글로벌 프로젝트☞[엔터테인 파워 리더②]제이튠은 '비의 세계화' 위한 꿈의 터전
2008.10.25 I 최은영 기자
예능 프로에서 이미지 변신한 탤런트 양정아
  • 예능 프로에서 이미지 변신한 탤런트 양정아
  • [조선일보 제공] 표독스럽고 차가운 여자 '소라 엄마', 알고 보니 결혼 위해 자존심 다 버리고 후배들과 나뒹구는 '소탈녀'였다. 탤런트 양정아(37)가 최근 방송을 시작한 SBS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를 통해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로맨틱한 결혼을 꿈꾸는 여자 연예인들 6명의 맞선 현장을 보여주는 이 코너에서 그는 맞선 기회를 얻기 위해 후배들과 거침 없는 몸싸움을 벌이며 망가지기 일쑤. 출연자 중 최연장자인 양정아는 "드라마에서 '알깍쟁이'처럼 보이던 제가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침대에 퍼져 누워 있기를 즐기는 '생활인' 양정아에게 붙여진 별명은 '저질 체력'. "하루 종일 카메라가 저를 따라다니니까 드라마 촬영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힘들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김수현의 히트작 '엄마가 뿔났다' 속 악역 '소라 엄마'로 주목받았던 그는 데뷔 초 장동건, 심은하와 어깨를 나란히 할 뻔했던 청춘 스타 출신이다. '우리들의 천국', 'M', '종합병원' 등에서 그는 신인급이었지만 당당한 주연이었다. "탄탄대로였죠. 팬 레터가 하루에 200~300통씩 왔고. 학생들, 휴가 나온 군인까지 집 앞에 몰려들었으니까요. 일이 너무 쉽게 풀리니까 연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었고 연구도 하지 않았어요. 또 주연급이 아니면 출연 제의도 사절이었죠." 당시 그에게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캐스팅 제의도 왔었다. 주인공인 신애라 친구 역. '잘나가던' 그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 안 하겠다고 했었다"며 "그래서 방송사 감독님들한테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PD는 그에게 "앞으로 너는 큰 배우가 되지 못하겠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과연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양정아는 슬럼프를 겪었다. 주연급 출연 제의는 줄고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2년여간 그는 활동을 중단했다. 2000년대 접어들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비호감' 연기를 더 반가워했다. 삼겹살집을 운영하며 몸뻬 바지를 입고 남편과 수시로 육탄전을 벌이던 SBS '아내의 반란'(2005년) 속 필순 역할은 그 대표적 캐릭터. "제가 생각하는 '양정아'와 대중이 생각하는 '양정아'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길었던 거죠. 이제 난 스타가 아니라 연기자니까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그는 아직 '큰 배우'는 아니지만 '꾸준한 배우'까지는 성장했다. 부모님과 함께 용인 수지에 사는 그는 3년여 전 한 집에 살던 어린 조카를 목욕탕, 놀이터 등에 데리고 다니며 직접 키우다시피 해 동네에 "양정아 숨겨놓은 아들이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결혼이 꿈이다. 하지만 그는 "여배우라는 좋은 직업 또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결혼과 상관 없이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월가 生과 死)②패니·프래디 "일부는 정부가 자초한 불"
  • (월가 生과 死)②패니·프래디 "일부는 정부가 자초한 불"
  • [이데일리 양미영기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그랬다. 그들의 몰락에는 스스로의 독단 외에도 `돈 없는 대출자의 꿈을 이루게 하라`는 정부의 강압과 돈을 불려달라고 아우성치는 투자자, 우리도 대출 좀 해달라는 신용도 낮은 고객들까지 온갖 이해가 점철돼 있었다.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은 최근 숨가쁘게 벌어진 신용위기 제2막을 연 사실상의 장본인이다. 베어스턴스 사태 이후 대형 금융기관의 도산은 잠잠한 듯 했지만 그 사이에도 위기의 싹은 빠르게 움텄다. 금융기관들은 그럭저럭 신용위기를 이겨내가고 있었지만 사실상 신용관련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한가운데 패니메이와 프래디맥 역시 있었다.신용위기가 주택시장으로부터 파생된 것을 감안하면 정부 보증성격의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위기도 거를 수는 없는 결과였다. 패니메이는 정부의 구원의 손길을 받기전 1분기 적자로 전환했고 프래디맥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무너질 때부너 그들의 운명의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아갔다. 정부가 긴급 구제책을 결정했던 `9월`이라는 시기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 신용손실 눈덩이..적자전환의 온상 두 기업이 국유화되기 바로 한달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만 해도 증시 전문가들은 두 기업이 국유화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 자본조달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 출처:Keefe, Bruyette & Woods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두 기업을 시작으로 금융기관들의 도산과 자본조달에 합종연횡이 잇따른 것은 물론 곪았던 상처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같았다. 패니메이는 지난 5월 1분기 적자를 만천하에 고했다. 강한 매출 성장을 보였지만 신용 손실과 보유 중인 유가증권들에 크게 난 흠집이 문제였다. 2007년부터 패니메이 실적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첫 손실을 기록한 지난 1분기 실적도 마찬가지였다. 순이자수익과 수수료가 20% 이상 급증했지만 신용관련 지출이 전체 매출의 85.9%를 차지하면서 신용 리스크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시에도 주택시장은 계속 가라앉고 있었고 집값은 20% 이상 떨어졌다. 이들이 떠안고 있는 보증사업의 손실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럼에도 불구, 증권사들은 기회가 위기를 제어해줄 것으로 믿었고 결과는 정반대였다. 프레디맥 역시 올 1분기 첫 분기 손실을 기록한다. 예상치보다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긴 마찬가지였다. 프레디맥의 파생상품 손실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패니매가 주당 3달러에 근접한 반면, 프레디는 25센트 정도 손실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레디맥도 신용손실이 막대하게 늘어나 있었다. 4분기 보증대출의 5.4bp(=0.054%포인트)에 불과하던 신용손실은 11.6bp까지 두배이상 증가했다. 두 기업의 가장 큰 위협은 그들이 쌓아놓은 레버리지다. 둘 모두 미국 모기지 분야에서 최상의 신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2003년~2007년 모기지 대출 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미국의 빠른 주택시장 침체로 모든 모기지 포트폴리오에서 신용손실이 전례없던 수준까지 급증하며 두 배를 한꺼번에 침몰시켰다. ◇ 도대체 어떤 구조길래..태생부터 위기 잉태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는 `정부보증기업(GSE)`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 액면상 두 모기지업체가 발행하거나 보증을 서는 채권은 모두 미국 정부가 보장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완전한 정부 보증기업이라기보다는 미국 정부로부터 상당한 혜택을 입고 있는 민간회사로 보는 것이 맞다. ▲ 출처:소시에떼제네럴그러나 둘 모두 미국 정부가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기업임에는 확실하다. 미국 모기지 부채의 근 절반이 이들 두 기업에 의해 보증되거나 보유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용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두 기업의 역할은 모기지 매커니즘을 떠받치는 것으로 실로 중대했다. 두 기업이 파산할 경우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두 기업의 채권들도 고스란히 리스크를 떠안게 되거나 유동화가 힘들어지게 됨을 의미했다.  정부의 구제금융에 앞서 이들 두 기업은 3월에 200억 달러의 자본조달에 일단 성공한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납세자들은 그 의미를 몰랐다. 이들이 채권을 발행하게되면 그만큼 금리는 높아지고 달러값은 떨어져 결국 정부로서도 부담해야 할 이자나 재정적자 부담은 늘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 출처:소시에떼제네럴게다가 두 기업 모두 태생부터 한계를 내포했다. 이미 2002~2003년에도 정부보증모기지업체에서 작은 위기는 몇차례 나타났지만 응집력있는 정책은 없었다. 또한 세계2차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나타난 주택시장 하강 흐름에서 두 모기지업체의 자본 구조는 단 한번도 시험받지 못한 상황을 겪게 되고 만다.  ◇ 정부의 몰아붙이기식 모기지장려..CEO 오판이 `결정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인들이 주택대출을 싸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다. 대출자나 은행들로부터 모기지를 사들여 보유하거나 월가에 되파는 방식이었다. 어찌보면 집 없는 서민들의 꿈을 이뤄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메커니즘은 은행들의 대출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는다. 게다가 정부는 이들이 잠재적인 위험을 떠안도록 유도했다. 패니메이의 경우 2004년 새로 부임한 다니엘 머드 사장이 그 중심에 있다. 주택시장이 활발했던 당시 미국 의회 의원들은 패니메이가 저소득자에게도 대출하도록 독려했고, 대출자들의 요구도 거셌다.  머드는 정부에 너무 충성스러운 선택을 한 나머지 빌려준 돈을 결국 떼일 것이라는 관리자들의 경고를 한 귀로 흘러버렸다. 패니메이의 경우 2005~2008년 사이 직전 연도들보다 3배나 많은 2700억 달러의 각종 부채들을 보증하거나 사들였다. 패니메이 대출담당 이사였던 마크 고트는 "당시 우리는 무엇을 사고 있는지 몰랐다"며 "회사는 플레이 바닐라 론(단순한 대출)을 사들이는 시스템이었지만, 우리는 회사에 초콜릿 선디를 계속 주입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특히 대출 보증 시스템을 위해 이들이 구축해 놓은 광범위한 프로그램과 수학적 공식들은 오히려 이들의 자만심을 키웠다. 2000년 패니메이는 2조 달러의 엄청난 저소득층 대출을 사들이기로 결정했고, 엄청난 수수료 수익를 챙겼다. 경쟁사들은 이들을 통제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지만 정부는 집을 보유하려는 미국인들의 꿈을 짓밟아서는 안된다며 대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미 전방위적으로 사들인 대출들의 위험도는 이들의 능력 밖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패니메이의 수용가능한 주택 목표를 되려 화끈하게 늘려줬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개월전부터 머드 사장 주변의 관리자들은 시장 자체가 너무 과열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같은 경고들은 일찌감치 퇴짜를 맞았다. ◇ 절대 죽게 놔두지 않는다.."정부 구원 확신"두 업체의 운명은 GSE 채권들의 운명과 직결된다. 구제 결정 당시 금융시장의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5조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포함, 7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보증업체(GSE) 채권에 투자하고 있었다.  미국 상업은행을 포함한 대형 기관들이 보유한 GSE관련 채권 규모는 1조달러에 달했고, 퇴직연기금과 보험사, 미국 주택구입자와 브로커딜러까지 투자 계층은 다양했다. 은행들의 GSE익스포저가 1조달러에 달한다는 것은 두 기업의 부도시 발생할 수 있는 파급력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수준임을 의미한다. 7~8년전 패니메이가 잘나갔을 무렵 미국내 모기지의 40%를 사들이던 시기도 있었다. 2007월6월 당시 미국 외의 외국계 기관들의 익스포저 규모도 1조5000억 달러로 상당했다. 이 가운데는 미국 국채를 거머쥐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이 두 업체의 채권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만큼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는 않았던 셈이다. ◇모럴해저드 비판 안고 다시 시작 결국 불은 진화됐지만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패니메이와 프래디맥 구제 당시 몇주전부터 모기지 금리가 급등했지만 사실상 두 업체 구제에 따른 직접적인 부산물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주택시장 불안과 함께 정부보증업체(GSE) 신용 자체에 대한 불안이 이어졌다.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정부와 이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면도 컸다.   그렇다면 왜 하필 9월이었을까.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붕괴에 즉각적인 예금인출과 같은 펀더멘털적인 트리거는 없었다. 펀더멘털은 지속적으로 훼손돼 왔고 주가 하락 역시 부정적인 전망을 감지할 단순한 신호에 불과했다. 다만, 공포와 엄청난 매도로 인해 급락한 주가에 떠밀려 정부도 급하게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향후 이어진 위기를 막는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구원이 어떤 회사도 부실대출로부터 살아남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시장의 `히스테리`를 가속화시켰다. 수주뒤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AIG가 차례로 무너졌다.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이 발표된 후 패니메이와 프래디맥 역시 부실자산 매각 여부를 물색하고 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두 기업자산의 2~4% 가량이 부실자산으로 매각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향후 2~3년내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이 흑자전환이 기능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택시장의 향방에 달려 있고 최근 미국 당국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법적 조사 이후에는 지배구조 등이 바뀔 가능성도 상존한다.  현재 패니메이의 전직 CEO들은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유유자적하거나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지어놓은 별장을 넘나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만, 가장 최근에 사임한 패니메이의 CEO 머드는 주가급락으로 수백만달러를 허공에 날리는 대가(?)를 치렀다. 그는 최근도 잡(Job) 인터뷰를 위해 뉴욕 거리를 배회 중이다.
2008.10.22 I 양미영 기자
조 매든 감독의 뚝심과 김경문감독의 투수교체
  • [베이스볼 테마록]조 매든 감독의 뚝심과 김경문감독의 투수교체
  • ▲ 김경문 감독 [사진제공=두산베어스][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 일본과 함께 가을야구가 한창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조 매든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이 단연 화제다. 만년 꼴찌 팀이었던 탬파베이를 아메리칸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사상 첫 월드시리즈 무대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매든 감독은 단순히 야구만 잘해서 유명한 것이 아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전략으로 심심찮게 화제에 오르고 있다. 만루 위기에서 상대 타자(조시 해밀턴)를 고의 사구로 거르는 파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간)보스턴과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서도 매든 감독의 뚝심 야구를 엿볼 수 있었다. 탬파베이가 2-1로 앞선 7회초, 선발 맷 가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사 후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며 1,2루. 가자의 투구수는 100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매든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모두들 투수교체를 예상했다. 그러나 매든 감독은 가자의 엉덩이만 두드려준 뒤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이날 경기서 최강의 집중력을 보여준 가자를 믿은 것이다. 결과는 대 성공. 가자는 마크 캇세이와 제이슨 베리택을 범타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매든 감독의 판단을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구분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매우 위험한 판단이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매든 감독의 이같은 뚝심과 믿음이 탬파베이를 강팀으로 변모시킨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21일 삼성과 플레이오프 5차전서 두번째 투수로 기용한 이재우를 밀어붙이는 용병술을 선보였다. 2점차로 추격당한 7회 2사 만루, 8회 2사 1,2루 등 절체 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9회 무사 1,2루가 된 뒤에야 투수를 임태훈으로 교체했다. 이재우의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8회 이닝 도중 만난 포수 채상병이 "직구 볼 끝에 힘이 떨어졌다"고 했지만 교체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다.  이재우가 8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올 경우 다음 투수인 임태훈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 그리고 이재우가 위기 상황을 넘겨낼 수 있는 배짱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더해진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두산은 이 경기를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결국 김 감독도 이재우도 모두 승자로 남게 됐다. 김 감독은 플레이오프 초반 자신의 색깔과 다른 야구를 했다. 특히 투수 교체 타이밍이 매우 빨랐다. "5이닝을 던지는 선발이 없다"는 한탄은 투수들의 기량이 떨어진 점도 있지만 김 감독의 빠른 선택도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플레이오프가 장기전 양상으로 펼쳐지며 김 감독은 다시 자신만의 야구로 돌아왔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게 만드는 우직한 경기 운영을 펼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매든 감독이 김 감독의 회귀(回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김 감독은 탬파베이의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을 지켜본 뒤 7회 상황에 대해 달뜬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교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가는 걸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결국 멋진 결말로 이어져 감동을 주더라. 노(老) 감독님께 또 한수 배웠다." 그날은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리는 날이었으며 이후 김 감독은 조금씩 자신만의 야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매든 감독과 김 감독의 가을야구는 아직 진행중이다.▶ 관련기사 ◀☞두산 김현수 김동주 쌍포 앞세워 5차전 승리...KS행 1승 남았다☞[PS 만약애(晩略哀)]이상목의 빛바랜 호투가 의미 있었던 이유☞[5차전]김경문 감독 "오늘 수훈 선수는 임태훈"☞[5차전]선동렬 삼성 감독 "5회 배영수가 욕심을 냈던 것 같다"☞김선우-진갑용 '우승으로 가는길에 남겨진 숙제'
2008.10.22 I 정철우 기자
'4집 마감' MC몽, 美-日 단독공연 러브콜 '쇄도'
  • '4집 마감' MC몽, 美-日 단독공연 러브콜 '쇄도'
  • ▲ 가수 MC몽[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4집 활동을 마감한 가수 MC몽이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잇따라 공연 제의를 받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MC몽의 소속사 관계자는 19일 이데일리SPN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3개월 전부터 단독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하지만 오는 12월까지 공연스케줄이 꽉 잡혀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MC몽은 지난 8월부터 서울, 인천에 이어 올 연말까지 대전, 대구, 울산, 부산 등 6개 도시에서 펼쳐지는 '몽이유랑단 전국일주' 콘서트를 이어간다.  이번 미국과 일본에서의 공연 계약이 성사된다면 MC몽은 꿈에 그리던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 이어 처음으로 해외 무대에서 단독공연을 펼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MC몽의 콘서트가 이제 조금씩 브랜드화 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특히 일본에서는 ‘논스톱4’와 한류스타 권상우와 함께 출연한 드라마 ‘슬픈연가’가 방송되면서 MC몽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고 전했다. 한편, 데뷔 10년만에 첫 전국투어 콘서트를 펼치고 있는 MC몽은 오프닝에 레이저쇼를 준비하고 공연 중 서커스 무대를 마련, 실제 동춘 서커스단을 초청하는 등 공연 기획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 관련기사 ◀☞MC몽 '초딩들의 우상은 바로 나'...콘서트장 초등학생들로 북적☞MC몽 "다시는 버스에서 담배 안필게요"…콘서트 '솔직담백' 말말말☞MC몽, 신개념 버라이어티 콘서트의 '1막1장'을 열다.☞MC몽, "전국투어, 김장훈 응원으로 자신감 얻었다"☞MC몽 "데뷔 전 쿨의 백댄서로 활동한 적 있다"
2008.10.20 I 양승준 기자
  • 포스코, `치밀한` 시작부터 `황망한` 탈락까지
  • [이데일리 정재웅기자] 지난 2006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한 지인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이 조만간 M&A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철강산업만으로는 향후 시장의 변화 속도에 발맞출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이 회장에게 대우조선해양은 포스코를 좀 더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곧바로 실무진에게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면밀한 스터디를 지시, 인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것이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준비의 첫 걸음이었다.포스코(005490)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노력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준비됐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사회조차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이 회장에게 가격 결정권을 위임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이 회장은 그동안 매주 월요일 실무진들에게 직접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사안들을 보고 받았다. 그리고 직접 사안을 챙기며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대우조선해양 인수시 시너지를 위한 방안으로 ▲우크라이나 업체와의 협력 ▲대우조선해양 망갈리아 조선소를 통한 유럽으로의 진출 모색 ▲광양제철소 부지에 조선기자재 공장 설립으로 일관제철소 건설 ▲대우엔지니어링·포스데이타와의 시너지 등 여러 세부사안들도 마련했다.하지만 이번 인수전은 포스코에겐 시련의 연속이었다. 인수전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돌발변수들이 튀어나왔고 결국 마지막 GS의 컨소시엄 철회라는 변수에 포스코는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대형 M&A인데다 포스코, GS, 두산, 한화, 현대중공업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참여해 업계 안팎의 관심이 컸다. 게다가 이번 인수전은 이후 이어질 하이닉스, 현대건설 M&A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어서 그 과정 또한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같은 관심에도 불구,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시작부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발단은 당초 매각주간사로 선정됐던 골드만삭스가 중국 조선소에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반발, 주간사 선정이 취소됐다. 대형 M&A의 시작부터 어긋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어서 터진 변수는 포스코, GS, 한화와 함께 4강 인수 후보로 꼽히던 두산의 중도 포기 선언. 두산은 최고 경영진 회의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영위하기 보다는 기존 사업에 집중,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의 이탈 이후 찾아온 시련은 뜻하지 않게 해외에서 찾아왔다. 바로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시장을 덮친 것. 이로 인해 국내 자금시장이 그 영향을 받으면서 증시는 폭락했고 대우조선해양의 가치도 함께 추락했다. 여기에 예비입찰 마감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인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현대중공업의 등장도 이번 인수전의 돌발 변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인수전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GS와 포스코의 컨소시엄 구성과 곧 이은 결별이다. 본입찰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 발표된 두 유력 후보간의 결합에 시장과 업계는 "이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틀어진 인수전은 결국 GS가 대형폭탄을 터뜨리면서 혼란속으로 빠져들었었다.  지난 2년여간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로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준비해 온 포스코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관련기사 ◀☞산업은행은 왜 포스코를 외면했을까☞한화, 대우조선 새 주인으로 '급부상'☞대우조선 인수전서 포스코 탈락(상보)
2008.10.16 I 정재웅 기자
(인물탐구)정지훈② "비를 비답게 하는 것은 도전"
  • (인물탐구)정지훈② "비를 비답게 하는 것은 도전"
  •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가수 비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본인이 월드스타라고 생각하나.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다. 물론 월드스타가 되려고 노력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도 월드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권에서 진정한 월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내가 보기에 딱 두 사람, 성룡과 이연걸이다. 한국인은 왜 월드스타가 될 수 없을까. 능력이 부족해서는 아니라고 본다. 또 굳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여기 성공이라는 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저 문을 열거나 부수고 나가면 성공이다. 지금의 나를 스스로 평가하면 성공이라는 문에 금은 가게 한 것 같다. 다음 선수가 와서 문을 부수고 나가면 그것도 성공이다. 내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아직은 월드스타가 아니고 그것을 향해서 가는 중이다” &nbsp;-역시 듣던 대로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 “신인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싶다. 그것도 사실 실력이다. 미국 나가 보니까 잘 되는 사람일수록 예의바르고 겸손하고 젠틀했다. 미국에서 그것 하나 확실히 배우고 왔다. 마주칠 때 먼저 인사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이다. 오늘 처음 뵈었지만 다음에 또 보면 친하게 인사할 수 있다” -한국에 오랜만에 오니까 어떤가. “미국에서 너무 치열하게 경쟁하다 왔기 때문에 여기에 오니까 너무 좋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방송국에 가면 아시다시피 1번 대기실이라는 게 있는데 가장 좋고 넓은 대기실이다. 예전엔 1번 대기실이 승훈이 형 같은 선배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오니까 내가 어느새 선배가 돼 있더라. 1번 대기실도 내게 주고... 지금은 사실 한국에서 더 인기 끌고, 돈 더 벌어야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팬들이 내 앨범을 즐겨주면 그걸로 만족이다. 미국에서 상처받은 생각하면 한국은 정말 천국이다” -미국에서 상처받은 얘기 좀 해 달라. “미국은 정말 무한경쟁이다. 피튀긴다. 전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내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평가한다. 나와 나의 경쟁자를 놓고 판단하는 데, 약간이라도 밀리면 그냥 아웃이다. 제작자와 친하고 감독이란 친하고 그런 것 필요 없다. 당장 계약 파기 당한다. 한국도 경쟁 치열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처음에 오디션을 볼 때 맨발로 오디션을 봤는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더라. 그저 키 큰 동양애가 왔구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그런 무관심이 사람을 처절하게 만든다. 아주 외롭게 만든다.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 그래 무관심해라.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때론 이런 어려운 도전을 왜 할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이 아니면 헐리웃이란 시장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 나 뿐만 아니라 헐리웃에 가려는 모든 연예인들 마찬가지다.” -그런 어려움들을 다 극복한 것인가. 지금은. “어떻게 다 극복할 수 있겠나.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고 부드러워졌다. 예전엔 딱딱했다. ‘난 잘돼야 돼.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해야 돼’라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 그래서 과거엔 바람이 불면 절대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지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요즘엔 바람이 불면 그냥 지나가라고 비켜준다. 무릎 끓을 때 무릎 끓을 줄 알게 됐다” -아주 어른스럽게 말한다. 무언가 도를 틔운 사람 같다. “가끔 이런 생각 해본다. 내가 이루어낸 성공이나 성취, 이런 것들이 한순간에 다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예전엔 그럴까봐 두려웠다. 지금은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원래부터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춤과 노래니까 그것으로 후배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발로 뛰어서 배달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더 즐길 수 있게 됐다. 노래도 춤도 더 잘 된다” -성실함과 노력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인가. “배고픈 고통을 너무 심하게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지금도 밥 안주면 일 안한다. 내가 시킨 음식을 남과 나누어 먹는 것 싫어한다. 친한 친구라도 ‘한 숟가락만 먹어보자’ 이러면 싫다. 음식에 소심한 것도 배고픈 경험 때문이다(웃음)” -그런 노력의 동인은 무엇인가.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 하는 원동력 말이다. “돌아가신 어머님이다. 또 아버님과 여동생 등 가족들이다. 내가 독한 것은 헝그리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반드시 내가 하는 만큼 돌아온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다” -인생에서의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의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 가수로서 비의 목표는 비 인생 자체가 노래와 춤이기 때문에 그냥 살아나가면 된다. 또 하나 목표가 있다면 연기다. 연기는 평생을 두고 지향해나갈 목표다. 하면 할수록 도전적이고 어렵다” 가수 비는 휴식의 방법으로 영화를 보거나 수다를 떤다고 했다. 수다의 주제는 여자친구, 사회적인 이슈, 자신에 관한 루머 등이라고. 수다를 떠는 상대방은 차태현 윤계상 박진영 등을 꼽았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아직은 없다고 했다. 이상형은 착하고 진실되고 얘기가 잘 통하는 여성이면 된다고.(이런 여성 만나기 쉽지 않다, 편집자주) 자신이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여성이면 좋겠다고 한다. 어쩌면 비는 이상형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헐리웃에서 추가적인 영화 출연 제의가 있다고 들었는데. “코믹액션과 멜로 각각 출연 제의 받았다. 코믹액션은 투톱이고 멜로는 조연이다. 워너브라더스 전속으로 있기 때문에 컨설팅도 같이 받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 닌자 어새신 내년에 개봉해서 잘 되면 시리즈 2 해야 되는데, 코믹액션을 찍으면 이미지가 너무 가벼워지고, 멜로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좀 기다려보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지금 출연계획은 없는 셈이다”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가.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는지. “솔직히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시간이 나면 춤연습 노래연습을 하니까... 생활에서 나온 스스로의 원칙이고 자세다. 스트레스 받고 외롭고 우울할 때가 있는데 주변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렇게 배부른 불평을 할 때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다. 신문 사회면에 어두운 기사 많은데, 그걸 보면서 내가 지금 예전의 힘들고 배고픈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어느 때 가장 행복한가. “성공했을 때, 성취했을 때다. 난 성공의 맛을 안다. 성공의 맛이란 게 돈을 왕창 벌고 그런 게 아니라, 성취에서 느끼는 행복을 안다는 얘기다. 팬들에게 인기를 얻거나 좋은 평가를 받으면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그게 보람이고 성취감이다” -코스닥기업 세이텍을 인수해서 제이튠엔터테인먼트가 됐는데. “소속사이기도 하고 나도 지분을 갖고 있지만 경영엔 전혀 관여치 않는다. 나는 연예인쪽 네트워크와 퀄러티만 챙기는 것이고 제이튠의 경영이나 구체적인 것은 전문경영인들이 하는 것이니까” -가수 비가 들었던 본인에 대한 루머중 가장 황당했던 루머는. “비가 중국에서 자살했다는 루머를 들은 적 있다. 사실 아버님이 먼저 듣고 깜짝 놀라 내게 전화를 해 오셨다. 나로선 황당한 거지만, 가족 입장에선 얼마나 가슴 떨렸겠는가. 루머를 퍼트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정말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연예인들 공인이라고 사생활 노출되고 그러는데 사실 공인(公人) 아니다. 세금으로 월급받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공인이다. 연예인들 약한 존재들이다”
2008.10.16 I 이의철 기자
김동률-이적, 11년 만에 '카니발' 첫 합동 공연
  • 김동률-이적, 11년 만에 '카니발' 첫 합동 공연
  • ▲ 가수 김동률과 이적(사진 왼쪽부터)[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가수 김동률과 이적이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로 다시 뭉쳐&nbsp;11년 만에 첫 콘서트를 연다. 김동률과 이적의 소속사 뮤직팜 관계자는 “오는 12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김동률과 이적이 카니발 합동 공연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김동률과 이적은 지난 1997년 카니발을 결성, ‘그땐 그랬지’란 음반을 내고 동명 타이틀곡과 ‘거위의 꿈’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단 한번도 콘서트를 열지는 않았다. 서로의 공연에 잠깐씩 게스트로 선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카니발이란 이름으로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김동률과 이적도 11년 만이자 동시에 첫 합동 무대인 카니발 콘서트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동률은 지난 13일 자신의 공식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모놀로그 공연을 마치고 이제 한 4년 기다려야하나?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무대에 오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며 “이적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꽤 오랜만이라서 기대도 되고 의욕이 넘친다"고 공연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이적 또한 12일 자신의 공식홈페이지에 “"한판 커다란 카니발, 축제, 난장을 선보이겠다"며 “"둘 다 공연 생각에 설레는 날들이다. 둘의 상상을 이 공연에 바칠 작정"이라고 공연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 ▶ 관련기사 ◀☞김진표, "이적의 쓴소리 당시엔 섭섭, 나중엔 약"☞김동률, '10만장' 포문을 열다...'음반-공연-음원' 고른 선전 의미 커☞김동률, '뮤직뱅크' 2008 상반기 결산 K-차트 음반부문 1위☞김동률-브라운아이즈-서태지, 음반시장 살리는 '구원투수' 될까?☞김동률 에필로그, 데뷔 15년 장인가수가 빚은 명품 '신상 콘서트'
2008.10.14 I 양승준 기자
아이돌 그룹, '1년 多작'이 대세… 왜?
  • 아이돌 그룹, '1년 多작'이 대세… 왜?
  • ▲ 브라운 아이드 걸스-소녀시대-원더걸스(사진 맨 위부터)&nbsp;[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빅뱅, 브라운 아이드 걸스, 샤이니, 소녀시대, SS501까지…’&nbsp;최근 가요계는 아이돌 가수들의 ‘1년 다(多)작’ 활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년에 미니앨범 두 장을 내 분기별로 활동하는 가수도 있고 싱글과 정규음반, 또 프로젝트 그룹을&nbsp;결성해 1년에 세 번 이상 활동하는 가수도 더러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수들은 활동이 끝나면 새 앨범 준비차 1년 정도의 공백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규앨범에서 싱글과 미니앨범 문화로 흐름이 바뀌며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1년 다작’ 활동이 정착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올초 일렉트로닉 댄스 열풍을 일으키며 싱글 ‘L.O.V.E’로 사랑을 받았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지난 9월 중순 ‘마이 스타일’이란 미니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올 상반기 ‘소 핫’ 프로젝트 앨범으로 활동을 마친 원더걸스는 최근 세번째 프로젝트 앨범을 내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 초 ‘키싱 유’ 등 정규 1집과&nbsp;싱글 활동을 이어왔던 소녀시대도 오는 10월 말께 새 앨범을 내고 팬들 곁으로&nbsp;돌아온다. 또 가요계 누나 열풍의 주인공 그룹 샤이니는 올 3월 미니앨범을 발표한 후, 9월 정규 1집으로&nbsp;내고&nbsp;연중무휴 활동을 잇고 있으며 SS501도 지난 3월 싱글 ‘데자뷰’를 발매한 후 오는 10월 말께 정규 앨범을 내고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SS501은 멤버 중 허영생, 김규종, 김형준이 ‘트리플S’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오는 11월 새 음반을 내기도 한다. 지난 8월 세번째 미니앨범 ‘스탠드 업’으로 가요계를 강타한 빅뱅도 올 11월께 네번째 미니앨범으로 가요계 복귀를 앞두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아이돌 가수들의 이같은 음반 다작 배경과 관련 싱글 음반 시장의 정착과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인한 음악의 회전 주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nbsp;한 소속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앨범 중 한 곡이 뜨려면 2~6개월 정도가 소요됐는데 요즘은 한 달만에도 승부가 난다”며 “음원 회전율이 그만큼 빠르고 또 빨리 소비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요즘 아이돌 그룹들은 정규 앨범 보다 주로 싱글과 미니앨범을 내는데 싱글과 미니앨범은 정규 앨범 보다 제작기간이 훨씬 짧기 때문에 활동 간격이 더욱 짧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기그룹 A의 소속사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의 다작 활동에 대해 수입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자연스레 가수들의 수익 구조가 악화됐고 이에 활동 수익을 얻으려고 하니 1년에 2~3장의 싱글 혹은 미니 음반을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음반 시장이 활황이었을 때에는 밀리언셀러 가수도 곧잘 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1만장만 팔아도 보통에, 10만 이상만 팔려도 소위 대박이라 말한다. 그만큼 가수들에게 음반 판매로 인한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소리다. 게다가 요즘에는 디지털 음원 중 가장&nbsp;수익이 많이 난다는 핸드폰 컬러링 한 곡 당 수입이 1,000원에 250원 정도이기 때문에 가수나 소속사 입장에서 볼 때 수익 구조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사실 정규 앨범 한 장 내는 것보다 싱글이나 미니앨범 2~3장 내는 것이 제작자 입장에서는 재킷 사진이나 뮤직비디오 촬영 등으로 손이 더 많이 가는 게 사실이지만&nbsp;수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nbsp;설명했다. &nbsp;이어 “이렇게 1년에 2~3번 앨범이나 싱글을 내는 것도 어찌보면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아이돌 그룹만 가능한 일”이라며 “오히려 더 자주 활동하고 앨범을 내야 하는 신인가수들은 거대 기획사 소속 가수가 아닌 이상 1년에 2~3번 음반을 낸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고 덧붙였다.&nbsp; ▲ 빅뱅-샤이니-SS501(사진 맨 위부터)▶ 관련기사 ◀☞[윤PD의 연예시대②]"노래는 스타일로, 영상은 소리로 맛본다"☞[윤PD의 연예시대③]가요계 비주얼의 미학...'1+1=2 아닌 11'의 시너지☞동방신기, 원더걸스 제치고 '인기가요' 1위...지상파 첫 정상☞동방신기, 일본에서의 3년…눈물과 웃음, 그리고 가슴 아픈 오해☞[SPN 인물탐구②]빅뱅 인터뷰..."우리 음악이 통하는 까닭?"
2008.10.13 I 양승준 기자
밀착지도로 모든 학생을 1 : 1 컨설팅한다!
  • 밀착지도로 모든 학생을 1 : 1 컨설팅한다!
  • [이데일리&nbsp;EFN 황보경&nbsp;객원기자] 대학에서 과거에는 ‘외식’이란 전문분야의 전공은 거의 전무했다. 호텔경영학이나 식품영양학과의 일부분으로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영세한 생계형 장사였던 음식업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어느덧 ‘외식산업’이란 큰 타이틀로 발전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외식산업학전공>도 이에 걸맞게 단순한 조리개념에서 벗어나 서비스, 마케팅 등 복합산업을 지향하는 인재양성에 올인하고 있다.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전국에서 두 번째로 생긴 전통 있는 외식관련 학과로 1969년 개설된 영남대 ‘식품가공학과’는 이미 외식업계 구석구석에 졸업생들이 포진해 있다. &nbsp;이후 2004년 급격히 변화하는 외식업계에 필요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외식산업학전공>이 신설되었다. <외식산업학전공>은 타 학교와 차별화 된 ‘밀착지도’ 방식으로 학생 개개인의 성향을 특성화 한 교육방식과 호텔·리조트를 연계한 산학협동실습을 통해 실무를 익히는 커리큘럼이 최대 강점이다. 이같은 방식은 사회인으로 변신해 업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좀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있다. ‘밀착지도’는 10명 내외의 학생들을 한 명의 교수가 담당, 모든 학교생활과 진로, 취업, 심지어 학생의 이미지메이킹까지 책임지고 있다. 또한 2학년 때 전공이 정해지면 외식산업학전공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전공교수 앞에서 발표한다. 이때 담당교수들은 해당학생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앞으로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됨과 동시에 앞으로 목표달성에 필요한 과정 등을 제시, 실제적인 세부계획을 지도해준다. 그리고 4학년 학기가 시작될 때 2차 포트폴리오를 발표하는데 해당 학생이 1차 포트폴리오에서 발표한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함께 체크하고 취업을 위한 최종 목표를 세우며 재계획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는 면접방법, 취업에 필요한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지적한다. 교수에게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은 이런 ‘밀착지도’와 ‘포트폴리오 발표’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설정할 수 있다. 2004년 학과 신설과 동시에 대학원 과정도 신설되면서 11명의 석·박사를 배출, 향후 학부와 대학원을 연결한 깊이 있는 교육을 통해 전문 교육인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Mini Interview 변광인 교수_ 외식산업학과 교수- ‘영남대 외식산업학과 학생들은 이런 면이 다르다’라고 한다면?▲ 취업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2학년 때 학생들의 전공이 나뉘면서 한달간 산학실습으로 다양한 곳에서 체험을 하게 된다. 다른 학교에 비해 빠른 2학년 때 실습을 나가는 이유는 사회를 빨리 체험해 스스로 진로를 정하게 하기 위해서다. 힘든 경험을 하고나면 자신이 생각한 사회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3,4학년때 더 치열하게 공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nbsp;동기부여 과정을 통해 진로를 결정하고 필요에 의해 스스로 공부한다는 점, 아무래도 이런 면이 타 학교의 학생들과 다른 특징인 것 같다. 또한 관련 자격증을 3개 이상 취득하지 않으면 졸업논문 쓸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다. 그리고 1년에 2회 미국호텔협회와 연계하여 학교 내에서 인턴십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강제는 아니지만 졸업 전 시야를 넓히는 의미에서 권장하고 있다.- 최근 학생들의 진로추세와 교수님이 지향하는 교육방향은?▲ 대기업 공채를 가장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저학년들부터 외국어 공부와 학점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직접적인 외식관련 업종은 업무시간 대비 근무환경과 복리후생에 대한 만족도가 낮기 때문에 연봉이 높은 대기업이나 마케팅, 홍보부서를 선호하는 것 같다. 학생들이 학창시절에 충분히 인턴십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계발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런 시간을 거친 학생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길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것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면서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Activity 전공 동아리 ‘U.E.C.A.’영남대 U.E.C.A.(University Escoffier Culinary Academy)는 2004년 외식산업학과의 탄생과 동시에 만들어진 연합동아리다. 외식관련 전공인으로서의 기초 요리 지식과 상식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조리연구와 함께 동아리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 경주대, 진주 국제대, 한림성심대와 연합해서 1년에 2회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교수님들이나 현직에 있는 실무자를 초청해서 실습하고 자체 교재를 만들어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있다. 학교 자체 내에서는 주1회 요리실습, 전국의 음식박람회를 관람하러 가거나 실제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또한 MT 때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인 이효진(3학년) 학생은 올 4월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2008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에서 야채조각부분 커빙대회에서 1등상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졸업생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김진영 (01학번)_CJ제일제당 대구지사 식품세일즈파트2학년으로 복학하자마자 바로 대기업 공채를 준비해왔다. 학점도 물론 중요하지만 2년간 학과 학회장을 하면서 했던 활동들이 취업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nbsp;MT, 환영회 등의 연례행사 외에 요리대회와 같은 대외활동 계획과 준비, 그리고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의견조율을 했던 일들이 사회생활하는데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nbsp;현재 6개월 전 공채로 입사한 CJ제일제당 식품세일즈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과거 대기업에서 스펙을 가장 중요시했었다면 최근에는 학창시절에 다양한 활동으로 팀, 조직 활동에 익숙한 학생들을 선호한다. &nbsp;공채를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기본 학점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통한 리더십을 경험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 조재리 (04학번)_ 호텔 에어포트 프론트 근무졸업과 동시에 특2급 호텔인 대구공항 근처의 호텔 에어포트 프론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nbsp;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업무인데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또한 적성에도 맞는 것 같다. &nbsp;학창시절 서비스 과목을 통해 배운 고객서비스 마인드와 컴플레인 대처방법 등은 업무에 있어 기본적인 사항으로 업무 시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잘 응용하고 있는 것 같다. &nbsp;호텔에 취업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꾸준히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업무는 일하면서 익힐 수 있지만 외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호텔에서 외국어를 하지 못하면 불이익이 많기 때문에 관련분야에서의 현장실습과 외국어 공부는 꼭 권하고 싶다. ▲ 서미경 (04학번)_ 일본 벳부 영산면세점 근무4학년 2학기때부터 교수님의 소개로 영진전문대학에서 진행하는 해외취업 연수 프로그램 교육을 받았다. 생각보다 일찍 취업이 결정되어 졸업 전 2월에 일본으로 왔고 현재 면세점 인삼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젊었을 때 외국생활을 하면서 생각과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료한 해외취업 연수프로그램은 면세점과 호텔과정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준비하려면 업체연결부터 면접까지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이러한 단체 과정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다.[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2008.10.10 I 객원 기자
''동경4번지'' ''동방순례''… 너희들 어디 있는 거니
  • ''동경4번지'' ''동방순례''… 너희들 어디 있는 거니
  • [조선일보 제공] [전문가들이 ‘다시 보고 싶은 책’ ] 만화가 이현세가 다시 보고 싶은 만화는 무엇일까. 헤르만 헤세의 6촌 손녀가 꼽은 '헤세의 최고작'도 궁금하다. 분야별 명사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책'을 물은 다음 그와 비슷한 책을 구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나섰다. ▲ 영광서점에 책꽃이에 꽃힌 책들 / 조선영상미디어■ 강인봉 가수·'나무자전거' 멤버|"예전엔 너도나도 '가요 대백과' 이름이 붙은 노래책을 샀어요. 책을 뒤적거리다 좋은 노래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에겐 김의철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가 그런 노래지요. '월간 팝송' 보고 음악 공부 많이 했는데, 그것도 혹시 구할 수 있을까요." ▶ 악기 상가가 모여 있는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3층 320호 '중앙악기(02-3672-6000 www.chungang.com)'엔 오래 전 출판된 악보들이 많다. 영화 '해피엔드'에 최민식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던 용산역 1번 출구 부근 '뿌리서점(02-797-4459)'에도 노래책과 '월간 팝송'이 종종 나온다. ■ 이현세 만화가|"한국 작가가 그린 보석 같은 책들이 저에게 만화가의 꿈을 길러줬지요. 재일교포 권투선수 이야기를 그린 박기정의 '도전자', 최배달에 관한 만화 고우영의 '대야망', 재일교포 형사 이야기로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손의성의 '동경 4번지'가 특히 다시 보고 싶네요." ▶'진주도서'는 만화방 체인을 함께 운영하는 만화 전문 헌책방. (02)466-4960, www.jinjoobooks.co.kr 서울 상봉 2동 '좋은 책 많은데(02-434-1716 www.obestbook.com)'도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꽤 유명하다. 부천시 도당동 '부천 만화도서관(032-320-3753· www.kclib.org)'에 들러 귀한 만화를 읽고 와도 좋겠다. ▲ 윤성근씨(오른쪽)와 부인 성진경씨(왼쪽)가 만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북카페와 헌책방의 좋은 점을 잘 버무렸다. / 조선영상미디어■ 유군더트 이름가르트 전 중앙대 독문과 교수·헤르만 헤세 6촌 손녀|"한국인의 '헤세 사랑'에 놀라곤 했습니다. 그런데 헤세가 인기를 끌었던 1970·1980년대에 쏟아져 나왔던 책 중에 찾기 힘든 것도 많다고 들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동방순례'(Die Morgenlandfahrt)처럼요." ▶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헤집고 작은 책 한 권을 찾아내긴 쉽지 않은 일이다. 영어 공부를 겸하고 싶다면 영어로 된 헌책과 새책을 함께 파는 이태원 '왓더북(What the Book·02-797-2342·www.whatthebook.com)'에 도전해보자. 벽을 따라 영어로 된 '페이퍼백(paperback)'이 빼곡하고 군데군데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있다. 'Journey to the East'란 제목의 영문판 '동방순례'를 10월 6일 현재 1만4300원에 판매 중이다. ■ 최시영 인테리어 디자이너|"1990년대 시공사에서 낸 한국 작가 화집 시리즈 '아르 비방'(Arte Bivant)은 디자이너들 사이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임옥상 배병우 등 작가 이름을 각각 단 55권짜리 책엔 작가들이 직접 뽑은 대표작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홍익대 정문 부근 '온고당 서점(02-332-9313)'은 디자인 관련 헌책·새 책과 외국 잡지 과월호를 함께 판다. 창천동 '공씨책방(02-336-3058)'도 디자인 책을 많이 갖다 놓았다. 6일 인터넷 서점 '바이북(www.bybook.co.kr)'에서 각각 7000원에 팔고 있는 '아르 비방' 3권(조덕현 편), 27권(이두식 편)을 발견했다. 청계천 홍문관(02-2265-3356·평화시장 다86호)은 외국 사진집을 많이 갖춰두고 있다. ■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궁궐의 우리 나무' 저자|"성균관대 교수로 계셨던 정태현 박사는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6년 1000쪽이 넘는 한국식물도감을 내셨지요. 손으로 그린 흑백그림을 보다 보면 식물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식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 자연과학 서적을 구하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고구마'(www.goguma.co.kr)의 '예약주문'에 글을 올리면 직원이 어느 정도의 수수료(1000원부터)를 받고 책을 찾아서 연락해준다. ▲ 헌책방의 오랜 잡지 속에서 만난 배우들 의 앳된 모습. 왼쪽부 터 황신혜 최명길 이 보희. / 조선영상미디어어슐러 K 르귄이나 이세룡 시인의 시집들…. 절판돼서 더 이상 구하기 힘든 책을 보기 위해 통째로 복사를 하거나 제본을 해서 베껴 갖는 것도 과연 불법일까? 정답부터. "미안하다. 불법이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 침해'는 '다른 사람의 지적(知的) 창작 노력을 훔치는 불법 행위'다. 저작권은 책을 만든 저자의 사후 50년까지 보장이 된다. 따라서 어떤 책이든 저자가 죽은 지 50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나 관계자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복제·제본할 수 있다. 책을 통째로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괴테처럼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사람의 책 중에서도 절판된 책이라면…, 제본해도 괜찮나? 대한출판문화협회측은 "저자가 죽은 지 사후 100년이 됐다 해도 번역자가 살아 있거나 죽은 지 50년이 안됐다면 번역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럼 책을 일부만 복사하는 건 괜찮을까? 도서관의 책을 복사할 경우, 연구 등을 목적으로 책의 '일부'를 복사하는 건 괜찮다고. 미국이나 일본의 도서관에서도 '일부 복사'는 가능하다고 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사하지만 않는다면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헌책 고수들의 즐겨찾기] 은평구와 동묘 헌책 '고수'들은 '좋은 헌책방'이 있는 동네의 조건을 '터줏대감은 많고, 유동인구는 적은 곳'으로 친다. 오래 묵은 책들이 서점에 나올 확률이 높은 반면 그 책이 금세 빠져버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으로 은평구와 동묘 일대가 꼽힌다. 이를 증명하듯 이 두 지역엔 '헌책방은 사양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새로 문을 연 책방들도 눈에 띈다. ▲ 동묘에 주말에만 출몰하는 트럭 헌책방. 대부분 책을 1000원에 판다. / 조선영상미디어은평구는 강북 최초의 '계획 개발' 지역으로 1990년대까지 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1975년부터 갈현2동 먹자골목에서 헌책방을 하고 있다는 문화당 서점(02-384-3038) 박상우(60)씨는 "문학평론가 조연현, 소설가 최인호, 서예가 윤양희 선생 등이 단골"이라고 했다. 1970년대 경북 문경서 서울로 올라온 친구 20명이 '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서울 곳곳에서 헌책방을 했는데 이제는 박 사장의 책방과 정릉 문화서점, 장승배기 문화서점 세 곳만 남았다. "인터넷 서점은 안 할 것"이라는 박 사장의 뚝심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7일 저녁에도 서울시내 한 헌책방 사장이 찾아와 책을 골라갔다. 갖춰둔 책의 면면이 범상치 않다는 얘기다. 서부경찰서 정문 부근에 지난해 문을 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www.2sangbook.com)은 북 카페와 헌책방의 장점을 모아 놓았다. 윤성근(35)씨가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데 넉넉한 원목 책상이 이전 헌책방의 '낡고 어두운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린다. 윤씨가 모은 세계 각국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들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다.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동묘역 부근은 망원역 부근에서 27년간 운영됐던 대형 헌책방 영광서점이 이사오면서 활기를 띠는 분위기. 황신혜의 풋풋한 모습을 표지에서 만날 수 있는 1970년대 '주간여성', 군대에서 쓰던 '국민독본 농업축산 기술강좌' 등 들춰만 봐도 웃음이 나는, 근대사 자료 수준의 책들이 다양하다. 부근 청계천 책방(02-2234-5976)과 헌책백화점(011-351-5636)은 주제별로 책을 분류해놨다. 동묘 헌책방의 묘미 중 하나는 주말에만 나오는 '헌책 트럭'이다. 법전·졸업앨범·옛날 잡지 부록 등 종류를 망라한 책들을 '무지개 자원' 앞 주차장에 세워둔 트럭에 산처럼 쌓아놓고 1000원에 판다. 오전 10시쯤부터 해질녘까지 나온다.
거장의 3인3색 빛났다...PIFF 마스터 클래스
  • 거장의 3인3색 빛났다...PIFF 마스터 클래스
  • ▲ 왼쪽부터 안나 카리나, 파올로 타비아니, 서극(사진=김정욱 기자)[부산=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서 가장&nbsp;중점을 두고 준비하는&nbsp;프로그램 중 하나가 세계 영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들로부터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nbsp;들어보는 '마스터 클래스'다. 올해 부산영화제 마스터 클래스의 주인공은 홍콩의 서극감독과 이탈리아의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 그리고 프랑스의 안나 카리나였다. 이들은 각자의 영화인생이 달랐던 만큼 마스터 클래스에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줘 흥미를 자아냈다. ◇서극 감독, '마스터 클래스 최고 달변가'&nbsp;&nbsp;80년대와 90년대 '동방불패', '천녀유혼', '황비홍' 등의 영화를 통해 홍콩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끈 서극 감독은 한마디로 '달변가'였다. 서극 감독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적절한 유머와 함께 달변으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서극 감독은 시종일관 풍부한 표정으로 자신의 성장담과 감독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야기했다. 서극 감독은 예정된 시간이 끝난 뒤에도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으며 한마디라도 더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 '격정 연설&nbsp;인상적' &nbsp;세 명의 마스터 클래스 주인공 가운데 1931년생인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은 가장 연장자였다. 그러나 파올로 감독은 격정적인 이탈리아인답게 강연 도중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경우가 잦았다. 파올로 감독은 특히 "미국 영화가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며 "할리우드의 문화적 침공에 맞서 자국영화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아주 인상깊게 봤다"며 영화의 한 장면을 자세히 설명할 때에도 76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안나 카리나, '배우의 피는 못 속여'&nbsp;&nbsp;앞서 두 명의 마스터 클래스 주인공이 모두 감독이었던데 반해 8일 영화제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의 주인공은 누벨바그의 여신이라 불렸던 배우 안나 카리나였다. 부산영화제 유일의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의 심사위원장으로도 위촉된 안나 카리나는 서극,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과 달리 자신의 사생활 공개에 적극적(?)이었다. &nbsp;장뤽 고다르 감독의 첫번째 부인이었언 안나 카리나는 작품 속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와 도도함은 잠시 접어두고 마치 아침 주부대상 토크쇼에 초대된 게스트처럼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앞서 두 감독보다는 손동작을 많이 사용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했고, 오랜&nbsp;팬이라고 밝힌 관객에게는 직접&nbsp;객석으로 내려가&nbsp;따뜻한 포옹으로&nbsp;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영화제 관계자는 "마스터 클래스는 매번 영화제 때마다 거장들의 자전적인&nbsp;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nbsp;인기가 높다"며 "이번 마스터 클래스의 세 분 주인공 역시 평소 자신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nbsp;진솔하게 들려준 것 같다"고 촌평했다.▶ 관련기사 ◀☞PIFF 김동호 위원장-강수연, 프로야구 롯데전 시구-시타 나서☞[PIFF 중간평가④]이용관 위원장 "부산영화제와 한국영화계, 공동운명체"☞[PIFF 중간점검③]'힘내라 한국영화'...불황진단, 영화제 초반 최대 화두☞[PIFF 중간점검②]부산을 빛낸 ★들...우에노 주리 '피프퀸' 관심 듬뿍☞[PIFF 중간점검①]'침체' 혹은 '실속찾기'...13돌 축제 '거품' 빼고 숨고르기
2008.10.08 I 김용운 기자
이영자 진행 '택시', 故 최진실 추모 스페셜 9일 방송
  • 이영자 진행 '택시', 故 최진실 추모 스페셜 9일 방송
  • ▲ tvN '택시'에 출연했던 故 최진실[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이영자가 김창렬과 함께 진행하는 케이블채널 tvN 현장토크쇼 ‘택시’가 이영자의 친구였던 고(故) 최진실 추모 스페셜을 마련한다. 지난 5월29일과 6월5일 2회에 걸쳐 ‘최진실 특집’을 방영했던 ‘택시’는 당시 촬영 내용들 중 미방송분과 방영 장면들의 재구성, ‘택시’ 안에서 언급됐던 친구 이영자의 우정의 말들을 정리해 9일 밤 12시 방송한다. 제작진은 “이영자와의 끈끈했던 우정을 추억하고 열정적인 배우이자 강한 엄마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고인의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회고해보자는 생각으로 ‘고 최진실 추모 스페셜’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최진실은 과거 ‘택시’에서 연예인으로서 인터넷이 무섭고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영자와 홍진경의 말에 “모든 인생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로서 연기자로서 누리는 혜택들을 생각해 보면 난 정말 이 정도까지 온 사실에 늘 감사하며 산다”고 말했다. 또 이영자는 신봉선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최진실을 언급하며 “‘내가 연예인이 됐구나’라고 실감한 건 내가 좋아했던, 스타라고 불렀던 사람이 내 친구였을 때다. 그게 최진실이다”라고, 채림이 출연했을 때는 “최진실이 내 꿈을 묻기에 ‘너희 집 같은 데서 살아보넌 거’라고 했는데 최진실은 ‘난 김혜자 선생님이나 고두심 선생님처럼 그냥 연기 잘하는 그런 배우’라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관련기사 ◀☞[취재수첩] 연예인 잇단 자살, 보수적 한국사회에 대한 경고인가☞연예인 잇단 자살, 연예기획사-'자예협' 대책 마련 비상☞故 최진실 베르테르 효과, "자살 방법 상세보도 말아야" 지적☞최진실 이어 장채원, 김지후 자살...정신과 전문의 베르테르효과 확산 '경고'☞장채원 이어 김지후 자살 '충격'...성적 소수자, 악플로 두 번 운다
2008.10.08 I 김은구 기자
이지아, 채찍질로 자신을 완성시키는 악바리(인터뷰)
  • ['베바스' 헤로인①]이지아, 채찍질로 자신을 완성시키는 악바리(인터뷰)
  • ▲ 이지아[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신인인데 주위에서 그렇게 봐주지를 않거든요.” 그녀는 행운아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드라마 출연을 했을 뿐이지만 모두 여자 주인공을 맡았고 시청률에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지난해 말 방송된 MBC ‘태왕사신기’를 통해 데뷔했고, 현재는 같은 방송사의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 중인 이지아가 그 주인공이다. 여자 연기자로는 다소 늦어 보이는 26세에 연기 데뷔를 했지만 이지아는 분명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순탄한 행보를 하고 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릴 만도 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게 부담이 된 모양이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시기인데 주위의 기대치는 신인에 대한 것 이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주위 상황이 이지아가 더 빨리 정상에 한발이라도 더 가까이 가도록 하는데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여유 대신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nbsp; ▲ 이지아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제 두 번째 드라마...자신과 싸워가고 있는 중" 1년여 만에 다시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이지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판타지 사극인 ‘태왕사신기’에서는 극중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에 첫 연기라는 점까지 겹쳐져서인지 연기가 투박하게 느껴졌는데 이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표현력이 한층 세련돼졌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 보였다. “저한테 화가 많이 났어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따라가는 것 같으니 말이죠.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제가 만족을 못하니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집에 가서 누워도 잠을 못잘 때가 있어요.” ‘아직 내 연기를 모니터할 때는 쑥스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본다’고 신인 티를 못벗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넘치는 욕심, ‘악바리’로 불려도 부족할 게 없을 것&nbsp;같은 근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태왕사신기’와 ‘베토벤 바이러스’는 많은 상황이 바뀌었다. 장르의 차이는 물론 ‘태왕사신기’는 방송 전 1년 넘게 촬영을 한 데 반해 ‘베토벤 바이러스’는 이제 촬영을 시작한 지 3개월여가 됐다. 그만큼 여유는 사라졌는데 컷은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고 이지아는 바이올리니트스 두루미 역을 맡은 만큼 매회 대본이 나올 때마다 새로 들어가는 음악 연주 연습도 해야 한다. 연기하랴, 연주 연습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3일 밤을 새우기도 했다. 감정 몰입도 벅찬 신인인데 이런 시스템 때문에 초반에는 많이 헤맸다는 게 이지아의 설명이다. 더구나 극중 두루미는 대사는 낮은 톤으로 하더라도 속의 감정은 극대화돼 있는 상황이 많은,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이재규 PD는 ‘태왕사신기’에서 이지아의 연기를 보고 두루미의 복잡한 감정 연기도 잘 소화할 것으로 판단해 캐스팅을 했지만 솔직히 이지아는 ‘베토벤 바이러스’ 시놉시스를 보고 이재규 PD에게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하며 이지아의 연기가 한계단 더 올라섰다는 것이다. 자신은 “부족한 점 투성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제 겨우 두 번째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신인이다. 이지아는 그렇게 스스로를 독려하며 연기자로서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중이다. &nbsp; ▲ 이지아◇ 이지아 vs 두루미 "비슷한 점 많지만 너무 헤퍼"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이지아가 연기하는 두루미는 실제 이지아와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다. 극중 두루미는 청력을 상실할 수 있는 메니에르 병 진단을 받고 음악을 그만둔 뒤 공무원으로 살다 자신이 낸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기획안이 채택되면서 다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는 인물. 다혈질 적이고 의리가 있으며 매사에 솔직, 담백, 낙천적이다. 이지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많이 먹으면서 풀고 큰일과 맞닥뜨렸을 때 담담해지는 면, 다혈질이지만 밝고 장난도 잘 치며 정도 많은 점 등이 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끔 자신을 차가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이지아의 설명이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가끔 말꼬리를 잡고 농담을 던지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모습에서도 이지아의 실제 성격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지아는 두루미에게서 절대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고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와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어요? 저는 이성을 사귈 때 오래 지켜보는 편인데 두루미는 너무 헤퍼서 적응이 안될 때가 있어요.” (사진=한대욱 기자)▶ 관련기사 ◀☞['베바스' 헤로인③]이지아 "루머의 피해...희생이 너무 크네요"☞['베바스' 헤로인②]성장한 감정연기...이지아 촬영현장 스케치☞['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④]'기대작? 사실은...' 비하인드 스토리☞['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②]'정 떨어지는 연기도 호평'...김명민의 힘☞['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①]보고 듣는 이중의 재미...클래식의 향연
2008.10.08 I 김은구 기자
'붉은 제국' 리버풀,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 [유럽축구 확대경]'붉은 제국' 리버풀,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 ▲ 열성적인 리버풀 팬들[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문제1) 잉글랜드 클럽 중 가장 많은 1부 리그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은 어디일까. 문제2) 잉글랜드 클럽 중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클럽은 어디일까. 공히 같은 클럽이 답이다. 언뜻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원하는 이름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종가의 명문클럽 리버풀이다. 1부 우승 횟수가 자그마치 18회로 맨유보다 1번 더 많고, 5번의 꿈의 무대 정복기 역시 앞선다(맨유 2회). 이쯤이니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리버풀 팬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nbsp;하지만 언뜻, 국내팬들로서는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 밀란이라는 철통 자물쇠를 상대로, 0-3으로 끌려가다 극적으로 3-3 동점을 만든 뒤, 승부차기 끝에 활짝 웃었던 그때 그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도통 잉글랜드 리그에서 리버풀이 권좌에 오르는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버풀의 자국 리그 마지막 우승이 1989-90시즌이다. 요컨대 잉글랜드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된 1992-93시즌 이후로는 정상에 서본 적이 없고 근 20년 동안 맨유와 아스널 그리고 첼시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겼다는 뜻이다. 실상 최근 10시즌 동안 리버풀의 리그 성적을 살피면 2001-02시즌 2위를 제하고는 모조리 3~5위를 오르내렸다. 소위 ‘빅4 클럽’이라는 명성도 턱걸이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시즌을 앞두고는 늘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피날레를 앞둔 시점의 붉은 제국은 번번이 어깨를 펴지 못했다. 리버풀의 강성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외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을 위한 마지노선(리그 4위)에서 애를 태우던 일이 잦았다. 그런데, 적어도 올 시즌 초반 리버풀의 페이스는 상당히 좋다. 2008-09시즌 시작 이래 현재까지 12번의 각종 공식전 성적이 9승3무. 이쯤이면 대나무가 쪼개지는 기세와 다름없다. 프리미어리그는 5승2무(7라운드 현재)로 첼시와 승점은 같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2위에 올라있는데 속속 과정을 살피면 리버풀의 내용이 보다 실하다. 9월13일 안방에서 열린 맨유와의 176번째 ‘장미 전쟁’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고 9월27일에는 지역 앙숙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2경기 모두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대결이다. 지난 주말이던 10월5일에는 올 시즌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맨체스터시티 원정에서 2골을 먼저 허용하고도 3골을 뽑아내 승부를 뒤집는, 근래 리버풀답지 않은 강인한 모습을 자랑하면서 승점 3점을 또 다시 챙겼다. 챔피언스리그 역시 다르지 않은데 마르세유와 아인트호벤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각각 2-1과 3-1로 제압하면서 D조 선두에 올라있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편한 조를 찾는 것이 모순이지만 특히나 D조는 4팀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가장 대동소이해 그 흔한 ‘죽음의 조’라 불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리버풀의 최근 기세가 과연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좋은 방증이라 하겠다. 베니테스 감독 부임 5번째 시즌, 확실히 리버풀의 스쿼드에서 강자다움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지난 시즌 놀랍게도 빠르고 알차게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했던, 그리고 유로2008을 통해서 탄력을 받았던 주포 토레스의 날갯짓이 새 시즌 초반부터 펄럭이고 있다는 것, 간판플레이어 제라드의 리딩 능력과 필요할 때의 해결사 기질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오로지 리버풀에서만 활약하고 있는 ‘원 클럽 맨’ 수비수 캐러거가 이끄는 플랫4가 7경기에서 단 넉 점만 허용하고 있다는 것 등 에이스급 자원들이 모두 제몫을 해주고 있다는 게 우선 반갑다. 여기에 토레스의 파트너가 빈약하다는 아킬레스건을 해소하기 위해 영입한, 메인 스트라이커를 돕는 데 일가견 있는 다기능 공격수 로비 킨의 가세도 성공적이라는 평가고, AS로마로 떠난 리세의 공백이 불안했는데 대체제로 영입한 도세나의 융화 역시 전혀 무리 없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소위 ‘분위기와 기세’라는 측면에서 맨유나 첼시, 아스널 등 라이벌들에 비해 부족했던 리버풀이 일찌감치 자신감을 찾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맨유, 에버튼, 맨체스터시티,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의 2경기는 모두 쉽지 않은 매치업이었다. 이 5경기에서 반타작만 거뒀어도 성공적이라 평할 수 있는데, 전승으로 날았으니 실로 기대 이상의 성과이다.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리버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첼시의 초점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나 FA컵 제패보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에 입 맞추는 것에 맞춰졌다면, 상대적으로 리버풀은 자국리그 정상이 더 목마르다. 클럽에 대한 애정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리버풀의 열혈 서포터 ‘더 콥(The Cop)’과 함께 오래도록 잠자던 리버풀이 과연 비상할 수 있을까.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지켜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손색없는 일이다. 끝으로 사족을 붙인다. 스티븐 제라드라는 잉글랜드의 보배 커리어 속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리버풀이 얼마나 리그 우승에 굶주렸는지, 절실함으로 따지자면 그들을 따라올 수가 없다. /<베스트 일레븐>기자▶ 관련기사 ◀☞[유럽축구 확대경]‘독일의 첼시’ 호펜하임을 주목하라☞[유럽축구 확대경] 김두현, 앉은 김에 쉬어가라☞[유럽축구 확대경]유럽 리그 ‘다크호스’의 즐거운 반란☞[유럽축구 확대경] 절대강자도, 동네북도 없다☞[유럽축구 확대경] 챔스 무대 나선 레알의 ‘절박한 도전’
2008.10.08 I 임성일 기자
명품 ‘한우고기’에 쏟은 22년의 열정과 땀방울
  • 명품 ‘한우고기’에 쏟은 22년의 열정과 땀방울
  • [이데일리 EFN 이덕철 객원기자] (주)벽제외식산업개발 김영환 회장(62)은 지난 3월 12일, 일본 출장 중에 서울로부터 급한 전화 한통을 받는다. 본사 기획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국내 일정에 변화가 생겨 서둘러 귀국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 회장은 동경에서 열리는 푸드쇼 관람과 신사업 구상을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이었다. 꽉 짜인 일정을 뒤로하고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그 다음날인 13일, 국내 ‘명품 음식점’ 가운데 하나인 <벽제갈비> 도곡동 타워팰리스점 귀빈실에는 중국측 인사 7~8명과 벽제외식산업개발의 김 회장과 핵심브레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룸 안에는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양측 인사들 누구 할 것 없이 얼굴에는 긴장감과 약간의 흥분들로 가득했다. 중국 측 인사들은 중국 하남성 정부 최고위직과 이 지역 5성급 호텔 사장단 일행이었다. 식사와 함께 사업성 대화가 이어지고 서류들이 오고갔다. 그러더니 이내 서로 익숙해진 듯 초반의 긴장감을 벗어나 화기애애한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3~4시간이 흘렀을까. 양측은 서로 만족하는 양 미소를 띤 표정으로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리고 3월 20일, 양측은 이번에는 중국 하남성의 하남호텔에서 조우했다. 한중 양측 기업대표들 간 파트너로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모인 역사적인 자리였다. 국내 최고급 명품 한우갈비 전문점인 벽제갈비가 중국에 진출하는 기념비적인 조인식인 셈이다. 그것도 ‘브랜드 사용권 로열티 지급’방식으로 5년간 3%를 받게 되는 조건으로다.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로열티로 지급받는 방식으로 중국에 진출한 것은 국내 외식업체로는 처음이다. 그만큼 획기적인 사건인 것이다. ◇ <브랜드 로열티 지급> 방식으로 중국진출...국내서 처음하남성 중국정부는 오는 7월 1일 북경 하남호텔에 외국 유명 고기음식점을 입점 시키기 위해 1년 전부터 국내 유명 한우고기 음식점을 시장조사해 왔다. 이 날도 사전에 분석해 놓았던 3~4개 업체 대표들을 만나본 후 마지막으로 일정을 앞당겨 벽제갈비를 들른 것이었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중국 내에서 가장 경쟁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벽제갈비를 선택했다. 이번에 계약하게 된 하남호텔은 북경 중심부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하남성 정부가 북경 대표부는 물론 직접 운영하고 있는 5성급 호텔이다. 김 회장은 4월초, 하남성 정부 인사들과 벽제갈비 진출에 대한 ‘브랜드 로열티’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적지 않게 흥분해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상시 ‘정중동’이 좌우명이라고 할 정도로 감정 조절에 능한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랜드 진출 감회의 여진이 시도 때도 없이 살아나는데 별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일편단심으로 추진해 왔던 최고 한우 전문 음식점에 대한 집념을 인정받았다는, 그것도 국내가 아닌, 경쟁이 치열한 해외에서 이뤄졌다는 기쁨이 그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한우고기의 세계화를 위해 10년 전부터 꾸준히 해외 진출을 모색해 왔는데 그 첫발을 중국에서 내딛게 돼 무엇보다 기뻤다. 그것도 콧대 센 중국 측으로부터 국내업체로서는 처음으로 로열티를 받고 진출하게 되었으니 더욱 그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그의 지론이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외식업계에서 추진력과 직관력이 남다른 이로 불린다. 여기에 뚝심까지 얹혀지면 시너지 효과는 상당하다. 최상의 상품에 최고의 가격을 부르는 그의 배짱 앞에 혀를 내두른 이가 어디 한 둘이었던가. ◇ 적확한 언어와 속살을 건드리는 깊은 고찰 그리고 논리적 안목주변에서 그의 전략을 비웃으며 “얼마 못 간다”라는 질시 어린 코웃음에 오히려 말로 갚는 그의 ‘계산된 오기’는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는 전문가를 능가하는 지식욕과 수 없이 실패해 본 경험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건한 정신력이 떠받치고 있다. 그와 마주해 외식업, 특히 한우고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려면 최소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춰야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적확한 언어 구사와 속살을 건드리는 깊은 고찰 그리고 각종 상식과 지식으로 뒷받침 된 논리적 안목들은 김 회장의 오늘을 만든 분신들이다. 중국서 돌아오는 기내에서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외식업계에 ‘외’자도 모르고 뛰어든 때가 언제였던가.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밥 먹듯이 했던 초창기의 빛바랜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김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무역과 건설 분야에서 10여년을 보내고 37살인 1983년, 처음 외식업에 발을 들여 놓는다. 애초부터 고기음식점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김 회장이 손을 댄 분야는 피자였다. 그러나 피자 가게는 2년 만에 접었다. 국내에 피자리아멜리, 피자인, 쉐이크피자, 피자헛 등 수입 브랜드들이 이태원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포기했다. 당시만 해도 피자분야는 외국계 브랜드의 위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재기를 모색하고 있던 김 회장은 우연히 알게 된 신촌의 한 갈빗집을 친구와 동업형식으로 인수한다. 그의 나이 40살(1986년) 되던 해다. 4500만원씩을 각자 투자해 시작한 이 업소가 지금 벽제갈비의 전신이다. ◇ 40살에 시작한 고기음식점,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에 1년만에 나와그러나 외식, 그것도 고기음식점에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던 동업자 두 사람은 계속되는 적자에 적이 당황한다. 198.34m2(60평)짜리 갈빗집에서 하루 20만원씩 한 달에 600만원 판매가 고작이었다. 적어도 1300만원은 팔아야 유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종업원 인건비가 11만원이고 주방장 월급이 35만원이었다. 등심 1인분이 5000원이었던 시절이다. 지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또한 두사람 간에도 의견이 자주 엇갈려 충돌이 빈번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기 구입에 대한 의견차이였다. “품질 좋은 한우를 반드시 현지에서 구입하자”, “외상도 되고 젖소인지 무엇인지 사람들이 잘 모르니 그냥 동네 가게에서 사자”가 주된 차이였다. 결국 두 사람은 계속되는 적자와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년 만에 갈라서기로 한다. 친구가 운영하기로 하고 그는 물러났다. 적자가 계속 이어져 손에 쥐고 나올 돈도 없었다. 아내의 옷가게 일을 봐주면서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더 이상 가게운영을 못하겠으니 대신 맡아서 하라는 부탁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벽제갈비를 다시 운영하기로 결심하고는 3가지 원칙을 자신에게 다짐했다. ‘외식업을 평생한다’ ‘가장 우수한 품질을 제공한다’ ‘수치경영 시스템을 구축한다’가 그것이다. 이 원칙들은 훗날 그가 외식업계에서 최고급 한우고기 전문 음식점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데 절대적인 경구로 작용한다.◇ 재인수한 벽제갈비 4개월 만에 흑자 만들어적자투성이인 벽제갈비를 재인수한지 4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자신에게 다짐했던 부분들을 반드시 실천해 나간 덕분이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직원간 결속력이 강화되고 좋은 식자재와 경영개선으로 나날이 번창해 나갔다. 하지만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최대 매출상한가는 2400만원이었다. 수익률 역시 600만원이 마지노선이었다. 만족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성이 차지 않았다. 김 회장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 시기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강남 지역에서 다점포 전략을 펴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종업원들에게도 약속했다. 장기간 근무한 직원들과 우수 직원들에 한하여 점포를 오픈시켜주겠다고. 이와 병행해 그는 종업원들의 교육에도 크게 관심을 갖는다. 최고의 음식점에 걸맞는 최고의 서비스를 하려면 종업원의 교육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훗날 벽제갈비가 명품 브랜드로서 최고의 음식점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직원교육에 발 벗고 나섰다. 직관력이 남다른 그가 아닌가. 무엇보다도 그가 공들인 부문은 최상급 한우고기의 확보였다. 최상의 식재는 그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친구와 동업할 당시에도 논쟁이 있었던 고기구매에 대한 그의 결심은 너무나 확고했다. 최고의 식재만 쓰겠다는 그의 다짐은 숭배에 가까웠다. 최상의 고기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처절할 정도의 갈구였다. ‘최고의 음식은 최상의 식재에서 나온다’는 절대 믿음이 오늘의 벽제갈비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이었음은 물론이다. 고기를 파는 도축장이나 도매상들 일부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까지 치부했다. 조그만 캠핑가스버너를 갖고 다니면서 고기를 썰어 먹어보고서야 구매했을 정도니 당연했다.◇ 캠핑버너 갖고 다니면서 먹어보고 구매...‘이상한 사람’ 소문도“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올림픽 당시까지 물 먹인 쇠고기의 냉동육 위주 판매가 관행처럼 있었던 시절이었다. 고기를 사러 갈 때마다 조그만 캠핑가스버너를 들고 다니면서 먹어보았다. 주위에서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통에 얼굴이 화끈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상급 고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물이 나오는지를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고기가 맛있다며 가게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그의 한우에 대한 집착은 개업초기부터 발동하기 시작한다. 포천, 동두천 등지에서 좋은 한우고기를 도축한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달려가 정육점주인에게 한우를 자기에게 달라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주인이 진땀깨나 흘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에피소드다. 이렇듯 그는 좋은 한우고기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 어디든 찾아 다녔다. 이로 인해 이곳에서 내놓은 ‘설화한우’ 생갈비와 꽃심구이는 해외언론에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하다. 선홍색 살코기에 지방이 눈꽃처럼 퍼진 ‘한우 설화육’은 브랜드로서도 명성이 자자해 외국인들의 고급스런 초대에 단연 오르내린다. 또 그가 일본통으로도 잘 알려진 배경에는 쇠고기 요리로 유명한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닌 인연 때문이다. 이 덕에 그는 이 분야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있다. 이런 여세를 몰아 벽제갈비는 직영점을 계속해서 오픈한다. 1년 간격으로 2, 3, 4호점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성장속도에 탄력이 붙는다. ◇ 22개 음식점 오픈, 지금은 11개만 성업 중2호점인 삼성역점의 경우 1일 매출이 4만원하던 업소를 벽제갈비로 상호를 바꾸고 영업한 지 1년 만에 매출이 150만원으로 수직상승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로 인해 김 회장은 점점 사업 확장에의 길로 들어서 모두 22개의 음식점을 오픈시켰지만 현재는 11개만 운영하고 있다. 잘 된 점포들도 많지만 주위의 여건으로 참담하게 거액을 포기하고 눈물을 훔치는 경우도 많았다. 쓰라린 경험들을 모두 겪고 온 탓으로 남 탓을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 그다. 실패의 경험들이 준 공력(功力)이다.2호점의 경우 점포가 너무 잘 되자 주인이 갑자기 전세를 200% 인상해 달라고 하는 통에 앉아서 내 준 경우이고 보증금 2억5000만원이 들어간 청구백화점 5층 식당가는 부도로 롯데에 넘어가는 바람에 그대로 보증금을 포기해야 했다. 대치동 점포를 매각하고 들어간 826.45m2(250평) 규모의 천호동 점포는 10년 계약으로 들어갔는데 건물주인이 상속세 미납으로 경매처분되는 바람에 보증금과 권리금 5억원을 모두 포기해야했다. 당시는 IMF 상황이어서 금리가 17~20%를 상회하고 있어 버티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점포를 오픈하면서 손실을 본 적도 사실상 많이 있다. 천호점의 경우 5억원을 고스란히 떼이고 나올 때는 눈앞이 캄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판단의 실수이고 경험이 미숙해서 발생한 일이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패를 통해 살아남는 게 진정한 승리가 아닌가 한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은 1993년에 오픈한 방이동 본점이 있어서 가능했다. 실 평수 198.34m2(60평)으로 시작한 본점은 영업 호조로 2층까지 넓혔고 다시 별관까지 사용하는 등 현재 모두 1487.61m2(450평)에 이르고 있다. ◇ 실수와 실패도 많지만 쉼 없이 진격하는 끈기 돋보여김 회장은 목표를 향해 조급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쉼 없이 진격하는 끈기형 사업가다. 그래서 눈앞의 호불호에 크게 연연치 않는다. 목표가 오래지않아 손에 쥐여질 듯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하는 자신감이 표정에서 넘쳐난다. 무엇보다 직관력을 앞세운 사업적 발상은 단연 발군이다. 그는 고급한우전문음식점인 벽제갈비를 브랜드화 하는데 총력을 쏟으면서도 평양냉면과 설렁탕을 꾸준히 미래의 상품으로 키워나간다. 그 부산물이 바로 1995년에 설립된 벽제설농탕, 평양냉면 전문화 개발연구소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브랜드가 바로 <봉피양>이다. 평양냉면과 한우설농탕을 주메뉴 콘셉트로 하는 제 2브랜드인 셈이다. 현재 강남역 인근의 서초점을 본점으로 인천공항, 교통센터점, 방이점, 도곡점, 신월점 등 모두 5개 직영 점포가 있다. 한우설농탕은 165.29m2(50평) 규모의 매장에서 월 1억7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또한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 11권 ‘24시간의 승부’편에 소개돼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특히 봉피양은 김 회장이 20년 전 장기 근속자와 우수직원들에게 약속했던 소사장제 형식의 창업과 연계되어 있다. ◇ 비전과 꿈이 있는 제 2브랜드 <봉피양>에 기대 따라서 비전과 꿈이 담겨 있는 브랜드다. 현재는 직영점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한우의 대중화를 위한 프랜차이즈를 목적으로 출시한 브랜드<벽제구이로>도 주목의 대상이다. 벽제구이로는 한우의 여러 부위육을 메뉴화 해 ‘한우의 대중화’와 ‘잔여육 처리’를 통한 품질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전략브랜드다. 고기만 보아도 ‘전생’을 안다는 김 회장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아이디어의 산물들이다.김 회장이 각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장인제도’는 ‘최고’와 ‘최상’을 표방하는 벽제갈비 인천공항점과 도곡동 타워팰리스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01년도에 총 26억원이 투입된 542.15m2(164평)의 타워팰리스점은 인테리어 설치에만 무려 18억원이 들었다. 이 때문인지 최고의 명품 음식점으로 순식간에 떠올랐다. 그가 지향하는 한국식 디자인과 고품격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점포다. 20년 동안 벽제갈비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인요리사들인 윤원석 이사와 박영근 이사의 손끝에서 나오는 ‘레시피’를 교육받은 직원들이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는 맛은 벽제갈비를 떠받치는 동력이다. 아울러 인천공항에 입점해 있는 벽제갈비도 몰려드는 고객들로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다. 198.34m2(60평) 규모의 이 점포에는 하루 입점고객이 900~1000여명으로 10회전을 할 정도로 늘 북적거린다. 평균 객단가가 1만원 이상으로 한 달 매출액이 3억원대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는 사람들의 까다로운 심리와 고급 음식과의 만남은 운명적일 수 밖에 없음을 간파한 김 회장의 안목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타워팰리스점의 최고급 메뉴, 3억원대를 넘기는 인천공항점“각 분야에 장인요리사를 길러내고 그 장인들이 만든 표준화를 가지고 그 밑에서 잘 훈련받고 교육받은 직원들이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게 벽제갈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장인제도가 빛을 발하는데 약 7년이 걸릴 것이라고 봤는데 이제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 김 회장이 고객에게 전하려고 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따뜻한 마음이다. 벽제갈비가 자체 그릇을 만드는 이유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객에게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감성적 욕구충족을 시켜주기 위함인 것이다. 고객에게 ‘맛’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람 만나는 즐거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렇듯 자기 확신과 직관력으로 앞날을 투시하는 그가 벽제갈비의 올해를 결코 만만치 않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내막은 이렇다. 신규사업과 매장 리뉴얼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 봉피양 본점의 경우 삼성타운내로 삼성전자가 입주하는데 맞춰 점포리뉴얼 공사를 마무리 할 예정이고 인천공항 교통센타점도 CJ와 새로운 계약 7년을 위해 봉피양 분점으로 올 6월 리뉴얼하게 된다. ◇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멈추지 않는 학습벌레여기에 한식점 1개 점포와 양식레스토랑 1개 점포를 푸드코트 콘셉트로 추가 개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에게 있어 무엇보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중국 북경 하남호텔의 벽제갈비 오픈이다. 오는 7월1일에 오픈일이 예정돼 있어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시키는 중이다. 따라서 기존 인력만을 가지고 대형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려면 회사 업무와 직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려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한 것이다.김회장은 이번 중국 브랜드 수출을 계기로 앞으로 해외 프로젝트시스템을 세가지 차원에서 완성시킬 계획이다. 첫째 직원과 간부가 한국의 외식산업을 ‘지식서비스’ 산업 수준으로 격상시켜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 둘째 고급브랜드 성공에 꼭 필요한 마케팅 전략을 중국 현지에서 펼치는 다국적 기업들의 다양한 마케팅 기법에서 배우는 일. 셋째 사주와 간부, 직원 모두가 함께 한식 세계화의 성공야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 등이다.김 회장은 한시도 쉬지 않는 학습벌레다. 나이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배움에 목말라한다. 이로 인해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몇 안 되는 실력 있는 외식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작년 9월에 설립된 한중외식협회 초대 회장직도 맡고 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변하지 않는 김 회장의 지칠 줄 모르는 일 욕심과 추진력 그리고 ‘공학적 감각’의 직관력이 어떤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갈 지 궁금하기만 하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2008.10.06 I 객원 기자
서태지 "학창시절 `문제아`였던 것 후회"
  • 서태지 "학창시절 `문제아`였던 것 후회"
  • [조선일보 제공] 서태지(36·본명 정현철)는 따로 만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되는 가수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후 서태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했다. 각 매체들이 집요하게 그를 만나려는 것은 대특종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만나는 것 자체가 경쟁이 돼버린 것이다. 그는 3집 음반 수록곡 '내 맘이야'에서 "난 신문을 보면/ 눈이 뒤로 돌아가" 라며 매스컴을 조롱했다. 그러곤 무대 위에서 스포츠신문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랬는데도 언론이 서태지에 목 매는 것을 보면 그의 '매스컴 길들이기'가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서태지에게서 전갈이 왔다.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9월 29일 오후 8시 서울 강남의 서태지컴퍼니 사무실로 갔다. 서태지컴퍼니 직원이 버튼식 자물쇠로 작동되는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 다시 IC 카드를 이용해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긴 맘대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어요." 서태지는 최근 3장으로 된 8번째 음반 중 첫 싱글 앨범을 내놓았다. 2004년 7집 후 4년6개월 만이다. 1992년 '난 알아요'라는 노래로 한국인 뇌에 규모 7.0 강진(强震)을 일으킨 서태지는 '하여가' '교실이데아' 등을 줄줄이 히트시키고 96년 1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솔로로 컴백해 수 년 만에 한번씩 새 음반을 들고 나타나 활동하다가 사라지길 반복해왔다. 7월 말 새 음반을 발표한 서태지는 8월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자신의 록 페스티벌인 'ETP 페스티벌'을 열었다. 9월 27일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영국 로열필하모닉과 함께 '서태지 심포니'를 구성해 록―클래식 협연을 했다. 그때마다 2만~3만 명이 공연장을 메웠다. "이 건물 몇 층에 서태지씨가 있나요?" 이 질문에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이 건물 안에는 계십니다." 우스꽝스러운 문답은 더 진척되지 않았다. 아마도 서태지는 건물 내부에서 숙식과 음악작업을 모두 해결하고 있는 듯 했다. 서태지컴퍼니 직원들은 서태지를 '서 회장'이라 부른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다. 직원들끼리 "서태지씨가…" 식으로 말하면 남들이 알아들을까봐 다른 호칭을 궁리하다가 '회장'이란 호칭이 굳어졌다고 한다. '서 회장'은 약속시각을 조금 넘겨 나타났다. 이틀 전 공연 피로 탓인지 얼굴이 꺼칠해 보였다. 입 주변에 수염이 짧게 자라 있었다. 양쪽 무릎이 뚫린 청바지에 운동화, 회색 셔츠에 모자 차림의 그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하고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와는 2004년 인터뷰 때 한번 만난 적이 있다. ―회사가 언제 이쪽으로 이사했나요? "2년쯤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외국에서 음반 녹음을 할 수 있었는데, 이사도 다 했고 스튜디오, 연습실 다 돼있다고 해서 2년 전쯤 몰래 한국에 들어왔어요. 2004년에 활동 끝내고 인도와 미국 여행을 했는데 이번 작업은 한국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내내 여기서 작업했어요." ―외국에서 작업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유롭기 때문에'라고 했었죠? "창작을 할 때는 자유가 필요해요.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유요.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가, 길거리에서 진열장을 보다가도 뭔가 영감을 얻을 수가 있죠." ―그럼 서태지를 구속하는 것은 뭔가요? "저를 구속하는 것은 한국이죠. 한국에서는 맘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까 쉬어도 인풋(input)이 없어요. 인풋이 없으니 음악 창작도 안 되죠."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팬들 때문일 텐데 그럼 결과적으로 팬들이 서태지씨를 구속한다는 뜻이 됩니다만. "팬들이 저를 구속하지는 않죠. 그렇게 느끼는 제가 '변태'죠. 어떤 사람들은 팬들이 알아보고 달려들어도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그걸 못해요. 제가 록 밴드 시나위에 몸 담았을 때부터 사람들이 절 보고 깜짝 놀라는 게 무척 미안했어요. 그때 머리를 많이 길러서 화장실에 가면 여자인 줄 알고 깜짝 놀라고…. '난 알아요'가 이걸 증폭시켰어요. 1992년 명동에 그냥 옷 구경하러 갔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포위해 교통이 마비되고 경찰이 사람들을 끌어내고…. 차 한 잔을 마셔도 손가락질하고 웅성웅성 하는 그걸 저는 못 견뎌요. 그러다보니 혼자 지내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요." ―밥 먹으러도 나가지 않나요? "밥은 여기서 시켜 먹기도 하고 일하는 아주머니가 해주시고… 가끔 어머니가 와서 해주기도 하고요." ―그럼 2년 전에 와서 이 건물 밖에 나간 적이 없단 말인가요? "스키장에 한번 갔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는 시골로 한번 놀러 가고요. 그게 전부예요." 그는 "습관이 돼서 답답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방에 틀어박혀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고 음악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지 못하는 건 일종의 불행"이라고 하자, 그는 엄지와 검지로 "딱" 소리를 내며 "그렇죠!"라고 말했다. 9월 27일 서태지와 로열필하모닉의 협연은 서태지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이다. 서태지는 3집에 실린 노래 '영원'에서 이미 클래식 음악을 시도했었다. 알려진 대로 서태지의 셋째 할아버지 정희석(2002년 작고)씨는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낸 국내 음악계 원로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오랜 꿈이었죠? "'영원'을 만들 때만 해도 디즈니 영화음악처럼 장엄한 클래식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클래식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 'S&M'을 듣고 나서 언젠가 꼭 나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이번 공연은 영국인 지휘자 톨가 카쉬프(46)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태지가 2년 전 이번 공연의 기획 단계에서 "카쉬프가 섭외되면 공연을 하고 섭외 못하면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연기획사와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카쉬프는 클래식계에서는 무명이지만 2002년 영국 밴드 퀸의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연주한 크로스오버 음악인이다. "카쉬프가 클래식계에서 유명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클래식 쪽에서는 이단아(異端兒) 같은 존재예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저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점이 비슷하던가요? "메이저 음악 이력에서 뛰쳐나와서 새로운 걸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욕도 먹고…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어요. 저도 옛날 록음악 할 때부터 형들한테 욕 많이 먹었거든요. 록음악 안 듣고 '삼표 음악' 듣는다고요." 그가 말하는 '삼표 음악'은 흑인음악의 당시 은어다. '삼표 연탄'이 유명했던 시절이다. ―음악 하기 전 중학교 때부터 '문제아'였죠? "쉽게 말해 '양아치'였죠. 집 나가서 돈 번다고 일도 하고 남자들끼리 싸워서 서열도 정하고…. 그래도 그때 배운 게 지금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깡' 같은 게 생긴 거죠. 어떤 일이 생겨도 나는 할 수 있다 같은 생각 말이죠." ―이번 공연에서 '교실 이데아'를 부르기 전에 "교육이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라고 했는데, 교육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습니까? "엉망진창이니까 엉망진창이라고 한 거죠. 실제로 '교실 이데아'가 나왔던 94년에 비해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학생들이) 어린 시절에 너무 많은 걸 파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고. 제 팬들 중엔 벌써 학부모가 된 사람도 있고 아직 학생도 있어요.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바꿔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제도교육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뒀으니까요." ―가출을 많이 했다고 무대에서 말했는데, 첫 가출은 언제였나요? "가출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예요. 1, 2주 사라진 적도 있고 며칠 있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중2, 중3 때쯤 처음 가출한 것 같아요.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체벌에 저항하기 시작했죠. 사랑의 매든 아니든 폭력은 안 된다고 그때 확신했어요. 중 3때 한 명이 잘못했다고 반 전체가 단체로 매를 맞은 적이 있어요. 그때 교실을 나가버렸어요. 그 이후 우리 반에서 체벌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저한테 고마워하기도 했죠(웃음)."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 역시 중 3때 담임선생님 아닌가요? "바로 그 선생님이 단체 기합을 줄 때 제가 학교를 뛰쳐나간 거예요. 그 일 이후 선생님은 저를 위해 체벌을 없애고 졸업할 때까지 저를 이끌어주셨어요. 그때 머리나 옷도 단정치 못했는데, 졸업사진은 오래 남는 거라고 선생님이 타일러서 얌전하게 사진을 찍었죠. 그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중 3때 이미 학교를 그만뒀을 거예요." ―지금은 그때 '문제아'였던 것을 후회하나요? "후회하지요. 같은 시기에 부모님에게도 많이 맞았어요. 저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있었고. 음악 하면서 겉멋이 들어 집이든 학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요. 정말 어린 생각이죠. 학교는 몰라도 집은 버리면 안 되는 건데. 학교든 집이든 매만 들었다 하면 무조건 나가버렸어요." 서태지는 중 3 담임교사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컴 백 홈' 했다. 이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 북공고 건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1학년 도중 중퇴하고 말았다. ―다시 '가출 벽'이 도진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좀 컸어요. 그런데 점점 제 인생에서 음악의 비중이 커지니까 그쪽에 집중하고 싶어진 거죠. 중학교 때만 해도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설득하려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를 설득해 학교를 그만두기로 하고 나서는 집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 드렸어요. 그리고 '시나위'에 들어가서 돈도 벌고 차도 샀지요." ―'문제아'로 분류되는 10대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입니까? "그렇다고 해야죠. '컴 백 홈'을 만들 때, 중 3때 느꼈던 것을 모두 그 노래에 담았어요.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생명이 태어나자 마자 부모의 제압이 시작됐다…. 물론 결국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 노래에 그런 생각을 담았어요. 그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한다 해서 들을 나이도 아니죠. 그때는 세상의 중심이 다 자기 자신일 테니까." 노래 '컴 백 홈' 가사는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난 이제 깨달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유 머스트 컴 백 홈' 하고 마무리된다. 이제 서태지 팬들은 가출보다 독립을 생각할 나이다. 대다수가 20대이고, 30대 팬도 꽤 많다. 지난 8월 ETP 페스티벌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서태지 데뷔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중고생들도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서태지는 "중고생들을 보면 정말 귀엽다"며 "내가 '난 알아요'를 부를 때 수정(受精)되지도 않은 무(無) 존재였으니까"라며 웃었다. 서태지 팬은 '서태지 마니아'와 보통 팬으로 나뉜다. '마니아'들의 열광도는 빅뱅이나 동방신기 팬 못지않다. '서태지 심포니' 공연이 모두 끝난 뒤 20대 여자 팬 4명이 무대 정면을 바라보더니 외쳤다. "오빠! 오늘 이렇게 좋은 공연 보게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 4명은 이어 바닥에 엎드려 넙죽 큰 절을 올렸다. 서태지에게 그 목격담을 들려줬다. "하하, 그건 팬들이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봐야죠.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거예요. 정말 재미있는 공연문화인 것 같아요." 서태지의 공연을 보면 그가 마니아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서태지는 공연 중간 중간 연인이나 동생에게 하듯 반말을 섞어서 이들과 대화한다. '서태지 심포니' 공연에서도 그는 "떠들면 안돼. 이건 심포니니까", "이 귀여운 희귀생명체 같으니라고"같은 말을 했다.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여성 팬들의 환호가 터졌다. ―그런 말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태지가 마니아들만 상대한다는 거죠. "제 공연 관객은 대다수가 저보다 나이가 적고 해서 동아리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마니아들만 상대하는 것 같다는 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에게 집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투는 '완전 팬'들에게만 들리는 말이겠죠." ―'완전 팬'은 뭔가요. "서태지닷컴 회원으로 주기적으로 닷컴 안에서 활동하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모두 알아듣는 사람들을 '완전 팬'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 중 제 대화의 절반은 그런 팬들을 향한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팬들까지 포함하는 겁니다. 물론 팬을 그룹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요." ―'보통 팬'들 사이에선 네 곡 담긴 이번 음반이 1만1000원 안팎은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꽤 있었습니다. "다른 음반보다는 좀 비싸게 팔자고 한 건 사실이에요. 제 음악에 대한 가치를 그렇게 부여하고 싶었어요. 음반에 쏟아 부은 정성, 비용, 기간이 그 정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음반 값이 얼마냐는 논쟁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내용물이죠. 5집 때는 러닝타임이 짧은데 비싸다고 했었죠. 노래 길이가 짧다고 음반 값이 싸야 한다면, 그림은 극장 간판이 가장 비싸야 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으니까 좀 비싸게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공연 역시 무대장치를 비롯해 제작비를 너무 많이 들이는 것 아닌가요. 그러다 보니 티켓 값이 올라가는 것일 테고요(서태지 심포니 티켓은 최고 16만5000원이었다). "무모할 정도로 제작비를 많이 들이죠. 욕심이 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단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니까요. 팬들에게 좋은 무대를 선사하고 싶은 게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로 하고 싶어요. 후회 없이 모두가 행복할 만한 무대 말이에요." 서태지의 욕심은 무대연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음과 박자를 부수고 쪼개어 낱낱이 해체한 뒤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재조립하는 그의 작곡과 편곡은 한국에서 그가 오롯이 개척해왔다. 2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으나 신곡 4곡을 최근에서야 발표한 것은 그런 작업에 들이는 시간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된 곡은 연주라는 마지막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서태지가 쓴 곡을 연주할 만한 뮤지션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새 음반에서는 리듬 부분을 극도로 잘게 나눴기 때문에 드러머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서태지는 그가 국내 최고 드러머로 꼽는 '피아'의 양혜승과 함께 녹음을 했지만, 라이브 공연 드러머는 오디션을 통해 최현진을 뽑았다. ―연주를 금방 하던가요. "오디션을 본 뒤 '한 달간 하루 종일 연습만 해야 한다. 할 수 있겠냐'고 했더니 현진씨가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드럼만 치는 게 내 꿈이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두 손이 다 부르트게 연습을 했어요. 한 달 뒤 '이제 됐다' 하면서 얼싸안고 외쳤죠. '우리가 일단 한국 최고는 된 것 같다. 이제 세계 최고가 되자.'" 서태지는 이어 인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서태지가 인디 뮤지션 빼가서 인디가 망한다는데, 가슴 아픈 얘기예요. 서태지 밴드에 합류한다고 한국 인디가 망한다면 이상한 거죠. 저는 정말 실력 있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2000년부터 서태지와 함께 활동해 온 안성훈(기타)은 이렇게 말했다. "서태지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 경험했습니다. 제가 인디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겠지요. 공연 앞두고 한 달 간 매일 12시간씩 연습하는 '감금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서태지 밴드에 있으면 욕심이 생겨서 힘든 걸 잊어버리게 됩니다." 서태지의 새 노래 가사들에서는 세상에 대한 증오나 경멸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 '시대유감'이란 노래에서 "짜식들 거 되게 시끄럽게 구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하는 가사가 심의에 걸리자 노래를 통째로 들어내고 연주곡으로 출시했던 그가 유순해진 걸까. ―그런 것을 '서태지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정신은 아직 유효한가요. "정신이오? '똘끼'라고 해야죠. 지금도 그런 상황이 오면 생각은 똑같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마음은 아직 10대거든요"라고 했다. "마음은 20대"가 아니고? "저는 15세에 머물고 싶어요. 중 3때요. 그때 방황했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게 제 음악과 인생에 좋은 거름이 됐어요." 피곤해 보이던 서태지 얼굴에 어느새 윤기가 돌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자 자정이 훌쩍 넘었다. "앞으로 4년 뒤에나 또 만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좀 길죠?" 라고 대답한 뒤 덧붙였다. "아마도 내년 여름 전까지만 활동하고 또 다음 앨범 준비를 시작하게 될 겁니다. 일단은 한 달 정도 푹 쉬고 놀고요. 새 음반을 내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시간에 얽매이다 보면 음악이 재미 없어지거든요. 거기서 벗어나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FM 비즈니스'에서 벗어나보자는 것이죠." 'FM 비즈니스'란 'Fucked up Music Business(엉망진창 음악산업)'를 뜻하며, 7집에 실린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가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지하 스튜디오에 자승자박(自繩自縛)된 천재의 손바닥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스스로를 옭아매고 몇 년씩 창작에 매달리는 서태지. 자기 관리에도 철저한 그는 인터뷰에서 녹음과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사진 역시 인터뷰 후 소속사에서 찍은 것 중에 그가 골라 보내온 것이다. / 서태지컴퍼니 제공
보고 듣는 이중의 재미...클래식의 향연
  • ['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①]보고 듣는 이중의 재미...클래식의 향연
  • ▲ MBC '베토벤 바이러스'[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안방극장이 매주 수, 목요일 밤 클래식 음악의 향연에 빠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 이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MBC ‘베토벤 바이러스’가 치열한 수목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선두로 나서며 안방극장을 장악할 태세다. 방송 관계자들도 방영 전 ‘베토벤 바이러스’가 새로운 수목드라마 경쟁 판도에서 수위를 점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베토벤 바이러스’의 선전은 올 하반기 안방극장의 대형 이변으로 꼽아도 무리가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평가절하 됐던 이유는 소재가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받아들여질 법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점이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학창시절 음악수업 시간에 들어본 게 거의 전부일 정도로 클래식 음악은 시청자들과 거리가 있는 소재다. 그동안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대중음악이었고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다는 선입견도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마니아 드라마에 머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것도 그래서다. MBC ‘조선 여형사 다모’, SBS ‘패션 70s’로 인기를 끌며 스타 PD로 입지를 다진 이재규 PD가 ‘베토벤 바이러스’의 연출을 맡았고 연기력에서 검증받은 김명민을 비롯해 이지아, 장근석, 이순재, 박철민, 송옥숙 등 화려한 캐스팅을 갖췄지만 경쟁작들의 진용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KBS 2TV ‘바람의 나라’는 시청률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고 SBS ‘바람의 화원’은 역시 사극으로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조선시대 두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이 주인공인 만큼 경쟁작들이 ‘베토벤 바이러스’보다 시청률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 같은 당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비록 근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시청률 선두로 뛰쳐나가며 수목드라마 경쟁을 평정할 교두보를 마련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틈틈이 긴장감 있는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시청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꿈을 잊고 전업주부로 살다 20여년 만에 첼로를 다시 집어 들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정희연(송옥숙 분)이 연주를 앞두고 남편에게 끌려 집에 돌아가다 다시 도망쳐 연주회장으로 돌아오는 장면과 강건우(장근석 분)가 땀을 흘리며 간신히 시간을 맞춰 연주회장에 도착하는 장면 등등. 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이 뚝뚝 떨어지는 지휘자 강마에를 연기하는 김명민을 비롯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캐릭터는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를 기반으로 클래식 음악마저도 시청자들에게 갈수록 친숙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베토벤 바이러스’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 드라마를 보고나서 클래식에 푹 빠졌다.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다” 등의 글이 적잖이 올라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극중 연주장면에 대해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nbsp;‘베토벤 바이러스’가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관련기사 ◀☞['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④]'기대작? 사실은...' 비하인드 스토리☞['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③]日 '노다메 칸타빌레'와 닮은점 다른점☞['베토벤 바이러스' 스페셜②]'정 떨어지는 연기도 호평'...김명민의 힘☞[TV천하 삼분지계④]'박빙' 수목극&일요 예능..시청자가 꼽은 매력 포인트☞[TV천하 삼분지계②]맞'바람'에 '베토벤'...드라마 삼국지, 강점과 약점은?
2008.10.01 I 김은구 기자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