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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여름영화가 건져 올린 기록들
- ▲ 올 여름 극장가에서 사랑 받은 작품들. `트랜스포머3` `쿵푸팬더2`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 `최종병기 활` `마당을 나온 암탉` `써니`(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올 최고 흥행작에 애니 첫 500만 돌파, 전편 기록 경신 속출` 2011 극장가 여름 시즌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4일 개봉한 `최종병기 활`을 끝으로 여름 시장을 겨냥한 대작도 모두 베일을 벗었다. 경쟁기간은 지난 5월 말부터 8월까지 세 달 남짓.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포문을 열었다면 후반부는 토종 대작이 장식했다. 외화는 3D로 중무장한 시리즈 물이 특히 많았다. 결과는 외화의 승리. 1000만 초대박 영화는 올여름에도 없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는 신기록을 쏟아내며 이름값을 했고, 국산 대작은 본전 찾기에도 급급한 모습으로 대조를 보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기대를 덜 샀던 `최종병기 활` 등은 선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트랜스포머3`가 몰고 온 반향이 컸다. 개봉 2일 만에 100만, 13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초반 막강한 흥행세를 보인 이 작품은 1, 2편의 기록을 깨고 시리즈 최고 흥행 영화 반열에 올라섰다. 3편은 현재도 소규모 상영 중인데 15일까지 누적관객 777만5401명을 기록 중이다. 이는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중 최고 흥행 성적에 `아바타`에 이은 역대 개봉 외화 흥행 2위의 기록이다. 3, 4위 또한 `트랜스포머` 전편이 각각 꿰차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의 유별난 트랜스포머 사랑을 바로 말해준다. 지난 2009년 개봉한 `트랜스포머2`는 국내 관객 743만7593명을 동원했으며 2007년에 개봉한 1편은 743만7443명의 흥행성적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1000만 고지를 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올여름 극장가엔 `트랜스포머3`를 비롯해 `형보다 나은 아우`가 속출했다. 지난 5월26일 개봉한 `쿵푸팬더2`는 전편이 세운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 동원 기록(467만 명)을 스스로 깬 데 이어 애니메이션 사상 첫 500만 돌파의 꿈을 이뤄내며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사를 새롭게 썼다. `쿵푸팬더2`의 최종 스코어는 506만 명. 이 영화는 드림웍스 최초 한국계 여성감독 여인영(미국명 제니퍼 여 넬슨)이 메가폰을 잡아 국내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해리포터` 마지막 편 역시 국내에서만 430만 관객을 모으며 활짝 웃었다. 이는 시리즈 종전 최고 기록인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425만 명을 넘어선 수치다. 전 세계적으로도 11억 342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거둬 역대 흥행 영화 3위를 꿰찼다. 1, 2위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27억8230만 달러)와 `타이타닉`(18억4320만 달러)이다. `해리포터`는 이 밖에도 국내에서만 시리즈 통산 2850만 명을 동원, 국내 개봉한 시리즈 가운데 최다 관객 기록도 갖고 있다. 반면 이에 대적하는 한국영화 기대작은 힘이 달렸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작품이 오히려 흥행에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5월4일 성수기를 피해 서둘러 개봉한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735만 관객을 모으며 석 달째 장기 상영 중이고, 가장 늦게 개봉한 액션 사극 `최종병기 활`은 개봉 7일 만에 150만 관객을 모으며 앞서 개봉한 100억 원 대 토종 대작 `7광구` `퀵` `고지전` 등을 압박하고 있다. 국내 최초 우리 기술진이 제작한 3D 영화(`7광구`), 처음으로 시도된 스피드 액션(`퀵`) 등 새로운 시도는 돋보였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300만 문턱에서 다소 힘든 싸움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명필름이 제작한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일, 개봉 2주 만에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 100만 돌파의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이 작품은 130만 관객을 넘어 순항하고 있다.
- [마켓in][4th 피플]윤용로 하나금융 부회장
- 마켓in | 이 기사는 08월 17일 07시 40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누구나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말처럼 쉽진 않다. 나이를 먹고 삶의 주름이 하나 둘 잡히면 열리기 보다 닫히는 게 사람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든다. 닫히고 싶어 닫히는 게 아니다. 살며 조여진 조리개 탓에 눈과 귀와 머리가 편해지려 드는 거다. 윤용로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나 금융계 최고경영자(CEO) 시절 때나 열린 이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사는 게 고단해져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세상에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윤 부회장은 지난 7월부터 하나금융의 글로벌 전략업무를 총괄하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를 앞둔 하나금융이 지난 3월 그를 신임 외환은행장에 내정했지만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행장 취임은 늦어지고 있다. 하나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은행 산업은 나라 밖으로 나가야 산다`는 그의 소신은 더 굳건해진 것 같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그간 계속 강조돼 온 화두죠. 그러나 구호에 그치기 일쑤였고 알맹이도 허약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해외 진출을 바라봐야 합니다. 국내 금융산업은 포화상태고 밖으로 나가는 것 외엔 성장의 길이 없어요. 하나금융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저도 그 고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규모는 2000조원을 웃돈다. 경제규모(GDP)의 2배를 넘어서려 한다. 실물경제의 성장속도와 경제주체별 상황을 보면 은행 산업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현금 유보율이 높은 대기업은 은행 돈 쓰기를 멈췄다.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도 턱밑까지 찼다. 우물안만 맴돌다 보니 은행간 고객 뺏기만 반복될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의 순이자마진(NIM)은 떨어지고 있다. NIM이 줄다보니 충분히 자본을 쌓을 기반도 약해졌다. “해외진출 절박한 심정으로” “1970년대 국내 기업이 앞다퉈 중동으로 나간 것은 나라 안에 먹고 살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융산업이 처한 상황이 당시와 똑 같아요. 나라 밖에서 먹을 거리를 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는 그래도 하나은행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중국 현지법인과 인도네시아 PT뱅크하나 등 주요 거점망의 현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고 인도네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주지역 진출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성공적인 해외진출을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통해 10~20년을 내다보는 긴 안목의 투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선진국 시장은 교포 고객을 중심으로 한 틈새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신흥시장은 좀 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죠.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 리스크가 큰 신흥시장으로 진출할 경우 국내 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현지 은행을 설립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초기 위험을 줄이면서 사업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큰 딜(Deal)이나 주요 프로젝트 마다 해외 유명 투자은행(IB)만 찾는 대기업에 대해선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때 은행들이 팔을 걷고 기업들을 살리지 않았나요? 그런데 지금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리 은행을 이용하나요? 아닙니다. 은행들의 해외시장 확대에 대기업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는데 말이죠.” 윤 부회장은 정통 재무부 관료다. 21회(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 재경부 외화자금과장과 은행제도과장을 거쳐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기업은행 수장을 맡아 미국발 금융위기로 휘청였던 중소기업 구하기에 앞장섰다. 입장 바뀌면 알게 된다 했던가. 긴 세월 금융정책당국에서 일하다 정책의 수요자가 되어 본 윤 부회장 역시 소회가 적지 않다. “은행에 와 보니 더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감독당국 재직 시절 과연 고객의 입장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한다고 했는데 충분히 했는지, 친절한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데 정말로 절실하게 수요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수요자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으면 결국은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정책 수요자가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네? 지금 금융감독 수장들요? 아이쿠, 다들 유능하신 분들이죠. 저축은행 사태 등 어려운 시기를 만나 고생이 많을 거에요. 감독당국자의 운명이죠. 가계부채 문제는 2000년대 들어 은행들의 대출처가 제한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가계대출로만 쏠린 결과에요. 위험수준에 와 있습니다. 지금 감독당국의 정책 방향이 옳다고 봐요.” 닫힌 조직 vs 열린 조직 관직에 있을 때는 가장 시장친화적인 공무원이라는 평을 얻었던 그다. 기업은행장 시절에는 열린 행장으로 은행 안팎의 신망을 샀다. 비결이 무엇일까. 윤 부회장은 살면서 체득한 철학 하나가 있다고 했다 - `답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조직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안다.` “다만 외부환경 탓에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안할 뿐이죠. (스스로) 말하게 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니 어려운 문제도 절로 풀렸던 것 같아요. 공직에 있을 때도 저는 실무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좋은 안을 택했던 거에요. 기업은행장 시절 때도 마찬가지고. 모든 신사업이 다 우리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겁니다. 사실 저는 그들을 말할 수 있도록 한 것 밖엔 없어요.” 윤 부회장은 윗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집을 부리고 개입하려 들면 아래 사람은 받아쓰기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고 조언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듣고 모아진 중지, 대중의 지혜가 집약돼 도출된 결과가 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에 다른 이가 정면으로 반박하면 솔직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이를 즉자적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직원들이 기가 죽어요.” 닫힌 조직이냐 열린 조직이냐, 닫힌 사람이냐 열린 사람이냐를 가르는 작은 실천이다. “프랑스의 문호 생텍쥐베리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감을 주지 마라.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먼저 키워 줘라.` 참 와 닿는 말이에요. 강제하기 보다 스스로 움직일 동인을 주는 것, 그런 게 CEO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혼자 일하려 들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리더가 조직을 성공하게 만들어요.” 공직생활 31년, 은행장 3년의 세월이 만들어준 CEO론(論)이다. 그런 그에게도 외환은행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론스타의 주가조작 문제로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조직간 앙금의 골도 깊어진 상태다. 당장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 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이지만, 인수 후 윤 부회장이 외환은행 직원에게 어떤 꿈과 동경을 품게 할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기사 미리보기 끝-->
- [마켓in][4th 피플]윤용로 하나금융 부회장
- [이데일리 오상용 기자] 누구나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말처럼 쉽진 않다. 나이를 먹고 삶의 주름이 하나 둘 잡히면 열리기 보다 닫히는 게 사람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든다. 닫히고 싶어 닫히는 게 아니다. 살며 조여진 조리개 탓에 눈과 귀와 머리가 편해지려 드는 거다. 윤용로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은 공직에 있을 때나 금융계 최고경영자(CEO) 시절 때나 열린 이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사는 게 고단해져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세상에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윤 부회장은 지난 7월부터 하나금융의 글로벌 전략업무를 총괄하는 부회장을 맡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를 앞둔 하나금융이 지난 3월 그를 신임 외환은행장에 내정했지만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행장 취임은 늦어지고 있다. 하나금융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은행 산업은 나라 밖으로 나가야 산다`는 그의 소신은 더 굳건해진 것 같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그간 계속 강조돼 온 화두죠. 그러나 구호에 그치기 일쑤였고 알맹이도 허약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해외 진출을 바라봐야 합니다. 국내 금융산업은 포화상태고 밖으로 나가는 것 외엔 성장의 길이 없어요. 하나금융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저도 그 고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규모는 2000조원을 웃돈다. 경제규모(GDP)의 2배를 넘어서려 한다. 실물경제의 성장속도와 경제주체별 상황을 보면 은행 산업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현금 유보율이 높은 대기업은 은행 돈 쓰기를 멈췄다. 가계와 중소기업의 대출 수요도 턱밑까지 찼다. 우물안만 맴돌다 보니 은행간 고객 뺏기만 반복될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의 순이자마진(NIM)은 떨어지고 있다. NIM이 줄다보니 충분히 자본을 쌓을 기반도 약해졌다. “해외진출 절박한 심정으로” “1970년대 국내 기업이 앞다퉈 중동으로 나간 것은 나라 안에 먹고 살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융산업이 처한 상황이 당시와 똑 같아요. 나라 밖에서 먹을 거리를 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는 그래도 하나은행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중국 현지법인과 인도네시아 PT뱅크하나 등 주요 거점망의 현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고 인도네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주지역 진출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성공적인 해외진출을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통해 10~20년을 내다보는 긴 안목의 투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선진국 시장은 교포 고객을 중심으로 한 틈새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신흥시장은 좀 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죠.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 리스크가 큰 신흥시장으로 진출할 경우 국내 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현지 은행을 설립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초기 위험을 줄이면서 사업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큰 딜(Deal)이나 주요 프로젝트 마다 해외 유명 투자은행(IB)만 찾는 대기업에 대해선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 때 은행들이 팔을 걷고 기업들을 살리지 않았나요? 그런데 지금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리 은행을 이용하나요? 아닙니다. 은행들의 해외시장 확대에 대기업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는데 말이죠.” 윤 부회장은 정통 재무부 관료다. 21회(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 재경부 외화자금과장과 은행제도과장을 거쳐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7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기업은행 수장을 맡아 미국발 금융위기로 휘청였던 중소기업 구하기에 앞장섰다. 입장 바뀌면 알게 된다 했던가. 긴 세월 금융정책당국에서 일하다 정책의 수요자가 되어 본 윤 부회장 역시 소회가 적지 않다. “은행에 와 보니 더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감독당국 재직 시절 과연 고객의 입장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한다고 했는데 충분히 했는지, 친절한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데 정말로 절실하게 수요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수요자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으면 결국은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요. 정책 수요자가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네? 지금 금융감독 수장들요? 아이쿠, 다들 유능하신 분들이죠. 저축은행 사태 등 어려운 시기를 만나 고생이 많을 거에요. 감독당국자의 운명이죠. 가계부채 문제는 2000년대 들어 은행들의 대출처가 제한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가계대출로만 쏠린 결과에요. 위험수준에 와 있습니다. 지금 감독당국의 정책 방향이 옳다고 봐요.” 닫힌 조직 vs 열린 조직 관직에 있을 때는 가장 시장친화적인 공무원이라는 평을 얻었던 그다. 기업은행장 시절에는 열린 행장으로 은행 안팎의 신망을 샀다. 비결이 무엇일까. 윤 부회장은 살면서 체득한 철학 하나가 있다고 했다 - `답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조직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안다.` “다만 외부환경 탓에 구성원들이 이야기를 안할 뿐이죠. (스스로) 말하게 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되니 어려운 문제도 절로 풀렸던 것 같아요. 공직에 있을 때도 저는 실무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좋은 안을 택했던 거에요. 기업은행장 시절 때도 마찬가지고. 모든 신사업이 다 우리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겁니다. 사실 저는 그들을 말할 수 있도록 한 것 밖엔 없어요.” 윤 부회장은 윗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고집을 부리고 개입하려 들면 아래 사람은 받아쓰기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고 조언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듣고 모아진 중지, 대중의 지혜가 집약돼 도출된 결과가 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에 다른 이가 정면으로 반박하면 솔직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이를 즉자적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직원들이 기가 죽어요.” 닫힌 조직이냐 열린 조직이냐, 닫힌 사람이냐 열린 사람이냐를 가르는 작은 실천이다. “프랑스의 문호 생텍쥐베리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거나 일감을 주지 마라.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먼저 키워 줘라.` 참 와 닿는 말이에요. 강제하기 보다 스스로 움직일 동인을 주는 것, 그런 게 CEO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혼자 일하려 들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리더가 조직을 성공하게 만들어요.” 공직생활 31년, 은행장 3년의 세월이 만들어준 CEO론(論)이다. 그런 그에게도 외환은행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론스타의 주가조작 문제로 인수작업이 지연되면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조직간 앙금의 골도 깊어진 상태다. 당장은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 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이지만, 인수 후 윤 부회장이 외환은행 직원에게 어떤 꿈과 동경을 품게 할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기사 미리보기 끝-->
- [전문]이명박 대통령 제66주년 광복절 경축사
- [이데일리 문영재 기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내외 귀빈 여러분,사랑하는 북녘 동포와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66주년 광복절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경축합니다.광복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자유의 공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광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민족의 운명을 우리의 손으로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이 자리에서 저는 조국을 위해 몸 바친애국선열들의 꿈을 되새겨 봅니다.압제와 가난의 질곡을 벗고나라를 세워 사람답게 사는 것,이것이야말로 그 분들과 우리 모두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광복 이후 60여 년 대한민국은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참화 속에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구 5천만 이상으로 2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가진 일곱 나라 중 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세계질서를 만드는 G20 회원으로 G20회의를 개최하고 개발의제를 주도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녹색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선도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여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 월드컵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개최하는 다섯 나라 중의 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K-pop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60여 년 전 우리는 세계 사회에서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습니다.6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계 사회가 주목하고, 모든 나라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세계의존국가가 세계책임국가로 변모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출범부터 내걸었던 성숙한 세계국가, 선진일류국가라는 우리의 비전은 현실이 점차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만우리에게는 땀과 눈물로 이룬 역사였습니다.숱한 위기를 넘고 또 넘은 역사였습니다.지난 10여 년만 보더라도 그 엄혹했던 1997년 외환위기를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희생 속에서도 금을 모아가며 단합된 힘으로 극복했습니다. 2008년, 우리에겐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들이닥친 세계금융위기도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주요국 재정 위기에서 비롯된 위기가 또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에도 우리는 당당히 맞설 것입니다.위대한 우리 국민은 늘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이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우리는 이제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세계는 지금 발전과 위기가 교차하고 있습니다.IT 혁명과 함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민주화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있습니다. 세계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신흥국가들이 본격적인 발전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범상치 않은 위기의 증후군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어쩌면 경제 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가 힘듭니다. 글로벌 재정 위기로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식량 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그늘도 깊어지고 있습니다.모든 나라가 높은 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운명이 걸려 있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배우고 따라가려 했던 나라들이 지금은 모두가 같은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이로 인해 우리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지금 불안에 빠져 있습니다. 특히,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를 풀고, 평화와 번영의 세계를 열려면 새로운 발상과 사고가 요구됩니다.저는 G7체제에서 G20체제로 전환된 것이 매우 큰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G7은 부자 나라들만이 모인 회의였습니다.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대변한 체제였습니다.G20은 선진국과 신흥국, 저발전국, 그리고 5대륙이 골고루 모두 모여 ‘함께 문제를 푸는 세계’를 상징한 것입니다. G20은 오늘의 세계가 봉착한 위기를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기 어렵다는 절박한 인식의 산물입니다.세계적 수준에서 조정과 합의와 실행, 이른바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그 자체로 웅변하고 있습니다.오늘 분명히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기존의 시장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 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의 모델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도 진화해야 합니다.‘일국 중심 정치’에서 ‘글로벌 민주주의’로 ‘이념의 정치’에서 ‘생활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애’(Humanity)와 ‘창의’(Creativity),그리고 ‘책임’(Responsibility)의 가치가 중심가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치를 통해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회,창조적 혁신이 흘러넘치는 사회, 책임을 공유하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파멸적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지속적 성장’과격차를 줄이는 ‘포용적 성장’이 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우리 정부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저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녹색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사회”를 내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녹색성장”은 세계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안은우리 역사상 최초의 비전입니다.‘더 큰 대한민국’의 중심 비전이기도 합니다.2008년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응했습니다.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2만여 개의 기업이 사라지고,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우리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고통을 나누었습니다.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일자리 나누기’와중소기업에 대한 집중 지원을 통해대량 실직과 기업의 줄도산 없이 위기를 넘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위기 때 가장 먼저 어려움을 겪는 서민생활에 정부 정책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를 정부의 정책 기조로 삼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작년에는 비리와 특권을 제어하고,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를 위해 “공정사회”를 국정 지표로 제시했습니다. 경제 격차가 사회 격차를 낳고 이것이 기회의 격차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전들이 아직 현실에서 확고하게 뿌리 내리고 있지는 못합니다.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도 잘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사의 변화를 통찰하고,대한민국이 선진일류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녹색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사회”는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세계가 찾고 있는 해법을 우리가 먼저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위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그 기초를 반드시 닦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지구 환경 보전과 경제 번영,성장과 삶의 질 향상, 경제발전과 사회통합,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함께 가는 새로운 발전 체제를 만드는 것입니다.‘발전의 양’ 못지않게 ‘발전의 질’이 중요합니다.기후 변화에도 대응하고 우리 모두의 생존 기반도 다지는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격차를 확대하는 발전이 아니라격차를 줄이는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길어진 생애 주기 전체에 걸쳐 자신의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공생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금년 상반기에 고용의 질이 좋은 상용직 일자리가 60만개가 늘었습니다. 어렵다 하지만 우리 실업률은 OECD 최저 수준이고, 청년 실업률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1인기업, 벤처기업, 사회적기업을 포함해 창업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8년 만에 소득 양극화 추세가 꺾여 완화되고 있고, 중산층 비율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습니다.금년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30%, 86조 원으로 역대 가장 큰 금액입니다.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둔 지금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복지예산은 계속 늘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 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우리는 밟아서는 안 됩니다.국가 재정이 고갈되면 복지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느라,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오늘 편하고자 만든 정책이내일 우리 젊은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우리는 글로벌 재정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재정 위기는 다른 위기와 달리 해결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위기입니다.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어떠한 위기에도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2008년 금융 위기도 우리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차원에서 저는 제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가능하다면 균형 재정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균형 재정을 추진하는 가운데서도 맞춤형 복지와 삶의 질과 관련된 예산만큼은 늘려 가겠습니다. “공생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도 적극적으로 해 나가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들이 고교 졸업생들에게 취업의 문을 여는 최근의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합니다.이것이 공기업, 금융기관, 민간기업에 두루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마이스터고, 특성화고에 대한 전액 학비 지원과 산학 연계를 바탕으로 ‘선취업, 후진학’의 기회를 더욱 넓혀가겠습니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의 합리적 해소도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는 중요한 분야입니다.정부는 곧 종합적인 비정규직 개선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비정규직이 동일한 노동에서 차별 받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데 초점을 둘 것입니다.정부는 그동안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리는 정책을 비롯해서미소금융과 전통시장 상품권 확대 등 자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앞으로도 내수 활성화 정책을 통해 자영업에 혜택이 더 돌아가게 하고, 골목 상권을 보호하는 대책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물가를 잡는 것이 우리나라의 힘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물론 아니기 때문에 저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습니다.어쨌든 정부가 가진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물가 안정에 힘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당장의 해결책은 어렵지만 전월세 시장의 안정과 서민의 주거비 경감을 위해소형 임대주택 공급을 장기적으로 늘리도록 하겠습니다.백 년에 한 번 일어날 기상 이변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재해 대비 기준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이를 내년 예산부터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공생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 ‘동반 성장’입니다.우리의 기업 생태계를 튼튼히 구축해야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그래야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그래야 서민 경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그래야 지역 경제도 살아납니다.‘동반성장’은 궁극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의 생존 기반과 경쟁력을강화시켜 주는 길입니다.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발전에 기여한 지대한 공로를 국민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이제 시대 변화에 따라 대기업에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졌습니다.사회적 책임의 무게가 훨씬 커졌습니다.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책임,일자리를 더 적극적으로 만드는 책임,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서기업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세계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가집시다. 높아진 우리의 국격과 강해진 우리의 경제를 “공생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읍시다.“공생 발전”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와 시장, 정치권과 시민사회, 기업과 근로자가 모두 힘을 합쳐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손을 잡읍시다. 그리하여 세계가 가야 할 길을 우리가 먼저 헤쳐 나갑시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살 길은 세계를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이 FTA입니다. 이미 우리는 FTA를 가장 많이 체결함으로써세계에서 경제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가 되었습니다.FTA 성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그 이상입니다.7년이 된 칠레 FTA로 한-칠레 교역량은 세 배로 늘어났습니다. 4년이 된 아세안과의 FTA도 교역량은 무려 60%가 늘었습니다.작년에 체결된 한-인도 FTA로 불과 1년 만에 교역량이 40%가 증가했습니다.7월 1일부터 한-EU FTA가 발효되고, 미국과의 FTA가 비준되면대한민국은 명실공히 FTA의 허브 국가가 될 것입니다. 한-미 FTA가 GDP 5.7% 성장과35만 개 일자리를 가져온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안보 차원에서도 한-미 동맹을 크게 강화해 줄 것입니다.시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놓치면 경쟁국에 먼저 길을 내 줄 수가 있습니다.정부는 보완 대책도 마련했습니다.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한-미 FTA는 조속히 비준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는 아직 민족사의 가장 큰 숙제를 풀지 못했습니다.통일은 겨레의 소원입니다.통일은 광복의 완성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남북은 대결의 시대에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시대를 뛰어넘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행동과 진정한 자세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도발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남과 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를 이루고, 서로 협력하여 번영의 길로 함께 가야 합니다.물론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자연 재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서 해 나갈 것입니다.우리 정부는 그동안 성숙한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일본은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그렇게 함으로써 한-일의 양국의 젊은 세대는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한 한-일 양국의 협력은 동북아뿐만 아니라세계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제 며칠 후면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동계올림픽이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선진국에서만 주로 열 수 있는 스포츠 제전이었습니다.우리의 선진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대회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읍시다. 대한민국 국민은 위기에 매우 강합니다.위기가 오면 우리는 뭉쳐서 극복해 나왔습니다. 심상치 않은 글로벌 재정 위기를 주시하면서,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들께서도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즐겁고,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것이 보람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지난 60여 년간 불굴의 도전과 성취가오늘의 대한민국을 창조했듯이 함께 가는 “공생 발전”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행복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창조해 낼 것입니다.우리 모두 국민 행복 시대를 열고,세계 속의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듭시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성공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갑시다. 고맙습니다.2011년 8월 15일 대통령 이 명 박
- 아카펠라도 하는 아이돌, 히트 "이름값 해야죠"(인터뷰)
- ▲ 그룹 `히트`[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가요계 판도가 변했다.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은 어느덧 옛말이 됐다. 기존 아이돌은 아티스트형 그룹으로 진화하고 있고, 웬만한 신인 아이돌은 가창력도 기본이다. 반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한 달에도 10여 개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가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이름 한번 알리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남성 6인조 그룹 히트(H.I.T.T)가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시대가 변했잖아요. 퍼포먼스와 외모뿐 아니라 가창력은 기본이죠. 가수는 이름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저희 팀 이름처럼 `히트`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이름값 해야죠."(히트)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들이 궁금해 각 포털사이트에서 `히트`를 검색하면 `히트상품`, `이승엽 멀티 히트`, MBC 드라마 히트(2007)가 나온다. 아직은 이름 `덕`보다는 이름 `탓` 하게 되는 비운의 그룹(?)인 셈이다. "아직 신인이니까 괜찮아요.(웃음) 언젠가는 저희 이름으로 가득 채워질 거라 믿습니다. 지금도 영어 `HITT`로 검색하시면 해외팬들의 응원글이 많이 나와요.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벌써 팬클럽 사이트가 생겼어요. 이제 아프리카만 남았는걸요. 하하."(리더 하용) 짓궂은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탕하게 눙을 친 하용은 `히트`에 대해 `Here Is The Top`(우리가 서 있는 곳이 정상이다)의 줄임말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혹자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실제 이들은 엄연히 세계 최대 음반사 소니뮤직이 선택한 국내 첫 번째 아이돌 그룹이기도 하다. 히트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앨범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록곡 어느 하나 겹치는 것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 드릴 수 있다는 거에요.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유`는 아카펠라적인 미디엄 템포의 달콤한 곡이죠. 타이틀곡 `굿나잇`은 경쾌한 댄스곡`이고요. `한참`은 이루마 선배의 솔로 피아노 연주로만 구성된 곡으로 비오는 날 듣기 좋은 감성적인 곡"입니다.(래퍼 재훈) 아카펠라 곡이나 화려한 기계음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없이 오직 피아노 솔로 연주에서의 보컬은 그만큼 세심한 창법이 요구된다. 보컬(하용, 준택, 현준, 우람, 호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히트이기에 가능한 곡들이다. 그렇다고 절대 이들이 오만한 것은 아니다. "히트란 팀명은 저희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바람이에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노랫말 하나하나의 음정이나 멜로디, 퍼포먼스 모두 저희들의 생각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는 결국 `소통`이니까요. 또 가수라는 직업 외에 생활적인 모든 부분에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히트의 또 다른 강점은 바로 멤버들의 끈끈한 결속력이다. 전 소속사의 폐업 등 데뷔하기까지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히트는 멤버들 간에 강하고 건강한 목표 의식을 갖게 됐다. 히트에게 히트는 단순히 성공을 위한 팀이 아니었다. 히트에게 히트는 그 무엇, 누구보다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제게 히트란 `본드`에요. 서로 결속력이 강하고 잘 뭉치니까요. 하나로 뭉쳤을 때 제가 부족한 부분은 얻을 수 있었고 제가 나은 부분은 나눠줄 수도 있었죠.(재훈) "여섯 명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어요. 팀으로서는 한 색깔을 보여드리고 여섯 멤버가 각각 개성을 살려 보여 드릴 수도 있죠. 그만큼 다양한 색깔을 담고 있는 카멜레온 같은 그룹입니다."(준택) "저 혼자만은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트`는 제 꿈을 이뤄줄 수 있는 팀이어서 소중해요. 혼자는 못하고 같이 있어 가능한 꿈, 그 꿈을 이뤄줄 인생의 반려자죠"(우람) "제 인생의 가족이죠. 한 명이라도 빠지면 빛이 날 수 없는 존재들. 싫고 좋고를 떠나 살면서 여러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기에 감싸 안게 되는 `가족`. 항상 곁에 있는 오랜 기간 함께 해야 할 친구들입니다."(현준) "눈앞이 캄캄했던 시절, 히트라는 팀은 제 인생의 길을 비춰졌어요.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길 잃은 바다에서 어둠을 뚫고 이제 겨우 해안가에 도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달려야죠.(하용) "히트는 `때` 같은 그룹이 됐으면 좋겠어요.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오는 `때`. 잊을 만하면 나오는, 사람에게는 없을 수 없는, 싫어해 주셔도 좋아해 주셔도 어쩔 수 없이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오래 남는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하하."(호원)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뭉쳐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 불타오르는 여섯 남자 히트. 하지만 그 밑바탕엔 역시 겸손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덕분에 가요계 선후배 가수들 사이에선 `인사돌`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인사를 하도 많이 해서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가식적으로 인사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이름값 하는 날이 오더라도 항상 지금 같은 마음 잃지 않겠습니다. 그땐 `인사돌`과 함께 `방부제돌` 같은 모습 보여드릴께요. 그런데 초심 뿐 아니라 저희 외모도 안 변했으면 좋겠네요. 하하."
- [최은영이 만난 사람]②윤제균의 `새옹지마` 영화인생
- ▲ 윤제균 JK필름 대표.[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영화감독 윤제균의 이력은 독특하다.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나 삼수 끝에 고려대에 입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은 광고회사 LG애드. 연봉은 적어도 재미는 있겠다 싶어 택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시작부터 그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경제학을 전공해서인지 전략기획팀으로 발령이 난 거예요. 예결산을 주로 하다 광고 만드는 일은 무급휴직 기간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고 퇴사 전까지 약 1년 했나요? 카피라이터로 LG 화장품 라끄베르, 이자녹스 등의 광고를 맡았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또 그 유명한 `라끄베르와 상의하세요` 카피를 제가 쓴 줄 알아요. 그건 우리 팀장이 만든 거고 전 용량, 용법 등만 적다 나왔답니다. 하하." ◇ 샐러리맨, 흥행감독 되기위기는 그에게 기회가 됐다. 입사 2년여 만에 찾아온 IMF는 그에게도 혹독했다. 빚을 내 마련한 아파트를 팔고 아현동의 2500만 원짜리 10평 반지하 전세방으로 옮겼고, 회사에선 무급휴직도 강요당했다. 대학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4개월째에 접어들었을 때다. 가진 게 없으니 신혼임에도 다툼이 잦았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한 신당 1분, 120분이면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이 끝`이라는 생각에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 10신씩, 일기 쓰듯 12일만 쓰면 되겠다 했는데 시간은 조금 더 걸려 한 달이 그냥 지났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1999년 태창흥업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작 `신혼여행`이었다. 추후 이 시나리오는 나홍균 감독에 의해 2000년 3월 영화화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윤제균은 2001년 직접 쓴 두 번째 시나리오 `두사부일체`로 정식 감독 데뷔했다. 이 또한 하고자 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해보자!`라는 영화사는 있는데 `맡겠다`는 감독이 없어 자청했다가 대박을 친 경우다. `두사부일체`는 350만 관객을 모으는 이변을 연출했고, 이듬해 선보인 `색즉시공`도 관객 400만을 돌파하며 족보 없는 신인감독, 윤제균을 다시 보게 했다. 두 작품 모두 12월13일 개봉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선전했다. 세 번째 작품 `낭만자객`(2003년) 역시 12월13일 선보였는데 결과는 달랐다. 평단의 반응은 최악이었고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투자자의 발길 역시 뚝 끊겼다. 이후 `1번가의 기적`으로 다시 서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그리고 2년 후인 2009년 국내 최초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로 1000만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 윤제균 감독이 직접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 `해운대`(이상 연출), `7광구` `퀵` `하모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간 큰 가족`(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휴먼 드라마, 그 끝은요···"윤제균은 자신의 감독 인생 10년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로 줄여 말했다. IMF가 없었다면 무급휴직도 없었을 거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글을 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라는 게 그 이유다. `낭만자객`의 뼈저린 실패가 있었기에 `해운대` 같은 대박 흥행도 가능했다. 이렇듯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겼고, 하늘이 흐리다 싶으면 곧 해가 떴다. 10년 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는 지금 충무로 최정상의 자리에 서 있다. 혹자는 `제2의 강우석`이라고도 말한다. 이 같은 평가에 그는 "부담은 되지만 불안하진 않다"고 했다. 백신 예방주사를 맞아 또 다른 위기가 닥쳐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생에 직선은 없잖아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인데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대도 그 낙폭이 크지는 않았으면 해요. 전체적인 곡선이 상승이면 되는 건데 그래서 더 겸손하게 살려고요. 자만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져 봤는걸요." 재밌고도 따뜻한 영화 만들기가 장기인 감독 윤제균의 휴먼 드라마, 그 끝은 어디일까? 그는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다며 꿈 많은 10대 소년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택시` `스피드` 같은 작품이 탐나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 `퀵`을 만들었고, `한국의 에이리언` 같은 작품으로 `7광구`를 기획했어요. 지금 제가 만들고 있는 `템플스테이`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 영화고요. `엑스맨` 같은 초능력자 이야기도 만들고 싶고,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도 하고 싶은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합니다." `템플스테이`는 ‘해리포터’ 시리즈 1,2,3편의 제작사 1492픽쳐스와 윤 감독이 이끄는 JK필름이 합작해 만드는 영화다. 1000만의 벽을 허물고 해외 진출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눈앞에 둔 윤제균 감독. 그는 "윤 대리가 10년 만에 윤 감독의 꿈을 이루어냈듯, 한국영화도 앞으로 10년 후에는 TV, 반도체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품이 됐으면 싶다"면서 "난 그에 일조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김정욱 기자) ▲ 윤제균 감독.▶ 관련기사 ◀☞[최은영이 만난 사람]①"한국영화, 윤제균과 상의하세요"☞`퀵` 강예원 "5분마다 폭탄 펑, 웃음 빵···기대하세요"☞이민기 "`퀵` 무조건 잘 돼야···겸손할 여유 없다"☞윤제균vs윤제균 "정답은 `퀵광구`"☞윤제균 감독, " `퀵`, 美 `스피드` 佛 `택시` 뛰어넘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