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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그립습니다” 노회찬 떠난 뒤에도 식지 않는 추모열기
-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아저씨 죄송합니다. 그렇게 힘드신 줄 몰랐습니다.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네요. 한동안 그럴 것 같습니다. 눈물로 보냅니다.”“잊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계속 꿈꿔가겠습다.”“마음속에서는 지워지지 않을 것 입니다! 사랑했습니다.”“평생 약자 편에 서서 노력하신 그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향한 추모열기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27일 국회장으로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된 이후 노회찬 원내대표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영원히 잠들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지못미’를 외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의당 홈페이지는 물론 고인의 페이스북에서는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한평생 사회적 약자를 따뜻이 보듬었던 ‘인간 노회찬’을 향한 그리움을 쏟아내고 있다. 아울러 정의당 당원 가입 또는 후원을 통해 고인의 뜻을 받들겠다는 글들도 적지 않았다.◇정의당 추모게시판 “정의당 후원하겠다” 봇물…고인 페이스북에도 줄잇는 추모열기특히 정의당 홈페이지 추모게시판에는 고인을 애도하면서 정의당에 힘을 보태겠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배우 김희애의 남편인 이찬진 전 ‘한글과 컴퓨터’ 대표가 고인을 애도하면서 정의당 가입 및 후원 의사를 밝힌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닉네임 ‘토토사랑’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서 어쩌나 싶지만 또 다른 노회찬이 다시 나오리라 믿는다”며 “그러기 위해 정의당 가입해서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닉네임 ‘YOUNG’은 “보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벌써 그리운 의원님, 당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할까요?”라면서 “심상정 의원님이, 침묵으로 위로하였던 것을 후회하던 것이 마음아파 정의당 가입합니다. 응원하는 사람, 같이 남아 마음아픈 사람 여기에도 있다고 표시해야 할 것 같아서 작게나마 소리내본다”고 적었다. 닉네임 ‘사나이’는 “제가 비록 보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현대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고인이 되신 고 노회찬 의원님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오래 전부터 정의당에 가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야 합니다”고 응원했다.고인의 페이스북 또한 여전히 추모열기가 뜨겁다. 지난 25일 ‘정의당 원내대표 故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 및 영결식 안내’ 게시물에는 무려 5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노회찬 원내대표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이것이 의원님께서 직접 농담으로 올리신 것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짐 벗어놓고 이제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2009년 5월 23일도 거짓말 같았는데 2018년 7월 23일도 거짓말 같은 날이에요” 등등. 고인을 향한 추모메시지는 28일 오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심상정 “노회찬과 세상을 바꿔낼 것”…”김부겸 “노회찬 못다이룬 꿈 우리의 숙제”무명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여야 유력 정치인들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노회찬 원내대표의 부재를 그리워했다. 고인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였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국회 영결식 당시 추도사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고인을 기렸다. 심 의원은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며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우리 당원들이 국민들과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이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세상을 바꿔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6411번 버스’ 사진을 올리고 “우리를 울게 만들었던 6년 전의 연설. 바로 그 버스”라면서 “더 멀리 눈물과 한숨이 없는 세상으로도 버스는 갈 것입니다. 어쩌면 노회찬은 그걸 꿈꾸며 저 버스를 응시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못다 이룬 꿈은 우리에게 숙제로 남겼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숙제”라면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을수록, 현실이 된다고 한다. 우리 모두, 그 꿈 한 시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 고인의 후원회장을 지낸 친구이자 동지였던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심노의 시대가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시대가 이렇게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면서 “관 속에 누운 친구에게 심상정이 추도사를 읽는 것이 비극의 극단이라고 할 것이다. 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애통해했다.
- 노회찬 추도식서 처음으로 '형'이라 부른 유시민...눈물의 편지
- 유시민(오른쪽) 작가가 26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제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잘 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유시민(58) 작가가 처음으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형’이라고 불렀다. 고인에게 전하는 편지에서다.유 작가는 26일 오후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노 의원의 추도식에서 “추도사가 아니고 노회찬 대표님께 짤막한 편지를 하나 써 왔다. 써온 대로 해보겠다”고 말하며 “다음 생에서 또 만나자”고 운을 띄웠다.“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던 그는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유 작가는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 보지는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본다”며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부인) 김지선 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눠라”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그리고 가끔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자”고 전했다.노 의원이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좋아했다는 유 작가는 울먹이며 “다음 생은 나도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하겠다”고 인사했다.유시민 작가가 26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유 작가는 향년 62세로 별세한 노 의원과 지난 2012년 진보정의당(정의당 전신)을 창당하고,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인연이 각별하다. 그는 노 의원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도 하는 등 공동장례위원장으로서 자리를 지켰다.배우 박중훈(오른쪽)이 26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제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날 추도식에는 유 작가를 비롯해 정의당 이정미 대표, 배우 박중훈, 김승하 전국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의 추모사가 전해졌으며, ‘내가 만난 노회찬’이라는 주제로 중학교·고등학교 동창, 지역구인 창원시 주민이 인간 노회찬을 말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6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제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또 노 의원의 평생 동지였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우리 대표님이 ‘나는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셨지만 저는 ‘노회찬이 없는 정치’ 생각해본 적 없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정의당의 꿈이고, 우리 국민이 바라는 정치라고 저는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함께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노 의원의 영결식은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엄수된다.이날 오전 9시 발인에 이어 10시에 시작하는 영결식에서는 국회장(葬)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의 영결사 후 정의당의 이 대표와 심 의원, 금속노동자 김호규 씨가 조사를 낭독한다. 이후 노 의원의 생전 영상이 상영되고, 노 의원의 큰 조카 노선덕 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다. 영결식이 끝나면 고인은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포털사이트 댓글 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일명 ‘드루킹’ 김모(49)씨 측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노 의원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 김설진 "무용계 후배들에 민들레 홀씨 같은 영감 되길"
- 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열린 ‘제15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참여 소감을 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무용에 대한 꿈을 갖게 하는 민들레 홀씨 같은 공연이다. 나도 10여 년 전 이 공연을 본 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벨기에 피핑톰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37)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 처음 출연한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설진은 “출연하고 싶었던 공연에 초청 받아 떨린다”며 “참여하게 된 게 영광이고 재미있게 공연을 즐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설진은 국내에서 ‘댄싱9’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현대무용 스타다. 2008년 오디션을 통해 피핑톰무용단에 입단했다. 국내에서는 현대무용단 무버(MOVER)도 이끌면서 무용수 겸 안무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수 이문세 소속사 케이문에프엔디와 계약을 맺고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김설진은 “나는 ‘소울 트레인’을 보면서 스트릿 댄스를 시작했고 영화 ‘백야’를 본 뒤 무용을 하게 됐다”며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영화 ‘백야’처럼 지금 무용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영감이자 동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이번 공연의 의미를 설명했다.자신이 안무한 신작 ‘고막 속 난쟁이’로 직접 무대에 오른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미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사의 찬미’를 음악으로 사용한다. 김설진은 “‘미궁’과 ‘사의 찬미’ 모두 삶을 노래하고 있다”며 “나 역시 삶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무용의 즉흥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공연의 큰 틀만 잡고 당일 무대에서 방향이 정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김설진은 앞으로도 무용과 배우를 병행하며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백야’에 출연했던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누군가는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온 배우로 생각한다”며 “그를 통해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있는 만큼 나 역시 무용과 배우를 굳이 나눠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2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열린 제15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김설진, 김용걸 예술감독, 최원준. 아랫줄 왼쪽부터 안무가 김유미, 정지연, 정재은, 김애리, 이승현, 알렉세이 오를렌코(사진=연합뉴스).‘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해외에서 활동해 국내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실력파 무용수의 갈라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처음 시작해 2년에 한 번씩 열리다 2007년부터 매회 열리고 있다. 그동안 강수진·하은지·한서혜·권세현·최영규 등 90여명이 무대를 빛냈다.올해는 김설진 외에도 김수정(이스라엘 키부츠무용단), 김애리(베를린국립발레단), 이승현(베를린국립발레단), 정재은(폴란드국립발레단), 정지연(헝가리국립발레단), 최원준(폴란드 브로츠와프오페라발레단) 등이 출연한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4년째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올해는 초청 안무가로 자신의 안무작도 함께 선보인다.김 예술감독은 “올해는 초청 무용수들이 창작 작품을 하고 싶어해 예년보다 창작 레퍼토리가 많다”며 “이들이 오랜만에 고국에서 공연을 하며 힘든 해외 활동에 대한 보상을 받고 용기를 얻어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티켓 가격 4만~8만 원. 오는 28일과 29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 ‘검법남녀’ 고규필 “낯선 의학 용어, 똑똑해진 기분”(인터뷰)
- 사진=노진환 기자[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시청률도,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틈만 나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배우 고규필은 활짝 웃었다. 순한 인상이 보는 이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만큼 지난 17일 종영한 MBC 월화 미니시리즈 ‘검법남녀’(극본 민지은, 연출 노도철)는 그에게 “기분 좋은 작업”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극중 법의조사관 장성주 역을 맡았다. 주인공인 백범(정재영 분)의 파트너로 시종일관 깐깐한 백범에게 구박을 들었다. 백범이 뛰어난 능력으로 본질을 꿰뚫는다면, 장성주는 시청자에게 이를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낯선 의학 용어 암기는 난제였다. “본의 아니게 설명을 많이 했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고생한다 싶었는지 멀리서 박준규 선배와 정유미 씨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더라. ‘검법남녀’로 똑똑해진 느낌이다.”대부분 시간을 함께 한 정재영은 ‘편안한 동네 형’이었다. 호흡을 맞추기 전에는 엄격한 선배는 아닐까 걱정도 있었다. 그는 “개그 코드가 잘 맞았다. 가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전환시켜 줬다”고 정재영을 떠올렸다. ‘라이프 온 마스’ 방송화면, ‘검법남녀’ 스틸컷(사진=OCN, MBC)이처럼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는 고스란히 성과로 이어졌다. 4.5%(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출발해 시청률 9.6%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승호 MBC 사장은 종방연에 직접 참석해 시즌2를 약속했다. 최 사장이 이끌던 ‘뉴스타파’ 팬이었다는 그는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 상반기 고규필은 생애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방영 중인 OCN 토일 미니시리즈 ‘라이프 온 마스’ 초반 식당 주인 양씨로 출연해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일조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중의적인 대사가 그의 특징이었다. 분량은 적었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박성웅과 티격태격으로 웃음을 준 ‘삼산신’은 현장은 만들어진 애드리브였다. “이정효 감독님, (정)경호, (박)성웅 선배가 현장에서 짰다. 다들 연기를 잘해 그런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이밖에도 250억 원의 대작 드라마 ‘배가 본드’ 촬영을 앞두고 있다. ‘나를 기억해’, ‘메멘토모리’, ‘원더풀 고스트’, ‘삼촌’, ‘너의 결혼식’, ‘소공녀’ 등 영화도 올해 여섯 편이다.1993년 영화 ‘키드캅’로 연기를 시작했던 그는 중앙대 연영과를 거쳐 KBS 20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키드캅’으로 잠시 연기를 체험했다면,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0대 후반이었다. “재미있다”는 기억이 그를 잡아끌었다. 어느새 평생의 업(業)이 됐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공채 발탁 이후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현역 입대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1년 동안 치료에 집중한 후 공익으로 대체 복무했다. 이후 생각만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때 만난 작품이 하정우가 연출한 영화 ‘롤러 코스터’(2013)였다. 극중 정경호의 매니저로 출연한 그는 후반부 맛깔스러운 ‘욕 대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촬영 후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진 순간이었다. 사진=영화 ‘베테랑’ 스틸컷영화 ‘베테랑’(2015)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후반부 순박한 순경으로 잠깐 등장한다. 분량을 다 합쳐도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가 출연한 단편영화 ‘침입자’를 유심히 본 류승완 감독이 먼저 오디션을 제안했다는 전언을 듣고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정작 받아본 대본에서 한참동안 자신이 나오지 않아 애꿎은 담배만 폈다. 기대 없이 시사회를 찾았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아트XX 주인’ 마동석처럼 짧지만 강렬한 웃음을 안겼다. 그는 “계속 연기를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지금까지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실제 ‘베테랑’ 이후 OCN ‘38사기동대’(2016)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자주 찾는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그럼에도 그의 목표는 소박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꿈 보다는 직업으로 접근해보자고 생각했다.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카메라 앞에서 늘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면서 더 멀리 내다보게 됐다. 지금은 그저 현장이 좋다. 식상하지 않은 배우로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다.” 사진=노진환 기자
- [성공異야기]영업으로 기반다져 제약사 인수…제품개발 주력
- 백병하 한국유니온제약 대표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본사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한국유니온제약 제공)[이데일리 이후섭 기자] “회사의 경영과 소유는 분리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래야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백병하 한국유니온제약 대표의 경영 철학은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자수성가형 경영인들은 으레 회사에 애착을 갖고 미련을 못 버리기 마련이다. 백 대표도 맨 손으로 제약 영업을 시작해 매출액 500억원이 넘는 회사를 일궜고, 코스닥시장 상장을 눈앞에 둔 대표적 자수성가형이다. 하지만 그는 이들과 조금 달랐다. 백 대표는 “회사 성장의 기틀을 잡아놓고 나면 전문경영인이 와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23일 백 대표를 경기도 성남에 있는 본사에서 만났다. ◇ 영업맨 마인드가 회사성공의 비결백 대표가 유니온제약을 인수한 것은 2001년이다. 제약 영업 업무를 해온 백 대표는 한국메디텍제약 영업이사로 일하던 시절 제약회사를 창업해야겠다는 꿈이 있었다. 창업이 아닌 인수였지만 꿈은 현실이 됐다. 한국유니온제약은 1985년 설립한 전문의약품 제조 및 판매업체다. 항생제, 혈관 확장제, 위산분비 억제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백 대표가 유니온제약을 인수하기 직전 회사는 영업 부진으로 휴업중이었다. 창업을 꿈꾸던 백 대표는 유니온제약을 큰 회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각오로 회사를 인수했고, 지금의 한국유니온제약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당시 제약회사를 다니던 직원이 직접 제약회사를 사들였다는 것 자체가 업계에선 큰 이슈였다. 주변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 인수 후 6개월 혹은 1년 안에 부도가 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거래처로부터 자금 압박을 많이 받아 상당히 힘들었어요. 우리 회사는 어음을 쓰지 않아 부도가 날 리는 만무하다고 거래처를 설득하고 다녔죠.”소문만 잠재워서 될 일은 아니었다. 매출신장으로 주변의 안좋은 시선을 없애야 했다. “당시 국내 영업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정제와 주사제 앰플을 주력으로 수출에 나섰어요. 이를 통한 매출 성장으로 거래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죠.”멈춰 있던 회사를 키울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닥부터 시작한 백 대표의 영업마인드다. 백 대표는 1983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신풍제약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5년 넘게 제약 영업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 결과 한국유니온제약은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6.9% 증가한 508억원, 영업이익은 25.4% 늘어난 7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26억원, 30억원으로 집계됐다. ◇ ‘직원복지가 최우선’ 경영마인드백 대표는 회사 인수 후 20~30개에 불과했던 품목 수를 늘리기 위한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베트남 위주의 동남아시장, 중동 등으로 해외 영업을 나서기 위해서는 품목 다양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2006년 외부자금을 수혈받아 원주에 공장을 짓고 항생제도 생산하면서 판매 품목수를 늘려 지금의 허가품목수 406개 중 대다수를 당시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9년 수출 500만달러탑을 수상하는 등 회사 매출은 안정권에 진입했다.물론 위기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회사가 실적 부진과 심각한 자금난을 겪던 와중 한 상장사에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 백 대표는 지점장을 모두 불러 회의를 열고 회사의 상황과 인수 제의에 대해 터놓고 얘기를 나눴다. “내 능력에 한계가 찾아와 회사를 넘기는 게 어떻겠냐고 회의에서 물어봤어요. 그런데 끝까지 우리 힘으로 가 봤으면 종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겁니다. 죽던 살던 같이 가보자는 마음으로 인수 제의를 거절했고, 6개월 정도 지나 흑자 전환하면서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었죠.”백 대표의 또 다른 경영 신념 가운데 하나는 직원 복지다. 직원들에 대한 복지 혜택은 일류 기업 못지않게 제공하자는 것이 백 대표의 생각이다. 회사 인수 당시 강원도 원주 근처에는 제약회사가 없어 직원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던 만큼 인력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직원 채용과 독려를 위해 일정기간 근무하면 해외여행을 보내주던 것이 자리잡아 매년 해외여행을 제공하고 있다. 2008년에는 제약회사 최초로 영업부 직원에 차량을 제공했으며, 모든 직원에 만기시 720만원을 탈 수 있는 적금을 들어주고 있다.벡 대표는 “회사의 대표는 방향만 잡아주는 것이지, 회사의 성장은 직원들이 시키는 것”이라며 “개발·생산·영업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회사가 돌아가는 것이기에 회사와 직원들은 동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 후에는 부서별로 복지 혜택에 대한 직원들의 건의를 직접 받아 시행할 계획이다. 이달 내로 직원들의 건의를 받아 바로 다음달부터 복지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또 우수 직원 및 장기 근로자의 자녀들에 대한 해외유학 지원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오는 26일 코스닥시장 상장을 앞둔 회사는 개량신약 개발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내년 완공을 목표로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공장이 완공되면 중동,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으로의 수출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 한국유니온제약은 전문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 시장 진입을 위해 인터올리고와 압타머를 활용한 공동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수탁사업(CMO)에서 위탁개발생산(CDMO)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신성장 동력을 위해 화장품 원료사업 영역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바이오 사업은 전문경영인에 맡기고, 개인적으로 호주에 인연이 있어 호주와 연계한 바이오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백병하 대표이사는 △경북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기계학과 졸업 △신풍제약 근무 △한국메디텍제약 영업이사 △2001년 유니온제약 인수, 한국유니온제약 상호 변경 △2018년 7월 코스닥시장 상장
- '분단 현실' 고찰한 韓 현대문학 거목 최인훈 별세(종합)
- 소설 ‘광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 46분 별세했다(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분단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 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 최인훈 작가는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대표작 ‘광장’…한국문학 새지평 열어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월남했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6학기를 마쳤으나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하는데 갈등을 느끼고 1956년 중퇴했다. 1959년 군 복무 중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며 등단했다.이듬해 4·19혁명이 있었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발표 직후부터 문단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왔다. 전후 한국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되며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고인은 자신의 대표작 ‘광장’에 대해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였기 때문에 덜 똑똑한 사람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또한 저명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최인훈 전집’을 낸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광장’의 위대성은 그것이 단지 분단 현실에 대한 의미 있는 문학적 증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광장’은 완료형으로서의 역사를 기술하기보다 역사의 고고학적 심층을 사유하고, ‘다른 역사’를 꿈꾸는 힘으로서의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이데올로기 대립 ‘분단 현실’ 성찰‘광장’을 필두로 최 작가는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분단 현실을 문학적으로 치열하게 성찰했다.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1963),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파격적인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1966),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20세기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으며 동시대인의 운명을 조망한 대작 ‘화두’(1994)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길에 관한 명상’ 등을 냈다.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새 작품을 내지 않았다.고인의 이름은 해외에도 잘 알려져있다. ‘광장’은 영어·일본어·프랑스어 등 6개 국어로, ‘회색인’과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는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역·출간됐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음에도 정작 본인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너무 밉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깊은 회한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서울대는 지난해 2월 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린다. 발인은 영결식 이후, 장지는 ‘자하연 일산’(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456)이다.최인훈 작가(사진=연합뉴스).
- 레게 강 같은 평화, 스컬과 하하의 7년 진심 (인터뷰)
- 레게 강 같은 평화 (사진=콴 엔터 제공)[이데일리 스타in 박현택 기자] “신인답게 열심히 하겠습니다”팀명을 ‘레게 강 같은 평화’로 바꾼 스컬&하하의 우렁찬 인사말이다. 2012년 데뷔해 7년차를 맞이하는 베테랑 듀오가 스스로를 ‘신인’이라고 말한데는 바뀐 팀명과 함께 초심을 찾고 새출발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종교적 느낌도 들고, 장난기도 느껴지는 팀명이지만 평화를 지향하는 레게 음악의 정신이 잘 담긴 팀명이기도 하다.하하는 19일 오후 4시 서울 홍대에서 열린 레게 강 같은 평화 (스컬&하하)의 신곡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스컬&하하로 7년간 활동했는데도 대중들이 팀명을 잘 모르신다. 지방에 행사를 가면 하하&스컬로 쓰여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라며 “분위기 쇄신, 신곡 발매 기념 차원에서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해 상금을 걸고 새 팀명을 공모했는데, 오랜 회의 끝에 ‘레게 강 같은 평화’가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레게 강 같은 평화’라는 팀명을 먼저 제안한 것은 스컬이었다. 스컬은 “하하가 팀명을 바꾸는데 있어서 내 눈치를 보더라.아무래도 추천받은 ‘레게 강 같은 평화’나 ‘영덕 레게’ 같은 이름을 하고 싶었을텐데, 제 이미지를 염려해서 쉽게 제안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가 먼저 ‘레게 강 같은 평화’로 바꾸자고 말했다”며 “수년간 팀명다운 팀명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것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레게 강 같은 평화 (사진=콴 엔터 제공)레게 불모지 한국에서 1인자로 떠오른 스컬과 예능가를 누비는 하하의 음악적 만남은 늘 오해를 산다. 늘 장난기 넘치는 하하가 실력자 스컬에 ‘숫가락을 얹었다’는 평, 스컬은 ‘사장님’이자 더 인지도 높은 하하에 ‘기댔다’는 평이 데뷔 이후 줄곧 따라다녔다. 두 사람의 레게에 대한 애정과 공연에 대한 열정은 그런 ‘두 사람이 뭉쳤기에’ 손쉽게 폄하되곤 했다. 두 사람은 대중의 이러한 평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하하는 “제가 사장님이지만 팀의 리더는 스컬이며, 항상 100% 의지하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라며 “레게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빌보드에까지 이름을 올린 뮤지션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힙합에 빠져 있던 그가 레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솔직했다. 그는 ”레게를 선택한 것은 전략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장르다. 시작은 그랬지만 이후 내 목소리와도 잘 맞고, ‘키 작은 꼬마’ 등으로 칭찬도 받으면서 잘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레게는‘게릴라 장르’라고 생각한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다고 할만큼 빠져나오기가 힘든 매력이 있다. 과거 절박했던 상황에서 존경스러운 스컬을 만났고, 현재까지도 선생님으로 생각하며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레게 강 같은 평화 (사진=콴 엔터 제공)이에 스컬은 “둘이서 최근 한 방송에 나갔는데, 어떤분이 하하에게 ‘사실 레게를 한 1~2년하고 말줄 알았는데 7년이나 하고 있다. 끈질기다’고 하더라”며 “곁에서 지켜 본 하하는 늘 자신의 예능적 모습을 극복하고 어떻게하면 (레게 음악에 대한)진정성을 보여줄지 고민하던 사람이다. 이제 1~2년도 아닌 7년이나 레게를 외치고 있는 그의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레게 강 같은 평화는 24일 오후 6시 신곡 ‘당디기 방’을 발매한다. 댄스홀과 일렉을 적절하게 섞은 트랙으로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곡이다.다양한 리듬으로 극적인 변화를 주는 편곡과 다소 단순하게 구성된 보컬 라인의 팽팽한 균형이 인상적이다. 가사는 ‘인생을 즐기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Kangaroo와 OVATON이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자메이카 댄스홀의 왕 비니맨(BeenieMan)이 후렴에 참여해 곡에 완성도를 더했다. 레게 강 같은 평화 (사진=콴 엔터 제공)스컬은 “‘부산 바캉스’ 이후로 여름 히트곡이 없는데, ‘당디기 방’으로 전에 없던 여름송이 나온 것 같다”며 “특히 드레이크, 니키 미나즈, 자넷 잭슨의 피처링을 맡았던 비니맨이 피처링으로 참여해서 한국뿐 아니라 본토 자메이카에서도 많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니맨 섭외기에 대해 스컬은 “해외 아티스트 섭외는 내 담당이다. 자메이카에 예전부터 구축해 놓았던 인맥을 동원해서 섭외하고 있다”며 “비니맨은 과거에 파티에서 가볍게 만난적이 있었는데,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기억해주시더라. 음악을 보내드렸더니 ‘OK’ 답변이 왔고, 비디오에도 출연해 주셨다”고 말했다. 음원차트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 하지만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레게 강 같은 평화는 이번 앨범의 목표에 대해 “공연으로 성공하고 싶다. 우리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전국·전세계 어디라도 달려가 ‘모든것을 꺼내놓는’ 공연을 하고 싶다”며 “밥 말리 사단은 전용 버스를 만들어 가수와 댄서 등 모든 스태프들이 함께 곳곳을 다니며 공연하곤 했다. 그런 모습이 우리가 그리는 꿈”이라고 말했다.
- [목멱칼럼]'미스 함무라비'가 전한 사법부 독립의 가치
-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드디어 ‘미스 함무라비’가 끝났다. 사상 유래 없는 사법 거래의 민낯이 드러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가는 판사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 생활밀착형 법정 드라마는, 초기엔 먼저 시작한 ‘무법변호사’의 화끈한 액션과 현실 대법원장과 겹쳐 보이는 악마적 판사에 눌려서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법정 드라마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면서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가 극본을 썼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판사들의 세상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판사들의 자잘한 일상 업무에서부터 법원의 다양한 직업군과 판사끼리의 인간관계나 위계질서를 파악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고등학교 시절서부터 시작된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쫒아가면서 판결에 관련된 사람들의 에피소드까지 꼼꼼히 따라가야 해서 시청자들이 부지런해야만 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법정에서 벌어지는 공방전도 화려한 무법 변호사의 장면과 비교하면 밋밋하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입덕(팬으로 빠져드는 일)이 쉽지는 않은 드라마로 꼽혔다. 하지만 꾸준히 일관성 있게 쌓아 나간 박차오름, 임바른, 정보왕, 이도연, 한세상 등의 캐릭터는 뒤로 갈수록 큰 힘을 발휘했고, 각 판결 에피소드와 함께 등장인물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설정은 판사라는 직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성차별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적 재료로 사용해 대립되는 입장차를 보여주고 또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는데 이는 오랜 판사 경력으로 쌓은 작가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특히 ‘미스 함무라비’가 이룬 성취는 이 비루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끝까지 모색하면서 극중 인물들의 선택으로 일정한 제언을 해냈다는 점이다. 어쩌면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자칫 꼰대 질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낡지만 원칙적인 극작술은, 사법 거래 파동의 충격으로 배신감에 시달리던 시청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했다. 시청자들은 개인의 영전을 노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며 출세한 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끝까지 훼방하며 심지어 보복으로까지 느껴지는 파기 환송을 남발한 법원장에게 받은 상처를 오심으로 판명된 판결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갖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세상을 통해서 치유했고,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강자의 호의를 쫒기에 바빠 유전무죄를 입증하고 있는 판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신을 공격하기까지 하는 소송 꾼의 최초 패소 기록을 뒤져 그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하는 임바른 판사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더구나 여론 재판에 떠밀려 마땅히 해야 할 질문조차 못하는 변호사를 대신해서 피해자에게 질문을 하는 박차오름 판사를 통해 판사라는 직업의 신성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웬만한 드라마가 주는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미스 함무라비’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나직이 묻는다. 당신들은 ‘권리’를 누구를 위해 쓰고 있습니까? 특히 질문할 권리와 들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우리들의 영웅 이야기. ‘미스 함무라비’는 그 제목의 전근대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 법치의 근본 원칙을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사법부의 독립과 법원의 역할을 재규정한다. 영화 ‘포스트’가 기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작품이라면, ‘미스 함무라비’는 법조인의 꿈을 품고서 로스쿨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할 드라마이자 교재다. 하긴, 미래보다는 사법 거래를 일삼고도 아직 반성하지 않은 과거 인사들에게 먼저 시켜야 할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전 대법원장은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뭐라고 말할 지 자못 궁금하다.
- 이태곤 소속사 1호 걸그룹, 리얼 웹예능 공개
- [이데일리 스타in 박현택 기자] 이태곤의 소속사 라마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1호 걸그룹이 9월 데뷔를 앞두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전격 공개한다.라마엔터테인먼트는 “평범한 소녀들이 걸그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웹예능 ‘자양동 하트뿅’을 통해 누구나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걸그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며 “옆집 언니, 누나, 여동생 같은 친구들이 어떻게 변신하고 성장하는지 가감없이 담아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라마엔터테인먼트는 박서준 이현우 등 한류스타들을 성장시킨 키이스트 본부장 출신 이재민 대표가 설립한 연예기획사로 현재 이태곤, 지소연, 김슬미, 최재이 등이 소속돼 있다. 18년차 매니저로서의 네트워크와 노하우, 대형 기획사에서 닦은 트레이닝 시스템 등을 집약해 1호 걸그룹을 9월 선보일 예정이다.현재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연습생들이 데뷔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리얼한 훈련 과정은 웹예능 ‘자양동 하트뿅’을 통해 오는 20일 처음으로 공개된다. 20일 낮 12시 V라이브 ‘유니콘TV‘를 필두로, 네이버TV 내 ’라마TV’, 유튜브 채널 ‘라마TV‘ 등을 통해 매주 금요일 만날 수 있다.이재민 대표는 “데뷔곡은 ‘하트뿅’이란 복고풍 댄스곡으로, 안무까지 모두 나와 있는 상태다. 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연습하는 후보생들의 모습을 26일 V라이브 채널 ‘유니콘TV’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해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뛰어난 연습생에게는 응원을, 실력이 부족한 연습생에게는 날카로운 조언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라이브를 통해 수시로 팬들과 소통할 것이며 팀명도 팬들과 함께 지을 계획이다. 옆집 이웃 같은 소녀들의 걸그룹 데뷔기를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 '김비서' 원작자 정경윤 "매 순간 기립박수 치는 중"
- 정경윤 작가(사진=가하출판사).[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요즘 이 사람처럼 많은 복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싶다. 연일 화제를 낳고 있는 tvN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원작자 정경윤(40) 작가 얘기다. 2013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은 국내 모든 서점에서 로맨스 장르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까지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한 웹소설은 누적 조회 수 5000만 건을 돌파했다. 배우 박서준과 박민영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는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시청률 8.4%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원작 웹소설과 웹툰 그리고 드라마까지 연이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 출간한 ‘김비서가 왜그럴까’는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재력, 얼굴, 수완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자기애로 똘똘 뭉친 부회장 이영준(박서준)을 완벽하게 보좌해온 비서 김미소(박민영)가 퇴사를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작품이다. 특히 정 작가는 약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약국을 열었다가 답답한 생활의 탈출구로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전업의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쓴 로맨스 소설만 10편이 넘는다. 4년 전부터는 글쓰기와 육아를 위해 약국을 접고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정 작가는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쁘고 감사하다”며 “박서준·박민영은 워낙 연기파 배우들이고 내가 생각하던 주인공들의 흐릿한 이미지보다 더 선명하게 캐릭터를 잘 잡아줬다. 지금도 매 순간 기립박수를 치는 중”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톤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는데 그런 점을 예쁘게 봐준 것 같다. 제목은 시놉시스 완성 단계에서야 정했다. 가장 기본이 됐던 장면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이영준이 9년간 파트너로서 함께 일했던 미소의 퇴사 통보를 듣고 “아니, 도대체 김 비서가 왜 그럴까!” 하고 절규하는 장면이었다.-본업은 약사였는데 작가로 전업을 했다. 작가와 약사의 삶을 비교해보자면△약사도 작가도 둘 다 정말 소중한 커리어다. 1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었는데, 그때 글 작업이 숨구멍을 틔워주었다. 하지만 글을 업(業)으로 삼고 거기에만 매달렸다면 지금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기에 즐기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살아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두 배는 만족하며 살고있는 것 같아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작품을 쓰는 데 있어 영감은 어디서 받는지△내 경우엔 정말 생활밀착형, 체험 삶의현장인 것 같다. 평소 접하는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을 노트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 활용하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체험이나 활동을 많이 해두는 편이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도 한다. 뭐든지 배워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더라.-육아와 글쓰기 작업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약국을 정리한 후로 글 작업은 가족들이 자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주로 하고 있다. 급한 마감이 없다면 웬만해선 낮 동안에는 일상생활과 아이들 케어에만 전념한다. 이렇게 시간대를 분리하면 잠이 줄어 몸은 힘들어도 스트레스는 덜 받더라. 내 일, 내 삶, 그리고 아이들이 모든 워킹맘들의 가장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작품이 인기를 얻고 난 후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아무래도 드라마가 방영되니 더 피부로 느껴지는 모양이더라. 다들 신이 났다. 남편은 첫방송 날 밤잠을 못 자더니 그때부터 매 방영일마다 열심히 안방 1열을 차지하고 있고, 큰애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종종 물어온다고 어색해한다. 어린 딸은 커서 박서준 아저씨랑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 미안하지만 그건 절대 안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전혀 납득을 못 하는 것 같은데 더 크면 알아서 이해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사실 가족들의 응원 덕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기에 늘 감사히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