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과 2017년초, 국내 통신사(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와 망이용대가를 두고 갈등을 벌이던 페이스북이 맘대로 접속경로(라우팅 경로)를 바꿔 이용자들에게 접속 지연, 끊김 등의 피해를 준 사건과 관련, 방통위가 페북에 3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데 대해 2심 법원도 11일 위법하다고 결론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이원형, 한소영, 성언주)는 ▲페북의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이용 제한은 있었지만 과징금을 줄 만큼 심각하지 않고 ▲관련 규제(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가 시행되기 전 사건까지 포함해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문제라고 판단해 페이스북 손을 들어줬다.
페북 메신저만 하나?..네티즌 이용습관 못 담은 판결
이번 판결을 두고 규제기관 법 집행의 엄정함을 강조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페이스북 이용자가 게시판 등 메신저 기능만 쓰는 게 아니라 사진·동영상까지 이용하는 추세를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판결문에는 ‘방통위는 현저성 기준이 되는 정상기준 조차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원고(페북)가 제시한 증거에 의하면 원고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한 품질 수준은 정상 범위 내에 있음이 증명될 뿐’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페북때문에 이용자가 열받은 것은 사진과 동영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는 변경 전 하루 평균 민원이 0.8건에서 9.6건으로 12배 증가했고, LG유플러스는 하루 평균 0.2건에서 34.4건으로 172배 증가했다. 재판부 설명대로 라면 뽐뿌 등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소비자 불만이나 불편은 가해자 없이 피해자만 있는 상황이 된다.
방통위로서는 앞으로 새로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서비스 안정성’ 관련 규제를 하게 될 경우 자체적으로 정상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소급적용 이슈는 면밀한 법집행 계기 될 듯
재판부는 1심에서 문제 삼지 않았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 시기도 언급했다. 이원형 부장판사는 “처분의 근거 법령도 없는데 (시기상)50을 위반했는데 100을 처분했다”며 “과징금을 3.9억이 아니라 2억으로 부과했으면 적법하다 아니다 등 법원이 어느 정도 조치가 적정한지를 정하는 것은 3권 분립에 맞지 않아 전부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 50조만으로도 제재할 수 있고, 시행령이 시행된 뒤 2017년 6월19일에야 망증설이 이뤄져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속도지연 피해가 줄어든 만큼, 소급적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법원은 페북 손을 들어줬다.
이는 방통위가 시행령 시행이후인 LG유플러스 사건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했다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됐을 일이라, 앞으로 방통위가 규제 행정을 함에 있어 면밀한 법집행을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또, 올해 6월 전기통신사업법에 일정규모 이상 CP에 대한 ‘서비스 안정 의무’가 생긴 만큼, 앞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번 같은 판단이 내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용자 피해가 있었음에도 현저성의 요건을 법원이 너무 보수적으로 해석해 유감”이라며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