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 감염돼도 그만"…나눠준 마스크도 안쓰는 노숙인들

서울역·영등포역 등 노숙인들 절반 이상은 마스크 안써…"답답하다" 착용 거부
"혹시 옮지는 않을까" 시민들 불안 가중
일부 노인정 임시폐쇄, 취약거점도 '비상등'
  • 등록 2020-02-02 오후 1:01:42

    수정 2020-02-02 오후 4:58:17

[이데일리 사건팀] “코로나 바이러스요? 걸리면 걸리는 거죠 뭐.”

감염 확진자 증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공포가 더욱 확산하고 있지만 노숙인 상당수는 마스크 착용 등 기초적인 예방 조치도 외면하고 있었다. 관련 단체에서는 마스크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에겐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인근 시민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방역에 취약할 수 있는 쪽방촌과 노인정 등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구비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부 노인정은 이달 중순까지 임시폐쇄를 결정하기도 했다.

2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 노숙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사진= 이용성 기자)


마스크 나눠줘도 외면하는 노숙인들…주민들 우려

2일 이데일리가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자들을 지원하는 센터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이들 센터는 우한폐렴 예방을 위한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확보해 센터에 방문하는 노숙인들에게 지급하고 있었다.

서울역의 노숙인 센터 한 관계자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서울역에 오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노숙인의) 마스크 착용은 중요하다”며 “서울역은 외국인들도 많이 다니고 유동인구가 많아 노숙인이 한번 감염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관련 단체가 노숙인 감염 예방을 위해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노숙인들은 우한폐렴 유행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 거리에서 본 노숙인 중 절반 이상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였다.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 이모(66)씨는 “(기자가 마스크를 건네자)마스크는 지금 내 호주머니에도 하나 있는데 갑갑하고 불편해 사용하지 않고, 마스크보다 더 필요한 건 담배”라며 담배는 없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면 걸리는 거고 큰 걱정 하지 않는다”며 무심하게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 임모(50)씨는 “마스크를 지급받았지만 귀찮아서 안 하게 되고, 손 소독제도 귀찮고 번거롭다”며 “(우한폐렴에) 걸리면 걸리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고, 나는 노숙인이라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다. 노숙인 중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던 홍모(43)씨는 “센터에서는 마스크를 끼라고 강조하지만 안 끼는 사람은 절대 안 낀다”며 “나는 뉴스를 보니 사스 때보다 위험하다고 해서 착용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위생적으로 취약한 노숙인들이 전염병에 무신경한 모습에 인근 시민들은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서울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용산구 후암시장 상인 박모(66)씨는 “노숙인들이 길에 버려진 커피나 담배도 그냥 주워 먹고 피고 하는데, 그러다가 세균이 다 옮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며 “같이 살아야 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지만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용산중학교에 다니는 이도윤(14)군은 “평소 동네에서 노숙인들을 많이 보는데, 지나가다가 감기가 옮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군과 함께 있던 친구들 역시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는 듯 이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거리 노숙인들은 담당 부서에서 순찰을 하고 만나는 노숙인마다 마스크를 지급하고 손 소독제를 뿌려주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서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역에서 코레일 관계자가 우한폐렴 예방을 위한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쪽방촌 노인정도 비상…일부 노인정은 임시 폐쇄

쪽방촌과 노인정 등도 우한폐렴 사태가 커지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위생 관리가 잘 안 될 가능성이 큰 데다 비교적 고령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우한폐렴에 노출되면 크게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마스크와 속소독제를 안내문과 함께 각 지역에 분포돼 있는 시설로 매일 배부하고 있다”며 “쪽방촌은 주민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배부하기 어렵다 보니 거점을 두고 마스크를 가져가거나 소독제를 사용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70대 박모씨는 “미세먼지가 많다고 마스크 지급받았었고, 설 끝나고도 시에서 전화가 와서 마스크를 받아가라고 해 지금 마스크가 쌓여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관계자는 “마스크 1만1500개, 손 세정제 1112개, 물비누 81개를 확보한 상태로, 지역 경로당과 노인복지센터 등에 모두 배급할 계획”이라며 “(위생)교육을 하려 해도 잘 모이지 않기 때문에 독거노인의 경우 가정마다 안내원을 보내 교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확진자가 나온 지역 등 일부 경로당은 자체적으로 임시폐쇄를 결정했다. 실제 서울 종로구 혜명경로당과 안암·유림·명륜 경로당 등은 오는 17일까지 임시폐쇄할 방침이다.

김용우 혜명경로당 회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강하다 보니 폐쇄가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며 “확진자가 혜화동 주민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지라 민심이 흉흉하다”고 설명했다. 명륜동 경로당을 자주 이용하던 배순옥(76)씨는 “자주 오던 곳이라 임시폐쇄 조치가 아쉽긴 하다”면서도 “바이러스 예방 차원이라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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