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통계 작성과 과학적 연구 등을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첫 관문을 넘었다. 학수고대해 온 이른바 데이터 3법 중 핵심인 이 법안의 국회 통과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정보기술(IT)와 금융업계는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중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통과된 개정안에는 산업계가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적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반발로 최종 통과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도 부담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다.
`산업적 연구` 빠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취지상 산업 활용 가능”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데이터 3법의 핵심으로 꼽히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등 목적으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가명정보란 정부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에서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의 상당 부분을 가린 정보다. 예컨대 `최××, 1980년 2월생, 남성, 서울 강남구`와 같은 식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국내 개인정보 빅데이터를 활용한 산업들은 상당히 뒤처져 있었는데 이제라도 법 통과가 속도를 내서 다행”이라면서도 “개정안에 산업이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업계에서 법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실제 14일 법안소위에서 이 개정안을 통과시킬 당시에도 `산업적 연구`라는 문구를 포함하느냐 여부를 놓고 막판 진통을 겪었고 결국 해당 문구를 빼기로 결정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해당 문구가 없어도 법의 취지상 산업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해당 개정안은 제안 이유에서부터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와 상업적 목적의 통계 작성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며 “개정안 자체에 문구가 없어도 충분히 산업이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시민단체 강력 반발에 불안감도 여전…“법안 최종통과 안심 못해”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공동 성명을 통해 “80% 넘는 국민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공론화 없이 개인정보보호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법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며 “국회는 행안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 등 입법 절차를 일단 중단하고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도 개정안이 불만족스러워도 법 자체를 통과시키고자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모양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문구에 산업이나 상업이라는 말을 빼 여론이 좋지 않으면 다시 규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불안한 마음에도 법 자체가 통과하지 못하면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고 털어놨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법이 통과를 앞두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 법이 통과되면 그간 일부 업계에서 암암리에 해오던 개인정보 거래를 공식 시장으로 만들 수 있고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스타트업에게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권 교수는 이어 “그러나 법이 통과돼도 착오 없이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여론이 나빠지면 언제든 다시 법을 개정할 수 있는데다 시민단체 등이 위헌 소송까지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