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배반의 정치, 배반의 계절

  • 등록 2016-03-25 오전 6:00:00

    수정 2016-03-25 오전 7:41:11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눈앞에 펼쳐지는 정치판의 모습을 바라보며 회전목마를 떠올린다. 색색으로 꾸며진 목마들이 끊임없이 돌아가는 원형의 무대. 점멸등이 켜지고 경쾌한 선율이 울려 퍼지면 곡예단의 놀이마당은 한층 흥을 돋우기 마련이다.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라는 영어 표현 그대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했던가. 민의를 대변하는 청지기들을 선출하는 행사이기에 어찌 아니 즐거우랴. 더구나 여야 정당마다 서로 고개를 조아리며 충직한 일꾼임을 자처하고 나서지 않는가. 겉으로만 본다면 선거판이 회전목마처럼 즐겁고 흥겨운 것이 당연하다. 아니, 적어도 후보로 낙점을 받아 목마에 올라탄 주인공들만큼은 흥겨울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온갖 이기주의와 암투, 협잡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게 근원적인 비극이다. 이른바 ‘배반의 정치’다. 자정으로 치닫는 시점에서 유승민 의원 스스로 탈당을 선언하도록 유도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술책만이 아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핫바지로 몰아세우려 했던 더불어민주당이나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내홍을 겪는 국민의당이 모두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사람들 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결과다.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는 유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에 대해 “꽃길만 걷다 침 뱉고 떠난다”는 이한구 공천위원장의 대꾸에서 비정함을 넘어 처연함마저 느끼게 된다. 한솥밥 먹던 동지에게도 칼자루를 휘두르며 순식간에 얼굴 표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또한 정치 현실이다.

아무리 화합을 외치고, 소통을 강조했어도 집권당 내에서조차 끝내 마지막 한 움큼의 아량조차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동안 나란히 앉아 웃는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친박’과 ‘비박’의 경계는 끝내 허물지를 못했다. 야당과의 타협이나 공존은 더욱 공허한 얘기일 수밖에 없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세력 다툼에서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도의나 원칙마저 무시함으로써 신뢰를 잃고 말았다. 비겁하고도 추잡한 내면의 모습이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례가 또 있었을까. 선거구 획정이 지연됨으로써 초유의 위헌사태를 초래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우려됐던 현상이다. 전략공천이니, 오픈프라이머리니 하며 옥신각신하던 것이 전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정당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공천에서 떨어졌다고 하루아침에 노선을 바꿔 적진에 투항하다시피 둥지를 튼 경우도 있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4년의 임기가 끝나면서 뿔뿔이 흩어진 모습이다. 그동안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었다 뿐이지 완전히 같은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헌법기관으로 자부하는 국회의원들이 선출직이라기보다는 임명직에 가깝다는 사실도 다시금 확인되었다. 여야 지도부가 자신의 텃밭이라고 여겨지는 지역구에서 절대적인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다. 선거에서 당선되고도 지도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리부터 다음 공천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과연 언제나 바뀔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앞으로 4년이 지나 다시 총선을 치르게 될 때도 지금 상황은 그다지 바뀌어 있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다음 자리를 이어받는 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면 틀린 생각일까.

물론 정치판의 회전목마는 앞으로도 줄기차게 돌아갈 것이며, ‘배반의 정치’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겠다는 유권자들의 깨어 있는 의식이 중요하다. <논설실장>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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