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느낌일 뿐 실존하지 않는다"

청혜스님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깨달음의 길'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쉬운 일"
  • 등록 2020-09-06 오전 7:01:31

    수정 2020-09-06 오전 7:01:31

[청혜 스님] 자기 마음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건 신(GOD)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자기 마음은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 있어 ‘자기’로부터 해방 될 때 자유와 평화가 저절로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부수기 힘 든 감옥이 ‘자기’라는 감옥이다.

‘자기’가 철통 같이 수비하고 있어 자기는 ‘자기’를 절대로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경전을 읽거나 참선을 하고, 또는 진언을 외우거나 명상을 하고, 육바라밀 행을 실천하는 등의 불교의 수 많은 수행 방법들은 자기를 뻥 뚫어 고(괴로움)로부터 자유인 본래 상태로 돌아가, 마음의 희노애락 뿐 아니라 육체의 생로병사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해탈을 누리고자 함이다.

그런데 석가께서도 그러하셨고 역대의 수 많은 조사와 선지식이 모두 그러하셨듯이, 그 어떤 방법으로든 수행을 하고 있을 땐 깨닫지를 못했다.

즉, 그 때에는 자유와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 0의 상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수행하는 주체는 ‘자기(자아,ego)’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를 뚫겠다고 시작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 아닌가.

뚫겠다고 덤벼드는 놈이 바로 자아이니 이 때에는 자아가 성성히 살아 펄떡이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수행을 시작하는 바로 그 ‘놈’이 자아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마음이 평화로운 것도 아니고 또 수행이란 것은 하면 할수록 자아를 강하게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으니, 수행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하고 속수무책으로 있어서도 마음이 편치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래도 무언가 수행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중생들이다.

안하는 것 보단 뭐라도 하는 것이 약간의 결과는 있으니 그렇게 열심히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나아져 먼 미래에는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또는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을 어느 정도 편안하게라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흙탕물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면 흙은 가라 앉고 맑은 물만 위에 뜨듯이, 마음도 수행 한다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절을 하거나 기도,간경,진언,명상,참선 등을 할 때, 물론 그 와중에도 수많은 망상들이 들끓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는 가라 앉아 안정이 되기에 사람들은 이 맛에 수행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긴 세월 동안 수행한다 해도 수행하는 주체가 이미 ‘자아’인 까닭에, 수행의 결과(성과)속에도 자아가 잠시 가라 앉은 흙탕물의 상태와 같고,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뒤 흔들면 자아는 또 다시 살아나 펄떡거리며 돌아다니게 되어 우리는 업식 덩어리인 자아의 노예로 살며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결과 밖에 낳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의 마음은 자기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자기의 마음은 자기의 어떤 노력(기도나 수행 등)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잘 한 번 보라.

일방인들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여러 종교에서는 기도를 하거나 경전을 읽는 등 그밖의 수행을 하고, 불교에서도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자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수행이나 노력의 결과는 미비해서 일시적으로 가라앉은 흙탕물과 같아, 아무리 높은 수행의 단계까지 도달한 사람이라도 세게 흔들어 버리고 큰 파도가 치면 마음이 흔들려 버리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선불교의 최고봉이며 출가자들의 멘토인 임제선사께서는 “수행하지 마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수행하지도 말고, 안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행을 하는 것도 뭔가를 하는 것이고, 수행을 안하는 것도 뭔가를 하는 것이기는 마찬가지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슨 노력을 어떻게 해야 편안해지게 되는 구조가 아니다.

마음의 구조를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관건이다.

마음의 구조를 바로 알면 노력 없이 저절로 ‘편안해져 버림’이 지금 찾아 온다.

물론 여기서의 편안함이 전부는 아니라, 편안함으로부터도, 편안치 않음으로부터도 영향받지 않게 되어야 하지만, 우선은 편치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편안케 되는 단계 아닌 단계가 방편으로 필요하다.

이제 마음이 편안케 되는 완전하고 간단하며 시간과 노력도 필요없는 방법이 무엇인가 한번 보자.

선불교의 동토 초조인 달마대사께서는 후에 법을 물려 받아 2조가 된 제자 혜가께서 “제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했을 때, 과연 어떤 신통력으로 그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셨던가?

“너의 그 괴로운 마음을 가져오라. 편안케 해 주겠노라.”

“그 마음을 찾아 대사께 드리려 하나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해 주었도다.”

이 때 혜가께서 깨달은 것이다.

찾아 낼 마음이 실존하지 않음을.

괴로움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가 하면, 느껴지는 느낌일 뿐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각자 자기의 괴로운 마음을 어디 한 번 찾아보라.

마음을 바꿔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은 느낌일 뿐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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