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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했던 펠로시, 왜 탄핵 칼을 빼들었나
민주당 내 서열 1위인 낸시 펠로시(왼쪽)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상과의 부당한 통화로 헌법적 책무를 저버렸다”고 비난한 뒤, “6개의 하원 상임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캔들이 사실로 밝혀지면 탄핵소추안을 결의하겠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自) 의혹 뒷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이다.
2016년 3월 당시 바이든 부통령이 아들 헌터와 관련된 현지 에너지 기업 ‘부리스홀딩스’에 대한 검찰조사를 막고자 우크라이나 측에 검찰총장 해임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1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정부의 대출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이른바 ‘바이든 부자 의혹’을 재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펠로시 의장은 회견에서 “대통령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해선 안 된다”고 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민주당 하원의원 235명 중 탄핵 찬성파는 202명에 달한다. 나머지 33명 가운데 16명만 탄핵 쪽으로 기운다면 공화당의 반란표 없이도 소추안은 가결된다. 지난 7월 16일 앨 그린 하원의원이 낸 탄핵 결의안 표결 당시 민주당 의원 중 140명이 반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적잖은 변화다. 바이든 전 부통령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버니 샌더스(버몬트) 등 소위 대선주자 빅3 모두 ‘탄핵추진 찬성’에 힘을 실어준 것도 하나의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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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탄핵 조사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된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위 사실이 추가로 불거지는 등 되레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소식통은 “탄핵정국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 될 텐데,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 중 누가 더 이미지를 훼손할 지가 관건”라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탄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본격적으로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하원에서 탄핵 소추가 이뤄진다고 해도, 실제 탄핵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공화당이 과반을 점한 상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기는 어려운 탓이다. 일종의 ‘배심원’ 역할을 하는 상원이 상대적으로 ‘점잖은’ 분위기인 점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실제 1868년과 1998년 각각 하원으로부터 탄핵소추를 받은 17대 앤드루 존슨·42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모두 상원에서 기사회생했었다.
양측 간 ‘1차 대결’의 분수령은 ‘녹취록’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 발언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민주당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질 것”이라며 탄핵 추진이 오히려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美中무역협상·北美 비핵화 협상 향배 ‘주목’
우리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이뤄져 온 북·미 비핵화 협상의 향배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국면에 집중하게 되면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외교·안보성과를 통한 국면전환을 노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탄핵정국 자체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어서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시장에선 미·중 무역협상까지 표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트 호건 내셔널증권 시장전략가는 “탄핵국면이 미·중 무역대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