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심판대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 사건의 주심으로 정형식(63·사법연수원 17기) 헌법재판관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지명한 정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며,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 사건의 2심을 맡아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으로 관심을 끈 바 있다.
|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이날 전자 추첨방식으로 윤 대통령의 사건을 이끌어 갈 주심으로 정 재판관을 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헌재는 주심 재판관을 비공개 했다.
주심 재판관은 헌법재판관들의 토론인 ‘평의’를 상정하는 역할을 한다. 평의는 주문을 도출하기 위해 재판관들이 의논하고 표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주심 재판관은 평의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내고, 공개 변론 등의 절차를 진행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평결이 내려지면 다수 의견을 기초로 결정문 초안을 작성하는 등 탄핵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정 재판관은 지난해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에 따라 대통령 몫으로 지목됐다. 그는 1961년생으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관 임용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장, 수원고법 부장판사, 대전고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일선 판사 시절 2018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의 2심을 맡기도 했다. 당시 정 재판관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증거 상당 부분 무죄로 보면서 실형을 선고한 1심 선고를 파기하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로 그는 이른바 ‘적폐 판사’라는 오명을 썼다. 더 나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특별감사를 요구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법리에 오해가 있다”며 파기환송됐다. 아울러 2013년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한 이력도 있다.
현재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헌재에서 정 재판관은 유일하게 보수 성향이 짙은 인물로 분류된다. 법조계에서는 나머지 재판관에 대해 진보 2명(문형배·이미선), 중도 3명(김형두·정정미·김복형) 등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 후보자 중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정계선 서울서부지법원장은 진보로, 조한창 변호사는 보수로 분류된다. 연내 후보자 임명이 완료되면 헌재는 진보 4, 중도 3, 보수 2로 재편되게 될 전망이다.
보수 성향의 정 재판관이 주심을 맡았지만, 탄핵심판 결과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시각이다. 정 재판관이 주심으로서 탄핵심판 심리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대통령 파면 찬성 반대는 전적으로 각 재판관의 몫이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 때에도 재판관 8명 중(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 임기만료 퇴임) 5명이 보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은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때처럼 재판관의 성향은 이번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헌법재판관들은 이미 법관으로서 수많은 경력과 내공을 쌓은 분들로 사회적 관심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각자 양심을 따라 바라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이번에도 각자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입장문을 통해 “변론기일은 재판장 주재하에 재판관 전원의 평의에 따라 진행되므로 주심 재판관이 누구냐는 재판의 속도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