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의 부활”vs“외교원칙은 국익”…현수막 정치 막을 수 없나요?[궁즉답]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
지자체 허가 없이 ‘도심 정치공해’ 난립
도심 미관 해치고, 시민 안전 사고 위험↑
與, 개수·규격제한 개정안…통과 쉽지 않아
  • 등록 2023-03-20 오후 3:29:38

    수정 2023-03-20 오후 3:29:38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Q. 최근 도심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정치인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심심찮게 보이는데요.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안전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나요?

“정순신 판 ‘더 글로리’…연진아, 네 아빠도 검사니?”(더불어민주당) vs “이재명판 ‘더 글로리’,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국민의힘), ‘치욕적 강제동원 셀프배상, 이완용의 부활인가!’(민주당) vs ‘외교, 우리의 원칙은 오직 국익입니다’(국민의힘)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 인근에 아래 위로 나란히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들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했던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 사태, 일본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문제 해법 등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장외에서 2차 현수막 전쟁으로 펼쳐지고 있는 모습인데요. 시민들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 안전마저 위협할 수 있는 현수막 정치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각 정당들의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이 문제를 해결할 핵심 키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기존에는 정당 현수막을 게시하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지난해 12월부터 관련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정당 현수막이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소속 김남국·김민철·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이 병합, 통과·시행되면서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한 현수막도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 간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도록 바꼈습니다.

개정안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당 활동의 보장이라는 취지에서 각 당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입장을 표시·설치하는 것을 허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긍적적인 측면보다는 역효과가 더 컸습니다.

실제로 정당 정책을 알리기 위한 차원보다는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방전에 가까운 현수막들이 도심을 가득 채워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또 횡단보도 신호등이 가려지는 문제, 가게 가판을 가려 영업을 방해하는 행위, 시민들의 안전 사고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인천시 연수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대학생이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를 금지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지난 13일 국민의힘 소속 김성원·최영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을 보면 정당이 표시·설치할 수 있는 정책 관련 현수막의 표시 방법뿐만 아니라 개수·규격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관련 법이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당들의 현수막은 게시 관련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일반 국민들은 지자체 허가를 받아 지정된 장소에만 게시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민주당은 현수막 정치를 멈추고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는 한 단체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현수막이 가장 많은 지자체로 꼽히는 서울시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시에서는 국회에 관련법 개정 건의와 함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련 지침을 산하 25개 자치구에 배포했습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정당 홍보나 각 당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얼굴 알리기로 대대적인 현수막이나 벽보가 설치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해 온라인 홍보물로 전환하고, 행정력이나 예산 투입을 줄이자는 게 그 핵심 내용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는 벽보 79만부, 공보물 5억8000만부, 현수막 12만8000여매 등이 사용됐습니다. 공보물을 한데 모으면 여의도 면적의 10배(2.9㎢), 현수막은 서울에서 도쿄까지 갈 수 있는 1281㎞에 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지만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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