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국가적 밥그릇

  • 등록 2006-06-27 오후 6:24:05

    수정 2006-06-27 오후 7:18:03

[이데일리 김수연기자] 국내 기업시장에 다시 M&A열기가 뜨겁습니다. 산업계에서 대우건설 매각이 결정됐고, 금융권에서는 LG카드 매각이 막바지 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등 남은 매물들이 줄서있습니다. 이런 매각작업이 과거 외환은행의 첫번째 매각때처럼 서투르고 엉성하기 그지없어 보인다는게 경제부 김수연 기자의 생각입니다.  

지금은 통영으로 이름이 바뀐 옛 충무는, 한때 `거지도 나이키를 신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균 살림이 넉넉했습니다. 한해 수산물 양식이 풍년이면 이후 몇년 흉작이어도 충분했답니다. 양식장, 배 한척 있으면 부자로 불렸죠. 그러나 IMF 외환위기와 초대형 태풍이 동시에 들이닥치면서 지역경제는 무너졌습니다. 대출을 받아 양식장을 벌리고 배를 샀던 이들은 IMF이후의 살인금리 및 강력 태풍으로 부서진 양식장만 떠안은 채 회복할 수 없이 주저앉았습니다.

나락에 빠진 지역경기를 살린건 선박경기의 활황이었습니다. 인근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수년째 호황을 누리면서 지역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충무 지역경제는 거제도 경제권, 정확히는 대우조선해양 경기의 후광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간다고 합니다.

기자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근 통영에 다녀온 직후 그 지역 출신 지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업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돼 있는지를 말해주는 생생한 증언이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란 기업은 이미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라 거제·통영, 나아가 경남지역, 더 크게는 국가의 밥그릇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작가 김훈의 책 한구절 인용할 것도 없이, 밥그릇이란 얼마나 징글징글하고 중차대한 문제입니까.

대우조선해양을 필두로 대우건설(047040), 현대건설(000720), LG카드(032710),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국가적 밥그릇` 이라 할만한 기업들이 지금 줄줄이 시장 좌판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매물 처지가 된 원통한 역사는 개발경제와 IMF에 묻기로 하고, 어쨌든 팔긴 팔아야 한다면 정말 신중하게 잘 팔아야 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걸 파는 주체들은 정부와 일부 정부 지분이 있거나 그렇지 않은 채권금융기관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정부주도 M&A를 보면, 도무지 이들이 국가적 밥그릇을 잘 챙겨서 팔까, 걱정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책임진 LG카드 매각은 어떻습니까. 산업은행은 매각 초기부터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을 반복해 외쳤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시장의 정서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특정후보, 즉 신한금융(055550)지주를 노골적으로 밀어준다는 소문이 연초부터 끊이질 않습니다.

루머의 근거는 찾을 길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열렸던 LG카드 채권단 회의 분위기는 최소한 어째서 이런 루머가 끊이지 않는지는 확인시켜 줬습니다.

이날의 채권단 회의는 LG카드를 공개매수 방식으로 팔아야 하나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습니다. 사회를 맡은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런 일이 생기게 돼 매각주간은행으로서 송구하다”고 정중히 말문을 열며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회의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마치 농협 대(對) 산은-신한연합군간의 대결구도로 흘렀습니다.

농협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으니 대결이란 표현도 온당치 못합니다. 농협 관계자만이 홀로 공개매수에 적극 반대했는데 이런 의견을 밝히기 무섭게 산업은행과 신한은행 관계자들이 깔아뭉개기에 바빴습니다.

별다른 의견없이 회의를 `구경`했던 제3의 채권단(LG카드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단) 관계자는 나중에 “농협이 산업은행에 뭘 그리 밉보였는지 원‥” 하며 고개를 흔들더군요.

몇달전엔 신한지주의 인수자문사가 LG카드의 회계감사법인을 겸하고 있다가 뒤늦게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산업은행이 이를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처음엔 `문제 안된다` 하더니 갑자기 태도가 달라져서 신한지주의 자문사를 바꾸도록 했습니다.

공개매수 논란도 그렇습니다. 한참 매각이 진행중인데 이를 `올스톱` 시키고 채권단이 다시모여 매각방식을 원점서 논의해야할 정도로 차질을 빚었는데도, 산업은행은 법률자문사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합니다만, 공개매수 문제를 초반에 간과했다가 뒤늦게 선회한 것이 정말로 치명적인 `실수`였다면 자문사부터 일벌백계 하는게 상식차원에서 당연할텐데 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금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대우건설(047040) 매각은 또 어땠습니까. 자산관리공사가 주도한 이 매각을 월드컵 축구에 비유하자면, 난투극에 다름 아니었던 포르투갈-네덜란드전이었습니다.

특정후보 밀어주기 설은 기본이고, 입찰가 유출, 경쟁자간의 무차별 흑색선전, 노조도 가세한 힘겨루기 등 추태를 나열하기도 숨찹니다. 심판인 캠코가 경기 중간에 이리저리 룰을 바꾼게 그중에서도 압권이었습니다.

지켜보기도 짜증났던 과거는 청문회를 하든 감사원 감사를 받든 그렇다 치고, 앞으로가 더욱 걱정입니다. 현대건설도 대우조선해양도 팔아야 하는데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현대건설은 현대가의 경영권 분쟁까지 엮어서 일찌감치 만만찮은 게임이 예고돼 있습니다. 단순한 게임도 어렵게 푸는 매각 실력을 가진 우리 정부가 복잡한 게임은 또 어찌 연출할지요.

국가적 밥그릇을 이리 허투루 팔아도 되는 노릇일까요. 잡음투성이에 깔끔하지 못한 절차로 새 주인을 찾았다면, 제대로된 주인일 확률은 그만큼 낮아지는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와 매각주체들은 외환은행 1차 매각으로 고초를 치르고 있는 선배와 동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애먼 생각 말고, 원칙 외엔 답이 없다는 당연한 교훈을 재확인 했으면 합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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