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이후 1년…아직 식지않은 충무로

‘맨발의 기봉이’ 이어 장애인영화 2편 대기
순진무구한 스크린 속 주인공 통해 순수한 사랑 잊고 있는 ‘우리’ 꼬집어
  • 등록 2006-05-02 오전 11:44:11

    수정 2006-05-02 오전 11:44:11

[조선일보 제공]4월 29일 오후 청와대 연무관. 열병을 앓아 여덟 살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장애인 엄기봉(40)씨가 어눌한 발음으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불렀다. 연무관 스크린에는 팔순 노모를 향한 엄씨의 효심을 그린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상영되고 있었다.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는 이 ‘늙은 소년’이 어머니를 위해 빨래를 하면서 부르는 애창곡. 영화 속에서 기봉씨 역할을 맡은 배우 신현준은 “장애를 가진 기봉씨가 장애가 없는 우리들보다 더 효자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했다.

스크린 주인공들의 정신 연령이 거꾸로 가고 있다. 사고나 태생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입어, 성장을 하지 못한 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으로 속속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표). 이 주인공들은 ‘정상인’이라 자부하는 관객들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회의 편견을 비웃듯, 이들은 천연덕스러운 말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순수·효도·사랑 등 잊었던 전통적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20일 촬영을 시작하는 ‘허브’는 초등학생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정신지체아 상은을 주인공으로 한 휴먼 드라마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 중 하나. 암에 걸린 엄마(배종옥)가 병실에서 목이 멘 채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장애를 가진 딸 상은(강혜정)이 직접 준비한 생일상이다. 침대 위 표지판에 적힌 지시사항은 ‘절대 금식’. 뒤늦게 그 뜻을 안 딸은 엄마의 팔목을 물며 절규한다. “남들이 바보라고 비웃으면 그 사람 팔을 물어 뜯으라면서, 엄마는 왜 날 바보 취급해? 지금 음식 먹으면 안 되잖아!”

배우 차태현이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 ‘바보’는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 제목부터 주인공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정신적 장애를 입은 스물일곱 살 승룡이는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순진한 청년. 이 이기적인 세속도시에서, 승룡은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충무로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주인공’들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이런 소재의 대중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폐 장애를 가진 초원(조승우)이의 마라톤 이야기 ‘말아톤’이 5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후,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잇달아 기획되고 있다. ‘허브’의 정주균 PD는 “오랫동안 충무로에서는 장애인 영화는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었지만 지난해 ‘말아톤’ 성공 이후, 관객들이 이런 영화를 불편해 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승리에 초점을 맞춘 ‘말아톤’의 경우와 달리,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처럼 성인이 소년으로 퇴행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끝없는 정쟁, 불안한 경제 등 현실적 요인과 더불어 엽기적 살인처럼 ‘이성의 한계’를 느낄 만한 사건들이 문화 텍스트 안에서 퇴행적 주인공의 등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인하대 국문과 김동식 교수는 “문화 텍스트 속에서 퇴행적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는 지점에서 출현하기 시작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들은 우리 사회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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