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동남서북] 해외공관 대폭 정리하는 차이잉원 정부

  • 등록 2016-09-18 오후 4:21:59

    수정 2016-09-19 오전 7:42:25

대만 정부가 해외에 주재하는 외교 공관을 줄이거나 규모를 축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세계 117개국에 파견된 공관 가운데 10개 안팎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정식 외교관계 수립에 따라 22개국에 파견된 대사관에 있어서도 일부 인력을 감축한다는 방침이 마련됐다. 이미 이에 필요한 내부 검토가 거의 끝나감에 따라 조만간 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대만이 이처럼 외교 공관에 대한 정비작업에 들어간 데는 현재 유지하고 있는 대사관이나 대표부 활동이 기대만큼 능률적이지 않은데다 상대적으로 과다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실제로 단순히 영사 업무만 수행하면서 외교 활동에는 거의 손을 놓은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관 유지에 소요되는 예산을 절감하는 한편 전략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민진당 정부가 역점을 둔 ‘신남향(新南向) 정책’에 대한 배려도 포함되어 있다. 동남아 국가들을 중시하는 이 정책의 본격 추진을 앞두고 외교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을 재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외교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대만 외교부가 최근 발표한 세부 계획에 따르면 이 정책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남아시아 6개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 18개국이 주요 대상이다.

과거에도 해외공관 규모를 감축한 사례가 없지 않다. 국민당 마잉지우(馬英九) 총통 시절에도 베네수엘라 주재 대표부를 포함해 5개 공관이 철수했다. 현재로는 리비아 트리폴리 대표부와 일본 대표부의 요코하마 지사,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관 등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 새로 신설이 유력한 공관은 캄보디아 프놈펜 대표부다. 훈센 정권 당시 외교관계가 끊어진 이래 20년 만에 다시 대표부가 진출하게 된다. 신남향정책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외교부 내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과의 양안 대립 구도에서 유엔 산하기구를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도록 주문하면서도 실제로는 거꾸로 간다는 인식이다. 더욱이 전염성 질병과 항공안전, 식품안전 등과 관련해 갈수록 국제협력 필요성이 증대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이 표출된다. 외교공관 가운데 업무에 태만한 경우가 있다면 일을 제대로 하도록 이끌어가야지 폐쇄하는 것은 섣부른 조치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반발에는 차이잉원 정부의 신남향정책에 대한 불신감도 내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동남아 지역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무역 및 투자 확대로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남중국해에 위치한 타이핑다오(太平島)의 영유권 문제가 걸림돌이다. 대만이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동남아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관계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남향정책이라는 것이 전임 정부의 친중국 정책에 대한 대체 카드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차이잉원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지속가능할지는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차이잉원의 임기가 지난 5월 시작됐으면서도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겠다는 발표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진당 정부는 내년 신남향정책 추진 예산으로 42억대만달러(약 1600억원)를 책정해 놓았지만 친민당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수준”이라며 평가 절하한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에 있어서도 “새 부대에 담긴 오랜 포도주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더욱이 관심을 끄는 것은 현재 대만의 외교적 상황이 자꾸 불리한 여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대만의 수교국이던 갬비아가 중국과 외교관계를 재개했으며 유럽의 유일한 수교국인 바티칸과의 관계도 유동적이다. 외국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던 대만인들이 중국인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송환되는 사태도 이어졌다. 그 와중에서도 차이잉원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는 국호 대신 ‘타이완(Taiwan)’이라는 명칭을 앞세워 정체성 부각에 나서고 있지만 외교적 실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반면 대만 국민들이 비자를 받지 않고도 여권만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현재 120개국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무비자 방문이 가능한 나라들의 숫자로 따져서 세계 29번째다. 지금껏 다양한 외교활동의 성과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 각국에 파견된 공관이었다. 해외 공관을 감축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해도 이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눈앞에 떨어진 과제는 오는 27일부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 참가 문제다. 3년 만에 한 번씩 개최되는 총회에 아직 초청장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013년의 경우 대만 대표단이 ‘차이니스 타이베이’리는 이름으로 참가했으나 올해는 아직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71년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참가했다가 유엔에서 축출되면서 공백 기간을 거쳐 지난 번 특별 초청을 받은 것이다.

대만 정부는 ICAO 본부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민항국 대표단을 몬트리올에 파견한다는 입장이다. 점차 절박해지는 대만의 외교적 여건을 말해준다. 차이잉원 취임 직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WHA) 연례회의에서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마찰을 빚었던 후유증이 전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이 배후에 있는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해외공관을 줄여 신남향정책에 몰두하겠다는 민진당 정부의 계산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결과로 두고 볼 문제다. <허영섭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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