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과장급` 대통령의 기회비용

  • 등록 2005-04-08 오후 3:58:24

    수정 2005-04-08 오후 3:58:24

[edaily 문주용기자] 폴 사뮤엘슨의 `경제학원론`을 누른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학 원론(Principles of Economics)`은 재밌는 비유로, 어려운 경제이론을 쉽게 설명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 하나로 기회비용과 비교우위에 관한 설명이 있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정원에서 잔디를 깎는다. 점프도 잘하고 슛도 잘하고, 다른 운동도 능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잔디 깎는 것쯤은 식은 죽먹기다. 그렇다고 그가 잔디를 깎아야 할까?" 맨큐는 이 답을 위해 기회비용과 비교우위 개념을 소개한다. "조던이 잔디를 깎는데 2시간이 걸린다. 똑같은 시간에 운동화 TV광고를 찍으면 1만달러를 번다. 반면 옆집에 사는 소녀 제니퍼가 조던의 정원 잔디를 깎는데는 4시간이 걸린다. 그녀는 맥도널드 가게에서 시급으로 일을 한다면 그 시간에 20달러밖에 못받는다. 조던이 잔디를 깎음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1만달러이고, 제니퍼는 20달러다. 조던은 훨씬 적은 시간에 잔디를 깎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우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제니퍼는 적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만큼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할수 있다. 때문에 조던은 자신이 직접 잔디를 깎기 보다는 TV광고를 찍고, 대신 제니퍼를 고용해 잔디를 깎도록 하는게 낫다. 설사 20달러보다 더 비용이 들더라도 1만달러보다는 적을 것이다. 그게 둘 다에게 좋은 방법이다" 맨큐는 절대우위에 따르는 판단은 현명한 게 아니라고 한다. 기회비용을 고려한 비교우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정부혁신 관련 토론회에서 자신을 `과장급 대통령`으로 지칭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떠오른 생각이다. 노 대통령은 "`e지원` 시스템 개량을 위한 논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어찌보면 과장급 업무 아니냐, 과장급 대통령이다 할 수 있겠지만 혁신하는데 대통령 따로 있고 계장 따로 있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금 `혁신`에 몰입해있고 노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다. 정부 혁신이 중요하다는 판단은 너무나도 옳다. 관료체질을 타파, 유연하고 실행력 높은 조직을 만들어가야한다는 주장도 괜찮다.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개방체제하에서 갖가지 외부 변수들이 국내 정치 경제 외교 문화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공무원 한사람 한사람의 혁신적인 사고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혁신`이든, `혁명`이든, 일 그자체가 아니다. `누가 그것을 할 것인가`하는 사람 문제다. 대통령이 `혁신`에 대한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 관심 한 가닥이 모든 관료들을 흔들어깨울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일을 대통령이 해야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는 없다. 조던이 제니퍼보다 잔디를 잘깎지만 제니퍼를 고용해 잔디를 깎게 하는게 더 나은 것처럼 노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 `담당 과장`이 제대로 하면 될 일이다. `e지원`시스템 개선에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면 `담당 과장`이 일을 제대로 안하고 있다는 소리다. 더 나가 보자. 윤태영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소개한 `키보드치는 대통령`글을 보면 노대통령은 `워커홀릭`이다. 지독한 일벌레다. 노 대통령은 밤 11시에 `e지원`시스템에 들어가 보고를 읽고 댓글을 남긴다. 칭찬도 하고 냉정하게 혼도 낸다고 한다. 새벽 1시에도 보고받은 게 있고 새벽 5시에도 보고서를 읽는다고 한다. `국정일기`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e지원` 가동 이후 지난 2월말까지 모두 958건의 온라인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한달 평균 240건 가량을 처리한 셈이다. 어림잡아도 하루에 10건의 온라인 보고를 받는다. 대통령이 이렇게 일을 많이 해도 될까. 그 답 역시 기회비용 측면에서 봐야한다. 대통령의 기회비용을 줄이려면 비서실장이 해야할 일, 각 수석비서관이 해야할 일, 각부처 장관이 해야할 일은 그들이 하는게 맞다. 그들이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책임아래 보고서를 검토하고, 전결 처리해야 한다. 아주 특이해서 신선한 느낌이 들거나 너무 중요해서 대통령은 물론이고 말단까지 다 읽게 해야할 것이라면 시간을 내어서라도 대통령이 보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 컴퓨터 앞에 모든 보고서가 펼쳐지고, 이를 읽느라 대통령의 숙면시간이 빼앗기면 `대통령`이라는 막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이 해야할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 잘 할 일은 그 누군가가 하면된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일을 잘할 적임자를 골라내지 못한 것을 고치는 것이 정답이다. 대통령이 열심히 코치하다간 나중에 대통령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정부가 될지 모르겠다. "외교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때 대통령께서 명쾌한 지침을 주시고 앞길을 가르쳐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는 외교부 장관의 최근 발언을 보면서, 언젠가는 "대통령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니까 아무 일도 못하겠습니다"는 발언까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 싶다. `과장급` 일에 기회비용이 `대통령급`이어선 안된다. 비교우위가 분명한 일에 대통령의 열정이 몰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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