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가 번번이 삭감…"재판지연 해소 위해 사법부 예산 독립 필요"

'사법부 예산 편성절차 개선방안' 연구보고서
예산부족에 재판지연…미제 재판 2배 이상↑
사법부 예산, 국가 예산 대비 비중 지속 감소
"예산 독립성 확보 위해 헌법 또는 법률 개정"
  • 등록 2024-10-03 오전 10:32:58

    수정 2024-10-03 오전 10:34:0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개헌 또는 법률 개정을 통해 사법부의 예산편성 독립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행정학회(연구책임자 오영민 동국대 교수)가 최근 수행한 ‘사법부의 독립성·자율성 보장을 위한 예산안 편성절차 개선방안 연구’ 정책 용역 보고서는 현행 사법부 예산 편성 과정이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 연구는 지난 6개월간 대국민 설문조사 및 비용편익분석 등을 포함해 진행됐으며 최근 법원행정처가 공개했다.

지난달 13일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법원의날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연구팀은 “우리나라는 현재 효과적인 사법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재판 처리 일수와 미제건수 증가 등 비효율성이 존재한다”며 “사법부의 예산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예산 확보가 필요한 법관 증원 등 인력 충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민사재판의 처리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1심의 경우 2014년 4.3개월이던 평균 처리 기간이 2022년에는 5.8개월로 증가했으며, 항소심은 같은 기간 7.9개월에서 10.9개월로 늘어났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1년을 넘긴 미제 재판 건수의 급증이다. 1심의 경우 2014년 2만1651건에서 2022년 5만3000여건으로, 항소심은 3588건에서 9225건으로 각각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사법부 예산은 소폭 늘었지만 국가 예산 대비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대법원 예산은 2014년 1조4802억원에서 2023년 2조887억원으로 약 70%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국가 예산 대비 사법부 예산 비중은 0.42%에서 0.33%로 줄었다. 더욱이 예산의 소폭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부담이 커져, 예산 대비 인건비 비중이 2018년 67%에서 2022년 70.6%로 증가했다.

사법부의 예산 계획은 기획재정부에 의해 번번이 막혀왔다. 최근 10년간 기재부는 사법부가 작성한 예산안에서 평균 7.4%를 삭감해 국회에 제출했다. 특히 주로 사법서비스 인력 보완, 사법행정서비스 개선, 사회적 약자 배려 및 국민 권익향상과 관련된 분야에서 예산이 집중적으로 삭감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대국민 사법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핵심 사업들의 예산이 제한되면서 사법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료: 연구보고서
이에 연구팀은 사법부 예산 편성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2가지 주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 제54조에 독립기관이 편성한 예산요구안을 해당 기관장 동의 없이 삭감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삽입하는 것이다. 둘째, 국가재정법 제40조를 개정해 미국과 유사하게 사법부가 제출한 예산요구서를 정부 예산안에 그대로 반영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연구팀은 개헌 절차가 복잡한 현실을 감안할 때, 국가재정법 개정이 현행 헌법 하에서 보다 현실성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사법부의 예산 편성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입법활동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론적 역사적 근거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사법부 예산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률 개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사법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법부 예산 편성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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