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장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는 주인이지만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선거 때는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가 당선만 되고 나면 군림하려드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일 테다. 루소의 비판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그는 1700년대 철학자다. 3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선거 말고는 딱히 정치인들을 심판하기 어려운 단점이 간접민주주의의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국민에게 있어 선거만큼 정치인들을 심판할 강력한 수단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간접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는 선거다. 물론 선출된 권력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와 견제 장치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선거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 때문에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은 그 사회의 정치수준을 살펴보는 ‘바로미터’인 동시에 선출 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투표율이 낮다면 당선된다 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의 절대적 수치가 적다는 것, 즉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동시에 선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적었다는 것, 다시 말해 국민의 엄정한 평가 속에서 당선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낮은 투표율은 국민 개개인의 지지를 통해 권력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간접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정치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결국 정당과 정치인들은 저마다의 당론과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겠지만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얻는 것, 즉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난 21대 총선 투표율은 66.2%였다. 20대 총선의 58%, 19대 총선의 46.1%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온 사회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국민들이 21대 총선에 보인 관심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다만 21대 총선을 부정선거라 규정짓고 있는 이들의 주장 중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사전선거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사전선거에서 조직적인 투표조작이 발생했다며 그것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일례로 지속적으로 21대 총선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해온 민경욱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은 5월1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4·15 총선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 대회’에서 “투표 관리관의 날인 없이 기표가 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발견된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있다”며 이를 공개했다. 이어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올 때마다 투표지를 인쇄하기 때문에 여분의 투표지가 나오지 않는다며 자신이 용지를 확보한 것 자체가 ‘조작’의 증거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이 중대한 ‘증거’라면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사전투표에 대한 조작 의혹이 사전투표 폐지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행사에서 주최측이 참석자들과 함께 “사전투표 폐지”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김광민 변호사 이력
△부천시 고문변호사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천지부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