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부활’ ‘라디오스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과 박빙을 예상했는데 압승이다.
▲솔직히 2등 전략이었다. 사실 관객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의 스타일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덕분인 것 같다.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 비해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드라마는 느슨하다는 비판도 있다.
▲‘범죄의 재구성’을 마친 뒤에 나중에 혼자 봤다. 드라마에 빠져드는 건 좋은데, 캐릭터가 좀 비어 보이더라구. 그래서 반성했다. 캐릭터에 더 집중하자. 사실 ‘타짜’에는 불필요한 서사가 좀 있다. 하지만 곁다리들이 중요하지 않은가. 고니(조승우)와 고광렬(유해진)의 연애 이야기는 쉬어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템포 조절을 위해 필요했다.(그는 간이역서 우동을 사 먹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범죄…’는 우동 먹으면서도 열차를 놓치면 큰일 나겠다는 느낌이 들도록, ‘타짜’는 우동을 즐기는 데 집중하도록 찍었다고.)
―누구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이 있다. 첫 작품으로 ‘신인왕’을 수상한 격이라 더했을 텐데.
▲2년생 증후군이 왜 없겠나. 선배 감독들을 보면 방법은 하나다. 개봉하면 술 먹고 혼자 좋아하다가 빨리 잊어버리는 것. 그래서 ‘좋은’ 감독은 일희일비를 잘하는 감독이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런 상황에서 원작(허영만의 동명 만화)의 인기 탓에 모두가 말렸던 ‘타짜’를 선택하다니.
▲내 무덤을 판 거지. 사실 처음엔 세 번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가 또 제안을 했고,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본 거지.
―그렇다면 결국 의리 때문인가(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0전 10패를 기록하던 백수 시절, 그는 싸이더스에서 감독 데뷔를 했다).
▲차라리 운명이라고 하자. 이렇게까지 ‘타짜’가 나한테 들러붙나 하는 생각. 사실 난 어떤 의미에서 운명론자다.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여자와 사귄 적도 있다.
▲보초만 서지 않으면 군대 갈 만하다, 강의만 안 하면 선생 할 만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투 영화에서 화투가 많이 보이면 재미 없다. 자세하게 보여주는 건 마지막 한판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도박은 좋아하나.
▲(처음엔 별로라고 눙치다가) 동양화는 우리의 삶이라고나 할까. 친척들이 명절에 집에서 화투를 칠 때 다른 어느 순간보다 웃음꽃이 피었다. 가장된 행복인지도 모르겠지만(웃음). 그런데 이 영화 찍고 나서 누구도 나와 함께 게임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한때 목동의 ‘국어! 떴다! 최선생’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이래봬도 학생들한테는 꽤 인기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백수 시절 1년 정도 하다가 영화아카데미 합격하면서 그만뒀다. 1등으로 입학했는데, 꼴찌로 졸업했다. 그리고 시나리오 공모전마다 떨어지면서, 정말 큰 상처를 입었지. 지금은 그때 습작했던 게 큰 자산이 됐지만.”
―자신의 영화에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면.
▲드라마가 제1원칙이라고 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제외하고, 내 답은 ‘템포’다. 영화감독에게 이건 소설가의 문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타짜’는 총 2600컷이다. 그만큼 속도감이 느껴질 거라고 생각한다. ‘범죄…’는 1600컷이었고. 보통 한국 영화가 대략 1200컷 정도일 것이다. MTV세대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빠른 게 좋다. 다음 영화도 컷 수가 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말하는 ‘타짜’ 배우들의 매력
‘타짜’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작품이다. 최동훈 감독이 요약하는 그들의 매력.
▲백윤식=내 시나리오로 배우들이 처음 대사 연습을 하는 순간, 바로 안다. 잘 썼나, 못 썼나를. 그런대 백 선생은 “내가 시나리오를 이렇게 잘 썼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나, 수술당했다’ 등의 대사를 처음 시나리오에 썼을 때는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다.
▲김혜수=지금, ‘타짜’를 본 관객들이 김혜수 연기 잘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4개월 전부터 알았다. 영화의 기술 스태프들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촬영 후 저녁 먹을 때면 모든 스태프들이 혜수씨를 칭찬했다. 더구나 성격까지 훌륭하지 않은가.
▲유해진=나는 정말 ‘일 잘하는 푼수’들이 좋다. ‘일 잘하는 악당’, ‘외로운 천재’들도 곳곳에 있지만, 유해진은 정말 ‘일 잘하는 푼수’다. 내 아이덴티티(정체성)와도 가장 맞닿아 있는 배우.
▲김윤석(아귀)=감독 지망생 시절부터 반했다. 대학로 학전 무대에서 연극하는 걸 보면서. 상대방의 타이밍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연기할 줄 아는 드문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출연한 장면은 단 다섯 신. (그 정도의 존재감을 보인다는 걸 안다면) 놀랍지 않나.